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ZOOM UP] 한강 질주하는 ‘9인조 소금쟁이’ 

“올 맨 레디, 어텐션, 로!” 

사진 김현동 기자
꽉 막한 도심 가로지르는 청량감에 ‘엄지 척’…남녀노소 참여한 ‘조정 동호회’ 봄맞이 기지개

봄철 한강은 오후 1시까지 ‘접시 물’이다. 바람이 불지 않아 수면이 잔잔하다. 서울에 살면서도 잘 모르는 천혜의 조건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뚝섬 인근에서 조정을 즐기는 동호인들이다. 현장에서 바라본 9인승 조정보트는 물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소금쟁이처럼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주말치고는 다소 이른 시간인 오전 8시30분. 열댓 명의 사람이 서울 광진구 뚝섬유원지 인근 수상플로팅 공간에 모여 체조를 하고 있었다. 로잉(Rowing, 노 젓기)에 앞서 몸을 풀고 있는 조정 동호인들이었다.

동호회를 이끄는 로잉코리아 김태석 대표는 2013년 서울에서는 처음으로 조정경기 시설을 만들었다. 서울 근교에 조정경기장이 있지만 프로선수 훈련 용도로 사용돼 일반인은 접근이 어려웠다. 현재 동호인 30여 명이 주말마다 이곳을 찾아 조정을 즐기고 있다.

“올 맨 레디, 어텐션, 로(Row)!”

9인승 보트에 콕스(타수) 1명과 크루(조수) 8명이 모두 승선하자, 콕스를 맡은 회원이 출발을 의미하는 구호를 외쳤다. 여덟 개의 오어(Oar·노)가 일제히 한강물을 뒤로 밀어내면서 물보라를 일으켰다.


▎동호인 조정에서는 오어 사용법과 안전교육을 이수한 뒤 바로 보트에 올라탈 수 있다. 교육 도중 한 동호인이 오어의 날 부분을 가리키고 있다.
“강에서 바라보는 서울은 매번 새로워”

뚝섬을 출발한 보트는 반포대교 부근까지 6.25㎞를 나갔다가 돌아온다. 바람과 물살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보통 세 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웬만한 근력과 지구력으로는 타기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김 대표는 “리듬을 타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회원들의 나이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했다. 이날 배에 오른 크루 중에서는 성원희(55·여)씨가 가장 연장자였다. 세 시간 동안 배를 타고 온 뒤에도 성씨는 지친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성씨는 “앞으로 5년은 거뜬히 탈 것 같다”며 웃었다.

성씨 앞에서 보트의 허리를 맡고 있는 정진욱(38)씨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본업이다. 2011년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조정경기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고 ‘버킷리스트’로 품고 있던 차에 이곳을 알게 됐다. 정씨는 “강에서 바라보는 서울은 매번 새롭다”면서 “무동력으로 한강을 가로지르는 쾌감이 최대 매력”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조정은 모든 크루들이 협력해 팀워크를 이루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동호인들이 거치된 배를 내리고 있다.
“조정은 개인기보다 팀워크가 중요”

이날 기자와 김 대표는 4인승 전동보트에 올라타고 동호회원들의 역주(力走)를 뒤쫓고 있었다. 그런데 청담대교 아래를 지나던 중 전동모터가 ‘탈탈’ 경고음을 내더니 이내 꺼졌다. 보트가 한강 한가운데서 표류하기 시작했다.

“그 배, 구조선 아니었어요?” 동호인들이 익살스러운 질문을 던지며 전동 보트에 다가와 밧줄로 두 배를 연결했다. ‘끌고 갈 수 있을까’ 걱정도 잠시, 여덟 개 오어가 한번 움직일 때마다 보트가 ‘훅’ 당겨져 갔다. 콕스를 맡은 김동현(36)씨는 “오어를 젓는 타이밍을 하나로 맞추는 게 관건”이라면서 “그만큼 조정은 개인기보다 팀워크가 중요한 스포츠”라고 강조했다.

2년차 크루인 이수현(26·여)씨는 조정 덕분에 취업에 성공한 케이스다. 면접관에게 팀워크 정신을 어필한 게 주효했다고 한다. “한 팀에 말 그대로 남녀노소가 다 있잖아요. 심지어 외국인까지 있죠. 각양각색 사람들과 호흡을 맞춰온 거잖아요. 면접관도 ‘그 정도 했으면 직장생활 잘하겠네’라며 흡족해 했죠.”

로잉코리아는 중학생 2300명을 대상으로 서울 마포구 망원한강공원에서 ‘조정체험 아카데미’를 4월 23일부터 한 달여간 진행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기업에서도 조정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다는 문의를 많이 해온다”며 “생활체육으로서 조정을 알리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슬라이딩 시트와 결합된 레일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는 크루들. 레일에 문제가 생기면 하체의 힘이 오어로 온전히 전달되지 못한다.



▎발을 고정하는 기구인 스트레처(Stretcher). 조정은 3시간 코스를 타고 오면 약 500㎉를 소모할 정도로 운동량이 많다.



▎뚝섬유원지 선착장에서 출발한 보트는 반포대교 밑에서 돌아온다. 초보자들은 편도 5㎞부터 시작해 점차 거리를 늘려간다.



▎동호인 조정은 실력에 상관없이 참여할 수 있어 여성들이 선호한다. 선수 양성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혼성(混聲)으로 팀을 짜는 경우가 많다.



▎4년차 크루인 정진욱씨는 “무동력으로 한강을 가로지르는 쾌감이 최대 매력”이라고 말한다.



▎콕스를 맡은 김형진(41)씨가 크루들을 지휘하고 있다. 콕스는 방향타를 조정하고 크루들의 힘을 하나의 리듬으로 모으는 역할을 한다.



▎햇빛이 강렬한 하계엔 ‘석양로잉’(오후 4시~7시)이 진행된다. 선착장으로 돌아올 때 즈음엔 불 켜진 청담대교와 석양이 어우러진 경관을 볼 수 있다.
-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 글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201805호 (20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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