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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의 핫피플 & 아트(17)] ‘쇳가루 작가’ 김종구 교수의 철(Fe)의 미학 

“쇠는 문명과 우주의 근원, 가루를 모아 세계를 창조한다” 

쇳가루 이용해 회화·조각·사진·영상 등 체험적 작품 활동 주력
‘쇳가루 산수화’ 창안해 철 이용한 국내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


▎‘쇳가루 작가’로 명성을 얻은 김종구 이화여대 미대 교수는 쇳가루를 매개로 사진과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접목해 풍경을 만들어낸다.
"나는 몸으로 조각을 한다.” 20세기의 대표적인 산업 물질 중 하나인 ‘철(steel)’을 주재료로 사용하며 행위적 관점을 중요시한 김종구(1963~)작가의 말이다. 한국 미술사에서 ‘철’을 매개로 한 다양한 작품들이 본격적으로 시도된 것은 1970년대에 이르러서다. 김종구 작가는 1980년대 후반부터 ‘철’ 조각에 관심을 갖고 몰두하며 변모를 거듭해 온 결과, 한국 현대조각사뿐 아니라 철을 소재로 한 작품을 조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이화여대 미대 교수로 재직 중인 김종구 작가는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영국 첼시 미술대학에서 조각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재학 시절(1987), 전국 대학 미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그가 세상에 첫선을 보인 작품은 [똥을 쌌어요]란 제목의 대학 졸업 전시작이다. 만든 과정도 제목만큼 독특하다. 며칠 동안 똥을 싸고, 레진으로 덮기를 반복해 만든 설치 조형 작품이다. 육체적 행위에서 비롯된 ‘똥’이야말로 조형적 형태가 완벽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이처럼 초기 작업부터 몸(행위)과 조각의 개념적 관계를 진지하게 탐색해 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쇳가루를 접목해 독창적 예술세계 창조


▎김종구 교수는 쇳가루로 계곡을 그린 ‘공중 산수’에 이어 최근에는 식물의 줄기와 뿌리가 반대 방향으로 자라나는 과정을 동시에 담은 ‘식물 산수’를 선보였다. / 사진:김종구
첫 개인전 [서 있는 것(1993)] 연작을 시작으로 오랜 기간 쇳덩어리를 그라인더로 깎아내는 인체 형태의 조각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2000년대를 거치면서 통쇠를 깎는 인체조각 중심에서 벗어나, ‘물성(物性)’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사유를 토대로 전환기를 맞이한다. 이러한 변화의 결정적 계기는 1997년 영국 유학 시절 통쇠를 깎은 인체조각 작품이 야외 전시 도중 반달리즘(vandalism)에 의해 도난당한 사건 때문이었다. 상실감에 젖어 있을 때 작업실 바닥에서 통쇠를 깎고 남은 쇳가루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쓸어 모아 글씨를 쓰게 된 것이 쇳가루 회화(steel powder painting)의 시작이다. 그에게 철(Fe)은 여전히 주된 재료지만, 더는 매체나 형태에 연연하지 않게 됐다. 다양성의 기폭제가 된 쇳가루(steel powder)를 회화, 드로잉, 사진, 영상, 설치 등과 유기적으로 연계해 의미의 밀도를 강화시키고 확장성을 확립한다.

한 예로, 먹으로 서예를 하듯 바닥에 쇳가루로 글자를 쓰고, CC카메라로 비춰 실시간으로 스크린에 영상을 투사한 작품 [풍경(landscape)]은 마치 지평선을 뚫고 솟아오른 산맥의 경관을 보는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그가 창조해 낸 ‘쇳가루 산수화’다. 쇳가루의 재구축은 비로소 물질문명의 위기와 우주의 진리를 향유하려는 목표의 정점에 도달한다. 주요 시리즈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것과 작은 것을 잴 수 있을까?(2000)], [백기를 들었어요(2004)], [풍경(2007)], [The Ball(2011)], [쇳가루 6000자 독백(2014)], [만폭동(2019)], [Fe 공중 산수(2022)] 등이 있다.

김종구는 ‘쇳가루 산수화’라는 독자적인 형식에 전력하며 추상철조화(抽象鐵彫畵) 작업을 이어오면서 광주비엔날레, Officina Asia를 비롯해 미국의 Art Omi 레지던시(2000)와 뉴욕 P.S.I의 International Studio Program(2002), 프랑스 문부성 초청의 Art Center of LE Grand Jardin 레지던시 프로그램(2007) 등에 참가하며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김종구 교수의 대표작 중 하나인 [풍경 Landscape]. 쇳가루로 바닥에 글씨를 쓴 뒤 이를 카메라로 비춰 스크린에 투사하면 마치 대지를 뚫고 솟아오른 산맥의 진경(眞景)을 내려다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 사진:김종구
‘철’을 기반으로 한 그의 명작들은 국립 현대미술관, 독일 리튼아트파운데이션, 싱가포르 비즈니스센터 등 세계 여러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소재가 ‘철’이라서일까. 그의 작업실 어디선가 웅웅웅 범상치 않은 쇳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꿈틀대는 에너지를 받아서인지 북한산 자락의 부암동 작업실에서 진행한 긴 인터뷰 시간도 훌쩍 지나갔다.

소년, 김종구 작가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충남 당진 합덕에서 태어났는데 예당평야여서 곡창지대다. 아버지는 한때 공무원이셨고, 어머니께서 농사를 지었다. 평야 지대라 여름에는 수로가 있는 다리 밑이나 지게를 세워 놓은 그늘에서 새참을 먹곤 했다. 유학 시절 나는 왜 ‘풍경’을 좋아하고 풍경을 보면 편안할까 생각해 보니, 어렸을 때 논에서 멀리 100년 넘은 합덕성당의 첨탑을 보며 자란 평화로운 고향의 정서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와, 지금까지 주재료로 사용하게 된 까닭은?

“현대 물질문명의 가장 근원적인 물질이자, 더 나아가 우주의 근원적 물질이며 지구를 구성하는 대표적 물질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런 이유로 ‘철’을 깎은 것은 아니다. 대학 다닐 때 돌, 나무, 흙, 철 등 물질을 다루는 수업이 많았다. 나와 맞는 물질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철’ 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게 관심의 시작이다.”

쇳가루로 글씨를 쓴 작품들이 많은데 주로 어떤 내용을 담았나?

“큰 틀에서 봤을 때 하나는 나의 독백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내가 살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의 시사적 관심이다. 예를 들어 CNN 뉴스 내용 그대로 글자를 쓰기도 한다. 쇠는 그 자체가 유용하게 쓰이는 도구적 관점도 있지만, 무기적 성질도 갖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것과 작은 것을 잴 수 있을까]는 유학 가서 처음 했던 개인전의 제목이다. ‘답이 있다 없다’를 떠나 의미적으로 보면 참 우둔한 질문 같은 하나의 화두성 질문이다. 주로 뇌리에 자주 맴돌았던 것들을 쓴다.”

어릴적 고향 풍경의 기억이 예술의 바람


▎김종구 교수에게 쇳가루와 철은 작품활동의 매개일 뿐이다. 체험을 중시하는 그에겐 철을 그라인더로 갈아내는 과정마저 작품이 된다. / 사진:김종구
일명, ‘쇳가루 산수화’를 탄생시켰다.

“나의 쇳가루 산수화 작품은 해외에서도 ‘Iron Powder Painting’이라고 한다. 쇳가루라고 하는 물질에 대한 의미 부여를 좀 더 강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부속적으로 붙여지는 것을 진행한다. 그중의 하나가 산수화라고 하는 개념 아래에 그냥 산수화가 아니라 계곡을 그린 산수화고, 더 나아가서 얘기하는 게 ‘공중 산수화’다. [Fe 공중 산수]란 제목으로 전시도 했다. 또 동시에 지금 하는 작품이 [Fe 식물 산수]다. 식물은 땅의 기운과 빛에 의해 자라면서 줄기는 상승하고, 뿌리는 내려간다. 그 두 과정을 하나의 화면에 담았다. 우리가 맨눈으로 보는 것은 땅 위에 자라고 있는 모습이지만, 땅속에 있는 뿌리의 세계도 대단하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쇳덩어리를 깎고, 그 쇳가루로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행위 자체’에 초점이 맞춰진 인상을 받는다.

“대학원 논문이 [직접적 체험을 통한 조각 작품 제작 연구]다. ‘직접적 체험’을 중요하게 여긴다. 어차피 형태는 이미 다 창조돼 있기 때문에 인간이 더 잘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해 과정의 행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물론 나의 관점이다. 다른 사람들이 논박할 만한 여지가 많을 수도 있다. 쇳가루로 쓴 글은 전달도 중요하지만 서예가를 보면, 자신의 호흡에 따라 글씨 형태에 어떤 변화들이 생기는데 이런 행위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다.”

원앤제이 갤러리에서 전시한 [풍경 Poongkyoung] 연작은 대부분 사진이다. 뿐만 아니라 사진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별히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다.

“쇳가루 산수화 등 사진을 20여 점 걸었고, CC카메라 영상은 프로젝터를 통해 상영했다. 처음 사진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은 유학 시절 대학원 졸업 작품을 사진으로 하게 되면서부터다. P.S.1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했을 때도 매일 흑백필름으로 셀프포트레이트를 찍었다. [백기를 들었어요]는 사진을 직접 찍은 첫 작업이다. 손가락 한 마디를 사고로 잃고, 여러모로 심란하던 어느 날, 그림 붓에 하얀 삼각형 종이를 붙였다. 삽 한 자루가 있고, 바닥에는 쇳가루가 보이는 배경 앞에서 직접 만든 백기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파노라마 필름 작업도 많은데 다른 매체와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사용하기에 적합하다.”

회화·조각·영상 이어 사진까지 시도


▎김종구 교수가 다섯 살 무렵 어머니, 누나와 함께 찍은 사진. 훗날 사진 매체를 작품활동에 사용하게 된 계기가 된 사진이다. / 사진:김종구
대표작으로 손꼽는 작품이 있다면?

“‘나는 어떤 작품을 좋아하나’ 생각해봤을 때, 김종영 미술관에서 했던 [형태를 잃어버렸어요] 전시 중 1전시실을 채운 작품 [쇳가루 6000자의 독백]을 꼽는다. 전시실 4면에 980×270㎝ 크기로 4개의 대형캔버스 작품을 걸었다. 4개의 캔버스 중 한 쌍의 캔버스 두 개에는 6000자를 각각 3000자씩 나눠 이틀 동안 글을 썼다. 다른 한 쌍의 캔버스 두 개에는 쇳가루 200㎏을 흘러내리게 그렸다. 흘러내림이라고 하는 물질로서 표현하는데 그게 한편으로 우리 인간 주변에 벌어지고 있는 세계사다. 내 안에 침전됐던 것들과 만난 화학 작용에 의해 느낀 점을 표현한 것인데, 글과 그림이 서로 상충 작용을 하도록 구성했다. 우리 동양화에 보면 ‘시(詩), 서(書), 화(畵)’라는 개념이 있다. 글을 쓰고, 화제(話題)를 쓰는 것처럼 ‘쇳가루 산수화’는 동양화의 개념적인 요소들을 결합한 것이다.”

쇳가루의 물질적 행위에 초점


▎김종구 교수가 꼽은 대표작 [쇳가루 6000자의 독백]은 9m가 넘는 4개의 캔버스에 쇳가루로 쓴 글자와 흘러내린 그림으로 채운 대작이다. / 사진:김종구
조각가이면서 평면 작업도 하고,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특별한 이유라기보다 자연스럽게 도입했다. 조각가는 평면적인 해석이 아니고 입체적 해석을 해야 되는데, 나의 경우는 그것을 다시 평면적인 해석까지 끌어낸다. 그래서 쇠를 깎는 행위의 아주 원초적인 입체 조각도 하지만, 사진, 영상 등과 여러 매체를 사용한 평면이나 미디어도 사용한다. 예를 들어 CCTV 카메라를 쓴다든지, 프로젝션을 한다. 입체적인 쇳가루를 평면상에 투영한다든지, 설치 개념의 디지털라이징까지 연결을 시킨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 한 장을 꼽아달라.

“1996년도 런던 유학 졸업전시 포스트 엽서로 만든 작품사진이다. 다섯 살 무렵 엄마, 큰누나와 셋이 찍은 사진이다. 뒷장에는 우리 누나가 직접 쓴 정겨운 글씨가 있다. 여러 장의 사진을 4:3 비율이 되도록 랜덤하게 재봉틀로 꿰맸다. 나의 모든 사진을 마이크로화하는 과정이었다. 마이크로화된 그 사진을 앞뒤를 붙여 매달았다. 한쪽에는 ‘똥’을 싸고 있는 장면의 사진이 있었다. 이 사진을 내가 꼭 활용해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사진에 대한 관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사진 한장이 훗날 ‘풍경사진’으로 개인전까지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지금까지 사진 매체를 꾸준하게 사용하게 됐다.”

※ JOA(조정화) -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순수사진으로 석사 학위를, 조형예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몇 차례 개인전을 열고, 광주비엔날레 등 다수 국내외 그룹전에 참여했다. 단국대, 상명대 등에서 20여 년간 강의하면서 [포토닷], [디지털카메라매거진], [미술세계], [월간중앙] 등에 예술 관련 연재와 기고 글을 써오고 있다. 저서로는 [그래서 특별한 사진 읽기](2020년)가 있다.

202310호 (2023.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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