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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의 서양사 현장르포 | 승자의 조건, 패자의 교훈(5)] 호메로스의 고향에서 찾는 문명의 첫 단추 

트로이 전쟁에는 선악이 없었다 

전쟁 여신조차 고뇌하는 외톨이로 표현한 서(西) 문명
동양 사마천의 ‘천명(天命)’은 집단 논리로 변질되기 십상


▎전신 좌상의 호메로스. 장님이기 때문에 정치와 거리를 두고 세상사를 객관적으로 기술한 인물이다. / 사진 : 유민호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익숙한 옛말이다. ‘단추상식’이라고나 할까? 서두르지 말라는 뜻과 함께, 첫출발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인생사에 대입해 보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과도 맥이 닿는다. 첫 단추를 잘 꿰나가면서, 인생의 정도(正道)를 찾고 행복하게 살자는 것이 단추상식의 근간이다.

‘근본’이란 말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자주 사용하던 말 중에 하나다. “근본이 되 먹지 않았으니까 저런 짓을 하고도 눈도 깜짝 안 한다.” 예전에는 봉건적이고 차별적이고 뭔가 부정적으로 느껴졌지만, 언제부턴가 필자 스스로도 자주 사용하게 된 단어다. 현실 속에 드러나는 비상식 모순을 파고들면, “단추가 어떻게 끼워졌기에, 세 살 버릇이 얼마나 잘못됐기에, 근본이 무엇이기에 저 나이에 아직도 저런 짓을….”이란 식의 ‘꼰대 결말’에 도달한다.

이집트 피라미드에도 ‘요즘 세상과 젊은이들 보면 난세(亂世)’라는 글이 상형문자로 기록돼 있다고 한다. 2019년 한국도, 5000년 전 이집트와 동일한 상황일 뿐이라 자위할지 모르겠다. 생각을 고치길 바란다. 아무리 막장으로 간다고 해도,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지켜지던 시대가 고대 인류사다. 시신을 다시 꺼내 난도질을 하고 저주를 퍼부으면서 소금을 뿌리지는 않았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인간의 품(品)과 격(格)은 타인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좋은 일을 하면 자신도 행복해진다. 온갖 명분을 끌어들여 끝없이 심판한다는 것은, 장차 스스로도 똑같은 아니 점점 더한 상황에 처해질 수 있다는 전조(前兆)로 해석될 수 있다.

단추는 안으로 걸어 잠그는 것


▎클라로스의 아폴로 신전을 지키는 두 명의 뮤즈(Muse) 입상. / 사진 : 유민호
고대 그리스 예술 작품은 만인이 동의하는 인류 문명과 문화의 꽃이다. 여러 각도에서 그 이유를 발견하게 되지만, 필자는 잔인한 묘사가 극히 드물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미 죽어 말발굽 아래 쓰러진 적들은 넘치지만, 잘린 목이나 절단된 사지 같은 식의 신체훼손을 다룬 전승기념물은 거의 없다. 극단이 없다는 얘기다. 고대 그리스 당시 전쟁은 학살의 역사다. 남녀노소 구별 없다. 전쟁에 이길 경우 전부 죽이거나 노예로 만든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가 남긴 당시의 흔적을 보면 그 같은 피 튀기는 장면이 드물다. 상황은 척박하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 나라가 고대 그리스다. 힘자랑이 아니라 평화가 주된 목적이다. 같은 시기 페르시아 대제국이 남긴, 목이 잘린 시신으로 채워진 전승기념물과 대조적이다.

‘우리 민족 역사’라는 명분이 21세기 한국, 아니 한반도 전체의 화두(話頭)로 서 있다. 그런 논리에 기초한, 피로 얼룩진 초상화와 초대형 검투사 이벤트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여신 아테네는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아테네 시민이 추앙한 전쟁의 여신이다. 전 세계 박물관에 흩어진 수많은 아테네 상(像)의 공통점이지만, 여신의 강력한 파워를 느낄 만한 작품이 ‘단 하나’도 없다. 고독하고 고민하며 생각을 가다듬는 식의, 쓸쓸한 외톨이로 표현돼 있다. 창을 휘두르며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공포의 신이 아니다. 저주와 함께 사지를 절단하는 식의 공포보다, 메두사 얼굴이 새겨진 방패를 통해 상대를 쫓아내는 여신이다. ‘우리 민족 역사’와 같은 거창한 명분과 논리와 무관한, 고독과 침묵으로 살아간 수줍은 처녀신이 바로 아테네다.

“국립묘지에서 이승만 묘를 파내야 한다”고 말한 한국의 석학이 있다. 분단의 책임이 죽은 대통령에게 있다는 식이다. 과연 대통령 한 명 때문에 남북이 갈라졌을까? 스스로의 아버지를 평가해 봐도 알 수 있듯이, 잘했듯 못했든 대략 6대 4 정도, 좀 심하면 7대 3 정도다. 좋은 점은 키우고 나쁜 점은 교훈으로 삼아 해결해나가면 된다. 대통령 한 명 시신을 파헤치는 걸로 다시 통일될 수 있다고 믿는, 만병통치 신앙도 대단하다. 단추는 외부가 아닌, 내부로 걸어 잠그는 것이다. 역사적 상식이지만, 남 탓하기 전에 스스로가 문제다.

갑과 을로 나눠진 흑백 한국 사회에 출현한 하이브리드 종(種)의 단추상식도 궁금하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배우자 명의로 10억2000만원을 대출받아 서울 흑석동의 재개발 구역에 25억7000만원 상당의 건물을 구입했다가 논란이 일자 자진사퇴했다. 재개발이 이뤄지면 10억원 상당의 ‘투자 수익’이 예상되는 지역이었다.

그런데 김 전 대변인은 기자 시절인 2011년 기명칼럼에서 아래와 같이 말한 바 있다.

“가진 자와 힘 있는 자들이 멋대로 휘젓고 다니는 초원에서 초식동물로 살아가야 하는 비애는 ‘도대체 나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낳게 한다.”

집을 늘리고 출세하고픈 마음은 인간으로서 당연하다. 그러나 방법을 보면 ‘한국형 하이브리드’에게만 용인되는 논리와 명분을 적극 활용한다. 심지어 상대에 대한 비난의 도구로 재활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너희들에 비해 나는 약과다’라는 식의 변명이다. 강도가 살인자보다 우월할 수는 없다.

서(西) 문명 잉태한 소아시아의 도시


▎터키 서부 다르다넬스 해안에 남아있는 트로이 유적. 199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올 3월 터키 아나톨리아(Anatolia) 지방의 고대 그리스 유적지 클라로스(Claros)에 들렀다. 그리스 문명의 주 무대였던 에게(Aegean) 해를 끼고 있는 곳이다. 기원전 10세기 그리스인이 세운 항구 노션(Notion)의 잔해가 여전히 해안가 곳곳에 잠들어 있다. 터키 수도 이스탄불을 거쳐 아나톨리아 이즈밀(Izmir)에 내린 뒤, 남쪽으로 자동차를 타고 1시간 정도 가면 만날 수 있다.

클라로스는 당대 아폴로 신탁(神託)으로 유명한 성지(聖地)였다. 아폴로는 음악만이 아닌, 예언의 신으로 유명하다. 고대 인간은 내일을 불안하게 해석하는, 비관적 삶에 익숙해 있었다. 죽음과 병, 전쟁을 피하기 위해, 아폴로 신전에 찾아가 미래를 물었다. 그리스 본토 델피(Delphi)의 아폴로 신전이 가장 유명하지만, 에게 해와 지중해 곳곳에 크고 작은 신탁용 신전이 들어서 있었다. 클라로스는 그 중 하나다.

초봄인데도 클라로스 입구 곳곳에 오렌지가 달려있다. 토사물로 좁혀져 있지만, 클라로스 신전 지킴이와 방문객들을 지탱했을 법한 좁은 하천이 붙어있다. 풍부한 물은 고대 도시의 기본 요건이다. 유적지 규모는 축구경기장 10개 정도로 비교적 크다.

21세기 기준으로 볼 때, 당시의 아폴로 신전은 미래 예언을 상품으로 하는 테마파크라 볼 수 있다. 사람이 찾아오면서 돈이 모이고 정보가 축적된다. 3000년 전의 번영과 영광을 상징하듯, 신전용 큰 대리석 파편이 눈에 띈다. 아폴로를 찬미하기 위한 두 개의 뮤즈(Muse) 입상 흔적도 남아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뮤즈의 엄지발가락 크기가 무려 25㎝에 달한다.

클라로스는 호메로스의 원래 고향이거나, 대서사시 [일리아드(Iliad)]와 [오디세이아(Odysseia)]가 탄생한 곳으로 추정된다. 호메로스, 나아가 호메로스 작품의 흔적찾기로서의 클라로스 방문이라고 할까. 잘못 꿰인 단추 하나로 인해 미래가 전부 엉망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이 단추상식의 핵심이다. 호메로스는 그 같은 관점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서(西)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호메로스라는 첫 단추가 있었기에, 서의 정신세계를 지배해온 대서사시라는 단추가 존재했기에, 오늘날의 유럽과 미국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유랑시인 호메로스의 활동 시기는 대략 기원전 8세기다. 클라로스 번영기와 일치한다. 사실, 호메로스에 관한 대부분의 사실들은 추정에 불과하다. 진짜 생존인물이었는지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고향도, 그리스는 현재의 그리스 영토인 키오스(Chios), 터키는 터키 영토인 이즈밀(Izmir)이라 주장한다. 클라로스는 키오스와 이즈밀 중간 지점에 해당하는 곳이다.

호메로스는 사실상 서양 역사서와 문학사의 출발점으로 추앙되고 있다. 대서사시는 한 순간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서 장기적·입체적 관점에서의 관찰문학이다. 잘 알려져 있듯 [일리아드]는 그리스 연합군의 트로이 공격에 관한 얘기다. 기원전 11세기 상황으로 추정되는 역사다.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에 참가한 뒤 겪는, 그리스 이타카(Ithaca) 출신 장군의 10년간에 걸친 해상 방랑기다.

클라로스에는 330㎡(약 100평) 넓이의 야외전시장이 있다. 다른 고대 유적지에서는 볼 수 없는 공간으로, 아폴로 신전 바로 옆에 들어서 있다. 머리 부분이 사라진 아테네 입상을 비롯해 10여 개의 고대 조각들이 눈에 들어온다. 의자에 앉은 호메로스는 전시장의 하이라이트다. 근육 구조를 보면, 60대 이상의 노인이다. 세계 곳곳 박물관 어디에 가도 호메로스 조각상은 간단히 알아챌 수 있다. 장님이기 때문이다. 보통 머리에 월계관 같은 것도 쓰고 있다. 역사가 문학가에 대한 존경으로서의 상징물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클라로스의 호메로스에게는 월계관이 없다. 높이 약 2m 정도로, 돌 위에 걸터앉은 자세의 대리석상이다. 호메로스는 보통 두상(頭狀)으로만 표현될 뿐, 전신은 극히 드물다. 클라로스 현지에서 발견된 것으로, 진품은 이즈밀 박물관에 있다.

당연하지만, 장님 호메로스는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책으로 만들어진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는 구전해오던 역사적 상황과 전설을 시로 읊조린 뒤 완성된 것이다. 호메로스 주변의 누군가가 나서서 도와줬다고 볼 수 있다. 아폴로 신탁을 위해 클라로스에 들른 사람들이 이야기꾼 호메로스의 손님이었을 것이다. 스스로 악기를 연주하면서 음률에 맞춰 주변 모두에게 전달했다. 사례로 모인 돈이 생활의 기반이었다. 클라로스만이 아니라,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서 대서사시를 전했을 것이다. 호메로스 고향이 여기저기로 나눠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호메로스를 서구 문명의 첫 단추라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의 주관적 판단이지만,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로 나눠 설명할 수 있다. [일리아드]의 경우, 국가와 사회라는 공적 집단 속의 논리와 가치가 배어있다. 장님 호메로스는 그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 입장에서 대서사시를 읊조렸다. [일리아드] 전체를 통해 정의와 악이 확실히 나눠져 있지 않다. 흑백논리가 아닌, 회색논리가 주류다. 천하의 무적 아킬레스와 아킬레스에 의해 살해된 트로이 왕자 헥토르 모두가 존경받을 인물로 그려진다.

눈먼 방랑시인의 영웅담 '일리아드'


▎10년간 이어지던 전쟁은 영웅 오디세우스가 꾀를 낸 목마로 결판이 난다.
그러나 누구 하나 완벽한 영웅은 없다. 그리스 연합군 사령관 아가멤논이 좋은 본보기다. 자기 딸을 산 제물로 바치고 마침내 전쟁에 나서 이긴다. 개선장군으로 집에 돌아가지만 바로 그날 밤 자신의 부인에 의해 암살된다. 이기고 즐기고 행복한 삶이 아닌, 패하고 배신당하며 외로운 운명이다. 그러나 비록 저세상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고 해도 영웅으로서, 인간으로서의 예의와 품격을 지키자는 것이 호메로스 대서사시에 드리워진 행간의 의미다.

악을 무찌르는 정의의 칼은 아예 처음부터 없다. 상황에 따라, 선악이 뒤바뀔 수 있다는 함의가 [일리아드]에 담겨 있다. 트로이 전쟁에서 이긴 그리스 연합군이지만, 대부분은 고향에 돌아가 비극적 종말을 맞이한다는, ‘승자의 함정’에 관한 교훈도 빠뜨릴 수 없다. 바로 호메로스가 창조해낸 서의 역사 첫 단추다.

[오디세이아]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인내에 기초한 ‘단독 탐험기’란 점에서 특출하다. 3000여 년 전의 고독한 여정이다. 그것도 10년간 바다에서의 방황을 통한 여행이다. 도중에 영원불멸의 신으로서 살아갈 기회도 있었지만, 언젠가 죽을 인간의 길을 ‘스스로’ 선택한다. 신에 대한 도전이자, 신과 대등한 관계로서의 [오디세이아]다. 포세이돈의 저주로 바다를 전전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고향에 대한 집념과 노력은 서의 역사를 빛나게 만든 원동력이다. 고향은 지형적·공간적 의미만이 아닌, [오디세이아] 자존 전부에 해당되는 메타포(Metaphor)라 볼 수 있다. 자아발견·자아실현·자아실천으로서의 고향이다.

방황의 구체적인 무대가 땅이 아닌, ‘망망대해’라는 점도 놀랍다. 육지와 달리 바다는 피하거나 숨을 곳이 없다. 변화가 있을 경우 100% 뒤집어쓴다.

집단보다 개인 앞세운 '오디세이아'


▎청년기의 헤라클레스 고대 그리스 입상. 티린스의 왕이 내린 열두 가지 시험을 헤라클레스는 혼자서 통과한다. / 사진 : 유민호
동료들과 함께 고향을 목표로 하지만, ‘우리’가 아닌 ‘나’의 관점에서의 여행기란 점도 중요한 메시지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고향 땅에 발을 딛는 인물은 오디세이아 혼자뿐이다. 함께 고민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동양적 미덕과 무관한, 혼자 결정하고 계획하며 책임지는 여행기다.

요즘 유행하는 한 달 해외 체류 수준이 아니다. 트로이 공격 준비기간까지 합칠 경우 20년에 걸친 여행이다. 동의 역사를 통틀어 혼자서 세상사 모든 것에 맞서 싸우는, 그것도 망망대해에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캐릭터는 전무하다. 우주 속에 홀로 서서 자신만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려는 캐릭터다. [오디세이아]를 읽은 사람치고, 여행이나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에서 멀어질 사람이 있을까? 16세기 바다를 통해 해외 식민지에 나선 유럽 유전자의 첫 단추도 바로 [오디세이아]다.

호메로스와 비견되는 동(東)의 역사가는 사마천(司馬遷)이다. 그가 쓴 [사기(史記)]는 52만6500자에 달하는 방대한 책으로, 중국을 대표하는 24개 역사서(二十四史)의 효시에 해당된다. 전설 속 나라인 삼황오제(三皇五帝)에서부터 시작해 사마천 당시 황제인 무제(武帝)까지 다루고 있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처럼, 역사만이 아닌 문학성이 가미된 책으로 평가된다. 토사구팽(兎死狗烹)·와신상담(臥薪嘗膽)·주지육림(酒池肉林)처럼, 대입시험 때 자주 나오는 고사성어가 바로 사마천 머리에서 나왔다. 동의 지식인이라면 사마천에서 자유롭지 않다. 20세기 중반 이후 일본 역사소설계의 대부(代父)로 꼽히는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의 성 ‘시바(司馬)’도 사마천에서 따온 것이다.

중국에 관한 해박한 지식이 없는 한, [사기]를 전부 읽고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각론이 아닌, 통론 수준의 흐름을 보면 사마천 특유의 역사관을 알 수 있다. 역사에 ‘특별한 방점’을 두는 것이 아시아적 세계관이다. 사마천이야말로 현재 벌어지는 한국적 상황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유사 이래 한·중 관계를 되돌아볼 때, 사마천이 갖는 형이상학적 의미가 한국 지식인들에게 어땠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명(明)·청(淸)을 받든 조선에서 본다면, 마치 ‘마오쩌둥(毛澤東) 교시’ 같은 것이 사마천의 사기였을 듯하다. 제대로 이해하면서 따르는 것이 아닌, 절대적 권위로서의 복종대상이다. 그 같은 절대 권위는 유학적 질서에 매달리는 한국 지식인의 유전자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서의 호메로스가 그러하듯, 사마천은 동의 정신세계를 결정짓는 단추의 시작이라 볼 수 있다.

사마천이 어떤 상황에서 [사기]를 완성했는가라는 것은 사마천의 역사관을 이해하는 중요한 포인트다. 궁형(宮刑)이다. 궁형은 거세를 의미한다. 곤란에 빠진 친구를 도왔지만, 반역으로 몰려 죽음보다 더한 궁형에 처해진다. 나름대로 명분과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이 시작했던 [사기] 저술에 들어가 기원전 91년 완성해낸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에 비해 700여 년 뒤다.

장님이기 때문이겠지만, 호메로스는 평생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살아갔다. 장님이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다르다. 세상사의 한가운데 선 채, 그것도 울분과 한계를 느끼는 과정에서 역사서 저술에 나선다. 정치와 무관한, 지극히 평범한 배경 하의 이야기꾼으로서의 호메로스, 정치에 휩쓸려 세상사의 쓸고 단맛을 경험한 지식인으로서의 사마천이란 점도 다르다.

필자가 주목하는 사마천 역사관의 키워드는 ‘천명(天命)’이다. 인물들의 행동 하나 하나에 ‘과연 천명은 무엇인지…’라는 식의 꼬리표가 숨어있다. 결론은 사마천조차도 “과연 천명이 있는지 없는지?”라는 의문으로 끝난다. 친구를 도우려다 궁형에 처해진 자신의 모습에서 보듯, ‘과연 천명이 존재하기나 하는지?’라고 반문한다.

사기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항우 본기를 보자. 도망 끝에 장렬하게 자살하는 항우와, 이후 시체를 나눠가지려는 인간들의 추잡한 모습이 대조적으로 그려져 있다. 과연 천명은 무엇인지, 천명이 있기나 한지 묻고 또 묻는 것이 사마천 역사관의 중심이다.

하늘의 뜻보다, 인간의 장렬한 무용담에 귀를 기울이는 서의 호메로스 역사관과 크게 대조되는 부분이다. 호메로스의 역사관에는 천명이 없다. 하늘에 뜻에 따라 뭔가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뭔가를 행한 뒤 그 결과를 하늘에 통보하는 식의 역사관이다. 하늘의 뜻을 알려고 아폴로의 신탁에 의존하지만, 올림포스 산에 모인 12신 모두의 의견은 아니다. 천명이 하나가 아니라 신에 따라 제각각이란 점도 호메로스를 통해 전파된다. 신들끼리 서로 싸우면서 벌어진 편싸움이 바로 트로이 전쟁이다.

천명(天命)이란 이름의 교조주의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구입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 동작구 흑석동 상가 건물.
하늘의 뜻을 하나라고 믿고 따르려는 사마천의 역사관은 두 가지 측면에서 약점을 갖는다. 첫째 수동적 자세다. 천명이라는 권위를 향한 무조건적 복종이다. 천명은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 강력한 누군가가 천명을 등에 업고 나타날 경우, 그대로 추종하는 우를 범하기 쉽다. 천명 여부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도 없이 교조적인 자세로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 바로 한반도 북쪽에서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둘째는 천명이 애매한 경우에 닥칠 혼란이다. 천명을 원하지만 찾기 어렵고, 천명을 등에 업은 그럴 듯한 권위도 발견하기 힘들 때 나타나는 상황이다. 천명이 애매한 상황에서 ‘내 멋대로 천명’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천명이 있기나 한지?’에 대한 의구심을 지우려는 듯, 아예 자작(自作) 천명을 만들어 유포한다. 현재 한반도 남쪽에서의 모습이다. 천명으로서 ‘역사·민족·국가’라는 명분이 등장한다. 물론 대항세력은 ‘천명의 이름’으로 씨를 말린다. 밖에서 보면 탈레반에 불과하다. 천명을 행한다는 확신으로 인해, 옆에서 잘잘못을 따져도 눈도 깜짝 안 한다.

호메로스와 사마천의 역사관은 인간과 하늘로 압축될 수 있다. 고독하지만 스스로 결정해서 해결해나가는 오디세이아 류의 인간 중심 캐릭터, 궁형을 당한 채 치욕 속에서 살아가지만 하늘을 믿고 하늘의 뜻에 맞는 세상을 만들려는 사마천 류의 하늘 중심 인간. 동과 서를 가르는 세계관이자,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비상식적 단추상식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근거다. 단추상식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한다는 의미에서도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의 일독을 권한다.

※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 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1905호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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