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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논설위원의 인간혁명] 블룸버그가 ‘고담 뉴욕’을 살려낸 방법 

민주·공화 진영 넘나드는 ‘하이브리드 실용성’ 

한 진영의 정책 패키지만으로 문제 해결 안되는 시대에 도전장
노무현이 꿈꾼 ‘좌파적 신자유주의’와 상통


▎마이클 블룸버그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미국 동부 버지니아주의 노퍽시에서 첫 선거 연설을 하고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올여름 세계적으로 흥행한 영화 [조커]의 주 무대인 고담(Gotham)시는 뉴욕에서 모티브를 따왔습니다. 1939년 배트맨 캐릭터를 처음 만들어낸 빌 핑거는 뉴욕시의 전화번호부에서 ‘고담 보석점(Gotham Jewelers)’이란 상호를 보고선 작품 속 도시 이름을 생각해 냈죠. 배트맨의 배경이 1930~40년대 뉴욕으로 설정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사실 고담은 19세기 유럽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이 새로운 항구도시에 붙여 준 별명이기도 합니다. 1807년 [살마군디(Salmagundi)]라는 잡지에서 극작가 워싱턴 어빙은 뉴욕을 ‘염소의 도시(Goat’s Town)’란 뜻으로 고담에 비유했습니다. 실제 영국 노팅엄주의 고담 지역에 내려오는 민간 설화에 빗대 뉴욕시민들의 어리석음을 풍자한 것이었죠.

이후 배트맨은 여러 편의 영화로 제작되면서 1970~80년대 뉴욕으로 배경을 옮겼습니다. 영화 [조커] 또한 파산 직전에 몰린 뉴욕의 암울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죠. 이때의 뉴욕은 치솟는 범죄율과 심각한 재정 파탄으로 사회 혼란이 극에 달했습니다. 뉴욕시는 1970년대 말 1만여 명의 교사와 수천 명의 경찰·소방관을 해고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시행했죠.

서민들의 삶은 더욱 살기 어려워지고 길거리에선 총기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뉴욕은 진짜 무질서한 도시 ‘고담’으로 변해 갔습니다. 극 중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사람이 배트맨의 아버지 토마스 웨인입니다. 웨인 기업의 오너로 억만장자인 그는 시장에 출마해 고담을 살리려고 합니다. 자선 사업가이기도 한 그는 시민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습니다.

그러나 웨인은 조커가 촉발한 성난 군중들의 시위에 휘말려 목숨을 잃게 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웨인의 어린 아들 브루스는 아버지의 복수를 명분 삼아 자경단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아버지의 죽음이 배트맨의 탄생을 야기한 것이죠. 그다음부터 브루스가 자신의 어마어마한 재력을 활용해 고담시를 구해내는 게 영화 [배트맨]의 주요 스토리입니다.

슈퍼맨의 배경인 ‘메트로폴리스’ 역시 뉴욕에서 모티브를 따 왔습니다. [데일리 플래닛]의 기자인 클라크 켄트는 평소엔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지만, 악당을 마주하면 정의의 히어로 슈퍼맨으로 변신합니다. 작품 속에서 메트로폴리스는 고담보다는 밝은 색채로 그려지긴 하지만, 악당의 주요 무대인 점은 동일합니다.

이처럼 뉴욕은 영화와 소설 등 각종 예술 작품의 주요 배경으로 쓰입니다. 세계 금융의 심장 월스트리트가 있고, 뮤지컬의 중심지인 브로드웨이가 있습니다. 맨해튼의 마천루는 자본주의의 꽃이며, 항구 앞에 우뚝 솟은 자유의 여신상은 민주주의의 상징입니다. 인구 830만, 면적 1213㎢(서울의 2배)의 뉴욕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도시죠.

이런 이유로 뉴욕엔 늘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됩니다. 특히 최근에는 뉴욕시장으로 3선을 연임했던 마이클 블룸버그가 2020년 미국 대선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블룸버그가 이끌었던 뉴욕의 12년은 황금기로 꼽힙니다. 뉴욕시장 재임 시절 성공적인 시정 운영으로 퇴임 직후엔 ‘런던시장 영입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2015년 4월 영국의 [선데이타임스]는 “프리미어 리그에 출중한 외국인 선수가 없으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외국인 영입이) 아스널과 첼시에 좋았던 것처럼 런던에도 좋을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당시 런던시장이었던 보리스 존슨(현 영국 총리)의 측근도 해당 기사에서 “블룸버그는 런던의 좋은 친구이자 기여자다, 존슨 시장을 비롯해 많은 이가 그를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

블룸버그가 얼마나 시장 역할을 잘했으면 런던에서도 그를 모셔 와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을까요? 최근 블룸버그가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히자 [워싱턴포스트]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트럼프가 갖지 못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그는 훌륭한 대통령은 될 수 있을 것”이라고요. 다만 “민주당 후보가 되기엔 힘들 듯하다”는 단서를 붙이긴 했습니다.

어찌 됐든 정치인에 대한 칭찬에 까다롭기로 소문난 [워싱턴포스트]가 그의 능력만큼은 높이 평가한 것입니다. 과연 블룸버그는 어떤 사람일까요?

트럼프보다 18배 부자


▎2012년 7월 17일 흑인 인권지도자인 알 샤프턴(앞줄 가운데 남성) 목사 등 뉴욕의 불심검문 정책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최근 한국에서 이슈가 된 블룸버그의 이야기는 그가 트럼프보다 훨씬 돈이 많다는 부분입니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올해 9월 기준) 그의 자산은 534억 달러(약 62조원)입니다. 자신의 부를 입버릇처럼 자랑하는 트럼프(30억 달러)보다 18배 돈이 많습니다. 미국에서 9번째, 전 세계에서 14번째입니다. 이를 의식했는지 트럼프는 “블룸버그가 (대통령 도전에) 실패할 것”이라고 견제합니다.

부자가 된 방식에서도 블룸버그는 남다릅니다. ‘금수저’였던 트럼프와 달리 블룸버그는 스스로 사업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1942년 보스턴 외곽의 브라이턴에서 평범한 유대인 부모 아래 태어났습니다. 러시아 혈통의 아버지(헨리 블룸버그)는 유제품 회사의 회계원, 어머니(샬럿 루벤스 블룸버그)는 벨라루스 출신 이민자의 딸이었죠.

블룸버그는 지난해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나는 국가 장학금과 학자금 대출, 근로 장학금으로 존스홉킨스대를 졸업했다”고 밝혔습니다. 전기공학을 전공한 그는 주차장 안내원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1964년 대학 졸업 후 블룸버그는 곧바로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입학합니다. 1966년에는 미국의 4대 투자은행이었던 살로몬 브라더스에 입사해 세일즈와 주식거래 부문에서 능력을 인정받죠.

그러나 1981년 살로몬 브라더스가 다른 회사에 인수·합병되는 과정에서 조직과 마찰을 빚고 해고당합니다. 갑작스러운 실직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됩니다. 조그만 사무실 한 칸을 얻어 회사를 세우고 ‘이노베이티브마켓시스템스’라는 이름을 짓습니다. 그가 내놓은 상품은 증권회사에서 수작업했던 금융 분석 자료를 컴퓨터로 일괄 처리해 제공하는 일종의 ‘증권뉴스’였습니다. 바로 블룸버그 통신의 모태입니다.

이듬해 블룸버그는 메릴린치를 첫 고객으로 유치했고, 전용 단말기 22대를 공급했습니다. 그 후 사업이 번창하면서 1990년에는 8000여 개의 단말기를 계약했습니다. 그 사이 회사명을 자신의 이름을 따 블룸버그로 바꿨죠. 1991년에는 [뉴욕타임스]까지 블룸버그 단말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블룸버그는 증권 정보 외에도 종합 뉴스를 함께 제공하는 미디어 그룹으로 성장합니다. 24시간 방송하는 블룸버그 라디오·텔레비전, 전문가를 위한 블룸버그 마켓매거진 등 다양한 매체로 사업을 확대합니다. 현재 블룸버그 그룹은 180여개 지역에 1만9000여 명의 인원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사업이 번창하면서 회사 지분의 88%를 소유한 그는 막대한 부를 거머쥐게 됐죠.

세계 최고의 부호 중 하나가 된 블룸버그는 정치에 눈을 돌립니다. 2001년 뉴욕시장이던 루돌프 줄리아니가 상원의원 출마를 이유로 3선 연임을 포기하자 블룸버그는 유력주자로 급부상합니다. 공화당 후보로 나선 블룸버그는 50.3%를 얻어 시장에 당선됩니다. 그러나 그의 앞길은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2002년 1월 취임한 그는 불과 몇 달 전 벌어진 9·11테러의 후유증을 치유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당시는 테러의 충격과 공포가 뉴욕시를 여전히 뒤덮고 있던 때였습니다. 외국인은 물론 자국민조차 뉴욕에 가길 꺼리던 시절이었죠. 취임식에서 블룸버그는 “뉴욕을 재건해 자유 세계의 수도로 만들겠다”며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성공한 사업가 출신답게 블룸버그는 제일 먼저 방만한 재정 문제를 바로 잡기 시작합니다. 취임 초기 40억 달러 안팎의 적자 상태였던 시 재정은 2007년 35억 달러 흑자로 돌아섭니다. 캐릭터 산업의 최강자인 디즈니의 마케팅 전문가를 영입해 뉴욕 브랜드를 전 세계에 홍보합니다.

연봉 1달러 ‘기부왕’ 시장


▎2004년 7월 4일 마이클 블룸버그 당시 뉴욕시장이 9·11테러 희생자를 기리는 초석을 찾았다. 이후 9·11기념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블룸버그 시장은 최소 1500만 달러를 재단에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진:AP/연합뉴스
아울러 블룸버그가 재직했던 12년 동안 뉴욕은 기술혁신을 주도하는 스타트업의 요람으로 성장합니다. 실리콘 밸리를 본 따 ‘실리콘 앨리(Silicon Alley)’란 말도 생겨났죠. 블룸버그가 시장으로 재임했던 12년간의 일관된 정책 기조는 ‘과학기술의 도시 뉴욕’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경제개발 전략을 추진했죠. ①삶의 질 향상 ②비즈니스 환경 구축 ③스타트업 허브조성 ④교통·주택 등 인프라 확대 등입니다. 블룸버그 스스로 ‘스타트업 시장(Startup Mayor)’이 되겠다고 선언하며 뉴욕을 최첨단 기술 도시로 탈바꿈시켰습니다.

블룸버그가 가장 공들였던 분야 중 하나인 공교육 개혁과 빈곤 퇴치는 미국 주류 언론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습니다. 뉴욕의 교사 임금을 다른 지역보다 높게 인상하고, 저소득 자녀들도 좋은 수업을 받도록 공교육 예산을 늘려 다양한 방과 후 프로그램을 개설했습니다.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해 교내 휴대전화 반입도 금지했죠.

그는 또 강력한 공중보건 정책으로 화제가 됐습니다. 식당의 위생 규제를 강화하고 시민 건강을 저해하는 탄산음료 소비를 억제했죠. 사무실 내의 흡연도 전면 금지했습니다. 그가 시장으로서 마지막 결재한 서류 역시 전자담배를 일반 담배와 같이 제한하는 것이었습니다. 퇴임 후에도 청소년들의 전자담배 흡연을 줄이는 캠페인에 1억6000만 달러를 기부했고요.

무엇보다 단 1달러의 연봉만 받으며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그의 모습에 많은 시민이 지지를 보냈습니다. 특히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한 트럼프와 달리 지구온난화를 해결하고자 도시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캠페인도 벌였습니다. 2013년 9월 뉴욕타임스는 “뉴욕의 하늘이 50년 만에 가장 깨끗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앞서 금연 캠페인에 거액을 내놓은 것처럼 그는 ‘기부왕’입니다. 2018년에는 모교인 존스홉킨스대에 18억 달러(약 2조1000억원)를 기탁했습니다. 미국 대학 기부 역사상 최대 금액입니다. 당시 블룸버그는 “나 역시 누군가의 도움 덕분에 대학을 졸업하고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기부금을 내는 것은 젊은이들이 기회의 평등을 누릴 수 있도록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재까지 그는 기후변화와 교육,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60억 달러에 이르는 돈을 기부했습니다.

기부계의 큰 손인 블룸버그를 기념해 [뉴욕타임스]는 2013년 12월 그의 퇴임을 알리는 기사에서 “시장 재임 동안 개인 돈 6억5000만 달러를 쓰고 물러난다”고 보도했습니다. 그가 쓴 돈의 내역도 간단히 소개했는데요. 직원들에게 아침·점심 식사와 간식을 제공하기 위해 80만 달러, 시민단체 등 지원금 50만 달러, 미술·복지·문화 단체에 2억6300만 달러, 흑인·히스패닉 남성을 돕는데 3000만 달러를 사용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알려진 금액만 이 정도이고 실제 쓴 돈은 6억5000만 달러보다 많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뉴욕은 블룸버그 재임 기간 전반적으로 더 나아졌다, 시민으로 돌아가는 블룸버그가 잘 되길 바란다”며 훈훈하게 기사를 마무리했습니다. 블룸버그는 지난 100년간 뉴욕에서 3선을 한 네 번째 시장으로 남았고요.

진짜 실력은 하이브리드 실용성


▎시민들이 11월 16일 서울 교대역 사거리에서 열린 ‘끝까지 검찰개혁, 서초동 시민참여 촛불문화제’에서 검찰 개혁과 조국 수호를 촉구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고담을 지키는 배트맨은 시민들로부터 ‘히어로’로 칭송받지만 다른 한편에선 폭력을 정당화하고, 돈으로 정의를 매수한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때론 원칙을 지키기 위해 내렸던 과감한 결단이 부메랑이 돼 돌아오기도 합니다. 블룸버그도 마찬가지입니다. 뛰어난 업적도 있지만, 약점도 존재합니다.

가장 큰 비난을 받는 게 강경한 ‘불심검문(stop and frisk)’ 정책입니다. 블룸버그 시장 시절의 경찰은 합리적 의심이 된다는 판단을 내리면 동의 없이 시민을 검문하고 연행했습니다. 블룸버그는 적극적으로 이 정책을 펼치면서 우범자로 예상되는 시민을 탐문하고 조사해 범죄율을 낮췄습니다. 2011년 기준 뉴욕시에서 불심검문을 받은 사람은 68만여 명에 달했습니다. 문제는 불심검문이 일부 지역에 편중돼 있다는 것이었죠.

특히 불심검문 대상자는 흑인들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뉴욕의 인종 비율은 백인 35%, 히스패닉 28%, 흑인 23%, 아시안 14%입니다. 그러나 불심검문 비율은 흑인 55%, 히스패닉 32%, 백인 10%였습니다. 차별 논란이 제기되자 이 정책은 법원의 판결대 위에 섰고 2013년 8월 지방법원은 “미국 헌법에 위배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는 지금까지도 블룸버그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입니다. ‘돈 많은 백인 남성’ 이미지에다 인종차별적이라는 오해까지 받게 된 것이죠. 공화당 출신 뉴욕시장이면서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오겠다는 그에게 있어 이 같은 논란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때문에 [워싱턴포스트]는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민주당 후보가 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평한 것이죠.

그러나 블룸버그의 강력한 치안정책 덕분에 범죄가 크게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1980~90년 연간 2000건에 달했던 뉴욕의 살인사건은 2000년대 이후 500건 이하로 줄었습니다. 2017년엔 290건으로 급감해 빌 드 블라지오 뉴욕시장은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라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12년간 공권력을 강화한 전임 블룸버그의 공이 컸다고 이야기할 수 있죠.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블룸버그가 갖는 정치적 상징성은 매우 큽니다. 먼저 그는 ‘공화당 vs 민주당’으로 굳어진 기성 정치의 틀을 벗어나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도 ‘진보 vs 보수’로 이분돼 모든 이슈가 하나의 프레임으로 환원되는 것처럼 미국에서도 이런 당파적 구도가 선거 국면에선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진영 논리에도 ‘급’이 있다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목사가 지난 6월 11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문재인 대통령 하야 촉구 기자회견’을 마치며 신도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예를 들어 미국 선거의 단골 이슈는 총기규제, 낙태, 동성결혼, 파병, 감세 등입니다. 여러 주제를 놓고 각각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는 각 집단에서 일관된 경향성을 갖습니다. 공화당 지지자는 파병과 감세를 찬성하고 총기규제 및 낙태와 동성결혼은 반대는 형식이죠. 민주당 지지자는 이와 반대 입장을 보이고요.

그런데 블룸버그는 두 입장이 섞여 있어 기성 정치에선 이단아로 평가됩니다. 그는 먼저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와 미국 우선주의, 다문화를 배척하는 이민정책을 강하게 비판합니다. 심지어 그는 트럼프의 탈퇴로 문제가 된 파리기후변화 협약에 내야 할 미국 분담금을 자신이 내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죠. 이는 민주당의 기존 입장과 비슷합니다. 아울러 낙태와 총기규제 등에 있어서도 진보적 입장이죠.

반대로 그는 공화당 소속으로 두 차례나 뉴욕시장을 연임했고, 기업가 출신으로 시장의 자율성을 강조합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입장을 놓고도 민주당 유력 대권 후보들은 거센 공격을 퍼붓습니다. 그의 출마 소식이 알려지자 지난 9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유감스럽지만, 선거를 돈으로 사지는 못할 것”이라고 일갈했죠.

하지만 일각에선 블룸버그의 이런 하이브리드적 성향이 오히려 중도층을 흡수해 민주당의 외연을 넓힐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이전보다 세상은 더욱 다원화되고 복잡해졌는데, 언제까지 ‘공화당 vs 민주당’의 프레임에만 갇혀 있을 것이냐는 지적이죠. 즉, 기업을 위한 법인세 인하를 찬성하면서도 동성결혼도 함께 찬성할 수 있지 않으냐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은 미국보다 더욱 심각한 진영 정치에 빠져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갈등 이슈는 대북 정책과 외교 문제, 시장의 자율성, 사회적 가치에 대한 개방성 등이 있습니다. 진보 진영은 북한에 대해 호의적인 ‘햇볕 정책’을 지지하고 시장에 적극 개입하며 증세를 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보수 진영은 반대로 대북 지원을 ‘퍼주기’로 해석하고 정부의 시장 개입을 줄여 세금도 낮춰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정책적 측면에서 일관된 경향성을 보이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한국 정치에선 진영 논리가 정책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통해 형성되는 게 아니라, 인물을 중심으로 판이 짜입니다. ‘조국 사태’를 둘러싼 광장의 시위가 대표적입니다. 시민들은 두 패로 나뉘어 ‘조국 수호’와 ‘조국 반대’를 외치며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분노를 쏟아냈지만, 어느새 사건의 본질은 사라지고 진영 논리만 남았습니다.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정치인들입니다. 진보와 보수의 세 대결로 해석하며 ‘편향성의 동원’을 일삼았죠. 양 세력이 자신에게 유리한 이슈와 갈등만 부각해 시민들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지역주의나 안보 이슈를 내세우는 것이 대표적이죠.

그러나 한국 사회의 진보와 보수를 세밀히 따져 보면 정책에 대한 이념 차이로 나뉘어 있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는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느냐, 혹은 하지 않느냐의 문제죠. 정책에 대한 찬반 여부에 따라 정파적 구도가 형성된 미국과 달리 어떤 인물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정치 진영이 나뉘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한국의 대의민주주의 수준이 그만큼 낮다는 뜻이고요.

원로 정치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의 정치 세력은 정책적 대안을 먼저 제시하고 이를 둘러싼 경쟁을 통해 대통령이 되는 게 아니라 아무 대안도 없이 당선돼 뒤늦게 정책을 만들고 통치 이념으로 삼는다”며 “정당 간 정책적 차이가 없고 기득권만 대표는 하는 정치 체제가 자리 잡으면서 서민과 노동 계급의 요구는 대표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현재처럼 정당을 통한 대의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것은 산업혁명 이후인 19세기부터입니다. 서구사회에선 자본가인 부르주아 계급과 그에 맞서는 노동자 계급이 갈등과 균열의 중심축이었고 이들을 대표하는 양대 정당이 만들어졌습니다. 중요한 사회적 이슈는 대부분 정당을 통해 조정되고 합의점을 찾았죠.

그러나 사회가 분화되고 발전하면서 계급 외에도 다양한 갈등 요소가 생겼습니다. 젠더·세대·문화·환경 등 복잡한 이해관계를 대표하고 조율할 수 있는 ‘대의’ 기능이 더욱 중요해진 거죠. 이 때문에 유럽은 다양한 가치를 표방하는 군소정당이 존재하며, 이들이 연정을 통해 합의점을 찾습니다.

하지만 한국 정치에는 다양한 사회 균열과 갈등을 대표할만한 정치 세력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민들의 목소리는 다양한데 한국 정치는 진보와 보수 2개의 진영 논리뿐입니다. 무슨 이슈를 대입해도 한국 정치는 진보의 ‘적폐’와 보수의 ‘빨갱이’로 찢어져 있습니다. 말로는 서로 진보와 보수 정당을 대표한다고는 하지만 정책으로 경쟁하려 하지 않고, 지역주의와 색깔론, 적폐·친일 논란 같은 자극적 이슈로만 지지자를 끌어들이려 합니다.

“나는 문프에게 모든 권리를 양도했다”


▎2007년 4월 2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한·미FTA 타결에 관한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FTA는 정치의 문제도, 이념의 문제도 아닌 먹고사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렇다 보니 한국의 시민들은 정책을 보고 정당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당 대표나 대선 후보와 같은 간판 정치인을 보고 투표합니다. 정책에 대한 찬반도 그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고 결정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인물 먼저 정해 놓고 그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따릅니다. 지난 8월 공지영 작가가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찬성 의사를 밝히며 “나는 문프(문재인 대통령)께 모든 권리를 양도했다, 문프가 그를 적임자라고 하니 지지한다”고 말한 게 대표적입니다.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는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이 잘 이뤄져 있어야 합니다. 대표적으로 국가와 시장, 시민사회가 자율적으로 움직이며 조화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야 하죠. 국가 권력은 다시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의 3권 분립이 보장돼 있어야 하고요. 그러나 한국 정치는 입법·사법부가 행정부에 장악된 모습입니다. 대통령과 국회가 서로 견제와 균형을 찾는 구도가 아니라 ‘청와대·여당 vs 야당’의 기울어진 운동장이죠.

진영 정치는 이 같은 대결 구도를 사회 전체로 수직계열화합니다. 시민사회와 국가가 서로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지 않고, 시민사회의 세부 영역(언론·시민단체 등)마저 ‘진보 vs 보수’ 프레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책만 놓고 보면 한국 사회의 이념 갈등은 크지 않지만 어떤 대통령, 어느 정치세력을 지지하느냐를 따지면 갈등이 매우 커진다”며 “이념에 따라 정파가 나뉘는 게 아니고 정파 갈등이 이념 갈등을 부추긴다”고 말합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정치 세력 간에 합리적 토론이나 타협은 불가능합니다. 모든 이슈를 ‘내 편 네 편’으로 가르며 대립하기 때문에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울러 건전한 내부 비판까지 진영 논리를 벗어나면 매장되기 일쑤입니다. 최근 조국 전 장관을 비판했던 김경율 참여연대 전 집행위원장과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진보층 내부에서 궁지에 몰렸던 게 대표적입니다.

윤성이 교수는 그 대안으로 갈등의 다양화·공론화를 제시합니다. “다양한 사회 균열이 정당을 통해 대표될 수 있어야 하고 생활세계의 여러 이슈가 시민사회에서 적극적으로 공론화 돼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했던 ‘좌파적 신자유주의’ 같은 사례가 통용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 당시 이 표현으로 좌·우파 양쪽으로부터 공격받았습니다. 하지만 “대북정책에 있어선 좌파적 입장을 보이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해선 우파적 입장을 갖는 것이 왜 불가능하냐”는 것이죠.

좌파적 신자유주의는 불가능할까

진영 논리는 한국 정치의 가장 본질적 문제점입니다. 이를 깨기 위해선 하이브리드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앞서 살펴본 블룸버그의 사례처럼 정책과 이슈에 따라 진보·보수의 고정관념을 따르지 않고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치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갈등과 균열을 반영할 수 있으려면 지금보다 훨씬 ‘오픈 마인드’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만 옳다는 진영 논리를 내세우면 시민들은 광장의 아노미 상태에 놓일 뿐입니다.

영화 [조커]에서 성난 군중들은 자신의 목소리가 대표되지 못한다는 걸 알고선 거리로 나섰습니다. 정치가 다양한 사회 균열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면, 광장의 혼란과 갈등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정당정치는 오히려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길 부추깁니다. 시민의 의중이 무엇인지 파악해 정치적 의사를 대변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자기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오히려 시민을 선동합니다. 이때 특정 정치인과 정파에 대한 맹목적 지지는 광장의 광기를 키울 뿐입니다.

카를 포퍼는 ‘개인이 스스로 결단을 내리고 자율적 행동을 통해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열린사회라고 정의합니다. 반대로 폐쇄적 민족주의와 전체주의처럼 피아 구분이 명확하고 상대의 의견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닫힌사회라고 비판합니다.

광장은 4·19혁명이나 87년 민주항쟁처럼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고 역사를 발전시키기도 합니다. 이는 자율과 다양성이 존중되는 열린사회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70만 명이 모였던 1933년 아돌프 히틀러의 뉘른베르크 군중집회는 전체주의로 가는 지름길이었습니다. 히틀러에 대한 맹목적 지지와 자기만 옳다는 폐쇄적 민족주의를 통해 닫힌사회로 가는 잘못된 길이었죠.

지금 우리 앞의 광장은 열린사회를 위한 걸까요, 닫힌사회를 향한 걸까요. 지금 우리의 정당정치는 시민의 목소리를 ‘대의(代議)’하는 걸까요, 아니면 자신이 ‘대의(大義)’라고 믿는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 시민을 선동하는 걸까요. 길 끝이 희미해 잘 보이지 않지만, 포퍼의 다음과 같은 말을 되뇌어 본다면 우리가 갈 길은 명확해집니다.

“우리는 짐승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문명사회의 인간으로 남길 원한다면 우리에겐 단 하나의 길, 열린사회의 길만 있을 뿐이다.”

※ 윤석만 논설위원/중앙일보 - 국회·청와대·교육부 등 다양한 출입처를 거쳤다. 2012년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고려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경희대에서 미래 사회를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과학·기술·산업만이 아닌 인간과 문화, 의식과 제도의 측면에서 조망하며 미래인문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휴마트 씽킹] [리라이트] [인간혁명의 시대] [미래인문학] 등이 있다.

202001호 (20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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