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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특집] ‘한 지붕 두 가족’ 두산 - LG 사상 첫 더그아웃 시리즈? 

최강 베어스에 전투력 높인 트윈스가 도전장! 

프로야구 출범 후 한국시리즈 맞대결 한 번도 없어
어린이날 시리즈만으론 만족 못하는 팬들의 ‘소망’


▎지난해 4월 1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맞대결에 앞서 김태형 두산 감독(왼쪽)과 류중일 LG 감독이 악수하고 있다.
프로스포츠에서 최고의 흥행 카드는 역시 라이벌전이다. 스페인 프로축구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 미국 프로야구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대결은 전쟁이다. 선수들은 생사가 걸린 것처럼 싸운다. 가슴이 뜨거워진 팬들은 그걸 보며 울고 웃는다.

라이벌전은 리그의 인기를 이끄는 중요 요소다. 그러나 한국 프로야구(KBO리그)에는 라이벌 구도가 그리 선명하지 않았다. 패권을 잡은 팀이 너무 강했다. 1980~90년대는 해태가 독주했다. 2000년대 강자였던 현대·SK·삼성 등은 비교적 단명한 왕조였다.

현재 최강은 두산 베어스다. 지난 5년 내내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세 차례 우승했다. 2020년에도 가장 유력한 챔피언 후보다. 또한 지난해 정규시즌 준우승팀 SK,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는 키움도 우승 후보로 꼽힌다. 여기에 하나 더. 많은 팬과 야구 관계자들은 LG 트윈스도 챔피언 후보 중 하나로 본다. 여기에는 냉정한 분석과 열정적 응원이 섞여 있다. ‘서울 라이벌’ 두산과 LG가 KBO리그 39년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서 맞붙기를 바라는 것이다.

물리적 거리는 0, 심리적 거리는 지구 반대편

KBO리그에서 가장 가깝고 먼 팀이 두산과 LG다. 두 팀의 물리적 거리는 0에 가깝다. 서울 잠실야구장을 함께 사용하기 때문이다. 야구장 안에 있는 구단 사무실 간의 거리도 50m쯤에 불과하다.

두 팀의 심리적 거리는 지구 반대편에 있어 보일 만큼 멀다. 한국 야구는 한 다리만 건너면 학연·지연으로, 형·동생으로 엮인다. 프로 선수가 돼 다른 팀에서 뛰더라도 개인적으로는 잘 어울린다. 그러나 두산과 LG 선수들은 그렇지 않다.

잠실야구장에서 맞붙을 때는 양팀 선수들의 동선이 다르다. 더그아웃에서 라커룸으로 이동하는 선수들이 서로 부딪힐까 봐 ‘잠실 룰’을 정했다. 이긴 팀 선수들은 그라운드를 가로질러 가고, 패한 팀 선수들은 내부 복도로 이동한다. 승패에 그만큼 예민하다.

구단 직원들이 느끼는 라이벌 의식은 더 강하다. 두 팀은 서울의 고교 선수들을 놓고 신인 드래프트부터 경쟁한다. 1000만 서울 인구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 경쟁도 치열하게 벌여왔다. 구내식당을 함께 쓰면서도 직원들은 간단한 인사만 주고받는다.

서로를 의식한 나머지 두 팀 사이에서 주전급 선수들의 트레이드는 이뤄지지 않는다. 그냥 지는 것도 참지 못하는데, 동료였던 선수에게 당하는 것은 두 배로 아프고 약 오른다.

이 정도면 라이벌이 갖춰야 할 요소를 다 갖고 있다. 그러나 두 팀은 라이벌전다운 라이벌전을 벌이지 못했다. KBO리그의 챔피언을 가리는 한국시리즈에서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것이다.

올해는 어느 때보다 두산과 LG가 포스트시즌에서 만날 확률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지난해 4위였던 LG는 기존 전력을 유지·보강했다. 하지만 두산을 비롯해 SK와 키움은 전력을 잃었다. SK는 선발 원투펀치에 모두 이상이 생겼다. 김광현이 미국(세인트루이스), 앙헬 산체스가 일본(요미우리)으로 떠났다. 키움은 외국인 타자 제리 샌즈를 일본(한신)으로 보냈다.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두산과 LG의 전력 차가 그 어느 때보다 줄었다고 보고 있다.

LG는 지난겨울을 내실 있게 보냈다. 외국인 선발 타일러 윌슨(지난해 14승 7패, 평균자책점 2.92)과 케이시 켈리(14승 12패, 평균자책점 2.55)의 재계약을 재빠르게 마무리했다. 제3선발 차우찬(13승 8패, 평균자책점 4.12)까지 LG 1~3선발의 경쟁력은 리그 최고 수준이다.

LG의 4~5선발로 송은범·임찬규·여건욱·김대현 등 여러 후보가 올라 있다. 불펜 필승조인 정우영의 선발 전환 가능성도 있다. 이 가운데 8~10승을 올려줄 4선발이 나온다면 LG 선발진은 어느 팀에도 지지 않는다. 지난해 35세이브, 평균자책점 1.52를 기록하며 특급 마무리로 성장한 고우석은 올해도 불펜의 주축이다.

LG 마운드는 2013년부터 KBO리그 10개 구단 중 상위권이었다. 항상 중위권에 갇혀 있는 야수들 기량이 향상돼야 챔피언에 도전할 수 있다. 김현수·채은성·이형종 등이 주축인 LG의 지난해 팀 타율은 5위(0.267)였다. 국내에서 최대 규모인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면서 팀 홈런은 6위(94개)에 올랐다.

눈에 띄게 나아진 건 수비력이다. 지난해 LG의 평균 대비 수비 승리 기여도(WAA with ADJ)는 3.394로 1위(통계 사이트 스탯티즈 기준)였다. 구멍이었던 3루에 김민성을 안착시켰고, 수비력 기복이 심했던 유격수 오지환이 눈에 띄게 안정된 덕분이었다.

공수에서 안정 더한 LG. 두말할 것 없는 두산


▎2013년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두산에 패해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되자 LG 팬들이 고개를 떨구고 있다.
1루수와 2루수까지 안정되면 LG의 수비는 더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정주현이 주전 2루수로 자리 잡았으나 공격력이 좀 아쉬웠다. 이에 LG는 타격이 뛰어난 정근우를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영입했다. 한화에서 정근우는 외야수로 밀려났지만, 다시 2루로 복귀시켜 정주현과 경쟁시킬 계획이다.

외국인 타자 몫으로 남긴 1루가 가장 큰 구멍이었다. 좌익수 김현수가 1루수로 나서면 수비와 공격 모두에서 부진했다. LG는 올해 새로 영입한 외국인 1루수 로베르토 라모스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메이저리그 경력은 없지만, 라모스는 마이너리그에서 꾸준히 성장한 선수다.

차명석 LG 단장은 스토브리그에서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였다. 가장 중요한 외국인 투수 재계약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어 자유계약선수(FA) 송은범을 2년 최대 10억원, 오지환을 4년 총액 40억원에 잡았다.

일각에서 빚어진 오버페이(overpay) 논란에도 불구하고 차 단장이 가장 신경 쓴 것은 로열티 형성이었다. 그는 “많은 선수가 LG에서 뛰고 싶어지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호주 시드니와 일본 오키나와에서 치러진 LG의 스프링캠프 분위기는 상당히 좋았다. 시즌 시작 전부터 ‘신바람 야구’ 조짐이 보였다. 차 단장은 “그래도 고민이 끝도 없다”며 “4·5선발(투수)이 잘 받쳐줘야 한다”고 걱정했다.

두산은 설명이 필요 없는 최강팀이다. 지난해 11월 야구 국가대항전 프리미어12 국가대표 엔트리 28명 중 두산 선수가 7명(김재환·이용찬·박건우·허경민·박세혁·함덕주·이영하)에 이르렀다. 기량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지난 5년 동안 한국시리즈에서 승패를 반복하며 얻은 경험은 천금으로도 살 수 없는 자산이다.

두산은 2018년 팀 타율이 무려 0.309(1위)에 이르렀던 팀이다. 지난해에도 0.278(3위)였다. 홈런은 늘 LG보다 많이 때렸다. 수비력 또한 리그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유일한 변수는 마운드다. 지난해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 조쉬 린드블럼(지난해 20승 3패, 평균자책점 2.50)이 미국(밀워키)으로 떠났다. 지난 2년 동안 2선발 역할을 잘해줬던 세스 후랭코프(9승 8패, 평균자책점 3.61)와도 재계약하지 않았다.

대신 두산은 라울 알칸타라와 크리스 프렉센 등 새로운 강속구 투수를 영입했다. 알칸타라는 지난해 KT 위즈에서 11승 11패 평균자책점 4.01을 기록했다. 프렉센도 캠프에서 에너지 넘치는 피칭을 했다. 그렇지만 두 투수 다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 지금까지 두산은 외국인 선발에 대한 의존도가 워낙 높았다. 알칸타라와 프렉센이 25승 이상을 합작하지 못하면 전력 약화는 불가피하다. 또한 지난해 17승 4패 평균자책점 3.64를 기록한 이영하가 상승세를 이어가야만 선발진이 안정된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내 목표는 우승”이라고 했다. 두산이 몇몇 선수들에게 의존하는 팀이 아니라는 자긍심이 있다.

무명 포수 출신인 그는 선수단 장악능력이 뛰어나다. 선수 시절부터 주장 전문이었다. 감독이 돼서는 세세한 부분을 코치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선수단 전체를 뒤에서 밀고 나간다. 팀워크를 해치는 개인이 있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역대 가을 야구 총 전적 2승 2패로 호각세

전통적으로 프로야구 감독은 강력한 리더십의 상징이었다. 최근에는 데이터를 중시하고, 소통능력을 갖춘 인물로 바뀌고 있다. 김 감독은 거의 유일하게 남은 ‘대장’ 스타일이다. 지난 5년 임기 동안 3번이나 우승했으니 그의 권위는 더 강해졌다. 두산은 지난 시즌이 끝난 뒤 김 감독과 3년 28억원에 재계약했다. 감독으로는 역대 최고 대우다.

자신감 넘치는 김 감독에게도 고민은 있다. 지난해부터 고민이었던 불펜이 보강되지 않았다. 그는 “김강률·장원준이 돌아오면 괜찮을 것 같다”며 웃었다. 2020년 판세에 대해서는 “상위팀들의 전력이 평준화됐다”고 평가했다. LG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김 감독이 말하는 ‘상위팀’에는 LG가 분명히 포함돼 있다.

류중일 LG 감독은 지난해 키움과의 준플레이오프를 앞두고 “두산과 LG가 한국시리즈에서 만나면 정말 재미있겠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했다. 올해 그 꿈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가을 LG는 준플레이오프에서 키움에 패하는 바람에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두산과 만나지 못했다.

류 감독은 삼성 라이온즈를 2011년부터 4년 연속 통합 우승(정규시즌+한국시리즈)으로 이끈 리더다. 현역 시절 명 유격수로 유명했던 그는 삼성의 수비력과 조직력을 강화해 장기 흥행의 기틀을 마련했다. 화려한 야구를 하진 않지만 장기 레이스와 단기전 운영에서 모두 강점을 보였다.

2018년 LG는 류 감독을 ‘우승 청부사’로 영입(3년 21억원)했다. 류 감독은 부임 첫해, 초반 돌풍을 이어가지 못한 채 8위로 주저앉았다. 지난해에는 안정적인 전력을 유지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올해가 계약 마지막 시즌이다. 류 감독은 “LG에는 전력 손실이 없어서인지 지난해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낼 것으로 전문가들이 기대하더라”고 말했다.

류 감독의 희망대로라면 LG는 필연적으로 두산을 ‘가을야구’에서 만날 것이다. LG와 두산은 이미 ‘봄 야구’에서 사생결단 맞대결을 벌이고 있다. 두 팀은 프로야구 흥행이 정점에 이르는 5월 5일 어린이날을 전후해서 3연전을 치른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003년부터 두 팀의 맞대결을 고정 편성하고 있다.

LG-두산의 ‘어린이날 시리즈’는 매년 명승부가 펼쳐진다. 짜릿한 어린이날 명승부를 보기 위해 지난해까지 12년 연속으로 잠실야구장 관중석이 꽉 찼다. 역대 어린이날 맞대결에서 두산이 LG를 14승 9패로 앞서고 있다.

팬들이 진짜 원하는 건 LG와 두산이 한국시리즈에서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두 팀은 플레이오프나 준플레이오프를 통틀어서도 단 네 차례만 대결했을 뿐이다. 시리즈 결과는 2승 2패다.

‘서울 라이벌’의 역사를 보면 LG-두산의 라이벌전이 깊게 뿌리내리지 못한 이유를 알 수 있다. KBO리그 39년 역사 중 두 팀이 라이벌의 지위를 가진 건 생각보다 길지 않다. 1990년대에는 LG가, 2000년대에는 두산이 훨씬 강했던 때문이다.

LG의 전신 MBC 청룡은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서울 연고로 출범했다. 두산의 전신 OB는 3년 뒤 서울 입성을 약속받고 대전으로 내려가 82년 우승을 차지했다. OB가 85년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한 지붕 두 가족’ 체제가 탄생했다. 그후로는 두 팀 모두 우승권과 거리가 멀었다.

MBC를 인수한 LG는 1990년 창단과 동시에 한국시리즈 챔피언에 올랐다. 이어 94년 LG가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기까지 ‘서울의 봄’은 이어졌다. 김용수·정삼흠이 마운드를 지켰고, 유지현·서용빈·김재현이 ‘신바람 야구’를 이끌었다. 서울에서 야구 열기가 폭발한 시기였다.

LG는 93년 준플레이오프에서 OB를 만났다. 포스트시즌에서 처음 만난 서울 라이벌전의 결과는 LG의 2승 1패 승리. LG 에이스 김태원이 혼자 2승을 거뒀다. LG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삼성에 졌다.

두 팀은 98년 준플레이오프에서 다시 대결했다. 1차전에서 OB는 연장 10회 2루수 에드가 케세레스의 끝내기 실책으로 6대 7 패배를 당했다. 2차전은 LG가 14대 3으로 대승했다.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LG는 삼성을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그러나 당시 최강팀 현대에 패해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두 팀은 2000년 가을 다시 만났다. OB가 두산으로 이름을 바꾼 뒤였다. 양대 리그로 치러진 당시 플레이오프에서 드림리그 2위 두산이 매직리그 1위 LG를 4승 2패로 눌렀다. LG가 주도권을 쥐고 있던 라이벌전의 구도가 바뀌는 시점이었다. 3차전까지 1승 2패로 밀렸던 두산은 심정수가 4~6차전에서 3경기 연속 홈런을 터뜨리며 역전했다.

우승의 한, 가을 야구의 한 맺혔던 시절도


▎2014년 정규시즌 때 선수 간 시비로 인해 벤치 클리어링(Bench Clearing)을 벌인 두산·LG 선수들.
두산은 2000년 한국시리즈에서 현대에 졌지만, 2001년 한국시리즈 챔피언에 올랐다. 당시 두산은 효과적인 계투와 폭발적인 타선으로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 플레이오프에서 현대,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연파했다. 열세를 기세로 극복하는 ‘미러클 두산’의 위용이 눈부셨다.

1990년대에는 분명 LG가 강했다. 82년부터 서울에 뿌리를 내린 덕분에 고정 팬도 많았다. LG에 라이벌을 물으면 ‘전자 라이벌’ 삼성이나 ‘20세기 최강팀’ 해태라고 답했다.

두산은 달랐다. 첫째 목표는 우승, 둘째 목표는 LG전 승리였다. 두산이 3년 늦게 연고지로 들어온 데다 모기업 규모도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LG와의 라이벌 구도를 그들의 에너지로 삼았다.

두산은 2001년 우승 후 후유증에 시달리며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LG는 2002년 준플레이오프에서 현대, 플레오프에서 KIA를 연파했다.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에 2승 4패로 지긴 했지만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LG는 강하고 끈질겼다. 고관절 부상으로 절뚝거리며 타석에 선 김재현은 장타를 터뜨리고도 1루에서 멈췄다. 투혼만으로 ‘절대 강자’ 삼성을 이길 순 없었지만, LG의 저력은 팬들 가슴에 뜨거운 불을 지폈다.

LG는 이후 10년 동안 가을 야구를 하지 못했다. 당시 8개 구단 체제에서 4강에 들어갈 확률은 50%였지만 LG는 매번 실패했다. LG가 포스트시즌에 초대받지 못한 10년 동안, 두산은 우승 문턱에서 번번이 미끄러졌다. 그래도 이 기간에 7차례나 ‘가을 야구’를 맛봤다. 2005년을 기점으로 역대 맞대결 성적에서 두산이 LG를 앞서기 시작했다.

LG는 김기태 감독의 지휘 아래 2013년 정규시즌 2위를 차지했다. 11년 만에 치른 가을 야구 첫 상대가 하필 두산이었다. 두산은 준플레이오프에서 넥센을 3승 2패로 힘겹게 이기고 올라왔다. 그러나 두산은 LG와의 플레이오프에서 3승 1패로 압도했다. LG는 2차전에서 레다메스 리즈의 8이닝 무실점 역투로 한 번 이겼을 뿐이었다.

두산은 3차전 이후 상당히 지쳐 보였다. 그러나 구성원 대부분이 처음 포스트시즌을 치르는 LG가 더 크게 흔들렸다. LG 외야수가 공을 발로 차는 장면도 나왔다. 두산 외야수는 홈으로 뛰어드는 LG 주자를 여러 번 아웃시켰다. LG를 이기고 한국시리즈에 오른 두산은 삼성에 또 졌다.

이후 LG는 2014·2016·2019년 가을 야구를 경험했다. 덕분에 2013년 같은 실수는 되풀이하지 않게 됐다. 그러나 2002년을 마지막으로 한국시리즈에는 17년째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라이벌전 넘어 서바이벌전으로


여러 스토리가 얽힌 덕분에 현재 두산-LG의 라이벌전은 KBO리그 최고의 흥행카드가 됐다. 라이벌에게 얻은 1승은 2승의 희열, 1패는 3패의 좌절을 주고 있다. 서로에게는 게임이 아닌 전쟁이다.

2018년 10월 6일 경기가 그런 싸움이었다. 당시 LG는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가 결정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선발투수 차우찬에게 무려 134구를 던지게 했다. 의미 없어진 1승을 위해 에이스를 혹사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상대가 두산이었다는 점이다. LG는 그해 두산과의 15경기를 모두 졌다. 2017년 성적까지 포함하면 두산전 17연패였다. LG는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치욕적인 연패를 끊어야 했다.

LG가 1년 내내 일방적으로 밀렸다는 건 심리적으로 완패했다는 뜻이다. 초반 한두 경기가 풀리지 않은 스트레스가 시즌 끝까지 갔다. 두산도 단 한 경기조차 느슨하게 하지 않았다. 라이벌전은 생존을 다투는 ‘서바이벌전’이 돼가고 있다.

지난해 LG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났다. 16경기에서 6승 10패를 기록했다. 2020년 LG는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에서 쉽게 물러나지 않을 기반을 마련했다.

두산과 LG는 매년 100만 명 안팎의 홈 관중을 불러들이는 티켓파워가 있다. 두 팀이 시즌 끝까지 1·2위를 다툰다면 200만 명 이상의 팬이 야구장을 찾을 것이다. 프로야구 총 관중의 25% 이상을 두 팀이 책임질 수 있다.

2000년 메이저리그에서는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뉴욕 양키스와 내셔널리그 챔피언 뉴욕 메츠가 월드시리즈에서 만난 적이 있다. 뉴욕 팬들은 지하철로 두 구장을 오가며 신나는 응원전을 벌였다(양키스의 4승 1패 승리). 팬들은 이를 ‘서브웨이 시리즈’라고 불렀다.

LG와 두산은 아예 같은 홈구장을 함께 쓴다. 지하철을 탈 필요도 없이 몇 걸음 걸어가면 적진이다. 더그아웃만 바꿔가며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뜨거운 라이벌전을 벌일 수 있다. ‘더그아웃 시리즈’ 성사 가능성이 어느 해보다 크다.

- 김식 중앙일보 야구전문기자 seek@joongang.co.kr

202004호 (202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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