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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논설위원의 ‘온 리버티(on liberty)’ | 마지막 회] 초심 잃은 촛불 정권, 文 정부 위기의 본질 

반자유주의 폭주, 뒤로 간 민주주의 시계 

반대 세력을 국민 이익에 반하는 적폐로 악마화
다수의 힘으로 기본권·법치 훼손하는 정책 강행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1월 1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법원 재상고심 선고 공판이 열렸습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2017년 3월 탄핵당한 그는 4년 가까이 재판을 받았죠. 최순실의 직권남용, 삼성·롯데 뇌물수수, 총선 공천 개입, 국정원장 특수활동비 상납 등 21가지 혐의였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과 재판, 이어진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은 문재인 정권의 적폐청산과 궤를 같이합니다. 이들을 모두 감방에 보냄으로써 ‘이명박근혜’ 시대의 종말을 고하고 적폐청산을 마무리하는 것이었죠.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는 겁니다. 물론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창조적 파괴’는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의 적폐청산은 지나고 보니 권력 투쟁과 이권 놀음을 위한 하나의 명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한국의 민주주의는 퇴행을 거듭했죠.

지난 1년간 ‘온 리버티’는 집권세력이 어떻게 한국 정치를 망가뜨리는지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비판해 왔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하나(자유민주주의)라고 믿어왔던 기존의 통념을 깨는 과정이었습니다.

지금의 한국은 반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시대입니다. 검찰 개혁을 내세운 윤석열 쫓아내기, 거여(巨與)를 앞세운 다수의 폭정, 다름을 용납 않는 팬덤 정치 등이 그렇게 빚어졌죠. 이번 호에서는 집권세력이 무너뜨린 반자유주의적 민주주의 현상과 그 위기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대의정치 무시하고 국민과 직거래


▎2017년 5월 23일 법무부 호송차량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내리는 모습을 시민들이 TV 뉴스로 시청하고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인 야스차 뭉크는 선진국들이 겪고 있는 정치적 위기 현상을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지적합니다. 정확히 말해 우리가 하나로 알고 있던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별개로 떨어져 나갔다는 것이죠([위험한 민주주의]). 현실에서 나타나는 위기의 양태는 크게 두 가집니다. 바로 권리보장 없는 민주주의와 민주주의 없는 권리보장입니다.

뭉크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이를 지지하는 의회와 법원 등의 기관은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고 자유민주주의로 대표되는 시스템을 당연히 받아들이지만, 이들은 저절로 붙어 있는 게 아니다”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그냥 ‘민주주의’에는 ‘자유’를 전제하지 않는 것들도 많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공식 명칭인 북한이 대표적이죠.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반자유주의적일 수 있고, 자유주의도 반민주주의적일 수 있습니다. 이중 반민주주의적 자유주의는 엘리트 위주의 정치체제 아래에서 자유는 보장하되, 시민들의 의견이 정책 결정에 반영되지 않는 경우를 뜻합니다. 형식적인 선거는 존재하지만, 사실상 정치 엘리트와 사회 기득권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국정이 운영되는 체제를 이야기하죠. 과거 독재정권 시절 한국의 체육관 선거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반면 반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권력자가 대의정치를 무너뜨리고 국민과 직거래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나치를 옹호했던 학자 칼 슈미트의 이론처럼 정치는 자신과 상대의 투쟁이며, 권력을 획득하는 것만을 정치의 유일한 목표로 여기죠. 그 안에서 다수의 의견은 인민의 총의로 승화되고, 그 뜻을 대리하는 것은 권력자이며, 그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인민의 뜻에 반하는 것이 됩니다.

뭉크는 대표적인 예로 그리스의 전 총리 알렉시스 치프라스를 듭니다. 시리자(SYRIZA·급진좌파연합)의 당수였던 치프라스는 포퓰리즘의 대명사로, 2006년 아테네 시장 선거에서 10% 넘게 득표하며 유력 정치인으로 급부상했습니다. 시리자는 2012년 원내 2당으로 발돋움했고, 경제위기 상황에서 ‘그렉시트(Grexit)’를 내세우며 다수표를 획득했죠. “채권자는 약탈자”라고 선동하며 ‘그리스의 주권’ ‘민중의 의지’ 같은 말로 민중의 분노를 자극해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하지만 집권 후 치프라스의 전략은 전혀 먹히지 않았습니다. 부채 탕감을 요구하며 재협상을 벌였지만, 실익이 없었죠. 그러자 국민투표까지 추진해 성난 민심을 등에 업고 채권국들을 압박했지만, 해법을 못 찾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정책 결정을 국민투표에 맡겼다는 비난을 받게 됩니다. 결국 그리스는 “국민투표로 구제안을 거부한 지 일주일 만에 더욱 불리한 협상에 사인하는”(뭉크) 신세에 놓였죠.

치프라스가 보여준 반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국민에게 큰 상처를 남겼고, 그 피해는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치프라스처럼 다수 의견을 등에 업고 반대 목소리를 무시하며, 소수를 말살하는 것이 전형적인 ‘다수의 폭정’입니다. 이는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표현대로 “‘민주’를 다수에 의한 통치로만 인식하고 소수를 억압하는 행태”인 것이죠([미국의 민주주의]). 결국 민주주의 안에는 언제든 전체주의로 흐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플라톤이 아테네 민주정을 중우정치라고 비판했듯 말이죠.

사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정확한 뜻을 모른 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서 설명했듯 민주주의에는 자유가 포함된 민주주의도 있고, 그 반대인 인민민주주의도 있습니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를 이야기하죠. 대한민국 헌법 총론에서 자유주의적 질서와 가치 이념을 명시해 놓은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민주주의 최고 가치는 평등입니다. 군주정과 귀족정 등 소수의 특권층이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죠. 그래서 시민 모두가 동등하길 원합니다. 이처럼 전 인민(people)의 평등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다수결을 핵심 의사결정 도구로 받아들입니다. 1인 1표만큼 평등한 결정 방식은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다수결의 가장 큰 맹점은 소수 의견이 묵살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자유주의는 다수의 폭정 견제 장치


▎지난 몇 년간 세계 각국에서 포퓰리즘이 유행하면서 민주주의 위기를 다룬 책들이 줄이어 나왔다.
지금 여당이 보이는 행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죠. 원 구성을 하자마자 국회 상임위원장을 독식했죠. 그러고 나서 부동산 3법 입법,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 등 야당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전락했습니다. 절대 과반의 의석을 가진 여당은 마음만 먹으면 어떤 법안도 통과시킬 수 있기 때문이죠. 토론과 협의 절차는 사라지고 기립 표결로 법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다수결은 분명 효율적인 제도지만, 본질적으로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때 다수의 폭정을 교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자유주의입니다. 급진적인 평등을 내세우는 민주주의는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기 쉽기 때문이죠. 그래서 다수의 뜻(민주주의)으로부터 소수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자유주의)가 꼭 필요합니다. 만일 자유주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인민의 독재를 추구하는 전체주의와 다를 게 없습니다. 북한도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리스를 비롯해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했던 많은 나라가 위기에 빠진 것 또한 이런 자유주의적인 정신과 문화, 제도가 퇴색했기 때문입니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전통을 자랑하는 민주주의도 선출된 독재자의 등장으로 언제든 쉽게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결국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에 없어선 안 될 영원한 단짝입니다. 여기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자연스럽게 법치주의로 연결됩니다. 중요한 자리에선 언제나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해 12월 직무 복귀하면서 ‘상식’을 강조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상식(Common Sense)]은 미국의 독립혁명 사상가인 토머스 페인의 저서이기도 합니다. 1776년 출간돼 수십만 부가 팔린 이 책은 독립선언문의 기초가 됐습니다.

이 책을 통해 페인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평등과 자유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먼저 평등의 측면에선 특권(왕·귀족)이 지배하는 전제정치와 식민지배가 “인간은 평등하다”는 상식에 어긋난다고 했죠. 또 사회계약론을 바탕으로 민주공화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자유로운 개인과 독립적인 국가를 강조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미국 독립혁명의 불씨를 댕겼고요.

자유민주주의 핵심 이념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 로크는 개인이 국가에 양도한 권력은 오직 국민이 합의한 ‘법의 지배’에 따라서만 행사돼야 한다([통치론])고 주장했죠. 바로 ‘법의 지배(rule of law)’입니다. 반면 수단적 성격이 강한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는 권력자가 임의로 법을 해석·집행하거나 시민을 통제할 때 쓰입니다. 진정한 국민주권은 ‘법치’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습니다.

법치에 따라 권력은 삼권으로 분립됩니다. 이때 각각의 권력 주체가 자율적으로 활동하면서 독립성을 보장받아야만 제대로 된 분립이 이뤄집니다. 윤 총장이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고 말한 것도 독립성을 강조하기 위한 뜻이었죠. 권력은 늘 호시탐탐 법치를 무너뜨리고 제멋대로 하려고 하지만, 이런 폭주를 막기 위해 입법·행정·사법권을 나누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따라 서로를 감시토록 했습니다(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국민 주권, 법의 지배를 통해서만 실현


▎2018년 9월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현판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그 어느 나라보다 한국은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합니다. 청와대를 견제하는 사법기관·검찰·감사원 등의 독립이 중요한 이유죠. 하지만 여권에선 윤 총장의 복귀 직후 그를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과 해당 판사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올 만큼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민주적 통제’ 나 ‘선출 권력’이라는 말로 사법권 위에 군림하며 무소불위의 위상을 지니려 합니다. 입법·행정·사법 중 사법은 원래부터 비선출로 설계된 권력인데 말이죠. 전술한 대로 ‘다수의 횡포’를 막기 위한 자유주의적 발상에 따른 것입니다.

뭉크는 민주주의 위기 현상의 대표적 징후 중 하나로 선출 권력의 횡포를 꼽습니다. 선출된 지도자들은 종종 “국민의 뜻을 만능”으로 내세우며 “독립 기구들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야당에 재갈을 물리려 하기” 때문이죠. 그러면서 뭉크는 “짝패들과 함께 법원의 중립성을 훼손하고 언론을 장악하려 한다”고 비판합니다. 뭉크의 설명이 매우 낯익어 보이는 것은 비단 저뿐일까요.

뭉크가 부르는 ‘민주주의의 위기’ 현상을 티머시 스나이더는 ‘가짜 민주주의’로 칭합니다. 그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러시아의 인터넷 조직 IRA가 개입한 사건을 예로 들며 가짜뉴스가 어떻게 진실을 대체하고, 그것이 대중에게 미치는 파급력이 얼마나 큰지 분석했죠. 스나이더는 “이성보다 감성이, 논리보다 자극적인 언사가 대중의 사고를 좌우하면서 중우정치가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가짜 민주주의는 중우정치의 현대적 버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퓰리처상을 받은 뉴욕타임스의 유명한 평론가 미치코 가쿠타니는 트럼프 현상을 예로 들며 “지지자들이 트럼프의 거짓말과 전문성 무시, 민주주의 경멸을 스스로 합리화한다”며 “사실에 대한 무관심, 이성을 대체한 감성, 좀먹은 언어가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합니다([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명백한 사실조차 세뇌된 대중은 믿지 않는 상태”(스나이더)가 오게 됩니다.

이렇듯 ‘민주주의의 위기’ ‘가짜 민주주의’ 등 표현은 다르지만, 오늘날 다수 국가에서 벌어지는 정치 위기는 대체로 비슷합니다. 이성보다는 감성으로, 논리가 아닌 선동으로 대중을 편향적으로 동원하고 정치가들 입맛에 맞게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즉, ‘중우정치’ 현상이 오늘날 민주주의 위기의 본질인 것이죠. 일찌감치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미국의 반지성주의]에서 이성과 합리를 무시하고 지성과 지식인을 배척하는 ‘반지성주의’를 개념화 한 바 있습니다. 1950년 대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친 미국 사회를 해부하며 포퓰리즘과 결합한 반지성주의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지 경고했습니다.

놀랍게도 호프스태터의 지적은 오늘날 한국 정치와 매우 비슷합니다. ‘반공’의 광기로 미국 전역을 공포로 몰아갔던 조셉 매카시처럼 ‘반지성주의’는 상대를 적폐로 만들고,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이들을 단죄하려 합니다. 호프스태터의 말처럼 “반대 세력을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기득권 세력으로 악마화 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거나 관리하는 권한에서 전문성과 지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습니다.

이성보다 감성 앞세우는 중우정치 심화


▎경실련은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 아파트 가격이 평균 3억원 이상 올랐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31일 서울 남산에서 본 시내 모습. / 사진:연합뉴스
촛불 정권을 자칭할 만큼 누구보다 ‘민주적’이어야 할 문재인 정권은 ‘반지성주의’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입니다. 기업과 시장, 정부의 역할 등을 연구해 온 전문가들의 말을 무시하고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하다 나라 경제는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렇게 강조했던 소득주도성장을 이제는 대통령조차 입에 담지 않습니다. 한 나라의 미래를 설계하는 대표 경제 정책이 아마추어들의 실험으로 끝나버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윱니다.

전문가 무시 행태는 코로나19 방역에서도 심각하게 드러났죠. 처음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했을 때 대한의사협회가 6차례나 중국인 입국 금지를 제안했지만 거부했죠. 지난 여름 외식·숙박 쿠폰을 뿌리고 임시공휴일을 지정할 때도 방역을 완화해선 안 된다는 의료계의 경고가 있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죠. 중증 병상 확보, 백신 도입 등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새겨듣지 않았습니다.

2017년에는 한·일 위안부 합의 검토 TF가 보통 30년 동안 비공개하는 외교 문서를 2년 만에 공개해 논란을 일으켰죠. 당시 전문가들은 “한국과의 비밀협상이 어렵겠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TF를 이끌었던 오태규 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실장은 외교 실무 경력이 전무한데도 이듬해 일본 오사카 총영사로 임명됐습니다.

원전 폐기 정책을 추진할 때도 과학자들의 의견은 묵살됐습니다. ‘졸속 추진’ 비판이 끊이지 않자, 최근에는 여당에서조차 속도조절론이 나옵니다. 몇 달 전 신고리 5·6호기 건설 현장을 방문했던 한 여당 의원은 “탈원전보다 탈탄소가 시급한데 무조건 원전을 없애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죠.

586 정치인 중에는 오랫동안 자기 분야에서 공부와 경험을 통해 전문성을 다져온 이들이 적습니다. 그 대신 거리에서 사람들을 조직화하고, 네트워크를 통해 연대하는 능력을 쌓아 온 이들이 많습니다. 그 결과 자기에게 부족한 전문성을 경시합니다. 마치 머릿속에 있는, 현실에서 검증되지 않은 것들을 국가와 국민을 상대로 테스트베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비판적 기자들을 ‘기레기’로, 반대하는 지식인들을 ‘토착왜구’로 비난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잘못된 점을 지적하면 해당 메시지에 대해 비판하는 게 아니라 메신저 자체를 공격합니다. 아울러 조국·윤미향 사건처럼 자기 진영에 불리한 사실이 나오면 가짜뉴스로 몰아 국민을 호도합니다. 진중권 전 교수의 말대로 이들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 팩트로 보지 않고, 자신의 바람대로 만들어낸 창조의 산물로 봅니다. 아파트값이 폭등해도 자기에게 유리한 통계를 내밀며 “부동산값이 오르지 않았다”고 말하거나 누가 봐도 문제의 소지가 있는 행동을 “증거 인멸이 아니라 증거 보존”이라고 해명하는 것처럼 말이죠.

정치가 무너지면 경제도, 사회도 모두 붕괴합니다. 한국은 지금 반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국의 리버럴 정권이 내면의 권위주의를 드러내고 있다”는 영국의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지적처럼 집권 세력의 뼈아픈 반성이 없다면 대한민국의 내일은 어둡기만 합니다.

반면교사가 베네수엘라입니다. 베네수엘라는 현재 국민의 90% 이상이 빈곤상태에 빠져 있습니다(2019년 UN).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매년 치솟고 있으며, GDP는 반토막 났습니다. 알다시피 차베스는 ‘21세기형 사회주의’를 내걸고 반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몸소 실천했습니다. 야당과 언론, 지식인을 배척하고 전문가들을 무시했습니다. 석유 등 나라의 핵심 산업을 국유화 하고, 시장에 적극 개입하며 포퓰리즘을 일삼았죠. 그 결과 1950년 1인당 GDP가 세계 4위(7424달러)였던 베네수엘라는 현재와 같은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 위기 현상이 심화되면 우리도 얼마든지 베네수엘라처럼 될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은 반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성향을 가진 이들이 집권 세력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무너진 자유주의, 암울한 미래

뭉크는 자신의 책에서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지는 모습을 3가지로 정리했는데, 놀랍게도 현 집권 세력의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먼저 포퓰리즘 세력이 위기의 원흉을 해외로 돌리고(토착왜구), 둘째로 국민의 뜻을 위해 싸운다고 주장하며(촛불정신) 방해되는 것은 없애려 합니다(적폐청산). 셋째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민중의 통치를 부르짖는 것(검찰의 민주적 통제, 선출 권력의 강조를 통한 삼권분립 침해)이죠.

지난 4년간 집권 세력이 무너뜨린 것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자유주의의 몰락이죠. 진중권 전 교수, 김경률 회계사, 권경애 변호사 등 소위 ‘조국흑서’의 저자들이 진보에서 보수로 등을 돌렸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많지만,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 이들은 그저 자유주의자일 뿐입니다. 한국의 이념 지형 속에서 자유주의자, 소위 ‘리버럴’은 진보라는 테두리 안에 있었는데 586으로 대표되는 운동권이 정권을 거머쥐면서 분화가 일어난 것이죠. 즉, 가짜 진보와 진짜 진보의 분리가 시작된 것입니다. 지난 연말 졸속 통과된 대북전단금지법만 하더라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반인권적’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나와 다른 의견에 재갈을 물리고, 대화와 타협을 경시하는 리버럴이 세상에 어디 있나요. ‘조국흑서’ 저자들은 진보에서 보수로 전향한 게 아니라, 그저 리버럴의 역할에 맞게 가짜 진보들을 비판했을 뿐입니다.

이제 우린 자유주의의 기본 정신을 되새겨 봐야 할 때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1859년 [자유론(on liberty)]을 출간하면서 개인의 자유가 어떻게 역사를 발전시키는지 체계적으로 논증하고, 이것이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설명했습니다. 그는 책의 첫 문단에서 “사회가 개인을 상대로 정당하게 행사하는 권력의 성질과 한계를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라고 분명히 했습니다. 그러면서 “권력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 진짜 자유”라고 강조했죠. 평등에 기초한 민주주의는 다수의 폭정 상태로 빠지기 쉽고 그 때문에 개인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논지를 책 곳곳에서 설명해 놨습니다.

보통 밀의 자유론을 “어떤 사람의 행동이 타인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지점에선 (정부의) 개입이 정당하다”(유시민)는 논리를 펼 때 인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밀의 본뜻이 아닙니다. 밀은 오히려 권력에 대항하는 소수자 권리로서의 사회적 자유를 강조했습니다. 앞서 우리가 살펴본 국민주권과 법치주의, 삼권분립 등과 궤를 같이하고 있죠. 이렇게 약자를 배려하는 자유주의의 전통은 존 롤스로 이어져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라”는 정의의 원칙으로 승화됐고요.

본 시리즈인 ‘온 리버티’도 밀의 저서에서 이름을 따 기획했습니다.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처럼 사회구성원으로서 인간의 모든 권리와 가치를 하나씩 제거해 나갈 때 최후에 남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자유 뿐(only liberty)이라는 뜻도 겸했습니다. 지난 1년간 문명사회의 인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이며, 우리는 어떤 사상과 가치를 무기로 삼아 반문명과 싸워야 할지 ‘자유’의 관점에서 고민해 봤습니다. 그동안의 여정이 우리 사회를 밝히는 데 한 줌의 빛이 됐기를 소망합니다. 애독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 윤석만 논설위원/중앙일보 - 국회·청와대·교육부 등 다양한 출입처를 거쳤다. 2012년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고려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경희대에서 미래 사회를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과학·기술·산업만이 아닌 인간과 문화, 의식과 제도의 측면에서 조망하며 미래인문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휴마트 씽킹] [리라이트] [인간혁명의 시대] [미래인문학] 등이 있다.

202102호 (2021.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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