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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사법개혁, 오래된 미래 

 

문상덕 기자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 권석천 지음|창비|1만8000원
플라톤은 민주주의가 두 바퀴로 굴러간다고 생각했다. 수량적 평등과 비례적 평등이다. 모든 시민이 1표씩을 가지는 평등과 자격 있는 시민이 공직에 참여하는 평등이 조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상국가에는 국가원로들이 모여 법률을 검토하고 올바름을 토론하는 ‘새벽회의’가 있었다. 우리 헌법에 명시된 ‘법관의 독립’도 거슬러 올라가면 플라톤의 아이디어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높은 이상에 비추어 현실은 비루했다. 사법부는 대법원장 1인을 정점으로 숨막히게 관료화돼 왔다. 대법원장이 관여할 수 있는 자리만 1만6092개. 대법관회의 의장이자 전원합의체 재판관이기도 하다. 법원 행정처로 전국 각급 법원 역시 빈틈 없이 감독한다. 그리고 그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렇다. 1972년 유신헌법 당시에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저자는 우리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13 대 0’이 유독 많은 것은 사법 관료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하급심을 향해 ‘최고법원의 결론을 따르라’는 것이다. 실제로 한 대법관은 부장판사들 앞에서 “선배를 힘들 게 하는 판결을 자제하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렇게 법관의 독립이 짓눌린 민주주의는 외바퀴로 굴러간다. 외발자전거는 결코 일직선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용훈 대법원(2005~2011년)의 경험은 그래서 각별하다. 진보적 판결을 쏟아내서가 아니다. 권력으로 찍어 누르는 판결이 아니라 스스로 논쟁의 콜로세움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치열한 논쟁은 판결문에 고스란히

남았고, 소수의견은 다음의 진보를 예고하는 주춧돌이 됐다. ‘사법 블랙리스트’로 시끄러웠던 양승태 대법원이 다음달이면 막을 내린다. 이 책에 끝에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수 있을까.

- 문상덕 기자

201709호 (201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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