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남성욱의 평양리포트] 文 정부의 ‘평화의 노래’에 대한 북한의 ‘화답’ 

南 대선판에 떨어진 北 ‘미사일 4종 세트’ 태양절(4월 15일)에 결정타 날아온다? 

1월에만 7차례 미사일 시험발사 도발, 핵실험 재개 가능성도 시사
“적의 칼끝이 목전에 왔는데도 평화만을 노래하는 건 직무유기”


▎새해 들어 연일 미사일 발사로 도발을 이어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경제 불황에 따른 내적 불만을 외부로 돌리고, 대북제재 정면돌파를 노리는 것으로 해석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까지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중앙포토
"범이 내려온다’가 아니고 미사일이 우수수 내려온다. 희망찬 임인년 새해를 맞이해 호랑이가 내려와 액운을 퇴치할 것으로 잔뜩 기대했는데 북쪽에서 미사일 종합세트가 날아오고 있다. 대략 4일 전후 간격으로 발사를 해대니 전문가라도 분석하기가 간단치 않다. 거기에다 각종 미사일을 ‘검수, 검사’라는 미명하에 무작위로 쏘아대니 과거 발사 기록이나 기술적 소양이 없으면 특성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1월에만 7차례나 미사일을 발사한 건 김일성, 김정일 집권 시기를 포함해도 초유의 일이다. 역대 최대 도발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1월 17일 세 번째 미사일 이후 발사가 성공했으니 더는 쏘지 않을 거라고 낙관했다. 하지만 보란 듯이 4차례나 추가로 발사했다. 앞으로 한 차례만 더 발사하면 지난해 연간 미사일 발사 횟수(8차례)와 같아진다.

북한의 3대 세습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월에 미사일 발사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김정은은 지난 1월 19일 4차 미사일 발사 이후 폭탄선언을 했다. 2018년 4월 선언했던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유예 조치(모라토리엄)를 재검토하겠다는 거다. 김정은의 변심으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을 전후해 시작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4년 만에 휴짓조각이 됐다.

우크라이나 전선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다. 동절기가 지나 땅이 녹으면 러시아의 탱크가 우크라이나 국경으로 단숨에 기동하기 어려워진다.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서방 외교관들은 슬금슬금 철수 준비에 나섰다. 시진핑 중국 주석과 손을 잡은 푸틴은 바이든과 기 싸움에 들어갔다. 푸틴이 압박을 가속하면서 워싱턴의 촉각은 동북아에만 집중할 수 없다. 북한은 국제정치의 이런 미묘한 흐름을 낚아채기 시작했다. 미국이 틈을 보임에 따라 선제 발사로 샅바 싸움을 시작했다. 북한은 코로나 발생 이후 지난 2년간 국경봉쇄로 군사력 증강 외에는 제대로 돌아가는 분야가 없다. 이미 인민 경제는 먹는 문제부터 해결하지 못했다고 김정은 스스로 고백했다. 집권 10년이 됐지만, 지난 2014년 신년사와 2016년 7차 당대회에서 약속한 ‘휘황한 설계도’는 미사일과 핵실험 외에 공염불이 됐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모라토리엄 종료 선언의 함의를 짚어보자.

우선 연초에만 7차례 미사일을 쏜 뒤 나온 모라토리엄 종료 선언은 북한의 군사도발 위협이 레드라인을 넘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군의 평가절하가 평양 군부에 의해 되치기를 당하는 데는 하루면 충분했다. 북한군의 재래식 전략이 남측보다 열세이며 경제력이 54분의 1이라서 전쟁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궤변은 핵보유국에는 맞지 않는 만큼 지양해야 한다. 지난해 1월 김정은이 선언한 국방력 발전 5개년 계획은 사면초가인 경제 분야와 달리 비약적인 성과를 달성했다. 핵과 경제의 병진 노선을 선언했지만, 경제와 민생은 내팽개치고 국방에 올인한 결과다. 김정은은 22개월 만에 가죽 잠바를 입고 여동생 김여정과 함께 미사일 발사 현장에 출동했다. 이어 군수공장을 시찰하는 사진을 [노동신문]에 내보냈다. 북한은 김정은이 1월 11일 시험발사 현장에서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대성공’이라고 선언한 극초음속미사일을 비롯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다탄두 개별유도기술 ▷핵잠수함 및 수중발사 핵전략무기 ▷군 정찰위성 등을 경쟁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북한의 군사도발 위협, 레드라인 넘어섰다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2월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작년 한 해 ‘성과’를 담은 새 기록영화 [위대한 승리의 해 2021년]을 방영하면서 김 위원장이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을 공개했다. / 사진:연합뉴스
1월 27일에 발사한 단거리탄도미사일 2발은 2019년 이후 발사된 단거리미사일 중 가장 낮은 고도로 날아갔다. 2019년 8월 2일에 쏜 대구경조종방사포(비행거리 220㎞, 정점 고도 25㎞)보다 5㎞나 더 낮게 비행했다. 결국 대남타격무기를 ‘최저 고도’로 실증 사격한 것이다. 탄도미사일은 비행고도가 낮을수록 탐지·요격 회피에 용이하다. 비행 제원은 초대형방사포(KN-25, 600㎜)나 대구경조종방사포(400㎜)일 가능성이 높다. 대구경조종방사포는 북한의 신형 전술 유도탄인 북한판 이스칸데르라 불리는 KN-23, KN-24, 초대형방사포(KN-25)와 함께 4종 세트로서 저고도 비행과 정밀 타격이 강점이다. 7차례 실험은 극초음속, 열차 발사, 북한판 이스칸데르, 순항 등 미사일 4종 세트의 실전 배치에 앞서 정확도를 검증하려는 의도다.

설 연휴 중에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인 화성-12형 검수사격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밝혔다. 검수사격은 생산 배치되는 미사일을 무작위로 골라 품질을 검증하는 시험발사를 뜻한다. 화성-12형이 실전 배치돼 있음을 확인해준 셈이다. 화성-12형은 2016년 4월 열병식에서 처음 공개됐다. 김정은은 2017년 9월 화성-12형 시험발사를 참관하면서 전력화가 실현됐다고 선언했다. 2017년 화성-12·14·15 순서로 발사된 ‘어게인 2017’이 재현된 셈이다.

합참에 따르면 북한이 고각으로 발사한 미사일의 비행거리는 약 800㎞, 정점 고도는 약 2000㎞였다. 30∼45도의 정상 각도로 쏠 경우 최대 사거리가 4500∼5000㎞다. 평양에서 미국령 괌까지의 거리가 3400여㎞인 것을 고려하면 미국 영토를 직접 공격할 수 있는 무기가 실전에 배치된 것이다. 북한군이 전쟁의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라고 자랑하는 국초음속미사일의실전 배치로 당연히 한·미 요격망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이들 미사일은 한·미 미사일 방어체계인 패트리엇(PAC-3 MSE)이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무력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게임 체인저’ 실전 배치에 미사일 방어체계 빨간불


▎1월 16일 오전 북한 화물열차가 압록강 북중우의교를 건너 중국 단둥시로 들어서고 있다. 북한은 코로나19로 인해 북·중 국경 봉쇄를 단행한 뒤 극심한 물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 사진:웨이신 캡처
둘째, 미국과 대결 국면 조성으로 인민들의 불만을 외부로 전가하는 전술이다. 지난 2년간 코로나 비상방역으로 북한 무역 규모는 10분의 1로 줄었다. 중국산 물자 수출입으로 북한의 장마당이 돌아갔는데, 단둥-신의주 물자 보급로가 차단되면서 장마당 판매대에는 물건이 사라졌다. 국가기관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1월 2년 만에 중국 단둥에서 출발한 열차가 신의주에 도착하자마자 중국 지원 물품을 확보하려는 북한 권력 기관의 아귀다툼은 북한 경제가 응급실에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북한 관리 차원에서 식료품 등 생필품과 중간재 등을 열차에 실어 보내고 있다. 열차의 화물칸 배정은 중앙당이 직접 관장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당 기관, 제2경제위원회(군수경제)와 군부 산하 무역회사에 우선 배정한다. 내각 산하 무역회사들은 배정에서 밀리고 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1월 24일 평안북도 무역기관 소속의 한 소식통을 인용해 “열차 화물을 선점하기 위해 각 기관 소속 무역회사 간부들이 치열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며 “화물열차 편으로 중국산 생필품이 매일 신의주역으로 들어오지만 한 번에 운행하는 열차의 화물칸이 13~17량으로 한정돼 있어 각 무역기관은 한 칸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암투를 벌인다”고 설명했다.

결국 인민의 불만은 코로나 비상방역을 거쳐 최종적으로 주석궁의 최고 지도자에게 향할 수밖에 없다. 가상의 적을 내세우는 국면전환이 필요하다. 외부의 적을 내세워 인민의 시선을 전환하는 전술이 구사된다. 모든 경제적 곤궁은 미제와 남조선의 군사적 압박 때문이라고 선전한다. 주기적인 대외 긴장 고조는 북한 체제의 전통적인 핵심 통치술이다. 정보가 통제된 북한 인민들은 김정은의 교묘한 통치전략에 속수무책이다. 21세기 대명천지에 3대 세습 체제가 가능한 이유다.

셋째, 도발의 상시화로 미국의 약점을 파고들어 대북제재 해제에 올인하는 전략이다. 북한 노동당은 1월 19일 김정은 총비서가 참석한 가운데 제8기 제6차 정치국 회의를 열고 “미국의 날로 심해지고 있는 대조선 적대행위들을 확고히 제압할 수 있는 보다 강력한 물리적 수단들을 지체 없이 강화 발전시키기 위한 국방정책 과업들을 포치했다”고 매체들이 밝혔다. 하지만 북한의 노림수는 워싱턴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취임 1주년을 맞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기자회견(1월 20일)에서 ‘북한’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워싱턴은 오미크론의 확산에 경기회복 등 국내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워싱턴의 국제정치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향후 북한은 푸틴의 우크라이나 위협 등으로 코너에 몰린 바이든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ICBM 발사와 7차 핵실험 시기를 저울질할 것이다. 북한은 바이든 정부의 병력 이동을 예의주시할 것이다. 바이든은 푸틴이 침공할 경우 미군 8500명을 우크라이나 주변에 배치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주일·주한 미군 등 동북아의 미군 병력 이동도 주시 대상이다. 중국은 2월 베이징 올림픽을 마친 후에는 다시 미국과 갈등 국면을 이어갈 것이다. 중국 공군은 타이완의 영공을 넘나들며 유사시 충돌에 대비할 것이다. 미국의 전선이 넓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국은 북한을 편들며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장쥔 주유엔 중국대사는 2월 4일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은 이미 미국의 손에 넘어갔다”며 미국의 양보를 촉구했다.

4월 한·미 연합훈련 맞춰 ICBM 도발 가능성


▎1월 27일 러시아군 보병부대의 BMP-3 장갑차가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남부 로스토프 훈련장에 배치돼 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계속됐지만, 미국의 관심은 온통 우크라이나 전쟁 위험에 쏠려 있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은 1월 30일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안보리 회의 소집을 요청해 성사시켰다. 회의를 마친 뒤에는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가 서방측 동료 대사들과 함께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규탄보다 ‘유연한 접근’에 방점을 찍고 있어 북한의 유엔 제재 결의 위반을 비판하는 안보리 차원의 공식 성명 채택은 결국 무산됐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한·미·일과 북·중·러 간 대결 구도가 고착화하고 있어 유엔 차원의 대응도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2월 12일 하와이에서 예정된 한·미·일 3국 외무장관 회담도 한국의 미지근한 태도로 특별한 대응책을 제시하기는 용이하지 않았다.

북한이 ‘품질검사’를 명분으로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인 화성-12형을 4년여 만에 쏘아 올리면서 이른바 ‘임계치’로 여겨지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가능성도 커졌다. 4월 15일 110회 김일성 생일(태양절)은 군사 도발의 무대가 될 수 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2월 하순 패럴림픽까지 고려하면 임계치를 넘는 도발은 4월 한·미 연합훈련 전후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국제사회 여론을 고려해 지구관측위성을 가장한 ICBM 발사를 모색할 것이다. 인공위성 발사와 ICBM 발사 기술은 동전의 앞뒤이기 때문이다.

넷째, 모라토리엄 종료 선언 이후 백마를 타고 백두산을 질주하는 김정은의 영상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종언(終焉)을 고했다.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평양과의 평화 논의는 애초부터 출발이 잘못됐다. 워싱턴과 평양의 동상이몽을 ‘운전자론’을 내세워 억지로 꿰맞추려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가면극에 불과했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 도보다리를 함께 걷고 평양 군중 앞에서 연설한 후 부부동반으로 백두산을 오르는 장면은 청와대와 국정원의 자칭 지북파(知北派)들이 연출한 화려한 볼거리였다. 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방송이 종료되고 광고가 나오면 냉정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과의 3차례 회담 역시 호기심을 자극했던 길거리 야바위꾼들의 호객행위에 불과했다. 비핵화에 대한 평양의 근본적인 인식 변화가 없는 이상 어떤 형태의 정상회담도 대북제재를 해제하거나 혹은 핵 포기를 결정하는 제로섬 게임을 할 수는 없다. 사전에 실무자들끼리 충분히 합의해 최고 지도자들의 서명만 남겨 놓지 않으면 3000여 명의 미디어가 취재하는 세기의(?) 정상회담 이벤트는 현장 양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경험상 허상이다. 이제 돈과 시간이 절약되는 메타버스 형식의 회담을 하고 합의에 가서명이 이뤄지면 대면 정상회담으로 확인해야 한다. 더는 은둔의 지도자가 66시간의 기차여행으로 한바탕 세상을 흔드는 정상회담은 사절이다.

예산 수백억원이 투입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고 우리 공무원이 총에 맞아도 묵묵부답인 4년간의 평화 쇼 미몽(迷夢)에서 깨어나야 한다. 9·19 군사합의로 비무장지대 초소(GP)는 철거됐다. 탈북자가 월북해도 무인 GP는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 군은 목전에 적이 사라지면서 싸울 의지도, 준비도 하지 않는 무장해제 수순을 밟고 있다. 허망한 평화 쇼가 막을 내리는 데 4년이 걸렸다. 임기 마지막까지 허망한 종전선언을 흔들며 외교력을 낭비하게 했지만 돌아온 것은 북한의 혹독한 대남 비판뿐이다.

세계 각국 북한 규탄하는데 우리 정부는 ‘유감’만


▎극초음속미사일 시험발사에 이어 북한의 다음 도발 수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시기는 김일성 주석의 110번째 생일(태양절)인 4월 15일 전후가 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김정은 위원장이 2021년 4월 15일 김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평양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순방 중인 이집트에서 “2018년 9·19 군사합의로 군사적 긴장이 완화됐다”며 “평화는 우리가 강하게 염원할 때 이뤄진다”고 언급했다. 약자가 평화를 노래하면 오히려 전쟁을 불러온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오죽하면 마오쩌둥조차 1975년 중국을 방문한 닉슨 전 대통령의 딸과 사위에게 “적과 싸울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사람은 평화를 주장할 자격이 없는 무능한 사람들이다”라고 일갈했겠는가.

비핵화 논의보다는 핵과 미사일의 고도화에 대한 철저한 방어체계를 재구축해야 할 시점이 다가왔다. 2분이면 서울 한복판에 떨어지는 미사일이므로 공격 조짐을 보이면 선제 타격은 불가피하다. 미사일에 대응하는 3축 방어체계 강화를 전쟁광으로 매도하는 것은 대중 선동전술이다. 북한의 계속된 미사일 발사에 대해 청와대는 서훈 실장 주재로 1월 27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긴급회의를 개최했지만, 역시 “매우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히는 데 그쳤다. 반면 외국에서는 규탄이 이어진다. 유럽연합(EU)에 이어 독일, 스웨덴 등이 1월 27일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 도발을 규탄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북한이 도발을 거듭하자 미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유럽과 브라질, 아랍에미리트(UAE), 알바니아 등도 규탄 행렬에 동참했다. 반면, 북핵 위협의 당사자인 우리 정부는 ‘도발’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정부는 유엔 안보리 규탄 성명 등에도 불참했다.

북한은 설 연휴가 시작된 1월 30일에는 최고 고도 2000㎞에 달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문 대통령은 1년 만에 NSC 전체회의를 소집했지만, 결론은 특유의 알 듯 말 듯한 발언만 보도됐다. 문 대통령은 “유엔 안보리 결의에 위배되는 행위”라며 “중거리탄도미사일 발사라면 모라토리엄 선언을 파기하는 근처까지 다가간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기면 파기지 근처까지 다가간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에 여전히 미련을 못 버린 것일까?

한반도 평화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은 모든 판돈을 평양에 걸었던 청와대에 있어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취임 100일 회견에서 “ICBM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 무기화하는 것”을 ‘레드라인’으로 규정한 바 있다. 7번째 중거리미사일이 ICBM급으로 밝혀지고 ICBM이 태평양 상공을 비행한다면 문 대통령으로서는 퇴임 후에도 대북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과 함께 무력감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 미사일은 남한의 대선판에도 떨어지고 있다. 평양의 미사일 발사에 밤잠을 설치는 사람 중 하나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다. 당초 베이징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정상회담 등으로 ‘평창 어게인’을 기획했던 청와대와 이 후보에게 연이은 미사일 발사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됐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는 선제타격이 불가피하다며 포문을 열었다. 반면 이재명 후보는 국민 불안감을 조장한다고 맹비난하면서 극명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이 후보는 “마치 화약고 안에서 불장난하는 어린이를 보는 거 같은 불안감이 든다”고 우려했다. 미사일 발사 횟수가 늘어나면서 중도층, 특히 공정과 상식에 민감한 ‘이대남’들은 북한의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덩달아 상대적으로 북한에 호의적인 이 후보에 대한 거부감이 늘어나자 공약을 긴급 수정하며 파편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 1월 11일 “대선을 앞둔 시기에 북한이 연속해 미사일을 시험 발사한 데 우려가 된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윤 후보는 “대북 관계를 그때그때 따라 일시적인 ‘평화 쇼’ 같은 식으로 진행해서는 남북관계에 진전이 없다”고 청와대를 비난했다. 이 후보는 북한의 도발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더더욱 지속적인 대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당선되면 금강산 관광이나 남북 철도·도로 연결도 재추진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미사일 발사에 빛이 바랬다. 중도층의 지지가 흔들리자 이 후보는 청와대 대북정책과 차별화 전략으로 급히 우회전 깜빡이를 켰다.

1월 27일 6번째 발사 이후 이재명 후보는 특유의 변신 전략으로 순식간에 방향을 틀었다. 대북 강경 메시지를 내며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과 거리를 두는 데 주력했다. 북한의 연쇄 미사일 발사를 ‘도발’로 규정한 데 이어 ‘내정 간섭’, ‘국론 분열용’ 등 강한 비판을 이어가며 현 정부의 대응과 결을 달리했다. 이는 ‘불안한 안보관’을 가졌다는 보수는 물론 중도층의 합리적인 우려를 씻어내기 위한 외연 확장성 전략으로 읽힌다. 이 후보는 1월 28일 “안보에는 여야가 있을 수 없다는 차원에서 대선후보분들에게 공동선언을 제안했는데 함께해주길 다시 한번 부탁한다”며 야당 후보들에게 전날 자신이 제안한 대북 공동선언에 참여하라고 독촉하기도 했다.

대선판 흔드는 북한의 미사일, 조바심 내는 여권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도발에 여야 대선후보의 시각차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2월 3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방송 3사 합동 초청 토론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이 후보는 경기 김포의 해병대 2사단을 찾아 “하필 대한민국 대선이 이뤄지는 시점에 집중적으로 미사일을 발사했다”며 “이는 국론을 분열시키고, 한반도의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강력히 규탄한다”고 했다. 또 “이런 군사적 도발은 자중해야 한다. 대통령 선거에 매우 안 좋은 악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대한민국 내정에 영향을 주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생기고 있다”고도 했다. 이 후보는 북한이 1월 27일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하자 ▷한반도 긴장 조성행위 중단 ▷대선 개입 중지 촉구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대화 재개 협력 등을 담은 대선후보 ‘대북 공동선언’ 구상을 내놓기도 했다.

북한의 미사일이 쏟아지면서 후보들 간에 대응책을 놓고 불이 붙었다. 대응체계에 대한 여야 후보의 차별화도 가속하면서 뒷순위로 밀렸던 안보 분야가 후보자 TV토론에서 단숨에 대표 주제로 떠올랐다. 윤 후보는 북한 미사일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수도권 방어를 위한 사드 추가배치를 공약했다. 반면 이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사드를 수도권에 배치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수도권에 날아오는 저고도미사일에는 한국형방어체계로도 충분하다고 반박했다. 심지어 수도권 사드 배치 장소를 둘러싸고 지역 갈등을 유발하는 발언까지 나왔다.

갑자기 후보들이 미사일 전문가가 됐다. 평소 외교·안보에 문외한이었던 여야 후보들이 안보 현장을 찾고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학습에 집중하게 된 것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평양의 미사일 덕택(?)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북한 변수가 대선 토론판에 일자리 및 부동산 등과 함께 3대 중심 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현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의한 남북 정상 화상 회담 등 베이징에서 ‘어게인 평창’으로 중도층을 공략하려는 이 후보 측 복안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득점은 고사하고 평양 돌발 변수로 표를 깎아먹고 있으니 초박빙 선거에서 속이 타들어갈 거다. 북한의 변심으로 오히려 역풍을 맞고 있는 격이다. 이 후보 입장에서는 원군이 될 줄 알았던 평양이 악재로 작용한 만큼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다.

초박빙 선거에서 북한 변수는 최대 3%의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김정은은 남한의 지도자가 누가 당선되든 미국과의 빅게임에서 승자가 되지 않으면 대북제재가 해제될 수 없다는 생각이다. 평양은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와 다양한 거래를 해봤지만, 남한 단독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마침내 야당 후보가 당선돼도 강공으로 굴복시킬 수 있다는 전략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임기 말까지 정상회담 의지만 불태우는 문 대통령

문 대통령은 임기 종료를 3개월 앞두고 세계 7대 통신사와 합동으로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남북정상회담 방식까지 북한에 맞출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임기 마지막까지 정상회담에 대한 성사 의지를 부각했다. 최근 북한이 무력도발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지만, 여전히 정상회담 등 과감한 톱다운 대화를 통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재가동 가능성을 타진해야 한다는 게 문 대통령의 판단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이제 막을 내렸다. 오히려 정책의 시작부터 종결까지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복기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여야 후보가 모두 법조인, 지자체장 경력만 보유하고 있어 외교 안보에 대한 이해가 낮을 수밖에 없다. 동네 구청장 선거 공약 수준의 대선판에서 역설적으로 북한의 미사일 세트 발사로 후보자들이 외교 안보에 대한 소양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 아무리 외교 안보 참모들이 보고서를 올려도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 내린다.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 책상 위에는 ‘The buck stops here’라는 문구가 새겨진 명패가 놓여 있었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뜻이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고독한 결정은 온전히 대통령의 몫이다. 사전에 철저히 준비되지 않으면 2차 세계대전 직전 히틀러의 팽창에 대해 유화정책을 주장한 영국의 체임벌린 총리처럼 우왕좌왕하게 된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은 참으로 결정해야 할 부분이 작지 않다. 지도자에겐 전쟁을 막아야 할 소명이 있지만, 적의 칼끝이 목전에 왔는데도 평화만을 노래하는 건 직무유기다.

-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202203호 (2022.02.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