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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마을이 답이다’(8)] ‘말 많은’ 마을총회가 성공한다 

에너지 자립마을로 가는 길 

글 임현진 서울대 명예교수, 공석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기후변화 절박함 공유하는 일이 우선…하향식 지원사업 일변도는 주민 갈등만 키워

에너지 자립마을은 캠페인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주민들끼리 의견을 모으고 이익은 나누는 프로세스가 마련돼야 한다. 권위적으로 추진되고 단기적으로 지원되는 하향식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성공하기 힘든 이유다. 서울 성북구 성대골 마을과 제주 서귀포시 화순리 마을에서 에너지 자립마을로 가는 길을 모색한다.


▎어린이도서관에서 가진 학습모임이 성대골 에너지 자립운동의 첫걸음이었다. 이후에도 성대골 주민들은 마을학교를 세우고 에너지 축제를 기획하는 등 기후변화의 절박함을 나누는 데 주력해왔다.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전 지구적 변화에서 자유롭지 않다. 기후변화가 그렇다. 2014년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는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평균기온(1850~1900년) 대비 2℃ 이상 오르면 기후변화가 걷잡을 수 없게 된다고 경고했다. 지금 추세면 2040년이 ‘심판의 날’이다. 속도를 늦추려고 세계 곳곳에서 탄소저감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려고 중앙과 지방이 앞다퉈 관련 제도를 손질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역 갈등이 터져 나온다. ‘지역개발’과 ‘에너지 자립’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 있다. 양자택일처럼 보이지만, 정작 문제는 비민주적인 의사결정에 있다. 지역 주민들은 하향식 사업의 과실이 일부 개발업자에게만 돌아가는 모습을 수없이 목격해왔다. 재생에너지 사업이라 해서 주민들의 지지를 바란다면 요행이다. 하향식 사업방식을 고치지 않는 한 ‘개발의 녹색화’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에너지 자립마을’이라는 비전도 마찬가지다.

에너지 자립마을이란 마을을 꾸미는 환경개선 사업이 아니다. 집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마을에 소형 풍력발전기를 세운다고 해서 에너지 자립이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절실함이 없으면 시설은 금세 녹슬고 고장이 난다. 절전하는 삶을 주민 모두가 공감할 때 비로소 에너지 자립마을을 향한 첫 발을 떼는 셈이다. 최근 들어 ‘후쿠시마가 우리의 위대한 스승’이라는 모토로 에너지 자립을 꿈꾸는 마을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는 고무적이다.

경제적 이익에 눈감자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경제적 고려 없이는 에너지 자립마을이 설 수 없다. 항산(恒産)에서 항심(恒心)이 나오는 법이다. 절전 캠페인 같은 당위론은 에너지 자립운동의 시발점일 수는 있지만 엔진은 되지 못한다. 독일은 탈핵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친환경 에너지를 강제하지 않았다. 법과 제도를 정비해 주민이 친환경 에너지를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줬다. 후발주자인 우리가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서울시 ‘에너지 자립마을 만들기’의 전제조건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시내 15개 마을이 에너지 자립을 목표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사진 : 일러스트제공·서울시
2015년 서울시는 ‘에너지 자립마을 만들기’ 매뉴얼을 만들었다. 2012년부터 시작한 에너지 자립마을 조성사업 사례를 갈무리한 자료다. 서울시의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 서울시에서 생산하는 전력은 소비하는 전력의 5.5%에 불과하다. 환경 불의(不義)다. 서울시 슬로건처럼 ‘원전 하나 줄이기’를 이뤄낸다면 유례없는 원전발전소 집적에서 오는 ‘후쿠시마 공포’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

서울시 매뉴얼은 에너지 자립마을을 엄밀히 정의했다. 단순히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생산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에너지 관련 일자리와 소득을 창출해 에너지 경제를 살려 나가는 마을이 서울시가 꿈꾸는 ‘에너지 자립마을’이다. 지붕에 햇빛발전소를 설치해 전기요금을 0원으로 만든 시민발전소장들, 에너지 교육과 진단, 컨설팅을 통해 스스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주민들, 그리고 에너지 전문 마을기업 혹은 사회적기업에 참여하고 기여하는 주민들이 더불어 사는 마을이다.

에너지 마을로 전환하는 과정도 5단계로 나뉜다. “①주민 간의 에너지 자립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②함께할 주체를 만들고, ③에너지 절약과 효율화 캠페인을 시작하고, ④개별생산 및 협동조합을 결성해 재생가능 에너지를 생산하고, ⑤ 궁극적으로는 마을에너지 경제를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그런데 각 단계가 단선적으로 발전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순진하다. 공감하는 주민들이 함께 절약 캠페인을 벌이는 3단계까지는 상대적으로 쉽게 이뤄낼 수 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생산부터는 주민의 헌신과 전문성, 더 나아가 삶의 방식 전체를 바꿔야 하는 단계를 의미한다. 독일 경험에 비춰보면 시민들은 오랫동안 반핵운동을 전개하며 녹색당을 출범시켰다. 동시에 재생에너지 사업을 발굴하고, 지역분산 에너지 생산 및 소비체계를 법제화하는 정책운동도 전개했다. 2012년 메르켈 총리의 탈핵 결정은 일순간이었지만, 거기까지 가는 데 3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좋은 매뉴얼이 준비된 것과 그것을 삶 속에서 구현하는 과정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관건은 풀뿌리 공동체다. 마을 단위에서 주민들의 생태감수성을 키워가는 노력은 에너지 자립마을로 거듭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양분이다. 풀뿌리 지역에서 모범적으로 이뤄진 재생에너지 사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울 동작구 성대골 사례는 경제적인 고민에 대해 좋은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제주도 화순리 마을은 어떻게 아래로부터의 지지를 꾸준히 확보하는지를 보여준다.

에너지 절약이 곧 에너지 생산


▎성대골 주민들은 ‘절전소’를 만들고 매달 전력사용량을 비교해 전시한다. 성대골 어린이도서관에 마련된 절전소 사무실.
성대골 마을주민들은 2011년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에너지 전환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 주민들은 동네 어린이도서관에서 자발적인 공부 모임을 열고 전문강사를 초빙해 에너지 학습을 시작했다. 성대골 주민들은 잉글랜드 남서부에 위치한 인구 8000여 명의 소도시 토트네스(Totnes)에서 영감을 얻었다. 토트네스 주민들은 ‘토트네스 전환마을(Transition Town Totnes)’ 모델을 처음으로 확립했다. 2030년까지 마을의 에너지 소비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나머지 절반은 재생에너지로 생산하기 위해 주민들은 ‘토트네스 재생에너지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있다. 성대골 주민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토트네스는 ‘회복력’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긴밀히 연결되고 서로 의존하는 현대사회는 효율적이다. 그러나 톱니바퀴 하나가 고장 나도 파급효과는 걷잡기 힘들다. 2011년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화물운송이 마비됐을 때가 그랬고,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자산가치가 폭락했을 때가 그랬다. 천재(天災)든 인재(人災)든 외부로부터 공급이 차단됐을 때 어떻게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을까. 토트네스 주민들은 기후변화가 가장 큰 위협이라고 생각했다. 토트네스 전환마을이 신재생에너지와 마을농업에 방점을 찍은 이유다.

성대골 주민들은 ‘절전소’를 만들었다. 에너지 학습모임을 시작한 어린이도서관이 바로 ‘성대골 절전소’다. 도서관 벽면에 각 가정의 월간 전력소비량을 막대그래프로 표시했다. 주민 50가구에 가게 10곳이 참여해 매달 5000㎾를 절전했다. 몇몇 가정에서 시작된 절전소 운동이 인근 상가와 학교로 확산되기도 했다. 역내 국사봉중학교 에너지 동아리와 함께 학교의 전력소비량을 줄이기 위해 캠페인을 전개했다.

특히 성대골 주민들은 재생에너지와 관련한 일자리를 창출하려고 애썼다. 에너지 절약을 넘어 지속 가능한 마을에너지 경제를 구축하려는 시도다. 마을공동체 사업, 사회적경제 지원사업, 주거환경관리 사업, 서울문화재단 사업 등과 연결해 끊임없이 도전했다. 다루는 분야도 에너지에서 주택·교통·먹을거리·문화예술 등 생활 전반으로 확대됐다. 절전소 운동이 일으킨 파생효과(spin-off)다. 에너지 자립마을을 향한 성대골 주민들의 노력을 몇 가지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다.

첫째, 전력 소비를 줄이고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높이는 작업은 기본이다. 절전소 운영과 에너지 사용 방식에 대한 올바른 진단과 처방을 주민들끼리 공유한다. 에너지 손실을 막기 위한 틈새바람 막기 등 사소한 에너지 절약비법도 빼놓지 않는다. 학교나 공공시설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햇빛발전소’도 늘려 가고 있다. 주택 차원에서는 단열개선사업을 벌이고, 주택협동조합을 만들어 재생에너지를 이용하는 주거공간을 확충하고 있다. 나아가 태양열 온풍기와 같은 적정기술을 적용한 제품 활용도 권장한다.

둘째, 재생에너지 확산을 위한 캠페인을 넘어서 경제활동 속으로 가져오는 노력이 주목된다. 성대골 주민들은 ‘LED허브센터’와 ‘에너지 슈퍼마켙’을 운영하면서 캠페인과 경제활동을 결합하는 전략을 동원했다. 주민활동가 35명이 의기투합해 절전운동과 에너지전환을 위한 진단·교육·컨설팅, 그리고 주택과 점포 단열시공 등 에너지절약을 위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마을기업인 ‘마을닷살림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조합원 가운데는 단열시공·리모델링 전문가 등이 포진돼 있어 신뢰감을 더한다.

마지막으로 미래세대에 대한 에너지 교육사업도 빼놓을 수 없다. 국사봉중학교 절전소, 환경동아리 교육, 적정기술 교육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와 문화예술 활동이 만나고 있다. 원전 하나 줄이기 합창단을 운영하며, ‘성대골 에너지 자립마을 축제’를 개최해 마을 주민공동체가 에너지 자립마을 비전에 더욱 공감하며 각종 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학습하고 더 나아가 구체적인 사업과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하고 있다.

화석연료에도 친환경의 길이 있다


▎성대골의 사례는 에너지 운동이 에너지 경제로 이어져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적정기술 상품 등 절전에 이로운 상품을 판매하는 ‘에너지 슈퍼마 ’.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는 모래사장을 낀 해변, 생태자원이 풍부한 하천, 오름과 곶자왈, 항구 그리고 중산간 지역 목장까지, 다채로운 생태자원을 끼고 있다. 물이 항상 번번하게 흐르는 냇가라는 의미로 ‘번내’라는 마을로 불렸다. 마을 전체가 곶자왈 탐방로, 해변탐방로, 하천탐방로로 구성될 정도로 아름다운 경치와 풍부한 자원을 가진 풍족한 마을이다. 그러나 우리가 화순리를 주목하는 이유는 마을주민이 정부지원 사업에 일방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주민 스스로 대안을 발굴해온 아래로부터의 노력에 있다.

2008년, 화순리 주민들에게는 마을기금 17억원이 있었다. 남제주화력발전소 증설로 인한 보상금에 마을 목장이 정부의 ‘문화마을 조성사업’ 부지로 편입되면서 받은 보상금을 더했다. 주민들은 마을 공동소득사업을 두고 청사진을 그렸다. 초기에는 크루즈 사업, 대도시 부동산투자 사업 등을 모색했다. 그러나 결론은 태양광발전이었다. 발전차액지원제도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원가를 화석연료 발전원가와 비교해 초과분을 보전하는 정책을 폈다. 2001년에 시행됐다가 재정부담을 이유로 2011년에 폐지됐다.

결정은 실천으로 이어졌다. 화순리 주민들은 ‘번내 태양광발전주식회사’라는 마을기업을 설립했다. 대표는 마을 이장이, 이사는 주민대표들이 맡았다. 마을청년회는 발전소 관리를 맡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마을 목장 한편에 185㎾급 태양광 발전기 2기를 설치했다. 그해에만 15만3000㎾ 전력을 생산해 1억 40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후에도 매년 20만㎾ 안팎의 전력을 한국전력에 판매해 꾸준히 수익을 올리고 있다. 주민들은 수익금을 그대로 배분하지 않고 해양레저체험관광 등 새로운 소득원을 찾아 재 투자하고 있다.

남제주화력발전소와의 협력사업도 그중 하나다. 그간 화력발전소는 인근 해양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내연기관을 식히고 배출하는 온배수(溫排水) 때문이었다. 남제주화력발전소도 연간 1억2000만t의 냉각수를 인근 바다에 그대로 내보내고 있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온배수를 작물 재배에 활용할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2010년 화순리 지역농민들이 의기투합해 설립한 ‘행복나눔 영농조합’이 온배수 활용 농가 시범사업자로 선정됐다. 영농조합은 농촌진흥청과 제주농업기술원, 그리고 남제주화력발전소와 함께 온배수를 활용한 시스템을 고민했다. 1년 뒤 농장에서 불과 150m 떨어져 있는 발전소에서 온배수를 끌어온 뒤, 온배수를 송풍파이프에 통과시켜 하우스 공기를 덥히는 시스템을 개발해냈다. 영농조합이 운영하는 감귤·애플망고 하우스에 시설을 설치했다.

영농조합은 일석이조 효과를 거뒀다. 난방비는 80% 줄고, 줄어든 온실가스 배출량만큼 인센티브 수입이 생겼다. t당 1만원씩 4년여 동안 5308t의 온실가스를 줄여 5308만원의 인센티브를 받았다. 정부는 시범사업이 성공을 거두자 2015년 발전소 온배수를 포함한 수열에너지를 신재생에너지에 포함시켰다.

민주적 의사결정이 에너지 자립마을을 떠받치는 힘


▎‘회복력’을 가진 마을이 건강한 마을이다. 성대골 에너지 운동의 요람인 어린이도서관 앞에서 아이들이 손 잡고 걸어가고 있다.
제주도 사람들은 바람과 함께 살아왔다. 바람을 자원으로 이용해서 전기를 생산하는 풍력발전이 확산되면서 2014년 말까지 제주도에서 9개의 사업자가 14곳에서 총 81기에 달하는 풍력발전기를 운영하고 있다. 제주도의 전체 발전용량에서 신재생에너지는 25.5%를 차지하는데, 이중 75%가 풍력발전이다. 이에 착안해 2012년 제주특별자치도는 풍력발전 비중을 100%까지 끌어올리는 ‘탄소 없는 섬, 제주 2030’이라는 원대한 비전을 선포했다. 과연 가능할까?

제주도는 2012년 7월 ‘제주에너지공사’를 설립했다. 풍력자원 관리만을 겨냥한 최초의 에너지 공기업이다. 그러나 야심 찬 계획은 곳곳에서 반발에 부딪혔다. 풍력발전을 두고 도내에서 극렬한 갈등이 일어났고, 심지어는 풍력발전 사업자가 허가를 포기하는 사태에 이르기도 했다. 서귀포시 화순리 마을은 달랐다. 주민들이 재생에너지 전환사업에 적극 참여해 후속 사업도 발굴해왔다. 화순리가 유독 성공한 이유가 무엇일까. 여기서 에너지 자립마을의 조건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주민이 사업을 주도했다. 보통 매립장이나 소각장 등 ‘혐오시설’이 지역에 들어오면 해당 마을에 보상금이 지급된다. 대부분의 경우는 마을회관을 짓거나 임대사업 혹은 관광사업에 보상금을 쓴다. 그러나 화순리 마을 주민은 달랐다. 마을 주민총회를 통해 새로운 사업을 발표하고 그 안에 대해서 상호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거쳤다. 자체 판단이 어려울 때는 외부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이른바 ‘공론화 정치(talking politics)’가 작동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주민들의 참여와 관심은 어느 지역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화순리 마을은 20년 전부터 이장선거를 직선제로 치렀다. 마을 어른들은 토론문화를 마을 내에서 활성화하기 위해 워크숍과 강연을 추진했다. 화순리가 비록 작은 마을 단위임에도 불구하고 공론화 정치에 토대를 둔 민주주의를 키워올 수 있었던 이유다.

화순리의 마을총회 분위기가 궁금하다. 혹여 여느 마을처럼 이장과 더불어 대위원이 연장자 중심으로 의견을 내고 마을 주민들은 그저 거수기 역할에 그치는 것은 아닐까? 화순리 마을총회는 빨리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보통 저녁 7시에 시작하면 9시 30분이 넘어도 끝나지 않는다. 청년회, 부녀회, 지도위원 등 100여 명의 주민이 참여한다. 이견이 있는 주민에게는 항상 발언할 기회를 준다. 비록 총회 전에 임원회의, 개발위원회 등을 통해 총회 안건을 거르는 과정을 거치지만 다양한 목소리 특히 젊은 세대, 마을청년회 소속 회원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인다.

에너지 자립이 마을 미래세대에도 기회


▎화순리 사례는 생태계에 무리를 주는 지역 화력발전소와 협력을 꾀한 역발상으로 평가된다. 화순해변 인근에 위치한 남제주화력 발전소 전경. / 사진·공석기
다음으로, 주민이 주도권을 가지면서도 정부·기업과 긴밀히 협력했다. 발전소 온배수를 작물 재배에 활용한 일은 지역 혐오시설과의 협력을 꾀한 역발상이다. 화순리 주민들은 온배수 이용 경험을 더욱 발전시켜 최근에는 온배수를 활용한 4계절 워터파크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화순리 주민들은 그 동안 용천수를 끌어올려 매년 7~8월 2개월간에만 담수 수영장을 운영해왔다. 수영장 사업 경험과 온배수 활용 경험을 결합해 새로운 사업구상을 내놓은 셈이다. 최근 온배수 워터파크 안에 대해 정부지원이 결정되면서 사업 추진에 속도가 붙고 있다. 이처럼 제주 화순리 주민들이 아래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업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는 모습은 다른 지역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화순리 주민들은 재생에너지 수익을 재투자했다. 태양광 발전 외에도 화순리는 도내 제1호 담수 수영장으로 유명하다. 2007년 해변과 마주한 자리에 야외수영장을 개장한 지 9년이 넘었다. 그전까지 해변모래 유실이 계속되면서 마을 해변이 쇠퇴한 상태였다. 해양사업을 활성화할 수 있는 대안을 고민하던 중, 중산간 지역에서 마을을 지하로 흐르는 풍부한 용천수에 주목했다. 흐르는 물이라 소독약을 쓸 필요도 없고, 해수보다 시원했다. 주민들은 용천수를 끌어와 화순해변 바로 옆에 수영장을 만들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년 만에 화순해변을 찾은 관광객이 3배로 늘었다.


▎화순리 주민들은 태양광발전 수익을 재투자해 제주 도내 최초로 담수 수영장을 만들었다. 제주 앞바다가 보이는 수영장이 이색적이다. / 사진·공석기
수영장 관리는 마을청년회에 맡겼다. 그리고 청년들이 일할 만한 다른 사업도 계속 모색했다. 해양레저 사업이 그중 하나다. ‘탄소 없는 친환경 마을’이란 이미지를 매개로 친환경 레저사업(요트, 카약, 바다 자전거 등)을 추진했다. 2011년 이후 성공과 실패의 부침을 겪고 있지만 일희일비하지 않고 장기적인 해양레저 사업 비전을 갖고 조금씩 사업혁신을 꾀하고 있다. 청소년 요트교실이 그렇다. 마을청년들이 인명구조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지원하고, 자격증을 취득한 청년들을 요트교실 강사로 채용하고 있다.

이처럼 화순리는 친환경 마을 이미지를 견지하면서 마을의 미래세대에 투자하고 관련 일자리 창출에도 힘을 쏟고 있다. 마을 특색에 맞는 에너지 자립 마을로서 자리잡고 또한 지속가능하기 위해 마을 주민을 위한 일자리를 창출해내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 임현진(林玄鎭, Hyun-Chin Lim) hclim@snu.ac.kr- 서울대 명예교수. 학술원 회원.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사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실련 공동대표, 사회과학협의회장, 서울대 사회과학대 학장, 아시아연구소 창립소장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 <글로벌 NGOs> <세계화와 반세계화> <지구시민사회의 구조와 역학> <뒤틀린 세계화> <글로벌 패러독스> <아시아의 부상> 등 50여 권이 있다.

※ 공석기(孔錫己, Suk-Ki Kong) skong@snu.ac.kr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경희대 공동대학원 겸임교수. 환경경운동연합 국제협력위원회와 서울시 공정무역위원회 위원.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미국 하버드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글로벌 NGOs> <인권으로 읽는 동아시아> <인권 사회학> <뒤틀린 세계화> 등이 있다.

201711호 (201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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