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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중국·일본서 찾은 고려 해상무역의 퍼즐 조각 

고려 ‘대박 수출품’ 청자가 아니었다 

개인 문집까지 뒤져 한국에 없는 사료 찾아
어떻게 오갔는지, 무엇을 팔고 샀는지 밝혀


▎고려상인과 동아시아 무역사 / 김영제 지음 / 푸른역사 / 2만원
퍼즐 맞추기가 짜릿할 때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조각을 찾아내 딱 끼워냈을 경우다. 비록 그것이 전체가 아닌 일부라 할지라도 말이다.

일본 도쿄대에서 ‘당송 재정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영제 단국대 교수(사학과)가 이 책을 쓰고 펴내게 된 것도 우리 고려사 연구에서 알 수 없던 한 조각을 찾았다는, 더 찾아낼 수 있다는 희열 때문 아니었을까. 고려가 활발한 해상무역을 통해 전 세계에 ‘KOREA’라는 이름을 알렸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자료도 별로 없다. [고려사]에는 무역 활동에 관한 내용이 아예 없다.

김 교수가 착안한 대목은 다른 나라의 자료들이다. 2002년부터 중국 및 일본의 관련 자료들을 찾았다. 중국의 지방지와 개인 문집까지 뒤졌다. 동아시아 해역사 연구를 위해 결성된 일본 학계의 ‘영파 프로젝트’에도 참가해 국제 네트워크도 다졌다. ‘중국’ ‘일본’ ‘경제’라는 자신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한 셈이다. “지루한 역사문헌 탐독 중 고려상인과 관련된 광맥을 캤을 때의 기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는 것이 김 교수의 술회다. 이 책은 2009년 ‘여송교역의 항로와 선박’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이후 지금까지 10년간 내놓은 관련 논문을 집대성했다.

고려 상인들은 어떤 배를 타고 중국을 오갔을까, 무엇을 팔고 무엇을 사왔을까, 송나라 때 활발하던 해상무역은 왜 명나라 이후 확 쪼그라들었는가 같은 질문에 대한 설명을 꼼꼼한 사료 분석으로 풀어냈다. 현지를 방문해 찍은 사진과 당시 책자에 소개된 그림, 간결한 표가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김 교수는 항해 빈도 분석을 통해 “지금까지 겨울에 북풍을 이용해 남중국으로 갔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사실무근”이라며 “오히려 봄과 가을에 부는 동북풍을 이용해 예성항을 떠나 남중국으로 갔고, 그곳에서는 여름철 남풍을 타고 되돌아왔다”고 주장했다.

당시 고려의 배는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이었는데, 이에 비해 송나라의 배는 바닥이 뾰족한 ‘첨저선’이었다. 용적이 크고 항해 속도도 빠르기에 해상무역에 최적화된 배였다. 하지만 이 같은 배가 없던 고려는 중국배를 적극 활용했고, 중국인에게 업무총책을 맡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요즘 말로 ‘공유경제’다.

그렇다면 무엇을 팔고 샀을까. 우리는 흔히 값비싼 최고급 고려청자나 인삼 등을 주로 팔았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김 교수의 분석은 약간 다르다. 물론 최고급도 있지만 값싼 청자 일상용품이나 저렴한 돗자리 등이 오히려 중국에서 인기 있는 품목이었다는 것이다. 질 좋은 고려 돗자리를 흉내 낸 ‘짝퉁’이 당시 중국에 널리 퍼져있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사파국(인도네시아 자바)·대식국(아라비아)·진랍(캄보디아)·점성(베트남)·파사(페르시아) 같은 당시 국가들의 이름과 함께 이들이 사고판 품목 역시 눈길을 끈다.

경제학자로서 그가 특별히 주목한 것은 은(銀)이다. 동남아 국가들은 송나라 상인들로부터 금은을 구입해 말라카해협 일대 국가들에 팔았는데, 이는 중국보다 이곳의 금은 값이 비쌌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게 빠져나가다 보니 원나라 말기에 이르러 은값이 급등했고, 지불수단으로서의 체계 역시 크게 흔들렸다.

급기야 명나라 초기 귀금속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자 결국 해상무역은 철저하게 통제하고 조공무역을 시행하게 된다. 고려는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도 채굴해갔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은이 많이 나는 나라였지만, 고려의 광공업에 대해서는 자료가 전혀 없어 연구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김 교수는 안타까워했다.

챕터 말미마다 ‘후속 연구를 위한 제언’을 싣고 연구자로서 성과와 미흡한 점을 조목조목 짚어놓았다. 그 노고에 공감하며, 나머지 퍼즐을 맞춰 보겠다는 후학들의 활약도 기대해본다.

- 글 정형모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실장 hyung@joongang.co.kr



201909호 (2019.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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