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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바람의 딸’ 한비야의 슬기로운 결혼 생활 

서울댁과 안 서방 ‘336 사랑법’ 

1년 중 6개월은 떨어져 각자 나라서 혼자 살아
따로 또 같이 조화 이루는 과일 칵테일식 공존


몇 년 전 산에서 스치듯 만난 사람은 분명 그녀, 한비야였을 게다. 이렇게 확실과 불확실의 모순적 문장을 제시한 이유는, 부조화해 보이는 요소들도 훌륭하게 조화할 수 있고, 정(正)과 반(反)이 사이좋게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람의 딸’ 한비야와 ‘보스’ 안톤의 3년간 신혼 생활처럼 말이다.

이 60대 신혼부부는 이미 연애라는 교두보에서, 그리고 결혼이라는 야전에서 스스로 원칙을 세우며 조화롭게 살고 있다. 그래서 7살 차이, 한국과 네덜란드라는 8500㎞의 거리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 한비야는 기자에게 “안톤은 출국 전날 공항에 가는 스타일이고 나는 당일 슬라이딩 세이프(미끄러지듯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춤)로 비행기 타러 간다”고 했다. 이처럼 부조화인 ‘안 서방(한국에서 안톤을 부르는 호칭)’과 ‘서울댁(네덜란드에서 한비야를 부르는 호칭)’ 비야는 탄탄한 원칙들로 조화롭게 어울린다.

한비야는 2002년 아프가니스탄 구호현장에서 상관인 안톤을 처음 만난 뒤 2017년 11월 결혼했다. 그가 5년 9개월 만에 낸 신작이자 남편과 함께 쓴 이 책은 지난 18년간의 에피소드를 봉인해제 시킨다.

ABC(안톤·비야 커플)가 정한 연애 당시의 원칙은 ‘최소기준’에 따른 ‘우선순위’다. 이 두 가지는 구호현장에서 내세우는 원칙이기도 하다. 최소 크리스마스와 새해, 둘 중 한명의 생일에는 함께 한다는 우선순위를 매겼다.

결혼 후의 ‘336 타임’은 1년 중 네덜란드와 한국에서 3개월씩 함께 지내고 나머지 6개월은 각자의 고국에서 따로 지낸다는 것. 현재 둘은 ‘336’ 중 혼자인 ‘6’에서 벗어나 네덜란드에서 함께 하는 ‘3’에 들어가 있다. 한씨는 지난달 7일 통화에서 “(12월) 16일 네덜란드로 출국하는데, 책이 11월에 나와 한국에 있어야 하지만 원칙이 무너지면 안 되기 때문에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6’은 불안하거나 위험하다. 하지만 ABC는 이 책에서 ‘혼자 있는 힘’을 강변하며 ‘결혼이란 불완전한 반쪽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게 아니라, 혼자라도 이미 완전체가 돼 있어야 완전하게 살 수 있다(268쪽)’고 적고 있다. 서로 다른 과일이 섞였을 때 고유함을 유지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과일 칵테일식' 공동생활이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부부의 세계에서 갈등이 없을 수 없다. ABC는 싸움 방지 시스템을 만들어 놨다. 최후의 싸움 방지 방법은 아침 통성기도. ‘안톤은 오늘도 젖은 수건을 침대 위에 올려놨습니다. 부디 제가 인내심을 갖게 해주시옵소서.’ 하느님 아니라 남편이 들으라는, 이런 식이다.

50:50. 집을 살 때도, 음식 계산을 할 때도 적용하는 이 룰은 책에 나오는 한비야의 유언장에도 기록돼 있다. 유골의 반은 한국에, 반은 네덜란드에 뿌려달라는 것이다. 이 책의 인세 수입도 50:50으로 나눴다. 절반은 기부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생활 원칙을 그대로 따라갈 수 없지만, 나름의 ‘최소기준’과 ‘우선순위’만 선택해 보는 것도 가화만사성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60대인 ABC는 “물리적 유전자를 물려줄 순 없는 나이고, (책 내용에 대한) 공감이라는 사회적 유전자를 퍼뜨리고 싶다”며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우리 아이, 옥동자로 부른다”고 했다. 한씨는 과거 방송 출연 논란 등과 관련해 한마디 덧붙였다. “용서를 구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 내용과 언행일치를 하고, 표리부동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분명 안톤도 북한산에서 본 것 같다. 한씨는 “우리도 기자를 산에서 본 것 같다”며 웃었다. 이들의 한국 신혼집은 북한산 밑 독바위역 근처. 봄이면 둘의 모습을 한국에서 볼 수 있을 테다.

-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 이 기사는 중앙콘텐트랩에서 월간중앙과 중앙SUNDAY에 모두 공급합니다.

202101호 (2020.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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