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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교육부 ‘글로컬대학’ 사업, 지방대 살릴 동아줄 되나 

5년간 1000억원 지원… 곳간 비는 대학에 봄날 온다 

최현목·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교육부 ‘지역 인재양성→취업·창업→지역정주’ 선순환 구조 만들 목표 세워
대입 자원 급격히 감소 중… 역량 높은 지방대학 집중 지원하면 살길 열릴 것


▎윤석열 정부의 ‘글로컬대학30’ 사업은 교육부가 2026년까지 비수도권 대학 30곳을 지정해 1개교당 5년간 1000억여원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학령인구 감소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지방대학의 숨통을 트이게 할 정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위기의 지방대학에 한 줄기 빛이 드리울 것인가. “벚꽃이 지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한다”는 말 자체가 무색해질 정도로 현재 대학은 지역을 가리지 않고 위기에 봉착해 있다. 등록금이 대학 재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구조에서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 현상은 대학 당국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올해 정시모집에서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는 학과가 전국 14개 대학, 26개 학과에 달했다는 사실은 현재 대학이 처한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대학 당국이 등록금을 인상하려고 해도 학생·학부모들의 반발과 함께 등록금을 동결·인하해야 국가장학금Ⅱ 유형을 지원하는 정부의 기조 때문에 여의치 않다. 이 때문에 대학들은 2009년부터 14년째 등록금 동결 기조를 이어오고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면초가 신세다. 6월 26일 교육부 출입기자단이 일반대학 총장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대학 발전을 위해 개선이 시급한 과제로 대학 재정지원 평가(44.30%), 등록금(40.51%)이 꼽혔던 것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지방대학 관계자 “글로컬대학 선정 여부에 존폐 달려”


▎ 사진:교육부
정부의 지방대 지원 정책인 ‘글로컬대학30’ 사업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세계화를 뜻하는 글로벌(Global)과 지역화를 뜻하는 로컬(Local)의 합성어인 글로컬 사업은 교육부가 2026년까지 비수도권의 지방대 30곳을 지정해 1개교당 5년간 1000억 여원을 지원하는 파격적 정책이다. 글로컬 사업의 부제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 K대학을 향한 담대한 혁신’이다.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최정예 선도(Flagship) 대학을 육성해 각 지역마다 혁신 ‘허브(Hub)’로 정착시킨다는 전략이다.

지난 6월 7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발표한 ‘대학 등록금 및 사립대학교 운영손익 현황 분석’에 따르면, 2021년 국내 비수도권 대학은 평균 15억4000만원, 수도권은 2억4000만원이 적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곳간이 바닥을 보이는 대학 입장에서 글로컬 사업은 사활이 걸린 문제다. 영남 지역의 한 지방대학 관계자는 7월 10일 전화통화에서 “지방대학 입장에서는 사실 이것(글로컬 사업)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있다”며 “글로컬 사업에 선정만 되면 위기를 가장 이른 시간에 돌파할 기반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대학 내에서는 ‘(선정이) 안 되면 모두 망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절박함을 갖고 있다”고 토로했다.

교육부 관계자에 따르면, 글로컬 사업은 “과연 국내 대학들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 혁신 경쟁력을 갖추고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현재 한국의 국가경쟁력보다 대학교육 경쟁력이 하위권에 머물러 정체된 상황이라는 것.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평가에 따르면, 63개국 대학 가운데 국내 대학의 경쟁력은 46위에 머물렀다.

왜 이러한 격차가 발생하는 것일까? 교육부는 글로컬 사업 추진 방안을 통해 “4차 산업혁명 등이 시대의 화두처럼 떠올랐지만, 실상은 대학들이 여전히 학문·교수 간 견고한 벽을 유지하며 공급자 중심의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며 “반면 하버드대·스탠퍼드대 등 세계 유수의 대학은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 배출 및 국가경쟁력 제고에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국내 지방대학들은 국가균형발전의 첨병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여기에도 물음표가 붙기는 마찬가지다. 수도권-비수도권 간 격차가 점차 심화함에 따라 지역 인재가 수도권에 집중돼 비수도권의 지역 소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행정안전부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인구감소지역 89곳 중 85곳이 비수도권 지역으로, 그해 미충원 신입생 4만586명 가운데 75%에 해당하는 3만458명이 지방대학에 집중돼 있다. 지역에서 나고 자란 인재들이 가고 싶어 하는 지방대학 육성이 절실한 상황이다.

복수의 교육부 관계자 말에 따르면, 정부는 향후 10~15년을 대학 혁신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20년 후 대입 자원이 현재 기준 절반 정도로 감소하게 되면 존폐 위기에 놓인 대학은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또 현재 공급자 중심의 이론 수업으로는 빠른 기술 발전과 산업구조의 고도화에 발맞춘 인재를 양산하기 힘들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현재 세계적인 추세는 수요자 중심 학사 구조로 개편하고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이다.

지자체·산학계 유기적 협력이 성공의 전제 조건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3월 13일 서울 중구 LW 컨벤션에서 열린 2023년 글로컬위원회 제1차 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글로컬대학 육성은 어떤 전략을 갖고 추진될까? 교육부에 따르면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대학을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모든 대학의 자율혁신을 지원하기 위해 규제·재정·구조 등에 대한 개혁을 지속해서 추진하는 한편, 혁신 의지와 역량이 높은 대학에는 보다 집중적인 지원을 통해 혁신 성공사례를 창출한다는 것. 이런 방식으로 성공사례가 많아지면 긍정적인 파급효과로 전체 대학의 혁신이 촉진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를 위해 범부처·지자체·산업계의 집중적 육성·지원이 추진된다. 대학 재정수입 구조가 다변화될 수 있도록 지원함과 동시에, 단순 재정 지원에만 머물지 않고 대학이 필요로 하는 분야에 범부처·지자체·산업계가 전략적으로 지원한다는 전략이다. 이를테면 범부처는 교육부 등 중앙부처 대학재정지원사업 선정 시 글로컬대학에 대한 가점을 부여하고 예산 인센티브 등 범부처 투자 확대를 유도한다. 교육부·관계부처·지자체 협약(MOU)을 통해 안정적인 지원을 보장한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또한 지자체는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내에서 ‘인재양성→취·창업→지역정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축을 위해 글로컬대학에 집중 투자·지원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올해 RISE 시범지역 운영을 시작했는데, 대학 지원의 행·재정 권한을 지자체에 위임·이양해 지역과 대학의 동반 성장을 추진하는 취지의 정책이다. 정부는 2025년에는 RISE를 전 지역으로 확산하겠다고 밝혔다.

글로컬대학 육성을 위해서는 산업계 협력도 중요하다. 산업계 우수 인력을 글로컬대학 교원으로 파견·활용하고 산업계 맞춤형 교육과정을 공동 개발하는 한편 산학협력 공동연구를 지원한다. 아울러 글로컬대학 맞춤형 진로·취업 컨설팅, 멘토링 등을 지원하고 MOU 체결을 통한 ‘글로컬대학 현장실습 등 제공·채용 연계’도 추진한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가 발굴한 해외 성공 사례도 지방대학들이 참고할 만하다. 독일의 미텔슈탄트대학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지역 산업 수요에 맞춰 학과구조를 개편한 미텔슈탄트대학은 빌레펠트에 본부 캠퍼스가 있고, 베를린·뒤렌·하노버·쾰른 등에 캠퍼스를 두고 있다. 이 캠퍼스들은 지방의 작은 대학이지만 지역산업 수요에 맞는 혁신적인 학위 프로그램으로 지역 내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전문적으로 양성해 그 지역의 산업과 경제·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학교와 기업이 협업해 현장 중심으로 성장하는 사례도 있다. 핀란드의 알토대학이다. 국립대인 헬싱키공대와 헬싱키예술디자인대, 헬싱키경제대가 통합해 설립된 대학으로, 핀란드 스타트업 창업자 절반 이상이 알토대학 재학생·졸업생으로 알려져 있다. 40여 개의 학과가 있으나, 전공에 상관없이 수업은 자유롭게 들을 수 있다. 수업은 대부분 실습과 팀 프로젝트 위주로 진행된다. 알토대 학생들의 40%가 교과 과정에서의 기획물로 스타트업 창업에 성공했다.

미국의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RTP : Research Triangle Park)도 좋은 사례다. 섬유·담배 등 전통산업의 몰락과 경제 악순환으로 어려움을 겪던 노스캐롤라이나주는 대학·기업과 긴밀하게 협력해 지역을 되살렸다. 인재들을 활용해 IBM, 시스코 등 세계적인 기업 700곳을 포함한 총 7000개 이상의 기업 및 연구소가 입주한 비즈니스 생태계를 구축했다. 제조업 쇠퇴로 난항을 겪던 지역이 첨단산업 연구단지로 탈바꿈한 성공 사례다.

15개 대학 예비 지정… 10월께 10개 대학 발표


▎김중수 글로컬대학위원회 위원장이 4월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기자회견장에서 ‘글로컬대학30’ 추진방안 확정 및 선정 추진과 관련해 발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앞서 정부는 글로컬 사업 예비 지정 15곳을 확정해 발표했다. ▷강원대·강릉원주대 ▷한림대 ▷연세대 미래캠퍼스 ▷충북대·한국교통대 ▷순천향대 ▷경상국립대 ▷인제대 ▷부산대·부산교대 ▷울산대 ▷안동대·경북도립대 ▷포항공대(포스텍) ▷한동대 ▷순천대 ▷전남대 ▷전북대 등이다. 오는 10월까지 본지정 평가를 거쳐 10곳을 최종 선정한다.

그야말로 피 튀기는 경쟁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예비 지정된 대학의 한 관계자는 7월 11일 “예비 지정은 뼈대만 제출하는 단계”라며 “이제 3개월간 추가 협의를 거쳐 실행계획서를 내야 하므로 대학 구성원 대부분이 전심전력으로 매진하고 있다. 아마 대학별로 어마어마한 분량의 계획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했다.

교육부는 선정 여부와 상관없이 공개에 동의한 글로컬대학 혁신기획서 47건도 누리집(홈페이지)에 게시했다. 기획서에는 학사 구조 전환을 제안하는 내용이 하나도 빠짐없이 포함됐다. 특히 전체 무전공 모집(25개), 일부 무전공 모집(23개), 단과대 통폐합과 학과제 폐지(38개) 등 모집 단계부터 벽 허물기 시도가 대세를 이뤘다. 이 밖에 다(多)전공이나 마이크로디그리(최소 단위 교육과정) 등 학사 다변화 시도도 있었다. 교육부는 “모집·재학·졸업 전 과정에서 학생 선택권이 보장돼 학생들의 사회 진출 기회가 커질 것”으로 바라봤다.

기획서를 낸 13곳의 대학은 아예 대학 간 통합을 전제로 내세웠다. 통합 모델도 다양했다. 국립대·국립대(4건), 국립대·공립대(1건)뿐만 아니라 설립법인이 다른 사립끼리의 통합 계획안도 2건(일반대·일반대, 일반대·전문대) 있었다. 재단이 같은 사립대의 통합은 일반대·전문대(4건), 일반대·전문대·사이버대(2건) 등 6건이었다.

대학들의 글로컬 사업 재도전 의지가 큰 만큼 당분간 대학들마다 대대적인 구조 개편이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6월 28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총회 참석 총장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0.4%가 “글로컬 사업에 재도전하겠다”고 한 바 있다.

예비 지정 대학들은 9월까지 지자체, 지역 산업체 등과 함께 혁신 기획서 과제를 구체화하는 실행계획서를 수립해 제출해야 한다. 이후 본지정 평가를 통과한 총 10개 내외 대학이 10월 최종적으로 글로컬대학으로 지정된다. 글로컬대학위원회와 교육부는 ▷2023년 10개 ▷2024년 10개 ▷2025년 5개 ▷2026년 5개 등 4년간 30개 대학을 선정할 예정이다.

- 최현목·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choi.hyunmok@joongang.co.kr

202308호 (2023.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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