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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초대석] ‘감사 나눔’ 실천하는 박점식 천지세무법인 회장 

“힘든 위기 와도 ‘감사경영’으로 극복합니다” 

나권일 월간중앙 편집장
13년 전 시작한 하루 1통 감사편지 쓰기, 전 직원으로 확대해 회사도 성장
도움 필요한 곳 찾아 기부 실천, 모친 사랑 담은 1000여 통 편지 묶어 책 출간


▎박점식 천지세무법인 회장. 천지세무법인 임직원들의 감사편지 쓰기 운동은 ‘감사경영’의 성공사례라고 할 만하다.
7월 6일, 서울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 내에 있는 천지세무법인을 찾았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종이로 만든 큰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 잎사귀 모양의 종이 편지들이 눈에 띄었다. 직원들마다 자신이 감사하게 생각하는 내용을 기록해 붙여놓았다고 했다. “서OO 세무사님 감사합니다. 가끔 아침에 샌드위치나 먹을 꺼 사오시면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스 정리할 때나 무거운 짐 나를 때 부탁드리면 매번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보다 먼저 입사해서 제게 많은 도움을 주셨던 것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조직생활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부여하고, 유머러스한 분위기로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천지세무법인은 ‘감사경영’으로 성장한 회사로 알려져 있다. 박점식(67) 회장의 드라마틱한 삶과 인생철학이 이뤄낸 결과라고 했다. 그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기 위해 박 회장과 마주 앉았다.

13년째 하루도 안 빼고 감사편지 일기로 작성

감사편지글 형식의 일기를 10여 년째 쓰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2010년 3월부터 쓰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전자세금계산서가 보편화됐지만 10여 년 전 그때는 막 도입을 앞두고 있었어요. 변화된 환경에 맞춰 일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절박감으로 여기저기 공부모임도 다녔는데, 뾰족한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러다 어떤 연구논문을 봤는데, 뇌과학자와 긍정심리학자가 하는 말이, 감사일기를 하루에 5개씩 3개월 동안 쓰면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나의 변화를 느낄 정도가 된다는 겁니다. 감사일기를 쓰는 사람의 뇌를 촬영했더니 뇌에 변화가 생기면서 사고와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뀌는 걸 포착한 거예요. 아하, 이거다! 그때부터 제가 감사편지를 일기처럼 쓰기 시작했어요. 올해로 13년째 하루도 안 빠지고 쓰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앱을 열어서 작성하는데, 지금도 하루에 10개 이상씩은 씁니다. 그날 일어난 인상적인 일이나 상황을 적고 마지막에 감사합니다! 이렇게요. 안 좋은 일이 있었어도 더 나쁜 일로 당하지 않아서 감사하다고 쓰죠.”

모든 일에 감사하는 초긍정 마인드시군요. 13년을 매일 쓰셨으면 밥 세끼 먹는 것처럼 생활화되셨다고 봐야겠네요?

“그렇죠. 전날 과음했다거나 아침에 일이 있어서 바쁘면 미처 못 쓰잖아요. 그러다 오후가 되면 뭔가 허전해요. 아! 감사일기를 빠뜨렸구나!(웃음) 이제는 일상이 돼서 몸이 바로 반응을 하죠. 감사를 알지 못했다면 얼마나 제 인생이 허망했을까! 전에는 제가 성격이 만만치 않아서 아마도 직원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윗사람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감사일기를 쓰면서 제가 미소도 늘었고 ‘사람이 달라졌다’는 소리도 듣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사)감사나눔연구소 활동에도 관여하시고, [감사나눔신문]도 발행되고 있더군요. 회장님께서 설립하신 건가요?

“아닙니다. 그때 감사일기를 시작하면서 어떤 분을 우연히 만났는데 저보고 [감사나눔신문]을 아느냐고 물어요. 찾아봤더니 저보다 2달 앞서서 그런 이름으로 신문을 창간했더라고요. 주위에 우군들을 만나게 된 거죠. 함께하면 시너지가 생기잖아요. 그 후에 저도 [감사나눔신문]에 수차례 원고 기고도 했고, 감사나눔연구소 일도 돕고 있습니다.”

천지세무법인 임직원들도 감사편지를 쓴다지요?

“제가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회사 인트라넷 게시판에 공유를 했어요. 그러면 상대방의 일기를 읽어보게 되잖아요. 동료 직원에 대한 감사일기를 써서 공개하면 ‘누가 나에 대해서 썼네!’ 놀라게 되고, ‘아! 이 사람이 나를 이렇게 생각했구나!’ 하면서 자기도 감사한 내용을 쓰게 되죠. 그런 고마워하는 마음이 업무로까지 확장돼요.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면서 업무 개선으로 이어지는 거죠. 그렇게 감사편지를 쓰다가 ‘100 감사’로 발전하게 됩니다. 한 사람에 대해 감사할 일 100가지를 쓰는 겁니다. 처음엔 주로 사랑하는 부모님이나 배우자에 대해 100 감사를 씁니다. 더 욕심을 내서 제가 직원들에게 고객에 대한 100 감사를 쓰자고 했어요. 그렇게 써서 [감사 나눔신문]에 연재도 했어요”

감사 나눔 운동, 회사 경영에도 큰 보탬


▎박 회장은 직원들과 함께하는 감사 나눔을 좋아한다. 업무 개선과 회사 경영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 사진:천지세무법인
감사일기를 쓰고 나눔을 하면서 직원들도 서로 잘 소통되고 회사도 성장하는 것을 경험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업종이 고객을 상대하다 보니까 그분들이 저희에게 불만도 제기하게 되잖아요. 사람은 누구나 잘못하고 실수할 수 있는데, 고객이 항의하면 ‘죄송합니다. 실수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하면 풀리는 거죠. 직원들과 워크숍을 열고 감사일기를 쓰기 전과 그 후에 자기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서로 얘기를 하는데, 그 내용이 참 재미있더라고요. 한 직원은 고객에게서 불만사항이 접수되면 이제는 감사편지를 써서 드린다고 해요. ‘죄송합니다.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러면 고객의 화가 누그러질 수밖에 없죠. 저희 업계가 통상 거래처 수금이 늦거든요. 업계 평균으로 보면 보통 5개월 정도 밀려 있는 게 예사인데, 우리 회사는 그걸 1개월 반까지 줄였어요. 아무래도 고객과 잘 소통하다 보니 우리 회사에 더 신경 써주게 되는 거죠. 알고 보면 우리 회사 영업도 고객이 해주는 거예요. 내가 잘해주면 고객이 여기 괜찮다고 남들에게 우리 회사를 소개해주는 겁니다. 그래서 고객과 접점에 있는 직원들의 감사하는 마음이 매우 중요하죠.”


▎천지세무법인 감사 페스티벌 장면. 다양한 사례를 발표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갖는다. / 사진:천지세무법인
직장에서 효과를 봤으면 가정이나 사회로 확대하는 것도 가능하겠네요?

“맞아요. 감사 나눔을 잘하는 직원들은 그걸 가정으로 가져가서 가정의 평화를 만들어내죠. 아버지들이 겉으로는 근엄한 척하지만 집에서 따돌림당하는 이들도 있잖아요. 이런 문제도 감사 나눔을 통해서 풀어낼 수 있어요. 어느 대기업 직원은 아들이 학교 공부는 안 하고 말썽만 피워서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아들에게 감사편지를 하루 5개씩 1년 내내 썼답니다. 처음엔 아들이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깨우치는 바가 있었던지 1년 반 만에 완전히 다른 아이가 됐다고 해요. 감사편지로 이혼 직전에 이른 부부가 재결합한 사례도 있어요. ‘저 사람이 나를 저렇게 깊이 생각하는지 몰랐는데, 오해가 있었구나!’ 이렇게 깨닫고 서로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주려고 노력하면서 재결합하게 된 거죠.”

지금 나라 경제가 힘들잖아요. 위기를 극복하려면 이런 감사 나눔의 긍정 마인드가 전 사회로 확장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습니다. 감사 나눔은 자기를 성찰하고 상대를 이해하자는 운동이에요. 저희 같은 민간에서도 쌈짓 돈 모아서 하는데, 정부나 공공기관에서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며칠 전에 구독자가 2만 명인 ‘하비우드’라는 유튜버가 저를 만나겠다고 찾아왔어요. 제 얘기를 듣고 감동받았다며 세상에 널리 알리겠다고 하더군요(웃음).”

어머니에 대한 감사편지 묶어 책 출간


▎박점식 회장은 감사편지 1000여 통을 묶어 지난 5월 올림 출판사에서 [어머니, 내 어머니]를 출간했다. / 사진:박점식
박 회장의 감사편지 쓰기는 그의 회사도 성장시켰지만 그를 인간적으로 성숙하게 만들었다. 사실 그가 가장 절실하게 감사편지를 쓴 대상은 어머니였다. 그의 모친 장곤단 여사는 86세에 소천해 지금은 남한강 묘역에 묻혀 계신다고 했다. 박 회장은 부친의 얼굴도 모른 채 유복자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에겐 박 회장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금쪽같은 자식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학창 시절에 말썽을 피우며 어머니 가슴을 많이 아프게 했다고 했다. 그래서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생각하며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의 감사편지는 1000통을 넘어섰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감사편지 630통을 썼을 무렵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를 추억하며 370통을 더 썼어요. 자식의 도리를 다 하지 못한 회한이 몰려오면서 1000통의 감사편지를 다 썼습니다. 그 내용을 추려서 [어머니]라는 책을 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감사하는 마음이 더 깊어졌어요. 미처 깨닫지 못했던 큰 사랑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 거예요. 다시 8년 동안 어머니를 추억하며 감사편지를 썼어요. 감사도 진화합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감사할 게 너무 많은 거예요. 그것을 또 [감사나눔신문]에 연재하고 또 추려서 이번에 [어머니, 내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펴냈어요.”

[어머니, 내 어머니]는 박점식 회장이 쓴 절절한 사모곡이다. 가난 때문에 진학을 포기하고 중학교 때부터 삐딱선을 탄 한 섬마을 소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바로 학창 시절의 박 회장이다. 어머니의 한없는 사랑의 힘으로 그는 세무사 시험에 합격하고, 번듯한 세무법인을 이끄는 대표가 됐다. 시인 정호승은 “이 책을 읽는 동안 얼어붙은 내 가슴에 봄이 오고 사랑과 감사의 새싹이 돋았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에게 가장 못해 드렸던 것이 무엇이었나요?


▎어린 시절 박 회장은 모친 장곤단 여사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고 자랐다. 모친과 함께한 박점식 회장. / 사진:박점식
“제가 어머니 속을 무지하게 썩였어요. 중학교 때 신안 흑산도에서 살았는데, 어머니가 동네 계주한테 속아서 전 재산을 날렸어요. ‘아! 고등학교 가긴 틀렸구나!’ 그때부터 공부하기 싫어지더라고요.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삐딱선을 탔지요. 제가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어머니와 단칸 셋방에 살았어요. 제가 술, 담배를 하면 냄새가 안 날 리가 없는데, 아무리 냇가에서 손 씻고 얼굴 씻고 가도 냄새가 날 텐데, 어머니가 제게 이렇다 저렇다 한 번도 묻지 않으셨어요. 제가 어머니를 존경하는 게, 초등학생 때는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어요. 바느질하실 때 쓰시던 대나무 자로 맞다가 자가 부러지면 부엌에 놔둔 장작으로 맞기도 했는데, 중학교 들어가고부터는 단 한 번도 안 때리셨어요.”

책을 읽어봤더니 고등학교 때 아주 크게 혼나신 적이 있으시던데요?

“네, 딱 한 번. 방학 때 친구들과 짜고 이웃집 염소를 잡아먹었는데, 제 딴에는 완전범죄인 줄 알았는데 발각됐어요(웃음). 어머니께서 이웃집 염솟값 다 물어주고 해결하시고는 목포에 있는 제 자취방에 오셨어요. 교과서랑 책을 책보에 싸시더니 산으로 올라가서 다 불태워버리시는 거예요. ‘내가 경우 바르게 살라고 했냐, 안 했냐? 사람이 그런 나쁜 짓을 험시로 공부는 해서 뭣 하냐! 남에게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은 공부를 해선 안 된다’ 딱 그러셨어요. 정신이 번쩍 들었죠. 제가 감사일기를 안 썼으면 그런 일도 다 잊어버리고 살았을 거예요. 그런데 일기를 쓰니까 어머니 사랑을 되새겨보면서 내가 부모로서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때 어머니는 나를 그렇게 믿어줬는데, 나는 지금 아이들을 왜 못 믿을까 하고….”

어머니 가르침 실천해 기부천사로 거듭나


▎박 회장은 감사 나눔을 통해 이웃을 돕는 기부를 실천해왔다. 1억원을 기부해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위)이 됐고, 푸르메재단에 1억원을 기부해 더미라클스 1호 회원이 됐다. / 사진:박점식
어머니는 회장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제 모든 것이죠. 저는 어머니의 베갯머리교육에서 사람의 도리를 배웠어요. 어머니께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늘 옛날이야기를 해주고는 하셨는데, 그게 제 잠재의식에 다 저장돼 있었던 거예요. 저도 깜짝 놀랐던 게, 제가 1억원 이상 기부자 모임인 사랑의열매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했더니 어떤 기자가 물어요. ‘그런 결정을 왜 하게 됐습니까?’ 돌이켜 생각해보니까 그게 다 어머니 교육 때문이었어요. 어렸을 때 저보고 ‘너는 혼자니까 남들에게 잘해라. 베풀면서 살아라’ 하셨어요. 제 딴에는 ‘우리 집 재산이라곤 아무것도 없는데 뭘 베풀어’ 그렇게 생각했는데, 어른이 돼서 명절이 되면 선행을 베푼 사람에 대한 뉴스가 나오잖아요. 그 뉴스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아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많은 돈은 아니어도 기부처를 찾아간 거죠. 어느 날 신문을 봤는데, 아너소사이어티가 탄생한 지 3년이 다 됐는데 그때까지 17호 기부자밖에 안 나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날 아침에 출근해서 전화했어요. 아! 나도 가입할게요(웃음).”

1억 이상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자 푸르메재단 더미라클스 1호 회원이기도 하신데, 이렇게 ‘기부천사’가 되신 것도 다 어머니 교육 덕분이군요?

“어느 날 그 어려운 세무사 시험 어떻게 붙었냐고 친구들이 물어요. 제가 기억을 더듬어보다가 놀랐어요. ‘주경야독하며 열심히 공부해서 합격했지!’ 이랬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다 어머니 덕분이었어요. 한 번은 제가 안 좋은 일을 당해 경찰서에 있는데, 그때 어머니와 같이 오신 분이 자기가 세무사 시험 공부한다면서 제게 수험서를 가져다 준 거예요. 그냥 받아만 놓고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친구가 와서 하는 말이 ‘네 집에 갔더니 어머니가 하얀 소복입고 기도하시더라. 너 세무사 합격하게 해달라고’. 제가 그때 공부를 시작도 안 했는데 어머니는 기도를 하고 계셨던 겁니다. 그때 제가 정신이 번쩍 들면서 제 자신을 책망했어요.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됐나!’ 단단히 결심을 하고 하루에 15시간 이상 책에 매달려 공부했어요. 그때 어머니 정성이 없었다면 제 인생은 지금과 다른 길로 갔을지도 몰라요. 어머니는 참 현명하신 분이었고, 끝까지 나를 기다려주셨어요. 그래서 그해 세무사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합격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나는 (네가) 할 줄 알았어’ 딱 그러셨어요. 말썽만 피우는 저를 한없이 믿어주신 겁니다.”

책 출간 뒤 인세는 전액 감사 나눔 운동에 기부


▎박점식 회장은 감사편지 쓰기의 효과를 경험한 뒤 외부 강연을 통해 확산하는 데 힘쓰고 있다. / 사진:천지세무법인
결론적으로 회장님한테는 어머니는 어머니면서 스승이고, 친구이고, 모든 것이었네요?

“요즘 세대들도 별반 다르지 않아요. 얼마 전에 어느 초등학교에 가서 강연을 했는데 강의를 들은 40명 가운데 15명이 어머니에 대한 1000통 감사편지 쓰기에 도전하기로 했어요. 공개적으로 의지를 다지는 발대식까지 했어요. 여름방학 끝날 때까지 다 쓰겠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영원한 주제이자 사랑이지요. 제가 누리는 인생은 다 어머니 덕분입니다. 이번에 낸 [어머니, 내 어머니]도 인세 전액을 교도소와 군부대 감사 나눔 활동 활성화를 위해 (사)감사나눔연구소에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좋아하실 것 같아요.”

박 회장의 육성으로 직접 들은 성공스토리는 진솔하고 유쾌하면서도 의미가 깊었다. 그는 13년 동안 감사편지를 매개로 회사를 성장시킨 데 이어 박 회장 자신의 어머니 사랑을 사회로 확장해 감사편지 쓰기를 널리 알리고 이웃돕기와 기부로 선행을 실천해오고 있다. 박점식 회장과 그의 어머니의 사랑, 천지세무법인 이야기는 섬기고 나누는 ‘감사경영’의 성공사례라고 할 만하다.

※ 박점식
■ 1955년 출생. 천지세무법인 대표이사 회장
■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 세무행정학과 졸업
■ 한국세무사고시회 제17대 회장 역임
■ KBS TV, 교통방송 세무상담위원 역임
■ 국세청장·기획재정부장관·보건복지부장관 표창 수상

- 글 나권일 월간중앙 편집장 na.kwonil@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eon.minkyu@joongang.co.kr

202208호 (2022.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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