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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핫(Hot)하고, 힙(Hip)한 홍대 밤거리 재발견 

1인 미디어, ‘19금’ 놀이터, ‘호캉스족’··· 

래퍼의 공연과 관광객의 일상을 소비하는 셀카봉 전성시대
자연스런 호기심 대변하는 기호품점이 내뿜는 자유분방함


▎유튜브 속 인기스타의 공연을 보기위해 ‘걷고 싶은거리’로 몰려든 사람들. 이날 공연은 인터넷 방송으로도 실시간 생중계 됐다. / 사진:박호수
"막차 타고 왔다가 첫차 타고 집에 가요.” “새벽 두 시가 가장 신나는 시간 아닌가요?”

10월 초 어느 ‘불금(불타는 금요일)’의 밤, 서울 지하철 2호선이 홍대입구역에 도착하자 한껏 멋을 낸 젊은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커다란 로고가 가슴 중앙에 새겨진 맨투맨 티를 무심히 걸치고, 통바지나 어글리 스니커즈, 색안경 같은 복고풍의 뉴트로(New와 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 패션을 챙겨 입은 ‘힙스터(Hipster)’들을 보자 홍대가 왜 ‘트렌드의 바로미터’로 불리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한껏 들떠 보이는 이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발 빠르게 향한 곳은 홍대입구역 9번 출구. 홍대를 대표하는 ‘만남의 장소’다. 홍대를 내 집처럼 오가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홍대피플’들이나 이곳에 처음 와 본 청소년까지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9번 출구 앞으로 모여든다. 태풍 ‘미탁’이 전국을 휩쓴단 경고성 보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젊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들었다.

일주일 동안 직장, 학교, 학원, 알바 등으로 피로가 쌓였을 이들에게 젊음의 메카인 ‘홍대 거리’는 일상의 고충을 잊게 하는 ‘해방구’ 역할을 한다. 누가 ‘홍대 간다’가 이제 옛말이라고 했는가. 기자의 눈에 홍대는 명실상부 ‘핫 플레이스’였다.

홍대입구역 9번 출구로 나와 청기와사거리, 홍대 정문(놀이터), ‘걷고싶은거리’를 지나 서교365까지 인파의 흐름을 따라 걸어봤다.

자정이 가까워 오는 늦은 시간까지 상권 1층 식당가는 대부분 만석이다. 술에 젖은 이들의 얼굴과 함께 홍대 밤거리의 분위기도 무르익는 듯했다. 20대 기자의 눈에 비친 ‘홍대에서 밤을 보내는 청춘들의 천태만상’을 담았다.

셀카봉은 필수! ‘야방’과 ‘야킹’의 거리


▎홍대 거리에서 버스킹하고 있는 모습을 관람객들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있다. / 사진:박호수
홍대 거리를 걸으며 유독 눈에 띈 것은 다름 아닌 ‘셀카봉(멀리서 셀카를 찍기 위해 스마트폰이나 사진기를 연결하는 긴 막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홍대 거리에서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하는 사람들은 동호인 내지는 전문 반송인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날 거리에는 너도나도 스마트폰을 단 셀카봉의 행렬로 넘실거렸다.

1인 방송을 켜 놓고 끊임없이 화면을 보며 시청자에게 말을 건네는 일반인 BJ(Broadcasting Jockey)도 있고, 유튜브나 SNS에 올릴 ‘브이로그’(‘비디오’와 ‘블로그’의 합성어로 자신의 일상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영상 콘텐츠)를 촬영하는 사람들도 있다. 서울 소재 한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김태민(26·남)씨는 “오늘 저녁부터 친구들과 노는 모습을 핸드폰으로 다 촬영했어요.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리려고요”라고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곤 “우연히 만난 기자께서 저희에게 말을 거셔서, 즉석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라고 핸드폰 화면을 응시한 채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곤 카메라를 기자에게 돌리는 바람에 그들의 영상에 카메오로 깜짝 출연하기도 했다.

셀카봉을 들고 돌아다는 사람들이 하도 많다 보니 인근의 행인 대부분도 무심한 표정으로 휴대전화 옆을 스친다. 그러다 이내 자신의 얼굴이 화면에 비치면 흠칫 놀라 고개를 돌린다.


▎홍대입구역 9번 출구로 나와 청기와사거리, 홍대 정문(놀이터), ‘걷고싶은거리’를 지나 서교365까지는 홍대를 대표하는 핫 플레이스다. / 사진:박호수
길을 가다 마음에 드는 이성이나 외국인에게 말을 거는 상황을 영상에 담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안녕하세요. 뭐 하러 오셨어요? 카메라 보고 말씀해 주세요”라고 질문하면 “친구들이랑 술 마시러 왔어요. 근처 분위기 좋은 술집 좀 추천해 주세요”라고 호방하게 답한다. 이런 식으로 대화는 자연스럽게 홍대 명소나 문화로 이어진다.

유튜브나 아프리카TV 같은 온라인상에서는 이런 유형의 방송을 ‘야방’이나 ‘야킹’이라 부른다. 야방은 야외방송을, 야킹은 야외에서 게스트를 섭외하는 방송을 뜻한다. 젊은 사람들이 붐비는 홍대가 ‘야방의 성지’라 불리기 배경이기도 하다.

홍대 거리는 온라인상에서 보던 1인 방송 스타들을 만나러 오는 ‘팬 미팅’ 장소의 기능도 한다. 홍대에서 ‘거리공연’ 라이브 영상을 올리는 인플루언서(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수십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SNS 유명인’들을 가리킴)들을 직접 만나러 먼 곳에서부터 홍대를 찾아온 이들도 있었다.

걷고싶은거리 입구에 배치된 버스킹 장소는 홍대입구의 심장과도 같다. 생소한 이름을 가진 한 일반인 래퍼 앞으로 100명 가까이 되는 사람이 둘러쌌다. 공연을 보는 외국인 유학생에게 어떤 연유로 이곳에 왔는가 물었다. 그는 “저분을 유튜브에서 매일 구독하며 봤다”며 “오늘 공연은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 학교 끝나마자마자 2시간 동안 전철을 타고 찾아 왔습니다”라고 흥분된 어조로 대답했다.

한편 도처에 깔린 이동식 셀카봉과 마주하게 되는 홍대 거리가 부담스럽다는 불만을 표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친구들과 힙합 클럽에 가기 위해 홍대를 찾았다는 최성범(21·남)씨는 “해방감을 누리려 홍대에 왔는데, 거리에 카메라가 너무 많으니 괜스레 신경 쓰인다”며 “촬영 자체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안 가는 선을 잘 지켜 주었으면 좋겠다”고 권유했다.

건전한 ‘19금 놀이터’


▎홍익로3길 쪽에 위치한 성을 주제로 전시중인 한 박물관. 전시물의 대부분이 관람객의 참여로 완성된다. / 사진:박호수
“우리 여기 구경하고 가자!” “나 여기서 사고 싶은 거 있어.”

버스킹 장소를 지나 홍대 로데오 거리로 접어들자 2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젊은 커플들이 잇따라 한 가게로 들어갔다. 분홍색과 흰색이 섞인 밝은 파스텔 톤의 깔끔한 건물 외관은 흡사 커피숍이나 옷가게를 연상시킨다. ‘24시 카페인가?’ 호기심이 동해 가까이 다가가자 커다란 글씨로 ‘성인용품점’이라고 쓰인 간판이 이내 눈에 들어왔다.

과거에는 다 쓰러져 가는 도시 외곽의 낡은 건물 지하나 인적이 드문 골목 끄트머리의 음지에서나 보이던 성인용품 가게가 많은 사람이 오가는 홍대 로데오 거리 중심에 보란 듯 자리 잡고 있었다.


▎홍대 로데오 거리 중앙에 위치한 성인용품점 외관의 모습이다. / 사진:박호수
오랜 세월 유교 사상의 영향을 받은 한국의 기성세대들은 유독 ‘성’에 있어서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성적 욕망과 관심을 자연스레 표현하는 20대들은 이색데이트 장소로 ‘성인용품점’을 찾는다. 그들의 얼굴에서 부끄러워하거나 불편해하는 기색을 찾을 수 없었다. 이 가게 직원의 말해 따르면 점포가 요지에 자리해 20대 젊은 층이 저녁 시간이나 밤에 구경 삼아 많이 방문하는 편이라고 한다.

매장 안에서 만난 20대 초반의 여대생은 “산부인과에서 젤 사용을 추천받은 후 이곳에 방문하게 됐다”며 방문 동기를 내보였다. “질염 예방에 좋다고 추천해 주더라. 예전에는 이런 거 사려면 괜히 부끄러우니깐 인터넷으로 시키고 그랬잖나. 지금은 성인용품점이 양지로 올라오고 소비자들도 거리낌없이 찾는 추세다. 건강한 성문화를 위해서라도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홍익로3길 쪽에는 성(性)을 주제로 한 박물관도 들어서 있다. 타깃층을 젊은 사람들로 잡았기에, 일반 박물관보다 늦은 시간까지 개관한다. 이곳은 젊은 사람들의 성적 호기심을 유쾌하게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대부분의 전시물이 관람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인터랙티브(interactive) 전시라는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전시를 보며 느끼는 부끄러운 감정은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활동에 참여하다 보면 곧 즐거운 감정으로 바뀐다는 이들도 있었다.

박물관 앞의 한 젊은 여성에게 ‘박물관에 방문한 계기’를 묻자, “저요? 이런 거 엄청 좋아해요”라며 까르륵 웃는가 하면 “전시물이 민망하지는 않냐”는 질문에는 “자연스러운 호기심과 감정들을 일부러 숨기려고 할수록 문제가 일어나는 법이잖아요”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이 여성은 성인이 되면서 느끼는 ‘성(性)’에 대한 탐구심을 분출할 건전한 ‘19금 놀이터’가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홍대를 찾는 젊은이들의 이러한 트렌드 변화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타인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타자 지향적 경향을 가진 기성세대에 비해 최근 젊은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중시하는 내부지향적 성향이 두드러진다”고 해석했다. 젊은층은 미래지향적이고 이상적이기보다는 현실의 만족을 더 중시하는 쾌락주의적인 성향도 갖는다. “그래서 성에 대한 관심과 욕구를 표현하는 데 있어 더 거리낌이 없다”는 게 김 교수가 보는 요즘의 젊은 사람들이다. “이는 젊은 사람들이 문화를 향유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 이것을 비난하거나 금지하기보다는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잠도 홍대에서! 호캉스까지 풀(full)로 즐긴다


▎홍대 거리에서 만난 ‘힙스터(Hipster·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를 보자 홍대를 왜 ‘패션의 바로미터’라 부르는지 짐작 가능했다. / 사진:박호수
홍대 거리에서 캐리어 가방(carrier bag)을 끌고 다니는 외국인들도 드문드문 눈에 띈다. 이들은 홍대 밤거리에 감탄했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에 온 지 3일째라는 프랑스의 한 관광객은 “홍대 밤거리를 프랑스와 비교해서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이처럼 답했다. “프랑스에서는 아무리 공휴일이더라도 밤 11시이후 옷이나 신발 쇼핑은 거의 불가능하다. 처음 홍대에 도착했을 때, 이렇게 늦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젊은 사람이 자유분방하게 거리를 휘젓고 다니는 모습에 놀랐다. 홍대라는 동네는 발을 내딛는 순간 사람을 완전히 매료시킨다.”

2018년 마포관광통계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장소는 홍익대 지역으로 45.5%를 차지했다. 방문 목적으로는 쇼핑 관광이 30.6%, 식도락 관광이 26.6% 순으로 조사됐다.

홍대 거리에 캐리어 가방을 끌고 온 사람들이 비단 외국인들만은 아니다. 서울이나 수도권에 사는 젊은 사람들도 홍대에서 주말을 보내기 위해 몰려들었다. 홍대의 한 호텔 앞에서 만난 직장인 송시온(26·여)씨에게 “여행차 서울에 놀러 온 것이냐”라고 물으니 “저요? 저 여기서 집까지 30분밖에 안 걸려요”라고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 맘 잡고 해외여행도 못 가고, 주말에 지방에 다녀오기도 오고 가는 시간이 오래 걸리니 힘들잖아요. 그래도 머리 식힐 겸 어디든 떠나고 싶으니 주변에 놀거리가 많은 홍대에 친구들과 함께 호텔을 잡고 호캉스를 즐기러 왔어요.”

호캉스는 ‘호텔’과 ‘바캉스’를 합친 말로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다. 실제로 국내의 한 숙박예약사이트에 들어가면 홍대에서 예약할 수 있는 호텔 및 숙박시설이 300개가 넘는다. 숙소 대부분 ‘도심 속 호캉스’라는 태그를 걸어 광고한 것이 눈에 띈다.

이들이 집을 떠나 ‘호텔’로 향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호캉스’를 떠나는 젊은 사람들의 심리를 김영하 작가는 최근 한 방송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집에서는 가만히 있다가 세탁기만 봐도 ‘저걸 돌려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호텔은 일상을 벗어나 오롯이 자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다. 우리가 오래 살아온 공간에는 늘 상처가 있다. 반면 호텔은 그런 일상을 벗어나게 해 주는 ‘해방구’ 역할을 한다.”

취재를 마무리하고 돌아서려는 시각이 대략 새벽 두 시. 홍대의 밤거리는 여전히 뜨겁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귀가를 위해 택시를 잡고 있는 허혜민(24·여)씨에게 “오늘 하루 어땠냐”고 물었다. “홍대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사람 많고 복잡해서 괜히 왔다 생각이 들었는데, 돌아갈 때가 되니 아쉽네요. 그래도 한 번씩 이렇게 나와 재충전을 하고 가는 것 같아서 좋아요.”

- 박호수 월간중앙 인턴기자 lake8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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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호 (20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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