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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미래 모바일 기술의 향연장 ‘MWC 2018’을 가다 

‘5G’ 위력 과시한 중국의 IT 굴기 

스페인(바르셀로나)=이정봉 중앙일보 기자 mole@joongang.co.kr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난 삼성 갤럭시 S9 언팩… 혁신 사라지고 스마트 기술 발전에 한계 드러내

▎한 남성이 갤럭시 S9이 장착된 장비를 쓰고 가상현실(VR)을 체험하고 있다. 왼쪽은 갤럭시 S9이 선보인 3D 이모지. / 사진:연합뉴스
2월 25일 오후 6시(현지시간) 스페인의 피라 바르셀로나 몬주익(Fira Barcelona Montjuic).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박람회장 안. 뮤지컬 공연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무대를 IT 업계 관계자와 기자들이 빼곡히 둘러싸며 들어찼다. 옅은 어둠이 깔린 사이로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색깔인 라일락 바이올렛 조명이 이곳저곳을 훑고 지나갔다.

스마트폰과 통신 관련 세계 최대 전시회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8’을 하루 앞두고 삼성 갤럭시 S9 언팩은 그 자체로 하나의 훌륭한 공연으로 기획됐다.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을 비롯한 마케팅·기술 담당자들이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무대에 올랐다. 이들은 청중에게 갤럭시 S9의 훌륭함을 과장 없이 친근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프레젠테이션 중에는 영화 같은 영상들이 무대에 설치된 가로 20m 크기의 스크린에 펼쳐졌다.

이번 삼성의 언팩은 최근 몇 년 동안의 불안감을 떨쳐내려는 듯 웅장함을 자랑했다. 삼성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삼성은 지난해 3분기 중국 시장에서 5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이 기간 인도에서도 점유율 26%로 샤오미에 1% 차이로 바짝 추격당했다.

“셀프 익스프레션(자기표현) 세대를 위해 만들었다. 사용자가 꼭 필요한 기능에 집중했다.”

고동진 사장은 이번 갤럭시 S9의 핵심 철학을 이렇게 설명했다. 갤럭시 S9은 어두운 곳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DSLR 카메라만큼이나 선명하게 담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해 조리개 기능을 추가했다. 그동안 공간이 협소하다는 이유로 스마트폰엔 DSLR 카메라의 조리개 기능을 담기 힘들었으나 삼성은 이를 구현해냈다.

삼성의 야심 찼던 갤럭시 S9 언팩


▎화웨이가 자사 스마트폰의 인공지능을 탑재해 선보인 자율주행차. / 사진:연합뉴스
이는 인스타그램·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발히 이용하는 ‘셀카족’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샤오미·오포·비보 등 중국의 스마트폰 회사들은 셀카 특화 전략을 전면에 내세우며 빠르게 성장했고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양대 산맥인 애플과 삼성을 위협하고 있다. 시작은 중국의 스마트폰 브랜드인 오포였다. 2012년 말 오포는 세계 최초로 500만 화소를 전면 카메라에 탑재했다. 당시 최대 화소의 전면 카메라였다.

이전까지 스마트폰 회사들은 전면 카메라를 영상 통화용으로 여겼다. 화소를 높일수록 영상 통화 시 과도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하므로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오포를 비롯한 중국의 스마트폰 브랜드들은 이런 발상을 완전히 뒤집었다. 셀카족을 겨냥해 고화소의 전면 카메라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다른 스마트폰이 램·메모리 사양을 높이는 고스펙을 구사한 것과 완전히 차별된 전략이다. 이 전략으로 중국 스마트폰 브랜드들은 일단 내수 시장을 급속도로 잠식해 나갔다.

삼성이 이번 갤럭시 S9을 출시할 때 최우선으로 고려한 것도 이러한 점이다. 고 사장은 언팩 프레젠테이션에서 ‘셀프익스프레션’ ‘사용자 편의’라는 말을 몇 번씩이나 반복했다. 기자간담회에서는 “세계 최초에 연연하지 않겠다. 무얼 하든 소비자들에게 의미 있는 것을 내놓겠다”는 말까지 했다.

그런 고민 끝에 담아낸 기능들이 언팩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의 얼굴을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처럼 구현해내는 3D 이모지 기술, 영화의 30배인 초당 960프레임으로 스포츠 중계에서나 보던 슬로모션을 담을 수 있는 수퍼 슬로모 기술은 감탄을 자아냈다.

발전된 증강현실(AR) 기능도 청중의 눈을 사로잡았다. AR 번역 기능이 설치된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스페인어로 된 거리의 간판을 비추자 즉시 영어로 번역돼 스마트폰 화면에 나타났다. 특수한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한 뒤 행사장 출입 카드를 비추자 갤럭시 S9 모습이 나타나는 ‘마술’도 선보였다. 이번 언팩 중 관객들의 환호성이 가장 크게 나온 장면이었다. 삼성이 2016년 인수한 하만의 오디오 브랜드 AKG의 듀얼 스테레오 스피커의 성능은 내 손 안의 영화관을 연상케할 정도로 폭발적 음량을 자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외신들과 IT 관련 업계의 반응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뛰어나지만 놀랍지는 않다”는 것이다. 카메라의 기능들은 충분히 훌륭하지만 소비자들에게 충격을 주기엔 부족하다는 뜻이다. 미국 IT 매체 [버지]는 “삼성이 업그레이드했다는 기술에 실망했을지 모르지만 이번 MWC에 갤럭시 S9보다 더 나은 폰은 눈에 띄지 않는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뉴욕타임스]는 “대폭 향상된 카메라 기능이 필요하지 않다면 굳이 새 스마트폰을 살 필요는 없다”고 했다.

스마트폰 판매량이 줄어든 시대, 갤럭시 S9도 대세를 거스르기 힘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세계 스마트폰 판매량은 전년보다 5.6% 줄어든 4억800만 대였다. 2004년 이후 처음으로 줄었다.

갤럭시 S9 언팩 행사의 장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MWC 2018의 주인공으로 우뚝 선 건 삼성이 아니었다. 그 주인공은 삼성이 가장 속이 쓰릴 법한 경쟁자였다.

MWC 2018이 열리는 스페인의 피라 바르셀로나는 40만㎡ 넓이의 바르셀로나 최대 전시장. 2월 26일부터 나흘간 열린 MWC 2018 행사장엔 세계에 내로라하는 통신·스마트폰 업체 2300곳이 총출동했다. 한 업체당 주어지는 공간은 단순 계산상 174㎡로 가로·세로 13.2m 정도다. 2300개의 경쟁자를 제치고 관람객의 눈을 사로잡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를 어렵지 않게 이룬 곳은 이번 행사의 주인공으로 꼽히는 중국 화웨이다.

MWC 2018은 총 8개의 전시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 중 주최 측이 메인홀로 구분한 곳은 1전시장이다. 1전시장에 이름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세계적 통신 브랜드라는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그런데 이 1전시장의 절반에 달하는 9000㎡를 차지한 곳이 바로 화웨이다.

이 면적은 3전시장에 설치된 삼성 부스의 약 16배다. 화웨이는 1전시장 외에도 세 곳에 부스를 더 두고 있다. 3전시장에 있는 화웨이 부스는 삼성과 거의 동일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1전시장의 화웨이 전시관은 사전 초청을 받거나 등록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출입이 통제됐다. 관람객이 마음껏 구경하고 체험할 수 있는 다른 업체의 부스와는 딴판이다. 게다가 MWC의 출입증 목걸이 줄에도 화웨이 로고가 새겨져 있다. 겉으로 보면 MWC가 화웨이에 특혜를 주고 있는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 이는 화웨이가 MWC의 메인 스폰서이기 때문이다.

2월 27일 방문한 메인홀의 화웨이 전시관은 개장부터 폐장 시간까지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출입이 제한된 탓에 지금이라도 등록하려는 사람들로 안내데스크에도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출입구에는 중국뿐 아니라 일본·유럽의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들을 배치해 글로벌 이미지를 강화했다.

‘특혜 수준’ 엄청난 규모 전시장 자랑한 화웨이


▎화웨이가 선보인 드론 택시. / 사진:연합뉴스
가운데 행사장은 벽 전체를 화웨이의 기술력과 철학을 설명하기 위한 전시 공간으로 꾸몄다. 벽마다 화웨이가 걸어온 길과 새로운 기술력을 자랑하는 프레젠테이션이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화웨이는 기자와 바이어들을 위한 전시투어를 진행하는데 이곳저곳에서 10여 개의 팀이 동시에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전시관 2층은 화웨이가 비즈니스 파트너와의 회의 장소로 이용하고 있었다. 2층 회의실은 약 30개의 사무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전시회에 참석한 기업들 중 2층에 회의 공간을 따로 두고 있는 곳은 화웨이뿐이었다. 1층에서 2층 회의실로 통하는 계단은 남녀 직원이 지키고 있었고, 사전에 미팅을 예약하지 않으면 2층 출입이 허용되지 않았다.

전시관 내에는 레스토랑이 설치돼 있었다. 실내·외 두 곳으로 점심·저녁 시간을 따로 두지 않고 개장부터 내내 운영하며 음식값을 받지 않았다. 레스토랑을 따로 둔 전시관도 화웨이뿐이다.

화웨이는 겉모습만 화려한 게 아니었다. 화웨이는 이번 MWC 행사 기간 중 적어도 두 번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신제품을 발표했다.

하나는 ‘발롱 5G01’ 칩을 발표하면서다. 화웨이는 “5G 네트워크의 표준인 3GPP를 지원하는 첫 번째 칩”이라며 “5G 고객 댁내 장치를 처음으로 실용화했다”고 밝혔다. 즉 통신의 신세계로 불리는 5G로 가정의 통신장비를 한꺼번에 그리고 제대로 연결한 것이 화웨이란 의미다.

5G 네트워크는 현재 LTE로 대표되는 4G(4세대)를 한 차원 뛰어넘는 통신이다. 4G보다 데이터 전송 속도가 20배 이상 빠르고 데이터 처리 용량은 100배 늘어난다. 엄청난 데이터를 주고받아야 하는 가상현실·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홀로그램은 4G의 속도와 용량으로는 무리지만 5G에선 가능해진다. 모든 통신사, 디바이스 업체들이 5G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이유다.

미국까지 위협한 화웨이의 IT 굴기


▎사우디텔레콤이 5G 기술을 활용해 선보인 커넥티드카. / 사진:연합뉴스
화웨이는 이를 처음으로 그리고 성공적으로 개발해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발롱 5G01’ 칩을 개발하기 위해 화웨이는 6억 달러를 투자했다. 화웨이는 올해 5G 기술 개발에만 8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화웨이는 “네트워크와 장비, 칩까지 5G 전체를 아우르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첫 번째 기업이 될 것”이라고 자부했다.

화웨이가 발표한 두 번째 ‘최초 기술’은 자율주행차 분야다. 화웨이는 자사 스마트폰 메이트 10프로에 탑재된 인공지능으로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화웨이는 인공지능 칩셋 기린970을 심은 스마트폰으로 포르셰 파나메라를 자율주행하는 테스트를 MWC 기간에 진행했다. 화웨이는 다른 자율주행차와 다르게 인공지능이 장애물을 인식하는 수준을 넘어 이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화웨이에 따르면 이 인공지능은 고양이·개·공·자전거 등 주변의 약 1000개 사물을 식별하고 구분할 줄 안다. 인공지능은 주변 상황을 인지한 뒤 자동차에 최적의 행동을 지시한다. 예를 들어 도로에 개가 나타나면 차량에 브레이크 경고를 내리거나 핸들을 급히 꺾어 물체를 비켜 지나간다. 화웨이는 “인공지능이 그저 차량을 주행하는 것뿐 아니라 사물을 인지하고 피해 가는 것까지 짧은 시간 내에 학습할 수 있는지 테스트하고 있다”고 밝혔다.

화웨이는 이번 행사에서 신제품 노트북 미디어패드 X프로와 미디어 패드 M5 시리즈를 발표하기도 했지만 사실 사람들의 관심은 메인홀에서 위용을 뽐낸 전시장 자체에 쏠렸다. 화웨이는 이번 MWC를 통해 5G 세상의 진정한 승자가 누구인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1억 명의 인구를 인터넷에 접속하도록 하겠다는 계획, 맨홀에도 센서를 심어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대응하는 스마트 시티를 만든다는 구상, 1억 장의 사진을 몇 초 안에 검색할 수 있도록 하는 클라우드 등이 화웨이의 미래를 보여준다. 소형차 크기로 하늘을 나는 교통수단인 드론 택시, 클라우드와 가상현실을 접목한 클라우드 VR 기술까지 B2B(업체 대상 사업)와 B2C(소비자 대상 사업) 전 분야를 아우르는 실력을 과시했다.

화웨이의 5G 장비 기술은 세계 최고로 손꼽힌다. 5G가 구현되는 주파수로 꼽히는 3.5GHz와 28GHz 대역 모두에서 삼성을 앞서고 있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의 IT 기술력이 사실상 중국에 뒤처지고 있다는 게 점점 정설이 되고 있다. 현재 한국이 중국보다 명확히 앞서 있다고 볼 수 있는 분야는 반도체·자동차·TV 정도에 그친다. 이번 MWC를 찾은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5G 주도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2019년 3월 5G 이동통신의 세계 최초 상용화를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며 통신사들에 당부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말로 보인다.

하지만 SK텔레콤·KT·LGU+ 등 3대 통신사는 난처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5G 네트워크 장비는 화웨이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 현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선 가격·성능·서비스까지 우위에 있는 화웨이를 쓰는 것이 합리적 판단인 게 당연하다”면서도 “화웨이 기술력과 장비로 세계 최초 상용화를 달성한다는 건 국격의 문제이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웨이를 위시한 중국의 IT 굴기는 미국도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 1월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는 중국발 보안 위협에 5G 네트워크의 국영화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이동통신사 버라이즌은 화웨이의 모든 스마트폰 판매 계획을 철회하기도 했다. 이에 미국 정부의 압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웨이의 켄 후 CEO는 “(보안 이슈) 논쟁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팩트에 기반을 둬야지 막연한 의심으로 시작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또 “지난 30여 년 동안 화웨이는 400여 곳의 통신업체에 장비 등을 공급했다”며 “그런 과정을 통해 드러난 문제는 없었다. 충분한 보안 검증이 이뤄졌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스마트폰·자율주행차는 혁신 난항 겪는 중


▎벤츠에 적용된 커넥티드카 기술. / 사진:메르세데스 벤츠
화웨이가 이번 MWC 이슈의 중심에 선 건 신작 스마트폰, 자율주행차 등 혁신을 주도하던 분야에서 반짝이는 신성이 눈에 띄지 않아서다. 2007년 세상에 충격을 안기며 등장했던 애플의 아이폰 출시 이후 11년, 스마트폰은 상향 평준화됐다.

MWC에서 선보인 최신 스마트폰은 ▷18:9 화면비의 대화면 ▷베젤리스 디자인 ▷AR의 적용 ▷OLED 디스플레이 ▷지문·홍채 인식 ▷듀얼 카메라 등 디자인 측면과 기술 측면에서 모두 상향 평준화됐다. 이번에 새로 나온 삼성 갤럭시 S9, LG V30 ThinQ, 소니 엑스페리아 XZ2, 화웨이 메이트 10 프로 등은 기능과 겉모습만 보고는 어느 회사의 제품인지 구별이 어려울 정도다.

그 외에 오포 R11s, 비보 X20, ZTE 블레이드 V9, 위코 뷰2, 샤오미 홍미 노트5, 노키아 7플러스 등도 뚜렷한 차별점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LG 임동휘 선임은 “접히거나 말 수 있는 디스플레이 스마트폰이 나오지 않는 이상 더 이상의 기술·디자인 혁신은 어렵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라고 전했다.

MWC에 전시된 차들도 자율주행 기술을 전면에 내세운 건 찾아보기 힘들었다. IT 기술을 접목한 포르셰·벤츠·BMW 등 자동차 업체는 “3년 내로 자율주행차가 현실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확신은 할 수 없어 보인다. MWC에서는 화웨이의 포르셰 파나메라를 제외하곤 커넥티드카가 대부분 전시됐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엔비디아와 공동 개발한 음성인식 기반의 지능형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인 MBUX(Mercedes-Benz UX)를 공개했다. 이 시스템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학습이 가능해 개인의 특성을 반영한 주행이 가능하다. 증강현실을 이용한 내비게이션과 도로명 주소 등을 가상현실로 표현할 수 있다. 올봄부터 새로운 A-클래스에 적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1위 스마트폰 반도체 기업인 퀄컴도 커넥티드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퀄컴은 지난해 초 모바일과 자동차를 완전히 연결하는 시스템인 C-V2X(cellular vehicle-toeverything) 개발에 착수했다. 퀄컴은 프랑스 자동차 제조사인 그루페 PSA와의 협업 아래 9150 C-V2X 칩셋을 활용해 자동차가 도로의 장애물이나 위험 요소를 인지하면 다른 자동차에 즉각적으로 알려주는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자율주행차의 혁신이 어려운 건 인공지능의 특성 탓이다. 인간에게 어려운 수십 자리의 곱셈 계산과 같은 일에는 탁월하지만 어린이도 쉽게 하는 얼굴 표정 읽기는 인공지능에게 어려운 과제다.

자율주행차는 여전히 눈이 내리거나 비 오는 날 밤의 주행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도로 주행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수많은 돌발 변수에 대해 완벽히 대처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 도로 위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사람이 차 앞을 가로지르겠다는 수신호를 보낼 때 인간은 즉각적으로 인지하지만 인공지능 센서는 이를 정확히 읽어내기 힘들다. 자율주행에는 공학적 요소뿐 아니라 인문적 요소가 끼어들기에 기술 발전만으로 상용화가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지난해 7월 엔비디아와 협업 중인 볼보가 호주에서 테스트를 하던 중에 캥거루의 습성을 읽어내지 못해 오작동을 일으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볼보의 자율주행차는 앞서 치른 스웨덴 테스트에서 들소·사슴 등 대형 동물을 만났을 때는 제대로 주행했지만 펄쩍펄쩍 뛰면서 달리는 캥거루를 제대로 인지하는 데는 실패했다. 당시 인공지능은 캥거루가 뛰어올라 공중에 있을 때는 먼 곳에 있는 물체로 인식하고 착지했을 때는 가까운 곳에 있는 물체로 판별했다.

- 스페인(바르셀로나)=이정봉 중앙일보 기자 mole@joongang.co.kr

201804호 (2018.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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