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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인간의 위대한 여정(16)] ‘조각하는 인간’ 호모 스칼펜스(Homo Scalpens) 

누추한 돌조각에 새겨낸 상징의 빛, 인문정신(人文情神)을 밝히다 

배철현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
예술 창조는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행위… 디자인, 상징성, 감수성이 작품의 요체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의 조각상, 신비세계의 황홀경과 지혜로움을 가시화하다

인류의 조상인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는 미적 감성과 문화 창시를 위해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허름하나마 나름의 정교함과 구체성을 갖춘 조각품에는 작가의 의도, 직관, 영감, 상상 등이 반영됐다. 수많은 예술작품에 드러난 상징과 표상은 당시의 의례와 선대 인간의 정신영역을 가늠할 수 있는 지점이다. 깎아내고, 덜어내고, 부각하고, 다듬어놓은 그들의 노작(勞作)들을 살펴보며 인류 예술의 시초(始初)와 영겁 세월 속의 이상향을 읽어낸다.


▎예술작품은 상징성의 표현이다. 화가 폴 고갱의 유작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은 상징으로 가득 차 있는 명작이다.
인간은 언제부터 다른 동물과 구분되었는가? 유인원 중 일부가 두 발로 걸었다. 그들 중 일부가 네 발로 뛰는 동물을 잡기 위해 무기를 개발했다. 특히 털이 많은 동물들이 오래 뛰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일부 유인원은 몸에서 털을 제거했다. 그들은 이제 다른 사냥감들이 남긴 흔적을 발견하고 도망친 길을 상상하며 장거리 달리기를 통해 동물을 사냥했다. 그러다 일부가 불을 우연히 발견하여 사냥감을 구워 먹으면서 인간의 뇌와 수명이 급격히 늘어났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인간’이라고 불리기엔 뭔가 부족하다.


▎라 로쉬-꼬따 조각상은 1975년 프랑스 중서부 랑제의 루아르 강둑에 위치한 라 로쉬- 꼬따 동굴입구에서 발견됐다. 고고학자들은 20세기 초부터 이곳을 발굴했고, 무스테리아 지층부터 여러 유물이 출토됐다.
인간이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름을 달기 위해선 정신적인 혁명이 필요했다.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전이하는 과정에 일어난 획기적인 사건은 ‘예술의 발견’ 혹은 ‘예술의 창작’이다. 기원전 4만 년 전부터 조각, 회화, 악기가 갑자기 등장한다. 인류는 스스로를 ‘호모 사피엔스’ 즉 ‘지혜로운 인간’으로 부를 만큼 상상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인류가 그전까지 보여준 변화는 생존을 위해 환경에 맞게 자신을 바꾸는 정도의 소극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조각, 회화, 악기와 같은 예술은 인류의 상상을 통하여 등장한,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결정적 사건들이다. 인간이란 이름을 달기 위해 꼭 획득해야 할 기술이 바로 ‘예술’이다. 예술을 이룩한 유일한 유인원은 인간에 속하는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다.

‘예술’이란 영어 단어 ‘아트art’ 혹은 라틴어 단어 ‘아르스(ars)’로 불리우는 오래된 인도-유럽어 단어다. 이 단어의 원래 의미는 ‘우주의 원칙에 맞추어 연결하다’라는 의미다. ‘예술’에 해당하는 고대 그리스어는 ‘테크네(techne)’다. ‘테크네’ 역시 ‘기술’로도 번역하는데 본래 의미는 ‘연결하다’이다. 즉 예술이란 다른 사람은 볼 수 없고, 연결할 수 없는 것을 하나로 엮는 혜안이자 실천하는 의지다. 호모 사피엔스는 예술을 고안해내고 창작하는 동물이다.

예술은 언제 시작되었나? 구석기 시대 유럽의 한 동굴에서 의도적으로 제작된 물건은 예술인가 도구인가? 예술과 도구의 차이는 무엇인가?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동굴들인 프랑스 쇼베(기원전 3만1000년 전)와 라스코(기원전 1만5000년 전), 그리고 스페인의 알타미라(기원전 1만2000년 전)에서 발견된 그림, 조각, 새김 모형들은 무슨 근거로 예술작품이라 부르나? 최근 고고학 성과는 예술의 등장을 훨씬 이전으로 추정한다. 아프리카 남부에서 7만7000년~5만5000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 기하학적 모형이 새겨진 뼈와 타조 알이 발견되었다. 또한 독일 남서부 슈바벤에서 발견된 맘모스 상아 뼈로 만든 조각은 4만 년 전에서 3만2000년 전으로 추정되었다. 이런 물건들을 예술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인류의 예술과 작품의 기원


▎2008년 독일 튀빙겐대학의 고고학자 니콜라스 코나르트는 기원전 3만8000년 전에서 3만3000년 전으로 추정되는 비너스상을 발견했다. 당시의 출토현장 장면.
예술작품에는 ‘예술성’이 깃들여져 있다. 이 예술성은 보이지 않지만, 감상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을 자극하는 그 어떤 것이다. 인류는 언제부터 예술성을 지니게 되었는가? 호모 에렉투스나 호모 하빌리스도 예술성을 지녔는가? 하늘에서 줄지어 아름답게 날아다니는 철새에게도 예술성이 있을까? 그런 예술성의 흔적을 가장 명확하게 볼 수 있는 순간은, 예술이 처음으로 시도된 작품들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술성을 찾기 위해선 예술이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예술의 기원’을 추적해야 한다. 그러나 ‘예술의 기원’이란 용어는 이론적인 개념이다. 다양한 예술작품이 자신의 전통 안에선 언제나 최초다. 현대인의 기준으로 ‘예술’이라 부를 수 있는 작품들은 유럽(프랑스 쇼베동굴)에서는 기원전 3만1000년, 아프리카 남비아 아폴로 11동굴에서는 기원전 2만5000년,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에서는 기원전 8000년에 등장한다. 이들은 각 전통에서 독립적으로 등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최초 예술’이라는 용어는 그 작품이 등장한 문화적인 맥락, 기능, 생산자 등이 불확실해 필연적으로 추측과 직관에 의존한다. 쇼베, 알타미라, 라스코 동굴벽화를 그린 예술가들은 미적인 만족과 감상을 위해 동물들을 그렸을까? 이 묘사들은 객관적인 관찰을 기반으로 했는가? 동일한 모습을 재현하여 교육을 목적으로 생성되었는가? 혹은 샤먼들이 동물이나 사후세계와의 만남을 경험하는 황홀경의 표현인가?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구석기시대 물건들이 예술품이라고 불리기 위해선 몇 가지 특징이 필요하다. 첫째는 ‘디자인’이다. 디자인은 인간의 숙고가 결부된 계획적이며 의도적인 행위다. 예술작품은 창작자의 의도가 가시적인 형태로 드러난 물건이다. 디자인은 추상적인 숙고와 실제적인 지혜를 포함한다. 이데아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생각을 구체적인 물질로 변형시킬 수 있는 연습과정이다. 디자인은 모든 인간의 유전자 속에 들어있는 요소를 자극하는 일이기도 하다. 인간들이 창작자의 의도를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공감하는 이유는, 관찰자의 마음속에 있는 예술적 유전자의 동의를 얻기 때문이다.

둘째는 ‘상징성’이다. 인류는 숫자, 문자, 그림, 기호와 같은 상징을 통해 소통한다. 상징은 의도된 대상 자체가 아니라 기호를 통해 전달된다. 만일 우리에게 문자가 없다면, 우리는 과거의 지혜를 축적할 수 없다. 우리는 이 상징기호들이 담긴 광고, 책, 교통신호와 같은 표식을 통해 동서고금의 인류와 소통한다. 예술작품은 상징성의 표현이다. 그 안에 은닉된 창작자의 의도는 상징이며,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소통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화가 폴 고갱의 유작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는 이런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이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고갱이 의도한 메시지를 상징으로 파악한다. 혹은 자신이 그림 안에 숨겨진 상징을 스스로 간파하여 감상할 수도 있다.

셋째는 ‘미적인 감수성’이다. 예술 창작자는 작품을 통해 인간에게 숨겨진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적이며 질적인 감수성을 자극한다. 인간은 충격적이며 심미적인 형태에 유전적으로 반응한다. 예술작품들은 인간의 뇌와 신경이 선호하는 어떤 것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미적인 감수성엔 질서, 균형, 대칭, 섬세, 정성, 조화와 같은 철학적 개념이 포함돼 있다.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19세기부터 고고학에 심취했고, 인류기원에 관한 신비를 담고 있는 구석기 시대 예술작품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당시 프랑스 미술사학자이며 고고학자인 가브리엘 드 모르티에Grabriel de Mortillet(1821~1898)는 구석기시대 작품을 보면서 “이것은 예술의 시작이지, 어린아이의 예술이 아니다”(C’est l’enfance de l’art; ce n’est pas l’art de l’enfant)라고 재치 있게 말했다. 인간은 이 세 가지 인지과정을 통해 예술작품을 생산하고 감상한다. 인간은 구석기시대에 처음으로 예술작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구석기시대 예술작품의 종류는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바위예술(rock art)과 상아나 사슴뿔 혹은 돌을 다듬어 지니고 다닐 수 있는 이동예술(mobile art), 다른 하나는 동굴이나 외부의 커다란 벽면에 그림이나 형상을 새긴 벽예술(parietal art)이다. 먼저 인류가 남긴 최초의 이동예술작품들을 살펴보자.

비움의 미학으로 현시된 문명의 표상


▎라 로쉬-꼬따 조각상은 네안데르탈인의 작품이다. 돌에 남긴 그림과 조각을 통해 그들의 문화를 추측할 수 있다. 마스크의 크기는 생각보다 작은 10㎝ 정도다. 2003년에 학자들이 조각상을 다시 연구해 발표했다.
조각은 자신이 의도한 걸 나무, 돌, 금속과 같은 물질을 이용해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다. 자신이 구현하고자 하는 디자인을 실현시키기 위해, 물질에서 필요없는 부분을 덜어 내는 행위다. ‘조각’에 해당하는 영어단어 sculpture는 라틴어 ‘스쿨페레’(sculpere)에서 유래했다. ‘스쿨페레’의 기본적인 의미는 ‘쓸데없고 부수적인 것을 덜어내다; 잘라내다’이다. 현생인류가 등장하면서 가장 먼저 나타난 예술이 바로 조각이다. 문명의 인상적이며 가시적인 표현은 거대한 건축물과 조각품들이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바빌론의 지구라트,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스톤헨지는 누군가 의도해서 만들어낸 예술품들이다. 이것들을 창작한 예술가들은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을 구현하기 위해 쓸데없는 부분을 쪼아냈다. 더 이상 덜어낼 것이 없는 상태가 완벽한 예술이다. 르네상스 조각가 미켈란젤로(1475~1564년)가 피렌체 시청 앞에 세울 다윗 조각상을 위해 커다란 대리석을 보았을 때, 이런 말을 했다. “그 조각상은 내가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이 대리석 덩어리 안에 완성되어 있지. 그것은 이미 그 안에 있어. 나는 필요없는 것들을 덜어낼 뿐이야.”

조각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예술작품에 대한 영감과 구상을 마쳐야 한다. 조각 창작품은 마음의 노동으로 시작한다. 인류는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삶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는 세계를 희구하며 자신이 상상한 어떤 것을 물질로써 구현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창의성의 빅뱅이다. 그 시기는 소위 오리냐크 시대(4만3000~2만6000년 전)다. 이 시기엔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가 공존하였다가 네안데르탈인들이 멸종된 시기이기도 한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조각 작품 세 개를 살펴보자.

직관으로 그려낸 영원의 세계: 라 로쉬-꼬따 얼굴형상


▎사자-인간상은 1937년 독일 홀렌슈타인-슈타델에서 처음 발견됐지만 처음엔 관심을 끌지 못했다. 30년이 지난 1969년 독일 튀빙겐대학 고고학자 야오킴 한이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는 사자-인간의 모든 조각을 모아 거의 완벽한 형태로 만든 뒤, 독일어로 ‘뤠벤멘쉬’ 즉 ‘사자-인간’이라 불렀다. 현대 독일 울름 박물관에 전시 중인 조각상의 모습.
지금까지 알려진 최초의 ‘예술작품’은 3만5000년 전에 제작된 얼굴형상이다. 이 조각상은 1975년 프랑스 중서부 랑제(Langeais)의 루아르 강둑에 위치한 라 로쉬-꼬따 동굴입구에서 발견되었다. 고고학자들은 20세기 초부터 이곳을 발굴하였고 무스테리아 지층부터 여러 유물이 출토되었다. 무스테리아는 프랑스 지명 르 무스티어(Le Moustier)에서 유래했다. 이 시기는 중기구석기 시대에서 후기구석기 시대로 이어지는 기간으로서 15만 년 전부터 3만5000년까지 지속된 네안데르탈인의 활동 시기다.


▎르네상스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다윗 조각상을 만들고자 커다란 대리석을 봤을 때, 이런 말을 했다. “조각상은 내가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대리석 덩어리 안에 완성돼 있지. 나는 필요 없는 것들을 덜어낼 뿐이야.” 미켈란젤로의 다윗 조각상 상체 모습.
학자들은 2003년에 이 조각상을 다시 연구하여 발표했다. 마스크의 크기는 생각보다 훨씬 작은 10㎝ 정도다. 라 로쉬-꼬따 형상은 네안데르탈인의 작품이다. 4만 년 전은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나와 중동지방에 거주하다 유럽으로 이동한 시기다. 그 당시 네안데르탈인들은 이미 정교하고 창조적인 문화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네안데르탈인 대부분은 여전히 동굴에 거주하였고 생존하기 위해 하루하루 연명하던 시절이다. 우리는 네안데르탈인들이 무슨 놀이를 하며 여가를 즐겼는지 알 수 없다. 돌에 새겨긴 그림과 조각을 통해 그들의 문화를 추측할 뿐이다.

이 물건이 얼굴 상징의 형상이라고 판단하지 않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양쪽 눈에 해당하는 부분에 2.95㎝ 뼈가 ‘의도적으로’ 끼워져 있기 때문에 얼굴을 표현했다고 추정한다. 우리는 연구하려는 대상을 동시대 작품과의 공시적인 비교와, 전시대 작품과의 통시적인 비교를 통해 분석한다. 그러나 최초의 예술작품이라고 추정되는 이 얼굴형상은 비교 대상이 없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이 작품을 제작했다. 작품 자체에 숨겨진 상징을 찾아내야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다.

만일 이 돌조각이 얼굴을 묘사한 예술작품이라면, 네안데르탈인이 최초 조각가라는 증거다. 대부분의 학자는 호모 사피엔스만이 예술창작자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이 얼굴형상을 ‘예술작품’이라 부르기를 꺼린다. 그들은 이 작품이 ‘의도적’으로 창작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 형상은 어린 아이들이 그림이나 진흙 놀이하는 것처럼, 예술적인 비전이나 미적인 감성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직관에 의존한 흉내일 뿐이라고 말한다. ‘직관에 의존한 흉내’가 예술이 아니라면 무엇이 예술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의 특징을 ‘미메시스(mimesis)’, 즉 ‘흉내’라고 정의했다. 네안데르탈인이 남긴 장례문화를 감안하면, 그들은 보이지 않는 사후세계를 상상하고 그 세계로 가는 망자를 위해 정교한 의례를 치렀다. 그들이 추상적인 사고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작품은 최초의 상징 예술작품이라고 불릴 만하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근거는 무엇인가?

첫째는 창작자의 ‘의도성’이다. 얼굴형상 가운데 코로 여겨지는 두툼한 부분 옆으로 움푹 파인 곳에 의도적으로 삽입된 동물 뼈가 보인다. 창작자는 얼굴형상을 만들기 위해, 얼굴모양과 유사한 돌을 찾았을 것이다. 혹은 강가에서 우연히 발견한 삼각형 돌 모양에서 인간의 얼굴을 연상했을지 모른다. 그는 그 돌을 손으로 집어 살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는 동굴로 가져와 작업을 시작했다. 특히 눈을 강조하기 위해, 함몰된 돌을 찾아 다듬기 시작했다. 그는 움푹 파인 장소를 인간의 눈으로 여겼고, 눈을 강조하기 위해 뼈를 애써 끼웠다. 특히 왼쪽 눈을 표시하는 뼈를 강조하기 위해 두 개의 조그만 조약돌로 뼈를 받혀 들어올렸다. 그는 형상의 오른쪽 위, 이마와 콧잔등, 그리고 뺨 부분의 표면을 부드럽게 처리하고자 정교하게 다듬었다.

둘째는 시공간을 넘어 심미적이며 내재적인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얼굴을 기하학적인 좌우대칭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네안데르탈인들이 최초의 예술을 창작하였지만, 그 전통은 금세 사라졌다. 그들에겐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천재적인 예술가들이 있었지만 3만 년전 경 자취를 감췄다. 예술은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네안데르탈인의 뇌에서 처음 시작됐다.

최초의 예술품이 얼굴모형이란 게 의미심장하다. 10㎝ 정도의 작은 물건으로, 호주머니나 목에 걸고 다니는 장난감일 수도 있다. 눈에 올려놓은 뼈가 있는 얼굴형상은 후대 신석기시대 조각가들의 주요 주제였다. 네안데르탈인들은 덧없는 인생을 감지하고 영원한 세계를 추구하기 위해 이 조각상을 남긴 것 같다.

지하의 불꽃, 의례의 상징을 지피다: 사자-인간 조각상


▎구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동굴인 프랑스 쇼베와 라스코, 스페인 알타미라에서 발견된 그림, 조각, 새김 모형들은 무슨 근거로 예술작품이라 부르나? 최근 고고학적 성과는 예술의 등장을 훨씬 이전으로 추정한다. 왼쪽은 쇼베, 오른쪽은 알타미라 벽화다.
유럽에 정착한 네안데르탈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예술품들을 남기지 못했다. 그들이 제작한 조각품들은 단선적으로 후대 전통에 이어지지 못했다. 오리냐크 문화는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주도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 동부에서 출발하여 서서히 중동지방에 거주했고 동유럽엔 기원전 4만1년부터 서유럽엔 기원전 3만8000년부터 등장하기 시작한다. 오리냐크는 프랑스 오트 가론(Haute-Garonne) 지방의 오리냐크 동굴에서 발견된 유적지에서 유래했다. 오리냐크 시기에 인간형상 전체가 상징 예술로 등장한다.

오리냐크 시기에 발견된 조각상 중 상아로 만든 사자-인간상이 있다. 얼굴은 사자이지만 몸 전체는 사람인 하이브리드다. 이 사자-인간상은 1937년 독일 홀렌슈타인-슈타델(Hohlenstein-Stadel)에서 처음 발견되었지만 아무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선사시대 역사학자 로베르트 베츨(Robert Wetzel)이 발굴을 시작했고 1939년 지질학자 오토 뵐찡(Otto Völzing)이 1939년 8월 25일에 200개 이상 맘모스 상아조각을 발견했다고 일지에 기록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고고학자들은 상아조각이 발견된 발굴 장소를 다시 흙으로 메웠다. 고고학자들은 발견 당시, 여러 조각으로 흩어져 있는 사자-인간 조각상을 다른 뼈들과 함께 별다른 언급도 없이 상자에 보관했다. 근처 울름 박물관 보관실에서 30년간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한 채 상자 속에 있었다.

1969년 독일 튀빙겐대학 고고학자 야오킴 한(Hahn)이 이 상자를 발견해 상아 조각들을 가지고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는 그 안에서 한 사자-인간의 모든 조각을 모아, 거의 완벽한 형태로 만들어 이 조각상을 독일어로 ‘뤠벤멘쉬(Löwenmensch)’ 즉 ‘사자-인간’이라 불렀다. 현재 독일 울름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뢰벤멘쉬는 가장 오래된 동물형상 신체상이다. 위에서 언급한 네안데르탈인의 라 로쉬-꼬따 얼굴형상과는 다른 차원의 예술작품으로, 대부분의 학자는 이것을 진정한 의미에서 인류 최초의 상징 예술작품으로 평가한다. 고고학자 한은 이 조각상 아랫배에 튀어나온 부분을 남근이라고 해석해 남성으로 분류했다. 어떤 고고학자는 이 부분을 여성의 둔부로 해석하고, 특히 갈기가 없는 머리를 근거로 암사자의 모습이라고 추정하였다. 그러나 당시 동굴에 표현된 숫사자들도 갈기가 없는 경우가 많아 암사자로 단정할 수는 없다.

1994년에는 뢰벤멘쉬에 남아있는 붉은색을 가지고 탄소 연대 측정방법을 통해 기원전 3만 년으로 추정했다. 학자들은 2008년부터 다시 이곳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2011년에 조각상 등 부분에 해당하는 두 조각을 발굴해 맞추어 보니 높이 31.1㎝, 너비 5.6㎝, 그리고 두께가 5.9㎝나 되었다. 이 조각상의 아랫배 부분에 달린 삼각 모양은 남근의 표시로 해석된다. 이 조각상 창작자는 맘모스 상아를 석기 칼로 다듬었다. 딱딱한 맘모스 상아 어금니를 다듬는 일은 복잡하고 많은 시간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같은 동굴에서 발견된 비슷한 크기의 상아에는 치아를 둘러싼 살과 얇은 뼈를 긁어낸 흔적이 남아 있다. 조각가들은 돌망치를 가지고 쪼아내고 베껴냈다. 학자들은 이런 상아를 만드는 과정은 적어도 370시간 이상의 노동이 필요하다고 예상했다. 뢰벤멘쉬를 만들기 위해선 적어도 수개월이 필요했다. 이것을 조각한 예술가는 생존에 관련된 다른 일들로부터 해방되어 뢰벤멘쉬를 완성하는 데 집중했고, 공동체는 그의 작업을 허용했다. 뢰벤멘쉬의 기능은 무엇인가?

뢰벤멘쉬는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를 지키고 있는 스핑크스를 연상시킨다. 산 자의 세계와 죽은 자의 세계의 경계를 지키는 수호자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라마수라는 괴물은 신전 문에 새겨져 있다. 황소 머리, 독수리 날개, 그리고 사자 발이 혼합된 괴물이다. 뢰벤멘쉬는 동굴 맨 안쪽의 특별한 제단에서 입구를 응시하고 있다. 인간은 사냥 채집의 힘든 상황에서도 지하 동굴로 내려와 의례를 행했던 것 같다.

이 동굴에서는 뼈로 만든 도구들, 사슴뿔, 구슬과 동물 치아를 엮어 만든 목걸이도 발굴되었다. 이 조각상이 발견된 곳은 아마도 보물창고였거나 중요한 의례를 행하던 장소였을 것이다. 반수반인은 신화에서 인간세계와 동물세계를 자주 드나드는 샤먼으로 등장한다. 호모 사피엔스의 문화가 등장하면서 예술이 나타났고 그 대상은 다름 아닌 샤먼이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제 자신이 경험하지 않고 상상에서만 존재하는 사후세계와 동굴세계를 동경하게 되었다. 뢰벤멘쉬가 발견된 홀렌슈타인-슈타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홀레 펠스(Hohle Fels)에서 풍요의 상징인 비너스 여신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공동체 염원이 깃든 거룩한 나신(裸身): 홀레 펠스 비너스


▎홀레 펠스 비너스 조각상. 이는 산후 여인을 표현한 게 아닐까? 구석기 시대에 아이를 낳는 건 공동체 유지를 위해 중요한 일이다. 풍만한 가슴, 뱃살에 생긴 줄들, 홀쭉해진 배와 성기는 출산 직후 여인의 모습으로 보인다.
독일 남서부 스바비안 유라(Swabian Jura) 지역에 위치한 홀레 펠스 동굴에서 후기구석기 시대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이 동굴은 1870년부터 발굴되기 시작했고 곰, 사슴, 맘모스, 말 유골들과 오리냑 시기로 추정되는 석기도 다량 출토되었다. 그 후 여러 번의 발굴을 통해 상아로 만든 새, 그리고 2.5㎝ 정도 크기의 뢰벤멘쉬와 유사한 인간과 사자의 하이브리드 인물상이 출토되었다. 2005년엔 가장 오래된 남근 모양의 기구도 발견되었다.

2008년 독일 튀빙겐대학의 고고학자 니콜라스 코나르트(Nocholas Conard)는 기원전 3만8000년 전에서 3만 3000년 전으로 추정되는 비너스상을 발견했다. 이것은 여성의 나체를 묘사한 최초의 상징 예술이다. 이 팀은 그 동굴에서 3만3000년 전 독수리 다리 뼈로 만든 피리도 발견했다. 홀레 펠스 비너스 상은 후대 밀로의 비너스상과는 다르다. 이 풍만한 여인의 커다란 가슴과 음부는 지나치게 강조되었다. 구석기 시대에 동물이나 남성이 아닌 여성을 묘사한 최초의 예술작품이다. 이 시기는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여 예술적인 창의성을 분출하는 시기다. 스바비안 유라지역에서만 25개 이상의 인물 조각상이 발견되었다. 이곳은 분명 조각이라는 예술이 태어난 장소다.

홀레 펠스 비너스의 가슴은 부자연스럽다. 가슴이 거의 목까지 올려져 있다. 그리고 거대하게 강조되었다. 구석기 시대 후반, 예를 들어 그라벳 시기(기원전 2만5000년 전~2만 년 전)에 발견된 비너스들의 가슴은 신체의 균형에 맞게 조각되었다. 예를 들어 레스퓌그 비너스(Lespugue Venus)나 빌렌도르프의 비너스(Willendorf Venus) 상이 그런 예다. 배엔 가로선이 수평으로 여러 개 새겨져 있다. 그리고 성기는 크게 부각됐다. 다리의 경우 허벅지가 두텁게 조각되었고, 아래로 갈수록 좁아져 종아리와 발은 거의 없다. 두 다리 사이는 성기를 강조하기 위해 넓게 벌려져 있다. 뒷면은 편편하며 허리 부분에 여러 줄이 새겨져 있다. 엉덩이 가운데에 수직으로 홈이 파져 있어 항문을 표시한 것 같다. 홀레 펠스 비너스 조각상은 산후 여인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구석기 시대에 아이를 낳는 일은 공동체 유지를 위해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산모는 아이를 낳는 동안 죽을 수도 있다. 풍만한 가슴, 뱃살에 생긴 줄들, 홀쭉해진 배와 성기들은 출산 직후인 여인의 모습인 것 같다.

목 부분에 조그만 고리가 있는 걸로 보아 목걸이로 추측된다. 아이를 성공적으로 낳은 여인이나 성공적인 출산을 바라는 여인이 이 조각상을 마치 부적처럼 목걸이로 착용했을 수도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자신의 생존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번영과 문화를 가꾸기 위해, 이런 조각품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의학이라는 학문분야를 만든 고대 그리스 의사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기원전 370년)는 수술실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생의 무상함을 느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호 비오스 브락퀴스, 헤 데 테크네 마크레.’(ho bios braxys, he de techne makre) 번역하자면 ‘인생은 짧고 기술은 영원하다.’ 후대 로마 시인들은 이 문장을 ‘비타브레비스, 아르스 롱가’(vita brevis ars ol nga)라고 번역하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문구다. 인류의 조상들이 남긴 조그만 조각상이 수만 년의 시간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외친다. 인생은 짧으니, 자신을 위한 최선의 삶, 예술적인 삶을 추구하라고.

배철현 -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셈족어와 이란어 고전문헌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대왕이 남긴 삼중 쐐기문자가 기록된 베히스툰비문의 권위자다. 2003년부터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5년에 개원한 미래혁신학교 건명원(建明苑) 운영위원이다. 저서로는 <신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질문> <심연>이 있다.

201703호 (2017.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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