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신년 특별 기획] 사자성어로 꿈꾸는 戊戌年의 소망 

時雨之化 ‘내 노력을 꽃피우게 할 비야 내려다오’ 

김풍기 강원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누가 권력 잡든 사회 시스템은 정상적으로 작동해야…작은 일에서 오는 ‘소소한 기쁨’ 넘쳐나는 한 해 되길

▎2017년 1월 1일 서울 광진구 아차산(峨嵯山) 해맞이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새해 첫날 아침 힘차게 떠오르는 해를 보며 소망을 빌고 있다. / 사진:우상조
[사기(史記)]를 읽는 시간이 늘 즐거웠던 것은 아니다. 어떤 대목은 지루해서, 어떤 대목은 어려워서 글의 의미와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책장이 넘어가지 않아서 끝내는 책 읽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던 내 경험을 돌이켜보건대 [사기] 역시 만만치 않은 책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도 다행인 것은 [사기]를 앞에서부터 읽지 않고 ‘열전(列傳)’부터 읽었다는 점이다. 황제가 아니었던 사람들의 일생을 역사서 속으로 끌어들인 것이 바로 ‘열전’ 부분이다. 한 인물의 일생 중에서 역사적으로 기억할 만한 것들을 추려서 기록으로 남긴 것이니 흥미진진한 서사(敍事)가 그 안에 가득했다.

지루하고 어려운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열전’의 서사를 접하면서 재미와 감동을 느꼈고, 덕분에 [사기] 읽는 모임에 열심일 수 있었다. 사람들과 어울려 읽어나가다 보니 어느새 2년이 훌쩍 지났고, 3년차에 접어들던 때 ‘열전’을 통독할 수 있었다.

그 힘을 빌려서 대충이나마 [사기]를 통독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독서 생활에서 기억나는 몇 가지 책 중의 하나가 [사기]인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어떻든 내가 ‘열전’에서 시작해 길고 긴 [사기] 여행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무망지복’이라고 생각한다.

무망지복(毋望之福) ‘세상에 그냥 얻는 복은 없다’


▎영화 [공자춘추전국시대]의 한 장면. 공자 역을 맡은 저우룬파(周潤發)가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있다.
‘무망지복’은 바라지 않았는데 뜻밖에 찾아온 복이라는 뜻으로 [사기] ‘춘신군열전’에 나오는 말이다. 춘신군(春申君)은 이름이 황헐(黃歇)로 초나라 사람이다. 전국시대 말기 초나라의 재상으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강대국으로서의 초나라를 지탱했다.

사마천은 제나라의 맹상군, 위나라의 신릉군, 조나라의 평원군과 함께 초나라의 춘신군을 당대 최고의 제후로 꼽았을 정도다. 춘신군이 젊었던 시절, 초나라의 태자가 진나라의 인질로 잡혀가게 되자 그를 옆에서 보좌하면서 안전을 책임졌을 뿐 아니라 적절한 시기에 초나라로 귀국을 하도록 해 왕위에 오르게 했다.

춘신군으로 봉해진 뒤에는 초나라의 재상으로서 수십 년 동안 초나라의 정세를 안정시키고 주변국과의 긴밀한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진나라가 강력한 군사력을 통해 중원을 압박하자 다른 여러 나라를 모아서 합종책을 주도하기도 했다.

춘신군이 재상으로 일한 지 25년째 되던 때, 초나라 고열왕이 병에 들었다. 춘신군의 문객 중에 주영(朱英)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주영이 춘신군에게 ‘세상에는 바라지 않았는데도 얻게 되는 복이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그는 이렇게 말한다. “군께서는 초나라의 재상을 20여 년이나 하고 계십니다. 명목상으로는 재상이지만 실질적인 권력으로 보면 왕이나 다름없습니다. 지금 고열왕이 병에 들어 위독한 상황입니다. 군께서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왕이 죽은 뒤 새로 등극한 어린 왕을 잘 보좌해 대신 국정을 관리하다가 어린 왕이 장성하면 왕권을 잘 전해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왕이 돌아가시면 군께서 왕이 돼 초나라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바라지도 않았던 복이 찾아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말이 바로 ‘무망지복’이다. 춘신군은 주영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끝내 새 왕이 즉위하자 죽음을 당했다. 무망지복은 춘신군이 왕위에 오르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주변의 상황 덕분에 왕이 될 수 있는 환경이 됐음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세상에 아무런 원인이 없이 찾아오는 결과란 없다. 춘신군이 왕위에 오를 수 있는 환경이 됐다면 그가 살아오면서 했던 개인적 삶의 편린(片鱗)들과 수많은 정치적 행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2016~17년 우리는 엄청난 일을 경험했다. 국민의 열망으로 대통령이 탄핵됐고 새로운 정권이 탄생했다. 엄청난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제 아래서 국민의 요구와 희망이 번번이 좌절됐던 근대사의 경험은 수많은 국민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었을 때 좌절이 아닌 새 희망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을 만들어냈다. 어떻게 정국이 흘러갈지, 촛불의 과정에서 어떤 사건이 터질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떻게 절망과 희망의 경계선을 만들어갈지, 나아가 이 행렬의 끝이 어디가 될지, 아무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앞에서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사람도 없었다. 오직 지금의 상황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고, 그것이 우리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주리라는 막연한 심정으로 광장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것이다. 우리 자신도 놀란 이 광장민주주의가 희망의 빛을 비췄다.

나는 그것을 무망지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무망지복을 받았던 뒷면에는 굉장히 많은 사건이 발생했고 그 사건들이 만들어내는 정치적 혹은 문화적 맥락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무망지복을 잘 다듬어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것은 우리 남은 몫이 아니겠는가.

고적유명(考績幽明) ‘상벌을 명확히 하면 국민이 안정된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에서 거행되는 석전대제(釋奠大祭)에서 유생들이 팔일무(八佾舞)를 추고 있다. 석전대제는 성균관의 대성전에서 공자를 비롯한 선성(先聖)과 선현(先賢)들에게 제사 지내는 의식으로 가장 규모가 큰 제사다.
성선설의 극단적인 지점에서 보면 인간 사회는 어떤 제도적 장치 없이도 아름답고 조화롭게 구성되고 그 안에서 인간들은 평화롭게 살아가야 한다. 그렇지만 어떤 사회든 그런 모습으로 존재했던 적은 없다. 인간이 막 태어났을 때는 맑고 착한 존재였지만 자라는 동안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아서 탁한 기운이 선한 본성을 막기 때문에 다양한 생각과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유학자들의 논리였다. 탁한 기운은 바로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만들어진다. 모든 욕망이 추악한 것은 아니다.

욕망은 인간의 역사를 발전시켜온 동력을 내포하고 있기도 해서,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추구하고 달성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그 노력이 우리 사회와 역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은 자기만의 성을 이기적으로 쌓게 되고, 타인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쌓인 성은 나 이외의 장소에 짙은 그늘을 만들었다. 다른 사람의 그늘에 들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에 사회는 극심한 경쟁에 휘둘리고, 결국 인간의 선한 본성은 마음 깊은 곳으로 침잠해서 드러나지 않게 되는 상황까지 이른다. 이 지점이 바로 법가(法家)가 자신들의 논리를 설득력 있게 내세우는 곳이다.

인간 사회는 무엇으로 구성되는 것일까? 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최근 나는 그 중심에 제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제도로 구성되는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제도를 만들어 내는 절차적 정당성이라든지 그 제도가 사회 구성원들에게 받는 합리적 지지일 것이다. 제도를 구체화한 것을 법이라고 한다면 법은 사회구성원들이 이성적 합리성으로 조화롭게 살아가려는 최소한의 노력을 통한 결과물이다. 법과 제도가 많으면 많을수록 별로 좋지 않은 사회라고 노자(老子)는 생각했지만, 지금처럼 서로 다른 개인과 인종·국가 등이 혼효(混淆)돼 살아가는 시대에서 제도를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만드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을 지키는 사람에게 적정한 수준의 상을 주고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벌을 내리는 일이야말로 사회를 운영하는 제도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어야 하는 조건이다.

옛 기록을 살피다 보면 전쟁을 하고 나면 반드시 장수는 병사들을 위해 호군( 軍)이라는 행위를 한다. 고생한 군사들을 위해 술과 음식을 내려서 노고를 위로하는 것이다. 때때로 그것이 지나쳐서 점령군들이 점령지의 인명과 재물을 약탈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적정한 수준의 호군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나아가 전쟁이 끝나고 돌아오면 논공행상(論功行賞)이 필수적으로 뒤따랐다. 전쟁에서 비겁한 행위를 한 사람에게는 벌을 내리고, 공을 세운 사람에게는 큰 상을 내리는 것, 이 간단한 기준이야말로 사회와 국가를 위해 봉사하려는 마음을 강하게 결집하는 여러 요인 중의 하나였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합당한 훈화나 벌을 내리는 것은 그 집단이 합리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증명한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법망의 틈새를 교묘하게 빠져나가 자신은 전혀 죄가 없다는 듯 뻔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 일반 국민이 느끼는 절망과 분노는 엄청나다.

집단이든 국가든, 그것을 운영하는 원리 중에서 구성원들이 피부로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법을 잘 지켜서 사회를 조화롭게 만드는 데에 기여하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합당한 벌을 주는 것이다. 합리적인 사회는 늘 법과 제도의 빛과 그늘을 살피면서 잘 지키는 사람과 어기는 사람들을 가려내야 한다.

고적유명(考績幽明)이라는 말이 있다.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나오는 이 말은, 조정에서 일정 기간 동안의 근무 상항을 점검하고 평가해서 뛰어난 성과를 거둔 관리는 승진시키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강등시키거나 퇴출한다는 의미다.

말은 쉽지만 이것을 실행하는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몇몇 사람의 능력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흔히 말하는 시스템의 문제다. 고적유명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사회적 시스템이 정비돼 정상적으로 작동돼야 한다. 누가 권력을 잡든지 사회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꿈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법과 제도다.

그동안 우리는 법과 제도가 갖춰졌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서 국민이 불이익을 받는 경험을 너무나 많이 해왔다. 올해 나는 이런 꿈을 꿔본다. 국민 모두가 법과 제도의 울타리 안에서 국가의 보호와 지원을 받으면서 자기 마음속에 간직한 희망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정확하게 가려 내서 단죄하고 선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무 걱정 없이 평화롭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말이다.

국민은 법과 제도가 어떻게 변하는지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알기도 힘들다. 정치인에게 권한을 위임한 것은, 우리 대신 그것을 잘 정비해서 사람들이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해달라는 뜻으로 그렇게 했다.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정치를 이야깃거리로 올리지 않아야 좋은 사회가 아니던가. ‘고적유명’은 정치를 하고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중요한 기준이지만, 그 덕분에 국민들은 그것을 몰라도 평화롭게 살아가야 정상적인 나라다. 그렇게 돼야 우리가 열심히 노력한 보람을 느끼고 행복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

시우지화(時雨之化) ‘때에 맞춰 내리는 비는 만물을 살린다’

두보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의 첫 구절은 다음과 같다.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 당춘내발생(當春乃發生).” 좋은 비가 시절을 알아 봄을 맞이해 생명을 피워낸다는 뜻이다. 이 구절을 읽었을 때 나는 어린 시절의 봄날 풍경이 머릿속에 선연히 떠올랐다. 두보의 시가 읽기 어렵다는 느낌을 많은 사람이 갖고 있다.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몇 작품이 있으니, 아마도 ‘춘야희우’도 그중 하나로 꼽히지 않을까 싶다. 때를 아는 비라야 좋은 비라는 것, 그 비야말로 만물을 살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참 멋진 시구절이다.

지나치거나 모자라는 부분이 있으면 자연은 언제나 재앙의 형태로 나타난다. 물이 모자라면 가뭄으로, 지나치면 홍수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적절한 비가 내려야 인간을 포함한 삼라만상이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때에 맞게 내리는 비를 뜻하는 ‘시우(時雨)’야말로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말인가.

이 말을 인간 삶의 모든 부면에 적용해서 빗댈 수 있지만, 특히 정치 분야에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국민의 삶을 늘 살피다가 정말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도움을 주는 것이 정치라면, 사람들은 때에 맞는 적절하고 고마운 비를 맞이하는 셈이다. 때맞춰 알맞게 내리는 비처럼 만물을 살리는 교화, 바로 시우지화(時雨之化)는 정치가 지향하는 지상의 목표일 것이다.

[맹자] ‘진심장(상)’에서 맹자는 군자가 사람을 가르치는 다섯 가지 방법을 말했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이것이었다. 공부가 일정 수준에 도달한 뒤 진전이 없을 때 그의 막힌 곳을 뚫어서 변화시켜주는 것이 군자의 교육 방법이라고 했다. 농부가 열심히 밭을 갈고 씨를 뿌렸을 때 적절하게 비가 내려서 농작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처럼, 정치도 마찬가지로 국민들의 힘든 상황을 적절히 뚫어줌으로써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앞서 소개한 ‘고적유명’도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고,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무망지복’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가슴에 품었던 앞날의 희망을 떠올린다. 그 희망을 모든 사람이 성취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곳을 향해 나아가는 즐거움을 삶의 고비마다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내가 얻는 작은 행복이 따지고 보면 나와 주변 사람들의 노력 덕분이지만, 그 노력에 시우(時雨)가 내려 불현듯 다가온 것이기에 ‘무망지복’으로 느껴질 수 있다.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라고들 하지만 작은 일에서 오는 무망지복이 넘쳐나는 한 해가 되면 정말 좋겠다.

※ 김풍기 - 강원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책과 노니는 것을 인생 최대의 즐거움으로 삼는 고전문학자. 매년 전국 대학교수들의 이름으로 발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2011년 엄이도종(掩耳盜鐘)]에 선정되는 등 현실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는다. 저서로 [옛 시에 매혹되다]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 [삼라만상을 열치다] 등이 있다.

201801호 (2017.12.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