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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분석] 버닝썬 늪에 빠진 경찰의 딜레마 

파낼 수도, 덮을 수도 없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수사권 조정·자치경찰제 앞두고 최대 악재 터져... 등 돌린 민심 잡으려면 유착의 뿌리 근절할 과감한 결단 필요

강남 클럽 ‘버닝썬’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클럽에서 벌어진 단순 폭행사건은 유명 연예인들의 섹스스캔들을 넘어 공무원과 경찰이 유흥업소와 결탁한 권력형 비리(게이트)로 진화하고 있다.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과 자치경찰제 도입을 앞둔 경찰에는 최대 위기다. 불신을 씻어내고 수사능력을 입증하려면 스스로 뿌리를 캐내야 한다. 하지만 캐면 캘수록 버닝썬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 게 경찰이 처한 딜레마다.


"수사권 조정이고 자치경찰제고 뭐고, 되겠어요? 다 날아갔다고 봐야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의 보좌관 A씨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버닝썬 파문과 관련해 경찰의 미숙한 대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가수 승리(29·본명 이승현)와 정준영(30)이 연루된 성추문이 온통 뉴스를 도배하고 있었다. (아직 경찰 고위급의 유착과 과거 사건의 증거 인멸 시도 등의 뉴스는 나오기 전이었다.) A씨는 “버닝썬 사건에는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비리와 범죄 스토리가 다 들어 있다. 유착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찰이 이걸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버닝썬 사건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처음에 제기됐던 경찰과 클럽의 유착 의혹을 벗기 위해서다. 민갑룡 경찰청장이 나서서 고개를 숙였다. 그는 3월 1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경찰의 명운이 걸렸다는 자세로 전 경찰 역량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런 뒤 정예 수사관 126명을 투입했다. 전례 없는 대규모 수사팀이다. 최순실 특검 때 동원한 수사 인력은 125명이었다. 경찰이 갖는 위기감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하는 규모다.

버닝썬이란 이름이 처음 등장한 지난해 12월만 해도 클럽에서 벌어진 단순한 폭행 시비로 여겨졌다. 첫 폭로자인 김 모(28)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려 자신이 버닝썬에서 한 여성을 돕다가 클럽 관계자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들도 자신을 폭행하고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뒤집어씌웠다며 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그가 올린 청원글에는 20만 명 넘는 시민이 진상규명 요구에 동의했다.

경찰은 의혹을 부인했지만 시민들이 불신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문제의 중심에 있던 역삼지구대가 과거에도 경찰관들이 조직적으로 유흥업소와 결탁했던 전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2007년 이 지구대 소속 경찰관들이 강남의 유흥업소들로부터 정기적으로 금품을 상납받다가 적발됐다. 이들은 112에 접수된 성매매 신고 정보를 업소에 흘리고, 현장에 출동해서도 불법 영업을 눈감아줬다. 지구대 전체 근무자 60여 명 중 21명이 연루된 치욕적인 사건이었다.

공교롭게도 버닝썬 사건의 중심에도 역삼지구대가 놓여 있었다. 경찰은 마지못해 서울청 광역수사대를 투입해 의혹 규명에 나섰다.

돌고 돌아 부실수사·유착 의혹 부메랑


광수대 수사가 시작되자 소문처럼 떠돌던 의혹들이 사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선 버닝썬 직원의 마약 투약 혐의가 확인됐다. 클럽 차원에서 조직적인 마약 거래와 투약 행위가 있었는지로 수사가 확대됐다. 경찰관의 유착 정황도 나왔다. 미성년자가 클럽에 출입한 사건을 무마하려고 버닝썬 공동 대표 이모씨가 전직 경찰 강모씨(44·구속)의 부하 직원에게 2000만원을 건넨 증거가 발견된 것이다.

버닝썬 사내이사였던 승리의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내용이 새어 나오면서 불길이 커졌다. 경찰이 입수한 대화방 자료에는 승리의 성매매 알선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었다. 사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승리와 정준영 등 남자 연예인들이 있던 SNS 단체 대화방에서 몰카 동영상을 공유한 게 드러났다. 2015~2016년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다. 피해 여성은 10명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성추문에 이어진 경찰의 유착 의혹 폭로가 경찰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정준영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세상에 알린 방정현 변호사는 이 내용을 경찰이 아닌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다. 방 변호사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화 자료에 연예인과 경찰의 유착 자료가 있었다. 경찰에 넘겼을 때 공정한 수사가 이뤄질 수 있을까 싶었다.”

단체 대화방에선 ‘경찰총장’이란 인물이 뒤를 봐주는 듯한 내용이 들어있어 충격을 줬다. 경찰총장이란 직책은 없지만, 고위직에 해당하는 인물이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가수의 언론보도를 막아주는 등 도움을 줬다는 내용이다. 경찰은 경찰총장이란 인물이 조사 결과 강남서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윤모 총경이라고 밝혔다.

정준영이 2016년에 여자친구를 몰래 촬영한 혐의로 고소당한 사건에서 경찰이 핵심 증거를 인멸하려 한 정황도 나왔다. 사건을 담당했던 성동경찰서 소속 경찰관이 정준영의 휴대전화 복구를 맡은 포렌식업체에 연락해 “복구가 불가능한 것으로 해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휴대전화를 확보하지 않은 채 사건을 검찰로 넘겼고, 결국 정준영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경기지역의 한 경찰서 수사과장은 “휴대전화는 동영상을 촬영하고 유포한 기록이 들어 있는 핵심 증거”라며 “임의제출을 하지 않는다면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했어야 한다. 누가 봐도 유착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비정상적인 사건 처리다”고 말했다.

커지는 유착 의혹, 강남구는 클럽 홍보


▎가수 정준영이 3월 12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그는 SNS 대화방을 통해 불법으로 촬영된 성관계 영상을 공유한 혐의를 받는다. / 사진:연합뉴스
유흥업소와 유착 의혹에는 국세청과 강남구청도 자유롭지 못하다. 버닝썬 사건이 강남 클럽들의 탈세 의혹으로 번지자 경찰은 3월 8일 대형 클럽 아레나를 압수수색했다. 아레나는 승리가 해외 투자자에게 성접대를 한 것으로 의심되는 곳이다. 경찰은 아레나에서 성매매 알선이 이뤄졌는지 확인하는 동시에 탈세 혐의도 들여다보고 있다. 이를 위해 같은 날 서울지방국세청에 대한 압수수색도 벌였다.

지난해 서울지방국세청이 아레나의 탈세 혐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업무 처리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흔적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조사에서 국세청은 강 회장 측의 16개 유흥업소 관련 회계자료를 조사한 뒤 일명 ‘바지사장’인 서류상 대표 6명을 고발하고 세금 추징을 통보했다. 이때 실소유주 강 회장은 고발 대상에서 빠졌다. 또 아레나 등 두 곳을 뺀 나머지 업소들도 자료 미비를 이유로 세무조사에서 제외시켰다고 한다. 경찰이 추정하는 아레나의 탈세액은 4년간 6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압수수색을 통해 클럽 측이 구청과 소방 공무원 등에게 금품 로비를 벌인 단서도 확보했다. 경찰이 확보한 장부에는 수백만원 상당의 현금이 오간 기록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 돈이 식품위생법과 소방안전시설 관련 규정을 단속하는 지자체와 소방공무원들에게 전달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관련자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강남구는 오히려 클럽들에 행정·재정적 지원을 해주는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2014년 11월 강남구가 발표한 이른바 ‘명품건전클럽’ 육성 시책이 그것이다. 강남구는 클럽 10곳을 시범적으로 선정해 구청에서 발간하는 관광안내 가이드북에 이들을 소개해줬다. 선정된 업소 중에는 아레나와 버닝썬의 전신인 베이스도 들어 있었다.

신연희 당시 강남구청장은 “건전한 유흥문화 정착과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라고 밝혔다. 하지만 업소 선정 기준이 따로 있던 건 아니었다. 지역의 유흥업소 업주들의 추천을 받아 강남구가 선정만 해준 것뿐이었다. 강남구는 선정된 업소들의 리모델링 비용 등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가 비판이 커지자 취소했다.

경기도 안양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했던 김모(42)씨는 “지역의 관공서와 공무원들에게 금품 로비를 벌이는 건 실제로도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약 10년 전쯤 유흥업소를 운영했다. “술집을 하다 보면 법에 걸리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식품위생법과 소방법, 미성년자 출입, 탈세 등 공무원들이 작심하면 가게 문을 닫아야 한다. 그래서 인허가나 단속권을 가진 지자체·세무서·소방서·경찰을 각각 관리한다.” 그의 설명이다.

김씨는 “한두 업소만 봐주면 반드시 말이 새어 나오게 돼 있다. 공무원들이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로비 수법은 이렇다. 여러 업소들이 비상연락망을 짠다. 평소 관리해 온 공무원으로부터 단속 정보를 얻으면 이를 ‘회원들’에게 돌아가며 전파한다. 총무를 뽑아서 일종의 ‘정보료’를 정기적으로 걷는다. 이 돈은 유착된 공무원들에게 상납금으로 들어간다. 그는 “은밀한 거래를 완전히 파헤치기도 어려울뿐더러 워낙 촘촘하게 유착돼 있어서 적당한 선에서 봉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창을 든 경찰에 맞선 사건 관련자들의 방패는 전관들이다. 승리는 경찰 출신 손병호(39·변호사시험 1회) 변호사를 선임했다. 손 변호사는 경찰대를 나와 경찰에 몸담았다가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뒤 개업했다. 그가 경찰에서 근무한 기간은 8년에 불과하다. 동작경찰서 수사과와 지능범죄수사팀, 사이버수사팀, 경찰청 보이스피싱 전담반에서 수사 실무를 담당한 게 경찰 경력의 전부다. 변호사 개업 후에는 주로 기업의 형사사건이나 금융, 조세 관련 사건들을 맡았다.

전관들로 방어벽, “경찰 믿겠나” 불신 커져


▎1. 3월 1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출석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왼쪽)과 민갑룡 경찰청장. / 2. 조국 민정수석이 지난해 6월 21일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 3. 버닝썬과 경찰 간 유착 고리로 지목된 전직 경찰관 강모씨가 3월 15일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김상선 기자, 연합뉴스
경찰 내부에선 그가 승리의 변호를 맡은 것에 의외라는 반응이다. 경찰대 출신인 이모 경위는 “손 변호사는 경찰에 있었을 때 정의감이 투철해서 후배와 동료들의 신망이 두터웠다”며 “죄질이 좋지 않은 승리의 변호를 맡았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관은 “손 변호사는 경위로 퇴직해서 전관 대우를 받을 만한 급이 아니다. 아마 다른 쪽으로 그가 꼭 필요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했다.

아레나의 실소유주 강 회장은 검찰·경찰·국세청 출신들을 고용했다. 그의 변호사는 유상범 전 검사장과 김귀찬 전 경찰청 차장이다.

유 변호사는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서울대 84학번 동기다. 대검찰청 범죄정보 1·2담당관,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장, 서울중앙지검 3차장을 지냈다. 2017년 9월에 변호사로 개업했다.

김귀찬 변호사는 제33회 사범시험에 합격한 뒤 특채로 경찰에 입문했다. 경찰청 정보국장, 수사국장, 보안국장을 거쳐 경북·대전지방경찰청장을 지냈다. 2017년 7월에 퇴임한 뒤 오세인 전 광주고검장과 함께 법률사무소를 냈다.

국세청이 아레나를 세무조사했을 때 강 회장의 세무조사 대리인은 류덕환 전 강남세무서장이었다. 강 전 서장은 국세청 감사관실과 서울지방국세청 조사3국, 국세청 감찰1계장, 청렴세정담당관을 거쳐 2015년부터 이듬해 6월까지 강남세무서장을 지내고 퇴임했다. 이후 세무법인 티앤티를 개업했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퇴직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 현재 경찰 수사의 초점과 밀접한 조직에서 근무했던 경력을 가진 것도 공통점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퇴직 후 2, 3년까지는 조직에 인맥이 남아 있어 이때 평생 벌 돈을 다 못 벌면 바보라는 우스갯말도 있다”고 말했다.

버닝썬 사건을 바라보는 경찰들의 표정은 착잡하다. 경찰청에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검경 수사권 조정과 자치경찰제 도입에 가장 큰 악재를 만났다”고 말했다.

경찰은 그 어느 때보다 수사권 조정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과거와 달리 검찰의 저항도 비교적 작은 데다 정부 의지가 확고해서다. 수사권 조정은 공수처(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와 함께 현 정부의 사법개혁 핵심 과제다. 경찰 자체의 수사능력을 입증해야 할 시기에 오히려 유착과 부실수사 의혹까지 겹쳐 여론의 지지도 받지 못하게 됐다. 지난 2월 13일 버닝썬 수사 중간 브리핑에서 관계자가 “수사권 조정이 목전에 와 있는 상황에서 엉터리로 수사해 물을 흐리지 않겠다”고 강조한 데서도 경찰의 위기감이 읽힌다.

검찰은 경찰의 수사를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다. 최초 제보를 접한 국민권익위원회는 증거 자료를 경찰이 아닌 대검찰청에 넘겼다. 유착 의혹을 받는 경찰이 오히려 증거를 인멸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검찰은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 배당했다. 아직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지만 경찰 수사가 부실할 경우 언제든 직접 나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한 차례 경찰에 견제구를 날렸다. 지난 2월 22일 경찰이 클럽의 브로커 역할을 했던 전직 경찰관 강씨를 긴급체포해 구속영장을 신청하자 검찰은 이를 반려했다. “돈을 받은 사람에 대한 영장 신청을 하려면 돈을 준 사람 조사를 하는 것이 기본인데 그게 돼 있지 않았고, 수수 명목 등에 대해서도 소명이 돼 있지 않아 보완 수사 지휘를 했다”는 이유였다. 한 마디로 “수사에 기본이 안 돼 있다”는 지적인 셈이다.

1년 넘게 미제사건으로 남았던 아레나 폭행 사건 가해자가 최근 재수사에 착수한 지 2주 만에 붙잡힌 것도 경찰에 뼈아픈 부분이다. 2017년 10월 28일 새벽 아레나에서 한 손님이 보안요원에게 폭행당했다며 신고를 했던 사건이다. 당시 강남경찰서는 폐쇄회로TV(CCTV)를 확인하고도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해 1년 넘게 미제 사건으로 남겼다. 최근 버닝썬 논란이 불거진 뒤 재수사에 착수한 서울지방경찰청 미제사건전담팀은 강남서도 확인했던 CCTV에서 용의자를 특정해 전직 보안요원을 상해 혐의로 입건했다.

반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수사권 조정의 필요성이 더 커졌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경찰청에서 근무하는 B 경감은 “부실수사와 유착 의혹은 분명 경찰이 반성하고 엄정하게 처리해야 할 점이지만 그렇다고 수사권 조정이 필요치 않다고 하는 건 감정에 치우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사건이 수사권 조정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유착은 경찰뿐 아니라 검찰, 국세청 등 모든 권력기관에 일어날 수 있는 문제다. 서로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더 필요하다. 수사권 조정이 이뤄지면 검찰과 경찰이 건강한 경쟁을 통해 서로 발전하는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경찰, 수사의 객관성 확보에 안간힘


▎2014년 11월 강남구는 ‘명품건전클럽’을 육성하겠다며 강남의 클럽 10곳을 선정했다. / 사진:강남구청 TV 캡처
하지만 자치경찰제에 대해선 경찰 내부에서도 부정적인 기류가 강하다. 특히 이번 사건이 자치경찰제의 부작용 가능성을 여실히 보여줬다는 게 내부에서 나오는 지적이다. 자치경찰제가 도입되면 지역경찰은 지방자치단체장의 지휘를 받게 된다. 또 현재 경찰은 전국 관서를 순환하는 데 비해 자치경찰은 자신이 소속된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만큼 유착이 심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서울지방경찰청이 버닝썬 수사에서 강남경찰서를 배제한 것도 수사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지역과 경찰이 유착돼 있을 가능성 때문이다. 버닝썬이 있는 강남 르메르디앙서울호텔의 최모 대표는 강남서 경찰발전위원으로 확인됐다. 최 대표는 버닝썬에 간접적으로 투자해 지분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각 경찰서의 민관 협력단체인 경찰발전위원회는 지역의 유지들이 참여해 경찰과 지역 간 유착 창구로 종종 악용되기도 했다. 2017년 11월에는 황운하 당시 울산경찰청장(현 대전경찰청장)이 경발위 등 유관 단체 회원들과 골프를 친 후 황 청장의 라운딩 비용을 단체 측이 계산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경기지방경찰청에서 근무하는 한 간부급 경찰관은 “서울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에선 경찰관이 꽤 큰 힘을 갖고 있어서 선을 대려는 주민들이 여전히 많다”며 “자치경찰이 도입된다면 마치 향판(鄕判)처럼 지역과 유착되는 부작용이 훨씬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201904호 (2019.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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