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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포트] ‘LH 폭탄’ 맞고 좌초 위기 몰린 문재인 정부 주택 공급대책 

“文 정부, 투기꾼과 싸운다면서 투기꾼 키웠다” 

LH 신뢰성 바닥으로 떨어져 공공기관 주도 2·4 공급대책 동력 상실
‘정부 말 들으면 벼락거지 된다’ 학습효과 확인… 정부 불신만 더 커져


▎3월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 관계 장관들이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하며 LH 사태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대지 국세청장, 구윤철 국무조정실장, 홍남기 경제부총리, 변창흠 국토부 장관, 이재영 행정안전부 차관. / 사진:연합뉴스
한국부동산원은 3월 2일 ‘1월 15일부터 2월 15일까지 수도권 아파트 가격은 전월 대비 1.71% 올랐다’고 발표했다. 이는 2008년 4월 이후 13년 만에 최고 상승률이다. 이 기간 정부는 2·4 대책을 내놓았다. 세금 강화나 규제 등 수요억제 정책으로 일관하던 문재인 정부 출범 4년 만에야 나름 작심하고 내놓은 공급대책이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금은 무리해서 집을 살 때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 말 들으면 벼락거지 된다’는 학습효과가 각인된 시장의 반응은 달랐다. 2·4 대책 이후에도 집값 상승세는 전혀 움츠러들지 않은 것이다. 문 정부 초기만 해도 정책이 나오면 처음 몇 달 동안이라도 집값이 진정됐다. 가령 2017년 8·2 대책이나 2018년 9·13 대책, 2019년 12·16 대책 때 그랬다. 그러나 이제는 반응하는 시늉조차 없는 것이다.

2021년 2월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전달 대비 0.67%였다. 이는 2019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였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2월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서울 123.4, 수도권 127.8에 달했다. 이는 2012년 7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래 가장 높았다. 이 지수가 100을 넘으면 집을 사고 싶은 사람이 팔고 싶은 사람보다 많음을 뜻한다. 서울 아파트값 평균 매매가격은 사상 최초로 9억원을 돌파(9억382만원)했다. 정부에서 규정한 고가주택 기준(9억원)을 넘어가버린 셈이다. 이 역시 2012년 1월 통계 작성 이래 처음 나타난 초유의 현상이다. “문재인이 대통령으로 있는 한, 절대 집값은 잡히지 않는다”가 부동산 시장 참여자들의 전제로 작동하고 있다. 이 와중에 터진 ‘LH(한국토지주택공사) 투기의혹사건’은 카운터펀치였다. 도대체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의문에 직면한 것이다.

LH 사태로 정부 부동산 정책 근간 흔들려


▎2월 24일 6번째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광명·시흥의 신도시 예정지. LH 사태의 진원지가 됐다. / 사진:연합뉴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LH 사태가 문 정부에 뼈아플 수밖에 없는 두 가지 이유를 꼽았다. “첫째, 문 정부 부동산 정책은 ‘투기세력에 의한 시장 왜곡을 바로잡겠다’는 명제로 압축된다. 4년 동안 (투기세력으로 겨냥한) 다주택자를 ‘잡는’ 정책을 해왔다. 그런데 더 큰 (투기의)구멍이 (LH라는 공기업 내부에) 있었던 것이다. LH의 땅 투기에 비하면 다주택자들이 집 한 채 더 사는 것은 애들 장난이었다. (바깥의 투기에는 그토록 엄격했으면서 정작 내부의 투기 적발에는 무심했던 것이 드러나며) 정부 부동산 정책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둘째, 문 정부의 주택 공급정책 테마는 공공 주도였다. 그 생각의 배경에는 ‘민간보다 공공이 청렴하다’는 개념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이었던 것으로 드러나니 뿌리째 흔들리게 됐다.”

부동산은 문재인 정부의 아킬레스건이다. 친문 핵심그룹에 속하는 민주당 당직자조차 “부동산에 관해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실토한다. 한국갤럽의 3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 정부 부동산 정책에 관해 74%가 ‘잘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잘하고 있다’는 11%였다. 문 정부에 관한 부정 평가 이유 중 첫 손가락(40%)에 집값 상승이 꼽힌다. KB부동산 리브온에 따르면 2020년 12월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은 10억4299만원에 달한다. 문제는 아직도 꼭지가 아니라고 여기는 시선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응답자의 61%가 ‘향후 1년간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고 답했다. 내릴 것이라고 생각한 이는 13%에 불과했다.

집값과 전·월셋값은 통상적으로 디커플링 관계다. 그러나 문 정부에서는 전·월세도 동반 폭등하고 있다. 2월까지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17개월 연속 상승이었다.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2%가 ‘향후 1년간 전·월세 임대료가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내릴 것’은 8%뿐이었다. 부동산 정책에 관한한, 문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고 봐도 무방한 추세다.

문제는 LH 사태로 이제 ‘투기와의 전쟁’이라는 문 정부의 선의조차 의심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부동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다 보니, 자기편의 허물에는 관대하다’는 의구심이 증폭된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어지간해서는 봐주지 않는 분야가 군대, 교육, 부동산이다. 공정의 영역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국민 다수가 LH 사태를 단순 비리 차원을 넘어선 정치적 문제로 여기고 있다는 것은 문 대통령 지지율 40% 붕괴(3월 15일 리얼미터 여론조사, 대통령 직무 수행에 관해 긍정 37.7%·부정 57.4%)와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3월 14일 SBS 여론조사, 야권 단일화 시 오세훈·안철수 중 누가 나와도 승리, LH 사태가 서울시장 선거에 영향 있다는 응답 비율은 76.8%)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정부와 민주당의 고민은 LH 사태의 출구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 데 있다. 사건은 6번째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광명·시흥 공공택지지구에서 터졌지만, ‘과연 이곳만 내부 정보 취득에 의한 투기가 있었겠느냐’는 의문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미 여론의 의구심은 2018년 지정된 ‘3기 신도시’로 향하고 있다. 3기 신도시는 ▷남양주 왕숙신도시 ▷하남 교산신도시 ▷인천 계양신도시 ▷고양 창릉신도시 ▷부천 대장신도시 등 5곳이 지정됐다. 신도시는 아니지만, ▷과천 과천지구 ▷안산 장상지구 ▷용인 구성역 ▷안산 신길2지구 ▷수원 당수2지구 등도 택지지구로 지정됐다.

문제는 이곳을 털어보면 광명·시흥 건과 유사한 비리가 나올 확률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조사를 형식적으로 할 순 없다. 그럴수록 여론은 수습이 안 된다. 제대로 하면 어디까지 나올지 통제가 불가능하다. 자칫 ‘3기 신도시 전체를 전면 취소하라’는 분노가 비등해질 수 있다. 이러면 문 정부의 공급 대책은 무너진다. 가뜩이나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집값은 더 치솟을 터다. 이는 2021년 대선에 치명적 악재가 될 수 있다.

여론의 의구심은 ‘3기 신도시’ 전체로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일대 건물 외벽에 정부의 공공 재개발에 반발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정부 주도 공공 재개발의 어려움을 여실히 보여준다. / 사진:연합뉴스
국토부와 LH는 3기 신도시 사업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지구계획 수립과 토지보상을 병행 중이다. 그러나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토지 보상부터 난항에 빠져 있다. 하남·교산은 49%, 인천 계양은 44% 수준이다. 과천지구는 토지 소유자와 시행사의 감정평가금액의 차이가 커서 2021년 하반기 이후로 지연된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LH 사태마저 불거졌다. 정부는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3기 신도시 해당 지역 전수조사를 결정했다. 이러면 당초 계획보다 최소 몇 개월은 늦어질 것이 자명해진다. 당초 문 정부는 2021년 말까지 3기 신도시 사전청약을 진행하려고 계획했었다. 그러나 의혹이 가려지지 않은 이상, 의도대로 추진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만약 사전청약을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아파트 입주가 늦어지는 사태가 벌어지면, 청약 당첨자들의 아파트 입주가 늦어지는 선의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정부는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강조하지만, 투기 의혹이 투명해질 때까지 3기 신도시는 사실상 중단될 판이다.

LH 사태는 소위 ‘변창흠표 공급정책’을 좌초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당초 예정된 2차 공공택지 추가 발표도 그 영향권에 들어갔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은 3월 4일 대국민 사과를 내놓았다. 그는 “정책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바탕으로 공공개발사업을 집행해야 하는 기관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점에 대해 소관업무의 주무부처 장관이자 직전에 해당 기관(LH)을 경영했던 기관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2·4 대책에 포함된 공공택지 사업 등은 현재 진행 중에 있기 때문에 차질 없이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신도시 포함)200만 가구 공급 쇼크’와 2·4 대책의 차질 없는 진행은 근본부터 의문에 빠졌다. 정부는 2·4 대책에서 서울 32만 가구, 전국 83만 가구 공급을 발표했다. 그 중심은 구도심의 공공재개발과 공공 재건축이었다. 그러나 공공 재건축을 신청한 단지는 단 한 곳도 없다. 공공 재개발 후보지에서도 ‘민간 주도로 정비사업을 추진해야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는다’며 반발하고 있다. 마포구 대흥5구역에서는 공공 재개발 신청을 취소해 달라는 집단민원까지 제기됐다. LH 사태 유탄을 맞은 민주당은 2·4 대책 관련 개정안 등의 법안 처리에 소극적이다. 174석(친민주당 계열로 분류되는 열린민주당 5석, 기본소득 당 1석, 시대전환 1석까지 합치면 179석)의 절대 의석을 가지고 있음에도 공공주택특별법,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의 시작 절차조차 밟지 않았다.

2·4 대책의 핵심은 LH 등 공공기관의 참여를 전제로 용적률을 풀어주는 인센티브 제공이 골자였다. 그러나 그 주체인 LH의 신뢰성이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동력을 크게 상실했다. 결국 국회의 법 통과보다 LH 사태가 수습되고, 내부가 어느 정도 정비되는 것이 선결과제가 됐다.

“광명·시흥 신도시 백지화” 주장까지 나와

LH 사태의 불길이 계속 번지는 것은 주무부처인 국토부의 수장이 변창흠 장관인 요인도 크다. 2020년 12월 국토부 장관을 맡기 직전까지 그는 2019년 4월부터 LH 사장으로 일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광명·시흥 토지 투기 의혹은 변 장관이 LH 사장 시절 때 자행된 일이다. 책임을 져야 할 위치의 인물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에 여론은 더욱 격앙됐다. 게다가 “개발 정보를 알고 미리 산 게 아니라 신도시 개발이 안 될 것으로 알고 샀는데, 갑자기 지정된 것 아닌가 생각한다”, “시세의 70% 정도인 감정평가액으로 전면 수용되는 신도시에 땅을 사는 것은 바보짓”이라는 변 장관의 해명은 화를 더 키웠다. 변 장관은 이 말을 하고 하루 뒤 이낙연 민주당 대표에게 불려가 질타를 들었다.

LH 사태가 진정되지 않을수록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의 부담은 커지고 있다. 선거를 한 달 앞두고 [중앙일보]가 3월 8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35.2%가 ‘부동산 공약으로 후보를 고르겠다’고 밝혔다. 이는 진보(33.4%), 보수(31.2%), 중도(39.5%) 성향 유권자를 가리지 않는다. 특히 내 집을 마련할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는 2030세대의 40% 이상에서 부동산에 대해 민감했다.

문 대통령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3월 12일 변 장관을 조건부 사퇴시켰다. 조건이 붙은 이유는 “변 장관 주도로 추진한 공공주도형 주택공급 대책과 관련된 입법의 기초 작업까지는 마무리해야 한다”였다. 이미 비리를 저지른 자들에 대한 소급 처벌이나 이익 환수가 여의치 않은 현실에서 민주당은 사후 재발방지 대책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이해충돌방지법·공직자윤리법·LH법·부동산거래법 등 공직자 투기 방지 및 처벌과 관련한 개정안을 3월 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3월 14일 “앞으로 LH 임직원은 실제 사용 목적 이외의 토지 취득을 금지하겠다”며 “신설 사업지구를 지정하기 이전부터 임직원 토지를 전수조사하고 불법 투기와 의심행위가 적발되면 직권면직 등 강력한 인사 조치는 물론, 수사 의뢰 등을 통해 처벌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3월 16일 “성실하게 살아가는 국민들께 큰 허탈감과 실망을 드렸다”며 “송구한 마음”이라고 사과했다.

문 정부와 민주당이 이 난국을 돌파하려면 광명·시흥 신도시를 백지화해야 3기 신도시나 2·4 공급대책이 정상화할 것이라는 주장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살(광명·시흥)을 떼어주고 뼈(정책 신뢰)를 취하자는 관점이다. 이은형 연구원은 “정부 입장에서는 이것조차 아쉬울 수 있겠지만 광명·시흥 공급은 7만 가구다. 2·4 대책을 통해 정부가 약속한 83만 가구의 10%도 채 되지 않는다”며 “(하겠다는 선언 외에 착공된 바가 없어서) 매몰비용도 없다. 지금이야말로 정부가 투기와의 전쟁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반면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치적으로는 3기 신도시 전면 백지화도 선언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문 정부 공급대책이 엉클어질 수 있다”며 현실적으로 기존에 결정된 3기 신도시는 추진될 수밖에 없다는 예측에 힘을 실었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104호 (2021.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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