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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유민호의 서양사 현장르포|승자의 조건, 패자의 교훈(1)] 카이사르 암살 장소에서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정의(定義) 

“로마를 더 사랑했기에 황제를 죽였다” 

‘내가 옳다’는 확신은 언제나 역사의 반동(反動) 부딪히게 돼… 건물 위에 건물 짓는 로마의 전통, 진보의 정석 보여줘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은 현대 정치제도의 요람이다. 수많은 도시국가가 명멸하는 새 민주정부터 참주정(僭主政)까지 다양한 정치실험이 이뤄졌다. 로마 1000년 역시 공화정과 제정(帝政)을 길항하며 숱한 에피소드를 기록에 남겼다. 이제 막 ‘사춘기 민주주의’에 접어든 한국이 고대 그리스로마에 다시 한 번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카이사르의 암살 현장. 현재 고대 로마신전 유적지 내에 들어서 있지만, 암살 당시에는 폼페이 극장 회의장이다. / 사진:유민호
슬로건의 시대다. 그러나 어릴 때 거리 곳곳에서 봤던 ‘쥐박멸 포스터’, 아니 ‘간첩 신고해서 포상받자’는 식의 반공표어와는 다르다. 운율에 맞춘, 짧고 명확한 슬로건이 아니다. 결혼식에서 듣는 주례사처럼, 형용사 부사가 대폭 추가된 ‘수식어 홍수’로서의 슬로건이다. 단어 하나로 명확하게 와 닿지 않고 우주·역사·시대를 가르는 엄청난 명분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명확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주어다. ‘우리 모두 함께 공동체 민족 동포 역사’라는 단어가 슬로건의 주어다. 뭔가 원대하며 감성이 넘치는 말이다. 쥐박멸과 간첩신고 포스터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쥐와 간첩은 ‘나’와 ‘가족’이 주어다. 쥐와 간첩을 민족과 동포 모두 나서서 잡자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이란 단어를 되새기며 확인하는 것이 서양인이다. 구체적인 단어나 형상을 통해 생각을 다지고, 상대방의 눈과 관심을 끄는 식이다. 그러나 동양인은 다르다. 목숨을 바칠 정도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사랑한다’는 말 자체가 필요 없다. 밤 껍질을 까서 권하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동서양의 그림을 비교해 보자. 서양의 경우 인간을 중심으로 한, 꽉꽉 채워 넣는 그림이 주류다. 교회의 성화(聖画)를 보면 예수와 마리아만이 아니라, 12제자에서부터 그림제작에 관련된 모든 스폰서로 메워져 있다. 식물·동물을 전면에 내세운 네덜란드 정물화조차 그렇다. 꽃 하나, 학 두세 마리가 아니라 동물원과 식물원의 총출동 같은 그림이다. 동양은 다르다. 산수화가 그러하듯, 여백이 그림의 중요한 요소다. 구체적 형상 뒤를 지키는, 배경으로서의 하얀 공간이 중요한 메시지로 활용된다. 검은 먹물로 표현된 세계만이 아니라, 풍경 뒤에 드리워진 흰 여백을 통해 화가의 의도를 이해하게 된다. 강력 쇠창살로 덮여 있기에 감옥탈출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쇠창살 사이의 공간이 협소하기 때문에 도망갈 수가 없다.

동양적 사고 때문이겠지만, ‘우리 모두 함께 공동체 민족 동포 역사’라는 감성언어가 넘칠수록 그 여백, 즉 그 이면의 공허함이 한층 더 확연해진다. 우리 민족을 반복할수록 ‘사랑해 사랑해’라면서 보채는 느낌이 든다. 한국 정서에서 ‘사랑’이란 말을 입에 달고 있는 사람을 신뢰할 수 있을까?

정적(政敵)을 향한 노정객의 거수경례


▎밥 돌 전 상원의원(왼쪽)이 12월 4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의회 중앙홀에 안치된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의 유해를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그는 한때 대권을 놓고 부시 전 대통령과 공화당 후보로 경쟁했다.
‘우리 모두 함께 공동체 민족 동포 역사’를 말하는 구호가 클수록 거꾸로 소외감과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 100주년, 50주년, 25주년, 10주년에 즈음한 성대한 기념식이 엄청난 슬로건과 함께 거행되지만, 정작 주변을 보면 삭막하다. 학교와 직장, 가족 안에서조차 흩어지고 갈라진 상태다. 조금만 큰 조직으로 들어가면, 온갖 유형의 파벌이 날을 세운 채 싸운다. 돈이나 권력의 문제가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갈증과 고통이 가슴과 머릿속으로 파고든다. ‘우리 민족’이란 말이 혁명적 슬로건과 함께 남발될수록, 인간으로서의 품(品)과 격(格)에 대한 갈증이 더해진다.

2018년 11월 30일 타계한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추모식장에 밥 돌(Bob Doll) 전 상원의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1988년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부시 전 대통령에게 패했던 인물이었다. 95세의 정치 라이벌은 주변의 도움으로 휠체어에서 일어나 왼손으로 거수경례를 올렸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입은 부상으로 오른손을 위로 올리지 못하기에 왼손을 올렸다. 45초간의 드라마였다. 공화당 정치인으로서, 2차대전 퇴역군인 출신으로서 사자(死者)에게 경의를 표시한 것이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가슴과 영혼이 뜨거워졌다. 비디오를 본 사람들이라면 아마 모두 침묵 속의 은은한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 모두 함께 공동체 민족 동포 역사’라는 감성언어를 수백만 개 동원해도, 100세를 눈앞에 둔 이 노병(老兵)의 거수경례를 능가할 수 없다. 바로 한국인이 찾아헤매는 품과 격으로서의 순간이다. 왜 한국에서는 저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워졌을까. 언제부터 한국이 아닌, 외국을 통해 아름다운 기억을 되살리게 됐을까.

빌딩 세우듯 역사도 똑바로 세울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수직으로 세워졌다는 역사를 자세히 보면 한층 더 굽어 있고, 아니 미로(迷路)에 가깝게 느껴진다. 달라진 것은 완장을 찬 경비원과 감독관청이다. 눈에 뭐가 씌었는지, 굽고 비뚤어진 역사를 수직으로 정확히 세웠다고 자화자찬한다. 자로 잰 뒤 증거를 들이밀면 ‘아니면 말고’라는 식의 빈정거림으로 대응한다. 서너 번 얘기를 해도 얘기가 안 통한다.

완장 주인이 바뀔 날만 기다렸지만, 과연 새 주인이 역사 문제를 공정히 처리할지는 의문이다. 업그레이드된 ‘역사 민족 대통합’이란 슬로건과 함께 한층 더 피곤하고 삭막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초기와 달리 흥미를 느끼는 관객이 급증하면서 좀 더 자극적인 역사 관련 이벤트도 등장할 것이다. 물론, 하늘의 별이라도 딸 듯 황홀한 수식어도 더더욱 늘어난다.

인간의 자정능력은 상상이상이다. 막힌 듯하지만, 노력하는 순간 출구가 열린다. 에스프레소 한 잔도 못 마시던 몸이지만, 나폴리에 도착해 매일 조금씩 마시기 시작하면 한 달 내로 나폴리타노처럼 마실 수 있게 된다. 보통 나폴리타노처럼 하루 5잔씩 마셔도 밤잠을 설치는 일은 없다. 목욕 중 미끄러져 한번이라도 허리를 삔 적이 있다면, 등산할 때 눈길을 걸을 때 저절로 주의를 하게 된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사기를 당하거나, 뭔가 피해를 당할 경우 반대로 얻게 되는 교훈도 많다. 개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학습능력을 통해 비슷한 실패를 두 번 다시 당하지 않도록 행동하게 된다.

‘우리 모두 함께 공동체 민족 동포 역사’라는 말이 아무리 찬란한 수식어로 포장됐다 해도, 두세 번만 경험하면 알게 된다. 척하면 삼척동자다. 그런데 왜 5년마다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면서 모두를 피곤하게 만들까. 개인과 집단 사이의 괴리, 틈 때문이다.

‘제로섬의 역사’에선 팀워크 기대 못해


▎2015년 10월 정부의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국정화 입장과 관련해 서울 강남구 교보타워 네거리에 각 정당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관점에 따라 서로의 역사를 악(惡)으로 몰아가는 ‘제로섬의 역사’를 보여준다.
아무리 자정능력이 뛰어난 개인이라도, 집단으로 포개지면 다르다. 개개인의 자정능력을 전부 합친 것이 집단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정지수 하락의 법칙’이라고나 할까. ‘100+100=200’이 아니라 100, 심지어 마이너스로까지 추락하는 경우도 있다. 모이면 모일수록, 많으면 많을수록 엉망이 된다. 예비군훈련소는 마이너스 집단의 좋은 본보기다. 아무리 엘리트 사회인이라도, 예비군복을 입고 훈련에 참가하는 순간 오합지졸로 변한다. 땅바닥에 눕기는 보통이고, 산불주의 표지판 앞에서 담배꽁초 버리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집단으로서의 자정지수가 어떨지는 개인만이 아닌, 그 사회와 국가의 수준에 달려 있다. 프랑스 프로축구팀을 보면 프랑스 국적 소유자는 3할 미만이다. 아프리카와 동부유럽에서 데려온 용병이 대부분이다. 이들 용병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본국에 돌아가면 ‘동네축구’ 선수로 돌변한다는 것이다. 몸을 사리기도 하지만, 팀워크가 안 된다는 것이 더 큰 이유다. 빈 공간에 넘겨 슛으로 연결시키는 패스 대신, 공을 잡는 순간 단독 드리블로 나가는 것이 아프리카 축구의 현장이다.

프랑스인은 과거 프랑스 식민권을 중심으로 한 현장에 가서 다크호스 발굴에 나선다. 동네축구에서는 당나귀 같은 존재지만, 프랑스 프로팀에서 글로벌 스타가 될 천리마를 찾아낸다. 월드컵 우승까지 차지한 프랑스 축구팀의 저력은, 바로 아프리카에 흩어진 광범위한 선수 발굴 네트워크에 있다. 한 명만 잘 발굴해내서 ‘납품’할 경우 선수는 물론, 납품 브로커도 백만장자 자리에 올라선다. ‘1+1=0 또는 -2’로 추락하는 당나귀 축구가 아니라, ‘1+1=3’이상의 천리마 축구로 만들어내는 프랑스 축구의 비밀이다.

슬로건 문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건, 역사의 교훈에 관한 부분이다. 역사 세우기란 이름으로 벌어지는 ‘편 가르기 역사’가 아니다. 역사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단죄의 심판이 아닌, 말 그대로 교훈으로서의 역사다. 나쁜 점 좋은 점을 현실에 비춰 분석한 뒤, 좋은 점을 차용하고 나쁜 점은 개선해 나가는 식의 역사관이다.

프랑스에서의 나폴레옹에 대한 평가는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50대 50이다. ‘혁명 이념을 전파한 유럽의 해방자 vs 종신 황제자리에 오른 독재자’라는 극단적인 평가가 양립한다. 황제 독재자라고 비난하면서 파리 내 석상을 부수고, 고향 생가에 가서 불을 지르는 식의 역사세우기가 아니다. 반대로 혁명을 전파한 해방자를 기리는 절세의 위인으로서의 용비어천가도 없다.

인간의 삶에서 명암은 기본이다. “그렇게 착하고 예의 바르던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일을…”은 사실 인간에 대한 무지다. 착하고 예의가 바르다고 해서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 자체가 이상하다. 우체국·도서관·국민의무교육·운하 등을 만든 치적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왜 그때 황제로 나서면서 유럽의 해방을 탄압했는지에 대한 분석과 교훈을 찾아내는 식의 역사관이 나폴레옹을 보는 눈이다. 관점에 따라 세우고 무너뜨리지 않고, 그대로 있던 부분들을 분석해 교훈으로 삼는 것이다. 따라서 나폴레옹은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50대 50의 평가로 남을 듯하다. 이기고 지는 식의 ‘제로섬(Zero Sum)’이 아닌, 양쪽 모두에 활용될 ‘윈윈(Win Win)’의 역사다.

역사의 지층(地層)에 묻힌 영웅의 기억


▎BC 44년 3월 15일 원로원 의원들에게 살해된 카이사르(왼쪽 아래)가 한 때 경쟁자였던 폼페이우스의 조각상 아래 쓰러져 있다. 카이사르 암살 관련 그림 가운데 가장 사실적이라고 평가받는 장 레온 제롬의 1867년 작이다.
2018년 11월 말 로마에 도착하는 순간, 기원전 44년 3월 14일에 벌어진 역사의 현장으로 향했다. 고대 로마의 종신독재자,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가 암살된 날이다. 영국의 문호(文豪) 셰익스피어가 명명한 ‘배신의 날’이다. 56세 나이로 암살이란 극단적인 방법에 의해 세상을 떠난 로마의 영웅이자 비극을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카이사르가 암살된 장소는 전 세계 고고학자의 주된 연구 주제 가운데 하나였다. 폼페이(Pompei) 극장 내 회의장이란 점은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어디가 극장 회의장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유럽 도시의 특징이지만, 건물이나 집의 기반이 되는 것은 원래부터 들어서 있던 거주지다. 로마 시대 건물을 기반으로 하면서 그 위에다 다시 집을 짓는 식이다.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차례 같은 건물 위에 증축하기 때문에 밑으로 파내려 갈수록 고대도시의 흔적이 계속해서 나타나게 된다. 로마의 땅을 10m 아래로 파내려 갈 경우 고대 유물유적으로 채워져 있다고 보면 된다.

로마만이 아니라, 나폴리·피렌체·밀라노·이탈리아 거의 모든 대도시의 지하는 고대유물 유적지다. 관광용 로마의 유적지가 평균 지반보다 10m 아래에 있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폼페이 극장의 위치는 알지만, 위에 건물이나 집이 새롭게 들어서 있기 때문에 정확히 어디인지 확인하기 어려웠다.

암살 장소가 어디인지, 고고학계 모두가 인정한 때는 불과 5년 전인 2014년 10월이다. 스페인 국립연구소(CSIC)의 철저한 현장조사 끝에, 로마 한복판에 들어선 고대유적지 ‘라르고 알젠티나(Largo di Torre Argentina)’ 내라고 결론 지었다. 현재 로마에서 폼페이 극장의 흔적은 99% 사라진 상태다. 10m 이상 파고 내려갈 경우 찾을 수 있겠지만, 그 위에 세워진 건물들을 고려할 경우 먼 미래의 문제다. 아래로 내려가면서 파는 동안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철 로마는 한산하다. 여름철보다 가격도 저렴하고, 시간을 갖고 천천히 살펴볼 수 있다. 라르고 알젠티나 근처 카페에 들러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 물어봤다. 고맙게도 동행해서 정확히 알려줬다. 라르고 알젠티나 남서쪽 끝부분이다. 성지순례는 아니더라도, 로마의 영웅을 기리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있을 걸로 예상했다. 전혀 반대다. 단 한 명도 없이, 야생 고양이만 넘치는 쓸쓸한 유적지다.

원로원들에게 스물세 번 찔린 황제


▎로마 카피톨리네(Capitoline) 언덕에서 바라본 로마 포럼 (Roman Forum). 신전, 바실리카(공회당), 기념비 등의 건물로 구성돼 로마가 존속했던 시간 동안 도시의 공공기능을 전담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 사진:유민호
라르고 알젠티나는 기원전 4세기 이전에 세워진 로마 신전 유적지다. 폼페이 극장은 로마가 뻗어나가던 기원전 52년에 세워졌다. 감히 고대 신전을 부실 수는 없으니까, 폼페이 극장이 신전을 낀 채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흥미롭게도 폼페이는 원래 카이사르의 정적(政敵)에 해당되는 군인 정치가다. 지중해의 해적을 소탕한 영웅으로, 카이사르보다 먼저 유명해진 장군이다. 그러나 카이사르와 대적하는 과정에서 도망을 갔고, 결국 이집트인에 의해 살해된다. 폼페이 극장은 그의 무공(武功))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기념물이다.

그러나 같은 터지만, 폼페이 극장이 아니라 로마 신전 유적지로서 복원돼 모두에게 선보이고 있다. 폼페이는 말할 것도 없고, 서양사의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카이사르이지만, 로마 신전에 비교하면 스쳐 지나간 역사에 불과하다.

찾는 사람 하나 없는 영웅의 암살현장에 서서, 2063년 전에 벌어졌던 피의 현장을 상상해 봤다. 무려 23번이나 칼에 찔려 숨진다. 암살에 가담한 인물은 카시우스를 비롯한 원로원 정치가 60여 명이다. 카이사르 한 사람을 중간에 놓고 칼로 난도질을 하는 과정에서 원로원 정치가 몇 명이 다치기도 했다. 당시 로마 원로원 정치가의 수는 모두 900명이다. 약 7% 정도가 암살에 가담한 셈이다.

셰익스피어의 소설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에서 유래된, ‘브루투스 너 마저(Et tu, Brute)’라는 말은 카이사르 최후의 유언처럼 전해지고 있다.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의 애인인 세르비리아의 자식이다. 카이사르가 친자식처럼 사랑했던 원로원 정치인이 브루투스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친한 관계지만, 공화정을 부정한 독재자란 점에서 암살에 동조한다. 주동자 카시우스가 의도적으로 브루투스를 끌어들였다고 볼 수도 있다. “카이사르가 친자식으로 여겼던 브루투스조차 독재자 암살에 참여해 정의를 실천했다.” 브루투스는 이후 60여 명의 원로원 암살단의 상징으로 떠오른다.

암살 사건 하루 뒤인 기원전 44년 3월 15일, ‘의거(義擧)’의 동기를 세상에 알리겠다며 브루투스가 로마시민을 끌어모은다. “카이사르를 사랑했지만, 로마를 더더욱 사랑했기에 암살에 참여했다”는 말은 모두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연설이다. 그러나 카이사르의 오른팔 격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Marcus Antonius)가 행한, ‘원로원 암살범=로마 영웅 살인자’라는 격정적인 연설은 브루투스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원로원 정치가에 대한 시민들의 비난과 함께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로마의 반역자로 추락한다. 이후 승세는 원로원 손에서 영원히 떠나게 된다.

나중에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안토니우스도 자살하면서, 최종 승자는 카이사르의 양자인 36세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Gaius Octavianus)로 낙찰된다.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 탄생이다. 무려 41년간 재임하면서 로마를 공화정에서 제정(帝政)으로 변모시켰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Polis)처럼 규모가 작은 경우 공화정이 통하지만, 유럽-아프리카-서아시아로 연결된 대제국의 경우 보다 강력한 리더십과 발 빠른 군사행정체제가 필요하다.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2.0을 창조해낸 설계사인 셈이다.

로마 2.0을 일궈낸 아우구스투스의 치적은 ‘1+1’의 결과가 2가 아닌 3, 아니 100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 본보기다. 로마 시민 대부분이 아직 공화정 체제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시기에, 공화정의 명분을 가미한 대제국 종신황제 체제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몸집은 물론 정신도 크고 성숙해가는 로마에 맞는, 새로운 체제를 준비하고 반대자조차 포용한 대통합 황제가 바로 아우구스투스다.

공화정 위에 제정을 세운 아우구스투스


▎로마 포포로 광장(Piazza Popolo)의 오벨리스크. 이집트 람세스 2세(Ramesses II)의 무덤 앞을 지키던 대리석 조각이다. 대제국 로마는 정복지의 모든 것을 흡수 통합해 진화시킨 하이브리드 파워이기도 하다. / 사진:유민호
카이사르의 죽음은 그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만든 토양이 됐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카이사르가 암살되지 않은 채 종신 독재자로 살아남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카이사르 시대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카이사르가 사라진 순간 로마전체가 내전상태로 돌입했을 가능성이 높았을 터다. 공화정에서 갑자기 종신독재체제로 간다는 점에 대한 준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짧은 시기지만 카이사르가 종신 독재자로 있다가, 이어 사실상 내전상태를 거친 뒤, 형식은 공화정 내용은 종신 독재체제로 간 것이 아우구스투스다.

원래 아우구스투스란 말은 원로원이 만장일치로 부여한 호칭이다. ‘존엄자(尊嚴者)’란 의미로 원래는 공화정 때의 최고 권력자에게 주어지던 호칭이다. 제정을 연 옥타비아누스지만, 마치 공화정의 위임에 의한 대표인 것처럼 행동한 것이다. 카이사르처럼 원로원 자체를 아예 무시하고 독재에 나선 것이 아니다.

2019년 한국은 1+1을 얼마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긍정적인 답변보다 부정적인 반응이 더 많을 듯하다. 강조하지만,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공화정을 말살하고 등장한 통치자가 아니다. 황제체제로 넘어가기는 하지만, 공화정의 장점도 곳곳에 활용했다.

한국 상황을 보면 그 같은 여유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내로남불’이란 말은 현재의 상황을 한마디로 압축한 증거다. ‘내불남로’(나는 불륜, 남은 로맨스)까지는 아니더라도, ‘내불남불’(나도 남도 불륜)이나 ‘내로남로’(나도 남도 로맨스)란 자세가 있다면 적어도 1+1을 2 미만으로 떨어뜨리지는 않을 듯하다. 광대하고 자극적인 감성 슬로건을 내세우기보다, 상대의 입장을 나와 똑같은 기준으로 대하는 이성적 결의가 아쉽고도 그립다. 암살로 끝난 카이사르 같은 인물은 이미도 넘치고 넘친다. 한국의 아우구스투스는 언제쯤 나타날 것인가.

※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 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 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1901호 (201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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