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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현의 우리가 몰랐던 일본, 일본인(14)] 노(能)의 대부 제아미의 ‘꽃이 전하는 바람의 말’ 

진정한 꽃은 모진 바람에도 피어 있나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일본 독자적 무대예술
인생 역시 전후좌우에서 제3자의 눈으로 성찰해야


▎2015년 당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부인인 미셸 오바마(왼쪽 둘째)가 일본 교토의 유명 사찰 기요미스데라(淸水寺)에서 일본 전통극 ‘노’를 감상하고 있다.
인생은 1막밖에 없는 연극이다. 연극은 막간도 있고 1막·2막이 존재한다. 오늘 못하면 내일 잘하면 된다. 인생은 한 번뿐이라서 이번 생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람이 순간을 아껴 사랑하고 모든 힘을 쏟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런 까닭도 모르고 태어나 인생이란 텅 빈 무대에 오른 인간은 이유도 없이 생로병사를 거쳐야만 한다. 인생이란 연극을 어떻게 수행하면 좋을지 일본 공연예술의 하나인 노(能)를 완성한 제아미(世阿彌, 1363~1443)의 예술론과 인생론을 들어보자.

노는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무대예술로 일본판 뮤지컬이다. 노는 계승돼 있는 연극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일본 독자적인 무대예술이다.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연극뿐만 아니라 춤과 노래의 요소도 있는 음악극으로 오페라와 대비되기도 하지만 같은 악극에서도 그 차이점에 눈길이 간다. 가면의 일종인 노멘(能面)을 써서 연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가면극이라고 할 수 있다.

가부키가 현실 세계를 그린다면 노는 불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몽환적 세계를 그린다. 일본 문화 특징의 하나인 양식화를 지닌 대표적 예술 장르다. 엄격한 틀 속에 규격화돼 있다. 노를 통해 깨달음을 의미하는 ‘꽃’을 표현하는 예술로 승화시킨 사람이 제아미다.

일본의 영화감독인 구로자와 아키라(黒澤明, 1910~1998)의 영화 [거미의 성](1957)은 셰익스피어의 [멕베스]를 원작으로 한다. 역사적 배경을 일본의 전국시대로 옮기고 각색해 노로 재해석한 게 이 영화의 특징이다.

노는 무사들의 충성심·기개·무사도 등의 이야기를 다룬다. 대체로 무사 계층이 선호했던 극예술이다. [거미의 성]에서 작품의 구성, 인물의 표정과 움직임, 촬영 기법에는 노의 양식을 도입했다. 촬영도 노의 형식을 살려 인물의 전신을 포착한 풀샷을 자주 사용하는 한편, 전신의 동작으로 감정을 표현했다.

나라시대부터 서민들에게 사랑받아 온 가무음곡과 신에 대한 봉납(奉納)의 춤을 집대성해 노로 승화한 것은 가마쿠라시대 후기부터 무로마치시대 전기 사이다. 민중의 예능이 무로마치시대에 활발해진 선종(禪宗)이나 수묵화 등의 영향을 받아 막부와 귀족 계급의 보호로 세련미를 더해 간 것이다.

“진기함과 신선함 갖춰야 관객이 재미 느껴”


▎노에 등장하는 배우들. 가면의 일종인 노멘을 써서 연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노는 가면극이라고 할 수 있다.
제아미는 일본 연극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다. 제아미가 독자적인 예술론인 [풍자화전(風姿花傳)]을 저술한 것은 셰익스피어가 등장하기 200여 년 전이다. 그의 예술론은 현재의 연기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책은 공연예술의 수련방법·미학·역사·연출론을 말하고 있다. 600여 년 전에 나온 종합 연기지침서인 것이다.

지금이야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그의 저서인 [16부집(十六部集)]이 발견된 것은 메이지 16년(1883)이다. 그때까지는 오랜 세월 동안 일반인뿐만 아니라 노의 연기자인 노가쿠시(能樂師)에게도 거의 잊혀졌다.

제아미가 남긴 말에서는 자신의 예술과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엿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국적과 시대를 초월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혜를 전해주고 있다.

제아미는 ‘노를 감상하는 관객에게 어떻게 하면 감동을 줄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감동의 원천을 추구한 예술가였다. 그에게 감동의 완성은 ‘진정한 꽃’이 되는 것이다. “꽃은 계절에 맞춰 핀다. 계절이 바뀌어 피는 꽃이야말로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 노 역시 진기함과 신선함을 갖춰야 관객이 재미를 느낀다.”

제아미는 일본 남북조시대인 1363년 야마토 4좌의 인기배우였던 간아미(觀阿彌)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2세 때 이마구마노(今熊野)에서 아버지와 함께 사자춤을 추면서 인기배우가 된다. 그때 젊은 쇼군인 18세의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 1368~1394)를 만났고, 이후 제아미는 그의 총동(寵童)으로 지근(至近)에서 쇼군을 모시게 됐다.

총동이란 젊음과 미의 상징으로, 불교에서는 아름다운 어린이를 관음의 화신으로 보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최고의 문화인이었던 니죠 요시모토(二条良基)도 제아미를 편애한 사람 중 하나로 [고킨슈(古今集)] 등 고전이나 시의 일종인 렌카(連歌)를 가르쳤다. ‘시절의 꽃’이 피던 때였다.

당시 쇼군이나 구게(公家, 조정 귀족) 등 후원자는 신흥 예술에 매우 중요한 존재였고, 쇼군가(家)의 눈에 든 것은 간아미와 제아미 부자에게는 다시없는 기회였다. 그런데 제아미가 20세가 조금 넘었을 무렵, 아버지 간아미가 여행 도중 스루가(駿河)에서 사망한다. 이후 제아미는 명실상부한 극단 간세자(觀世座)의 리더가 돼 연출·주연을 겸하는 주연배우로 극단을 이끌어 나간다.

상연 목록에서도 아버지의 레퍼토리이자 일본의 고전문학 작품인 [헤이케모노가타(平家物語)] [이세모노가타(伊勢物語)] [겐지모노가타(源氏物語)] 등을 개작·편곡하는 것 외에도 수많은 신작도 다뤘다.

순조로운 인생을 보내던 제아미를 계속 괴롭혔던 것은 후계자 문제였다. 제아미는 아이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남동생인 칸제시로(觀世四郎)의 아들 온아미(音阿彌)를 양자로 맞았다. 그는 이때부터 자신의 예능을 전승하기 위해 [풍자화전] 집필을 시작했다. 그것은 현재 시각으로 보는 순수 예술론이 아닌 자신의 후계자들이 1인자의 지위를 유지하자면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가르치는 매뉴얼과 같았다.

그런데 오랜 세월 아이가 생기지 않던 제아미 부부에게 장남인 쥬로 모토마사(十郎元雅) 등 세 자녀가 생긴다. 후계자로 정한 온아미와 친아들인 모토마사 사이에서 제아미는 고민한다. 제아미는 1418년에 전편이 완결된 [풍자화전]을 친아들인 모토마사에게 전한다.

쇼군 요시미쓰의 사랑을 받은 제아미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 관계에도 변화가 생긴다. 요시미쓰는 만년(晩年)에 제아미의 라이벌인 노의 배우 이누오(犬王)를 총애했다. 요시미쓰는 “노의 1인자는 도아미(道阿美, 이누오의 별칭)”라고 순위를 매겼다.

뒤늦게 얻은 장남의 객사와 차남의 출가


▎노를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되는 제아미를 형상화한 인형.
요시미쓰의 다음 쇼군이었던 요시모쓰가 1428년에 죽고 6대 쇼군 요시노리가 후계자가 됐다. 쇼군 즉위의 성대한 사루가쿠 공연에서 배우로 나선 것은 제아미가 아닌 양자 온아미였다. 이렇게 온아미의 시대가 오고 극단 간세자는 주류인 온아미파와 비주류 제아미-모토마사파로 분열됐다. 그런데 이 무렵 제아미의 차남은 출가하고, 2년 뒤에는 장남 모토마사가 30대 전반 젊은 나이에 객사한다.

후계자 모토마사를 잃은 제아미가 마지막으로 믿을 곳은 사위 곤파루 센치쿠였다. 만년의 제아미는 예론 등 자신이 만들어낸 사상으로서 ‘노’를 센치쿠에게 전했다. 그러던 중 제아미에게 더 큰 시련이 찾아온다. 1434년 72세의 제아미는 갑자기 교토에서 추방당한 뒤 사도(佐渡)로 유배형에 처해진다.

1441년 쇼군 요시노리가 살해되자 요시마사가 쇼군이 된다. 톱스타로서 온아미의 지위는 계속됐다. 이 온아미에게 계승되는 것이 지금의 간세가(觀世家)이다.

제아미가 언제 어디서 사망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간세가의 전승으로는 1443년의 일로 여겨지고 있으며, 그에 따르면 향년 81세였다. 사도에서 최후를 맞이한 것으로 본다.

제아미는 노에 다른 예능과는 전혀 다른 가치를 부여했다. 이른바 ‘브랜드화’했던 것이다. 그 브랜드 이미지가 ‘유현(幽玄)’이다. 유현이란 일본의 미의식 중에서 특히 제아미가 강조한 미의식으로 우아함을 뜻한다.

원래 제아미가 속한 야마토 사루가쿠(大和猿樂)는 흉내 내기 예능이었고, 그와 라이벌 관계였던 오미 사루가쿠(近江猿樂)는 천녀(天女)의 춤을 중심으로 한 유현미가 돋보였다. 노에 그 유현미를 도입한 것이 제아미였다.

그럼 유현이란 무엇인가? 제아미는 [화경(花鏡)]에서 “특히 이 예(藝)에서 유현의 풍치가 제일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12~13세의 소년이 가면인 노멘을 쓰지 않고 무대에 있는 모습을 유현의 가장 좋은 예로 들었다.

노의 미는 노래, 춤, 악기 연주, 호화로운 의상 등 각 요소의 아름다움을 결집한 데서 생겨난다. 이처럼 종합예술이라는 점이 다른 예능과는 다른 노의 독자적인 가치를 낳게 된다. 이렇게 해서 노의 브랜드 이미지가 확립됐다.

‘꽃’은 제아미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이다. 그럼 ‘꽃’이란 무엇인가? 제아미는 어린이들의 자연스런 아름다움을 꽃의 원형으로 삼았다. 꽃봉오리는 꽃이 되고 종국에는 진다. 노령에 접어들어서도 아름다움이 남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꽃이라고 했다. 젊음이 만들어내는 꽃은 ‘일시적인 꽃’이지만,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잃지 않는 것이 진정한 꽃이라고 설파했다.

이 진정한 꽃을 몸에 익히는 것이야말로 제아미의 기예(技藝)가 목표로 한 것이었다. 젊은 시절 반짝 인기를 얻고 사라지는 배우가 아닌 나이를 먹을수록 매력을 발산하는 배우가 진정한 배우라는 것이다. 나이에 따른 그의 연기 수행론은 일반인도 참고할 만한 교육론이자 인생론과도 같다.

“노에서는 7세 무렵부터 연습을 시작한다. 이 나이 또래의 수련은 자연스럽게 하는 일 가운데 풍정(風情)이 있다. 때문에 연습에서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을 존중해서 아이의 마음이 향하는 대로 하는 것이 좋다.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심하게 화를 내면 의욕을 잃어버린다.”

제아미는 부모는 아이의 자발적인 움직임에 방향성만 주고 인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부모가 너무나도 아이를 속박하면 부모를 따라 할 뿐 부모를 능가하는 아이가 될 수 없다는 게 제아미의 지론이다.

12~13세의 소년은 모습이든 목소리든 그 자체만으로 유현을 구현할 수 있어 아름답다. 제 어미는 이 나이대의 소년에게 최대의 찬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때만의 꽃이지 진짜 꽃은 아니다.

제 어미는 17~18세를 인생에서 첫 번째 난관이 찾아올 때라고 말한다. “우선 목소리가 변하면 첫 번째 꽃을 잃어버릴 수 있다. 노에서는 소년 전기의 소리 나 모습에 꽃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변성이라 신체상의 변화가 더해져 그 사랑스러움이 없어지는 이 시기는 가장 큰 난관이다.”

이런 역경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제 어미는 “비록 사람이 비웃든 말든 그런 건 마음에 두지 말라. 자신의 한계 속에서 무리하지 말고 소리 내어 수련하라"라고 말한다.

24~25세 무렵은 변성기가 끝난 뒤 목소리도 체격도 어엿이 갖춰져 싱싱하면서도 능숙해 보이는 시기다. 초심이라는 말은 이 무렵을 가리킨다. 신인이라는 신선함에서 비롯되는 관심을 진정한 인기로 생각하는 것은 진실의 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것은 금세 사라진다. 그것도 모르고, 흡족해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게 없다. 그럴 때일수록 초심을 잊지 말고 수련해야 한다. 자신을 ‘진정한 꽃’으로 만들기 위한 준비기다.

34~35세 무렵은 제아미가 [풍자화전]을 저술했던 시기와 겹친다. 제아미는 이 나이에 천하의 평판을 받지 않으면 ‘진정한 꽃’이 아니라고 말한다. “실력이 느는 것은 34~35세까지, 퇴보는 40세 이후부터다. 고수가 되는 것은 34~35세다. 마흔이 넘으면 떨어질 뿐이다. 이 나이 즈음에 지금까지 인생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34~35세는 자신의 삶의 방법, 장래를 끝까지 지켜볼 수 있는 시기다.”

마흔 넘으면 인생 돌아보고 나아갈 길 생각해야


▎노를 공연하는 무대 전경.
44~45세 무렵이면 아무리 정점에 올라섰던 사람이라도 쇠퇴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가 되면 관객에게는 꽃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된다. 이 시기까지도 꽃을 잃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꽃’일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시기에는 새롭게 어려운 일을 시작하기보다 자신의 특기를 잘 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제아미는 이 시기에 해야 할 일로 후계자 육성(育成)을 꼽로 자신의 기예를 차세대에 전하는 최적기라는 것이다. 제아미는 “상대 역에게 꽃을 갖게 하고 자신은 소소한 무대를 꾸려라”는 말을 남겼다. “자신의 몸을 알고, 한계를 아는 사람이야말로 명인이라고 할 수 있다.”

50세 이상은 인생 마지막 단계다. [풍자화전]을 썼을 때 제아미는 36~37세였기 때문에 이 부분은 자신의 아버지인 간아미를 생각하고 썼다.

“이 무렵은 연기하지 않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기린도 늙으면 느린 말만도 못하다’는 말이 있다. 그렇지만 예능의 진수를 터득한 명인은 본인 레퍼토리의 모든 것을 잃어서 볼만한 것이 없어도 뭔가 매력의 꽃을 간직하고 있는 법이다. 그것이 노인의 마음가짐이다. 정말 훌륭한 배우라면 꽃이 남아 있는 법이다.”

인생 7단계는 쇠퇴 7단계와도 같은 의미


▎일본의 또 다른 전통극인 가부키의 공연 장면.
또 제아미는 부친인 간아미가 죽기 직전 노에 대해 남긴 말을 전했다. 간아미는 죽기 15일 전에 스루가(駿河)의 센겐신사(淺間神社)에서 신불(神佛)에 바치는 노를 공연했다. “그의 노는 별나게 화려해 관객의 상하귀천을 막론하고 일동에게 호평을 받았다. 잎사귀가 얼마 남지 않은 늙은 나무가 됐더라도 꽃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게 바로 노다.”

제아미가 말하는 7단계의 삶은 점차 뭔가를 잃어가는, 쇠퇴의 7단계라고도 할 수 있다. 소년의 사랑스러움과 청년의 젊음이 사라지고 장년의 체력도 스러져 간다. 뭔가를 잃으면서 사람은 그 인생을 더듬어 간다. 하지만 이 과정은 잃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것을 얻는 시련의 시기 즉 초심의 시기다. 후계자에 대해 일생을 통해 적극적으로 도전해 보라는 제아미의 소원이 담긴 말이 “초심을 잊지 말자”이다.

[풍자화전]을 시작으로 제아미가 남긴 저작들은 연극이나 예술에 대한 생각을 서술한 것이지만, 제아미의 깊이는 단지 그것뿐이 아니다. 간세자라고 하는 극단의 오너 겸 프로듀서이기도 한 제아미는 극단의 존속을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은지 고민했다.


▎노·가부키와 함께 일본인들에게 사랑받는 전통 인형극.
배우의 수행 방법으로부터 시작해 어떻게 라이벌 극단을 이기고, 관객의 흥미를 끌어내야 하는지 고민한 뒤 기록으로 남겼다. 후계자에게 주는 구체적인 충고를 쓴 것이 그의 책이다. 쉽게 말하자면 예술을 위한 예술론이라기보다는 생존전략론이다.

제아미는 관객과의 관계, 인기와의 관계, 조직과의 관계 등 모든 것은 ‘관계적’이며, 변화한다고 생각했다. 그중에서 어떻게 자신의 기예를 완수할 것인지 강조하고 있다. ‘노’를 ‘비즈니스’, ‘관객’을 ‘마켓’, ‘인기’를 ‘평가’로 읽으면, 그의 말은 경쟁사회를 사는 비즈니스 세계에 대한 제언이라고 읽을 수도 있다.

제아미 인생 전반을 살펴보면 초반에는 운이 매우 좋았다. 주변에는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넘쳐났고 그 사랑 속에서 마음껏 예술혼을 펼쳐 보였다.

그러나 자식이 늦게 생기고 후계자 문제가 불거지고 예술 권력으로부터 소원해지자 그의 불운이 시작된다. 그러나 그런 불운의 시작이 역설적으로 [풍자화전] 같은 명저 탄생의 배경이 된다.

밖에서 보는 자신의 뒷모습을 기억하라


▎제아미는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타이밍을 놓치면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가르친다.
장남의 죽음 그리고 유배형을 당하면서 오히려 그가 가지고 있던 노에 대한 철학과 인생 지평을 넓힌다. 작게는 노라는 무대, 크게는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어떻게 하나의 ‘꽃’을 피워야 하는지 기록으로 전했고, 뒤늦게 대중에게 알려진다. 그가 남긴 많은 명언 중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를 살펴보자.

1. 남시, 여시(男時, 女時)

제아미 시대에는 다치아이(立合)라는 경연 형식으로 노(能)의 경쟁이 이뤄졌다. 다치아이란 몇 명의 배우가 같은 날, 같은 무대에서 노를 상연해 승부를 겨루는 것이다. 이 승부에서 지면 평가는 떨어지고 후원자가 떠날 수 있다.

다치아이는 자신의 앞날을 걸었던 중요한 장소였다. 하지만 승부 때는 기세의 물결이 있다. 제아미는 이쪽에 기세가 있다고 생각되는 때를 남시(男時, 오토키), 상대에게 기세가 붙어 있다고 생각될 때를 여시(女時, 오도키)라고 불렀다.

제아미는 “라이벌의 기세가 강해 자신이 밀리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는 작은 승부에서는 별로 힘쓸 필요가 없고 그런 점에서는 지더라도 신경 쓰지 말고 큰 승부를 준비하라”고 한다. 그런 때는 오히려 남시가 오기를 기다리라고 했다.

2. 시절감당(時節感當, 지세쓰간토)

여기서 말하는 ‘시절’이란 노의 연기자가 분장실에서 무대로 향하고 막이 올라 무대에 막 나오는 순간을 말한다. 막이 확 트이고 배우가 보이고 관객이 배우의 소리를 기다리는 순간이다. 그 마음의 고조를 잘 가늠해 절묘한 타이밍에 소리를 내는 것을 ‘시절감당’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시절감당이란 타이밍 잡는 것의 중요성을 말한다.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타이밍을 놓치면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 타이밍에 따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놓치기도 한다.

3. 리켄노켄(離見の見)

자신의 모습을 전후좌우에서 살펴봐야 한다. 이것이 리켄노켄이다. 이것은 견소동견(見所同見)이라고도 한다. 객석에서 보는 관객의 눈으로 자신을 보라는 말이다. 실제로 배우는 무대 위 자신의 모습을 직접 볼 수는 없다. 객관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비판해 주는 사람을 갖는 등 독선을 피할 수 있게 조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제3자적 관점에서 자신을 보면 좋을까? 제아미는 목전심후(目前心後)라는 말을 사용한다. “눈은 앞을 보고 있어도 마음은 뒤에 두라”는 말이다. 밖에서 객관적으로 보는 자신의 뒷모습을 기억하지 않으면 잘못된 곳을 알기 어렵다.

제아미가 남긴 명언들은 단지 연극의 세계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인생이란 무대를 살아가는 일반인들에게도 요구되는 자세다. 전후좌우에서 또는 먼 미래로 가서 아니면 제3자의 눈으로 자신의 현재 위치를 다각적으로 조감하듯 성찰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죠하큐(序破急)는 노에 있어서 시작(序)·전개(破)·종결(急)에 이르는 구성법이다. 제아미는 관객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서는 이런 흐름을 과감하게 무너뜨려도 좋다고 말한다. 안주를 멀리하고 끊임없이 변화를 보여주는 자연의 꽃처럼 제아미 예술의 목표는 마음속에 진정한 꽃을 피우는 것이다.

진정한 꽃은 봄에 만발한 화려한 꽃이 아니라 모진 바람에도 노목에 붙어 위태롭게 피는 꽃이다. 이것이 꽃이 전하는 바람의 말이 아닐까?

※ 최치현 - 한국외대 중국어과 졸업, 같은 대학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에서 중국지역학 석사를 받았다. 보양해운㈜ 대표 역임. 숭실대 국제통상학과 겸임교수로 ‘국제운송론’을 강의한다. 저서는 공저 [여행의 이유]가 있다. ‘여행자학교’ 교장으로 ‘일본학교’ ‘쿠바학교’ 인문기행 과정을 운영한다. 독서회 ‘고전만독(古典慢讀)’을 이끌고 있으며 동서양의 고전을 읽고 토론한다.

201902호 (2019.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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