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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감정은 어떻게 전염되는가 | 대응할수록 퍼져나가는 감정전염의 역설 

 


근주자적 근묵자흑. 사람은 가까이하는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단 뜻이다. 중국 서진(西晉) 때 문신인 부현(傅玄, 217~278)이 자신의 잠언집 [태자소부잠]에 쓴 경구다. 직관적이나마 감정에는 전염성이 있단 걸 그 당시에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감정이 ‘어떻게’ 전염되는지는 지금껏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런 까닭에 2009년 캘리포니아 주 팰로앨토 지역의 한 명문고에서 연쇄 자살 사건이 벌어지는 데도 어른들은 손쓸 방도가 없었다. 1년 새 다섯 아이가 연달아 달리는 기차 앞으로 뛰어들었다. 아이들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지만, 서로 알지 못했다. 개별 학생들에게 숨어있을 불행의 이유도 충분한 답은 아닐 터다. 불행은 언제 어느 때나 피어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목격한 것은 집단의식, 즉 유독성 집단사고와 행동 증후군의 결과일 수도 있다.” 저자는 아이들이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이상한’ 전염병이 발생했다고 생각하고, 감정전염의 경로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기 전에 해독제를 구하려고 노력한다.

결과부터 말하면, 저자의 노력은 실패했다. 전염 속도를 늦췄다고 생각한 2016년 봄, 아홉 번째 학생이 선로로 몸을 던졌다. 6년간 찾아 헤맨 치료법들이 하나같이 자가당착적이었다. 미디어는 위험을 알려 확산을 경계하지만, 동시에 병이 있단 사실을 알리면서 확산을 촉진했다. 정서 지능은 전염에 맞서 싸우도록 하지만, 확산을 막을 능력은 없다.

그런데도 이 책은 징후로서 가치가 있다. 감정전염은 전파를 타고 그 속도를 배가한다. 그렇다면 SNS야말로 전염에 최적화된 환경일 테다. 한국에서 팰로앨토에서 벌어진 일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 문상덕 기자

201909호 (2019.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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