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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대 전문기자의 ‘마인드풀, 내 마음이 궁금해’(4)] 서구 현대 명상 이끄는 틱낫한의 자두마을 

유배 40년, 마음을 멈춰 평화를 품다 

제자들의 ‘플럼빌리지 법사단’ 5월 16~19일 김천 직지사 찾아
시공 초월해 마음의 고향에 이르는 ‘틱낫한 명상’ 재현


▎틱낫한 스님의 제자들로 구성된 ‘플럼빌리지 법사단 (고동색 승복)’ 이 마가 스님(현성정사 주지·맨앞)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 지난 5월 16~19일 경북 김천 직지사에서 ‘틱낫한 명상’을 재현했다. 사진은 아침 식사 후 걷기 명상을 하는 모습. / 사진:배영대 기자
현대 명상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로 틱낫한 스님을 빼놓을 수 없다. 베트남 출신인 그는 1962년 미국으로 건너가 명상 현대화의 불을 지폈다. 그것은 ‘마음챙김(Mindfulness)’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이름의 명상이었다. 마음챙김 명상을 위해 불교 신자가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1970년대 후반 이후 미국에서 마음챙김 명상을 이끄는 존 카밧진, 잭 콘필드 등이 모두 그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돼있다. 그가 프랑스 남부 보르도 지방에 1982년 창립한 수련센터 ‘플럼빌리지(Plum Village·자두마을)’는 유럽 현대 명상의 중심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 같다.

2002년 그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의 저서 [화]가 크게 화제가 된 바 있다. 필자는 2003년 보르도 지방의 자두마을을 방문해 일주일간 머물며 그의 명상을 체험해 보기도 했다. 명상센터 이름이 왜 자두마을일까, 이런 의문을 그때 가졌었다. 최근 출간된 그의 책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집입니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베트남에는 노란 꽃이 피는 자두나무가 있다. 수명이 무척 길다. 때로는 기둥이 뒤틀리기도 한다. … 내가 그 나무 같다는 느낌이다.”

2002년 첫 한국 방문, 저서 '화' 크게 화제


▎2003년 한국을 처음 방문해 기자회견하는 틱낫한 스님.
명상센터 이름을 자두마을이라고 지은 것을 보면 그는 고향을 평생 그리워했던 것 같다. 하지만 돌아갈 수 없었다. 고향 베트남에 대한 그의 젊은 시절 기억은 전쟁으로 뒤덮여 있다. 공산주의자들과 미군과의 전쟁이다. 그는 ‘사회봉사청년학교’를 세워 파괴된 마을 복구와 난민 구조를 주로 하면서 전쟁의 어느 쪽도 편들지 않았다고 한다. 1975년 베트남 전쟁이 끝난 후 베트남을 통치하게 된 공산정권은 비폭력 반전평화운동을 펼쳐온 그의 귀국을 허용하지 않았다.

1926년 프랑스 식민통치 시절의 베트남에서 태어나 16세 때 승려가 된 그는 유려한 문체의 작가로도 유명하다. 법정스님의 글을 연상시키는 그의 책에는 ‘진정한 고향’을 찾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에게 진정한 고향은 베트남이 아니었다. 마음챙김 명상을 통해 도달하는 평화의 세계였다. 그것은 고정된 공간이나 시간이 아니다. 내가 현존하는 바로 ‘지금 여기’가 진정한 고향이라고 했다. 그것은 추상적인 공간이 아니라 사랑과 자비를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현실이기도 했다. 2004년에야 비로소 베트남 정부가 그를 초청하는데 그의 표현을 빌리면 ‘유배 생활’ 40여 년 만의 고국 방문이었다.

이제 구순을 훌쩍 넘긴 그는 공식 대외 활동을 접었다. 2014년 뇌일혈로 쓰러진 이후 건강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그 대신 제자들이 이제 그가 남긴 발자취를 따라 세계를 순회하며 ‘틱낫한 명상’을 전하고 있다. 지난 5월 16~19일 미국과 태국에서 활동하는 그의 제자 7명이 ‘플럼빌리지 법사단’이란 이름을 내걸고 한국을 방문, 경북 김천 직지사에서 수련 모임을 열었다. 프랑스와 태국에 설립된 자두마을에서 실시하는 ‘노래 명상’, ‘걷기 명상’ 등이 똑같은 방식으로 재현됐다. 2003년 보르도 자두마을에서 느꼈었던 것처럼 이번 직지사에서도 종소리와 노래 명상, 걷기 명상이 인상 깊었다.

‘Happiness is here and now. I have dropped my worries. Nowhere to go, nothing to do. No longer in a hurry.(행복은 지금 여기/ 근심 걱정 떨쳐요/ 아무 할 일, 갈 곳 없어/ 서두를 필요 없지)’

자두마을의 상징 노래라고 할 수 있는 ‘행복은 지금 여기에’가 기타 반주에 맞춰 직지사 경내에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참가자들은 조용히 노래를 따라 했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명상 수련에 노래는 활기를 불어넣었다. 쉽게 이해되는 구어체 가사는 마음챙김 명상의 핵심을 요약해 전달하고 있다. ‘브리딩 인, 브리딩 아웃(Breathing in, breathing out·숨 들이쉬고, 숨 내쉬고)’으로 시작하는 또 다른 대표곡도 불렀다.

호흡은 명상의 출발이다. 한 번의 숨쉬기로 명상은 시작된다. 편안한 자세로 앉아 숨 한번 들이마시고 내쉬는 일이다. 누구나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숨쉬기와 다른 것이 있다면 마음을 호흡에 집중하는 일이다. “누구든지 한 번의 깨어 있는 숨쉬기 수행에 성공할 수 있다. 다른 데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열 번만 숨을 들이쉬고 내쉴 수 있으면 상당한 진전을 본 것이다. 그렇게 10분만 숨을 쉬면 네 안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틱낫한 잠언 모음집 [너는 이미 기적이다])

이때 종소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흐트러진 마음을 ‘지금 여기’의 대상에 집중하게 한다. 일정한 간격으로 종소리가 울리면 무슨 일을 하든 간에 그 동작 그대로 멈춘다. 음식을 먹고 있었다면 입에 음식을 넣은 채로 멈추고, 걸어가고 있었다면 한걸음 내디딘 채 멈추고, 이렇게 잠시 멈추는 일이 마음챙김 명상의 시작이다.

여러 명씩 어울려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있었다. 이번 직지사 행사의 대화 주제는 ‘화’였다. 우리의 행복을 가로막는 화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대화는 지식 자랑이 아니었다. 참가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털어놓고 또 서로 연민과 사랑의 마음으로 경청하는 연습을 하는 시간이었다. 행복이 경청과 연습을 통해 습득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참가자들의 마음은 조금씩 열리는 듯했다.

종소리, 노래 명상, 걷기 명상 인상 깊어


▎프랑스 플럼빌리지에서 참가자들이 자연스럽게 명상을 하고 있다. 자욱한 안개와 부처 조각상이 어우러져 신비스런 느낌을 준다. / 사진:플럼빌리지 홈페이지
법사단 가운데 팝웬 스님도 자신이 어린 시절 폭력배에게 당한 끔찍한 기억을 털어놨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악몽으로 떠오를 때가 있다면서 이런 비유를 들었다. “30년 전의 어린아이가 ‘나의 아픔 좀 알아달라’고 계속 보채는 것과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과거의 아픈 기억을 알아달라고 보채는 어린아이가 한 명씩 들어있습니다. 그럴 때면 조용히 쓰다듬어주며 괜찮다고 위로해주세요.”

아픈 기억이나 스트레스로 화가 날 때마다 그런 생각이 일어나는 자신의 생각을 알아차리면서 어린애를 보듬듯이 어루만져주라는 얘기였다. 틱낫한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고통과 싸우지 마세요. 짜증이나 질투심과도 싸우지 마세요. 갓난아기를 안아 주듯이 그것들을 아주 부드럽게 안아 주세요. 당신의 화는 당신 자신입니다. 당신 안의 다른 감정들도 마찬가지입니다.”([너는 이미 기적이다])

이번 직지사 행사는 장소만 사찰이었을 뿐, 불교 예법으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마음챙김 연습을 하기 위해 수도승이 되거나 수도원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점을 틱낫한은 강조한다. ‘틱낫한 명상’은 전통 불교식 만트라(진언)조차도 현대 일상 화법으로 바꿔놓았다.

걷기 명상은 한 발짝 한 발짝 내딛는 자신의 발걸음에 집중하면서 ‘지금 여기’의 순간을 즐기는 시간이었다. 이번에 ‘플럼빌리지 법사단’을 초청한 마가 스님(현성정사 주지, 직지사 연수원장)은 걷기 명상을 인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길가에 떨어진 솔가지 하나씩을 각자 주워보세요. 내 마음속 고통 한 가지를 이 솔가지에 담아 버리세요.” 고통을 버려야 행복이 찾아올 것이다. 나는 무엇을 버려야 행복해질까를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프랑스 남부 보르도 지방에 세운 명상수련센터 ‘플럼빌리지’에서 틱낫한 스님이 참가자들과 함께 걷기 명상을 하던 때의 모습. / 사진:플럼빌리지 홈페이지
※ 이 기사는 중앙콘텐트랩에서 중앙선데이와 월간중앙에 모두 공급합니다.

[박스기사] 마음챙김 ‘쉬기 명상’ - 삶과 쉼의 기술 언제 어디서나 1~2분이면 효과

틱낫한의 명상 책은 국내에 많이 번역돼 나와 있다. 그중 어느 책을 골라 읽어도 그만의 독특한 문체를 발견할 수 있다. 가지고 다니기 편하게 손바닥만 한 크기로 출간된 책들도 볼만 한데 ‘쉬기 명상’ ‘사랑 명상’ ‘앉기 명상’ ‘걷기 명상’ ‘먹기 명상’ 등 그 제목만 봐도 그의 명상이 지향하는 바를 짐작하게 한다. 이 세상에 명상의 소재가 아닌 것이 없다. 직장에 있거나 집안의 부엌이나 욕실 어디에 있든, 음식을 먹을 때나 또 다른 곳으로 이동 중에도 마음챙김 연습이 가능하다. 그가 말하는 명상은 일상적이다. 때문에 명상을 위해 수도원이나 사찰 같은 특정 장소에 갈 필요는 없다.

많은 시간을 따로 낼 것도 없이 그저 1~2분만 연습을 해도 좋다고 했다.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할 수 있는 게 마음챙김 명상이다. 그저 가장 편안한 자세로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면 된다. 하루 중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마음챙김 호흡을 하고 긴장을 몸과 마음 밖으로 내보낼 것을 권한다. 일에 중독된 현대인들은 진정한 휴식을 모르고 있다. 명상을 위해 홀로 있는 것이 문명과의 격리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마음챙김 명상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금 하고 있는 것을, 그것이 무엇이든 잠시 다 멈춰보는 것이다. 그리고 들이 마쉬고 내쉬는 나의 호흡에 주의를 집중을 해보는 일이다. 깊이 호흡을 하며 바쁘게 이리 저리로 달려만 가는 마음을 쉬게 하는 것이다.

“진정한 ‘홀로 있음’은 대중의 의견에 휩쓸리지 않고, 과거에 대한 슬픔, 미래에 대한 걱정, 현재의 강렬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것입니다.”([쉬기 명상])

쉽다고 하는데도 잘 되지 않는 것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습관이 만들어지려면 연습을 해야 한다. 그래서 마음챙김 명상은 삶의 기술이자 쉼의 기술로도 정의된다.

※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중앙콘텐트랩 - 학술기자 20년 외길을 걸어온 국내 굴지의 학술전문기자다. 중앙일보 문화부장을 역임했다.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불전국역연수원·민족문화추진회·도올서원 등을 거쳐 서강대 철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대한제국 120년, 다시 쓰는 근대사] [실학별곡, 신화의 종언]이 있다.

201907호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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