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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이슈] 코로나사태가 부른 ‘택배사회’의 명과 암 

‘살인노동’ 내몰리는 택배 노동자를 어찌할까 

코로나 여파로 비대면 소비 늘면서 택배산업 20년 만에 30배 성장
하루 10시간 넘게 일해도 처우는 열악, 안정 보장할 제도 정비 시급


▎비대면 생활이 일상화하면서 택배 물량이 급증하자, 택배 기사들이 과로에 내몰리고 있다. 올 들어 10명의 택배기사가 과로에 시달리다 숨졌다.
리클라이너 소파에 등을 대고 앉아 소설책을 읽던 J는 내일 아침거리를 위해 휴대폰을 집어 들고 ‘마켓컬리’ 앱(app)을 켠다. 샐러드와 베이글 등 신선식품을 골라 장바구니에 담고 ‘주문’ 버튼을 누른 후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린다. 채 2분이 걸리지 않았다. 옆에 앉은 남편 K는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홈쇼핑에 눈길이 꽂힌다. 남성용 바지 3종 15만원, 상담원 연결 없이 자동주문하면 추가 할인이 더해진다. 전화기를 들어 주저 없이 버튼을 누르고 주문을 완료한다. 1분 30초 걸렸다.

이미 삶 깊숙이 내려앉은 ‘슬기로운 주문생활’은 코로나 거리 두기의 비대면 환경에서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삶은 온라인으로 조직되고 택배가 관계를 연결한다. 바야흐로 ‘택배사회’다. 2000년 1억1000만 개가량이던 택배 물량은 2019년 27억9000만 개로 늘었고 올해 코로나19로 집합과 대면이 제한되면서 30억 개를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20년 만에 30배 증가한 셈이다.

이렇듯 택배화된 삶의 이면에서 배달종사자들은 계단을 오르고 언덕을 내달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택배물 개수가 ‘수입’이다 보니 하나라도 더 배달해야 한다. 12시간, 15시간 노동도 마다치 않는다. 살기 위해 하는 일인데 살 수 없는 지경까지 내몰린다. 올해에만 과로로 추정되는 택배기사 사망 건수가 10건이다.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 “택배노동자의 과로와 안전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며 대책을 지시했다. 이에 정부가 택배기사 과로 방지 대책을 내놓았다(11월 12일). 국회에서도 논란이다. 9월 정기국회와 10월 국정감사 기간 내내 택배 및 배달업 종사자들의 안전과 ‘과로사’ 문제가 뜨거운 쟁점이었다. 국회의원 일부는 택배회사 서브터미널을 방문했다. 하지만 관심과 논란에 비해 해법은 쉽지 않아 보인다. 지금까지 제안된 대책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도 않다. 고객과 택배회사, 택배기사들이 공존할 방법은 무엇일까.

로켓배송에 새벽배송까지… 택배산업 7조원 규모


▎새벽배송은 유통물류 업체들의 격전지다. 쿠팡 직원이 프레시 물류센터에서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고르고 있다. / 사진:쿠팡
택배의 사전적 정의는 ‘우편물이나 짐, 상품 따위를 요구하는 장소까지 직접 배달해주는 일’로서 ‘문 앞 배달’ 또는 ‘집배달’을 의미한다. 1990년 이전 생활물류의 대부분은 우체국 소포, 철도소화물 및 개인용달 등의 서비스에 의존했다. 택배서비스의 본격 도입은 1992년이다. 1989년 12월 30일 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으로 소화물 일괄수송업(일명 택배업)이 제도화됐고, 1991년 1월 같은 법 시행령 제2조 개정에 따라 소화물 일괄수송이 가능한 자동차운송사업자가 특정됐다. 법 개정 직후 ㈜한진이 ‘파발마’브랜드로 첫 허가를 받았다. 1993년 ㈜대한통운이 대한통운특송 이름으로 시장에 나섰고, 현대택배·CJ GLS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택배시장의 성장 배경은 온라인쇼핑, TV홈쇼핑, 1인 가구 및 맞벌이 가구의 증가, 휴대폰의 보급 및 각종 쇼핑 관련앱의 확산 등 다양하다. 최근에는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로 비대면 생활이 일상화되면서 수요가 폭증했다. 택배업의 서비스 혁신도 수요를 확대한 중요한 요인이다. 로켓배송·당일배송 등을 수단으로 택배업은 일상의 속도와 편의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마트나 백화점 가기보다 앱으로 주문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편하며 상품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정확히 배달된다.

이러한 발전과 혁신을 배경으로 택배산업은 ‘로켓’의 속도로 성장했다. 택배 매출은 2012년 3조5200억원에서 2019년 6조7300억원까지 늘었으며 올해 7조원을 넘을 것이란 예상에 이견이 없다. 코로나19팬데믹은 이러한 상승세를 가속하는 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 택배 이용 횟수는 2000년 국민 1인당 2.4회에서 2019년 53.8회로 급증했다. 산업 성장에 따라 택배기사의 수도 급증했는데 정확한 수는 집계되지 않으나 택배차량으로 어림잡은 민간 택배회사의 배송기사(우체국 및 온라인쇼핑 직배기사 제외)는 약 5만4000명 내외로 추정된다.

택배 업무의 프로세스는 접수-집화-간선 수송-배송-사후처리로 진행된다. 정보통신 시스템 발달로 서비스 이용자는 접수부터 배송까지 전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 택배산업의 발달은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물류시스템 도입을 유인했다. 대세는 ‘허브 앤 스포크(Hub & Spoke)’ 시스템이다. 이는 상품 주문 첫날 저녁까지 각 스포크(서브터미널)에 집화된 택배를 주요 거점 허브로 집결해 밤새 배송지 스포크로 보내고, 둘째 날 새벽 택배기사가 수화물을 분류해 고객에게 배송하는 방식이다. 소위 ‘1박 2일 배송’의 물류체계인 셈이다. 이러한 시스템에 힘입어 택배는 전국 어디고 이틀을 넘기지 않는다.

최근에는 ‘새벽배송’까지 등장했다. 신선식품의 온라인 상거래는 새벽배송을 대세로 구축했으며 그 선구자가 마켓컬리다. 이후 쿠팡, 이마트, 롯데마트 등 온라인쇼핑 업체들이 새벽배송 시장에 진입했다. 속도가 택배의 경쟁력이 된 것이다.

택배기사 유형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택배회사 또는 온라인쇼핑 업체에 직접 고용된 근로자, 택배회사와 용역계약을 체결한 후 택배회사 서브터미널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사업자, 마지막으로 택배회사와 집·배송 위탁계약(이후 위탁계약)을 체결한 대리점과 계약한 사업자다. 직고용 근로자로 택배기사를 운영하는 대표 기업은 온라인쇼핑업체 쿠팡이다. 그 외 대부분의 택배회사는 둘째 또는 셋째의 유형이다. 위탁계약을 맺고 배송업무를 수행하는 택배기사는 개인사업자로서 국토교통부로부터 택배전용 번호판(‘배’자 번호판)이나 영업용 번호판을 발급받는다. 요컨대, 택배회사와 대리점 간에 화물의 집화·배송·보관·분류 등의 업무 및 택배업무 수행을 위한 사무 일체를 위탁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하고, 대리점이 택배기사와 사업자로 계약하는 형식이다. CJ대한통운 내부조사에 의하면 택배기사 대부분은 본인 차량과 라이선스를 소유하며 유류비·유지비·수리비 및 보험료 등을 스스로 부담한다.

최근에는 온·오프라인 상거래업체 가운데 배달기사를 직접 고용하는 사례가 늘면서 택배기사의 배송업무·배송형태·종사유형이 다양화하고 있다. 쿠팡의 배송기사는 정규직과 계약직, 그리고 쿠팡플렉스라는 개인사업자 세 가지 유형이 있고, 마켓컬리와 이마트 등도 위탁배송기사(사업자)와 고용배송기사(근로자)를 혼용하고 있다.

수입 없는 과외 업무만 하루 5시간씩 내몰려


▎20년 전(오른쪽)과 현재의 택배터미널. 택배산업은 20년 전 3800억원 규모에서 올해 7조원 규모로 급성장했다.
근로자를 제외한 대부분 택배기사는 택배회사나 대리점(집배영업점) 사업자와 체결한 위·수탁 계약에 따라 수수료를 받으며 고정급은 없다. 배송 수수료는 택배화물의 수량에 의해 결정되며, 집화 수수료는 집화 택배 물량으로 산정된다. 원칙적으로 배송·집화 수수료는 계약 당사자인 집배점과 기사의 계약으로 결정된다.

배송기사 수수료는 택배 운임에 의해 결정되는데, 소화물 개당 배송가격의 40% 수준이다. 2019년 택배운임 평균을 2200원으로 가정하면 택배물 1개당 수수료는 880원인 셈이다.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은 CJ대한통운 배송기사의 일 평균 배송물량이 270건(내부자료)이니 월 25일 기준 배송수수료는 594만원 수준이다. 여기에 집화수수료를 포함하면 총소득이 산정된다. 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가 본격화한 2020년 택배물동량이 20~30% 늘었고 이를 기존 택배기사들이 모두 소화하는 경우 월 118만8000~178만2000원의 수수료 상승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늘어난 물량을 제한된 택배기사가 전부 수용하는 데 물리적 한계가 있어 대리점과 택배기사의 추가 공급이 불가피하며, 따라서 위의 추정치에 비해 실소득 증가폭은 낮을 것으로 판단된다.

택배기사는 독점 배송권한을 갖는 책임구역에서 택배화물을 배송하는 업무, 담당구역 내외의 고객으로부터 상품을 집화해 택배터미널에 전달하는 업무 등으로 구성된다. 택배기사의 배송을 위한 첫 번째 업무는 서브터미널에서 이루어지는 ‘분류작업’이다. 이 작업은 택배기사 장시간 노동과 과로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택배 분류(상품인수)는 컨베이어벨트에서 이동하는 화물 중 택배기사 본인이 배송할 상품을 골라 주소지별 배송순서(거리 등)에 따라 차량에 싣는 단계다. 속칭 ‘까대기’ 공정이다. 물량이 적었던 산업 초기, 분류작업은 큰 이슈가 아니었으나 택배수요가 급증하면서 문제가 됐다. 2000년대 초반 한두 시간이었던 분류작업이 물량 급증 후 5~6시간씩 소요되는 ‘부하공정’으로 전환됐다. 부하의 크기만큼 분류작업 책임을 두고 갈등이 첨예하며 택배기사 과로 원인의 핵심으로 지목되고 있다.

택배회사는 업계 관행과 판례를 근거로 분류작업이 택배기사의 몫이라고 주장한다. 2011년 2월 24일 대법원은 ‘상품 인수작업이 택배업무 프로세스상 본질적인 부분이고 수수료 또한 이에 대한 대가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어서 (회사가)‘화물분류작업에 관련한 노무비 상당의 이득을 법률상 원인 없이 취득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이 결정이 소송당사자 개인에 한정된 것이며 ‘분류작업 책임이 택배기사 일반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게 아니라는 입장이다. 아울러 물동량이 적었던 과거에는 크게 문제 되지 않았지만, 운송물이 수십 배 늘어난 상황에서 그 부담을 택배기사에게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분류작업이 종료되면 택배기사는 배송을 시작한다. 보통 오전 10시경 시작해 오후 늦게까지 진행된다. 일평균 300개의 택배를 배송한다고 할 때 시간당 30개를 배송하면 10시간 걸린다. 택배기사 대부분 배송구역이 정해져 있고, 본인이 정한 경로와 순서에 따라 배송한다. 배송을 마친 택배기사 일부는 고객의 탁송수하물을 집화한다. 집화한 물건을 집배영업소 운송차량에 실어주면 하루 업무가 끝난다. 물량이 몰리는 경우 분류업무 5시간, 배송업무 10시간 등 하루 총 15시간씩 일할 때도 있다. 여기에 집화 업무가 추가되면 그만큼 시간이 연장되는 셈이다.

택배기사의 정체성은 법마다, 회사마다 ‘제각각’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택배지부 조합원들이 10월 26일 국정감사가 열리는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택배산업의 노사관계는 복잡하다. 쿠팡 등의 경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지위에서 노동조합을 조직해 교섭을 진행하고 있지만, 택배회사의 위탁으로 택배업을 영위하는 배송기사는 근로기준법 밖에서 노동조합을 조직하려 하기 때문이다. 주요 회사의 다수 택배기사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다. 반면 이들에 대한 노동조합법상 근로자 지위는 다툼의 대상이다. 최근의 경향은 헌법상 ‘노동 3권’이 적극 인정된다.

대법원의 ‘재능교육 학습지교사 판결’(선고 2014두12598, 12604 판결, 2018년 6월 15일)이 계기였는데 법원은 ‘계약한 사업주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되고 계약 내용이 일방적으로 결정되며, 시장에의 접근이 특정 사업자의 사업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양 당사자의 관계가 지속적-전속적인지 여부’ 등을 판단요지로 제시했다. 이에 근거해 택배산업에서도 다수의 조직화가 시도됐다. 택배 노사 간 다툼의 쟁점은 ‘택배기사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여서 사용자(대리점) 측에 단체교섭 의무가 있는지’ 여부다. 지금까지 노동위원회와 법원은 대리점주에게 ‘교섭 요구 사실 공고 의무’가 있다고 판정함으로써 노조법상 근로자 지위를 우회적으로 인정했다. 아울러 CJ대한통운의 경우 사용자의 교섭거부 행위가 부당노동행위인지를 쟁점으로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러한 다툼을 배경으로 전국택배연대노조(택배연대),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택배지부(택배지부) 등 3개의 노동조합이 조직됐다. 2017년 8월 31일 설립돼 4개 지부를 둔 ‘택배연대’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소속이며 추정 조합원 수는 약 4250명으로 가장 많다. ‘택배노조’는 2018년 1월 15일 설립된 공공운수연맹 산하 조직이며, 2018년 10월 4일 설립한 ‘택배지부’는 화물연대 소속 택배기사가 중심이다. 노사 교섭의 최대 쟁점은 ‘분류작업 전담인력 충원 및 비용부담’ 이슈다.

현재까지 택배산업에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지위 여부에 대한 다툼은 제기된 적이 없다. 따라서 업무위탁 방식으로 배달업에 종사하는 택배기사들의 경우 근로자로 인정받는 일에 큰 관심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오히려 독립사업자로서 현재의 업무수행 방식을 인정받으며 노동조합을 매개로 집단적 권리를 보호받고자 하는 것이 전략의 핵심인 것으로 이해된다.

택배기사들의 장시간 노동 및 과로에 대한 논란 중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분류작업이다. 이는 화물 인수와 차량 적재 공정으로 적게는 3~4시간, 많게는 5~6시간 소요된다. 이런 부담으로 택배기사들은 컨베이어벨트의 수하물 투하지점 단위로 3~4명씩 연합해 분류전담 인력을 고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류기준이 배송기사의 배달 동선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택배기사의 통제가 불가피하다.

쟁점은 분류작업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분류업무를 위탁하는 경우 분류전담자 사용 비용을 누가 부담하는지 등으로 요약된다. 회사는 그동안의 관행과 판례를 근거로 택배종사자의 몫이라 주장하는 반면, 노동조합은 물량이 적었던 과거의 관행을 현재에 적용하기 어렵고 법원 판결 또한 당사자에 대한 개별 판단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나 국회 등에서도 관련 논의는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방법은 관련법을 정비해 택배서비스 종사자를 배송기사와 분류인력으로 구분해 각 업무를 전담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경우 분류 비용은 택배회사, 대리점, 택배기사가 분담하되 업무 프로세스의 상대적 중요도 및 공정의 상대적 가치 등을 분석해 각각의 분담비율을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택배 분류가 배송기사의 동선에 종속된다는 점, 따라서 배송업무와 연계돼야 하는 점을 등을 고려하면 배송기사의 편익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배송기사의 일부 비용 분담은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계속 인하된 택배비를 현실화해 분류전담 인력 소요 비용을 충당하는 방법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사고 위험 큰데도 10명 중 8명은 산재 적용 제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월 27일 오전 서울 한진택배 마포택배센터를 방문해 택배 분류작업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최근 택배기사 고(故) 김원종 씨의 사망과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서 허위작성 문제가 논란이 됐다. 과로사로 추정되지만, 김씨가 보험 적용 제외를 신청해 산재 심사대상에서 배제됐기 때문이다. 사건이 생긴 후에야 논란이 됐지만, 특수고용(이하 특고) 종사자 다수는 산재보험 적용 제외자다. 스스로 제외 신청을 하기 때문이다. 2020년 7월 기준, 산재보험 적용대상 14개 특고업 종사자 10명 중 8명(79.7%)이 적용 제외를 신청했다. 골프장 캐디(적용 제외 신청자 비율 95.4%), 건설기계조종사(88.6%), 보험설계사(88.5%), 신용카드모집인(86.8%) 등도 다수가 제외를 신청했다. 타 직종보다 상대적 잔류 비율은 높지만, 택배기사도 59.9%가 산재보험을 이탈했다.

특고 종사자 입장에서 보험료 산정을 위해 소득을 공개(현행 제도에서는 기준소득 선택)할 경우 소득세 및 준조세(사회보험료 등) 부담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고, 재해율이 높지 않은 업무종사자는 보험료를 납부하며 현재 현금소비를 포기할 유인이 없다. 사업주가 특고 종사자의 산재 적용 제외 신청을 요구하거나 유인하는 경우도 많다. 사업주 입장에서도 비용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국면의 필수업무 가운데 업무상 재해율 및 노동강도가 증가하는 사업의 경우 강제가입을 통해서라도 안전과 건강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요컨대 특고 종사자의 재해율을 분석해 상대적으로 재해율이 높은 직종과 운전 및 운수 종사자 등의 경우 적용 제외 신청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

쿠팡 등 일부 전자상거래업체를 제외하면 대부분 택배기사는 택배회사에서 위탁받은 업무를 수행하는 개인사업자다. 쿠팡은 ‘쿠팡친구(쿠친)’로 불리는 배송기사를 정규직과 계약직 형태로 채용한다. 이들은 배송건수에 따라 수수료가 달라지는 사업자형 택배기사와 달리 물량에 종속되지 않으며 근로기준법이 적용된다. 이 때문에 논란이 되는 택배기사 관련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이를 과도한 선전이라고 견제한다. 쿠팡친구로 불리지만 정규직·비정규직 구분 없이 노동강도가 높고, 계약직 근로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쿠팡 사례가 배달업의 새로운 모델로 주목받을 이유는 충분하다. 근로시간을 비롯한 기본적 노동규율의 대상이 되며 4대보험·가산수당·퇴직급여 등이 적용된다. ‘수수료’에 종속돼 밤새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며 심신을 사지로 몰아넣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현실적 저항도 크다. 무엇보다 택배종사자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고자 하지 않는다. 앞서 보았듯 현재까지 진행된 법률 다툼 가운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지위소송을 제기한 종사자는 단 한 명도 없다. 근로자로 고용돼 사용자의 지휘와 통제를 받으며 일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택배기사를 근로자로 전환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런 조건이라면 택배업 종사자를 위한 별도의 입법으로 최대 배달물량, 최대 업무시간, 최소 휴게시간 등을 포함한 기본권적 규율을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

택배업에는 ‘꿀 노선’이란 표현이 있다. 배송 물량이 많고 배송이 편한 노선이다. 택배물 개수에 따라 수수료가 책정되는 구조상 효율적 배달과 높은 수익이 보장되는 노선이라는 의미다. 노선 특성에 따라 하루 300~400개의 배송도 가능하다. 일부 꿀 노선의 경우 권리금 형태의 웃돈을 붙여 거래하기도 한다. 이와 달리 동선이 복잡하고 배송이 힘들어 노력 대비 수수료 수입이 적은 노선도 많다. 높낮이가 심한 주택지나 택배차량 진입이 어려운 골목상가 등이 대표적이다. 해당 노선을 구역으로 하는 기사들의 경우 상대적 불이익이 많다.

이처럼 불균등한 노선 배분과 수익구조는 개선돼야 한다. 현재 택배 대리점은 택배회사의 서브터미널을 중심으로 10여 개씩 구성돼 있다. 대리점별로 10~20명의 택배기사를 운용한다. 이 경우 노선에 따른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택배점별 집단성과제(물량공유제)를 운용하는 것도 고려할 방법이다. 분류업무와 배송업무를 분리하고 하루 배송물량을 통합해 수수료를 산정한 후 기사 수로 나누어 수수료를 배분하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선 최대근무시간 및 심야배송 제한, 배송 2부제 등의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살기 위해 하는 일인데 죽을 지경까지 해서야 되겠는가.

택배산업 성장 속도 못 따라가는 제도 개선

택배산업 내 노사관계를 둘러싼 법률 분쟁이 여러 법원에서 진행 중이다. CJ대한통운과 집배점이 택배연대 등의 교섭요구를 거부하자 중앙노동위원회가 ‘교섭요구 사실공고 불이행’에 대해 시정 명령(초심유지)한 결정을 취소하라는 택배회사의 청구가 대표적이다. 1, 2심에서 진행되는 동일 취지의 사건만 백수십 건이다. 택배 노조와 집배점, 택배회사 등 행정소송 사건의 당사만 해도 80곳이나 된다. 형사사건도 병행 중인데 택배노조가 CJ대한통운 대표이사와 집배점주들을 단체교섭 거부에 따른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했다. 회사 측이 제기한 업무방해 소송도 있다. 집배점 소속 택배기사들이 파업 기간에 CJ 직영 택배기사들의 배송업무를 방해했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집배점주들이 택배기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업무방해 관련 민사소송도 있다.

당사자끼리의 해결 노력 없이 다툼을 법원으로 끌고 간 ‘노사관계 사법화’의 전형적 사례다. 핵심 원인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와 노조법상 ‘근로자’ 정의가 다르고, 특고종사자의 노조 조직화 과정에서 노조법상 근로자 인정 사례가 확대되는 데 있다. 분쟁을 최소화하려면 노동위원회의 ‘교섭권 다툼’ 이전에 노조법상 근로자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노조 설립 신고 시 노조법상 근로자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절차를 두거나, 사용자로 지목된 자가 설립신고증 교부 처분에 대해 취소를 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까지 법원은 위의 청구에 대해 법률상 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해 왔으나 근기법과 노조법의 근로자성이 다른 경우가 다수 나타나고 있어 판례 변경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법률분쟁에 앞서 당사자들의 자주적 해결 노력이 절실하다.

다소 늦은 감은 있으나 택배회사들 또한 배송기사의 과로 노동 해결을 위한 대안을 모색 중이다. CJ대한통운은 분류 전담 인력 투입을 발표했고, 한진택배는 10월 26일 업계 최초로 심야배송 중단을 선언했다. 롯데택배도 다음 달부터 심야배송을 중단한다. 11월 10일에는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연합이 분류 지원인력과 관련해 “택배기사에게 해당 비용을 부담시키지 않겠다”고 밝혔다. 택배기사 산재보험 가입도 적극 권장할 계획이다.

11월 12일 정부도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을 내놨다. ‘택배사별 상황에 맞게 1일 최대 작업시간을 정하고, 주간 택배기사의 경우 심야배송 금지를 위해 앱(app) 차단’을 권고하기로 했다. 쟁점이 되는 분류작업은 노사 간 조정을 거쳐 표준계약서에 반영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대리점주에게 택배기사 건강진단 의무를 부과하고 산업안전보건법에 택배기사 안전 및 보건조치 의무 조항 설치를 추진하기로 했다.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서는 원칙에 따라 종사자 본인이 직접 제출하도록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방향은 제시됐으나 제도·정책·프로그램이 구체화하려면 당사자 간의 논의와 이행점검 절차가 필요하다. 민주노총이 경사노위 참여를 거부하고 있지만, 택배종사자 안전 및 과로 방지의 시급성을 고려하면 형식과 조건에 상관없는 적극적 대화 참여가 필요하다. 국회 또한 여야의 정책 차이를 넘어 관련 입법 논의를 가속해야 한다. 문제는 속도다.

-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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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호 (202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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