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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선진국으로 가는 마지막 조건: 삶의 질 

워라밸의 틀보다 내용에 충실해야 할 때 

주거·교육·안전·여가 부문은 OECD 평균 웃도는 선진국 수준 달성
평균 못 미치는 소득·사회복지 개선 필요하지만 서두르면 역효과


▎삶의 질은 수치화한 외형보다 실제로 사람들이 만족하는지 여부가 더 중요한 척도다. 주거와 환경, 교육, 복지, 관계 맺기 등 다양한 부문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한 것은 1996년이다. OECD 가입은 선진국 진입의 관문으로 인식됐다. 세계적으로 29번째 가입국이고,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 가입국이다. 당시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고 자축하는 분위기였다. 이후 OECD는 국내 경제 규모나 사회 시스템, 삶의 질 등을 평가하는 잣대가 됐다. OECD에 가입한 지 어느덧 25년째에 접어든다. 우리는 한국을 선진국이라고 스스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객관적인 지표를 통해 우리네 현주소를 돌아보자.

삶의 질은 OECD 통계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바탕으로 주거·소득·인적네트워크·교육·환경·건강·안전·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사회안전망·사회복지 측면으로 나눌 수 있다. 방대하지만, 우리 피부에 가장 와닿는 부분은 역시 주거 문제다. 연일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동산 가격에 주거 문제는 우리 국민이 가장 절실하게 개선되길 원하는 가치로 자리 잡았다.

통계청이 제공하는 2018년도 자료에 따르면, 화장실과 같은 기본시설이 없는 곳에서 사는 인구 비율은 우리나라의 경우 2.5%다. 이는 OECD 평균인 3.2%보다 낮은 수치다. 33개 OECD 회원국 중 이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멕시코다. 무려 25.5%나 된다. 반면 노르웨이·스웨덴·아이슬란드와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제로(0%)다.

1인당 방 개수도 주거의 질을 따질 때 중요한 요소다. 같은 자료에서 우리나라의 1인당 방 보유 수는 평균 2개로 나타난다. 이것도 OECD 평균인 1.7개보다 많다. 방 보유 수가 가장 많은 곳은 캐나다로 1인당 3개다. 남유럽·동유럽·중남미·중동 국가들은 1인당 1개다. 물론 방의 개수가 반드시 삶의 질에 있어 절대 척도는 아니지만, 얼마나 여유로운 주거 환경을 갖고 있느냐가 방 개수로 나타난다. 기본시설이 없는 곳에서 주거하는 비율과 1인당 방 개수를 놓고 본다면, 우리나라는 선진국 수준으로 볼 만하다.

교육열은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답게 교육환경과 성과는 다른 선진국에 견줘 손색없는 수준이다. 교사 1인당 학생 수의 경우 우리나라는 13명으로, OECD 평균인 16명보다 낮다. 다만 이는 영국이 62명으로 압도적인 수치를 기록해 전체 평균이 올라간 데서 기인한 상대적 착시일 수 있다. 일본, 멕시코, 칠레, 터키, 포르투갈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가는 12명을 넘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 수준은 높은 편이다. 25~64세 성인 중 중등 이상 학위를 가진 비중은 88%로 조사됐다. 이는 OECD 평균인 79%를 웃도는 수준이다.

문제는 소득 부문이다. 세금과 4대 보험료 등 고정 지출을 뺀 가처분소득은 OECD 평균을 밑돈다. 가처분소득은 구매력을 평가하는 기준이다. 우리나라의 2018년 기준 가처분소득은 연간 2만1900달러로 OECD 평균인 2만7800달러보다 적다. 29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미국(4만5300달러)의 절반에 못 미친다. 한국보다 적거나 비슷한 수준의 국가는 라트비아(1만6300달러), 그리스(1만7700달러), 에스토니아(1만9700달러), 폴란드(1만9800달러), 슬로바키아(2만500달러), 슬로베니아(2만800달러), 포르투갈(2만1200달러), 체코(2만1500달러), 리투아니아(2만1700달러) 정도다.

주거 환경에선 선진국 수준, 소득은 평균 이하


가구당 순자산도 28만6000달러로 OECD 평균치(28만9800달러) 아래에 머물러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소득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정규직 근로자 연봉은 평균 3만5200달러다. 이 역시 OECD 평균(3만9800달러)보다 적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소득 수준 차이가 갈수록 벌어지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국민 전체의 소득 수준은 아직 삶의 질이 높은 국가들에 한참 못 미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는 가구의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심리적 위축감도 확산시키고 있다. 실직과 재택근무의 일상화, 사회적 거리 두기에 따른 고립감은 ‘코로나 블루’를 악화한다. 높은 자살률과 사회적 고립감은 인적 네트워크가 단절됐을 때 더 기승을 부린다. 인적 네트워크 수준은 ‘15세 이상 인구 중 필요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인을 보유한 비중’ 지표로 확인할 수 있는데, 그 결과가 자못 충격적이다. 우리나라의 이 지표 비중은 78%(2018년 기준)였다. OECD 전체 국가에서 가장 낮다. OECD 평균은 90%이고, 핀란드(95%), 덴마크(95%), 뉴질랜드(96%), 아이슬란드(98%) 등 북유럽과 영국계 국가들이 높은 비중을 나타내고 있다. 노령인구 증가와 히키코모리 문제로 몸살을 앓는 일본도 89%로 평균 수준이다.

실제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인구 10만 명 당 자살자 수는 23명으로 OECD 평균(12.7명)의 두 배를 넘는다. 통계가 잡힌 22개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한 나라는 리투아니아로 24.4명이다. 한국은 두 번째다. 이는 2017년의 통계다. 더 충격적인 것은 2017년을 제외하고 2003년부터 2019년까지 한국의 자살률은 OECD에서 가장 높았다는 사실이다.

의료비 본인부담률 OECD 평균보다 높아


문재인 정부는 2025년까지 탄소중립 사회를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량인 20.1%, 온실가스 1229만t을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는 2020년 7월, 이를 위해 73조4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일자리 65만9000개를 창출하는, 이른바 그린뉴딜 계획의 청사진이다.

환경은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기후변화와 환경 오염에 대응하려는 정부의 구상은 명분에서 일단 타당해 보인다. 실제로 한국의 환경적 요소는 선진국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대기오염 수준은 28㎍/㎥(세제곱미터당 마이크로그램)로 OECD 평균치인 13㎍/㎥의 배가 넘는다. OECD 전체 국가 중 가장 높다. 수질에 대한 만족도도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국 상수도 보급률은 99.2%에 달한다. 하지만 보급률이 수질에 관한 만족을 나타내는 건 아니다. 15세 이상 인구 중 수질에 대해 만족하는 비중은 76%로 조사됐다. OECD 평균은 84%다. 36개 국가 중 가장 높은 국가는 아이슬란드로, 무려 99%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그린뉴딜 정책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는 정부 정책은 시의적절하다. 다만, 정책의 효과를 얼마나 거둘 수 있느냐가 핵심이 돼야 한다. 단순히 침체한 경기 회복을 노린 것이어선 환경의 개선이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또 탈원전 정책이 불러온 전력수급 공백을 메우기 위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35%까지 늘린다는 계획(2040년 목표)을 세웠지만, 전문가들은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코로나19팬데믹은 우리 사회 보건의료 시스템의 속살을 여실히 드러냈다. 정부는 한때 차단 위주의 방역 대책인 ‘K방역’이 효과적이라며 자랑했지만, 하루 확진자가 1000명을 돌파한 3차 대유행이 현실화하면서 이런 자화자찬이 무색해졌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에 남은 의료 병상 여유분은 10여 개에 불과하다. 공공병원의 병상만으로는 확진자를 제대로 치료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4명에 불과하다. OECD 평균인 3.5명에 한참 못 미친다. OECD 국가 중 멕시코와 같은 수로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의료비 부담도 크다. 건강보험 시스템이 우수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경상보건비 대비 본인부담률을 따져보면 오히려 선진국 중에서 평균 이하다. 2017년 말 기준 경상 보건비 대비 본인부담률은 33.7%로 OECD 평균(20.5%)보다 높았다. 본인부담률이 낮을수록 진료를 받는 데 부담이 적어 국민 건강 수준을 높일 수 있다.

사회적 안전 시스템은 어떨까. 거의 모든 곳에 CCTV가 있어서 완전범죄를 꿈꾸기 어려운 정도로 치안 환경은 꾸준히 개선됐다. 실제로 살인사건 발생 빈도가 선진국 중에서도 낮은 수준에 속한다. 인구 10만 명당 피살자 수는 1.0명이다. OECD 평균은 1.7명으로 더 높다. 영국과 일본은 0.2명으로 가장 치안이 안정적인 나라로 꼽힌다. 다만 피살자 수가 가장 많은 멕시코가 무려 18.1명으로 평균치를 높였기 때문에 평균을 크게 밑도는 것처럼 착시를 일으키는 것일 수도 있다. 멕시코, 칠레, 이스라엘, 에스토니아, 미국, 라트비아 등 1.0명을 넘는 나라는 36개국 중 12개국에 그친다. 나머지 나라는 1.0명 미만으로 우리보다 더 안정적이다.

공공사회복지 지출 비중도 OECD 평균의 절반


▎코로나19 팬데믹은 사회적 우울감과 고립을 심화하고 있다. 11월 26일 대전역 이용객들이 마스크를 쓴 채 띄엄띄엄 앉아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 사진:김성태
한국인은 세계적으로도 근면 성실하기로 이름 높다. 한때 이런 평가를 자부심과 한국인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으로 여기던 시대도 있었다. 하지만 시대 변화에 발맞춰 일보다 삶의 질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풍조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수년 전부터 유행한 ‘워라밸’이란 말이 그런 풍조를 대변한다. 일을 뜻하는 work와 삶을 뜻하는 life 사이의 균형(balance)을 의미하는데, ‘저녁이 있는 삶’이란 슬로건과 더불어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개인의 여가에 할애하는 시간은 아직 평균 수준에 불과하다. 하루 중 여가 및 개인관리 시간을 조사한 통계에서 우리나라는 15시간을 여가와 개인관리에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하루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는 근로자에겐 15시간은 꿈만 같을 것이다. 이는 비근로자를 포함한 것이어서 그렇다. OECD 평균은 우리나라보다 약간 많은 15.1시간이다. 유럽 국가들은 16시간으로 가장 높다. 미국과 호주가 14시간이란 점이 다소 이색적이다.

각종 복지가 늘어나고는 있지만, 여전히 공공사회복지 지출은 선진국 평균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 비중에서 우리나라는 11.1%로 OECD 평균(21.4%)의 절반 수준이다. 전체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

앞서 살펴본 부문별 지표를 요약하면, 주거·교육·안전·워라밸에선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소득·환경·사회안전망·사회복지에서는 여전히 선진국의 문턱은 높기만 하다. 삶의 질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기 위해 몇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가계 소득 증가를 위한 정책이다. 현 정부에서 소득 증가정책의 하나로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했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소득이 늘어 소비가 늘어나고, 생산이 늘어 결국 일자리가 많이 생길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소상공인과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크게 늘려 오히려 일자리가 급감하는 역효과를 불렀다. 이는 소비 둔화와 생산 감소로 이어졌다. 결과가 잘못됐다면 처방이 새로워져야 한다. 기업이 생산 활동을 늘려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인적 네트워크는 이념적 대립과 갈등, 분열 앞에서 붕괴할 수밖에 없다. 국민 상호 간 신뢰가 구축되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해야 한다. 이데올로기와 지역 갈등, 성별 대립, 빈부의 갈등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갈등의 양태와 원인을 정확히 분석하고, 신뢰 구축 방안을 모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중국과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국내 대기오염의 상당수는 미세먼지에서 기인하는데, 중국에서 넘어오는 미세먼지가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탈원전 이후 대체 발전의 효율성과 환경적 영향에 대한 연구도 지금보다 더 폭넓고 깊이 이뤄져야 한다.

지난해 인천의 ‘수돗물 깔따구 유충 사태’는 상수도 시스템에 큰 불신을 낳았다. 수도시설 운영인력의 절대 감소와 잦은 인사이동은 관리역량을 떨어뜨린다. 2007년 ‘지방공무원임용령’과 ‘지방연구직 및 지도직 공무원의 임용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른 직군·직렬 개편으로 상수도 운영 기술 인력이 대폭 감축됐고, 절대적인 종사 인원도 2008년 1만5000명에서 2017년 1만3000명으로 줄었다. 2019년 10월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상수도 종사 직원 중 기술 인력은 약 23%가 감축됐는데, 이 중 운영에 특화된 기술 인력은 약 40%가 줄었다.

삶의 질 틀은 갖췄지만 질적 향상은 이제부터

넷째, 의료인력 수급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렇다면 놀랍게 발전하는 신기술을 의료현장에 적용하는 일을 더는 미룰 이유가 없다. 의료법 제34조에서는 의료인과 의료인 사이의 원격 의료만 허용되고, 의료인과 환자 간 원격 의료가 금지되고 있다. 의료인과 환자 간 원격 의료가 허용된다면, 더 많은 환자가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선진국 대비 부족한 의사 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대면접촉을 어렵게 하는 코로나19 사태도 원격 의료의 필요성을 강조해주고 있다.

보건비의 본인부담률은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문재인 케어’를 통해 보건비에서 본인부담률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뇌 MRI(자기공명영상장치)와 수면무호흡증을 치료하기 위해 잠잘 때 사용하는 양압기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본인부담률을 급격히 감소시키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수요가 급증한다. 이는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다섯째, 기존의 사회 안전망이 자살을 막기 위해 적절한 것인지, 형식적인 것에 그치진 않는지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자살 방지를 위한 다양한 사회 안전망을 강구해왔지만 그 수치를 줄이는 데 실패했다.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라는 관점으로 봐야 실효적 해법이 나온다.

여섯째, 공공사회복지 지출을 늘리는 것은 코로나가 몰고 온 시대적 과제다. 다만, 이 비중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것은 위험하다. 복지 지출은 필연적으로 국가 재정 능력과 깊이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증세에 대한 저항, 국가 부채 증가 등의 위협 요소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기침체로 이어져 오히려 사회복지 지출이 후퇴하는 역효과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제반 조건과 형식은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 하지만 형식보다 중요한 건 내용이다. 선진국에 걸맞은 삶의 질을 누구나 누릴 수 있도록 이제는 형식 외에 내용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물론, 당장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전제조건은 기본이다.

- 라정주 (사)파이터치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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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호 (2021.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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