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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전문기자의 레전드를 찾아서(42)] 86 멕시코 월드컵 이끈 김정남 감독 

“허정무는 마라도나를 제대로 물었고 박창선, 월드컵 첫 골로 자신감 얻었죠” 

아시아 두 장뿐인 티켓 얻고 세계 강호 상대로 첫 골, 첫 승점 올려
고3부터 국가대표 수비수 활약, 도쿄 올림픽 참패로 겸손 깨달아


▎축구공을 들고 포즈를 취한 김정남 감독. 올해 팔순을 맞았지만 그는 한 치도 흐트러짐 없이 여전히 건강하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아시아의 호랑이’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은 오는 11월 개막하는 2022 카타르 월드컵에 출전한다.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에 서는 것은 아시아 최초이며 브라질·독일·이탈리아·아르헨티나·스페인에 이어 세계 6번째다.

한국 축구 10회 연속 월드컵 출전의 출발점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이다. 당시에는 본선 진출 팀이 지금처럼 32개국이 아니라 24개국이었다. 아시아에 배당된 본선행 티켓(현재 4.5장)도 두 장뿐이었다. 이 바늘구멍을 뚫고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이후 32년 만에 한국을 멕시코로 이끈 명장이 김정남 감독이다. 김 감독은 본선에서 아르헨티나·이탈리아 등 세계 최강 팀과 맞붙어 월드컵 첫 골, 첫 승점을 올리며 선전했다.

1960~1970년대 김호와 함께 아시아 최고의 수비수로 명성을 떨쳤던 그는 프로축구 명문 울산 현대를 9년 동안 이끌었고, 대한축구협회 전무와 프로축구연맹 부총재 등을 역임하며 행정가로도 역량을 발휘했다.

지난 1월에 80번째 생일을 맞았다는 김정남 감독을 7월 14일 중앙일보 J빌딩에서 만났다. ‘축구계의 신사’라는 별명답게 그는 까맣게 염색한 머리를 단정히 빗어 넘긴 평소 모습 그대로였다.

그렇게 건강하고 정정하신 비결이 뭡니까?

“평생을 운동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몸 관리하는 걸 나름대로 알고 있죠. 이젠 축구를 못하니까 많이 걷고 맨손체조도 하고요. 여기 중앙일보 건물 오는데도 시청역 지하철에서 내려 한참 계단을 걸어 올라왔습니다. 오늘 하루 운동 다 했어요. 하하.”

1m70㎝ 단신에도 수비진 지휘


▎86 멕시코 월드컵 당시 벤치 모습. 왼쪽부터 허정무, 정종수, 조영증, 김호곤 코치, 김정남 감독.
요즘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신데 어떤 일을 하시나요?

“청소년서울연맹 총장을 맡은 지 6개월 됐습니다. 청소년들의 특별활동과 의미 있는 신체 활동을 돕는 일을 합니다. 축구도 하고 미술관 탐방 같은 것도 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좀 위축됐다가 지금은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1960~1970년대 한국의 김호-김정남은 아시아 최고 수비수 콤비였죠?

“제가 원래는 공격수 출신인데요, 한양공고에 진학했더니 좋은 선수들이 많아서 후보로 밀렸다가 풀백 자리가 비어서 수비로 가게 됐죠. 사이드백도 하고 스위퍼 역할도 하고 미드필더로도 뛰었습니다. 김호 선수는 키가 큰 상대 센터포워드를 막는 역할을 했고, 키가 크지 않았던 저(1m70㎝)는 그 뒤에서 커버를 하면서 수비 전체를 조율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우승팀 이탈리아의 중앙수비수 칸나바로(1m76㎝)를 연상시키는데요, 키가 작은데도 수비 범위가 넓고 수비수들을 지휘했잖습니까?

“수비수가 신장이 크면 좋죠. 그런데 신장이 크면 순발력이 떨어지고 볼 분배 같은 기술적인 부분도 부족할 수 있거든요. 특히 현대 축구는 수비에서부터 전개돼나가는 볼의 속도와 정확도를 중요시하잖아요. 공격하기 좋은 쪽으로 방향을 선택하는 것도 수비의 역할이고요.”

한국 축구가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면서 축구팬들 사이에서 ‘몇 년도 월드컵 멤버가 최강이었나’ 하는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가장 많은 표를 받은 게 86 멕시코 대회다. 공격수 차범근·최순호·변병주·김종부, 수비수 정용환·박경훈·조영증이 포진했다. 특히 미드필드는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스타들의 경연장이었다. 조광래·허정무·박창선이 그들이다.

당시에는 월드컵 본선 진출 팀이 24개국이었다. 그만큼 지역 예선을 뚫기도 어려웠고, 본선에 올라도 모두가 ‘죽음의 조’였다. 특히 한국이 속한 조에는 강력한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 동유럽 강호 불가리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86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 예선 때는 감독이 아니셨죠?

“저는 코치였는데 1차전에서 말레이시아한테 지면서 문정식 감독님이 자진사퇴 하시고 그 자리를 제가 맡게 됐어요. 1패를 안고 시작하는 바람에 별로 희망이 없어 보였죠. 그런데 당시에 선수들이 상당히 좋았어요. 열정도 있고 근성과 집중력도 뛰어났으니 제가 운이 좋은 감독이었습니다. 첫 경기 패배 이후 한 번도 안 지고 월드컵 티켓을 따냈어요.”

36년 만에 본선에는 올랐는데 워낙 강팀들을 만났잖아요. 어떤 준비를 하셨나요?

“저는 사실 걱정이 많았어요. 제가 1964년 도쿄 올림픽에 출전해서 참패한 트라우마가 있거든요. 체코한테 1-6으로 대패하고 브라질에겐 0-4로 졌어요. 아랍연합공화국(지금의 이집트)에는 0-10으로 져 망신을 당했죠. 그런데 월드컵에서 만날 팀은 올림픽 때와 상대도 안 될 정도로 강팀이니 불안감이 엄습한 건 어쩔 수 없었어요. 어쨌든 지더라도 망신당할 정도로 참패는 당하지 말자는 각오로 준비했습니다.”

아르헨전 박창선 골로 자신감 얻어


▎86 멕시코 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마라도나를 거칠게 다루고 있는 허정무. 외신은 이 장면을 ‘태권축구’라고 했다.
첫 경기 아르헨티나전에선 마라도나에게 도움 해트트릭을 허용하며 1-3으로 졌지요?

“경기 시작하자마자 두 골 먹고 후반전 들어가자마자 또 한 골 먹어 0-3 되니까 ‘이러다 또 0-10 되는 건 아닌가. 이거 큰일 났다’ 싶더라고요. 그런데 선수들이 그때부터 분발하기 시작했어요. 경기하면서 자꾸 좋아져요. 박창선 선수가 중거리슛으로 득점하면서 팀이 다시 활기를 띠게 됐죠. 경기 끝나고 ‘우리도 하면 된다. 세계의 벽이 그렇게 높은 건 아니네’ 하면서 자신감을 갖게 됐어요.”

마라도나한테 전담 마크맨을 붙이지 않았습니까?

“당연히 붙였죠. 마라도나만 막으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김아무개 선수가 스피드도 있고 힘도 좋고 대인 마크 능력도 좋아서 괜찮겠다 싶었죠. 그런데 이 선수가 너무 긴장해서 몸이 제대로 움직이질 않는 겁니다. 전반 초반에 한 골 먹고 나서 안 되겠다 싶어서 허정무 선수와 교체했죠.”

허정무가 마라도나를 가격하는 ‘태권 축구’ 사진이 유명한데요, 특별한 지시를 하셨습니까?

“그런 건 아니고 허정무 선수 자체가 기질이 있어요. 별명이 진돗개라서 한번 물어라 하면 제대로 물 것 같아서 맡겼는데 물긴 꽤 물더라고요(웃음). 물론 마라도나가 어시스트 3개를 했지만 다른 선수들도 세계적인 수준이어서 굉장히 힘든 상대였죠. 한 가지 기술적인 부분을 말하자면 측면에서 올라오는 크로스입니다. 볼이 바깥으로 나갔다 싶은데 안으로 휘어 들어오고, 안으로 들어간다 싶은데 바깥으로 휙 빠져나가는 겁니다. 골키퍼와 수비가 당황할 수밖에 없었죠. 볼의 속도와 회전량이 그동안 상대하던 동남아 축구와는 비교가 안 되는 겁니다.”

상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는 거네요?

“그렇죠. 우리는 상대 선수 이름도 몰랐고, 아르헨티나가 경기하는 걸 본 적도 없었거든요. 대회마다 각각 특징이 다른 공인구가 있는데 저희는 월드컵 직전까지도 공인구로 연습하지 못했어요. 코치는 김호곤(현 수원 FC 단장) 하나뿐이고 심지어 골키퍼 코치도 없었죠. 대표팀에 스태프 20여 명이 붙는 요즘과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한 겁니다.”

당시 세계 최고 리그인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던 차범근이 합류하느냐가 큰 이슈였다. 설왕설래 끝에 합류는 했지만 본선에서는 기대만큼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아무래도 차 선수가 대표팀에서 나간 지 꽤 오래됐고 유럽 축구에 숙달된 선수였죠. 한 달 전에 합류했는데 함께 훈련하는 시간도 얼마 안 됐고 차범근 스타일과 우리 팀 스타일이 금방 융화되지는 못했어요”라고 회고했다. 그렇지만 상대가 차범근을 굉장히 경계하고 밀착마크 하는 바람에 다른 선수들이 숨 쉴 여유가 생겼고, 차범근이 움직이는 과정에서 공간이 많이 생겼다고 김 감독은 설명했다.


▎차범근의 대표팀 초기 모습. 86 멕시코 월드컵을 앞두고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던 차범근의 합류 여부가 이슈였다.
박창선 선수의 월드컵 본선 첫 골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당시 상황 좀 설명해 주시지요?....

“원래 박창선 선수가 중거리슛 시도를 많이 하고 골도 곧잘 넣었어요. 워낙 임팩트가 좋았지만 맞는 순간 골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원래 큰 경기에서 골을 넣는 선수는 평소에 골을 넣겠다는 집념이 강한 선수입니다. 우리가 4골을 넣고 7골을 먹었으니 나름대로 선전한 거죠.”

비 오면 잔디구장 사용 못해 수중전서 고전


▎86 멕시코 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박창선이 한국 월드컵 사상 첫 골을 터뜨린 뒤 감격에 겨운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불가리아와의 2차전은 우중전이었죠? 김종부의 동점골이 터져 월드컵 첫 승점(1점)을 얻은 경기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비가 오면 잔디가 훼손된다는 이유로 잔디 운동장을 못 쓰게 했어요. 월드컵을 앞두고 훈련 중인 대표팀도 예외가 아니었죠. 1차전 결과로 자신감이 생겨서 ‘불가리아는 한번 해볼 만하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비가 엄청나게 오더라고요. 비 맞으면서 잔디 구장에서 축구 경기를 해본 적이 거의 없으니 우리 선수들은 자꾸 넘어지고 중심 이동도 잘 안 되고 패스도 부정확하고, 체력 소모도 심했죠.”

마지막 이탈리아전이 가장 아쉬웠고, 편파 판정으로 화도 많이 난 경기였죠?

“사실은 좀 억울한 부분이 있었어요. 그렇다고 지금처럼 VAR(비디오 판독 시스템)이 있지도 않았으니 무조건 심판 판정이 최종 결정이었죠. 한 골만 더 넣거나 한 골만 덜 먹었어도 조 3위로 16강에 올라가는 경기였어요. 경기 끝나고 이탈리아 선수들이 우리를 칭찬했어요. 최순호의 골은 예술이었고, 막판 최순호의 패스를 받아 허정무가 슬라이딩 슈팅으로 골 넣은 것도 멋진 장면이었죠.“

2000년부터 9년간 프로축구 울산 현대를 맡으셨는데요, 당시 이천수가 대단했죠?

“천수는 항상 자신이 있었어요. 우리나라는 아직도 선후배 위계가 있고 연령을 중시하는데 천수는 그런 게 없었죠. 경기장에 나가면 자기가 선배예요. 킥오프 전에 다들 모여 파이팅 할 때 천수가 ‘야야, 전반전만 버텨. 후반에 내가 때려 넣을 테니까’라면서 아예 대놓고 반말을 해요. 저랑 있을 때는 훈련도 열심히 했죠.”

차범근·박지성·손흥민 중 최고가 누구냐는 논쟁이 아직도 있죠?

“글쎄요. 결과로만 따진다면 유럽 최고 리그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득점왕이 된 손흥민이 아닐까요. 손흥민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인 선수가 됐는데, 기술적인 면에서는 왼발과 오른발을 그 정도로 잘 쓴다는 건 누구도 흉내를 못 내요. 특히 볼 관리 능력이 뛰어나요. 전속력으로 가면서도 볼이 몸에서 떨어지지 않죠.”

손흥민 선수 부친을 만난 적이 있다면서요?

“제가 프로축구연맹 부총재를 하고 손 선수가 독일에 있을 때였어요. 프로축구 올스타전을 앞두고 제가 손 선수를 만나 ‘축구팬들이 너를 좋아하니 관중에게 인사하고 손 한번 흔들어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더니 손 선수가 ‘전 못해요. 아버지에게 물어보세요’ 하는 겁니다. 아버지 손웅정씨가 운영하는 춘천의 축구 교실까지 달려가서 부탁했는데 ‘걔는 아직 선수가 아니에요. 그런 거 못합니다’라면서 일언지하에 딱 자르더라고요.”

카타르 월드컵 8강까지 노려볼 만해


▎김호곤(왼쪽) 86 멕시코 월드컵 당시 코치, 조중연(오른쪽) 전 대한축구협회장과 축구 원로 모임에서 만난 김정남 감독.
카타르 월드컵에 출전하는 대표팀에는 손흥민의 단짝인 스트라이커 황의조 선수도 있습니다. 황 선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황의조 선수는 신장과 헤딩 슈팅 능력이 좋아요. 문전에서 득점력도 뛰어납니다. 지난 6월 브라질 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골 넣는 장면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수비가 밀착마크 하는 상황에서 수비수를 등지고 돌아서면서 슈팅하는 건 정말 어려운 기술이죠. 황 선수가 조금만 더 자신감을 갖고 움직여준다면 토트넘에서 손흥민-케인 콤비처럼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손흥민-황의조 라인이 큰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봅니다.”

이승우 선수는 유럽에서 K리그로 복귀해 뛰어난 활약을 하고 있는데도 벤투호에 뽑히지 않았거든요?

“이승우 선수도 좀 기질이 있는 선수죠. 성격이 평범한 선수는 아니에요. 축구에서 굉장히 중요한 돌파력을 갖고 있고 슈팅 감각도 뛰어납니다. 유럽에서 많은 걸 배워서 왔고 아직 나이도 젊으니까 앞으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아시아 최고 수비수’ 김정남의 뒤를 이을 선수로는 김민재를 꼽을 수 있겠죠?

“김민재는 워낙 잘하는 선수죠. 신장이 큰데도 순발력이 있고 볼을 분배하는 능력이나 경기를 풀어나가는 완급 조절에도 능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팀들이 관심을 가질 만합니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리나라의 현실적인 목표는 어디까지 잡을 수 있을까요?

“8강까지는 욕심을 내볼 만하다고 봅니다. 우리가 가나·우루과이·포르투갈과 한 조인데 그 팀들이 세계 최강은 아니잖아요. 아까 얘기했던 손흥민·황의조·김민재 같은 선수들이 힘을 합치면 우리도 해볼만하지 않겠나 싶어요. 그리고 남의 나라 선수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수아레스(우루과이)나 호날두(포르투갈) 같은 선수들은 이미 전성기도 지났잖아요.”

벤투 감독에게 대표팀 선배 감독으로서 조언해주고 싶은 게 있나요?

“따로 만나서 얘기할 수는 있지만 미디어를 통해서 얘기하는 건 조심스럽습니다. 왜냐하면 그분 축구 스타일과 제가 추구하는 스타일이 다를 수 있거든요. 다만 한국 대표팀이 좀 더 재미있고 골을 많이 넣는 축구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어요. 지고 있는데도 공격 루트를 찾기 위해 뒤에서 볼을 빙빙 돌리는 건 좀 아니다 싶고요. 어떻게든 최단 시간에 슈팅을 할 수 있는 지역으로 공을 갖다놓는 게 중요합니다. 2002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안정환과 설기현이 넣은 골도 정교한 패스 플레이로 만든 게 아니거든요. 벤투 감독이 ‘참 이상한 사람이네. 축구를 했다는 분이 현대축구 흐름도 모르고…’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제 말을 들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어요. 정교하게 찬스를 만들어가는 것도 좋지만 어떻게든 빨리 상대 문 앞으로 가야 득점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저는 주장합니다.”

한국 축구가 세계 정상으로 가기 위해 버려야 할 게 뭘까요?

“최근에는 연령별 대표팀 경기를 하면 한국이 일본에 밀려요. 일본은 유소년부터 단계적으로 기본기를 쌓아가는 훈련을 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이기는 축구에만 집착하고 있어요. 특히 한국의 어린 선수들은 창의적이고 과감한 플레이를 잘하지 못합니다. 시키는 대로 하는 주입식에 익숙해져 있죠. 이승우같이 과감한 플레이를 하면 칭찬을 하는 게 아니라 야단을 치죠. 설령 과감하고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다가 실수하고 볼을 뺏기더라도 ‘잘했어. 이번엔 뺏겼지만 다음엔 네가 상대 제치고 골도 넣을 수 있어’라고 격려하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공 빙빙 돌리지 말고 빠르게 공격해야


▎울산 현대 시절 이천수가 프로 경기에서 골을 터뜨린 뒤 환호하고 있다. 김정남 감독은 악동 이천수를 잘 다룬 것으로 유명했다.
김 감독이 태어난 곳은 평안북도 신의주 근처에 있는 자성이라는 시골 마을이다. 서울로 내려와 힘들게 축구를 해 명문 한양공고에 진학했고, 고3 때 국가대표에 뽑힐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레전드 위치에 오른 비결을 묻자 그는 “성격이죠”라고 답했는데 그건 삶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었다.

“고등학생 때 비행기 타고 해외 경기를 다니고, 우승해서 귀국하면 브라스밴드가 연주하며 맞아줍니다. 자만하고 건방져질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참패하면서 현실을 깨닫게 됐죠. ‘아, 세상에는 축구 잘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구나. 나는 선수도 아니구나’ 라고요. 그러면서 더 노력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했죠.”

그는 나이 어린 후배에게도 반말하지 않는다. 늘 조심조심 살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를 ‘장수(長壽) 형 장수(將帥)’로 만든 비결이 이게 아닐까 싶었다.

※ 정영재 - 중앙SUNDAY에 ‘스포츠 오디세이’ ‘스포츠다큐-죽은 철인의 사회’를 연재하고 있다.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을 역임했고, 2013년 이길용 체육기자상을 수상했다. 연세대 국문학과,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공부했고 한국체대에서 스포츠산업경영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튜브 방송국인 중앙UCN의 대표를 겸하고 있다.

202208호 (2022.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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