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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부산 엑스포 유치 A to Z(8)] 막판 스퍼트 구간에서 부산이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글로벌 공동번영 추구하면서 GPS 국가(글로벌 중추국가)로 거듭나야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11월 파리 BIE에서 엑스포 개최지 확정, 부산은 경쟁지 리야드·로마보다 목표 선명
대한민국 브랜드 파워 전면에 내세워 홍보, 한국의 경험과 역량으로 표심 공략해야


▎부산 엑스포 유치전은 대한민국의 역량이 총집결된 이벤트다. 지난 5월 부산항에선 1000대의 드론을 띄워 밤하늘에 엑스포 열망을 수놓았다.
'2030 부산 세계박람회(World EXPO 2030 BUSAN, KOREA)’를 위해 민·관이 전 세계를 상대로 치열한 유치전에 나서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9월 18~23일 미국을 방문해 21일(한국시간)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한다. 윤 대통령은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당연히 북한과 러시아 간 군사 교류와 관련한 메시지를 낸다. 대통령실은 이를 위해 청와대 국가안보회의(NSC)를 통해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열린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의 회담 내용에 대한 분석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글로벌과 동북아 안보 문제 다음으로 윤 대통령이 무게를 두는 유엔 임무는 단연 2030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다. 윤 대통령은 이번 유엔총회 참석을 계기로 유엔본부가 있는 미국 뉴욕 현지에서 30개국 정상급과 양자회담을 할 예정이라고 대통령실은 밝혔다. 정상끼리 머리와 무릎을 맞대고 하는 긴밀한 양자회담으로, 2030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외교에 진력을 다하는 건 물론 전 세계 다양한 국가와 관계도 돈독히 한다는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유엔총회 말고도 지난 1월 18~19일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에도 참석해 이 행사를 엑스포 홍보행사로 활용했다. 당시 ‘한국의 밤’ 행사를 열고 참석자들에게 2030 엑스포 개최 후보지인 부산을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뿐만 아니라 국제협력 프로그램인 ‘부산 이니셔티브’를 현장에서 발표하는 등 엑스포 홍보에 주력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부산의 특성을 살려 각국 수요에 기반한 맞춤형 국제협력 프로그램인 부산 이니셔티브를 추진할 것”이라고 공개했다. 그러면서 “이를 바탕으로 전 세계인이 소통하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최적의 해법을 도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세계 박람회라는 국제행사 하나를 유치하는 수준에서 머물지 않고, 부산 엑스포를 계기로 한국이 글로벌 소통과 협력을 주도하겠다는 의미를 보였다. 부산 엑스포를 글로벌 중추국가(GPS·Global Pivot State)라는 정부의 목표를 향해 다가가는 주춧돌로 삼겠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제·문화·과학기술·교육 역량을 바탕으로 전 세계와 협력을 강화하면서 함께 번영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힌 셈이다.

침략의 역사 없는 한국의 온정주의 부각


한국은 사실 역사적으로 제국주의 침략이나 식민지 경영, 노예무역을 한 적이 없는 국가다. 그런 국가 중 현재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나라다. 그런 한국이 국력과 역사를 동시에 내세워 ‘온정주의적 국제관계’를 추구하겠다는 것이 GPS론의 핵심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국제사회에서 개발도상국이나 중견국가 등과 함께 지원·협력하며 공동번영을 도모하는 나라로 거듭나는 주춧돌로 부산 세계박람회를 활용하겠다는 것이 윤 대통령의 약속인 셈이다.

2030 세계박람회 개최지 결정은 오는 11월 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제173차 세계 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표결로 이뤄진다. BIE 홈페이지를 기준으로 179개 회원국의 3분의 2가 참석해 3분의 2 이상을 득표하면 개회지로 결정된다. 이 가운데 현재까지 약 50개국이 특정 도시에 대한 지지 의사를 나타냈고, 나머지 약 120개국은 지지 도시를 결정하지 않았거나 밝히지 않고 있다. 이는 곧,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이제부터 모든 게 결정된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부산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 이탈리아의 로마 등 세 도시가 출사표를 던진 만큼, 2차 투표에 오른 두 나라를 대상으로 하는 결선투표에서 개최지가 결정될 전망이다. 최종 낙점을 받기 위해 정부와 부산시, 그리고 한국 주요 기업의 관계자들은 지역을 나눠 출장을 다니면서 유치 외교전에 나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뤄지는 윤 대통령의 유엔총회 외교도 2030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에 방점이 찍히는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의 이번 유엔 방문은 한국 외교를 정치·군사·경제 분야의 이해가 달린 미국·중국·일본·러시아에 치중하는 이른바 4강 외교에서 지평을 넓혀 글로벌 외교로 가는 외교사의 새로운 변곡점이 될 것으로도 기대된다. 물론 북핵과 미사일 등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굵직한 현안에는 4강 외교가 절실하다. 하지만 국력의 차이와 무관하게 전 세계 주권 국가들이 한 표씩 던지는 유엔총회나 BIE 2030 세계박람회 개최지 결정에는 회원국 하나하나의 표가 중요하다. 2023년 윤 대통령의 유엔총회 외교는 한국 정부가 BIE 표결 직전까지도 부산엑스포 유치전에 전력투구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기도 하다.

최고의 무기는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

이제 남은 기간 2030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유치전은 사실상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가 가장 큰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2030 부산 엑스포를 통해 한국이 얻으려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이 부분에서 다른 경쟁국들과 차별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부산과 리야드, 그리고 로마의 세계박람회 조직위원회의 홈페이지를 봐도 선명하게 차이가 드러난다. 부산 세계박람회 조직위 홈페이지는 바다와 도시가 조화롭게 합체된 부산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이어 ‘2030 부산 세계박람회는 인류의 미래에 대하여 이야기할 것입니다(World EXPO 2030 BUSAN will be talking about the future of mankind)’라는 문구가 나타난다.

이어 ‘세계의 대전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항해(Transforming Our World, Navigating toward a Better Future)’라는 엑스포 슬로건이 등장한다. 그 아래에는 세 개의 부제, 즉 부문 목표가 제시된다. ‘자연과의 지속가능한 삶/지구: 더욱 푸른 삶(Sustainable living with Nature/Planet: Greener Life)’과 ‘인류를 위한 기술/번영: 기술 혁신(Technology for Humanity/Prosperity: Technological Innovation)’, ‘돌봄과 나눔의 장/ 인간: 포용사회(Platform for Caring&Sharing/ People: Inclusive Society)’가 그것이다.

이에 비해 리야드 동영상은 멋진 고층 건물 중심들을 보여준 뒤 사우디아라비아 알사우드 왕가의 종갓집이라고 할 수 있는 마스막 요새 앞에서 전통 복장을 한 남자들이 전통 악기를 두드리는 모습으로 끝이 난다. 마스막 요새는 알사우드 왕실에서 가장 중요한 사적이다.

알사우드 왕가의 마스막 요새 앞세운 사우디 홍보영상


▎2023년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경쟁 프레젠테이션에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 사진:연합뉴스
간단하게 그 연유를 알아보면 사우디아라비아라는 국가의 정체성과 왕조 체제를 짐작할 수 있다. 리야드 지역을 지배하던 알사우드 가문은 18세기 초 이슬람 창설 당시의 정신과 생활양식으로 돌아가자는 와하비즘을 창시한 무함마드 이븐 압달 와하브와 손잡고 세력을 확장했다. 이들은 성자를 숭배하던 시아파를 우상숭배자라며 배척했으며 이라크의 시아파 성지인 카르발라 등을 공격하기도 했다.

알사우드 가문은 19세기 초 오스만튀르크의 영향권이던 이슬람 성지 메카와 메디나를 손에 넣었다. 그러자 오스만은 휘하의 반독립국 이집트를 사주해 1811~1818년 긴 전쟁 끝에 리야드를 점령했다. 알사우드 왕가의 수장 압둘라 빈 사우드(1814~1818재위)는 이스탄불로 끌려가 처형됐다. 사막으로 피신한 알사우드 가문은 와신상담 끝에 1824년 이집트군을 몰아내고 근거지 리야드를 탈환했다.

알사우드 가문의 고난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1891년 지역 경쟁자인 알라시드 가문과 벌인 경쟁에서 패배해 다시 리야드에서 밀려나 고난의 시절을 맞았다. 당시 알사우드 왕가는 사막을 돌아다닐 때 오늘날 바레인의 알할리파 가문, 그리고 쿠웨이트의 알사바 가문의 도움을 받았다. 사우디아라비아가 1990년 8월 사담 후세인의 공격을 받은 쿠웨이트를 도와 걸프전을 주도하고, 2011년 시아파 시위가 한창이던 바레인에 군대를 보내 왕가를 지켜준 역사적 배경이다. 카타르의 알타니 가문의 도움도 받았다. 때로 반복하면서도 끝내 용서하고 화해하는 이유다.

알사우드 왕가의 압둘아지즈 빈 압둘라만 알사우드(1876~1953)가 친족과 종교적 지지자를 규합해 1902년 1월 리야드의 마스막 요새를 기습해 탈환했다. 알사우드 왕가는 마스막 요새를 점령하고 리야드를 수복한 이때를 현대 사우드 국가의 시작으로 친다.

압둘아지즈는 1925년 이슬람 성지 메카·메디나를 점령하고, 1932년 나라 이름을 ‘알사우드의 아라비아’라는 뜻의 사우디아라비아로 바꿨다. 국제적으로 현대 사우디아라비아의 건국 시점을 바로 이 1932년으로 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953년 압둘아지즈가 세상을 떠난 뒤 지금까지 그의 아들들이 돌아가며 통치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중세적 삶의 방식을 유지해온 것이다. 사우디의 리야드 엑스포 홍보 동영상의 마지막 마스막 요새 장면은 이런 사우드 왕실의 역사를 상징했다. 리야드 엑스포가 알사우드 왕실의 엑스포라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낸 셈이다.

리야드 엑스포 홈페이지는 ‘변화의 시대: 예견된 내일로 모두 함께(The Era of Change: Together for a foresighted tomorrow)’라는 모토 아래 ‘다른 내일(Different Tomorrow)’, ‘기후 행동(Climate Action)’, 모두를 위한 번영(Prosperity For All) 등 세 가지 목표를 제시했다. 전 세계에 석유와 가스를 공급하는 최대 화석에너지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제시하는 엑스포의 목표다.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는 훌륭하지만, 과학기술이나 국제협력 등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로마, 가톨릭 종교행사 시너지와 지역균형 발전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國父)라 할 수 있는 압둘아지즈 빈 압둘라흐만 알사우드.
이탈리아 로마의 엑스포 홈페이지는 간단명료하다. 동영상도 없다. 왜 로마가 엑스포를 유치해야 하는지를 맨 앞에다 세웠다. 그러면서 ‘2030 엑스포’의 유치를 신청한 유일한 유럽 국가의 수도, 3000년의 발전 역사를 가진 도시, 항상 새롭게 태어나 ‘영원한 도시’라는 별명이 붙었음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신앙과 문화 사이에서 혁신, 예술, 그리고 통합을 해왔음을 내세운다. 그래서 오늘날 환대와 살기 적합한 도시로 나아가는 시작점이 됐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2025년에 로마에서 열리는 가톨릭 희년(禧年·주빌리) 행사와 시너지를 내고, 이탈리아의 중부와 남부 지역을 잇는 로마의 가치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탈리아 국내 정치의 연장으로 세계 박람회를 열겠다는 메시지 대신 미래 가치를 추구하고 글로벌 협력을 추구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게다가 로마가 이탈리아의 수도인데도 아직 세계박람회를 열지 못한 것은 물론 과거(이탈리아가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즘 독재체제에 있던 시절) 유치했던 1942년 세계박람회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취소됐음을 강조한다. 이탈리아 국내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해외에서는 이해하고 공감하기가 쉽지 않은 개최 목표다.

이제 한국과 부산에 남은 것은 ‘대한민국’이란 브랜드와 부산 세계박람회의 목표를 앞세운 총력전뿐이다. 정부는 물론 기업을 비롯한 민간까지 나서서 그동안 쌓아놓은 글로벌 인맥을 총가동해 전 세계를 상대로 표를 모아야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한국은 국력도 부족했고 외부에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으며 외교력이나 문화 국력도 약했던 시절에도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유치했고 2002년 FIFA 월드컵을 일본과 공동으로 치렀다. K-팝도, K-영화도, K-드라마도, K-푸드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굵직한 국제 행사를 유치해 성공적으로 치렀다. 그러면서 하나하나 한국을 알리면서 경제력과 외교력, 그리고 국가 인지도와 한국 사회의 소프트파워를 키워갔다.

지금은 당시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여건이 좋아진 셈이다. 해외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대한민국의 브랜드 파워는 우리가 국내에서 상상하는 것과 비교도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브랜드 파워는 첫째, 한국의 경제력에서 나온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을 보면 명목금액 기준 국제통화기금(IMF) 2023년 전망치가 1조7219억 달러로 세계 12위다. 전 세계 GDP 총합인 105조5687억 달러의 1.63%를 차지한다. 전 세계 GDP의 1% 이상을 생산한 나라는 IMF 명단에 있는 213개국 중 18개국뿐이다.

이는 1인당 GDP를 봐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명목금액 기준 2023년 전망치가 3만3393달러다. 3만 달러대를 얼른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안타깝지만, 이 정도 1인당 GDP는 주요 7개국(G7) 국가인 이탈리아의 3만6812달러, 일본의 3만5383달러나 산유국인 쿠웨이트의 3만3646달러와 비슷하다. 스페인의 3만1223달러나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의 2만9922달러보다 높다.

‘오일 달러’ 능가하는 한국의 자금력


▎이탈리아 로마는 바티칸이라는 가톨릭적 문화유산과 역사를 앞세우고 있지만, 부산과 리야드에 비해 준비 부족이 역력하다. / 사진:연합뉴스
한국과 부산은 어디를 봐도 경쟁 개회 후보지에 밀리지 않는다. ‘오일 달러’라고 하지만 사우디의 국력과 가용자원이나 자금이 한국보다 풍부하다고 하기는 쉽지 않다. 로마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지난 4월 한국은행과 통계청 국가경제포털(KOSIS)에 따르면 2022년 한국경제의 대외의 존도는 100.5%로 나타났다. 대외의존도는 수출입 총액을 국민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돈, 즉 명목금액 기준 국내총소득(GNI)으로 나눈 값이다. 한국경제는 전통적으로 내수시장이 작아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의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많았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각국의 대외의존도는 프랑스(66.1%), 일본(37.5%), 미국(31.34%) 정도였다. 한국 경제가 얼마나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한국 경제가 에너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의 인상, 해외 수요의 증감 등 대외 요인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울러 한국이 전 세계 각국과 외교·경제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시장을 지키고 한국이라는 브랜드의 명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대외의존도 높은 부산 엑스포 통해 국제협력 주도국가로


▎아프리카 세네갈에서 진행한 우수 벼 품종 개발은 대한민국과 부산이 인류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는 한국이 전 세계와 다양한 개발원조(ODA) 사업을 함께할 역사적 사명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번 2030 부산엑스포 유치전에서 우리는 이를 잘 이용해야 한다. 한국이 앞으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펼칠 정보통신기술(ICT)·보건의료·교육 등 다양한 국제협력 프로그램을 내세워 각국을 차분하게 설득할 일만 남았다. 한국의 민·관 협력체는 이미 그런 작업을 해오고 있다.

기업은 외교 관계자 등과 함께 각국을 돌며 치열한 유치 외교에 나서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업인은 “기업인을 비롯한 민간인들이 정부 관계자와 함께 지역을 나눠 유치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기업인은 “아프리카의 몇몇 국가를 돌면서 해당 국가와 관계를 돈독히 하고 한국의 지원이 필요한 사안을 파악했다”며 “정부나 민간 차원의 개발원조(ODA)와 연결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지역 주민의 삶의 길을 개선하기 위해 한국이 개발도상국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사업은 한둘이 아니라고 전했다. 예로 아프리카 지역의 경우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공항과 도로, 철도·항만 시설과 인근 배후지 접근로 등 인프라가 제대로 된 나라가 그리 많지 않다고 전했다.

흔히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을 하면서 아프리카 등지에 돈을 빌려주고 인프라 공사를 독점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향후 이익이 되거나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해외 진출에 도움이 되는 지역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하면서 공백이 많다는 이야기다.

중국이 투자한 곳을 살펴보면 금세 드러나는 사실이다. 중국이 투자한 곳은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의 입구인 오만만과 아라비아해로 이어지는 바다 길목에 자리 잡은 파키스탄의 과다르, 아라비아해·인도양·벵골만을 아우르는 스리랑카 남단의 함반토타, 버마해와 벵골만 중간에 있는 미얀마의 차우크퓨 등이다.

글로벌 에너지 안보의 핵심이 되는 세계 해상로의 주요 길목에 집중 투자한 셈이다. 모두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에서 중국으로 석유와 가스가 공급되는 운송로에 자리 잡았다. 그중 과다르와 차우크퓨는 육상으로 중국의 신장위구르와 윈난(雲南)으로 각각 이어지는 가스·석유 파이프의 출발점이다. 현재 계획되거나 건설 중인 파이프라인이 모두 연결되면 중국은 해상수송 거리를 대폭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남중국해를 지나지 않고도 에너지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된다. 남중국해는 중국이 해상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동남아시아 각국과 영유권 분쟁이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의 강점인 보건의료 분야 국제협력 앞세워야

교육도 마찬가지다. 건물과 교실·칠판·분필만 있다고 학교가 설립되고 교육이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현대사회에선 수학·과학과 함께 컴퓨터를 비롯한 정보통신기술(ICT) 교육이 필수다. 과학은 실험실습 기자재가 필요하다. 한국은 이를 제공할 능력과 노하우, 그리고 기나긴 경험이 있다. 교육을 통해 가난에서 탈출한 경험을 공유해달라는 나라는 한둘이 아니다.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한국의 협력은 절실하다. 서아프리카의 경우 치명률이 높은 전염병인 에볼라가 수시로 유행한다. 가장 심각했던 때는 2013~2016년 서부 아프리카 기니와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을 중심으로 번졌던 대유행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당시 전 세계적으로 2만8618명이 감염돼 1만1310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했다. 사망률이 무려 70%가 넘을 정도다.

중요한 것은 서아프리카에서 조사한 결과 입원 환자의 사망률은 57~59%로 전체 사망률보다 낮았다는 사실이다. 병원에 입원해 의료진의 보살핌을 받으면 생존 가능성이 커진다는 이야기다. 링거를 맞는 등 수분을 적절하게 공급하고 관리만 잘하면 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에 따라 주요 발생지역인 서아프리카가 공중보건과 의료수준이 비교적 열악해 더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볼라뿐 아니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선 매년 말라리아로 수백만, 콜레라로 수만 명이 숨지고 있다. 모기를 퇴치하는 방역 활동과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위생 대책이 있었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다. HIV/AIDS는 아프리카의 풍토병으로 자리 잡고 있다. 피해자도 이 지역에 집중되고 있다. 사망자의 3분의 1이 가난하고 보건의료 시설이 열악한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 집중돼 있다. 부자 나라에선 레트로바이러스를 관리하는 주사를 개발해 HIV/AIDS에 걸리고도 계속 생존하는 경우가 이젠 일반적이 됐다.

태어난 나라에 따라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는 사실은 기존의 부자나라들이 손 놓은 국제협력 사업이 적지 않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한국은 그 틈새를 파고들어 글로벌 온정국가로 나아갈 수 있다. 청년 세대에 새로운 국제 활동의 경험을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사회에서 활약할 기회를 열어줄 수도 있다. 과거 프랑스나 독일처럼 군 복무와 해외 협력활동 중 선택하는 시대가 열릴 수도 있다. 자동화 등으로 병력 부족 문제만 어느 정도 해결하면 가능한 일이다.

2030 부산 세계박람회를 통해 한국이 GPS 국가로 거듭나면서 집중적으로 협력해야 할 지역과 분야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나같이 한국이 역량을 보유한 분야다. 부산 세계박람회는 역량 있는 한국이 세계로 성큼 나아가서 개도국·중견국가와 공동 번영을 추구한다는 국가 목표를 이루는 디딤돌이다. 이제 11월 말 BIE 총회를 향해 달릴 일만 남았다.

-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202310호 (2023.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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