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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럴 아츠의 심연을 찾아서] 미(美)와 돈(金)의 얼굴을 한 파리 

21세기 인류 문명·문화사의 중심에 서다 

파리=글·사진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차고 넘치는 포스터와 벽화가 인간의 창조력과 상상력 자극… 2017년 프랑스의 불안과 공포, 젊은 대통령이 잘 이겨낼까?

▎파리의 거리는 상상력과 창조력을 고무시켜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크고 작은 벽화를 거리 어디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무심하거나 잊기 쉬운데 도시에도 표정이 있다. 문화·문명적 관점에서 본, 도심을 흐르는 일반적, 일상적 분위기 같은 것이다. 관광지에서나 느껴지는 분칠한 총천연색 억지 표정이 아니다. 자유의 여신상이나 남대문 같은 캐릭터나 상징물도 아니다. 중심가·도로·외곽·골목 할 것 없이 도시 전체에 흐르는 공기로서의 표정이다.

서울의 표정은 어떤 것일까? 필자의 지인인 베로나 출신 이탈리아인에게 물어봤다.

“똑같은 모습으로 일렬로 길게 늘어선 고층 아파트가 서울 어디에 가도 볼 수 있었다.” 한국만이 아니라 북한 체제 선전 책자를 봐도 콘크리트아파트 군단이 평양의 표정으로 와 닿는다고 한다.

반대로 한국인에게 느껴지는 외국 도시의 표정은 어떨까? 프랑스 파리를 예로 들어보자. 샹송의 멜로디, 몽마르트르 언덕 카페와 와인 한 잔, 샹젤리제 거리의 심야 불빛….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다른 느낌을 얘기하겠지만 필자의 눈에 들어온 파리의 표정은 너무도 명확하다. 도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종류의 크고 작은 포스터와 벽화가 주인공이다. 신제품에서부터 영화, 무대공연에 관한 광고용 포스터, 스트리트 아트로 불리는 벽화가 파리 어디를 가도 쉽게 만날 수 있는 도시의 표정이다. 파리는 포스터와 벽화의 도시다.

사실 포스터나 벽화는 파리만이 아닌, 유럽 도시 대부분이 공유하는 표정 중 하나다. 카우보이 도시 미국에서도 만날 수 있는 글로벌 표정 중 하나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파리는 특별나다. 도로변 키오스크(Kiosk) 주변에 붙은 2m 높이의 초대형 신간잡지 선전에서부터 좁은 골목 벽면에 다닥다닥 붙은 팝콘서트 광고, 프랑스 특유의 상상력 자유에 기초한 거리 그림, 종교의 자유와 아프리카 인권운동을 상징하는 정치적 메시지로서의 벽화에 이르기까지 종류와 형식면에서 다양하다. 질적인 부분만이 아닌, 양적으로 볼 때도 세계 최고, 최대다.

파리의 표정이 갖는 특징 중 하나는 뛰어난 미적 감각이다. 예술의 도시답게 포스터 벽화 하나하나가 특별하게 느껴진다. 후기인상파 화가 툴루즈 로트렉(Toulouse Lautrec)은 19세기 말 파리 포스터 제작자로도 유명하다. 카바레나 극장 포스터로 거리에 나붙었던, 현역 작품을 그렸다. 로트렉이 남긴 물랭루주(Moulin Rouge) 포스터는 현재 1000만 달러가 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100년 전 결혼 청첩장을 예술작품으로 받아들이면서 수백억 고가에 거래한다고 할 때 어떤 생각이 들까? 쓰고 버리는 일회용 포스터를 예술세계로 끌어들인 나라가 바로 프랑스다. 파리의 표정은 미(美)인 동시에 돈(金)이기도 하다.

파리의 표정을 읽게 된 첫 계기는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 도착 후 시차 때문에 새벽 5시에 일어났다. 거리 산보를 하던 중 희한한 광경 하나를 목격했다. 가로세로 20m는 됨직한 큰 벽에다 초대형 포스터를 붙이는 작업이다. 단 한 명이 행하는, 거의 곡예에 가까운 일이다.

20년 전 파리의 아날로그 풍경


▎파리의 벽화는 당장 눈에 들어오지는 않지만 볼수록 빨려드는 은근한 메시지를 발산한다.
끝부분에 롤러가 달린 가늘고도 긴 막대기 하나로, 가로세로 50㎝ 크기의 두꺼운 포스터를 벽 한가운데 밀어 넣는다. 이후 막대기로 포개진 포스터를 사방팔방으로 조심스럽게 펴나가면서 벽면 전체에 붙여나간다.

고개를 위로 올린 채 양팔로 막대기 길이를 조절해나가면서 행한다. 긴 줄로 나무인형을 조종하는 식이라고나 할까? 작업 도중 벽면 군데군데에 풀을 바른다. 따라서 풀이 마르기 전에 빨리 붙여야 한다. 포개진 포스터를 펴는 순간 접착력에 의해 벽에 그대로 달라붙는다.

인적이 드문 새벽녘이 주된 작업시간으로 초대형 포스터 한 장 붙이는 데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포스터는 주름진 곳 하나 없이 정확하고도 완벽하게 벽에 붙었다. 땀방울 하나 조차 흘리지 않던, 신비감마저 느껴지던 숙련된 포스터맨의 기묘한 능력에 감탄했다.

포스터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가늘고 긴 막대기 끝에 오감(五感)을 모아 일하던 포스터맨의 진지한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우산이나 손수건 수선과 같은 직업과 더불어 초대형 포스터맨이란 색다른 일이 파리에 존재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포스터 나아가 벽화야말로 파리의 표정이라고 느낀 것은 그때부터다.

필자의 일방적 기준이지만 파리의 포스터와 벽화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다를 듯하다. 설치 공간에 관한 부분이다. 포스터는 지상지하 둘 다 가능하다. 벽화는 지상에서만 존재한다. 지하철이 지나가는 지하의 벽화도 가능하지만, 고전적 의미의 작품만 존재할 뿐 스트리트아트로서의 벽화는 극히 드물다.

포스터, 벽화 둘 가운데 누구나 간단히 접할 수 있는 파리의 표정은 바로 포스터다. 벽화는 포스터에 비해 비교적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한다. 사실, 지상지하를 막론하고 파리 거리 가운데 포스터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이 얼마나 될까? 파리의 명물 중 하나인 1유로짜리 공중화장실에 들어가도 크고 작은 포스터들이 이미 침투해 있다.

파리의 포스터는 설치장소에 따라 지상과 지하로 나눠볼 수 있다. 지상지하를 가늠하는 가장 큰 차이는 합법성 여부에 있을 듯하다. 예외도 많겠지만, 대체적으로 볼 때 불법포스터가 많은 곳이 지상이다. 큰 도로가나 공공건물 주변을 제외할 경우 지상의 벽에 붙은 포스터의 대부분은 불법이다. 떼고 붙이고 덧붙이는 ‘끝없는 보복전’이 반복0되는 곳이다.

지하 포스터는 다르다. 포스터 전용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다. 사실, 불법 포스터가 밀고 들어올 공간이 많지 않다. 필자가 주목한 부분은 지상이 아니라, 지하 특히 지하철 플랫폼에 붙은 포스터들이다.

포스터를 풀로 붙이는 아날로그 작업 풍경은 파리가 가진 유쾌한 표정 중 하나다. 슬로푸드에 비견될 만한 슬로 잡(Job)이라고나 할까? 뉴욕 지하철의 경우 신제품 광고나 극장 선전 포스터를 역사(驛舍) 안에 붙이지 않는다. 초대형 전자 모니터를 통해 디지털 포스터를 전시하는 경우는 있다. 파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풀을 이용한 예술적 차원의 포스터는 전무하다. 서울 지하철의 경우 공보용 포스터는 간혹 눈에 띄지만, 극장이나 무대공연에 관한 포스터를 왜 외면하는지 궁금하다.

포스터맨과의 만남은 최근 파리에 들를 때 결심한 최우선 과제 중 하나다. 20여 년 전 접했던 긴 막대를 든 포스터맨의 새벽 예술을 지켜보면서, 당시의 감동을 다시 한 번 일깨우고 싶었다.

누군가가 새벽녘에 일할 것이란 희망을 안고 해가 뜨기 전 파리시 곳곳을 뒤졌다. 파리 도심 전용 자전거를 활용한 산보이기에 누군가를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그러나 그 행운은 따라주지 않았다. 거리 곳곳을 달렸지만, 단 한 명도 만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새로운 수확도 있다. 자전거를 파킹한 뒤 지하철 오페라좌(座)로 향하던 중 발견한 또 다른 타입의 포스터맨이다. 지하철 차창 밖 반대편 플랫폼 벽에 포스터를 붙이던 사람이다. 곧바로 다음 역에 내려 되돌아왔다.

‘최후의 심판’ 벽화에 준하는 지하철 포스터


▎가장 단순한 일이지만 파리지앵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는 작업이라고 강조하는 포스터맨 세드릭.
다행스럽게도 작업은 아직 진행되고 있었다. 옆에 서서 지켜봤다. 관광객의 눈길에 익숙한 듯 별로 동요되지 않은 채 묵묵히 포스터를 붙여나갔다. 민첩하고 정확하다. 기본적으로 20년 전 야외에서 봤던 초대형 포스터와는 전혀 다른 작업이다. 일단 포스터의 크기가 가로세로 5m 정도로 다소 작다.

한국 내 영화나 공연 포스터에 비하면 10배 이상은 클 듯하다. 두껍게 포개진 포스터를 조금씩 펴나가면서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8장으로 나눠진 포스터를 하나씩 연결하는 방식도 다르다. 6장, 12장으로 나눠진 포스터도 있다고 한다. 긴 막대기를 이용한 작업이 아니라, 사다리를 타고 직접 올라가 풀칠을 하면서 붙인다. 풀을 직접 만져봤지만, 의외로 손에 달라붙지 않을 정도로 약한 끈기다. 특수하게 제작된 포스터 종이에만 반응하는 풀이라고 한다.

파리 지하철 벽의 대부분은 평면이 아니라 아치형 곡면이다. 자칫하면 비뚤어지거나 주름이 잡힌 포스터가 되기 쉽다. 그러나 8장 전부를 정확히 일직선으로 붙여 나간다. 언뜻 보면 한 장의 포스터만으로 구성된 느낌이다. 작업에 걸리는 시간은 30분 정도다.

사다리에서 내려온 30대 초반 포스터맨에게 말을 붙여봤지만 영어가 전혀 안 통한다. 프랑스인은 프랑스어만으로 세상과 통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같은 전통은 20세기까지의 전설에 불과하다. 글로벌리즘은 미국만이 아니라 파리 로마에도 통용된다. 필자의 경험이지만, 파리에서 영어를 못하는 젊은 사람은 10명 중 한두 명에 불과하다. 포스터 작업을 둘러싼 내막을 알기 위해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섰다.

파리 내 지하철 기본 티켓은 장당 1.45 유로다. 10장을 한꺼번에 구입하면 한 장 더 덤으로 받는다. 11장의 실탄을 바탕으로 지하철 내 포스터맨을 찾아 나섰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중 무려 3명에 이르는 포스터맨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바쁜 행렬을 피해 주로 아침이나 심야에 일한다. 기억에 남는 포스터맨은 폰 마리(Pont Marie)역에서 만난 세드릭(Cedric)이다. 자신의 직업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한 달 월급은 무려 2500유로다. 연금도 있고 자녀 학비지원금은 물론 휴가비도 특별히 많다. 대만족이다.” 파리 지하철에서 일하는 포스터맨이 몇 명인지 물어봤다. “정규직·비정규직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200명 정도가 항상 대기하고 있다. 파리 지하철 내 준공무원으로 일한다.” 자신의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되묻자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 “미켈란젤로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예술가다. 그가 완성한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는 세계 최고의 명작이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붙이는 포스터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벽화에 준한다고 확신한다. 지하철 벽면은 원형이다. 매일 일에 열중하다 보면 허리와 목이 어긋나면서 취침 때 고통스럽다. 그렇지만 65세에 최후의 심판을 완성한 미켈란젤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현실이 차가울수록 위력적인 오락


▎파리 지하철 포스터의 기능은 광고에 그치지 않는다. 도시를 활기차게 만들어주는 청량제 역할도 중요하다.
세드릭은 하루에 20장 정도의 포스터를 지하철 곳곳에 붙인다고 한다. 솜씨가 좋은 동료는 하루에 30장도 붙인다고 한다. “파리 지하철 포스터는 보통 1주일 주기로 바뀐다. 지하철 플랫폼만이 아니라 지하철 통로 곳곳에도 포스터가 즐비하다. 파리에는 모두 16개의 지하철 라인이 있다. 지하철 역사만도 303개에 달한다. 하나의 역에 대충 50개 정도 포스터가 들어서 있다고 할 때 파리 지하철 내 포스터는 전부 1만 5000개에 달한다. 지하철 포스터는 광고 목적만이 아니라, 지하라는 막힌 공간을 환하게 만들어주는 신선한 창문 역할도 한다. 하루 이용객 400여 만 명의 파리지앵에게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1주일 단위의 1만5000개 포스터가 업무영역이다. 단순한 일이겠지만, 가장 보람을 느끼는 작업이다.”

생각난 김에 20년 전에 봤던 긴 막대기를 이용한 포스터맨에 대해 물어봤다. “예전에는 수요가 있었기에 그런 포스터맨들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거의 사라졌다. 초대형 벽면에 프린터용 포스터를 아예 통째로 덮어씌우기 때문이다. 지하철 동료 중에는 그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6장, 8장, 12장으로 나눠진 작은 포스터를 연결해서 붙이는 수준에 불과하다. 한 달 정도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체득할 수 있다. 초대형 벽면 포스터는 다르다. 오랜 경험과 아주 특수한 능력과 기술이 필요하다. 집중력은 물론 체력도 남달라야 한다. 가끔씩 눈에 띄지만, 현역으로 일하는 사람은 아마 극소수일 것이다.”

포스터맨과 관련해 기억에 남는 영화로 <자전거 도둑(Ladri di Biciclette)>을 빼놓을 수 없다. 네오리얼리즘의 거장, 비토리오 데시카(Vittorio De Sica)의 1948년 작으로, 전후(戰後) 이탈리아의 현실을 정확히 묘사한 흑백영화다.

온실 속에서 이뤄지는 성형 연기가 아닌, 뜨거운 태양 아래서 느껴지는 땀과 눈물이 가슴에 와 닿는 영화다. 인터넷 플랫폼 덕분이지만, 추억이 배인 영화를 클릭 하나만으로 간단히 음미해볼 수 있다. 패전국 이탈리아에 몰아닥친 경제난 속에서 주인공 리키(Ricci)에게 떨어진 ‘귀한’ 직업은 영화 포스터를 붙이는 일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하기에 거금을 투자해 자전거를 사지만, 포스터를 벽에 붙이는 사이에 잃어버리게 된다. 자식 브루노(Bruno)와 함께 필사적으로 자전거를 찾으러 돌아다닌다. 끝내 자전거는 못 찾지만, 새롭게 내일에 기대를 거는 부분에서 영화는 끝난다.


▎파리 지하철 내 1만5000개 포스터는 이 도시의 표정을 결정하는 핵심에 해당된다.
<자전거 도둑>에서 필자가 관심 있게 본 부분은 피폐한 패전국과 영화와의 관계다. 놀랍게도 영화 속에서 리키의 한 달 월급은 4인 가족의 생존을 가늠할 정도로 높다. 생존 자체도 불투명한 나라에서 영화 포스터맨이란 직업이 존재했다는 것도 신기하다.

어떻게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을까? 답은 정신적 피폐와 오락문화와의 상관관계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오락은 세상이 척박해질수록, 현실이 차가울수록 위력을 발휘한다. 오락 자체의 순기능에 해당되겠지만, 일종의 정신적 도피처라 볼 수 있다.

낭만과 자유 vs무절제, 무질서


▎파리 북부 가르 듀 노르 근처에서 만난 벽화. 파리 시내 모습을 표현한 초현실적 작품이다.
공습으로 도시 전체가 엉망이 된 상태지만, 전승국 미국에서 밀려온 할리우드 영화는 전후 이탈리아인이 즐긴 몇 안 되는 기쁨 중 하나였다. 이탈리아인들은 아직도 스윙과 재즈로 뒤 범벅이 된 60년 전 미국영화를 잊지 못한다. 흑백영화 전용 시네마에 가보면 게리 쿠퍼, 존 웨인, 버트 랭커스터 주인공의 미국영화가 즐비하다.

2017년 봄의 파리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뒤덮여 있다. 여차하면 한순간에 불이 붙을 휘발성이 강한 카오스의 도시로 와 닿는다. 39세의 젊은 대통령 뉘엘 마크롱을 통해 희망찬 프랑스로 나아가길 바라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아 보인다.

파리 거리로 나아가면 고감도의 불안으로 점철된 긴장감이 피부 속으로 파고든다. 거리에는 아예 침대를 깔고 구걸을 하는 가족 단위 불법이민자로 들끓는다. 시리아를 비롯한 이슬람권에서 온 난민들이다. 지하철 역사 곳곳에서 말싸움하는 사람들의 고성(高聲)도 들린다. 조금만 어두운 곳에 가도 술 취한 사람들이 넘쳐난다. 뭔가 어수선하고 마음을 놓기가 어렵다. 파리의 낭만과 자유라고 하지만, 조금만 달리 보면 무절제와 무질서로 느껴진다. 파리의 테러는 이미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고정뉴스에 해당된다. 신임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의 험한 현실을 고칠 수 있다고 믿기는 어렵다. 의회의 기반도 없는, 이미지 하나로 대통령에 나선 청년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의 프랑스다.

파리의 벽화는 포스터에 비해 뒤늦게 관심을 가진 영역이다. 계기는 뉴욕 할렘에서 시작됐다. 할렘은 재즈만이 아니라, 미국에서 가장 많은 벽화를 가진 장소로도 유명하다. 서부의 캘리포니아도 유명하지만, 미국에서 벽화라고 하면 할렘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할렘이 갖는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생각할 때 벽화의 테마가 어떤 것일지는 짐작이 갈듯하다. 흑인의, 흑인에 의한, 흑인을 위한 정치적 메시지로서의 벽화다.

벽화 하나하나에 흑인들만이 갖고 있는 애환이 배어 있다. 흑인 청년이 경찰 검문 도중 사살됐다는 소식은 거의 매일 들을 수 있는 미국의 일상 뉴스 중 하나다. 할렘은 흑인을 희생자로 한 그 같은 비극적 뉴스를 벽화로 표현하는 공간이다. 누군가가 나서서 흑인 희생자를 기리는 벽화를 할렘 어딘가에 표현한다.

흑인 인권문제만이 아니라, 흑인 계몽을 테마로 한 벽화도 곳곳에 넘친다. 교육과 비폭력을 강조하는 벽화는 할렘의 주된 표정 중 하나다. 흑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만들어준 인물에 대한 벽화도 넘친다. 넬슨 만델라, 마틴 루터 킹, 말콤 엑스, 버락 오바마는 할렘의 4대천왕으로 추앙되는 흑인들의 자부심 그 자체다.

파리 벽화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은 10여 년 전이다. 할렘 벽화 탐색에 나서던 중 우연히 만났던 30대 초반 프랑스인을 통해서다. 난생 처음 뉴욕에 와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이 할렘 벽화라는 것이다. 프랑스인의 심미적, 정치적 흥미에 내심 놀랐지만, 할렘 벽화를 파리와 비교하는 독특한 세계관이 한층 더 흥미로웠다.

“눈에 보이는 파워, 피나 땀이 범벅이 된 현실에 기초한 근육질 작품이 할렘 벽화의 특징이다. 파리의 벽화는 다르다. 파워·피·땀보다, 위트·유머 나아가 풍자가 배인 비현실 나아가 초현실적 작품이 주류다. 첫눈에 들어오지는 않지만, 자꾸 보면 마음속에 아련히 남는다고나 할까?”

프랑스식 사고의 전형 파리-다카 경주


▎파리의 수수께끼 스페이스 인베이더(Space Invaders) 벽화. 비밀결사단만을 위한 상징처럼 느껴진다.
프랑스인의 비교분석을 들었을 당시 필자에게 떠오른 생각은 파리-다카(Dakar) 1만㎞ 자동차 경주다. 거의 2주일 동안 이뤄지는 아프리카 비포장도로를 무대로 한 생존형 자동차 경주다. 테러 위협 때문에 남미를 무대로 한 경주로 변해가고 있지만, 파리-다카 경주는 프랑스식 사고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본보기다.

미국 자동차 경주는 얼마나 ‘빨리 강력하게’가 주된 관심사다. 프랑스 자동차 경주는 다르다. 얼마나 장시간 그리고 안전하게 끌고 갈 수 있을지가 핵심이다. 빠른 자동차가 아니라, 얼마나 안전하게 오랫동안 최종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가라는 점이 중요하다. 100m 경주 토끼가 아니라, 100㎞를 무대로 한 거북이인 셈이다.

따라서 파리-다카 자동차 경주는 역대 최고기록에 대해 무관심하다. 프랑스 시골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1960년대 생산된 기계식 구식 자동차와 비슷한 개념이라고나 할까? 최첨단 디지털 인공지능 자동차가 아니라, 부모, 자식, 손자에게까지 물려줄 수 있는 역사와 전통으로서의 흔적이다. 할렘과 프랑스 벽화의 차이는 바로 두 나라가 추구하는 자동차 경주의 가치관과 일맥상통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파워·피·땀이 아닌, 비현실 나아가 초현실로서의 벽화를 실감한 것은 파리 도착 직후다. 필자가 묵었던, 북부 파리의 관문인 ‘가르듀 노르(Gare du Nord)’ 바로 옆에서 발견한 벽화다. 6층 정도 건물 외벽에 그려진 그림으로, 모자를 벗은 사람의 머릿속을 형상화한 것이다. 에펠탑을 비롯해 센강을 중심으로 한 파리 시내 각종 건물과 상징물들이 머릿속에 꽉 차 있다.


▎샤넬 광고와 16세기 건립된 프랑스 교회. 광고라고 해도 광고 같지 않은 예술벽화로 표현하는 곳이 파리다.
가르 듀 노르는 외국 관광객이 파리로 들어올 때 가장 먼저 만나는 관문이다. 파리 전체를 벽화 하나 속에 집어넣어 보여 준 창조적 작품이다.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고속도로는 서울을 찾는 외국인의 첫 관문에 해당될 듯하다. 서울 나아가 한국을 외국인에게 보여주는 벽화를 선보인다면 과연 어떤 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포스터와 벽화는 시각을 통한 효과에 주목하는 매체다. 이미 한 세대 전 얘기지만, 포스터나 벽화보다 텍스트 슬로건을 통한 효과에 주목했던 시대가 있었다. 50대 필자의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 1970년대의 반공 표어가 주인공이다.

40년 전 10월유신 기간 중이라 생각되지만, 슬로건을 통한 표어 콘테스트가 곳곳에서 이뤄졌다. 반공과 함께 승공·통일·단결·충성 같은 단어들도 난무했다. 백일장이란 이름의 전국 대상 글짓기대회도 아주 흔했다. ‘정부 비판 발언=매국’이란 논리가 상식화되던 시대였다.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지만, ‘간첩 잡는 아빠 되고 신고하는 엄마 되자!’라는 표어도 있었다.

슬로건으로 점철된 표어 공화국의 한계


▎벽화 작업은 건물 주인의 동의 아래 이뤄지는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영역이다.
표어를 포스터와 벽화에 비교하면 뭔가 직접적이고 일방적이란 느낌이 든다. ‘언어의 한계는 세계관과 사고의 한계’라고 언어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텍스트를 통해 사고와 세계관이 명확히 구축된다는 의미다.


▎자유와 사랑이 벽화 작품의 주제라고 말하는 벽화 예술가 다비드.
포스터나 벽화는 어떨까? 직접적이라기보다 간접적, 구체적이기보다 추상적인 표현수단일 듯하다.

곧바로 뇌로 가서 행동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뭔가 뇌 속에 들어가 나름대로의 사고를 거친 뒤 행동으로 이뤄지는 식이다. 언어를 통해 분명히 전달될 수 있지만, 인간이 가진 상상력과 창의력이란 점에서 보면 시각적 효과에 주목하는 포스터와 표어가 한 수 위다. 아예 글자를 몰라 그림으로 선거방식을 설명하는 아프리카와 같은 곳을 논외로 할 경우, 시각을 통한 효과가 한층 더 오래가고 인상 깊게 와 닿는다. 사실 텍스트를 통한 소설이나 기사는 몇 차례 읽으면 거의 고정적인 느낌만이 남게 된다. 클래식 영화는 세 번, 네 번 아니 열 번이라도 볼 수 있다. 아무리 톨스토이라 해도 같은 작품을 세 번, 네 번 읽기는 어렵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각을 활용하는 포스터나 벽화가 글로 된 슬로건형 표어보다 한층 더 기억에 남고, 각자의 상상력을 통해 한층 더 진화될 수 있다. 텍스트에 기초한 표어가 단기적, 직접적, 객관적 신속형인데 반해, 포스터와 벽화는 장기적, 간접적, 주관적 지속형에 해당된다. 따라서 아무리 심금을 울리는 슬로건 표어라 해도 기억 속에 오래가지 못한다. 포스터나 벽화에 대한 기억은 상대적으로 길고도 선명하다.

인간의 창조력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수단이란 점에서 개개인의 의식을 중히 여기는 민주주의 원칙과도 통한다. 비약적이라 말할지 모르지만, 포스터와 벽화가 넘치는 파리가 21세기 인류 문명·문화사의 중심에 서 있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리 돈이 많고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파워라 해도 슬로건으로 점철된 표어 공화국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독재와 같은 강력한 리더십을 통해 단기적으로는 ‘승승(乘勝)’ 할 수 있겠지만, 모두의 모델이 될 만큼의 ‘장구(長驅)’하기는 어렵다. 잘 정리된 슬로건 공화국이 어지럽고도 무질서한 포스터·벽화 공화국보다 한 수 아래인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지하철이나 문화재를 대상으로 한 반문명적 낙서가 문제라 해도, 슬로건 공화국이 보여주는 ‘일사불란(一絲不亂)’보다는 한 수 위라고 믿는다. 파리의 표정은 바로 보다 진화된 상급 문명·문화로서의 증거이기도 하다.

파리 내 표정 탐험에 나서던 중 운 좋게 벽화작업 현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장소는 에티엔느 마르셀(Etienne Marcel) 지하철 주변 거리다. 파리 요리사들을 위한 주방도구 판매점이 밀집한 지역이다. 파리에서 제일 오래된 디저트 가게로 향하던 중 사람들로 둘러싸인 공간을 하나 발견했다. 이어폰 음악을 들으며 건물의 철제문에 그림을 그리는 20대 중반 흑인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프랑스는 미국의 9·11테러 이후 상황과 비슷”


▎수풀로 뒤덮인 공중정원 벽화. 파리에서 만난 가장 인상 깊은 유기(Organic) 작품이다.
남성의 눈을 중심으로 한 그림으로 색상은 형형색색 다채롭다. 뭔지 모르지만, 강한 메시지가 느껴진다. 그림에 열중하던 중이지만, 실례를 무릅쓰고 말을 걸었다. 다비드(David)란 이름의 청년이다. 필자가 만난 프랑스인의 99%는 놀라울 정도로 친절하다. 부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람을 배려하는 자세가 아주 특별하다.

“지금 그리는 그림의 주제는 무엇인가?”

“자유와 사랑이다. 내 모든 작품의 주제이기도 하다. 여기 인물의 눈을 보기 바란다. 뭔가 느낄 것이다. 분노를 감지한다면 당신의 마음이 그렇다는 증거다.”

그림 그리는 데 어느 정도 걸리는지 물어봤다. “오늘 작품의 경우 5시간 정도다. 일주일에 3작품 정도 그린다. 주로 이곳이 나의 무대다. 저기 오른쪽 골목에 가면 내 작품 3점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경력도 물어봤다. “특별히 미술대학에 간 적은 없다.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듯하다. 5년간 일해 왔지만, 수입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전부 100점 정도 그렸다.”

다비드는 자신의 작품들을 찍은 아이폰 화상을 필자에게 하나씩 보여줬다. 대부분의 작품은 철제문에 그려진 것이다. 쿠바 레게 스타일의 머리모양을 한 인물들이 주류다. 철제문 그림이 법에 저촉되지 않는지 물어봤다.

“표현의 자유란 점에서 아직까지 문제가 없지만, 언젠가 불법시할 듯하다. 내 주변만을 보면, 약 20명의 벽화 전문 예술가가 있다. 대부분 예술지향적이지만, 정치적 메시지를 내세우는 사람도 가끔 있다. 거리의 시민들이 본다는 점에서 문제시될 수 있다. 지금 프랑스는 미국의 9·11테러 이후 상황과 비슷하다.”

파리의 수많은 벽화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몽마르트르 주변에서 만난 수풀 작품이다. 문자 그대로 수풀이 5층 높이 건물의 한쪽 벽에 수북이 붙어 있다. 초봄인데도 울울창창이다. 담쟁이나 덩굴로 대략 뒤덮인 것이 아니라, 거의 완벽하게 가려져 있다. 어떻게 길렀는지 소나무도 볼 수 있다.

바빌론 황금시대의 상징인, 벽면 공중정원이라 부를까? 부분적으로 조금씩 드러난 창문도 있지만, 대부분은 울창한 수풀에 완전히 가려져 있다. 수풀 사이의 미세한 공간을 감안한다면 아마 창문을 통해 바깥쪽을 볼 수는 있을 듯하다. 공중 정원으로서의 자연벽화는 아마 프랑스에서만 볼 수 있는 파리만의 표정 중 하나일 듯하다. 고정된 벽화가 아닌, 생물체로 진화해가는 작품이다.

단언컨대, 프랑스의 현실이 척박하고 긴장될수록 파리의 표정은 밝고 아름답게 드러날 듯하다. 포스터맨들이 패전 후 로마의 고통과 어두움을 헤쳐나갔듯이, 2017년 프랑스에 밀어닥친 불안과 공포도 파리의 포스터와 벽화를 통해 풀어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파리는 불타고 있다. 그러나 파리는 한층 더 아름다워지고 있다.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 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1706호 (2017.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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