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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슈] 제2 도약 꿈꾸는 70년 역사 한국 오페라 

‘축배’의 잔 채우고 축제의 막 올린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세계 대회 휩쓸고 국제무대서 한국의 위상 높아졌지만, 대표 창작품 없이 외국 명성에 기대 각자도생에만 ‘급급’

▎한국 오페라가 올해로 70년 생일을 맞이했다. 세계 정상급 음악가들을 배출하며 외연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여전히 인프라와 콘텐트 부족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1948년 1월 16일. 서울 명동의 예술 극장인 시공관(현재 명동예술극장)에서 아름다운 아리아가 울려 퍼졌다. 조선오페라협회가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 베르디 오페라 [춘희(椿姬, La Traviata)]. 막이 오르고, ‘축배의 노래’가 나오자 공연장은 시작부터 흥이 배가됐다. 5일 동안 10회 공연이 전석 매진되며 화제를 모았다. 이 공연은 국내 오페라의 효시로 기록돼 있다.

한국 오페라가 올해로 70년을 맞았다. 한국 오페라는 대한민국 현대사와 궤적을 같이 해왔다. 첫 오페라 공연이 열렸던 1948년은 우리나라가 최초로 동·하계 올림픽에 출전한 해이기도 했다.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는 세 명의 선수가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출전했다. 올해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 선수는 역대 최다인 218명이었다.

한국 오페라의 발판을 닦은 이들로 테너이자 의사였던 이인선(1906~60)씨와 김자경(1917~99) 전 이화여대 음대 교수가 꼽힌다. 이씨는 [춘희] 첫 공연을 위해 대본 번역과 제작, 남자주인공까지 1인 3역을 소화해냈다. 자신이 운영하던 병원 수익금을 오페라 발전을 위해 쏟아부을 만큼 헌신적이었다. 이 전 교수는 국내 성악계의 대모로 꼽힌다. [춘희]에서 여주인공(비올레타)을 맡아 이씨와 협연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오페라단(김자경오페라단)을 창설해 민간 오페라단 활성화의 토대를 닦았다.

450년에 이르는 오페라의 역사에 비하면 걸음마 단계에 불과할 기간이지만, 본고장인 유럽 오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외연은 압축 성장했다. 현재 전국에서 활동하는 민간 오페라단은 120여 개에 달한다. 유럽의 오페라극장에서 활약하는 한국 출신의 가수도 1000명이 넘는다.

하지만 여전히 일반인에게 오페라는 연극이나 뮤지컬 등의 다른 무대예술에 비해 거리감이 크다.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아니다. ‘상류 문화’라는 인식이 고착화한 탓이 크다. 다양한 소재로 대중화하기가 쉬운 뮤지컬이나 연극과 달리 오페라를 제작해 무대에 올리는 과정은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다. 수익성도 크게 떨어진다. 오페라를 공연할 수 있는 수준의 전용극장(오페라극장 또는 오페라하우스)이 전국에 3개뿐인 인프라 부족도 대중이 오페라를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다.

통계 수치를 보면 이런 문제점은 더 극명해진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조사해 발표한 공연예술실태조사에 따르면 2016년 오페라를 관람한 관객은 한 해 동안 총 41만9664명이었다. 같은 기간 뮤지컬 관람객 수(1247만2150명)의 약 3%에 불과하다. 공연 건수도 1095회로 4만 7074회를 기록한 뮤지컬과 비교하기 어렵다.

반면 티켓값은 무대 예술 중 비싸다. 오페라의 평균 티켓 가격은 3만5778원으로 가장 저렴한 국악(1만2476원)보다 3배 가까이 비싸다. 뮤지컬의 평균 티켓가격은 2만5031원이다. 유료 관객 비중은 오히려 낮아 뮤지컬 60.3%의 절반인 36.5%로 조사됐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오페라계에도 불똥이 튀었다. 오페라 제작비용의 대부분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기업 협찬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구매 비중이 제법 컸던 기업과 관공서의 티켓 구매가 끊기면서 객석의 절반을 채우지 못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외연 성장했지만 여전히 높은 ‘문턱’


▎1948년 명동 시공관(현재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른 오페라 [춘희]의 한 장면. 한국 오페라의 효시로 꼽힌다.
이 같은 부작용은 처음부터 예고돼 있었다. 당초 정부는 김영란법이 티켓 가격을 낮추는 데 공연장 문턱을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공연계에서는 “현장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비판했다. 이소영 대한민국오페라단연합회 수석 부이사장(솔오페라단 단장)은 “한 사람이 하는 독창회와 300~400명이 투입되는 오페라의 제작비용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면서 “현실적 문제를 외면하다 보니 공연장은 텅 비고, 수준 높은 공연을 대중에게 선보일 기회는 더 적어졌다”고 지적했다.

공연장의 문턱을 낮추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기본적인 제작비용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오페라 제작비는 수억에서 수십억 원, 많게는 100억원이 넘는 경우도 있다. 2003년에 잠실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공연된 [라 보엠]의 경우 제작비만 30억원이 넘게 들어 화제가 됐었다. 오는 11월 한·독 수교 135주년을 기념해 국내에서 처음 제작되는 바그너 오페라 [리벨룽겐의 반지] 4부작은 12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메가톤급 공연이다.

한국의 오페라 환경은 제작비가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오페라 극장이 대중화돼 있는 유럽의 경우 오페라 극장에 합창단, 발레단, 오케스트라가 소속돼 있어서 따로 섭외할 필요가 없지만, 국내에선 공연을 할 때마다 이들을 섭외해야 한다. 기획과 출연진·협찬사 섭외, 마케팅 등 제작을 총괄하는 건 규모가 작은 민간 오페라단의 몫이다. 한 민간 오페라단 관계자는 “객석을 모두 채워도 제작비의 30%도 건지지 못한다”고 말했다.


▎막대한 제작비와 최장기 공연기간 등 역대 기록을 모두 갈아치운 2001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뮤지컬 전성시대를 열었다.
막대한 비용과 수개월에 걸친 리허설 등 피땀 어린 노력 끝에 무대에 올린 공연의 생명은 단 며칠에 불과하다. 아무리 좋은 공연도 일주일을 넘기지 않는다. 3~6개월에 걸쳐 공연하는 뮤지컬, 연극과 비교할 때 오페라는 적자가 불가피한 구조다.

투자자들의 관심은 오페라보다 수익이 나는 뮤지컬로 집중된다. 문제는 수익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민간 투자자보다 정부와 지자체 등 공공 투자자들도 대중적 인기를 따라간다는 점이다. 2001년에 제작돼 국내에 블록버스터 뮤지컬 시대를 연 [오페라의 유령]은 7개월간의 장기 공연을 통해 제작비 110억원을 빼고도 80억원이 넘는 수익을 냈다. 당시 국내 뮤지컬 시장 규모는 연매출 기준 140억원에 불과했다.

[오페라의 유령]이 흥행한 뒤 민간과 공익 펀드의 뮤지컬 투자가 급증했다. 2006년에 조성된 ‘모태펀드’는 2010년까지 7810억원의 투자금이 모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1700억 원, 영상진흥위원회가 917억원을 출자했다. 이 투자금은 뮤지컬 [삼총사] [지킬앤하이드] [오페라의 유령] 등 83개의 뮤지컬과 영화, 게임, 드라마 등의 콘텐트 제작에 사용됐다. “오페라는 기악과 성악, 작곡, 무대연출 등 모든 음악적 요소가 들어 있는 종합적인 기초 예술이다. 대중성과 상업성이 부족해도 공공 부문의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 등 공공의 관심이 지나치다 싶을 만큼 한류 등 상업적인 대중문화에 치중돼 있다. 기초가 약한 문화 예술은 오래 가지 못한다.” 정찬희 대한민국오페라연합회 이사장의 말이다.

정책과 인프라의 열악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성악가들의 기량은 세계 최고로 꼽힌다. 세계 3대 음악대회로 꼽히는 벨기에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소프라노 홍혜란과 황수미가 각각 2011년과 2014년에 우승을 차지했다. 2010년에는 이 콩쿠르의 결선 진출자 12명 중 5명이 한국인이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등 다른 유명 콩쿠르에서도 한국인 음악가의 활약은 두드러진다. 오페라계에선 유럽의 국립·민간 오페라극장에서 활약 중인 한국인 음악가들이 1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 많은 콩쿠르 입상자는 모두 어디로 갔나


▎2000년대 초에는 블록버스터형 무대 예술의 전성기였다. 2003년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공연된 [투란도트]는 무대 길이 150m에 달하는 초대형 오페라로 관심을 모았다.
2011년 벨기에에선 국제 음악 대회에서 한국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현상을 두고 ‘한국 미스터리’라고 부르기도 했다. 당시 이 수수께끼를 풀고자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벨기에 공영방송 PD이자 음악영화 감독인 티에리 로로는 당시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국인 음악가들의 활약이 마치 ‘산사태’가 난 것처럼 갑자기 두드러졌다”고 했다. 그가 세계 유명 콩쿠르 55개의 수상자 국적을 조사한 결과 1990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인 378명이 콩쿠르 결선에 진출했고, 우승자가 60명에 달했다.

궁금증은 여전히 남는다. 그 많은 콩쿠르 수상자들은 보두 어디로 간 걸까?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배출됐지만 유독 오페라 부문에선 세계에 자랑할 만한 순수 창작 오페라가 드문 걸까? 정찬희 오페라단연합회 이사장은 “대회 입상을 목표로 한 개인 기량에 교육의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어려서부터 부모의 열정적인 노력 아래에서 기량을 갈고 닦은 한국인 음악인들의 수준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동양인에겐 낯선 서양 음악의 정서를 자연스럽게 해석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평소 죽어라 연습했던 작품이 아닌 새 악보를 주면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한 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라 트라비아타]에서 기생 역할을 하는 여주인공 비올레타역 오디션에서 있었던 일이다. 배역을 제대로 소화하려면 천박한 여인인 비올레타의 캐릭터에 맞게 표정과 몸짓, 노래를 해야 하는데 고운 목소리와 예쁜 모습을 보이려고 애쓴 한국인 가수가 있었다. 목소리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작품을 전혀 해석하지 못한 것이다.”

세계적 수준의 창작 오페라를 만들어내기에 역부족인 교육 시스템의 한계도 지적된다. 한 민간 오페라단 관계자는 “각본을 쓰는 사람과 곡을 만드는 사람의 해석이 달라 작품의 감동이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오페라극장을 중심으로 제작과 공연 전 과정이 일관성 있게 진행되는 미국과 유럽 등 오페라 선진국에서 자리 잡은 시스템을 하루빨리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페라시스템은 오페라하우스를 중심으로 오페라의 기획, 예산, 캐스팅, 그리고 상영까지 한꺼번에 이뤄지는 체계적 시스템을 말한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런던의 로열 오페라하우스 등이 예다.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국립오페라단을 중심으로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국내 창작 오페라 소재는 고전의 주인공이나 역사적 인물에서 좀체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의 창작오페라 갈라쇼의 한 장면.


'심청' '안중근' 소재 한계 못 벗는 창작 오페라


▎대한민국오페라단연합회를 이끄는 정찬희 이사장. 오페라단연합회는 한국 오페라 7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공연을 통해 대중화를 꾀하고 있다. / 사진:오페라단연합회
소재의 다양성도 부족하다. 한국의 창작 오페라는 한국 오페라의 역사만큼 오래됐다. 한국 최초의 창작 오페라는 1950년 현제명이 작곡한 [춘향전]이다. 이후 [왕자호동](1954), [원효대사](정일남, 1971) 등 민간 차원의 오페라 창작이 드물게 이뤄졌다. 1970년대 장충동 국립극장의 개관으로 국립오페라단에 의해 본격적인 창작 오페라 제작이 시작됐다.

하지만 1998년 IMF 외환위기로 독립 법인화한 국립오페라단이 재정적 안정을 꾀하고, 민간 오페라단의 창작 활동이 침체되면서 창작 열기도 한풀 꺾였다. 물론 창작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국립오페라단 중심에서 지방의 오페라 공연이 활발해지면서 소규모 오페라 공연이 눈에 띄게 늘었다. 그러나 매머드급 야외 오페라 [투란도트]를 시작으로 대형 오페라 붐이 일면서 수익성을 강조한 나머지 창작 오페라에 대한 관심은 더 멀어졌다.

전문가들은 대형 기획에 몰두할 게 아니라 소재의 다양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국내 창작 오페라 소재는 대부분 [춘향전] [심청전] [옹고집전] 등 고대 소설이거나 논개·호동왕자·황진이 등 역사 인물, 안중근·김구·안창호 등 애국지사의 영웅적 스토리에 맞춰져 있다. 한국오페라70주년기념사업회 추진위원장인 장수동 연출가는 지난 1월 장정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주최한 ‘한국오페라 70년의 오늘과 내일’ 토론회에서 “고대 희랍극이나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여전히 세계인들에게 주목받는 것은 작품의 완성도 외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뚜렷한 주제의식과 보편적 인간의 삶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라며 “‘한국적인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라는 자주적 주장도 좋지만 소재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재해석 능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 오페라 70년을 맞아 오페라계에선 문턱을 낮추려는 실험적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군살을 빼서 누구나 부담 없이 극장을 찾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지난 4월 5일부터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마농]은 공연을 시작하기 전 마정화 드라마트루기(dramaturgy)가 무대에 올라 10분가량 작품을 소개하고 주요 아리아 등을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관객의 이해를 도와 좀 더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난 4월 12~13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오페라 70주년 기념 그랜드 오페라 갈라 콘서트에는 국내 정상급 가수 등 40명이 출연해 다양한 형태의 오페라를 관객에게 선보이며 대중화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틀에 걸친 공연에서 국내 첫 오페라 공연으로 기록된 [라 트라비아타]를 비롯해 비제의 [카르멘], 푸치니의 [라 보엠] 등 외국 유명 오페라와 이영조의 [처용] 등 국내 창작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의 오페라를 선보였다. 대한민국오페라단연합회가 주최한 이번 공연의 예술총감독을 맡은 이소영 오페라단연합회 수석 부이사장은 “지난 70년간 이뤄온 비약적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를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오페라 대중화와 함께 많은 음악인을 배출한 세계 중심 국가로서 위상을 만들어나가려는 염원을 담았다”고 말했다.

오페라 대중화 노력 ‘더 작고, 더 재미있게’


▎지방에서 처음 문을 연 오페라 전용극장인 대구오페라하우스 전경. 2003년 7월에 개관해 지방 오페라 활성화의 견인차 역할을 해오고 있다.
4월 27일부터 5월27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제9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는 정통 오페라를 우리 정서에 맞게 재해석한 [썸타는 박사장 길들이기]를 선보인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우리말로 번안하고, 배경을 현대로 옮긴 작품이다. 구전동화를 모태로 판소리를 접목한 [흥부와 놀부]도 새로운 실험이다. 4월 26~29일에는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의 배경을 중국이 아닌 당인리 발전소로 각색한 작품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오페라페스티벌에는 국립오페라단과 대한민국오페라단연합회, 민간오페라단 등 6개 단체가 참여한다.

소극장 오페라의 저변도 확대되고 있다. 1999년 한국 최초의 오페라축제인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가 개최된 이후 20년 가까이 100여 편의 창작 오페라 등이 소극장 무대에 올랐다. 소극장오페라는 오페라전용극장이나 1000석 이상의 대극장이 아닌 200~600석의 소극장 공연에 맞게 제작되는데, 제작비용이나 관객 모집에 유리하고 소재가 다양해 오페라 대중화의 한 가지 방편으로 주목받는다.

소극장 오페라는 실험적인 공연을 기획하거나 신인 예술가들에게 무대 경험을 제공해 재능 있는 신인 예술가를 육성하고 발탁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는 오페라의 작품성을 향상시켜 오페라계 발전의 토대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소극장오페라축제에 대한 정부의 공연예술지원사업 지원금 규모는 3000만~400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공연장 대관료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한 민간오페라단의 연출가는 “20년 가까이 이어져온 소극장오페라운동의 역사와 중요성, 가치를 감안할 때 소극장오페라축제에 대한 정부와 민간 기업 등 절대적 후원자들의 관심이 너무 적다”고 아쉬워했다.

이석렬 클래식 평론가는 “오페라 업계에서 어렵다는 말이 나온 지는 오래”라며 “번안 오페라 등을 통해서 활로를 개척하려고 하는데 되려 원작이 가진 아름다운 선율을 놓치거나 어색해질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수길 전 국립오페라단 단장(한양대 명예교수)은 “지휘자와 연출가, 스탭진, 주요 배역에 외국인 음악가들을 초청하는 사례가 많은데 티켓 판매를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하루 빨리 시정되어야 한다”며 “외국인 음악가 못지 않은 기량을 갖춘 국내 음악인들을 등용해 무대에 오를 기회가 더 많이 주어져야 한국 오페라의 수준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오페라계에도 영화처럼 쿼트제를 도입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쿼트제가 한국영화 부흥의 계기를 마련했던 것처럼 적자일 수밖에 없는 창작 오페라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김명곤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은 ‘공연 스테이지 쿼터제도’ 도입계획을 밝혔다가 논쟁 끝에 좌초된 적이 있다. 스테이지 쿼터제는 창작 뮤지컬에 우선권을 부여해 무대에 올릴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추진됐다. 그러나 대형 뮤지컬 기획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빛을 보지 못했다. 탁계석 음악평론가는 “오페라에 쿼터제를 도입하면 작품 선별 수준이 높아지고 우수 작품의 유통이 활발해지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1805호 (20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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