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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포커스] 조용하던 대구·경북, 정치권 핫플레이스로 뜬 이유 

‘무주공산’ TK 잡는 이가 보수의 중원을 차지한다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이해찬·김병준·김무성 잇따라 방문, 홍준표·황교안·유승민도 달구벌에서 승부수…정권 창출 비전 제시하는 통합 리더십 없이는 공염불에 그칠 수도

정권교체 이후 한산하기만 하던 ‘보수의 심장’ 대구·경북에 여야 유력 인사들의 발걸음이 줄을 잇는다. 예로부터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면 부지런한 정치인들은 이듬해 ‘농사 준비’에 들어가는 법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국면과 맞물린 정치인들의 잦아진 대구·경북행(行) 속내를 들여다봤다.


▎지난해 확장 공사를 마친 대구의 관문 동대구역 광장. / 사진:연합뉴스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시간과 함께 자연발생적으로 떨어진다는 건 정치권의 통념이자 경험칙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임기 초 80%를 웃돌던 지지율이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단임제라는 제도적 특성’ 때문에 퇴임 시기에 다가갈수록 하락의 속도가 더 가파른 게 대통령의 지지율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최저지인 49%(한국갤럽 9월 4~6일 조사)로 떨어지기도 했고 지금은 대략 50대 초·중반을 오간다. 이택수 대표는 “역대 대통령과 비교했을 때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여전히 높다”며 “문 대통령의 임기 초반 지지율이 워낙 높았기 때문에 야당으로부터 비판을 받는다”고 말한다.

떨어져 나온 국정지지율을 자기 것으로 담아내지 못하는 게 한국의 보수당의 현주소다. 한국갤럽의 지난 3월 첫째 주전국 조사에서 12%였던 자유한국당의 정당 지지도는 9월 첫째 주에도 12%에 머물렀다. 바른미래당은 6%에서 9%로 소폭 상승했으나 양당 지지율 합계(21%)가 더불어민주당 지지율(41%)의 반 토막 수준이다.

대구·경북(TK)에서도 보수당은 고전한다. 더불어민주당이 31%의 지지를 얻는 사이 자유한국당은 17%, 바른미래당은 11%에 그쳤다. 이재혁 대구경북녹색연합 대표의 눈에 비친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한심하고 실망스러운 존재일 따름이다. 그는 “대의를 위해 싸우기보다는 아쉬울 게 없는 사람들이 자기 밥그릇을 지키는 데 연연해 하는 정당으로 고착화되는 양상”이라고 질책했다. 그는 김병준 비대위를 향해서도 “실제로 일하는 기간은 대략 6개월 정도”라며 “그렇다면 하루하루가 다이내믹해야 하는데 그런 인식을 주지 못해 아쉽다”고 꼬집었다.

그래도 33%(앞서 한국갤럽 조사)에 달하는 지역의 무당층 민심을 누가 사로잡는가에 따라 힘의 균형추가 옮겨질 수 있는 곳이 대구·경북이다. TK는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에 광역단체장을 안겨 준 유일한 지역이다. 오랜 세월 권력의 산실이자 보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해 왔지만 지역 출신 전직 대통령들의 국정농단, 탄핵, 구속 등으로 정치적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곳이기도 하다.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애잔함과 실망감이 혼재된 이 지역의 정서를 어루만지고 공허함을 채워주는 정당, 정치인은 다음 총선과 당대 권력 투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8월 29일 경북 구미시청을 찾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시청 상황실에서 회의를 마친 뒤 장세용 구미시장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1. TK의 인내·양보 요구하는 김병준 | “대구·경북 지지만으론 자유한국당 미래 기약 못해”


▎9월 11일 대구 중구 서문시장을 찾아 상인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선수를 치고 나왔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8월 20일 취임 후 첫 최고위원회의를 경북 구미시청 3층 상황실에서 열었다. 구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이자 6월 지방선거 당시 대구·경북에서 사상 첫 민주당 시장을 배출한 곳이다. 이 대표는 경제 형편이 어려운 대구·경북을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표의 구미행(行)이 당의 외연을 확장하고 2020년 총선을 겨냥한 포석으로 풀이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김우석 미래전략연구소 부소장은 “부산·경남이 민주당으로 넘어갔으니 남은 마지막 격전지는 대구·경북”이라며 “여권이 대구·경북을 공략하지 못하면 전선이 낙동강 아래로 후퇴하면서 되레 부산·경남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래서일까. 며칠 뒤인 9월 11일 자유한국당 지도부도 구미를 찾았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도 취임 후 처음으로 이날 구미를 찾아 대구시장, 경북지사, 지역 국회의원들이 참여하는 연석 당정협의회를 개최했다. 그에 앞서 구미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하고, 구미산단 내 기업체를 찾아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했다. 오후에는 대구로 이동, 이 지역 여론 형성의 1번지랄 수 있는 서문시장을 찾아 애로사항을 듣는 등 보수 텃밭 다지기에 나섰다.

김 위원장은 이날 대구에서 지역민들의 심기를 건드릴 수도 있는 발언도 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기한 2차 공공기관(122개) 지방 이전 방안에 신중론을 개진한 것이다. 지역 중견 언론인 모임인 ‘아시아포럼21’ 토론회에 참석한 김 위원장은 자신을 참여정부 시절 “공공기관 이전을 강력히 추진했던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2차 이전에 앞서 1차로 한 공공기관 이전을 먼저 평가해 보자”는 의견을 내놨다. 참여정부 시절 단행된 1차 공공기관 이전의 효과를 살펴보고, 완성도를 충분히 높인 상태에서 2차 이전을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해석됐다. 공공기관 이전의 시점이나 의지의 강도에서 자유한국당이 민주당에 뒤진다는 인상을 줄 만한 발언이다. 나아가 그는 대구·경북 주민들에게 양보와 인내를 요청했다. “대구·경북,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대구·경북 지지만 받아서 이 당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디선가 (다른 곳에서도) 힘을 좀 받을 때 제대로 설 수 있다. 섭섭한 것 많고, 원망하고 싶은 것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하여간 그래도 말하자면 힘을 좀 모아 주면 그것이 에너지가 돼 반드시 좋은 정당으로 만들겠다.”

이날 공공기관 이전과 관련한 거듭된 기자들의 질문에도 김 위원장은 자유한국당은 결코 서두르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나중에 지역 언론은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지역 간 불균형을 해소하고 자립적 발전으로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면서 “김 위원장의 발언은 묵과할 수 없다”(매일신문)고 반발하기도 했다. 이 장면을 지켜본 지역의 한 중견 언론인은 “김 위원장은 지역적 귀속성 측면에서 대구 식구라는 개념이 모호한 정치인”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김 위원장은 대구·경북에 자기 지분이 없다. 물론 대구·경북뿐 아니라 전 국민에게도 마찬가지 아닐까. 정치적으로 어필할 사건이 그리 많지 않은 까닭이다. 그는 이제 갓 출발점에 선 정치인이다.”

김 위원장 본인도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의 출신지가 TK라는 점은 그에게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김 위원장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로 재임 중이던 지난해 6월 ‘대경선진화포럼’ 초대 회장을 맡았다. 이 포럼은 서울에서 활동하는 대구·경북 출향인사 80여 명을 회원으로 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출향인사들 사이에서는 올봄부터 ‘김병준 대안론’이 언급됐다고 정치권의 한 인사는 전했다. “자유한국당의 중진을 비롯해 여론 형성에 영향을 주는 TK 출신들이 김 위원장을 눈여겨봤다가 지방선거 참패 후에는 구체적으로 자유한국당 선장으로 미는 분위기였다”고 이 인사는 귀띔했다. 김우석 미래전략연구소 부소장은 “자유한국당 등 야권에서는 마지막 영지니 당연히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곳이 대구·경북”이라며 “김병준 카드도 그가 고령 출신이라 가능했지, 만약 다른 지역이었다면 비대위원장으로 옹립됐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큰 허물 없이 소임을 다하면 차기 총선이나 대선에서 다른 역할이 주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 분위기 탐색하는 김무성 | “전당대회 출마 준비? 기자들이 하는 얘기일 뿐”


▎9월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자유한국당 김무성 의원(오른쪽)이 조명균 통일부장관을 상대로 정치에 관한 대정부질문을 하고 있다. / 사진:오종택
며칠 뒤인 9월 13일 새누리당 당 대표를 역임한 김무성 의원이 대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대구 수성구 소재 수성못 특설무대에서 개최된 ‘제11회 대구 국제재즈 축제’에 잠시 들렀다가 상경했다. 2016년 대구테크노파크에서 지역 상공인과 간담회를 한 이래 김 의원의 대구 공개 행보는 이번이 2년 만이다. 그동안 사적인 방문은 몇 차례 있었지만 언론에 그다지 부각되지 않는 잠행 수준이었다. 이해찬 대표, 김병준 위원장에 이어 김 의원의 방문은 대구가 다시 정치적 핫플레이스로 떠오른다는 해석을 낳기도 한다.

대구 방문에 앞서 김 의원은 이날 오전 정기국회 정치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과 참모들을 호되게 나무랐다. 그는 “대한민국이 직면한 총체적 위기는 문재인 정권이 헌법정신에 어긋난 정치로 체제 전환을 꾀하기 때문”이라고 공세를 퍼부었다. 특히 그는 “헌법에 규정된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를 훼손하는 좌파 포퓰리즘 정책은 펼치는 것은 헌법정신에 어긋난 체제 전환 시도”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청와대가 국정 혼돈과 민생 풍파의 진원지”라며 경제 참모들의 교체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오후 들어 철두철미한 보수의 메카인 대구를 찾은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급진성을 공격하던 오전의 대정부 질문과 겹쳐져 묘한 대비를 이뤘다.

김 의원은 이날 대구행(行)에 대해 “대구 국제재즈 축제 조직위원장이 저의 오래된 지인”이라며 “몇 해 전부터 꼭 와달라고 하던 걸 해마다 거르다 오늘 주호영 자유한국당 의원과 함께 들르게 된 것”이라고 월간중앙에 말했다.

정기국회 기간 중 대구 방문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특별할 게 없다. 지인의 초청을 받고서 몇 년째 미루다 이번에 찾게 된 것이다. 잠시 자리를 함께하는 정도일 뿐 어떤 의미를 둘 방문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김 의원이 내년 2월 전당대회 당권 도전을 앞두고 몸을 푼다는 관측도 한다.

“제가 전당대회 출마 준비를 한다는데 그건 전부 기자들이 하는 얘기일 뿐이다. 오늘 행사장에서도 인사말을 한 것도 아니고, 시민들과 따로 대화한 것도 없다.”

오전 대정부 질문에서는 자유한국당 최다선 의원으로서 정부에 맹공을 퍼부었다. 그간의 잠행 모드를 뒤로하고 정치의 전면에 나서는 것인가?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는다고 했으므로 남은 임기 동안 의정활동을 열심히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차원에서 세미나도 열고 대정부 질문을 하는 것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

어쩐지 대외용 멘트로 들린다.

“허 허~.”

김무성 의원은 자유한국당이 궤멸적 타격을 입은 6·13 지방선거 직후인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부산 중구영도구 당협위원장직을 사퇴했다. 당시 그는 “분열된 보수의 통합을 위해, 새로운 보수당의 재건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사퇴의 변을 밝혔다.

김무성, 킹메이커에서 멈출까?

보수 진영에서는 그가 내년 2월로 예상되는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하리라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 올 11월께 사실상의 출사표를 던질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온다. 8월 말 서민금융, 공화주의 관련 세미나를 여는 등 지난 2월 이후 중단됐던 토론모임 ‘열린토론 미래’ 활동을 재개한 것도 이런 해석을 부추겼다. 전당대회 출마에 대해 즉답은 피하면서도 “언론에서 쓰면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참모들의 표정에서도 그런 기류가 읽힌다. 자유한국당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많은 이가 김 의원의 역할은 차기 주자 양성 같은 킹메이커에 국한하려 하지만 본인이 더 큰 욕심을 낼 수도 있다”고 김 의원 행보의 가변성에 주목했다.

TK를 찾은 김병준 위원장이나 김무성 의원은 모두 정치적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눈치다. 김 위원장의 측근 인사는 그의 대구 방문과 관련해 “원래 호남을 가려고 했는데 여건이 여의치 않아 대구로 간 것”이라고 당 대표의 일상적 활동임을 강조했다. 김무성 의원도 “지인의 초청으로 잠시 다녀온 것일 뿐 별 의미가 없다”고 정치적 의미 부여에 손사래를 쳤다.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팩트(fact, 사실)가 아니라 퍼셉션(perception, 인식)’이라는 말이 있다. 개개인의 속사정을 국민이 알 턱이 없으니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흘러나오는 얘기들에서 정치인에 대한 이미지가 형성되는 법이라고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말한다.

3. 뜸 들이는 홍준표, 황교안 | 대구와의 연고성, 대구의 지지가 정치적 밑천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9월 7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기념관에서 열린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 연장선상에서 9월 15일 미국서 귀국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최근 출판기념회로 눈길을 끈 황교안 전 국무총리도 대구·경북 연고 또는 지지를 지렛대 삼아 정치적 입지를 도모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가 8월 말 전국 성인 남녀 25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범보수 진영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황 전 총리와 홍 전 대표는 각각 2위(11.9%)와 4위(6.2%)에 올라 존재감을 과시했다.(1위는 13.5%의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

정치권에서는 홍준표 전 대표의 정계 복귀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감돈다. 그 역시 9월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또다시 갈등의 대한민국을 들어간다. 내 나라가 부국강병한 나라가 되고 선진강국이 되도록 배전의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지난 두 달 동안 36년 만에 휴식과 힐링의 시간을 보냈다”면서 “내가 나머지 인생을 대한민국을 위해 어떻게 헌신해야 할지 생각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고 다음 단계로 접어들 준비를 마쳤음을 암시했다.

9월 15일 귀국한 그는 마중나온 지지자들에게 “봄을 함께 찾아가는 고난의 여정을 때가 되면 다시 시작하겠다”며 정계복귀를 시사했다. 대표 시절 형성한 친홍(親洪, 친홍준표)계를 기반으로 당권에 도전하거나 내년 4월 경남 창원 성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서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자유한국당 분위기는 냉랭한 편이다. 김무성 의원과 가까운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9월 13일 JTBC [썰전]에서 “자연인 홍준표로서, 대한민국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는 것이지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정부와 관계를 가져가는 데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걱정은 안 하셔도 된다”고 슬며시 딴지를 걸었다. 나아가 홍 전 대표의 고향인 경남 창녕에서 좋은 공기 마시면서 독서와 성찰을 하라고 권유하기도 하는 등 불편한 내색을 숨기지 않았다.

막말 홍준표의 이미지 변신 가능성


▎9월 15일 귀국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36년 만에 처음으로 휴식의 시간을 가졌다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미국 체류 사진. / 사진:홍준표 페이스북
홍 전 대표는 평소 대구와의 인연을 강조해 왔다. 그는 대구에서 초·중·고를 다녔다. 지난해 3월 18일 대선 출마 선언도 과거 자신의 어머니가 좌판을 깔고 채소와 나물을 팔았던 대구 서문시장에서 하는 등 지역의 정서에 호소하는 전략을 폈다. 나아가 대선 후에는 “마지막 정치인생을 대구에서 시작하고자 한다”면서 대구 북을 당협위원장 공모에 나서기도 했다.

당 대표 시절의 막말 논란으로 당의 품격을 떨어뜨렸다는 지적은 그로선 뼈아픈 대목이다. 특히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후보자들이 홍 대표의 지원 유세를 거부하는 등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된 점도 넘어야 할 산으로 와 닿는다. 정치를 재개할 경우 기존의 막말 이미지를 쇄신하고 새로운 면모를 보여줘야 할지도 모른다. 홍 전 대표의 한 측근은 “당 대표로서 보수진영을 사수해야 했던 그가 대표직을 내려놓은 이상 과거보다 자유롭고 달라진 이슈에 접근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그의 변신 가능성을 열어두고자 했다.

지난 대선에서 보수의 유력 후보로 거론된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결국 불출마로 돌아서기는 했지만 보수진영에서는 언제든지 활용 가능한 카드로 거론된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정치와 거리를 두던 그는 9월 7일 수필집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그의 자유한국당 당권 도전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이른바 ‘태극기 부대’를 비롯한 보수 우파 진영은 황 전 총리를 하나의 대안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9월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황 전 총리가 하루빨리 정치 일선에 뛰어들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김 전 지사는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을 지키기 위해 반(反)김정은-반(反) 문재인 연합을 만드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며 “현정부 핵심 세력의 이념적 실체를 잘 알고 풍부한 경험을 가진 황 전 총리가 대한민국을 위해 다시 한번 봉사해 주기를 바란다”고 러브콜을 보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황 전 총리는 보수의 아성이라고 불리는 대구·경북에서 특히 지지를 받는다. 대구·경북은 지역 연고가 없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보수의 대선주자로 두 번이나 밀어준 적이 있다. 알앤써치의 9월 둘째 주 여론조사에 따르면 황 전 총리는 TK에서 15.3%의 지지를 얻는 등 여타 보수 정치인을 더블스코어로 앞섰다. 황 전 총리는 TK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한 소감을 묻는 월간중앙에 “관심은 감사하다”면서도 “지금은 (답을 하기가) 좀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4. 벙어리 냉가슴? 유승민 | 지역 대표성 있지만 다음 총선 돌파해야


▎지난 6월 지방선거 당시 대구 칠성시장을 찾아 유권자에게 지지를 호소한 바른미래당 유승민 공동대표. / 사진:연합뉴스
대구 동을을 지역구로 가진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은 앞서 언급한 리얼미터의 8월 말 여론조사 결과 범보수 진영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13.5% 지지율로 1위에 올랐다. 하지만 보수의 본산이라 할 대구·경북 지지율은 14.3%로 황 전 총리(17.6%)에 뒤처졌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찬성과 자유한국당 탈당으로 보수의 본류에서 이탈한 상태다. 이근성 폴스미스 대표는 “범보수 진영에서는 여전히 유 의원이 지역의 대표성을 가지는 게 맞는다”면서도 “유 의원을 상징하던 TK 대표성과 지명도가 앞으로도 그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지는 의문”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지역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결별하면서 덧씌워진 ‘배신자’ 프레임 극복을 유 의원의 숙제로 꼽는다. 현재로서는 지역의 대표성과 그의 지지도가 반드시 일치한다는 보장이 없는 까닭이다. 유 의원이 다음 총선에서 떨어진다고 하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당선을 확신하는 사람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라는 얘기들이 지역 정가에 나돈다. 이근성 대표는 “유 의원은 2020년 총선을 돌파해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처지”라고 언급했다.

정치는 생물과도 같다. 1년 반 이상 남은 2020년 총선까지 지금의 정치지형이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다. 자유한국당 김용태 사무총장은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이 참여하는 범보수 대통합을 주장한다. 총선이 임박할수록 정치권 이합집산의 동력이 커질 수도 있다. 유승민 의원도 바른정당의 정치 역정을 기록한 백서 [개혁보수의 길 385](지난 8월 발간)에서 “자유한국당이 부서져서 보수의 가장 큰 당으로 흡수, 통합해 다음 총선을 치러야 한다”며 보수 통합론을 언급했다. 부서진 자유한국당이 바른미래당으로 흡수되는 그림이지만 총선에서 보수가 뭉쳐야 승산이 있다는 점에 또 다른 방점이 가 있는 발언이다.

그는 평소에도 “개혁 보수의 큰길 위에서는 자유한국당이든 어디든 통합의 길은 열려 있다”는 원칙론을 피력해 왔다. 게다가 “가급적이면 총선 전에 가치와 명분 있는 통합으로 보수가 단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지난해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인 까닭에 보수층이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다”며 “재판이 종결되면 보수 유권자들도 마음의 정리를 해나가지 않을까 싶다”고 전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법절차가 매듭지어지면 대구·경북 유권자들도 미래지향적인 선택을 하리라는 기대감이 깔린 발언이라고 하겠다. 유 의원의 미래와 관련해 영남일보 박재일 논설위원은 “여전히 전국적 규모에서 확장성을 갖춘 보수의 잠룡”이라면서도 “그에게 진정성을 보여줄 기회가 TK에서 주어지는지 여부가 관건”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보수의 유력 정치인들이 TK에 공을 들이지만 그 성과를 장담하긴 어렵다는 반응도 많다. 정치인들의 TK 방문이 보수 정당의 큰 비전을 제시하는 화끈한 리더십을 보여주기보다는 TK 후광에 기대려는 잇속으로 비쳐진다면 자충수에 그칠 수 있다는 게 서성교 바른정치연구원장의 관전평이다. 서 원장은 “지금의 자유한국당에는 민심을 수습하고 통합을 하는 지도력이 요구된다”며 “TK 주민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정권 창출 가능성에 대한 비전”이라고 강조했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진영은 아직도 미완으로 남아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문제에 대해 어정쩡한 입장을 취할 게 아니라 과감하게 정리하고 미래로 나아가려는 용기가 절실한 시점이다."

-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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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호 (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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