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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여성 치안 선봉장’ 자임하는 김진표 경찰청 생활안전국장 

“범죄 예방하는 생활환경 조성에 힘쓰겠다”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엄격한 검증·심사 거쳐 9~10월쯤 여성안전기획관 임용
지자체·기업·시민단체 등 동참하면 셉테드 효과 더욱 커져


▎김진표 경찰청 생활안전국장은 “여성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총괄적인 대응 차원에서 ‘여성안전기획관’ 신설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진표 경찰청 생활안전국장은 ‘여성 치안 선봉장’을 자임한다. 2018년 12월 치안감 승진과 함께 경찰청 대변인에서 생활안전국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지난 5월 생활안전국 내에 ‘여성안전기획관’ 신설을 추진, 확정했다.

그동안 여성과 아동, 청소년 대상 범죄를 모두 담당하던 ‘여성청소년과’에서 ‘여성’을 분리, 오로지 여성 안전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 여성안전기획관 밑에는 여성안전 관련 정책 부서인 ‘여성안전기획과’와 수사 부서인 ‘여성대상범죄수사과’를 두기로 했다.

김 국장은 “여성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총괄적 대응을 위해 여성안전기획관 신설을 추진하게 됐다”고 취지를 밝혔다. 여성안전기획관은 학계·시민단체 등 종합적인 안목과 전문성을 갖춘 외부의 여성 문제 전문가 가운데 선발할 예정이며, 인사 검증, 역량 심사 등의 과정을 모두 거치면 최종 임용까지는 앞으로 3~4개월 정도 걸린다.

월간중앙이 ‘여성 치안 선봉장’을 자임하는 김진표 국장과 만나 여성 치안 정책과 경찰의 범죄예방 노력 등에 대해 들어 봤다. 그는 “범죄 피해는 회복이 어려운 만큼 사전에 막는 것이 관건”이라며 “특히 여성의 경우는 범죄예방과 치안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찰의 여러 업무 가운데 ‘범죄예방’이날로 중요해지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경찰은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범죄를 예방하고 수사하는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종전에는 경찰의 업무가 범죄를 진압·통제하는 사후 대응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그러나 범죄 피해는 회복이 어려울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불안·두려움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범죄를 사전에 막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찰은 범죄 취약 요인을 예측하고 관리함으로써 범죄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예방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가로등 불빛만 바꿔도 범죄는 감소


▎2018년 연말 방송·영화 제작진 초청 간담회를 마친 뒤 민갑룡 경찰청장(앞줄 왼쪽 넷째)과 김진표 생활안전국장 등이 참석자들과 함께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고 있다. / 사진 : 경찰청
범죄예방 환경 설계, 즉 셉테드(CPTED)의 중요성이 최근 들어 강조되고 있다. 셉테드는 왜 필요한가?

“셉테드(Crime Prevention Through Envi ronmental Design)란 주변의 환경을 범죄가 발생하기 어려운 구조로 설계해 범죄 기회를 차단하고 주민들의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감소시키는 기법이다. 2005년 경찰청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현재 대부분의 지자체가 경찰과 셉테드를 협업·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총 1555개 사업이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대의 범죄예방은 사전적 예방활동으로 변화했다. 셉테드는 환경을 바꿔 범죄 발생 기회를 줄이고 주민 불안감을 감소시킨다는 점에서 새로운 범죄예방 패러다임에 적합한 정책적 대안으로 대두됐으며, 이제는 범죄예방의 대표적 전략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했다. 셉테드는 ‘치안’이라는 공공재를 국가(경찰)가 독점적으로 공급한다는 과거 전통적 인식의 틀을 탈피해 지자체·주민 등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가 역할을 분담해 주체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셉테드의 효과는 어느 정도인가?

“셉테드의 효과는 크게 범죄 발생 감소라는 측면과 주민의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불식시킴으로써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해외 사례를 보면 미국·영국·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경우 지역사회가 범죄예방을 위해 협업하는 제도를 통해 범죄를 대폭 감소시켰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1980년대 후반 영국 런던의 에드먼턴, 햄리츠 타워, 해머스 미스 등 세 지역에서 가로등 조도(照度)를 평균 5럭스 이하에서 10럭스로 높이자 세 곳 모두에서 무질서와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줄고, 보행자의 도로 사용률도 50% 이상 급격히 증가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1970년대 초반 미국 코네티컷 주 하트포트 시에 위치한 어사일럼 힐 지역에서 범죄가 많이 발생했다. 이 지역 주거시설에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구조로 도로를 개선하고, 가로등을 정비했다. 그 결과 강도 범죄가 전년 대비 30% 이상 감소했다.

일본 도쿄의 미드타운과 롯폰기힐스 등은 오래전 도시계획 단계에서부터 셉테드가 도입됐다. 즉 모든 주차장에는 비상벨이, 보행자 통로에는 5m 간격으로 조명이 설치된다. 여타 지역에서는 기존 가로등 불빛을 주황색에서 범죄예방 효과가 있는 푸른색으로 바꾼 뒤로 범죄 발생률이 20% 줄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우리나라에서는 경찰청이 부천시에서 시행한 최초의 셉테드 사업을 통해 절도 38.3%, 강도 60.8% 감소 성과를 거뒀다. 부산 행복마을의 경우 셉테드 사업 실시 이후 살인, 강·절도, 강간, 폭력 범죄가 총 67.3% 줄고 주민 체감안전도는 5.2% 향상됐다. 그 이외의 지역에서도 셉테드 효과는 잘 나타나고 있다.”

경찰 내에 셉테드 관련 전담팀이 있다고 하던데.

“현재 전국에는 셉테드 기법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의 범죄 취약 요인을 면밀히 분석하는 범죄예방진단팀(CPO)이 활동하고 있다. 2016년 6월 전국적으로 122명의 요원이 발대식을 가졌고, 2018년 96명이 충원됐다. 이들의 임무는 범죄 취약 요인 진단·분석, 지역사회와 함께 환경 개선 및 맞춤형 예방대책 수립 등에 앞장서는 것이다. 이들 전단팀을 통한 범죄예방 진단·분석 결과가 지역의 셉테드 사업에 활용된다면 현재 각 지자체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환경개선 사업이 더욱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역별로 차등 없는 범죄예방 환경 조성해야


▎2019년 경찰청 시무식 후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김진표 생활안전국장 (오른쪽 셋째). / 사진 : 경찰청
셉테드 사업과 관련해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셉테드가 지역 공동체에서 안정적으로 기능하자면 지역사회 범죄예방 활동을 위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의 경우 범죄예방 관련 법령을 통해 각급 기관·시민단체·주민 등 지역 구성원이 협력하도록 함으로써 공동체가 주도적으로 지역사회 범죄예방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건축법에 따른 ‘범죄예방 건축기준’ 고시에서 건축물의 범죄예방 설계 기준을 규정하고, 지방 조례에서 경찰·지자체 등 공공기관 간 협업을 규정하는 등 범죄예방 관련 제도가 마련돼 있다. 지자체들이 이러한 제도를 근거로 범죄예방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지역 공동체의 참여는 아직 미흡하고 국가의 지원 역시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국가 차원에서 범죄예방 활동에 국비 등을 지원토록 함으로써 지역별로 차등 없는 범죄예방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생활안전국장 부임 후 여성안전기획관을 신설을 추진했다. 어떤 취지에서인가?

“경찰청 생활안전국은 여성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총괄적인 대응 차원에서 여성안전기획관을 올해 5월 신설했다. 오는 9~10월쯤 임용될 여성안전기획관을 중심으로 경찰청 내 여성 안전 치안정책을 총괄·조정하고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해 총력을 기울여 나가겠다.”

여성에 대한 범죄예방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2018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국민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불안요인으로 ‘범죄 발생’을 꼽았다. 최근 홍대 불법촬영, 등촌동 전처 살인 등 여성 관련 대형사건이 연이어 발생함에 따라 국민적 불안감이 다양한 형태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 신림동 강간미수 등 일상 생활공간 속 사회 약자 대상 범죄가 발생하면서 여성들의 범죄 불안감이 더욱 고조됐다. 여성의 시각에서 지역사회와 경찰이 함께 지역사회의 범죄 불안요인을 해소하고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공동체 치안’ 정착을 위해 노력해 나가겠다.”

올해 진행되고 있는 여성 범죄예방 인프라 구축 사업을 소개한다면.

“올해는 사업 지역을 300개소 선정했으며, 현재 지역별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들 범죄 취약 지점은 범죄 불안감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지자체의 환경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곳이다. 이들 사업 지역에 1곳당 130만원이 지원되며 조명·비상벨·신고위치안내판 등 기본적인 범죄예방 시설물이 설치될 예정이다. 또한 지점별로 지자체 등 외부기관의 환경개선 사업과 연계하는 등 기관 협업으로 효과적인 개선 사업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현 정부 들어서는 ‘공동체 중심의 예방치안’이 경찰청 주관 국정과제로 선정되는 등 그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경찰청은 이를 위해 지자체, 주민 협의체 등 다양한 지역공동체 네트워크를 활용해 셉테드 등 범죄예방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민간과 협업하면 ‘2세대 셉테드’도 가능


범죄예방 인프라 사업이 성공하려면 지역사회 공동체와의 협업이 매우 중요할 것 같다.

“공동체는 단순히 공동의 공간을 향유한다는 개념을 넘어 같은 생활공간에서 같은 가치관과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을 말한다. 이는 범죄예방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범죄예방은 경찰 등 특정 기관의 노력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지역사회 구성원이 생활 주변의 범죄 취약 요인을 공유하고, 다 함께 노력할 때 비로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경찰은 지역사회에서 공동체 치안의 가치를 어떻게 구현하고 있나?

“가장 대표적인 정책으로 ‘지역공동체치안협의체’가 있다. 지역공동체치안협의체는 경찰과 지역 주민, 지자체 등이 모여 치안 문제를 공유하고 해결방안을 협의하는 기구다. 올해 4월 발족 후 2개월간 운영한 결과 전국적으로 총 1474회 협의를 통해 총 1584건의 치안 대책을 마련했다. 민관이 함께 치안을 고민하고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주요 선진국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의 치안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미국의 경우를 잠시 살펴보자. 미국은 치안 문제가 매우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어떤 여행 책자에서는 ‘대도시라도 슬럼가 쪽으로는 다니지 말 것이며, 중요한 물건은 되도록 지니지 말라’고 소개하고 있을 정도다. 또한 워싱턴 D.C 인근 한 도시에서는 피살자가 연 300명이 넘었고, 한 시민단체에서는 ‘살인 없는 주말 캠페인’을 전개할 정도로 치안 불안을 겪고 있다.

반면 우리의 치안 수준은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 최대 국가 비교 통계사이트 ‘넘베오(Numbeo)’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국가 안전도 순위에서 한국이 1위에 올랐을 만큼 우리나라는 범죄로부터 가장 안전한 나라다. 우리나라의 치안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다만 경찰을 보는 국민의 기대 수준이 높고, 최근 각종 강력범죄가 사회문제가 되다 보니 불안감이 높아지는 것이라 생각된다. 국민 눈높이를 맞추려면 경찰도 더 노력해야 한다.”

셉테드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지자체·기업·시민사회단체 등 민간의 참여가 필수적일 것 같다. ‘생활치안’ 컨트롤타워로서 한마디 한다면.

“우리 현실에서 치안은 단순한 안전에 대한 요구를 넘어서는 행복추구권에 직결된다. 경찰의 한정된 인력만으로는 우리 국민의 치안 눈높이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지자체·기업·시민사회단체의 동참이 있어야 국민의 ‘체감안전도’를 높일 수 있다. 1세대 셉테드가 물리적 환경 개선이라면 2세트 셉테드는 주민의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는 일이다. 그래서 민간의 참여가 더 필요하다.”

201907호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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