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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연구] 脫원전 선언 1년, 전력 수급 현주소 

원전 대체할 ‘대체 에너지’가 없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에 전력수급 안정화 논쟁 재점화…‘경제성·친환경’ 두 마리 토끼 잡으려면 무조건적인 배제 안 돼

6월 15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월성 1호기 원자력발전소를 조기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2022년까지 연장하기로 했던 게 불과 3년 전이다. 새 원전 4기 건설도 백지화됐다.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이 본격적인 논쟁의 장에 오른 것이다. 안전성과 경제성을 두고 전문가들은 갑론을박을 벌인다. 하지만 국민의 궁금증은 보다 현실적이다. “이 삼복더위에 에어컨은 틀어도 되나?”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을 선언한 지 1년째,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으로 탈원전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원전 없이 안정적이고 친환경적인 전력 수급이 가능하냐를 두고 양 진영의 대립이 첨예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원전. 오른쪽 원자로 건물이 영구정지된 고리 1호기다
1982년생. 태어날 때 정해져 있던 설계수명은 30년. 오래된 부품을 바꿔 달고 10년의 수명이 추가됐다. 2022년까지 주어졌던 연장수명이 6년 만에 끝나고 말았다. ‘82년생 월성원전 1호기’는 그렇게 지난 6월 수명을 다하고 영구정지에 들어갔다.


▎지난해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결정을 내렸던 공론화위원회에 대해 문 대통령은 “사회적 숙의의 모범사례”라며 높이 평가했다. / 사진:정책브리핑 홈페이지
수명을 늘려준 것은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였다. 2015년 원안위 결정에 따라 노후설비 교체 등 안전성 보강에 5600억원이 들어갔다. 당시 원안위는 60년간 가동하는 해외 사례를 들며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장담했다.

그런데 3년 만에 결정이 뒤바뀌었다. 이번에는 안전성을 평가하는 원안위가 아니라 원전을 직접 운영하는 기업 한수원이 나섰다. 지난 6월 15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조기 폐쇄를 결정했다. 지방선거가 여당의 압승으로 끝난 직후였고, 고리 1호기 영구정지와 탈원전 선언 1주년을 사흘 앞둔 때였다. 이사회 개최는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시간, 장소도 공개되지 않았다.

한수원은 기업답게 ‘경제성’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후 안전성을 보강하는 과정에서 비용이 추가됐다”고 밝혔다. 월성 1호기에 대한 경제성 분석은 2015년 1월부터 올해까지 3년간 운영 결과를 토대로 했다. 이 분석에 따르면 월성 1호기의 발전 원가는 ㎾h당 120원인데 판매 단가는 60원이다. 발전소를 돌릴수록 적자가 커지니 하루빨리 중지하는 게 낫다는 것이 한수원의 판단이다.

이런 계산법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수명 연장을 검토했던 2009년과 계산법이 다르다는 지적이 나왔다. 2009년에 한수원은 월성 1호기 이용률을 85%로 계산했다. 이번에는 57.7%로 낮춰 잡았다. 이는 최근 3년간 평균 이용률인데, 여기에는 지난해 5월부터 예방점검을 위해 가동을 중단했던 기간이 포함돼 있다. 가동기간이 반년이 채 못 되는 지난해 월성 1호기 이용률은 40.6%였다. 이 수치 역시 고리 3호기(4.9%)나 신고리 1호기(5.8%)보다 월등히 높다. 조기 폐쇄 명분이 약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수원은 입장문을 내 “이용률만으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성, 안전성, 지역수용성 등 여러 분야에 관해 종합적으로 검토했다”고 밝혔다. 현재 가동하고 있는 원전 중 가장 오래돼 향후 이용률 전망이 불확실하고 강화된 안전기준을 만족하기 위해선 추가 설비투자가 필요할 수 있는 점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공론화 과정 생략하고 기존 결정 번복 논란


▎2022년까지 수명이 연장됐다가 3년 만에 경제성 부족을 이유로 조기 폐쇄 결정된 월성 1호기.
이런 설명에도 한수원의 결정을 이윤 추구가 목적인 기업의 순수한 입장에서 내린 결정으로 보는 이는 드물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 기조가 이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음은 일련의 흐름을 살펴볼 때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이 이뤄지기 넉 달 전에 산업통상자원부는 한수원에 공문을 보냈다.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보하면서 관련 사항에 대한 필요한 조치를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월성 1호기에 대해 ‘상반기 중 경제성, 안전성, 지역수용성 등을 고려, 계속 가동의 타당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폐쇄시기 등 결정’이란 내용이 들어 있다. ‘조기 폐쇄’라는 직접적인 용어를 쓰지 않았을 뿐 사실상 계속 가동 여부를 ‘재검토’하라는 의미와 다름없다.

1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면 좀 더 노골적이다. 지난해 6월 문재인 대통령은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현재 수명을 연장해 가동 중인 월성 1호기는 전력 수급 상황을 고려해 가급적 빨리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산업부가 탈원전 기조의 로드맵 아래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마련했고, 한수원이 마침표를 찍은 모양새가 됐다.

이를 두고 위법적이란 비판이 제기됐다. 보수적 성향의 변호사 단체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은 한수원 이사 11명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피고발인들이 법적 구속력이 없는 산업통상자원부의 탈원전 정책에 관한 협조 요청 공문을 내세워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 결정에 찬성한 것은 공공기관 운영법상의 자율적 운영 원칙을 어기고 회사의 주력사업을 포기하는 자해행위이자 막대한 손해를 가하는 업무상 배임행위”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정부 출범 전부터 예고돼 있었다. 고리 1호기 영구정지에 이은 월성 1호기 가동중지 결정이 뜻밖의 결과는 아니다. 다만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보여준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이유에 의구심이 남는다. 문 대통령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를 “숙의(熟議) 민주주의의 모범사례”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공론화위는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시민들이 참여해 오랜 토론 끝에 지난해 10월 20일 건설 재개를 권고했다. 공론화위가 건설 중단을 권고해 명분을 주리라 기대했던 정부와 탈핵 운동 진영의 아쉬움이 컸다. 정부는 공론화위 권고를 수용하면서 권고안에 포함돼 있던 ‘원전 비중 축소와 안전기준 강화’를 명분 삼아 곧바로 탈원전 기조의 에너지 전환 로드맵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선거 끝나자 경제성 명분 삼아 폐쇄 결정


▎지난해 6월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문 대통령은 탈원전 정책을 공식선언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전문가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에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은 ‘원하는’ 방향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만약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가 정부 뜻에 맞게 공사중단 결정을 내놨다면 정부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도 공론화 과정에 부쳤을 가능성이 높다. 비난을 피하고 명분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 뜻에 반하는 결정이 나온다면 탈원전 정책의 수정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숙의’로 포장한 도박을 벌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한수원 이사회의 결정에 대해 사외이사인 조성진 경성대 에너지학과 교수는 절차를 문제 삼아 사임했다. 조 이사는 한수원의 12명 이사들 중 유일하게 조기 폐쇄를 반대했다. 그는 사임 직후 중앙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수원의 경제성 평가를 믿기 어렵고 ▷폐쇄 결정이 하필 지금이어야 했는지 ▷원전 폐쇄와 신규 원전 건설 중단에 왜 한수원이 앞장서는지 등의 문제를 제기했다. 원전 가동 및 중지 여부 결정은 원안위가 하는 게 일반적인데 한수원이 총대를 맨 것은 모양새가 어색하다는 것이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에 참여했던 탈핵 운동가들은 대거 원전 관련 기관에 포진했다. 원안위원장을 비롯해 원자력안전재단·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한국원자력연구원의 이사나 감사 등으로 있다. 이들 자리는 원전 관련 정책과 기술 평가를 맡는 주요 기관의 요직이다. 결정은 한수원 이사회가 했지만 이 과정에 원안위 등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란 뒷말이 나오는 이유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 결정 이후 잠잠해졌던 탈원전 논쟁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으로 다시 불붙었다. 이전의 논쟁이 주로 환경적 의제에 가까웠다면 이번엔 좀 더 실생활에 밀접한 현실적 의제다. 한수원이 경제성을 앞세웠으니 그에 대한 타당성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기도 하다. 더구나 추가 원전에 대한 수명 연장 금지와 신규 건설 백지화 결정 등 간단치 않은 과제들이 줄줄이 예고돼 있다.

산업부가 지난해 12월에 발표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논쟁적인 주제들이 모두 담겨 있다. 8차 계획은 2017년부터 2031년까지 적용된다. 현 정부의 탈원전 로드맵을 기초로 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한울 1·2호기, 고리 2·3·4호기 등 노후 원전 10기의 수명 연장이 금지된다. 한울 원전은 2004년부터 고장으로 인한 가동중지 건수가 전체 원전의 절반이 넘는 20여 건에 달해 안전성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2023년 고리 2호기, 2024년 고리 3호기, 2025년 한빛 1호기 및 고리 4호기 등으로 거의 매년 한두 기씩 설계수명이 만료된다.

신규 원전 6기 건설 계획은 전면 백지화됐다. 천지 1·2호기, 신한울 3·4호기, 아직 부지와 명칭이 정해지지 않은 2기 등이다. 신한울 3·4호기는 당초 지난 5월에 착공될 계획이었지만 현 정부 출범 후 시공 관련 설계용역이 전면 중단됐다.

이에 따라 원전은 계획 수립 기준(2017년) 24기에서 2030년에 18기로 대폭 줄어든다. 계획대로라면 2023년 완공되는 신고리 6호기의 수명(60년)이 끝나는 2083년에 한국은 원전 제로 국가가 된다.

신규·연장 줄줄이 백지화…더 큰 논쟁 예고


탈핵을 지지하는 쪽에선 정부의 구체적인 탈원전 프로세스를 환영하면서도 여전히 충분치 못하다고 지적한다. 현 정부가 탈핵을 표방하면서도 원전수출에 열을 올리는 등 원칙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탈핵 운동 진영은 한수원이 구체적인 원전 폐쇄 로드맵을 만들어 시민사회의 동의를 얻으라고 압박한다. 또 향후 정부 성향에 따라 얼마든지 변경 가능한 전력 수급계획이 아닌 법제화(수명연장금지법 또는 신규 원전 금지법)를 통해 탈핵 정책에 자물쇠를 걸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달리 반대 진영의 초점은 천문학적 예산 낭비와 경제성에 맞춰져 있다. 천지 1·2호기는 필요 부지의 약 10%를 매입한 상태다. 한수원이 신규 원전 건설에 이미 투입한 비용은 3400억원이 넘는다. 김동철 바른미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천지 1·2호기 중단으로 인해 수년 동안 건물 증·개축과 부지 매매 등 재산권 행사에 제한을 받고 있으며 토지 매매 계약을 체결한 주민들의 피해가 막대하다”며 “여야와 전문가 집단, 이해 관계자 등이 함께하는 사회적 기구를 구성해 재검토 논의를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국회 원전수출포럼 소속 의원들도 원자력정책연대와 공동으로 신규 원전 백지화 계획 철회 등을 요구했다. 원전수출포럼 소속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은 “신재생에너지 계획은 더디게 진행되는데 환경을 저해하는 화력발전에만 집착해 무리하게 원전을 폐쇄하는지 의문”이라며 “국민적 논의를 거치지 않고 결정된 탈원전 정책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절차의 합리성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는 원전 폐쇄 이후 전력 수급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다. 여기엔 다양한 분석과 주장이 난무한다. 한 가지를 옳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원전이 차지하는 전력생산 비중은 상당하다. 제8차 전력산업수급계획에 따른 올해 원전 발전량 계획은 22만 3917GWh로 전체의 39%를 담당한다. 2020년에는 원전이 44%, 화력발전이 36.9%로 역전된다. 대체에너지 발전 비중은 5.6%에 불과하다. 꾸준히 비중을 늘리고 있지만 증가세는 매년 1% 정도다. 원자력·석탄·LNG 3개 에너지원의 비중은 93%에 육박할 정도로 절대적이다.

탈원전을 표방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더라도 원전은 2022년까지 최대 에너지원이다. 8차 계획은 석탄·유류 등 화석 에너지원을 줄이는 대신 비교적 저공해 에너지원으로 꼽히는 LNG 발전을 늘리는 계획을 세웠다. 또 태양광, 풍력 위주의 신재생발전을 2030년까지 올해 대비 5배 이상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원전 지지자들은 이 계획의 현실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주목하는 것은 ‘발전 연료 수급비용의 안정성’이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원전의 가장 큰 장점은 가격 안정성이다. 원유나 가스 등 가격 변동에 민감한 다른 발전과 달리 원전은 원유 가격 변동에 민감하지 않다. 전기요금을 일정한 수준에서 유지하는 지속성을 담보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원전 대체 조건은 경제성과 친환경성


▎경북 영양의 산 정상에 위치한 41기의 풍력발전기.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꼽히지만 설비 건설을 위해 환경훼손이 불가피하다.
오염물질 배출이 비교적 적은 LNG는 올해 들어 수입량이 크게 늘었다. 관세청에 따르면 7월 중 LNG 수입액은 6억 2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3.4% 급증했다. 특히 발전용 LNG 비중이 85%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원유 수입액도 같은 기간 23억 달러로 37.6% 늘었다. 6월에 이어 두 달째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에너지업계에선 일부 원전의 가동 중단과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다. 단기간 원전을 대체해 전기를 생산할 방법은 LNG와 유류 발전을 늘리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한 에너지 업체 관계자는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돼 순간적으로 급증할 전력 수요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건 LNG가 거의 유일하다. 원전 발전비중을 줄여 생긴 공백을 LNG 등 다른 발전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 실증해볼 필요가 있다. 그 예행연습의 무대가 이번 여름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LNG업계는 직수입 규제를 완화하고 세금 비중을 낮추면 발전비용 감소로 경제성이 충분히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석탄은 37.3원, LNG는 106.8원이다. 세금을 뺀 발전단가도 87.2원으로 석탄보다 높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비싼 LNG를 확대하면 연료 구입으로 외화가 낭비되고 전기요금이 올라 물가 상승과 경기침체를 가속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친환경에너지의 대표 주자인 태양광발전은 어떨까. 비용 대비 효율성은 떨어지지만 환경친화적이란 이유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보조금까지 지원하며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치명적 한계가 드러났다.

우선 원전을 대체할 경제성이 충분치 않다는 게 문제다. 원전 수준의 발전량과 비용이 유지돼야 전기요금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전의 연료비 단가는 ㎾h당 5.2원이다. 지난 4년간 1㎾h의 전기를 생산하는 데 들어간 태양광 보조금은 130~160원이었다. 예를 들어 신고리 5·6호기의 1년 발전량을 태양광발전으로 대체할 경우 투입되는 보조금은 연간 3조~4조원으로 추정된다.

원전 1기의 전기 생산량(1400㎿)을 태양광발전으로 대체하기 위해 필요한 패널 면적은 서울시 면적(605㎢)의 4분의 1에 달한다. 풍력발전의 경우 3㎿급 500기가 필요한데 이는 서울 면적의 1.4배나 된다. 부지 규모에 대한 계산은 기관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막대한 면적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산업부 공식 입장에 따르면 이용률을 감안해 10GW급 원전을 대체하기 위한 태양광 발전 부지는 748㎢다. 이는 서울시 면적보다 넓은 규모다.

현 정부가 목표로 내건 ‘재생에너지 3020’(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20%까지 확대)을 실현하려면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약 5배 늘어나야 한다. 8차 전력수급기본 계획상 2030년의 신재생에너지 목표 발전량은 58.5GW다. 올해 발전량은 11.3GW 정도다. 이 계획은 10GW급 원전 4기를 대체하는 규모인데, 단순 계산으로도 서울시 면적의 4~5배에 달하는 부지가 필요하다.

값 비싸고 환경 훼손…태양광의 딜레마


▎값싼 산지에 마구잡이로 설치되고 있는 태양광발전소는 산림훼손과 산사태 등 자연환경 훼손의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결국 태양광발전의 경제성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부지 매입비다. 그래서 최근의 태양광발전소는 땅값이 저렴한 산지에 집중적으로 건설되고 있다. 올 1월부터 5월까지 전국에 설치된 태양광발전소만 3035개(65만6817㎾)에 달한다. 산지가 대부분인 강원도의 경우 최근 6년(2012~2017)간 태양광 발전사업 허가 건수가 4711건으로 전국 시·도 중 가장 많다. 여기서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나타났다. 바로 산림 훼손이다.

최근 산업부와 산림청은 산지 태양광 관리 실태 점검에 돌입했다. 환경부는 백두대간 등 주요 산지에 대한 태양광발전소 건설부지 규제안을 내놨다. 두 가지 조치가 모두 7월 들어 급하게 진행됐다.

7월 초 한반도를 지나간 태풍 쁘라삐룬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리면서 태양광발전소가 설치된 일부 지역에서 산사태가 발생한 게 계기가 됐다. 지난 7월 3일 경북 청도군 매전면의 한 태양광발전시설이 붕괴됐다. 여기서 쓸려 내려온 토사 200t이 왕복 2차선 국도를 덮쳤고, 인근 과수원도 피해를 입었다. 당시 청도의 강수량은 이틀간 총 95㎜로 그리 많은 양이 아니었다. 청도군은 태양광발전시설을 설치하면서 나무를 베어내는 바람에 지반이 약해진 게 원인이라고 밝혔다.

지난 5월에는 경기도 연천군의 한 야산에 설치된 태양광발전시설이 적은 비에도 발생한 산사태로 붕괴됐다. 같은 달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의 야산에서도 50㎜ 정도의 비가 온 뒤 태양광발전시설 공사장 축대와 옹벽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태양광발전시설로 허가된 산림 면적은 2013년 43㏊, 2015년 522㏊에 불과했으나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2017년에는 1434㏊로 급증했다. 정부 보조금을 타 내기 위해 밭을 갈아엎거나 벌목하고 태양광발전설비를 설치하는 농가도 크게 늘고 있다.

한 환경단체의 활동가는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이 친환경적이냐에 대해선 환경운동진영 내부에서도 논쟁적인 주제”라고 귀띔한다. “태양광의 경우 수면이든 지면이든 인공 패널로 덮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자연 훼손과 생태계 파괴의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풍력 발전도 마찬가지로 자연 훼손이나 소음으로 인한 환경 문제가 나타난다. 현재로선 도시의 소규모 태양광 설비 보급을 늘리는 게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국민 입장에서 탈원전이나 대체에너지 확보 같은 거시적인 의제보다 중요한 건 피부에 와 닿는 전기요금 인상 여부다. 전기요금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국민 여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가장 민감한 주제다.

정부가 탈원전을 선언하면서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일축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6월 20일 산업부는 “장기적으로 2022년까지 전기요금 인상 요인은 거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원전 발전비중이 줄어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언론 보도를 해명하면서 내놓은 입장이다.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전기요금 인상 이슈로 동력을 상실할 것을 우려해 이런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전기요금 인상 없다더니 ‘군불 때기’


그러나 산업부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기존 입장과 다른 기류가 감지된다.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은 최근 자신의 SNS에 ‘두부공장의 걱정거리’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 핵심 내용은 이렇다. “수입 콩값이 올라가도 두부값을 올리지 않았더니 두부값이 콩값보다 싸지게 됐다.”

발전 연료비용이 늘어난 만큼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이를 ‘두부공장 사장’의 가벼운 넋두리로만 볼 수 없다. 한전은 지난해 4분기 1294억원의 적자를 낸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도 1276억원의 연속 적자를 냈다. 그동안 줄곧 흑자를 내던 한전의 적자 전환은 탈원전 정책과 무관치 않다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국내 원전 24기 중 올 들어 11기가 멈췄었다. 가동율은 최저 57%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최근 원전 가동율이 오름세로 돌아섰다. 2분기 가동율은 66%다. 3~4분기에는 81%까지 회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탈원전 정책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지고 발전비용이 늘어나면서 정부가 속도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6월 한국갤럽이 전국 성인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원전 확대, 유지를 지지한 응답자는 각각 14%, 40%였다. 반면 원전 축소를 지지한 응답자는 32%에 불과했다. 정희범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원전 한 기를 멈추고 LNG 발전으로 대체하면 한전이 하루에 11억원씩 손해를 보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발전 원가를 토대로 계산할 경우 탈원전 정책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 규모는 현재의 3배가량 될 것으로 분석했다.

산업부는 당분가 전기요금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한 데 대해 “국제유가가 변동하지 않는 걸 전제로 한 얘기”라고 한 발 물러섰다. 최근처럼 유가 오름세가 지속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단 얘기다. 때마침 정부는 산업용 전기요금 개편에 들어갔다. 다만 산업부는 값이 싼 심야시간 요금을 올리고, 낮시간 요금을 내려 현재 수준에서 조정을 이루는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에 대해 주택용보다 저항이 작은 산업용부터 손볼 것이란 당초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터라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탈원전을 시도했던 다른 나라들의 경험은 이제 막 탈원전의 걸음마를 뗀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웨덴은 1980년 국민투표를 통해 탈원전을 결정했지만 여전히 원전을 운영하고 있다.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해서다. 스웨덴의 원전 의존도는 여전히 33%에 이른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원전 제로정책을 세웠던 일본도 최근 원전 48기 중 9기를 재가동했다. 원전 대체 발전으로 택한 LNG 발전 때문에 무역적자가 급증한 게 주원인이었다. 원전 가동을 멈춘 5년 동안 일본의 전기요금 인상율은 가정용 19%, 산업용 29%에 달했다. 급기야 2030년까지 원전 비중을 22% 늘리기로 방향을 틀었다.

대표적인 탈원전 국가 중 하나인 독일의 경우 2002년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하고 2011년 노후 원전 8기를 멈춘 뒤 가정용 전기요금이 21% 올랐다. 1990년부터 탈원전 정책을 펴온 이탈리아도 2000~2010년 사이에 전기요금이 무려 40% 인상됐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1808호 (2018.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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