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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 특집 | SWOT 분석] 북·미 두 정상의 협상방식: 진정한 승자는 누구? 

극과 극은 통할까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트럼프, 감각 의존하는 즉흥적 성격 vs 김정은, 뚝심으로 무장한 저돌적 스타일

기개와 눈높이에선 김정은이 트럼프보다 한 수 위 입증…쿠바 미사일 위기와 초현실적인 비즈니스 거래가 트럼프 사고의 핵심


▎6월 12일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산책 중인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 사진:연합뉴스
25년간 누적된 북핵과 동북아 국제정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싱가포르 회담은 정상회담의 족보에서 미국 대통령이 완패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높은 기대 그러나 낮은 성과(high expectation, low fruit)’ 회담의 대표적 사례로서 미국 외교학계에서 연구 주제로 다루어질 것이다. 미국 정상이 역대 회담에서 이번처럼 입장을 후퇴하거나 일구이언(一口二言)의 자세를 보인 전례는 매우 드물다. 회담 전후의 발언록을 비교하는 것은 외교 회담에서 무의미한 작업이다. 역사에 기록으로 남는 것은 정상회담 합의문(Joint agreement)뿐이고 회담 중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정상이나 국무장관들의 비망록이나 회고록에 소개될 뿐이다.

비즈니스 거래보다 어려운 것이 핵무기 거래라는 점을 절감할 수밖에 없다. 70년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북·미 관계를 형성하기로 합의한 자체는 초현실적인 SF 영화 장면 못지않았으나 콘텐트는 기대 이하였다. 특히 회담장의 불이 꺼진 후에 미국 대통령이 홀로 남아 성과와 의미를 장황하게 부연 설명하는 장면은 졸전을 펼친 월드컵 축구 대표팀 감독의 변명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트럼프가 과연 북한 문제 혹은 북핵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였는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비핵화 빅딜 거래에서 본질적인 핵폐기보다는 한·미 연합훈련의 축소와 주한미군의 위상 등이 거론되는 것은 축구 경기에서 골을 넣기보다는 외곽에서 공을 돌리다가 승부차기에서 패배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세기적인 외교참사나 졸전으로 평가되는 북·미 정상회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핵전쟁 인식과 지난 40년간 임기응변의 변칙적인 비즈니스 거래에 대한 해독이 필수적이다. 그가 백악관에서 보낸 지난 17개월간의 통치 행태만을 가지고는 미국 주류 언론의 비난을 받은 북한과의 비핵화 거래를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벌인 현란한 핵 포기 뮤지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수적이다.

하나는 카지노 사업이고, 다른 하나는 1959년 13세에 입교한 뉴욕군사학교 시절의 경험이다. 트럼프는 ‘거칠고 반항적인’ 행동을 바로잡으려는 부모의 뜻에 따라 고등학교 과정을 이 학교에서 마쳤다고 밝혔다. 그는 이 학교생활에 대해 “항상 군대에 있던 느낌이었다”면서 “군대에 가는 많은 청년보다 더 많은 군사훈련을 시켰다”고 말했다.

트럼프를 짓누른 전쟁에 대한 실존적 공포


▎뉴욕군사학교 시절의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군사학교 피난훈련은 트럼프에게 핵전쟁에 대한 공포감을 심어 줬을 수 있다.
3학년 때인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에 따른 핵전쟁의 공포를 지켜보며 징병의 두려움을 경험했다. 군사학교에서 대피 경보 발령에 따라 지하 방공호로 피란 가는 훈련을 주기적으로 시행했다. 소련이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하지 않을 경우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는 케네디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에 가슴을 조이며 귀를 기울였다. 전쟁이 발발하면 징병될 것이라는 루머가 학생들을 압박했다. 사춘기 시절인 10대 중반에 경험한 군사학교에서의 피란 훈련은 트럼프에게 핵전쟁에 대한 공포감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전쟁은 두렵고 자신이 참전해야 하는 특수한 사건이라는 인식이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의 미·소 정상, 2017년엔 북·미 미사일 위기가 조성됐다.
트럼프는 군사학교 시절 한국전쟁 당시 만주 폭격을 주장한 맥아더 장군에게 푹 빠졌다. 1964년 맥아더 장군이 사망했을 때는 학생들이 조직한 조문단에 참여하기까지 했다. 맥아더 장군만이 위험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구세주라는 판단이었다. 트럼프에게 최대의 압박을 강조하는 맥아더 장군은 청소년 시절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는 대선 기간 중 맥아더를 연호했고 반대자들을 비판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4년부터 대학 학업과 발목 부상을 이유로 네 차례에 걸쳐 징병을 유예 받았다. 트럼프가 지난 3명의 전임 대통령이 전략적 인내라며 방치한 북핵을 군사적 옵션보다는 최대한의 압박으로 상대를 끌어내 막판에 용두사미식 타협을 시도한 이유에는 전쟁에 대한 실존적인 공포가 깔려 있다. 10대 뉴욕군사학교 시절 대피훈련으로 체험한 쿠바 미사일 전쟁위기와 40년간에 걸친 초현실적인 비즈니스 거래를 이해하지 않고는 김 위원장과의 비핵화 게임을 이해하는 로제타스톤(The Rosetta stone)을 찾기는 불가능하다. 1799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로제타마을에서 발견된 현무암 비문이 없었다면 이집트 상형문자는 해독되지 않았을 것이다.

카지노 사업은 고수익, 고위험(High returns, High risk) 거래다. 거래를 위한 거래, 돈보다는 거래를 즐긴다는 비즈니스맨 트럼프의 사업 성공의 하이라이트는 카지노 사업이다. 그는 도박에 대해 도덕적인 저항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이유는 도박에 대한 반대 의견이 위선적이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뉴욕증권거래소야 말로 세계 최대의 도박장이라고 생각했다. 뉴욕증권거래소가 보통 도박장과 구별되는 유일한 점은 도박사들이 푸른 줄무늬 양복을 입고 가죽 가방을 가지고 다닌다는 것뿐이라는 판단이다. 엄청난 자금이 거래되는 증권거래소라는 도박장이 법으로 허용되고 있다면 블랙잭, 룰렛 게임에 돈을 거는 것도 허용돼야 한다는 것이 트럼프의 지론이다.

카지노에 대한 인식은 그가 세상에 대해 평균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래서 향후 북한과의 비핵화 과정에서 전통적인 한·미 관계는 약화되고 북·미 간 평화 협정 등 관계 개선은 훈풍을 탈 것이라는 추론은 현실성이 높다. 그의 사고에 북한은 악, 남한은 선이라는 이분법적인 구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은 그의 취약한 국내 정치를 강화시켜 줄 수 있는 호재이고, 남한은 주한미군 주둔 및 연합훈련 축소를 통해 미국의 주머니에 달러를 채우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부자 나라일 뿐이다. 과거 트럼프 타워 사업으로 서울을 방문했던 경험도 판단에 한몫했을 것이다.

변칙과 임기응변의 화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뉴욕의 트럼프타워. 그는 육감을 믿고 투자한다.
과거 애틀랜틱시티에 카지노 건설과 힐튼호텔 그룹이 추진한 카지노 호텔을 인수했던 트럼프로서는 전 세계 3000여 명의 외신기자가 보도경쟁을 벌인 싱가포르 회담은 무조건 수지 맞는 사업이라고 계산했다. 초유의 정상회담은 성과와 상관없이 성사 자체만으로 스포트라이트(spotlight)를 받는 수익이 있는 사업이라는 판단이다. 카지노 사업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도 클린턴·부시·오바마 등 전임 대통령처럼 국무부에게 북핵을 맡겨 두고 주기적인 적당한 압박과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로 방치했을 것이다.

카지노는 가본 사람들이 또 가는 것처럼 카지노 사업은 거래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면 추진하기 어렵다. 카지노 사업은 속성상 제조업 기업가는 추진하기 어렵다. 특정 지역의 카지노 사업 허가를 받는 과정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예상 지역의 토지를 경기 불황을 틈타 저렴하게 구입해야 한다. 자신을 신뢰하고 거액의 자금을 대여해 줄 전주(錢主)와 은행을 확실하게 붙들고 있어야 한다. 공사는 최단기에 염가로 진행해야 한다. 지역 언론과 정치인을 활용해 홍보(PR)를 효과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결국 카지노 사업은 비즈니스 분야에서 종합예술 수준의 감각과 능력이 필요하다. 싱가포르 회담 전후 한국 카지노 업체인 GKL과 파라다이스의 주가가 강세다. 북한이 미국 측에 원산 카지노 사업 투자를 요청했다는 소식이 투자 심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아마 트럼프 대통령은 아들을 시켜 투자를 저울질할 것이다. 다만 트럼프는 과거 세계에서 둘째로 큰 호주 카지노 사업의 운영권을 맡은 최종 후보로 올랐으나 뉴욕에서 비행기로 24시간의 먼 거리에 있다는 이유로 입찰을 포기했다.

트럼프가 최초로 카지노 사업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한 때는 1975년이었다. 그는 애틀랜틱시티에 카지노를 건설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10년 만인 1984년 5월 마침내 완공을 했다. 동업자인 홀리데이그룹의 이사진들이 최종 사업 승인을 앞두고 현장 방문이 예정돼 있었다. 공사가 예상과 달리 부진함에 따라 트럼프는 현장을 방문할 이사진을 현혹시키기 위해 일주일 전 2에이커에 달하는 공사 현장의 인근에 있는 불도저와 덤프트럭을 모두 동원했다. 이사진들에게 공사가 신속하게 진행된다는 것을 보여주기로 결정하고 중장비를 무조건 작동시켰다. 공사 현장의 한 곳에서 흙을 파다가 다른 곳에다 메우는 일도 불사했다. 이사진이 이러한 현장을 보고 의심하기보다는 신기하다는 인상을 받게 함으로써 홀리데이그룹의 투자는 승인됐다. 변칙과 임기응변의 전형적인 사례다.

트럼프는 1984년 호텔 재벌 힐튼사가 애틀랜틱시티에 짓기 시작한 대형 카지노호텔을 인수하는 무모해 보이는 상상을 했다. 그는 도저히 실현될 것 같지 않은 카지노 호텔을 1년 만에 3억2000만 달러의 거액을 빌려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힐튼사가 공사는 시작했지만 시 이사회의 카지노 허가를 받는 데 실패해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빈틈을 노렸다. 그는 카지노 허가를 받아냈고 드디어 1986년 한 해에만 2억 26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는 거래를 성사시키는 방식에서 목표를 높게 잡고 단계적으로 올라가는 방식을 택했다. 스마트함과 브로커로서의 두 가지 재능이 거래 성공의 핵심 요소다. 그의 말대로 IQ가 170인 수재라도 브로커 본능이 없으면 성공적인 거래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간파했다.

트럼프는 성공이 자신의 육감을 믿고 과감하게 투자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고백했다. 트럼프는 거래 상대방과 소통하는 방식에서 탁월한 감각을 보였다. 힐튼의 소유주인 배런을 상대로 정확한 SWOT(강점, 약점, 기회 및 위협 요인)를 분석하는 한편 최고의 시점을 잡아 거래를 성공시켰다.

회담 깨기보다는 현실 수용하는 게 실속 있다!


▎6월 12일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트럼프 대통령은 자화자찬으로 일관했다. / 사진:스트레이츠타임스 홈페이지
그는 1975년 맨해튼에 있는 11층 건물을 사고 싶다고 제언했으나 소유주인 ㈜제네스코사는 실적이 없는 트럼프의 제언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는 만나서 인수 의사를 타진했으나 거절당한 후 수십 통의 편지를 보냈다. 결국 편지는 거래를 성사시키는 마중물이 됐다. 트럼프가 1차 회담 결렬을 선언한 후 김정은 위원장의 편지로 회담 재개를 선언한 것은 본인의 편지를 통한 소통이 성공했던 경험 때문일 것이다. 나중에 그 건물 위치에 건설된 것이 바로 ‘환상을 판다’는 트럼프 타워였다. 일찍이 가상현실(VR)을 부동산 사업에 도입한 것이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 시나리오를 내세워 투자를 유도하는 방식은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후 이뤄진 기자회견의 자화자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김 위원장과의 단독회담 후 환상적(fantastic)이라고 표현한 것은 결국 부족한 협상 결과지만 미래에 대박이 날 수 있다는 가상현실적인 사고의 표현이다. 자기 확신과 평생 몸에 밴 위장전술(camouflage)의 결과다.

물론 트럼프의 카지노 사업이 항상 성공했던 것만은 아니다. 1991년 도널드 트럼프는 불황으로 대출금 상환이 어려워지자 파산 위기를 겪는다. 자신의 세 번째 카지노인 트럼프 타지마할 건설을 위해 약 10억 달러의 자금을 정크본드 위주로 조달했으나 추가 대출로도 채무 증가를 견디지 못 했다. 트럼프는 기업 파산을 신청했으며 본인도 개인 파산 직전에 이르렀다. 결국 부동산을 매각해 채무를 해결했다.

6·12 북·미 합의문은 회담 전 기독교 신자가 항상 할렐루야를 외치다가 정작 크리스마스 날에 입을 다문 것과 같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 문구가 정작 합의문에서 증발한 싱가포르 회담은 채무 증가를 견디지 못해 파산으로 문제를 해결했던 방식과 유사하다. 시간이 부족해서 CVID를 포함시키지 못 했다는 그의 포커페이스적인 안면 바꾸기 발언은 회담을 깨기보다는 현실을 수용하는 것이 보다 실속 있다는 판단이었다. 사실 케네디 대통령의 쿠바 미사일 위기 대응처럼 벼랑끝 전술로 일전을 불사르는 결기가 없다면 공산주의와의 협상은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비즈니스맨 정치인이 간과한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유년기 성장 환경은 부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는 매우 달랐다. 김정일은 김평일·김영일 등 이복동생 및 작은아버지 김영주 등과 후계 자리를 두고 치열한 권력투쟁을 겪었고 항상 김일성의 눈에 들어야만 하는 강박관념 속에서 성장했다. 김정일은 6세 때인 1947년 한 살 어린 남동생이 익사했고 2년 뒤인 1949년에는 생모 김정숙이 사망했다. 성년이 된 후에는 이복동생과 계모 김성애의 질시와 견제를 무릅쓰고 독자 생존을 모색했다. 항상 신중함과 경계심으로 무장하고 면종복배의 노회한 권력층을 당근과 채찍으로 치밀하게 관리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어려서부터 거칠 것이 없었고 김정일의 절대적인 사랑과 제왕학을 전수받았다. 잠재적 경쟁자였던 이복형 김정남은 이미 10대 중반 이후 평양에 6개월 이상 거주하지 않았다.

태생적으로 대담하고, 지는 걸 싫어하는 다혈질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전속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은이 ‘왕자병’ 의식이 강했다고 밝혔다.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은이 어려서부터 형 김정철과 달리 승부욕이 강했고 ‘왕자병’ 의식이 심했다고 증언했다. 농구를 좋아했던 김정은은 종종 농구선수들을 관저로 불러 형 김정철과 편을 나눠 농구를 하곤 했는데, 경기가 끝나면 자기 편 선수들에게 반말로 잘못을 지적했다고 한다. “농구 시합이 끝나면 형 정철이 하는 말은 딱 세 마디 ‘고생했어’ ‘수고했어’ ‘해산’ 그것뿐이에요. 반면 정은이 쪽은 선수들의 잘못을 지적해요. 모두 스물두세 살…. 나이가 많은 선수들에게 ‘그렇게 하니 득점으로 이어지지 않는 거야, 알겠냐!’ 하면서 무지하게 큰소리를 내요.” 정철과 정은은 스위스 유학 중에도 북한의 경축일, 특히 김정일 생일(2월 16일),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4월 15일), 북한 정권수립일(9월 9일), 노동당창건일(10월 10일) 등 중요한 기념일이 있으면 꼭 귀국했다. 일단 귀국하면 2개월가량 평양에 머물렀다.

김정일은 둘째 아들인 김정철이 어릴 때부터 여자아이 같다는 이유로 셋째인 김정은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김정일은 김정은에게는 매년 성대한 생일잔치를 열어줬지만 김정철에겐 생일이 막내딸 김여정의 생일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같은 날 몰아서 공동 생일상을 차려줬다. 김정은은 태생적으로 대담하고 지는 것을 싫어하는 다혈질적 성격이었다. 스위스 유학 시절 포켓몬을 본다고 동급생들이 놀리자 바로 책을 집어 던지고 동급생들과 싸우려고 해서 주변 친구들이 말리자 겨우 진정했다.

한때 김정일 측근들은 김정철·김정은 형제를 각각 ‘큰 대장 동지’와 ‘작은 대장 동지’로 불렀다. 하지만 김정은은 열 살 무렵 이모 고용숙이 자신을 ‘작은 대장’으로 부르는 것을 듣고 “왜 내가 작은 대장이냐”고 따졌고, 이후 김정은의 호칭은 ‘작은’이란 수식어가 빠진 ‘대장 동지’ 또는 ‘김대장 동지’가 됐다. 또한 어릴 적 화가 나면 구슬을 형의 얼굴에 던지고 60세가 넘은 김일성의 부관을 발로 툭툭 차며 ‘땅딸보’라 놀리는 등 버릇없고 거친 면모도 있었다.

김정은의 스위스 유학시절 학교 성적은 그저 그런 수준이었지만 판단력이 빠르고 머리 회전은 매우 좋은 것으로 평가됐다. 필자는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시절 김정은이 친인척과 스위스 학교 동급생들과 나눈 대화를 복기해 이를 근거로 지능지수(IQ)를 산출했다. “김정은은 상대방과 대화할 때 질문을 빠르게 이해하고 적절하게 대답했으며 현안에 대한 이해력이 높았다. 본인 주장에 대한 적절한 논리를 제시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감각에 의존하는 즉흥적 성격의 트럼프와 뚝심으로 무장한 저돌적 스타일인 김정은의 협상 방식은 극과 극이었다.

양측의 캐릭터와 야심(?)과 목표, 거래 기술 및 결과 등의 세 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싱가포르 회담을 평가해 보자. 진검 승부를 마다하지 않은 양 지도자의 캐릭터를 SWOT 측면에서 분석하면 우선 양측 캐릭터의 강점은 승부자적 기질이 강하다는 점이다. 특히 상대가 자신의 호의를 거절하고 싸움을 걸어올 경우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힐튼호텔 카지노 쟁탈 과정에서 이견이 있는 금액을 조정할 때 합의를 시도했으나 상대가 500만 달러의 소송을 제기하자 최강 변호사를 동원하여 승소했다. 상대가 협상 과정에서 압박을 가하면 강하게 되치기를 한다. 김계관과 최선희의 대미 비난을 회담 취소 편지 발송으로 제압했다.

핵심이익에서 후퇴하지 않는 원칙 고수에 목숨 걸어


▎북핵 실무 협상에 나선 성 김(왼쪽)과 최선희(왼쪽 셋째). 미국은 실무진 협상에서 수용 불가 사항은 정상회담에서도 어렵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 했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 역시 비핵화 과정에서 단계적·동시적 해법을 고수하는 뚝심을 보였다. 김 위원장은 베이징과 다롄에서 개최된 두 차례의 북·중 정상회담은 물론이고 폼페이오의 두 차례 방북과 김영철의 백악관 방문 등에서도 시종일관 불변의 입장을 보였다. 특히 볼턴과 폼페이오의 지속적인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CVID)라는 칼에 대해 김영철을 내세워 완전한 체제보장(CVIG)이라는 방패로 예측불허의 경기를 벌였다.

요컨대, 불가한 것은 불가하다는 기본 입장을 철저하게 견지함으로써 초강대국 미국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북한 외교 70년의 노하우를 축적한 외무성의 북미국 라인들은 태영호 전 영국공사가 언급한 바와 같이 핵심이익에서 후퇴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하는 데 목숨을 건다.

핵심이익과 주변이익의 구분 기준은 체제 존립에 마이너스 요인 여부다. 서양인들이 북한 내부를 휘젓고 다니는 전방위적 사찰 검증은 전쟁을 불사하더라도 절대 불가다. 핵심 이익의 손상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시진핑 주석과의 두 차례 정상회담에서 단계적·동시적 비핵화를 확인했다. 이 원칙이 트럼프와의 회담에서 흔들리면 김정은은 물론 시진핑의 체면이 손상된다. 중국의 현대판 황제와 평양의 수령이 합의한 사항의 중차대한 의미를 미국이 사전에 간파하지 못했다면 외교 실패다.

폼페이오 장관이 한·일 양국을 순방하며 싱가포르회담 이후 비핵화의 시한과 의미를 명확히 정리하겠다며 후속협상을 주목하라고 언급했으나 만시지탄의 발언이다, 오히려 CVID에 의한 비핵화가 장기전에 들어섰다고 이해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다. 미국 프린스턴대 역사학 교수이자 CNN 정치 전문 분석가인 줄리언 젤라이저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명심해야 할 4가지를 제시했는데 우선적인 것이 ‘인내(Patience)’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긴장을 한 번의 회담으로 해소하고 최종 합의를 이끌어내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과거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군축협상을 예로 들었다. 이들은 1985~87년 세 차례 만났는데 인내심을 잃지 않은 결과 세 번째 회담에서 협상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협상에서 충실하게 인내심을 발휘했다. 향후 2·3차 회담으로 비핵화를 달성한다면 트럼프의 선택은 옳을 것이다. 다만 소련의 개혁과 개방을 이끈 고르바초프라는 인간의 탈을 쓴 마지막 낭만적 공산주의와 평양 3대 세습 지도자를 동급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김 위원장의 다른 강점은 시간 싸움에서 평양이 워싱턴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이다. 기껏해야 4년 혹은 8년의 임기제 지도자와 종신 독재자 간의 협상은 깨지 않을 심산이라면 결국은 장기전이 가능한 당사자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카지노 사업에서 발휘한 최소 10년의 지구전에 의한 빅딜 전략이 시간 제약으로 싱가포르회담에서는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했다. 트럼프의 표현대로 시간이 없었다는 것은 비즈니스 거래의 최대 약점이다. 카지노에 시계와 거울 및 창문이 없다는 것은 시간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신호다. 승자와 패자가 결정돼야만 게임이 종료된다는 것이다.

특히 상대방에게 중간선거가 임박해 국내정치의 위협으로부터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점은 트럼프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협상할 때 절박해(desperate) 하면 상대방이 피 냄새를 맡고 결국 죽게 된다는 트럼프의 표현대로 역설적으로 4개월 앞으로 다가온 중간선거가 본인에게 족쇄로 작용했다. 특히 러시아 게이트 관련 증인들을 단계적으로 기소하는 뮬러 특검의 동태가 예사롭지 않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뮬러 특검의 칼날이 날카로워지고 있다는 사실은 거래 상대방인 김정은에게는 행운이었다. 트럼프가 중간선거 패배로 힘이 빠질 경우 탄핵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의 국내정치는 비핵화 협상에서 약점(weakness)이나 위협(threat) 요인이 아닐 수 없다.

변칙적인 협상 구도를 통한 실패 만회


▎중국 다롄에서 만난 김정은과 시진핑.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 두 사람의 만남의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김정은의 경우 회담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해 싱가포르회담 이전으로 회귀하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제재와 압박이 지속되는 상황은 북한에 속 빈 강정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평양은 김정은의 싱가포르회담 막전막후를 수십 장의 사진과 함께 노동신문에 대서특필을 하고 있다. 완벽한 승리를 자축하며 미국 대통령이 국무위원장을 칭송했다고 선전하고 있다. 위대한 지도자의 위대한 성과라고 인민들은 감격하고 제재와 압박이 해소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남북은 물론 G2 국가의 지도자와 만났으니 실속을 거둬야 한다는 점은 김정은에게 약점 요인이었다. 김 위원장은 사전에 성과에 만족하지 못할 경우 트럼프가 회담장을 떠날 것을 가장 걱정했으나 기우에 불과했다. 회담 당일 새벽 김영철·폼페이오 전격회담에서 미국이 북한의 입장을 전적으로 수용함에 따라 단독회담은 예정시간보다 일찍 싱겁게 끝이 났다. 1분이면 상대방의 의도를 알 수 있다는 트럼프의 발언은 공염불에 불과했다. 정상회담 사전에 모든 핵심사항이 정리되지 않고 덜컥 정상들이 회동한 싱가포르회담은 당일 최고 정보 참모들이 새벽에 임기응변식 1시간30분 동안의 전격 만남에서 결론이 나버렸다.

트럼프가 합의문 없이 회담장을 떠나기에는 정의용 특사가 가져온 정상회담의 초청장의 즉각 접수 이후 공수표가 너무 많았다. 미국은 최선희·성 김 판문점 회담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회담 연기 가능성을 내세워 균형을 맞추는 넌 제로섬(non-zero sum)게임을 진행했어야 했다. 트럼프는 저서 [거래의 기술] 원칙대로 합의문 없이 싱가포르를 떠났어야 했다. 향후 워싱턴 및 평양 등 2·3차 회담을 언급했지만 ‘첫 거래’가 전체 협상의 구도를 확정하는 것은 상식이다. 이 거래 패턴을 트럼프가 깨기는 어렵다. 트럼프는 오히려 동북아 국제정치의 안전장치인 주한미군의 철수를 통해 국방비도 절감하고 북한 비핵화를 유도한다는 변칙적인 협상 구도를 통해 자신의 협상 실패 지적을 만회하고자 또 다른 위험한 거래를 시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

북·미 양측의 야심이나 목표는 애초부터 동상이몽이었다. 트럼프의 당초 목표는 CVID를 단번에(one shot deal) 실행하는 것이었다. 특히 11월 중간선거 전에 사찰과 검증 과정을 거쳐 기존에 제조된 과거 핵무기의 최소 50% 이상을 테네시주의 오크리지 연구소 창고로 가져오면 절반의 성공 시나리오다. 이동 과정에서 CNN을 동원한 라이브 중계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과정은 유능한 연출가들이 기획 실행할 것이다. 한마디로 ‘손에 잡히는 비핵화’를 시연하는 효과는 트럼프를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김정은의 복안은 평양-워싱턴 간의 거리만큼이나 트럼프의 의도와는 거리가 있었다. 4500㎞를 왕복할 전용기가 여의치 않아 비록 이웃 나라의 비행기를 임대로 탑승할망정 협상 목표만큼은 미국 못지않았다. 아니 기개와 눈높이는 트럼프 머리 위에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 시진핑 주석 및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이고 푸틴, 아베, 심지어 중동의 시리아 대통령 알아사드까지 김정은과의 정상회담 신청이 줄을 잇고 있다. 역시 원인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만든 핵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평양이 망각할 것이라고 워싱턴이 판단한다면 어불성설이다.

역시 평양의 목표는 핵군축 협상이다. 비핵화의 수준은 아무리 높이 책정해도 보유 핵무기와 핵물질의 50% 정도가 마지노선이다. CVID란 용어는 평양에서 사용 불가 단어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까지 2년 동안에 비핵화를 완료하라는 요구는 협상 대상이 아님을 이미 김영철-폼페이오, 최선희-성김 라인을 통해 귀가 아프도록 주지시켰다. 실무진 협상에서 수용 불가 사항은 정상회담 테이블에서도 어렵다는 사실을 미국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북한의 협상전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한 것이다.

평양으로 달려갈 각국 지도자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전망대에 올라 시내의 야경을 둘러보는 김정은 위원장 일행. / 사진:연합뉴스
어쨌든 3000여 명의 전 세계 기자에게 보도용 사진은 충분히 제공했고 향후 회담이 2차, 3차로 진행될 수 있다고 합의했으니 트럼프는 불완전한 절반의 승리는 거뒀다. 그의 회담 성공의 기준은 전문가들과는 매우 상이하다. 국내정치의 뮬러 특검을 덮을 수 년치 스토리텔링을 비축했으니 향후 홍보 마케팅이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백악관이 미국 의회를 설득하는 작업은 불협화음으로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클린턴, 오바마 전임 정부의 대북협상을 비판했던 만큼 본인들의 낮은 성적표로 민주당을 설득하기는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완전한 체제보장이라는 CVIG 용어를 통해 미국과 종전선언→평화협정→수교 등이 평양의 최종 로드맵이라는 점도 국제사회에 명확히 전달했으니 평양으로서는 ‘완전하고 불가역적이며 돌이킬 수 없는 승리’(CVIV, victory)다. 싱가포르회담 이후 상황은 급변했고 지난해 가을 이후 채택된 결의안 2375호 같은 원유 수입을 차단하는 제재는 미국의 제재 유지 불변 선언에도 불구하고 공허하다. 노련한 대장장이들은 쇠가 달았을 때 두드리는 시점(strike while the iron is hot)을 정확하게 포착한다. 이 시점을 놓치면 쇠는 원하는 모양이 형성되지 않는다.

싱가포르회담 이후 제재와 압박을 통한 비핵화는 일정 기간 작동되기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회담 직후 신속하게 제재 완화의 변죽을 울렸다. 가장 강력한 핵합의로 ‘Big Deal’이 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초기 전망과 기대감은 모호함으로 끝이 났다. 회담 전 강한 압박과 단어를 사용했지만 트럼프는 순식간에 목표치를 낮추고 이번 회담을 결국 상대를 알아가는 중간단계(the-get-to-know-you) 혹은 기나긴 비핵화의 과정(process)으로 활용했다. 특히 김정은과의 협상 전에 이란 핵합의(JCPO, 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서 탈퇴했지만 이란 핵 협정에도 미치지 못 하는 협상을 함으로써 트럼프로서는 모순된 협상 행태를 보였다.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명기한 ‘검증’ 단어조차 포함하지 않아 향후 비핵화 협상이 순조로울지 미지수다. 신고와 사찰 및 검증의 절차는 비핵화의 ABC다. 특히 앞으로 각국 지도자는 트럼프를 상대하기 위해 김정은의 협상 방식을 한 수 배우러 평양으로 달려갈 것이다. [트럼프 상대하기: 김정은의 비법] 이라는 책이 곧 출간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의 [거래의 기술]을 능가하는 베스트셀러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뉴욕타임스]의 표현대로 ‘통념적이지 않은(unconventional)’ 스트롱맨들이 역사의 물줄기를 급격히 미지의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격변의 시대다. 정신줄을 놓으면 물살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 남성욱 -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주리주립대학원에서 응용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 민주평통 사무처장, 한국북방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현대 북한의 식량난과 협동농장 개혁][북한의 IT 산업 발전전략과 강성대국 건설]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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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호 (2018.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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