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연중기획 | ‘同行-고령사회로 가는 길’(8)] 이인실 차기 한국경제학회장이 말하는 노인 창업 대책 

“창업 가능한 노인은 극소수 꼼꼼히 따지고 살펴봐야”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국가 전체가 창업 신드롬, 그보다는 일자리 만드는 게 우선… 1년 지난 소득주도 성장 정책, 점검 필요한 때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가 처한 현실과 노인 문제 등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인실(62) 교수는 요즘 고민이 깊다. 한편으로는 훗날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보는 계기가 됐다. 노화는 거스를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천명(天命)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92세, 어머니가 88세입니다. 치매 증상을 조기 발견하고 잘 치료해 왔는데 올해 들어 아버지가 너무 나빠지셨어요. 30년 후 제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충격이었습니다. 직접 부딪히게 되니 경제학자로서 생각이 복잡해지고 고민도 많아졌어요.” 이 교수에게는 88세 시아버지도 있다. 시아버지는 “함께 살자”는 자녀들의 제안을 마다하고 혼자 산다. 아직은 건강 상태가 양호하지만 장담할 수는 없다.

“우리 세대가 다 그렇듯, 저 역시 부모님 봉양하고 자식 부양하는 양쪽에 낀 세대입니다. 제가 베이비붐 세대의 가장 앞(1956년생)이라 그런지 몰라도 ‘고령사회라는 게 내가 만들어가는 사회구나’라고 느끼게 돼요. 결국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거라고 봅니다.”

베이비붐 세대는 나라 사정에 따라 연령대가 다르다. 미국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6년에서 1965년 사이에 출생한 세대를 지칭한다. 세계대전 중 떨어져 있던 부부들이 전쟁 종료 후 다시 만나고, 미뤘던 결혼이 한꺼번에 이뤄지면서 생겨난 세대로 ‘베이비부머’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전쟁 이후인 1955년부터 1963년까지 태어난 세대를 베이비부머라고 한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한국 여성 1세대 경제학자로 하나금융연구소·한국경제연구원 등에서 근무했다. 2003년에는 국회 예산정책처 경제분석실장을 지냈다. 이 교수는 2006년부터 서강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009년 첫 민간 출신, 첫 여성 통계청장을 맡았고, 올해 6월에는 제49대 한국경제학회장에 당선됐다. 한국경제학회는 1952년 설립돼 회원이 5000명에 이르는 경제학계의 대표 학회다. 여성 회장은 이 교수가 최초다.

월간중앙이 차기 한국경제학회 수장인 이인실 교수를 만나 고령사회 ‘동행의 지혜’를 물었다. 이 교수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데도 대비를 하지 않았다. 전문가들도 반성해야 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교수님’으로 통하던데 비결이라도 있는가?

“그렇지 않다(웃음). 올해 62세인데 이 나이에 학생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복 받은 거다.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저 개인을 위해 특별히 투자하는 것은 없다. 그 흔한 헬스클럽 같은 데도 다니지 않는다. 대신 얼리어답터(Early Adopter)답게 IT(정보통신) 기기에는 관심이 많다. 태블릿PC를 들고 다니고, 이것(스마트워치)도 차고 다닌다. 젊은 친구들을 잘 이해해야 강의도 잘할 것 아니겠는가? [개그콘서트]도 챙겨서 보려고 노력한다.”

저출산·고령화에 녹아 있는 1인 가구 증가 현상


한국이 작년 8월을 기점으로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저출산 문제와 관련해서 정책 실기(失期)가 많았다. 고령화 대책 역시 실기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낳느냐’보다 ‘얼마나 늙어갈까’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데도 대비를 안 했으니 전문가들도 반성해야 한다.”

고령사회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문제는 진입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데 있다는 지적이 많다.

“(진입 속도가) 일본의 두 배 정도다. 그런데 거기에서 발생하는 경제·사회 문제, 자살률, 노인빈곤 이런 것들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평균의 세 배가 된다. 너무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한 사회나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범위를 넘어섰다고 생각한다. 저 역시 학자로서 수없이 반성했다.”

통계청장 출신으로 고령사회를 보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통계청장은 공식 통계를 만드는 공장장이다. 팩트가 있으면 숫자로 표현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통계청장 시절 어떤 통계가 제일 인상 깊었나요’라고 묻곤 한다. 통계청장이 된 뒤 가장 놀랐던 것은 1인 가구의 증가 속도였다. 학자로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증가하더라.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녹아 있는 게 1인 가구의 증가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1인 가구는 561만3000가구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7만9000가구(3.3%) 증가했다. 1인 가구가 전체 가구보다 빠른 속도로 늘어나면서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8.1%에서 28.7%로 상승했다. 취업한 1인 가구를 연령별로 보면 50∼64세 26.5%, 30∼39세 23.7%, 40∼49세 21.0%, 15∼29세 18.8%, 65세 이상 10.1% 순이었다.

노인 문제 중 가장 심각한 것이 빈고(貧苦)다. 이를 완화할 방법은 없을까?

“오래 살게 돼서 노인이 많아진 것 아닌가? 한마디로 사망률이 낮아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만의 더 심각한 문제는 베이비붐 세대에서 한꺼번에 노인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데 있다. 전통적인 가족체계가 무너지면서 이제는 노인 스스로 자신을 부양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국가도 개인도 준비가 안 돼 있다. 그러다 보니 노인 빈곤율이 50%에 육박하게 됐다. 두 명 중 한 명은 상대적 빈곤 이하로 살아 간다는 건데 정말 끔찍하다. 이런 현상을 완화하려면 가능한 범위 내에서 노인들이 일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의 기술적 변화를 활용해 일할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최근 금융감독원의 보고에 따르면 한국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이 45.7%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대부분의 노인은 자녀 교육·결혼 등 가족 부양에 모든 힘을 쏟다 보니 정작 자신의 노후 대비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살아 왔다.

노년 창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 산업이 전체적으로 노화되지 않았나? 살아남은 기업들의 나이가 많다. 전전(前前) 정부부터 창업을 얘기해 왔는데 결국 노인 창업 이야기까지 나오게 됐다. 알다시피 성공률이 5%도 안 되는 게 창업이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신중히 생각할 문제다. 국가 전체가 창업 신드롬에 빠진 것 같다.”

노인 창업이라는 것도 결국 빈곤에서 벗어나려는 궁여지책 아닐까?

“노년도 물론 창업을 할 수는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연륜도 있고 아이디어도 있는 극소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일반적인 노인들의 경제적인 활동을 위한 대책이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베이비붐 세대 자리, 젊은 세대가 대체 어려워


베이비붐 세대가 노동 시장에 쏟아지고 있는데.

“베이비붐 세대는 충분히 숙련돼 있고, 건강 상태도 좋다. 젊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한때는 기성세대가 빨리 은퇴해야 젊은 세대가 그 자리에 들어간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그런 유(類)의 대체관계는 매우 적다고 본다. 한국의 임금체계는 생산성이 아닌 연공서열에 의거했다. 51세에 실질적으로 은퇴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다. 임금 스케일을 조금 낮추고, 일을 더 하게 해주는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서 임금피크제와 함께 정년을 연장하자고 한 건데 제대로 시행하지 못했다. 임금 스케일을 바꿔야 한다. 은퇴를 늦게 한다고 해서 청년들이 취직을 못하는 게 아니다. 새로운 산업을 일으켜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줘야 한다. 국가가 할 일이 바로 그거다. 그래야 고령화 문제를 부드럽게 넘길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경제를 어떻게 진단하는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타운홀 미팅에서 참가자들이 ‘나의 바람’을 적은 종이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사진: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저는 한국 경제만 들여다본 사람이다. 경기는 작은 사이클, 중간 사이클, 큰 사이클이 있다. 지금은 큰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점이다. 미·중 무역 갈등부터 저출산, 인구 고령화, 보호무역주의 등 전반적으로 경제 패러다임이 바뀌는 과정에 있다. 우리나라는 규모 면에서 그런 문제들을 선도하는 국가가 아니다. 미국·중국과의 격차가 너무 클 뿐 아니라 수출로 먹고살기 때문에 굉장히 힘든 상황이다. 패러다임 전환에 잘 적응해야 생존할 수 있다. 저는 말로만 위기라고 외치는 ‘양치기 소년’처럼 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하고 싶다.”

최근 소득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통계도 나오던데.

“최저임금 인상, 소득주도 성장 때문에 그렇다는 주장도 있다. 저는 무조건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책 효과가 나오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이 지났으니 점검해 볼 시점은 됐다고 생각한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폐기·수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원래는 소득주도가 아니라 임금주도다. 요약하면 이렇다. ‘양극화·불평등이 너무 심하니 노동소득에 더 많이 분배하자. 지금은 수요 부족의 시대이기도 하다. 그런 차원에서 저임금층한테 소득을 몰아주면 소비를 활발하게 할 것이다. 그러면 투자도 늘어난다.’ 이론적으로는 틀릴 게 없다. 문제는 실증적 사례가 많지 않다는 데 있다. 경제학적으로 소득 내에서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고, 자본에 있는 것을 소득으로 넘겨줘야 한다. 그런데 자본도 생산요소다. 생산성이 향상되지 않는 한 생산요소를 더 넣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 생산성이 향상돼야 한다. 소득주도 성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주류 논리가 아닌 것은 사실이다.”

한국 경제 제대로 연구해야 국가도 발전


고용 위축이 심각해지고 있다.

“(정부가) 고용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것은 올바른 선택이다. 다만 정규직 확대 정책이 현실에 맞는 것인지는 고민해야 한다. 유연한 고용 형태를 외면하고 강제 정규직화를 추진하면 노동 시장의 유연성과 다양성은 사라진다. 되레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일본의 청년 실업이 생산가능인구 감소만으로 해결된 게 아니다. 일자리는 경제 성장의 결과물이다. 중소기업에 취업하면 정부가 1000만원씩 지원한다는 식으로 되지 않는다.”

법인세 인상에 이어 부동산 보유세 인상 추진 등 증세가 이어지고 있는데.

“법인세 증세의 경우 주요국들의 감세와는 정확히 반대로 간 것이다. 감세로 기업을 돕는 정부들이 늘어가는데 우리는 반대다. 법인세는 누가 내게 되나? 주주와 임직원이다. 민간의 활력이 될 부분을 정부가 가져가는 것이다. 법인세 올려봐야 (기업들은) 도망가거나 (다른 이들에게) 전가해 버린다. 차라리 부가가치세를 올려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복지 수요)에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내년에 한국경제학회장을 맡게 된다. 비전이나 포부가 있다면?

“내년 3월부터 임기가 시작된다. (한국경제학회장 선거 전) 주위에서 ‘아직까지 여성 경제학회장이 없는데 너무한 거 아니냐. 이 교수님 아니면 앞으로 10년 동안 여성 학회장 안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한국 경제에 대해서 제대로 연구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구멍이 뻥뻥 뚫렸다. 머리 좋은 30~40대 경제학자들이 한국 경제를 공부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제 생각이다. 그렇게 해야 나라가 발전한다. 이념적으로만 토론할 뿐 실증 데이터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치열하게 데이터를 만들어서 싸우면 발전하지 않겠나. 한국 경제를 연구할만한 여건을 만들고 싶다. 1년 동안 열심히 해보겠다.”

-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201808호 (2018.07.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