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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철학자 신기율이 쓰는 현대인의 풍수(마지막회)] 좁아도 쾌적한 원룸의 비밀 

집의 행복은 크기와 비례하지 않는다 

신기율 기율다원(己律茶院) 운영
미니멀리즘은 ‘나다움’을 간명하게 보여주는 것… 트렌드만 난립하는 공간은 ‘흉상(凶相)’과 같아

1인 가구 500만 시대다. 전체 가구 가운데 27.9%에 이른다. 이들이 선호하는 주거형태는 열 평(33㎡) 이내 공간에 필요한 설비가 오밀조밀 모인 ‘원룸’이다. 그런데 원룸에서도 어떤 이는 쾌적한 해방감을, 또 다른 이는 우울한 구속감을 느낀다. 어디에서 비롯되는 차이일까.


▎공간을 비우는 데도 원칙이 있다. 무턱대고 가구와 소품을 비워내면 불편과 우울감을 주는 집으로 전락한다. 서울 노원구의 한 원룸 건물 전경. / 사진:신경섭
누구에게나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있다. 나에게는 20대 후반의 시절이 그랬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업은 어려웠고 공부에 대한 미련도 버리지 못했다. 형편이 어려운 집에 더 이상 손을 벌릴 수도 없었다. 꿈이 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판단도 내리기 힘들었던 그때, 나는 무작정 서울 외곽의 가장 값싼 고시원을 찾아 생애 첫 독립을 했다.

세 평 남짓한 공간에는 작은 침대와 책상 하나가 전부였다. 화장실도 부엌도 없었다. 창이 있었지만 옆 칸에 사는 사람과 나눠 쓰는 탓에 열리지 않았다. 맑은 공기 대신 옆방의 소리와 냄새가 고스란히 창을 타고 들어왔다. 그곳에 살면서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 만나는 사람도 나를 찾는 사람도 점점 줄어들었다. 일을 쉬는 날은 하루 종일 한 끼도 못 먹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고시원 생활 한 달 만에 몸무게 15㎏이 빠지고 얼굴에는 병색이 돌았다.

이렇게 설명하면 무척 불행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 작은 방안에 있을 때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 수 있었다. 방을 치우지 않아도, 발가벗고 돌아다녀도 밤새도록 차를 마셔도 오로지 나 혼자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곳은 스스로를 가두며 세상과 단절될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을 풀어두며 자유로울 수도 있는 양면성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운 좋게도 나는 이 양면성을 십분 활용하는 이웃을 만나 고시원 생활의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었다. 나이가 비슷해 안면을 익힌 그는 졸업 후 2년째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평범한 고시생이었던 그를 주목하게 된 건 특이한 생활 패턴 때문이었다. 그는 늘 같은 시간에 일어났고 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산책을 나가고 공부를 하고 잠을 잤다. 손님이 있어도 정해진 시간이 되면 자신의 규칙대로 움직였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놀랍게도 그의 방에는 시계나 핸드폰이 없었다. 일부러 시계를 두지 않고 자신의 습관을 시계처럼 만든 것이다. 그는 결국 시험에 합격했고 지금은 특허법률사무소의 대표가 돼 있다. 그 지인이 떠나고 나도 그를 따라 내 시간과 공간을 통제하려 노력했다. 그 노력의 산물들이 지금 쓰는 글들의 밑천이 돼주고 있다.

청춘의 ‘주둔지’로 자리 잡은 원룸


▎박씨의 원룸에서 자기 물건은 책상뿐이다. 1~2년 주기로 옮겨 다니는 ‘원룸족’에게 가구와 소품은 짐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미니멀리즘이 원룸족의 화두인 이유다. / 사진:신기율
지금도 나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때 고시원에서의 생활들을 떠올린다. 과거를 회상하며 추억에 젖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곳에는 인생의 막막함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 했던 열망과 노력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흔히 얘기하는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처음의 어설픔과 낯설음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아니다. 그때의 절박함 속에 쥐어 짜냈던 강렬한 에너지를 다시 한 번 돌이켜보라는 뜻일 것이다.

프로이트 심리학에서는 이를 ‘주둔군 이론’으로 설명한다. 전열을 정비하며 물자와 전력을 임시로 모아두는 곳이 주둔지다. 힘들고 어려운 전쟁일수록 주둔지에는 더 많은 자원과 주둔군이 잔류하게 된다. 사람의 마음에도 이런 주둔지가 있다고 한다. 죽도록 힘들지만 이겨 내야만 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내가 쓸 수 있는 극한의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그 치열한 전투의 현장에는 내 모든 능력치가 모여 있는 주둔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고난의 시절이 생각나는 건 그곳에 나를 구원해줄 경험과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삶은 끝나지 않는 기나긴 전쟁의 여정인지도 모른다.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많은 청춘도 그때의 나처럼 주둔지에 서 있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박인애씨도 그중 한 명이다. 분가해 독립한 지 이제 5년차. 이번에 찾아간 그녀의 집은 두 번째 이사한 집이었다. 전에 살던 곳에서는 누우면 싱크대가 보여 너무 싫었다고 한다. 새로 이사한 집은 주택가에 위치한 깔끔하고 무난한 빌라였다. 4층의 붉은 벽돌 건물 안에는 작은 평수의 원룸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었다. 여덟 평 정도의 크기에 미닫이문으로 방과 주방이 나뉘어져 있는 분리형 원룸이라 누웠을 때 싱크대가 보일 일은 없어 보였다. 실내는 단출했다. 침대와 옷장 책상 전신거울이 가구의 전부였다. 잘 정리된 100여 권의 책은 책장이 아닌 바닥에 놓여 있었다.

“가구가 주는 부피감이 싫어서 이것저것 사지 않았어요. 이사를 갈 때마다 짐을 옮기는 것도 부담스럽고요. 침대와 옷장도 전 주인이 쓰던 걸 물려받은 거예요.”

결국 본인의 돈으로 산 가구는 책상밖에 없었다. 출판사 편집 일을 하는 본인에게는 꼭 필요한 가구였을 것이다. 2년 안팎의 짧은 계약을 하며 잦은 이동을 해야 하는 ‘원룸족’들에게 가구나 소품은 짐이 되기 쉽다. 그래서 당장 써야 하거나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로만 공간을 채우게 된다. 우선순위가 아닌 것은 들여놓지 않으니 집이 작을수록 주거인의 취향이나 지금의 관심사가 쉽게 읽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박씨의 집은 조금 남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이 집의 구조나 인테리어 소품 같은 것들이 아닌 문을 여는 순간부터 느껴졌던 독특한 향과 서늘한 집안의 온도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놓치고 있는 부분 중 하나가 공간이 좁아질수록 향과 온도가 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우선 공간이 좁을수록 온도를 낮춰 서늘함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춥지 않을 정도의 서늘함은 공간을 차분하고 안정감 있게 만들어 준다. 답답한 느낌도 줄어든다. 반대로 온도가 올라갈수록 답답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차갑기만 한 공간은 적막해지기 쉽다. 외롭고 쓸쓸한 느낌을 줄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따뜻하고 무거운 느낌의 디퓨저나 향이다. 따뜻한 향은 차가운 공기에 온기를 불어 넣어 주고 적막함을 덜어 준다. 차가운 물로 우리는 더치커피나 녹차가 본연의 향을 유지하듯, 서늘한 공간일수록 향은 날아가지 않고 오래 머물며 포근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그녀의 공간은 작지만 답답하지 않고 꾸밈이 없지만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이런 최적의 조율을 하게 된 걸까? 물어 보니 자신의 성격이 원래 그렇다고 한다.

“평소에 맺고 끊음이 정확해 차갑다거나 성격이 칼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애매한 건 못 참아 관계정리를 확실하게 하는 편이죠.”

동네와 관계 맺으며 생활영역 넓혀라


▎집 문턱을 넘어 동네로 생활영역을 넓히면 비좁은 실내공간은 더 이상 제약이 아니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 일대 ‘망리단길’을 내려다본 모습.
사람 간의 관계를 맺는 방식도 공간을 다룰 때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기 마련이다. 그녀의 공간에 치장이나 장식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그렇다고 그녀가 매몰차거나 인정 없는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집안에 스민 ‘베이’ 향이 균형을 잡아주듯 관계의 균형을 잡아주는 따뜻함과 배려 역시 그녀와의 대화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이성적인 관계는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 데가 마땅치 않은 경우가 많다. 누구를 붙잡고 하소연하거나 사적인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기도 어렵다. 이럴 때 여행을 가거나 특정한 장소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면 좋겠지만 바쁜 일과에 쫓기다 보면 여의치 않을 때가 많다. 집안에 공간적 여유가 있다면 내 아픔을 내려놓을 ‘정서적 공간’을 두면 좋겠지만 그럴 곳도 없다. 그녀는 해답을 음악에서 찾는다고 했다.

“답답하고 우울할 때면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음악을 들어요. 음악이 내 안의 답답한 공기를 환기시켜 주는 것 같아요.”

고요한 평화로움이 이전 시대의 휴식을 의미 했다면 요즘 젊은 세대들은 반복되는 프레이즈의 단순한 음률에서 오히려 안정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너무 단조로우면 지루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음악이나 게임을 하면서도 충분히 집중하고 좋은 성적을 내며 자신만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작은 공간은 그곳에 사는 사람을 위축시킬 만한 충분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 움직일 수 있는 몸의 동선을 제약하고 그에 따른 마음의 움직임도 제한한다. 공간이 작아질수록 마음은 작아지기 쉽다. 특히 공간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사람일수록 그런 경향은 강해진다. 필요이상의 큰 집을 선호하는 사람일수록, 집에 투자한 돈이 많을수록 사람들은 집과 나를 일체화시킨다. 집의 크기가 곧 권력의 크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다행히 그녀는 자신의 공간과 충분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공간이 곧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자신이 공간을 돌봐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집을 자기와 함께하는 반려대상이나 손이 많이 가는 친구 정도로 여기는 것이다. 내가 사는 공간에 거리를 두면 내가 사는 곳보다 그 주위에 더 관심을 두며 즐기게 된다.

그녀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도 집 자체의 장점보다는 동네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우선 시장이 가깝고 ‘망리단길’이 조성돼 볼거리가 많았다. 망리단길은 서울 용산구의 ‘경리단길’ 못지않다며 마포구 망원동 일대 거리에 붙은 별명이다. 회사로 가는 셔틀버스 정류장도 가까이 있었다. 근처에 보틀숍이 있어 마음에 드는 맥주를 쇼핑할 수 있다는 것도 선택의 중요한 요소가 됐다.

그녀는 앞으로 경제적 여유가 생겨도 투룸 이상의 공간은 필요 없다고 했다. 대신 집중해서 넓히고 싶은 공간은 내면의 공간이다. 경험치를 높이고 원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집중하고 커리어를 쌓는데 투자하고 싶은 것이다.

박인애씨의 여덟 평 공간이 주둔지가 될 수 있는 건 그녀가 그 공간에 기대거나 안주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곳을 발판으로 자신의 커리어와 삶의 스타일을 완성해 나갈 것이다. 확신할 수 있는 건 지금의 공간 안에 채워둔 삶의 철학들이 먼 미래에 나를 지원해줄 든든한 주둔군이 되어줄 것이라는 점이다. 자신의 공간에 더하거나 뺄 게 없느냐는 그녀의 질문에 ‘더 이상 손 댈 곳 없이 완벽하다’고 말해 주었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 없는 막막함 속에서 그 외로웠을 순간들을 너무나 잘 견디고 있는 거라고, 그래서 이곳이 최고의 명당이라고 그녀에게 대답해 주었다.

나와 닮은 집일수록 심플해 보인다


▎일정한 리듬이 있는 집은 쓰임이 다른 물건들이 모여도 조화가 이루어진다. 김씨는 이런 조화를 ‘공간의 관상’이라고 표현했다.
두 번째로 찾은 1인 가구는 북한산이 멀지 않은 은평구의 작은 원룸이었다. 비슷한 모양의 빌라들 사이에 한눈에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흰색 건물. 뭔가 독특한 예술적 감각이 느껴지는 집의 3층에 올라가 초인종을 눌렀다. 따뜻한 미소로 필자를 맞이한 이는 동화책 그림작가 김령언씨다.

환대를 받으며 들어섰지만 순간 혹시 잘못 찾아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한참을 머뭇거려야 했다. 분명 주거와 작업실을 겸한 여섯 평 원룸이라고 들었는데 한눈에 봐도 열 평은 넘어 보이는 크기 때문이었다. 제법 키가 큰 여러 개의 화분과 풍경들, 긴 책상과 책장 작은 소파와 테이블, 싱크대 등 다양한 집기가 가득 채워져 있는데도 공간은 여유로워 보였다.

먹고 자는 ‘생활의 흔적’이 거의 없다는 점도 그랬다. 얼핏 보면 이 공간은 완벽한 ‘1인 작업실’이었다. 긴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와 그림 도구들. 벽에 멋스럽게 걸려 있는 그녀의 작품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공간 자체도 너무나 깔끔했다. 침대나 빨래걸이, 주방기구 등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작은 소파가 밤에는 침대로 변신하고 장식장처럼 보였던 유리 캐비닛이 그녀의 옷장이었다. 안이 보이는 투명한 가구를 놔야 덜 좁아 보일 것 같아 학교 과학실에 납품하는 가구를 구했다고 한다.

흰 벽에 빛이 잘 들어오는 커다란 반투명 창문도 집을 넓게 보이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집안 곳곳에는 그녀가 취미로 만든다는 펠트공예 작품들도 아기자기하게 전시돼 있었다. 이런 꽉 찬 공간이 전혀 과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넓어 보이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공간의 ‘첫 단추’부터 제대로 끼웠기 때문일 것이다. 40대 초반의 그녀가 이 공간을 갖게 된 것은 고작 1년 남짓이다. 그 전까지는 계속 부모님과 한 집에 살아 왔다. 작가로서 한창 커리어를 쌓고 창작을 하던 지난 10여 년간 누구나 그렇듯 그녀에게도 슬럼프가 찾아왔다. 한동안 깊은 우울감과 무기력에 쌓여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우연히 좋은 상담가를 만나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자신의 내면과 소통하고 대화하는 법을 배우면서 그녀는 스스로를 가두었던 작은 상자에서 마침내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다.

“저 스스로 밝아지고 에너지가 커졌다는 게 느껴지니까 자연스럽게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모님과 살고 있는 집은 작은 숟가락 하나까지 다 엄마의 취향이 담겨 있는 엄마의 공간이잖아요. 그래서 완전히 저만을 위한, 제 취향이 제대로 담긴 공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구체적으로 그런 집을 머릿속으로 상상하기 시작했어요.”

그녀는 하얀색에 창이 커서 답답하지 않고 햇볕이 잘 들어오는 집, 그리고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자신의 작품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머릿속으로 그려냈다. 그리고 실제 집을 보러 다닌 지 얼마 안돼서 운명처럼 이 집을 만났다고 했다.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꿈꾸던 집과 거의 똑같았던 것이다.

“신기한 건 이 집을 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저한테 큰 일이 들어온 거예요. 보통 일러스트 작가는 프리랜서라서 고정된 일이 없는데, 1년간 연재를 하게 되면서 수입이 안정적으로 들어오게 됐죠. 집터가 좋아서일 수도 있지만 제 에너지가 바뀌면서 같이 생긴 변화라고 봐요. 저는 ‘유인력’을 믿는 편이거든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에너지와 파장을 발산한다. 그 에너지는 크고 작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때때로 자신도 모르게 나와 공명하는 무언가를 끌고 온다. 특히 그녀처럼 끌어오는 힘, 유인력을 믿는 사람들은 그 대상을 구체적으로 머릿속으로 그리며 끌고 올 대상을 먼저 설정하기도 한다. 마치아는 사람을 떠올리듯이 그림작가인 그녀는 자신의 공간과 일을 그려냈고 실제로 그것은 하나씩 눈앞의 현실이 돼갔다.

공간에도 길상(吉相)·흉상(凶相)이 있다


▎김씨의 원룸은 그림작가의 정체성을 반영하듯 다양한 소품으로 가득했다. 여섯 평짜리 집은 그런 와중에도 쾌적함을 머금고 있었다. / 사진:림작가의 정체성을 반영하듯 다양한 소품으로 가득했다. 여섯 평짜리 집은 그런 와중에도 쾌적함을 머금고 있었다. / 사진:신기율
그렇게 운명처럼 만난 집인 만큼 김씨는 공간에 자신의 색깔과 취향을 정성스럽게 담아냈다. 가구는 물론이고 조명, 작은 숟가락, 쟁반 하나하나까지 신중하게 고르고 그녀답게 배치해 나갔다. 모든 물건에 김씨의 감각과 철학을 담은 것이다. 마치 김령언이라는 사람이 공간으로 변신하면 이런 모습이 된다는 듯. 물건들의 종류와 모습은 다 제각각이지만 일종의 ‘에너지 유전자 감식’을 하면 주인은 모두 그녀로 나올 것이다. 그런 일정한 질서와 리듬이 있기 때문에 쓰임이 다른 물건들이 모여도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녀는 이런 조화를 ‘공간의 관상’이란 말로 표현했다.

“저는 낯선 가게를 들어가기 전에 그 가게의 관상을 봐요. 사람의 첫인상이 있듯 공간에도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인상이 좋지 않은 곳은 들어가지 않아요.”

이렇게 여러 가지 물건의 조화를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한다는 것은 사실 엄청난 내공이 필요한 일이다. 그녀는 10여년간 그림이라는 도구로 자신만의 패턴을 만들었던 사람이다. 그 인고의 시간을 통해 서로 다른 물건들을 마치 하나의 캐릭터로 만들듯 자신의 감각과 철학을 일관성 있게 투영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자신만의 취향과 감각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소비는 그때의 유행이나 분위기에 맞춰 즉흥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것들로 채워진 공간은 물건이 많지 않아도 뭔가 조화롭지 않고 복잡한 느낌이 든다. 한마디로 흉상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럴 때 적어도 나의 작은 방, 원룸 하나만큼은 공간의 철학이 지배하는 취향의 공간으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균일한 질서가 있는 공간은 물건의 다소와 상관없이 심플하다. 어느 곳을 보아도 마음이 안정되고 단순해지는 공간. 그런 공간에서 우리는 편한 인상의 사람을 마주하듯 정서적인 안정과 자유를 느낄 수 있다.

박인애씨의 주둔지와 김령언씨의 공간은 언뜻 서로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쪽은 거리를 두어야 하고 한쪽은 거리를 없애야 가능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극단의 공간에도 공통점이 있다. 바로 ‘미니멀리즘’이다. 요즘 공간의 화두는 단연 ‘미니멀리즘’이다. 최소한의 가구와 물건들만 두고 공간을 단순하게 만드는 지금의 공간 트렌드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공간을 꾸미는 취향은 사람마다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비어있는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만큼이나 아기자기하게 채워진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정상이다. 미니멀한 공간에서 오히려 허전함과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째 지속되고 있는 미니멀리즘의 열풍 이면에는 복잡한 삶에 지친 우리의 모습이 담겨 있다. 뒤엉킨 수많은 일과 인간관계로 이미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기에 적어도 ‘내 공간’에서만큼은 에너지 손실을 줄이고 싶어 하는 것이다. 공간이 비워지면 내 복잡한 마음도 한결 단순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유행만 좇는 미니멀리즘엔 사람이 없다


▎르 코르뷔지에는 네 평짜리 오두막에서 말년을 보냈다. 프랑스 남동부 지중해 해안을 바라보는 위치에 지어진 ‘카바농’의 모습. / 사진:코바나컨텐츠
그러나 정말 그럴까. 공간에 최소한의 가구와 물건만 두고, 비워내고 단순하게 바꾼다고 해서 마음도 같이 변할 수 있는 것일까. 가끔 TV에서 연예인들의 미니멀 라이프를 보여 줄 때마다 나는 공감하지 못할 때가 많다. 널찍한 곳에 아무것도 없이 소파만 덩그러니 있는 유명 배우의 거실은 단순하다기보다 불편하고 차가워 보였다. 그 넓은 공간에 편하게 쉴 만한 곳도, 가족들과 따뜻한 대화를 나눌 곳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 그 명품 소파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보이는 것이 간단해질수록 보이지 않는 것은 더 복잡해진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그런 경향은 더 뚜렷해진다. 휴대전화나 노트북에 최첨단 기능을 탑재할수록 겉모습은 오히려 심플해지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집도 마찬가지다. 냉장고, 식기세척기가 일체형으로 들어간 주방은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고, 복잡하게 설치했던 에어컨도 요즘엔 분양할 때부터 천정에 매립돼 있다. 갈수록 공간의 모습은 깔끔해지지만 사실 그 안에는 정교하고 혼잡한 시스템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도 있다. 무언가 강하게 움직이면 반드시 그 정 반대, 이면의 것도 같이 움직이게 돼 있다. 집안에 물건을 쌓아두고, 장식하는 데 재미를 느꼈던 사람이 갑자기 미니멀리스트가 된다면 한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그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지금은 어디에 투사하고 있는지. 보이는 물건을 줄이고 있다면 그것을 메우기 위해서 다른 것을 쌓아두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미니멀한 공간이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밸런스를 잡는 것이다. 공간을 단순하게 바꾸고 싶다고 해서 당장 불필요한 것을 다 버릴 것이 아니라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게 하는 뭔가를 같이 두는 것이 좋다. 공간을 잘 활용하고 있는 김령언씨에게는 창가의 식물들을 가꾸고 공예품을 관리하는 수고로운 과정이 그랬을 것이다. 박인애씨는 바닥에 놓인 100여 권의 책을 정리하고 때때로 위치를 바꿔주는 일에서 균형을 잡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공간은 미니멀하지만 동시에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을 수 있었다. 잘 잡힌 균형 속에서 사람 중심의 미니멀리즘을 조용히 구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대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는 ‘카바농’이라고 이름 붙인 네 평짜리 오두막에서 말년을 보냈다. 미니멀리즘의 진수를 보여주는 카바농은 그 어떤 공간보다도 실용적이고 합리적으로 만들어졌다. 바다를 향해 창을 놓아 차경이 주는 여유로움도 잊지 않았다. 평생을 건축에 몸담았던 거장의 마지막 선택은 어떤 공간이 진정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가를 말해 주고 있는 듯하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는 그의 말처럼,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그 공간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 신기율 - 과학·종교·철학 등 다양한 학문을 횡단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대학 졸업 후 약 15년간 철학자로서의 세상과 사람의 깊은 본질을 마주해 국내 최초로 ‘직관’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직관과 마음 치유 그리고 차(茶)를 결합한 기율다원(己律茶院)을 운영한다. 저서로는 2015년 베스트셀러 [직관하면 보인다]가 있다.

201805호 (20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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