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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의 평양 리포트] 윤석열 정부의 대북 화전양면 전략 

“핵 포기하면 ‘담대한 계획’ 준비돼 있다” 

‘대화 우선’ 文 정부와 달리 ‘비핵화 우선’ 원칙론으로 선회
물밑 실질적 협상 가능성 열어놓고 남북관계 주도권 노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마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거수경례하고 있다.
마침내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인 대한민국은 국정시스템보다 제왕적 권한을 가진 대통령의 판단과 결단이 우선이다. 대통령의 성공은 국민의 성공이고 대통령의 실패는 국민에게 고스란히 부담이 된다는 것은 역대 정권의 교훈이다. 0.73%의 승리로 대통령직을 수행하지만, 국정 수행에 성공을 기대하는 것은 국민 모두에게 절대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단임제 5년 국정에서 3년 반이 지나면 관료들은 차기 정부를 의식하기 시작한다. 초반 국정 수행의 무난한 출발이 중요한 이유다.

경제는 유능한 전문가 그룹들이 담당하면 관리할 수 있다. 5공 시절 전두환 대통령이 김재익 경제수석에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는 하명으로 인플레이션을 잡고 성장을 유지하던 일화를 참고하면 경제는 대과가 없다. 부동산 문제도 정치적 도그마에서 벗어나 시장을 아는 관료들에게 맡기면 된다. 하지만 외교·안보는 지도자의 국제적 감각에 기초한 정무적 판단이 중요하다. 특히 남북관계는 외교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적으로 내치도 아닌 특수 사안이다. 어떤 외교·안보 관료도 남북관계나 국제정세에서 경제 분야의 관료 역할처럼 매끄럽게 수행하기가 쉽지 않다. 북한과 4강 외교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라 외교·안보 담당자들도 결정을 지도자에게 미룰 수밖에 없다.

정권 인수위는 정부 출범을 앞두고 110대 국정과제를 최종 확정 발표했다. 향후 5년간 정부의 국정 방향을 가늠하는 정책들이다. 6대 국정 목표 중에서 5번째가 ‘자유·평화·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다. 외교·안보 정책으로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평화의 한반도를 만들겠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고, 지구촌 번영에 기여하겠습니다 ▷과학기술 강군을 육성하고, 영웅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등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약속 18’은 통일부가 추진하는 남북관계 정상화 정책으로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통해 한반도에 지속가능한 평화를 구현하는 북한 비핵화 추진(외교부) ▷남북관계 정상화, 국민과 함께하는 통일준비(통일부) ▷남북 간 인도적 문제 해결 도모(통일부) 등 세 분야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중국 국가부주석 참석


▎중국은 10일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 예전보다 격상된 왕치산(오른쪽 선글라스) 국가부주석을 파견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새 정부는 원칙과 일관성에 기초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추진하고 한·미 간 긴밀한 조율하에 예측 가능한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하며 상호주의 원칙에 따른 대북 비핵화 협상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북한 비핵화가 실질적으로 진전될 경우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을 개시하며 우방국·국제기구와 공조를 통해 국제사회의 단합된 대북정책을 주도해 강력하고 실효적인 대북제재 유지와 안보리 결의의 철저한 이행을 확보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북한 비핵화를 위한 중·러의 건설적인 역할을 견인하며 원칙 있는 대북 관여를 통해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 주민의 인권과 인도적 상황의 개선을 모색하며 북한의 비핵화 진전 시 국제사회와 함께 대북 경제·개발 협력 구상을 추진한다. 판문점 또는 워싱턴에 연락사무소 설치 등 남·북·미 3자 간 안보 대화 채널의 제도화를 추진한다.

또 남북 대화를 통해 긴장을 완화하고 상호주의와 실사구시적으로 공동 이익을 실현하며 분야별 남북 경제협력의 로드맵을 제시해 북한 비핵화를 견인한다. 남북 간 상호 개방과 소통·교류 기제를 활성화해, 북한의 점진적 변화를 유도하며 통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화하고 미래 통일국가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인수위가 제시한 외교·안보 정책은 대한민국의 외교·안보를 지키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문제는 윤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과제의 실천이 문제다. 한반도 주변 여건은 복잡 미묘하다. 대통령 취임식에 중국은 과거 참석하던 부총리급보다 고위급인 왕치산(王岐山) 중국 국가부주석이 참석했다. 역대 중국의 축하 사절로는 최고위급이다. 새 정부의 국방정책에 사드의 추가 배치가 포함되지 않은 점은 중국의 반발을 고려한 것이다.

역대 취임식 참석 전례와 비교할 때 주요국 외교사절의 격이 높아진 것은 한반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미·중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5월 20~22일 예정돼 있다. 높은 관심에 비례해서 과제도 녹록지 않다. 한·미 동맹으로 안보를 강화해야 하는 한국 입장에서 중국의 반발을 관리해야 하는 숙제도 안고 있다.

북한은 곧 7차 핵실험을 자행할 태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열병식에서 육성으로 ‘선제 핵사용’을 선언했다. ‘국가의 근본이익 침탈’이라는 모호한 기준을 ‘핵사용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핵독트린(?)을 발표했다. 방어용 입장에서 공격용으로 전환해 사용 문턱을 대폭 낮췄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외신 인터뷰에서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할 경우를 가정해 ‘대북 투자 활성화’, ‘기술 관련 중요 정보 제공’을 밝혔다. 하지만 김정은은 비핵화 요구에 화답하는 대신 ‘핵 선제사용’ 선언과 올해에만 14, 15번째 미사일 발사로 응답했다. 김정은의 공격용 핵무기 사용 발언은 핵이 대외정책의 제1 수단이라는 점을 선언한 것이다.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총 6차례 실험 때마다 국제사회의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내걸었던 ‘비핵화가 김일성의 유훈’이라는 위 장막을 걷어냈다. 우크라이나의 비핵화가 가져온 비극,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미 동맹 강화, 중국과 러시아를 등에 업고 대북제재를 무력화시키려는 평양의 의도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국제공조 통해 비핵화 압박 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월 16일 신형 전술유도무기 시험발사를 지켜본 뒤 북한군 관계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다.
해발 2200m인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만탑산 지하 2번과 3번 암반갱도는 핵실험 준비를 끝냈다. 핵탄두와 탄도미사일의 양탄과 인공위성이 결합된 북한식 ‘양탄일성(兩彈一星)’ 전략이 가시화됐다. 7차 북핵 실험은 정무적 판단만 남아 있다. 5월 20~22일 바이든 대통령 방한 전후가 D-day가 될 것이다. 변수는 제재 해제를 위한 대미 압박 타이밍이다.

침공 석 달째를 맞이하는 우크라이나 사태는 핵실험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독립변수다. 북한은 동유럽까지 전선이 확대된 미국을 압박해 대북제재를 무력화할 최적 시점을 포착하려고 한다. 일단 북한이 윤 대통령 취임 직후 7차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남북관계는 최소 6개월은 개점휴업이다. 유엔의 안보리를 통한 대북제재 압박이 중·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논의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전략자산이 한반도 상공을 선회하면서 확장억제를 과시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국제사회와 협력해 북한 경제와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계획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전 세계 어떤 곳도 자유와 평화에 대한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도 마찬가지”라며 “한반도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서도 그 평화적 해결을 위해 대화의 문을 열어놓겠다”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북한의 반발 가능성을 염두에 둔 듯 ‘경제적 보상’ 대신 ‘담대한 계획’이란 표현을 썼다. 윤 대통령의 ‘담대한 계획’에 해당하는 경제적 유인책은 이날 취임사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지만, 앞서 국정과제에서 밝혔던 ▷인프라 ▷투자·금융 ▷산업·기술 등 ‘남북 공동경제발전 계획’ 구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또 “한반도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서도 그 평화적 해결을 위해 대화의 문을 열어놓겠다”며 북한 비핵화 협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북한을 대화·협상의 상대로 보고 일단 대화의 문을 열어놓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북한을 향해 대화의 문은 열어놓되, 비핵화 협상은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추진하겠다는 게 윤 대통령이 추구하는 대북정책의 기본 방향인 셈이다.

취임사에서 ‘북한’이라는 단어는 5차례 언급됐다. 우선 문재인 정부와 차이점은 그동안 평양이 주장해온 ‘한반도 비핵화’에서 ‘북한 비핵화’로 용어가 달라졌다. 윤 대통령은 비핵화 대상을 평양으로 한정했다. 비핵화의 대상은 북쪽이지 남쪽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북한은 남한에 미군의 핵무기를 사용한 확장억제 전략을 봉쇄하기 위해 ‘한반도 비핵화’ 용어를 사용해왔다. 요컨대 ‘핵 위협하에서 비대칭 전쟁(asymmetric war)’을 위한 핵전략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 추진은 평탄치 않을 것이다. 진보 정부에서 보수 정부로의 정권 교체를 평양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북한은 보수 정부도 진보 정부처럼 민족 공조 우선 정책으로 평양을 상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남한은 정권을 담당할 정책과 인물이 교체된 터라 북한과 대화 재개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런 혼란은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절실하게 경험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 두 달 전 평양을 방문해 온갖 지원을 약속한 10·4 선언에 합의했다. 정권이 교체되자마자 북한과의 합의는 역사의 기록으로 남게 됐다. 새 정부 누구도 과거 정부의 합의를 이행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2월 25일 취임사에서 “‘비핵 개방 3000 구상’에서 밝힌 것처럼,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의 길을 택하면 남북 협력에 새 지평이 열릴 것입니다. 국제사회와 협력해 10년 안에 북한 주민 소득이 3000달러에 이르도록 돕겠습니다”라고 역설했다.

보수 정부의 북한 문제 해법은 이명박 정부나 윤석열 정부나 구조와 논리가 유사하다. 북한이 비핵화하면 1인당 국민소득을 현행 1000달러에서 10년 내 3000달러가 되도록 적극 지원한다는 선언이나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면 북한 경제와 주민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는 공약이나 대동소이하다. 반면 북한이 비핵화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딜레마에 직면한다. 역대 보수 정부가 직면하는 남북관계의 난관이다. 2008년 당시 북한은 비핵화 진전을 전제로 한 ‘비핵·개방·3000’ 구상에 대해 크게 반발했고, 결국 이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文 정부가 되살린 남북 통신선, 북한이 단절할 수도


▎2018년 1월 3일 통일부 관계자가 2년 만에 재개된 남북 판문점 연락관 통신선을 점검하고 있다. / 사진:통일부
모든 정부가 비핵화가 대북지원의 선결조건이라고 주장했다면 북한 역시 대남전략을 수정하겠지만, 5년마다 남측의 정권이 교체되면서 진보 정부는 비핵화를 슬그머니 뒤로 돌리고 비핵화를 위해서는 대화를 해야 한다는 반대 논리로 평양에 접근했다. 접근 과정에서 한·미 동맹을 약화하고 대북전단방지법 제정 등 북한의 요구를 맹목적으로 수용하다 보니 보수 정부의 대등한 남북관계 요구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화된 10년을 인정하지 않고 시계를 돌린 뒤 임기를 시작하면서 박근혜 정부까지 힘들어지지 않았느냐”며 “윤석열 정부도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문재인 정부에서 변화된 5년을 인정하고 거기서 출발하며 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수 정부가 들어서면 남북 통신망이 단절된다. 북한은 남한의 보수 정부 대통령이 취임하면 남북 간 통신선부터 단절한다. 박 원장은 윤석열 정부에 하고 싶은 조언이 무엇이냐는 언론의 질문에 “각종 소통을 중단하지 않는 것”이라며 “통신선은 단절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북 통신선은 새 정부 초기에도 북한과 연락할 사안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통신선은 북측이 관계 중단을 상징하며 단절해왔지 남한이 먼저 단절하지는 않는다. 결국 박 원장은 북한의 요구를 수용해 통신선을 유지하라는 주장인 셈인데, 보수 정부에서 수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남북 사이에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연락사무소) 통신선, 동·서해지구 군 통신선, 남북통신시험선, 청와대와 노동당 중앙위 본부 간 직통통신선, 국가정보원과 노동당 통일전선부 사이의 핫라인 등 5개 소통 채널이 존재한다. 과거 이명박 정부 때는 제재와 압박에 무게를 둔 대북정책을 추진하며 국정원-통일전선부 간 핫라인은 단절됐고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어졌다. 그러다 2018년 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 고위급 대표단으로 김여정 노동당 제1부 부장을 파견한 것을 계기로 이 핫라인이 복원된 바 있다.

대북정책의 핵심 ‘물밑 거래’ 주도권은 북한에


▎2018년 9월 5일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단장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북한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남북관계는 물 위와 물밑으로 나뉜다. 물 위 관계는 통일부 담당이며 당국 간 회담이나 대북 지원 등이 해당한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핫라인을 통해 비선에 의해 움직이는 물밑 관계가 핵심이다. 물밑 관계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50년 동안 은밀히 유지돼왔다.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직전까지 YS의 남북정상회담 추진, 2000년 DJ의 최초 남북정상회담 성사와 이후 노무현·문재인 정부까지 다섯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은 핫라인을 통한 특사 등 비선이 움직인 막후 협상의 결과다. 은밀한 거래는 특급 비밀이며 정상 간 친서로 협상을 보증한다. 간혹 박지원 국정원장의 사례처럼 사후에 불법 대북 송금 등으로 재판을 받으면서 전후 내막이 알려진 경우는 드물다.

비선의 남북관계가 다른 국가 간 외교 관계와 다른 점은 은밀성이다. 일반적으로 외교는 합법성의 견지에서 국익을 교환한다. 비공개 거래를 할 필요성도, 당위성도 크게 없다. 외교 의전대로 진행하면 된다. 그러나 서울·평양 간의 관계는 특수하다. 물밑 협상이 공개되면 당사자들이 ‘굴욕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주고받기가 이뤄진다.

언어가 동일하고 협상 관련자의 친인척을 추적하면 남북한에 모두 연고가 있다. 현금 지원도 매력적인 유인 수단이다. 남북한 핫라인으로 실시간 소통도 가능하다. 야밤의 판문점 긴급 접촉도 서울에서 2시간이면 성사된다. 청와대와 주석궁 간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래가 진행된다. 중국과 동남아 등 제3국 접촉도 전광석화처럼 이뤄진다. 경제적 지원에 목말라하는 평양 주석궁과 통일과 평화 대통령을 갈구하는 서울 청와대의 이해가 맞으면 정상회담도 대선 두 달 전에 가능하다. 평양의 종신 지도자는 5년 임기인 남측 대통령을 주무르며 대화를 갈망하는 청와대의 친서를 유도한다. 대화를 원하면 친서를 보내라는 메시지다. 남북 정상의 친서는 대부분 남측에서 먼저 보내고 북한이 응답한다. 상황이 특수한 경우에는 남측에서 친서 초안을 평양에 보내 이런 내용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외부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빅딜이 성사된다. 자연스럽게 주종(主從)의 남북관계가 형성된다.

2016년 이후 세 차례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이후 채택된 유엔 대북제재안은 물밑 거래를 어렵게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 내내 지속된 김정은의 대남 독설은 청와대의 대북 지원이 ‘푼돈 수준’으로 통 크게 이뤄지지 못한 데 대한 불만의 표시였다. 채무자 신세에 몰렸던 청와대는 임기 한 달을 앞두고 부도처리는 하지 않겠다는 평양의 14번째 친서를 받고 한숨을 돌렸다.

“체제경쟁으로 관계 전환”… 제3 대북정책 두각

문 전 대통령은 판문점 도보다리 밀담 등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히지 않고 청와대를 떠났다. 서훈 청와대 안보실장이 윤석열 정부에게 얼마나 구체적으로 채권 채무를 인계했는지는 미지수다. 전후 맥락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곧 한반도에 다시 탄도미사일이 발사되고 핵실험의 요란한 소음이 진동할 것이다. 새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은 북한의 모호한 도발 의도를 파악하는 데 에너지를 소모할 것이다. 평양은 용산의 새 정부를 압박하며 남북관계 경색의 책임을 돌릴 것이다. 문 대통령 시대 김정은의 마지막 친서는 새 정부 역시 문재인 정부의 전철을 따르지 않을 경우 후과가 있을 것이라는 5년 대남 관계의 예고편이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 과제는 북한 비핵화를 추진함과 동시에 어떻게 북한과 대화 채널을 유지하며 관리할 것인지 여부다. 북한이 비핵화를 거부한다고 해서 5년간 남북이 아프리카의 먼 국가처럼 내외(內外)하며 지내기도 쉽지 않다. 홍준표 대구시장 출마자가 대선 기간에 ‘제3의 대북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당시 홍 의원은 “남북 군사력 균형을 바탕으로 서로 불가침, 불간섭을 하고 조급한 통일론보다 동·서독의 교훈대로 각자 체제 아래서 어떤 체제가 국민과 인민을 위한 것인지 체제경쟁 정책으로 전환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특히 홍 의원은 페이스북에 “DJ(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의 햇볕 정책은 북의 핵 능력 강화만을 가져왔고, 문재인의 종북정책은 (북한의) 핵 능력 완성만을 가져왔다”며 이같이 밝혔다.

하지만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남북한이 체제경쟁에만 머물 수 없는 노릇이다. 서울을 겨냥한 다양한 전술핵무기를 투발수단인 각종 미사일과 결합해 위협하는 상황에서 먼발치에서 방관자적 입장을 고수하기는 쉽지 않다. 윤 대통령은 당초 취임사 초안에 포함된 포괄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용어인 CVID(comprehensiv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를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고 보고 삭제했다고 한다. 결국 관여(engagement)와 개입(intervention)이라는 정책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북의 친서와 도발에 대응하는 윤석열 정부의 화전양면 카드는 무엇일까.

※ 남성욱 -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 교수. 국가정보원 연구위원으로 근무한 뒤 2002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고려대 북한학연구소장을 지냈다. 2013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을 지낸 뒤 후학 양성과 북한 문제 연구에 전념해오고 있다. [김정은의 핵과 경제](2022, 박영사), [북한 여성과 코스메틱](2017, 한울아카데미), [한반도 상생 프로젝트](2009, 나남) 등 북한 문제에 관한 다수의 책을 펴냈다.

202206호 (202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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