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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 6년 만에 당대표 재도전 이해찬 후보 

“당권 도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유력 후보’ 김부겸 뜻 접자 출사표 밝히고 레이스 돌입…유능하고 강한 리더십 어필, 일각에선 “너무 강성” 우려도

월간중앙은 8·25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 출마한 당권 주자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기호 1번 송영길 후보와 기호 2번 김진표 후보는 바쁜 일정 중에도 짬을 내 인터뷰에 응했다. 기호 3번 이해찬 후보 측은 수차례 요청에도 불구하고 끝내 인터뷰를 고사했다. 월간중앙은 인터뷰 대신 ‘인물탐구’ 형식으로 이해찬 후보를 살펴봤다.


▎이해찬 민주당 당권 후보가 8월 12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시당 대의원대회에서 당원·동지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8·25 민주당 전당대회의 ‘키맨’으로 꼽혔던 이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민주당 4선 의원). 김 장관은 전당대회 관련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부분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김 장관은 7월 18일 공식적으로 불출마 의사를 천명했다. 자신의 거취 문제로 타 후보들이 출전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을 정리해야 한다는 게 불출마 이유 중 하나였다.

김 장관이 불출마를 선언한 지 이틀 뒤인 7월 20일, 이해찬 의원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동안 이 의원의 출마 여부를 두고 추측만 난무했다. “무조건 안 나간다”는 전망과 “나갈 수도 있다”는 전망이 엇갈렸다. 친노·친문 핵심인 박범계 의원조차 7월 19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 “느낌상 안 나오시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 의원 본인은 정작 말을 아꼈다. 그러다 7월 20일 전격 출마를 선언했다. “BK(김부겸) 변수를 지켜보느라 출마 선언이 늦어졌을 것”이란 해석에 무게가 실렸다.

출마 기자회견에서 이 후보는 “2020년 총선의 압도적 승리가 너무나 절실하기 때문에 이번 당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성공과 재집권에 무한 책임을 지고 자신을 던질 사람이어야 한다”며 “유능하고 강한 리더십으로 정부를 뒷받침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이 후보는 회견 직후 기자들을 만나 장고(長考)를 거듭한 이유에 대해 “다른 분들이 역동적으로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웬만하면 안 나왔으면 했는데 불가피하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강성·버럭’ 총리 출신의 7선 의원


▎2004년 9월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정과제회의에 참석한 이해찬 국무총리가 문재인 시민사회수석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캠프 관계자들은 물론 의원실 보좌진은 지금도 이 후보를 “총리님”이라고 부른다. ‘전관예우’ 성격의 호칭이라 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그만큼 이 후보가 참여정부의 ‘책임총리’ 경력에 자부심이 크다는 방증이다. 이 후보는 2004년 6월부터 2006년 3월까지 제36대 국무총리를 지냈다.

민주통합당 시절이던 2012년 이후 6년 만에 당권에 도전하는 이 후보는 7선(13~17대, 19~20대) 의원이다.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서울 관악을에서 배지를 단 그는 스스로 불출마를 결정했던 18대를 제외하고 모든 총선에서 승리했다.

이 후보는 2012년 4월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한명숙 대표가 사퇴한 뒤 치러진 6월 전당대회에서 김한길 의원을 누르고 당권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 간의 대선후보 단일화 논의 과정에서 다른 지도부와 함께 사퇴하며 뒤로 물러났다. 5개월짜리 단명(短命) 대표였다.

2년 전 20대 총선 때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칼날에 낙천했던 이 후보는 세종시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고, 몇 달 뒤 복당(復黨)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이어 지난해 대선에서는 친노 좌장답게 보수 궤멸 등을 외치며 지지세 결집의 극대화를 꾀하기도 했다.

‘이 후보’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강성과 버럭’이다. 보수 궤멸, 20년 집권 등 그의 언어는 상대를 거칠게 자극한다. 7월 24일 당 초선 의원들이 주최한 예비 당권 주자 토론회에서 “과거 ‘버럭 총리’라는 별칭이 있고 보수 궤멸을 주장한 바 있는데 (당 대표가 되면) 야당과 협치를 제대로 하겠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이 후보는 “제가 총리를 할 때 그분들(야당)의 질의 내용이 상식 이하였다. 야당을 오래하다 보니 강퍅하게 비쳤다”고 해명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당·청 협력, 여야 협치가 중요한 상황에서 이 후보가 당대표로서 적임자인지 의문이 든다. 하루가 멀다 하고 그릇 깨지는 소리가 들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정반대의 시각도 있다. 교육부장관, 국무총리, 당대표, 7선 의원을 지낸 이 후보인 만큼 누구보다 사심 없이 당을 운영해 나갈 것이란 주장이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차기 권력을 노리는 후보가 당대표를 맡을 경우 자기 사람을 심는 등 당 운영에 사심이 개입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 뒤 “30년 정치인생 동안 큰 스캔들이 없었다는 것은 그만큼 이 후보가 공평무사하다는 증거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돌아보면 이 후보와 문재인 대통령은 ‘특수관계’다. 두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함께 보필한 참여정부의 주축이었다. 이 후보가 총리일 때 문 대통령은 시민사회수석비서관과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냈다. 문 대통령은 2007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 노무현 청와대 마지막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그뿐 아니다. 두 사람은 MB(이명박 전 대통령) 정부 말기이던 2011년 12월 친노가 주축이 된 ‘혁신과 통합’을 이끌며 기존 민주당과의 통합을 추진하기도 했다. 통합 후 당을 장악한 친노는 ‘이해찬 당대표→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그림을 완성했다.

두 사람은 학번도 같다. 이 후보는 서울대 사회학과 72학번, 문 대통령은 경희대 법대 72학번이다. 호적상 나이는 1952년생인 이 후보가 한 살 많지만 대학은 같은 연도에 들어갔다. 이 후보는 서울대 섬유공학과 71학번이었으나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그만둔 뒤 재수했고, 문 대통령 역시 재수생 시절을 거쳤다.

이런 가운데 이 후보의 ‘문 실장’ 발언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이 후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대통령에 대한 이 후보의 자세가 함축된 말 아니겠느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자 이 후보는 8월 9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문 대통령을 ‘문 실장’이라고 부른 것에 대해 “문 대통령을 제가 실장이라고 부른 것은 그 당시의 직계를 말씀드린 것이지, 지금 현 시점에서 말씀을 드린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는 “서로 30년 이상 같이 살아왔기 때문에 서로가 어떻게 사는가, 어떻게 판단하는가를 다 안다”면서 “인간적으로 친하다는 얘기”라고 덧붙였다.

진땀 빼야 했던 ‘문 실장’ 발언


▎서울시 정무부시장 시절이던 1995년 이해찬 의원.
‘문 실장’ 논란의 진원지는 한 인터넷 방송이다. 이 후보는 8월 4일 한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같은 참여정부에서 시차는 있지만) 제가 국무총리를 할 때 문 대통령이 비서실장을 했다”며 “당·정·청 협의회에도 문 실장이 참석해 얘기를 많이 했다. 문 실장하고 저는 좀 특수한 관계”라면서 ‘문 실장’ 발언을 연발했다.

이 후보의 적극 해명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두 사람의 ‘과거 관계’를 주목하고 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친노 패권주의 청산’을 외치며 친노·친문 인사들을 대거 공천에서 배제했다. 당시 문재인 전 대표가 전해철 의원 등에 대해서는 구명(救命)에 나섰던 데 반해 이 후보의 낙천은 묵인했다는 말이 나왔다. 이로 인해 감정의 앙금이 생겼을 거란 추론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이 후보가 당권을 쥐게 되면 청와대, 당내 주류인 친문계와는 긴장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차기 당대표는 21대 총선 공천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를 의식한 듯 이 후보는 8월 2일 광주MBC 초청 토론회에서 “당대표가 자기 사람을 심는 정무적 판단을 뿌리 뽑고 정책과 전문성, 지역평가를 기준으로 상향식 경선을 하겠다”며 “이제 광주에서 전략공천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또 이 후보는 “수구세력은 갈등과 분열을 기다리고 있다. 강력한 리더십과 당의 단결이 중요하며, 누가 당대표가 되든 나머지 둘이 힘껏 도와야 한다”며 “원 팀이 돼 단결할 때 우리는 더 강한 민주당이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 후보는 서울시 부시장, 7선 의원, 교육부 장관, 국무총리, 당대표 등의 경력을 자랑하는 인물이다. 시쳇말로 ‘대통령만 빼고’ 다 해봤다. 현역 정치인 가운데 이 후보만한 이력을 가진 이는 흔치 않다.

1987년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이끄는 평화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정계에 투신한 그는 7차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다가 정동영 후보에게 졌고, 이듬해 18대 총선에 불출마한 것이 사실상 유일한 정치적 휴지기였다.

하지만 이처럼 화려한 경력이 오히려 거부감을 주기도 한다. “할 만큼 했으니 이제 후배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는 것은 어떠냐”는 말도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지적을 의식했기 때문일까. 이 후보는 8월 4일 “더 이상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며 “30년 정치인생의 마지막 소임으로서 2020년 총선 승리, 문재인 정부 성공과 정권 재창출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사실상 배수의 진을 치고 이번 선거에 임한 것이다.

총선 불출마 배수진… 마지막 소임 기회 달라


▎이해찬 민주당 의원이 7월 20일 국회에서 전당대회 출마 기자회견을 마친 뒤 퇴장하고 있다. /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여러 차례 주요 선거에서 승리했고, 또 내각에서 발휘한 이 후보의 기획력과 업무 장악력은 자타가 공인한다. 하지만 독선적·독단적 면모는 약점으로 지적된다. 새누리당이나 일부 언론과 각을 세우는 모습도 지지자들에게는 어필하지만, 그 과정에서 ‘막말’ 파문을 빚곤 한다. 당내에서도 ‘뾰족한 면모’를 보일 때가 많았다. 라디오 생방송 인터뷰 중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비난을 사기도 했다.

‘버럭 총리’로 유명한 이 후보가 당대표가 되더라도 자기 스타일대로만 하긴 어려울 거란 전망도 많다. 이 후보가 과거 상대했던 누구보다도 현 대통령이 가진 권력이 크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체급이 다르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야당과의 협치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 후보는 8월 7일 라디오 전화 연결에서 “협치를 하기는 해야 하는데, 터무니없는 주장을 우리가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질문하는 것을 보면 아주 상식 이하의 질문을 한다”고도 비판했다.

김병준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에 대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대화하는 데 여러 가지 점에서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이나 정 대표와는 참여정부 때 한솥밥을 먹었다. 특히 정 대표와는 서울대 동기이자 친구다.

야당과는 선명한 각을 세우는 이 후보는 당권 쟁취에 대한 의지를 숨기지 않는다. 이 후보는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번에 당을 제대로 튼튼한 당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해 모든 것을 매진하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공언처럼 이 후보에게 남은 정치적 소임은 민주당의 기반을 다지고 차기 총선과 대선 승리를 통한 정권 재창출일지 모른다. 이 후보는 8월 12일 대구시당 대의원대회 연설을 통해 또 한 번 자신의 소임을 강조했다.

“김대중 대통령께 정치를 배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모시고 책임총리의 중책을 맡았습니다. 이번 당대표는 저 이해찬 정치인생의 마지막 소임입니다. 국민의 선택을 받는 좋은 정당, 튼튼한 정당을 만들어 문재인 대통령님을 뒷받침하겠습니다. 2020년 총선 승리, 문재인 정부 성공, 정권 재창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고, 자랑스러운 민주당을 만들겠습니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201809호 (201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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