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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이슈] ‘역대 최소 표차’ 패장 이재명의 미래 

8월에 당권 거머쥔 뒤 문재인의 ‘길’ 노릴까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비대위원장·8월 전당대회·2년 뒤 총선 놓고 고민 깊어질 듯
대장동 의혹 못 털거나 조급증 낼 경우 되레 어려워질 수도


▎대선에서 석패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의 정치적 미래에 관심이 쏠린다. 크게 보면 선택지는 당 비상대책위원장, 지방선거 지휘, 8월 전당대회 출마로 요약된다. 이 고문이 3월 10일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선대위 해단식을 마친 뒤 떠나고 있다. / 사진:국회사진기자단
"개인적인 꿈은 이제 끝났다. 다음에는 보다 더 좋은 후보와 함께 세 번째 민주정부를 만들어내는 일을 반드시 성취해내길 바란다.”(2012년 12월 20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2012년 제18대 대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이튿날 “개인적인 꿈은 끝났다”며 재수 의사가 없음을 시사했다. 호적상 1953년생인 문 후보의 당시 나이는 59세였다.

대선 패배 후 낮은 자세를 이어가던 문 후보는 2015년 2월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쥐며 차기 유력 주자로 부상했다. 이어 2016년 총선 승리로 당을 장악한 데 이어 다자 구도로 치러진 2017년 제19대 대선에서 41.08%라는 낮은 득표율에도 불구하고 당선 기쁨을 누렸다.

“이재명이 부족해서 패배한 것이지 여러분은 지지 않았다. 여러분은 최선을 다했고 또 성과를 냈지만, 이재명이 부족한 0.7%를 못 채워서 졌다.”(2022년 3월 1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2022년 제20대 대선에서 47.83% 득표율에도 고배를 든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이튿날 “이재명이 부족해서 졌다”며 거듭 고개를 숙였다. 이 후보는 “이재명 탓”이라면서도 다음 대선 출마를 접는 듯한 발언은 하지 않았다. 호적상 1964년생인 이 후보는 올해 만 58세다.

2017년 대선에서 문 후보는 1342만 표 득표에 그쳤지만, 다자 구도였던 까닭에 여유 있게 승리할 수 있었던 반면, 이 후보는 1614만 표를 얻고도 사실상 양자 대결이었던 터라 아깝게 패했다. 1614만 표는 역대 대선 낙선자 가운데 최다 득표다. 역대 최다 득표 낙선과 최저 표차(0.73%p) 낙선 기록을 동시에 세운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이 재수의 길을 걷게 될 거라는 데 이견은 거의 없다. 다만 대선 재수의 과정과 관련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0.73%p 차’로 눈물을 흘린 이재명, 그는 어떤 길을 가게 될까.

YS·DJ·이회창·문재인의 공통점은


▎제20대 대통령 선거일인 3월 9일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에 마련된 더불어민주당 개표 상황실에서 이낙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선대위원장,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윤호중 원내대표 등 당 관계자들이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는 가운데 송영길(앞줄 왼쪽 둘째) 대표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역대 대통령 가운데에도 재수생은 적지 않았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1987년 첫 도전에서 실패했으나, 5년 뒤인 1992년 승리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1971·1987·1992년 실패 이후 네 번째 도전 만에 가까스로 당선됐다. DJ는 1997년 제15대 대선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게 39만 표차로 이겼다. 이번 대선 이전 최소 표차 승리였다.

이회창 전 국무총리는 1997·2002·2007년 연거푸 세 차례 대선에 출마했지만, 모두 패했다. 1997년과 2002년에는 각각 39만 표차, 57만 표차로 아깝게 졌고, 2007년에는 무소속으로 나와 15.07%를 얻었지만 48.67%를 획득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때 고배를 들었지만, 5년 뒤 뜻을 이뤘다. 이재명 고문에게는 문 대통령이 ‘롤모델’이 될 듯하다. 문 대통령은 2012년 낙선 후 친문 결집을 통해 점차 당 주도권을 장악해나갔고, 2015년 2월 당시 박지원(현 국정원장) 의원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당대표에 선출되며 대권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YS·DJ·이회창·문재인의 또 다른 공통점은 뭘까. 이들은 당내 기반이 매우 확고했다. YS 등과 비교하면 이재명 고문은 당내 기반이 취약하다. 이른바 ‘7인회’ 등 이 고문을 열렬히 지원했던 의원도 있었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친이(친이재명)’라고 할 만한 의원은 두 자릿수가 안 된다는 분석도 있다. 선거 기간 동안 캠프 내에서 “당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불만이 나왔던 이유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후 지도부 사퇴에 이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으나, 상황이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우선, 윤호중 현 원내대표 체제의 비대위에 대한 당내 반발이 적지 않다. 또 5월 예정이었던 원내대표 선거를 3월 25일로 앞당겨 치르기로 했지만, 새 원내대표 선출이 당 분위기 쇄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미지수다.

민주당 초선 의원은 “원내대표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 가운데 쇄신을 주도할 적임자가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석패했다고 해서 대충 넘어가다가는 2016년 새누리당처럼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민주당에 원내 제1당 지위를 내주고도 “단 1석 차로 졌을 뿐”이라며 쇄신을 외면했다. 그해 8월 전당대회에서 ‘진박(진짜 박근혜)’ 이정현 의원을 새 당대표로 선출하는 등 당내 친박의 ‘그립’은 여전했다.

김민준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 소장은 “친문이 여전히 민주당 대주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상, 이재명 고문의 착근(着根)이 쉽지 않을 수 있다”며 “대선 재수를 생각한다면 이 고문으로서는 당내 기반을 확고히 다지는 게 급선무”라고 진단했다. 정 반대 시각도 있다. 선거 기간 내내 민주당의 내로남불,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등에 따른 정권 교체 여론이 과반이었음을 고려하면, 이만큼이나마 선전할 수 있었던 건 이 고문의 ‘개인기’에 기인했다는 주장이다. 익명을 원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친문이 대주주라고는 하나 이 후보를 내칠 명분도 또 대안도 없다”면서 “한동안은 이 후보와 친문의 불편한 동거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방선거에서 역할 하라” vs “불쏘시개로 쓰지 마라”


▎2012년 12월 19일 저녁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대선 패배를 인정한 뒤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 고문의 거취와 관련한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6월 지방선거 역할, 둘째, 8월 전당대회 출마다.

민주당에서는 6·1 지방선거부터 이 고문의 등판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대선 경선에 참여했던 이광재 의원은 3월 11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이 전 후보가 역할을 할 수 있으면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고문의 조기 등판을 촉구한 것이다.

이 고문 조기 등판과 관련한 선택지는 세 갈래다. 첫째, 비대위원장으로 선거를 지휘하는 것, 둘째, 한 걸음 떨어진 후방에서 지원사격을 하는 것, 셋째, 본인이 선수로 직접 출마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고문이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해서 국민의힘 후보와 정면대결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김민준 소장은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은 ‘정권 교체에 제대로 마침표를 찍어 새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달라’고 호소할 것”이라며 “그에 맞서 민주당에서는 ‘두 번 질 수 없는 대선 시즌 2’로 맞불을 놓을 수 있다. 그럴 경우 대선에 출마해서 아깝게 진 이 고문이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수 있다”고 예상했다.

지난해 민주당 대선 경선에 참여했던 김두관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재명 후보를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해서) 지방선거를 치러야 한다”면서 “지금은 평시가 아니다. 6월 지방선거마저 패배한다면 다음 총선, 다음 대선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라며 ‘이재명 비대위’를 제안했다.

하지만 이 고문의 조기 등판 주장과 관련해 신중론도 만만찮다. 결과적으로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한 후보인데, 패한 지 몇 달 안 돼서 다시 선거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도의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 고문이 만약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하면 정치적으로 치명상을 입게 되는 만큼 도광양회(韜光養晦,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름)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민주당 출신 정치 컨설턴트는 “2007년 12월 대선에서 패한 정동영 후보가 이듬해 4월 총선에 또 출마했으나, 국민 선택을 받지 못했다”면서 “이후정 후보는 개인적으로는 국회의원을 몇 차례 더 하긴 했지만, 대선후보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이 고문으로서는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고 조언했다.

이 고문의 조기 등판 주문을 두고 당내 차기를 노리는 권력투쟁으로 해석하며 ‘음모론’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대선 패배 직후 치러지는 지방선거에 이 고문이 발을 들였다가 패할 경우 재기가 어려워질 거란 설명이 곁들여진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다음 대선후보들에게는 이 고문이 당내 최대 경쟁자일 것”이라며 “이 고문의 등판을 부추기는 목소리가 있지만 가려서 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민석 민주당 의원도 3월 13일 자신의 SNS에 “민주당의 귀한 자산이 된 이재명을 당장의 불쏘시개로 쓰지 말고 아껴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이 후보(고문)의 역할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신중해야 할 것”이라고 적었다. 안 의원은 이 고문과 가까운 인사 중 하나다.

6월, 8월 거를 경우 2년 뒤 총선 도전 가능성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3월 10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낙선 기자회견을 마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 고문에게는 당대표 도전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다. 민주당은 8월 차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다. 이 고문은 성남시장 8년, 경기지사 3년을 거친 행정가이지만, ‘0선(選)’인 까닭에 원내 경험이 없다.

당내 기반이 취약한 비주류인 이 고문이 자기 세력을 키워가는 데 당권 장악은 필수다. 문제는 차기 당권 도전 역시 이 고문에게는 ‘꽃길’이 아니라는 점이다. 차기 당권을 노리는 후보 대부분이 주류인 친 문계인데 이들이 이 고문에게 순순히 당권을 내줄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럼에도 이 고문이 전당대회에 출마해서 승리한다면 대선 패배의 후유증을 털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물론 반대의 경우라면 미래가 불투명해진다.

이에 ‘친문 스피커’ 중 하나인 손혜원 전 의원은 당대표 추대 카드를 꺼냈다. 그는 유튜브 채널 [이재명은 합니다]에 출연해 “이렇게 선거에 시달렸던 분을, 전당대회에서 뽑고 이런 것 하지 말고 그냥 당대표로 추대하자”고 제안했다. 손 전 의원은 이 전 후보가 이번에 당대표가 돼야 하는 이유에 대해 “후보 시절 공약을 지금 민주당 의석수라면 다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만일 이 고문이 6월 지방선거, 8월 전당대회를 거른다면 2년 뒤 총선이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총선 출마와 함께 전체 선거를 지휘하면서 당 승리를 이끈다면 ‘이재명 대세론’을 형성해나갈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반론이 있다. 앞으로 2년 동안 힘을 모으는 것까지는 좋지만, 굳이 원내에 뛰어들 필요가 있겠냐는 주장이다. 의회에 들어간 이상, 당론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고 그러다 보면 정쟁의 소용돌이를 피하기 어려울 거란 얘기다. 문재인 현 대통령, 윤석열 차기 대통령 모두 당선 당시 의회와는 거리를 둔 상태였던 까닭에 정쟁에서 한발 비켜서 있을 수 있었다.

김민준 소장은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당시에는 국회에서 벗어난 상태였고, 이번에 윤석열 당선인은 아예 의회 경험이 없다”면서 “원내에 들어가면 상대당과 싸워야 한다는 게 큰 부담이다. 이 고문으로서는 의회 진입 시 장점은 물론 단점까지도 잘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장동 리스크와 윤석열 지지율에 영향 받을 듯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의 거취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지지율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윤 당선인의 지지율이 올라가면 이 고문의 입지는 그만큼 좁아질 수 있다. / 사진:김상선 기자
민주당 대주주인 친문과 이 고문은 이번 대선에서 전략적 동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친문 적자(嫡子) 임을 자처했던 김경수 전 경남지사,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친문에 이 고문은 마지막 선택지였다.

민주당 사정에 밝은 정치 컨설턴트는 “국민의힘에서 김한길 전 민주당 대표,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 등이 나서 민주당 의원들을 상대로 정계 개편을 시도할 수 있다”면서 “그런 상황에서 민주당 비주류가 기존 주류인 친문에 맞서 당 헤게모니 장악에 나설 경우 이 고문이 구심점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대선 기간 내내 도마 위에 올랐던 ‘대장동 리크스’는 이 고문의 정치적 운명을 좌우할 열쇠다. 새 정부에서 이전 정권 관련 수사에 착수한다면 ‘대장동’이 첫 번째 타깃이 될 수 있다. 윤석열 당선인은 3월 13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선 관련 기자회견 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국민이 다 보시는데 부정부패 진상을 확실히 규명할 수 있는 어떤 조치라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민주당 관계자는 “대장동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만큼 차제에 의혹을 털어야 이 고문의 정치적 재기가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비상대책위원장, 지방선거 출마, 당권 도전 등 이 고문의 진로와 관련한 모든 시나리오는 윤석열 당선인을 빼고 거론하기 어렵다. 5월 10일 윤석열 정부 출범 전 수많은 여론조사가 시행된다. 이 조사들에서 윤 당선인의 지지율이 대선 득표율(48.56%)을 넘게 되면 이 고문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좁아지게 된다. 반면 윤 당선인의 정권인수위원회가 미흡한 모습을 노출하면서 윤 당선인의 취임 직후 지지율이 대선 때보다 못한 상황을 맞는다면 이 고문의 입지는 넓어질 수 있다.

530만 표차 대승에 취한 MB(이명박) 정부는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강부자(강남 땅 부자)’ 인사로 집권 초부터 비틀거렸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승리’에 지나치게 감격한 나머지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와 갈라치기 정책으로 국민 분노를 자초했다.

민주당 출신 정치 컨설턴트는 “새 정부 출범 직후에는 국민 기대감이 커지기 때문에 대통령 지지율이 대선 득표율보다 높았다”면서 “이 고문은 차분히 힘을 기르며 다음을 도모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롤 모델이 될 수 있다. 조급증을 낼 경우 되레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202204호 (202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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