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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적폐’의 침몰선 오른 ‘양승태 코트’의 민낯 

사법부가 스스로 농단 세력 자처했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시국·정치 사건에 정권 ‘맞춤 판결’로 생색 내고 숙원사업 거래 시도…‘수사 협조’ 약속하고도 사법부 향한 칼날에 ‘법관 독립’ 방패막이 세워

사법부가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법원행정처에 숨겨져 있던 문건에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박근혜 청와대’와 정치적 밀월을 즐겼음을 암시하는 내용들이 가득했다. 박 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저지른 ‘국정농단’에 견주어 양 전 대법원장과 그 측근들의 ‘사법농단’이란 비판 여론이 드세다. 사법개혁의 적임자로 꼽혀온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의 법원도 비판 여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법원이 국민의 알 권리를 외면한 채 검찰 수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서다. 이런 의심이 든다. 사법부는 자신들만의 왕국을 신성불가침의 성역으로 남길 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임기 동안 법원행정처를 지렛대로 법관을 사찰하고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해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대법원 앞 철문이 굳게 닫혀 있다. / 사진:연합뉴스
"법관이 사용하던 컴퓨터를 열어 조사한다면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愚)를 범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난해 6월 28일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이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재조사 요구와 관련해 내놓은 공식 입장문의 한 구절이다. 법원행정처 고위 법관으로부터 행정처 기획법관의 컴퓨터에 ‘판사 성향 구분 리스트’,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가 들어 있다는 말을 전해 들은 한 법관의 폭로로 시작된 진상 규명 요구를 양 전 대법원장은 ‘쇠뿔 바로잡으려다 소 잡는다’고 표현한 것이다.

“행정처 소속 법관들의 컴퓨터에는 해당 법관이 생성한 자료 외에 전임자 또는 다른 법관들이 작성한 문서가 있을 수 있고, (…) 그 중에는 제3자에게 공개할 수 없는 성격의 문서들이 상당수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양 전 대법원장이 행정처 컴퓨터 조사를 그토록 경계했던 이유를 그땐 미처 몰랐다. 그저 우려대로 어느 기관이든 당연히 있게 마련인 내부용 행정 자료 유출을 걱정한 것으로 해석됐다. 전직 대법관 등으로 구성된 중립적인 진상조사위원회도 행정처 컴퓨터는 결국 열지 못했다. 전국의 판사들이 스스로 추가 조사를 위한 진상조사기구를 만들고 공동 의견을 연일 냈지만 양 전 대법원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3개월 뒤인 지난해 9월 22일 김명수 대법원장은 취임하자마자 전국법관회의 대표들을 만나 추가 조사를 약속했다. 법관회의 멤버들도 재조사에 참여시켰다. 문제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확보해 내용물을 복구한 끝에 일부 문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사위는 우선 A4용지 55쪽 분량의 문서를 법원 내부 전산망에 공개했다. ‘사법농단’의 막이 열린 것이다.

플롯의 재구성: ‘양승태 코트 사법농단’

당초 찾고자 했던 ‘블랙리스트’ 문건은 아니었지만 공개된 문서는 오히려 더 큰 충격을 줬다. 법원 내 진보적 성향 법관들의 연구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주최 학술행사나 판사회의 관련 동향을 정리한 것은 사소해 보일 정도였다. 양 전 대법원장의 최대 숙원사업이었던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청와대와 국회 등을 설득할 전략을 세우고 정치권 동향을 분석한 것들이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한 원세훈(67) 전 국정원장의 항소심 재판 선고를 둘러싼 사회 각계의 동향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대응방안을 세웠다. 이 과정에 ‘BH’(청와대를 의미)와 선고 전후로 긴밀히 연락을 주고받은 정황도 드러났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법원 판결에 ‘불만’을 표시했다거나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주길 희망한다’는 등의 노골적인 주문이 가감 없이 문서에 담겼다. 명백히 재판에 개입하려는 반(反) 헌법적 태도였지만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비판한 내용은 문서 어디에도 들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법원 행정처는 “법무비서관을 통해 사법부의 진의가 곡해되지 않도록 상세히 입장을 설명했다”며 청와대의 ‘심기’ 달래기를 우선시했다.

추가조사위가 공개한 것은 확보한 문서 중 일부에 불과했다. 당장 나머지 문서도 공개하라는 여론이 고조됐다. 원 전 국정원장 외에 다른 정치적 사건에서도 청와대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히 밝혀내야 한다는 여론도 빗발쳤지만 김 대법원장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문서가 공개된 직후인 지난 2월 12일 안철상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을 단장으로 한 법원 내 특별조사단이 꾸려졌다. 3차 조사에 해당하는 것이다. 조사단이 확보한 사법행정권 남용이 의심되는 문서 자료는 모두 410건이었다. 앞서 추가 조사위가 법원행정처와 관련자들의 반대 등으로 확인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조사단은 조사 대상 410건 중 중복된 것을 제외한 미공개분 196건을 법원 내부 전산망에 공개했다. 공개된 문서에는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전방위 로비 전략과 실행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들어 있었다.

양 전 대법원장의 법원 운영에 대해 비판적인 판사들의 동향을 수집하는가 하면, 인사상 혜택으로 판사들을 길들이려 한 정황도 밝혀졌다. 또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에서 근무했던 A판사가 작성한 문건에는 ‘사법부가 그동안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 왔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법원도 더 이상 수사를 미룰 명분이 사라졌다. 6월 15일 김명수 대법원장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우회적으로 검찰 수사를 요구했다. 김 대법원장은 담화에서 “저는 비록 최종 판단을 담당하는 기관의 책임자로서 섣불리 고발이나 수사 의뢰 같은 조치를 할 수는 없다”면서도 “이미 이뤄진 고발에 따라 수사가 진행될 경우 미공개 문건을 포함해 특별조사단이 확보한 모든 인적·물적 조사자료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공할 것이며, 사법행정의 영역에서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수사 또는 재판을 담당하는 분들이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진실을 규명해 나갈 것으로 믿는다”고도 했다.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사실상 수사를 의뢰하는 우회적인 표현이란 게 법조계의 해석이었다.

청와대 관심 사건에 법원행정처가 ‘법률 자문’


▎법원행정처는 ‘재판 거래 의혹’ 미공개 문건 182개를 7월 31일 공개했다. 사진은 이날 공개된 ‘상고법원 입법을 위한 대국회 전략’ ‘상고법원 관련 야당 대응전략’문건 등이다. / 사진:연합뉴스
대법원이 노골적으로 재판 거래를 시도한 시기는 2015~2016년이다. 공개된 문서는 법원이 굵직한 시국·정치 사건 재판 때마다 청와대의 분위기를 참고해 재판에 녹이려 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또 청와대가 원하는 재판 결과가 나오면 이를 앞세워 ‘생색’을 내는 식이다.

‘과거사에 대해 국가에 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시효를 3년으로 제한했고, 긴급조치 9호는 배상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2015년 8월 6일 당시 박 대통령과 양 대법원장의 오찬 회동 자리에서 사용된 ‘현안 관련 말씀자료’의 한 대목이 당시 법원의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말씀자료에는 청와대와 법원의 협력을 강조하는 대목이 있다. 그동안 법원이 청와대에 협력한 사례를 나열했다. KTX 해고승무원 사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사건, 긴급조치 피해자 배상청구 사건이 법원이 내세운 ‘모범 협력 사례’들이다.

특히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컴퓨터에서 발견된 전교조 법외노조 소송 관련 문서는 판결이 있기 전 법원이 노동부와의 결탁 가능성을 의심케 하는 정황을 담고 있다. 전교조 법외노조 재판은 2015년 6월 대법원이 고용노동부의 재항고를 받아들여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판단했던 사건이다. 고용노동부가 2013년 10월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판단한 것에 대해 1, 2심은 전교조의 효력정지신청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고용노동부의 재항고를 받아들여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문서 제목은 ‘(141007)재항고 이유서(전교조-Final)’. 작성일은 2014년 10월 7일이다. 내용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판단해야 할 당위성에 대한 것들이다. 대충 의견을 적은 게 아니라 판결문 수준으로 정교한 논리를 갖췄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고용노동부가 재항고 이유서를 법원에 정식으로 접수한 날보다 하루 전날 이 문서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노동부의 재항고 이유서는 임 전 차장의 문서와 내용도 거의 비슷하다. 통상 법원에 접수되는 파일이 문서 변조가 어려운 PDF 파일 형식인 반면, 임 전 차장의 문서는 한글문서(hwp)로 작성됐다. 노동부로부터 받은 재항고 이유서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게다가 법원행정처는 2014년 12월 재항고심이 진행 중일 때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관련 검토’ 문건도 작성했다. 이 문건에는 청와대의 입장과 재항고 수용 여부가 대법원 사업에 미칠 영향 등을 분석한 내용이 들어 있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노동부에 법리를 검토해 준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통령의 오찬 말씀자료에 전교조 사건을 국정운영 뒷받침 사례로 거론한 것도 검찰의 의심에 힘을 실어 준다. 한 대형 로펌에 근무하는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법원행정처가 정부의 자문변호사 역할을 했다는 건데, 이건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맞춤 재판’ 해주고 대가 요구


▎‘특별조사단 조사결과 관련 현안에 대한 토의’를 하기 위한 전국법원장간담회가 6월 7일 대법원에서 열렸다. 안철상 법원행정처장 등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경우 전교조 사건보다 더 노골적이다. 여기에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황교안 법무부 장관,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이 등장한다. 문건의 내용과 검찰 수사로 드러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2013년 12월 1일 일요일 오전, 김 전 실장의 비서실장 공관(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차한성 당시 대법관이 찾아왔다. 곧이어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윤병세 당시 외교부장관도 공관을 방문했다. 네 사람의 대화 주제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이 사건은 2013년 8월 대법원에 올라와 있었다. 앞서 1, 2심에서 피해자 패소로 판단했지만 2012년 5월 대법원 소부(小部)가 하급심 판결을 뒤집고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하급심은 소부의 판단대로 일본 기업이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씩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렸고, 다시 대법원에 재상고돼 다섯 번째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었다.

김 전 실장은 차 전 대법관에게 최대한 확정판결을 늦추거나, 전원합의체로 재배당해 달라고 했다. 이미 담당 재판부가 정해진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넘기는 일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대법관 3~4명으로 구성되는 소부가 사건을 맡기에 쟁점이 크고 판례를 바꿀 필요성이 있을 경우 전원합의체에 넘겨 최종 판단을 구하곤 한다. 전원 합의체는 대법원장과 모든 대법관이 참여하기 때문에 법원에서 가장 높은 권위를 갖는다.

그러나 강제징용 피해배상 재판은 일반적인 경우와 사정이 다르다. 이미 대법원이 한 차례 피해자 승소 판결을 내린 사건이었고, 쟁점이 달라지지 않았다. 이 경우 법원은 심리를 하지 않고 기각(심리 불속행 기각)하는 결정을 내리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5년간 판결을 내리지 않고 미루다가 최근에 와서야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그런 사이 고령의 피해자 9명 중 7명은 한국 법원의 최종 판결을 보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당시 이 재판 관련 법리 검토에 참여했던 이모 부장판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사건을 맡았던 대법관의 입장 변화가 있었음을 고백했다. 이 부장판사에 따르면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대법원 1부가 맡았다. 피해자 승소 취지로 한 차례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재상고로 사건이 다시 접수됐을 때 재판에 참여했던 한 대법관은 재판연구관에게 “미쓰비시 판결이 이상하다” “한·일 외교관계에 큰 파국을 가져오는 사건”이라며 재검토를 지시했다고 한다.

이 부장판사는 “대법관님은 (당연하게도) 이미 상황을 다 알고 계신 듯”이라고 했지만 누구인지 이름을 지칭하진 않았다. 이에 대해 당시 재판장이었던 이인복 전 대법관(사법연수원 석좌교수)은 연합뉴스를 통해 “파기환송 이후 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한 논문들이 나왔고, 재상고가 되면 지적된 문제점을 전부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비판적인 논거도 극복할 수 있도록 연구를 더 해야 한다는 얘기를 재판연구관에게 했을 뿐 내가 한 판결을 부정했다거나 파기 방침이 정해졌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해명했다. 나중에 이뤄진 검찰 수사에서 이 부장판사가 언급한 대법관은 이전 대법관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법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법원과 청와대의 거래설이 힘을 얻는 이유는 또 있다. 검찰이 외교부를 압수수색해 얻은 자료를 통해서다. 김 전 실장 공관 회동 두 달 전에 작성된 이 문건은 2013년 10월 29일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으로 있던 임종헌 전 차장이 청와대를 방문해 주철기 당시 외교안보수석을 만난 것과 관련돼 있다. 임 전 실장은 이 자리에서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 소송 진행 상황과 향후 방향을 설명한 뒤 주(駐) 유엔대표부 법관 파견을 도와 달라는 청탁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법관 해외 파견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에 중단됐다가 이듬해 부활했다. 매년 한두 명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인데, 대법원장이 전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한다. 2012~2013년에 작성된 법원행정처의 여러 문건에는 중단된 주미 대사관, 주오스트리아 대사관 파견을 되찾아야 한다’ ‘김기춘 비서실장, 이정현 홍보수석 등 청와대 인사들과의 접촉을 시도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도 있다. ‘강제징용 피해배상 소송→ 청와대 요구(재판 지연)→ 대법원 수용→ 법관 해외 파견 요구→ 청와대 수용’이란 거래가 성사된 것이다.

박근혜·양승태 겨누는 검찰의 칼끝


▎양승태 사법부 시절 ‘재판 거래 의혹’ 문건을 다수 생산한 현직 부장판사 정모씨가 8월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금까지 밝혀진 대법원의 재판 거래 정황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동안 발견된 문서를 통해 보여준 태도로 볼 때 청와대가 관심을 갖고 있거나,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은 사건에 대해 재판 전부터 긴밀히 의견을 주고받았을 거란 의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판사 출신인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재판 거래 흥정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법관 사찰은 물론이며 KTX 여승무원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등을 재판 거래의 흥정으로 삼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검찰은 필요할 경우 박 전 대통령도 불러 조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8월 14일에는 구속기간이 만기돼 풀려난 김 전 실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다시 불려 나와 16시간에 걸친 조사를 받았다. 그는 차 전 대법관과의 삼청동 회동 내용을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지는 검찰의 수사는 차 전 대법관을 거쳐 박 전 대통령과 양 전 대법원장에게 향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전 실장과 차 전 대법관은 청와대와 사법부 수장을 보좌하는 2인자였다. 검찰은 임종헌 전 차장을 지난 6월 출국금지 한 데 이어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을 출국금지했다. 임 전 차장의 혐의가 구체적이고, 그가 박 전 처장이나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직접 보고하고 지시를 받아 범행을 공모한 정황이 뚜렷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에 복병이 나타났다. 복병은 스스로 썩은 살을 도려내겠다던 사법부다. 검찰이 내민 압수수색 영장을 번번이 기각하는가 하면 법원행정처는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한 건 지난 6월 15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우회적인 수사 요청 의사를 밝힌 뒤부터였다. 김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발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한 대국민담화에서 “저는 비록 최종 판단을 담당하는 기관의 책임자로서 섣불리 고발이나 수사 의뢰 같은 조치를 할 수는 없다”면서도 “이미 이뤄진 고발에 따라 수사가 진행될 경우 미공개 문건을 포함해 특별조사단이 확보한 모든 인적·물적 조사자료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공할 것이며, 사법행정의 영역에서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수사 또는 재판을 담당하는 분들이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진실을 규명해 나갈 것으로 믿는다”고도 했다.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사실상 수사를 의뢰하는 우회적인 표현이란 게 법조계의 해석이었다.

사법부 내부에선 ‘검찰이 법원행정처를 수사 대상으로 삼아 압수수색하는 게 가당키나 하느냐’는 부정적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검찰도 사법부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법원행정처를 향해 단지 법 집행의 명분만으로 수사의 칼날을 들이대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점에서 김 대법원장의 담화는 치부를 드러내더라도 상처는 도려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담화로 평가받았다.

시민단체 등 일반인들의 고발을 접수하고 수사 개시할 상황을 예의주시해 온 검찰은 김 대법원장의 담화를 수사의 명분으로 받아들였다. 지난 5월 30일 긴급조치 9호 피해자들과 전교조 소속 교사들, KTX 해고 승무원들이 양 전 대법원장을 고발했다.

검찰은 한 달에 걸친 정교한 검토 끝에 7월 2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이규진 전 법원행정처 양형실장 등 관련 인물들의 자택과 사무실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다. 검찰 관계자는 “법원을 향해 겨누는 칼이었던 만큼 그 어느 때보다 법리 검토와 혐의를 입증할 구체적인 증거 확보 등 논리에 한치의 빈틈도 없도록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법원은 임 전 차장의 자택 압수수색 영장만 발부하고 나머지는 모두 기각했다.

김명수 코트의 한계? 법원 잇단 ‘몽니’


▎김명수 대법원장이 자문기구인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로부터 ‘재판 거래’ 파문과 관련한 의견을 듣기 위해 6월 5일 대법원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했다. / 사진:연합뉴스
사흘 뒤(7월 24) 검찰은 영장을 보완해 재청구했다. 이튿날 다시 모두 기각됐다. 법원은 “피의자 양승태, 박병대가 지시 또는 보고 등 피의자 임종헌과 공모하였다는 점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이번에도 임 전 차장 자택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 영장만 발부됐다.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영장이 기각된 뒤 기자들과 만나 “이번 영장 재청구시 범죄혐의가 다수 추가됐고, 소명자료도 수천 건의 파일을 보강한 상태였다”며 “검찰이 관련자들의 e메일을 훼손하거나 변경, 삭제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청구한 보전조치 영장도 모두 기각됐다”고 밝혔다.

압수수색 영장 발부를 놓고 법원의 몽니는 계속 이어졌다. 7월 31일 강제징용 피해배상 소송과 관련한 혐의를 밝히기 위해 검찰은 법원행정처 국제심의관실과 전현직 판사들, 외교부 관련 부서 등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 이번에도 법원은 외교부에 대한 영장만 발부하고 나머지는 기각했다.

검찰이 “다른 사건 기준과 차이가 너무 크다”며 언론에 불만을 표시하자 법원은 즉시 언론에 보낸 입장문을 통해 “법원 구성원이라고 해서 예외적으로 취급할 이유가 없다. 요건이 갖춰지면 영장이 발부돼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같은 혐의를 받는 두 기관(법원행정처, 외교부)에 대한 차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못했다. 검찰 관계자는 “외교부는 참고인에 불과하고, 실제 혐의자는 문건을 작성한 행정처 관계자들이다. 법원의 주장대로라면 오히려 외교부에 대한 영장이 기각됐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7월 31일 검찰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민사 소송 불법 개입 의혹’과 ‘위안부 피해자들의 민사 소송 불법 개입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도 8월 1일 대거 기각했다. 검찰은 행정처 국제심의관실, 징용 및 위안부 소송 관련 문건 작성에 관여한 전·현직 판사들, 외교부 관련부서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외교부에 대한 영장만 발부했다.

기각 사유도 황당하다. ‘(자료에 대해 행정처의) 임의제출 가능성이 남아 있고, 문건 내용은 부적절하나 일개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에 따라 대한민국 대법관이 재판한다고 보기 어렵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8월 1일에 내놓은 기각 사유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의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은 86%였다. 그러나 사법농단 관련 사건의 발부율은 17%에 불과했다. 검찰이 7~8월에 4차례에 걸쳐 22곳의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한 것 중 법원이 발부한 것은 단 4건에 그쳤다.

대법원은 8월 7일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수사협조와 영장심사에 관하여’라는 입장문을 냈다. 잇단 영장 기각에 대한 비난 여론에 대해 대법원은 “구체적 사건의 영장 발부는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장이 관여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개별 법관의 영장심사는 수사에 대한 협조 여부와 연계시킬 수 없는 재판의 문제”라며 “법치주의 원리에 따라 내·외부적인 일체 개입이 허용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행정처가 검찰의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우면서도 일선 법관의 결정에 대해선 영향을 끼칠 수 없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고양이에게 맡긴 생선, 독립 재판부 논의도


▎5월 31일 대법원 앞에서 열린 일제 강제동원피해사건 재판 거래와 대법원 사법권남용 문제 대응을 위한 기자회견에서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원론적으로 맞는 말이다. 법관의 독립적인 재판은 헌법에 보장돼 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해서 법관들이 나름의 양심과 기준을 갖고 판단한 결정을 외부에서 강제할 수는 없다. 만약 대법원이나 법원행정처가 그런 시도를 할 경우 스스로 법관의 독립성을 해치는 모순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사법부의 영향으로부터 독립적인 ‘특별재판부’를 만들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인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8월 14일 사법농단과 관련해 두 건의 법안을 발의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기간 중의 사법농단 의혹사건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기간 중의 사법농단 의혹사건 재판을 위한 특별형사절차에 관한 법률’이다.

피해구제 특별법에는 ▷‘청와대와 협력 사례’로 문건에 명시되는 등 재판의 공정성이 침해된 경우를 재심사유로 규정▷재판의 공정성이 침해되어 재심 청구된 사건에 대한 소송비용 면제▷사법농단 피해자 구제를 위한 피해구제위원회 설치 등의 내용을 담았다. 피해구제위원회는 국가기관 등에 대해 사법농단 피해구제 조치를 권고할 수 있고, 사법농단 사건 당사자와 이해관계인에 대해 조정안을 권고할 수 있도록 했다.

사법농단 재판절차 특례법은 ▷특별재판부의 설치 및 구성▷특별재판부 후보 추천위원회 구성 ▷압수·수색·검증·체포 및 구속에서의 특별영장전담법관 임명▷국민참여재판 의무화 등의 내용이다. 특별재판부 구성은 대한변협이 추천한 3인과 법원 판사회의가 추천한 3인, 비법조인인 시민단체 소속 3인으로 구성된 추천위원회를 통해 추천된다.

박 의원이 제안한 ‘특별재판부’는 ‘특별검사제(특검)’와 같은 논리다. 국회에선 당초 특검을 통해 재판 거래의 전모를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특검을 하더라도 결국 유·무죄에 대한 판단은 사법부의 몫이다. 재판장석에 앉은 사법부가 피고인석에 앉은 사법부의 한 식구를 단죄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수사기관의 경우 특검을 통해 수사의 객관성과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현행 사법절차에선 법원이 관련된 사건에 대한 재판의 신뢰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8월 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법원이 왜 영장 기각을 되풀이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오랫동안 재판권을 쥔 인사들이 수사를 방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홍 원내대표는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 없이 진정한 사법부 독립과 신뢰회복은 불가능하다. 필요하다면 기무사를 전면 개혁한 것처럼 법원행정처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법부가 스스로 내부 적폐를 도려내지 못하면 입법권을 가진 국회가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경고인 셈이다. 이젠 김 대법원장과 사법부 구성원들이 대답해야 할 차례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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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호 (201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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