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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철학자 신기율이 쓰는 현대인의 풍수] 부자들이 가진 특별한 ‘공간 기술’ 

저절로 부자를 만들어주는 공간이란 없어… 비밀은 공간을 다루는 기술, ‘스페이스로지’에 있다 

신기율 기율다원(己律茶院) 운영
사람들이 공간을 볼 때 빠지지 않는 관심사가 바로 돈에 관한 것이다. 이 터에 재운이 있는지 돈을 버는 데 도움되는 인테리어가 무엇인지를 다들 궁금해한다. 그러나 우리가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부자의 터가 아니라 부자들이 공간을 보는 특별한 프레임이다. 부자들에게는 공통적으로 공간을 다루는 남다른 감각과 기술이 있다.

▎‘성장형 부자’인 이지영 씨의 서재. 빼곡히 꽂힌 책은 이씨의 완벽한 통제 아래 특별한 공간의 기운을 만들어낸다. / 사진:신기율
누군가의 공간을 볼 때마다 늘 듣게 되지만, 언제나 난감한 질문이 있다.

“제가 이 집에서 돈을 잘 벌 수 있을까요? 부동산에서 돈 버는 터라고 하던데요.”

“부자가 되려면 집안을 어떻게 꾸미면 좋을까요? 책에서 보니 어항을 두면 좋다고 하더라고요.”

너무나 진지한 눈빛으로 물어보는 그들에게 안타깝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 정도 뿐이다.

“글쎄요. 그걸 보는 눈이 있었다면 진작 저부터 부자가 되지 않았을까요? 집안에 어항을 놔서 부자가 됐다면 수족관 주인이 돈을 제일 많이 벌었겠지요.”

가끔은 나도 그런 능력을 갖고 싶다. 부자가 되는 땅이나 집을 골라내는 놀라운 센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내가 공간에서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이 남긴 기척과 그 땅이 오랫동안 갖고 있던 고유의 에너지 정도다. 이건 사실 나뿐만이 아니라 감각이 예민한 사람들이라면 어느 정도는 느끼는 것들이다. 몸과 마음이 편해지고 머리가 맑아지고, 집중이 잘 되는 공간은 비교적 정확히 구별할 수 있다. 그러나 ‘돈을 잘 버는 공간’, 소위 말하는 ‘부자의 터’를 찾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돈을 번다는 것은 대단히 복잡한 상호작용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부(富)는 사회적인 시스템 안에서 수많은 경쟁과 협력, 그리고 개개인의 노력이라는 수많은 변수가 만들어내는 합작품이다. 집터나 어항 같은 수동적인 장치로 인간이 만들어내는 치열한 경제활동에 영향을 주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물론, 전통적인 풍수 이론에는 부자의 공간에 대한 내용들이 있다. 예를 들면 물은 곧 재물을 상징했다. 물을 따라서 돈이 들어온다고 봤던 옛사람들은 물이 빠지는 곳은 돈이 빠져나간다고 해서 피했고, 물을 가두기 위해 연못을 팠고, 물이 적당히 모이고 나가는 곳을 돈 버는 터로 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과거 농경시대에서 물은 곧 생명줄이자 생산과 직결되는 가장 큰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물이 적당히 있어야 땅이 기름지고 물에 쉽게 접근하고 쉽게 쓸 수 있는 이들이 권력을 잡았다. 과거 문명이 강 옆에서 번성했던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지금은 수도 시설이 갖춰져 집집마다 마음대로 물을 쓰고, 농사가 아닌 사람으로 돈을 버는 서비스업이 번성하는 21세기다. 과거에 부를 관장하던 물은 결국 어항이라는 상징으로만 남게 됐다. 때문에 부자가 되고 싶다면 과거의 공간철학에 의지해 부자의 터를 찾거나 부동산업자의 말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 정작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부자들의 스페이스로지(Spacelogy), 즉 부자가 공간을 다루는 기술이다.

터가 부(富)를 가져다주는 시대는 지났다

정신과 전문의 유상우 박사가 쓴 [부자가 되는 뇌의 비밀]이라는 책을 보면 부자들은 배외측 전전두엽을 집중적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배외측 전전두엽은 뇌의 사령탑 역할을 하는 곳으로 동기를 부여하고 계획을 세우며 전체적인 맥락을 짚게 하고 다양한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영역이다. 실험에 의하면 일반인들은 신문을 읽을 때 각각의 기사를 읽으며 그 기사들을 서로 다른 이야기로 구분해 읽는데 집중했다. 반면 배외측 전전두엽이 발달한 부자들은 헤드라인에 집중하며 각 헤드라인 간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100억대 자산을 가진 한 여성은 전혀 관련 없는 기사들을 한 편의 소설처럼 만들며 자신만의 흐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글을 읽을 때뿐만이 아니라 사물이나 상황을 보고 해석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부자들은 상황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만들어지는 여러 요소 간의 연결고리를 찾고 자신에게 최적화된 공식으로 패턴화한다는 공통점을 보여주었다. 때문에 부자들은 마치 프랙탈처럼 비즈니스를 하고 사람을 상대할 때뿐만 아니라 공간을 다룰 때도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고 가정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부자들이 공간을 대하고 활용하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 만의 뇌구조가 만들어내는 특별한 스페이스로지. 그 비밀을 안다면 먼저 내 공간 안에 숨겨져 있을지 모르는 ‘부자의 조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그들의 스페이스로지를 내 공간에 접목시켜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것이 집안에 어항을 두는 것보다는 조금 더 합리적일 테니 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부자의 공간을 벤치마킹하고 싶다고 무작정 부자들의 공간을 분석하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부자의 공간은 이미 완성된 부자들의 공간이다. 값비싼 미술 작품들과 인테리어 소품들, 수입산 대리석 위에 깔린 특별 제작된 가구들과 침대는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게 스스로가 주는 위로의 선물들이거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이다. 때문에 이런 ‘완성형 부자’의 공간을 따라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뿐더러 오히려 박탈감을 느끼기 쉽다. 우리가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은 지금 한창 성장하고 있는 부자들, 특히 자수성가형의 부자들이다.

다행히 얼마 전, 나는 이 기준에 딱 들어맞는 성장형 부자를 만났다. [엄마의 돈공부]라는 베스트 셀러를 쓴 이지영 작가다. 그녀는 20대에 보증금 1500만원의 원룸에서 시작해 불과 10년 만에 23채의 부동산을 운영하게 된 성공한 투자가로 유명하다. 수십억의 자산을 운영하는 투자가임에도 두 아이들이 해맑게 뛰노는 집안의 작은 서재가 유일한 작업실이라고 했다. 서재에 들어서자 벽을 가득 채운 책들의 숨결이 훅 하니 밀려왔다. 책을 취미로 전시해 놓는 사람인지 제대로 읽는 사람인지는 그의 서재에 가면 금방 알 수 있다. 사람의 눈을 타고 손때가 묻은 책들은 읽혀진 공간 속에 자신의 흔적을 남겨놓기 마련이다. 그런 곳은 서권기(書卷氣)로 가득 채워져 전혀 다른 공기의 밀도를 만든다. 반면 전시용 책들은 물리적 공간만 차지할 뿐이다. 문을 여는 순간 느껴진 두꺼운 서권기는 이지영 작가가 이곳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하고 생각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서재에서 진행된 인터뷰 내내 그녀는 내가 물어보는 질문의 자료들을 책장이나 서랍에서 순식간에 찾아내 보여주었다.

통제하는 공간이 많아질수록 돈그릇도 커진다


▎재미 한국계 건축가인 백선필 씨가 설계한 LA 소재 대저택 사진. 조감도는 백씨가 설계 중인 말리부 저택이다. 불필요한 것을 최소화하면서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 그의 설계의 공통점이다. / 사진:신기율
“책은 필요할 때마다 바로 볼 수 있도록 주제와 소재별로 구분해 놓는 편이에요. 도서관 서가처럼 자기만의 자리가 있는 거죠. 부동산 관련 자료도 지역과 물건별로 분류하고 하위 카테고리를 만들어 늘어나는 정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그때그때 정리하고 있어요.”

한마디로 이지영 작가는 자신의 서가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공간을 통제한다는 것은 단순히 청소를 잘하고 정리를 잘한다는 말이 아니다. 머릿속에 물건들의 지도가 완벽히 그려져 있다는 말이다. 어떤 부자들은 잡다한 것으로 발 디딜 틈 없이 집을 채워 놓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이 저장 강박증 환자와 다른 점은 그 복잡한 틈바구니 속에서 남이 손댄 흔적을 귀신처럼 찾아낸다는 것이다. 없어진 책 한 권, 옷 한 벌도 금세 눈치채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무질서한 공간이 본인에게는 나름의 질서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본인이 공간을 어떻게 통제하고 있는지를 보려면 컴퓨터 파일이나 핸드폰 주소록을 열어보면 된다. 주방을 담당하고 있다면 냉장고도 괜찮다. 만약 파일들이 산산이 흩어져 숨은 그림이 돼 있고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동명이인으로 함께 뜬다면 일단 통제력은 제로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뭐가 들었는지도 모를 비닐봉지와 용기들만 가득한데 정작 먹을 것이 없는 것도 비슷하다. 이런 무기력한 통제력은 돈을 모으는 데서도 거울처럼 반영된다. 특별히 사치를 하는 것도 아닌데 월급은 늘 스쳐 지나가고 몇 년이 지나도 쌓이는 돈은 없고, 적금은 수시로 깨질 가능성이 높다.

이지영 씨의 공간은 그녀의 투자도 이런 식으로 질서 정연히, 완전한 통제 아래 이뤄지고 있음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녀처럼 통제하는 공간이 커지는 만큼 돈의 그릇도 커진다는 것이다. 보통사람은 사실 내 집 하나도 제대로 관리하기 힘들다. 반면 그녀는 동시에 10여 채의 건물과 세입자들을 관리하면서 투자할 만한 새로운 부동산을 찾아다니고 치밀하게 자금을 융통한다. 이미 그녀의 머릿속에 모든 공간이 완벽히 통제되고 시스템화돼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씨를 포함한 많은 부자가 공통적으로 갖는 스페이스로지는 공간의 ‘통제’와 ‘시스템화’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내가 한눈에 머릿속에 지도를 그릴 수 있는 공간은 과연 어느 정도인가를 살펴야 한다. 핸드폰, 노트북, 냉장고, 서랍, 내 방, 집 통제하는 범위가 커질수록 내가 담을 수 있는 부의 크기도 점점 커질 수 있다. 지금은 집에만 있는 주부라 할 지라도 프로의 솜씨로 내 집을 정리하고 관리하고 있다면 이미 부자의 뇌구조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사람이 적당한 기회를 만나면 밖에 나가서도 대단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지금 당장 통제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아주 작은 것부터 관리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 냉장고의 오래된 음식들을 정리하고, 한눈에 보일 정도의 음식만 채워 넣으며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꿰기 시작하면 그 패턴대로 통장도 새롭게 리뉴얼할 수 있다. 목적에 따라 통장을 쪼개고 디테일한 예산을 짜면서 자신의 소비를 통제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시스템화된 뇌구조를 가진 부자들은 집을 독립된 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다양하게 투자해 놓은 거대한 투자 시스템의 한 부분으로 여길 뿐이다. 때문에 보통사람들이 피하고 싶은 단점을 장점으로 적극 활용한다. 예를 들면 ‘경매’가 그렇다. 부동산 투자에서 일반인과 전문가 사이에 가장 큰 관점의 차이를 보이는 것이 경매일 것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경매’ 하면 사업실패나 빚 보증, 빨간 차압딱지 같은 것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런 전적이 있는 집을 샀다가 나도 똑같이 되는 건 아닌가 솔직히 꺼림칙하다. 하지만 대다수의 부동산 부자는 경매를 통해 고수익을 올린다. 이지영 작가 역시 경매를 통한 활발한 투자를 하고 있었고 지금 살고 있는 집 역시 경매를 통해 얻은 집이었다. 잠시 머무르다 떠나는 정류장이라고 생각하면 다소 불길하고 불편하더라도 개의치 않을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그러니 조건이 맞고 수익이 된다고 판단되면 공간에 대한 두려움 없이 망설이지 않고 매수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다양한 공간을 좀 더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부자의 마인드와 공간감각을 보여주는 또 다른 스페이스로지는 바로 ‘결핍’이다. 미국 LA 한인타운 중심가인 웨스턴(Western) 가의 ‘마당몰’은 한국의 유명 프랜차이즈 음식점과 영화관이 입점해 있는 복합쇼핑몰로 한인타운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다. 이전 회사에서 마당몰의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았던 이가 한인 건축가 백선필 씨다. 가난한 유학생으로 단돈 300만원을 들고 미국으로 왔던 그는 지금 AIA(미국 건축사)와 캘리포니아주 건축사 자격을 가진 LA의 촉망받는 젊은 건축가로 급성장했다. 할리우드, 오렌지카운티, 말리부 등 LA 부촌의 고급저택을 주로 설계하는 그는 몇 달치 일이 밀려 있을 정도로 현지에서 남다른 실력과 감각을 인정받고 있다.

“10평 공간에서 해낼 수 있는 최대치를 보고 싶다”

이렇게 명성을 쌓은 건축가의 공간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몇 달 전, LA 웨스턴가의 한 빌딩 4층에 있는 그의 디자인 사무실 ‘SF410 Architect’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나는 속으로 두 번 놀랐다. 첫 번째는 생각보다 작은 사무실 크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그 작은 공간을 이렇게나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사무실은 작업하는 공간과 자료를 모으는 공간, 고객을 접대하고 상담하는 세 가지 공간으로 구획돼 있었다. 파티션으로 구분된 작업공간에서는 큰 도면을 출력할 수 있었고 자료실은 벽 한 면을 나무 수납장으로 짜 넣어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수납장은 어떤 곳은 면으로, 또 어떤 곳은 선으로 만들어 명암을 조절했다. 일단 기능 중심으로 공간을 분리하고 효율적으로 꾸민 뒤, 디자인 감각을 입혀 작지만 결코 답답하지 않은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공간에서 지낸 시간만 무려 7년. 여기 있는 동안 그 어렵다는 AIA 자격시험도 패스하고 LA의 이름난 건축가로 성장했지만 그는 아직 사무실을 더 넓히거나 옮길 생각이 없다.

“주변에서 이제는 그럴듯한 사무실로 옮겨도 되지 않느냐는 말을 많이 듣죠. 그런데 인건비나 공간확장에 투자할 돈으로 컴퓨터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서 여기서도 아직 충분하거든요. 10평이라는 공간에서 해낼 수 있는 최대치가 어디까지인지 보고 싶기도 하고요.”

남들의 시선보다는 건축가라는 본업의 효율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10평 사무실이야말로 ‘성장형 부자’의 공간이라고 본다. 타인에게는 그것이 비록 ‘결핍’으로 보일지라도.

첫 번째 성공을 거두고 두 번째 단계로 진입했을 때, 사람들은 누구나 공간의 확장이전을 꿈꾼다. 그동안 고생했던 것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많은 사람이 더 넓고 화려하게 새 공간을 꾸민다. 필라테스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나의 지인 중 한 명도 그랬다. 작은 공간에서 허름하게 시작했다가 뜻밖의 성공을 맛본 그녀는 두 번째 스튜디오에서 그동안 아껴 두었던 본래의 고급스러운 취향을 마음껏 드러냈다. 그동안 모은 돈을 대부분 투자해 고가의 수입마루 바닥재부터 자작나무로 만든 벽채, 친환경 고급 벽지에 비싼 LED조명까지 경중과 강약 없이 모든 인테리어에 막대한 돈을 투자했다. 그 뒤에 어떻게 됐을까. 1년도 되지 않아 스튜디오는 문을 닫았다. 공간에 투자한 만큼 강습비가 올라간 데다 주변에 경쟁자들이 생기면서 회원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간 것이다. 버틸 수 있는 자금도 얼마 없어 재기를 꿈꿀 기회마저 놓쳤다. 결핍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공간이 도리어 큰 실패를 불러온 것이다.

급히 확장한 가게일수록 쉽게 망하는 이유


▎경주에 있는 최부잣집 본가. 대문을 작고 낮게 만든 게 특징이다.
음식점을 운영한 또 다른 지인은 손님이 늘어 줄을 서게 되자 마침 비어 있던 옆집을 터서 공간을 확장했다. 늘어난 공간만큼 손님도 늘어날 줄 알았지만 6개월이 안 돼 문을 닫았다. 이렇게 벽을 무너뜨리고 가게를 확장했을 때 이상할 만큼 손님이 끊기고 장사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민간에서는 이런 경우를 ‘동티난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집의 운을 담고 있는 중요한 곳을 함부로 건드려서 탈이 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부자의 뇌로 생각해보면 또 다른 해석이 나온다. 비좁고 협소한 공간은 결핍으로 보이기 쉽지만 사실은 그 공간만의 레버리지였을 수도 있다. 좁은 공간이라도 그 공간만의 밸런스가 있고 손님들이 그런 분위기를 좋아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간이 협소해 어쩔 수 없이 줄을 서는 것도 훌륭한 홍보 수단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다른 공간으로 확장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옆집과 합쳤다는 것은 준비되고 계획되지 않은 결정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 공간에서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효율과 가능성이 어디까지 인지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보통사람은 돈을 벌면 공간에 무엇을 더할까를 고민한다. 크기를 더하거나 그동안 갖고 싶었던, 혹은 남들에게 괜찮게 보일 고급스러운 가구나 장치를 더하는 식이다. 그러나 언제나 효율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자들의 스페이스로지는 정반대다. 어떻게 하면 불필요한 걸 빼고 조금 더 효율적으로, 가성비 높은 공간을 운영할지부터 생각한다.

LEED AP(친환경 건축설계사) 자격이 있는 백선필 씨의 디자인이 부자들에게 어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설계 초기단계부터 집에 들어가는 에너지 비용을 계산한 뒤 에너지 효율을 가장 높일 수 있는 디자인을 제시한다.

“만약 1년에 1500달러가 냉방비에 들어갈 때 이렇게 설계하면 1000달러의 감소효과가 있다고 설명하면 부자들은 자신이 생각한 디자인이 아니더라도 받아들여요. 돈이 많아서 전기세 정도는 별 것 아닐 것 같지만 장기간에 걸쳐 나가는 돈에 상대적으로 예민하죠.”

돈이 많을수록 어떤 조명을 더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전기료를 줄일 수 있나를 고민하는 마이너스적인 발상. 이런 요소들이 부자들의 공간에서 최고의 효율을 내는 것이다.

자수성가한 부자일수록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의도적으로 결핍된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최근 그가 설계한 한 펀드 회사 CEO의 저택에는 아예 차고가 없다. 차고를 만들 돈이면 옥상 정원을 꾸며 고객들과 사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미국의 기업인들은 중요한 고객들은 집으로 초대하곤 한다. 자신의 집에서 더 유리한 협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집도 주거와 휴식을 위한 일반적인 집이 아니라 처음부터 비즈니스를 위해 만든 쇼룸의 목적이 강했기 때문에 가장 기본적인 차고조차 만들지 않았던 것이다. 부자들은 줄인 만큼의 가치 역시 소득이기 때문에 결핍된 공간에서도 충분히 만족한다.

때문에 내가 부자의 가능성이 있는가, 혹은 돈을 버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를 알려면 내 공간부터 살펴봐야 한다. 내 공간이 의도했던 목적에 맞게, 본질에 맞게 구성돼 있는지, 효율적인 측면에서 최대치를 내고 있는지, 불필요한 허세가 데코레이션 되어 있지는 않은지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집에 결핍된 곳, 부족한 곳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어쩌면, 부자로서의 운도 멈추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재운(財運)은 반드시 결핍의 공간에서 머무는 법이다.

400년 이어온 경주 최부잣집의 남다른 스페이스로지

보통 ‘부자는 3대를 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어렵게 쌓아놓은 재물은 인고의 과정을 경험하지 못한 후손을 만나면 봄눈 녹듯 사라져버리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경주 최부잣집은 무려 12대, 400년 동안 부를 이어왔으니 가히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많은 사람이 최씨 집안의 부를 지리적 혜택이나 경영능력, 육훈으로 불리는 ‘가훈’ 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비슷한 만석꾼 집안이 조선팔도에 적지 않았지만 누구도 최부잣집처럼 오래가지 못했다. 아마도 최부잣집에게는 세대를 뛰어넘어 같은 생각과 비슷한 실천력을 발휘하게 해준 특별한 패턴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패턴의 흔적을 그들의 ‘집’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최씨 고택은 지역의 한옥양식을 그대로 따른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집들과는 다른 조그만 차이들을 가지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다른 집들에 비해 대문이 지나치게 작다는 점이다. 한옥의 솟을대문의 크기는 그 집의 위엄과 권세를 나타낸다. 그런 문을 일부러 낮고 작게 만들었다는 것은 자신들의 권위를 내려놓겠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낮아진 문턱은 하루에만 100명이 넘는 과객과 유랑객을 받아들였다. 이들 중에는 지위가 높고 식견이 풍부한 선비도 많았지만 신분이 낮고 굶주린 손님들도 있었다. 당연히 차별을 두고 사람을 가릴 수도 있었지만 모든 손님에게 똑같이 독상을 차려줘 차별하지 않고 극진히 대접했다. 이런 후한 모습은 사람들의 입을 타고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최씨 고택을 한양의 위정자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해주었다. 권력의 참견을 받지 않으면서 민란 속에서도 민중의 지탄을 받지 않았던 건 이 집에 머물며 융숭한 대접을 받았던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후원과 지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곳간을 집에서 가장 크고 눈에 띄게 만들었다는 점도 특별하다. 사랑채에 드나들던 수많은 손님은 사랑채 옆에 있는 이 큰 곳간을 매번 마주해야 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들의 재력을 과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이내 모으는 일보다 베푸는 일에 자주 곳간 문이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실제 흉년이 들거나 혹한이 길어져 양식이 부족해지면 최부잣집은 가장 먼저 곳간을 열어 식량을 나눠주고 구휼했다. 작은 문과 큰 곳간은 결과적으로 최씨의 집을 수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주었다. 그 개방성은 시간이 쌓일수록 그들을 명문가로 만들어 주었고 스스로를 단속하는 명분이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부자들에게는 시대와 공간의 차이는 있지만 저마다 공간을 다루는 자신만의 특별한 기술이 있었다. 때문에 우리가 봐야 할 것은 그들이 살고 있는 값비싼 집이 아니다. 부자들이 자신들의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만들어 가는가? 그들만의 스페이스로지가 무엇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만의 특별한 기술을 발견했다면, 과연 내 공간에 어떻게 접목시키고 응용할 수 있는지 연구해보고 실천해볼 필요가 있다. 이 시대의 부자의 공간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니까.

※ 신기율 - 과학·종교·철학 등 다양한 학문을 횡단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대학 졸업 후 약 15년간 철학자로서의 세상과 사람의 깊은 본질을 마주해 국내 최초로 ‘직관’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직관과 마음 치유 그리고 차(茶)를 결합한 기율다원(己律茶院)을 운영한다. 저서로는 2015년 베스트셀러 [직관하면 보인다]가 있다.

201801호 (201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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