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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UP] 신안 증도 태평염전의 여름나기 

남도의 햇볕 아래 염화(鹽花: 소금꽃) 활짝 피어나네 

최기웅 기자
증발-결정화 3단계 거쳐 2개월 숙성 거쳐야 ‘명품 천일염’ 완성
가격 폭등해도 불안한 염전 수익, 안정적 운영 위해 시설 현대화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 태평염전 위로 은하수가 펼쳐져 있다. 낮부터 시작된 쾌청한 날씨는 밤까지 지속됐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는 소금 생산에 있어 최적의 조건이다.
하늘과 맞닿을 듯 펼쳐진 희끗희끗한 들판에서 사각사각 소금 모으는 소리가 쉼 없이 귀를 간지럽힌다. 짭조름한 소금 향이 밴 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이곳은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 태평염전. 여의도의 약 2배 크기로 국내 최대 규모다. 하늘 가운데서 이글거리던 해가 서쪽으로 기울자 염전꾼들이 숙소를 나와 제 자리를 잡는다. 구릿빛 피부의 염전꾼은 마치 칠판의 분필 흔적을 지우듯 층층이 쌓인 소금 결정을 모은다.

염전은 ‘제1증발지’와 ‘제2증발지’, ‘결정지’로 나뉜다. 각 단계를 거치면서 2~3%이던 염도가 마지막 결정지에서 24%까지 높아지면 기존 소금과 합쳐져 소금 결정이 만들어진다. 결정지에서 채취된 소금은 창고로 옮겨 최소 2개월 동안 간수를 빼고 숙성시킨 뒤 천일염으로 출하한다. 쨍쨍한 햇살은 소금 생산에 꼭 필요한 조건이지만, 작업자에게는 고난의 조건이다. 그래서 한여름 염전 작업은 대부분 해가 사그라진 후에 시작해 늦은 밤까지 이루어진다. 비 예보가 있기라도 하면 수확량을 채우기 위해 평소보다 더 늦은 시간까지 작업해야 한다. “뭘 언제까지 해, 목표 채울 때까지 해야지” 늦은 밤 언제까지 작업하느냐는 기자의 우문에 염전꾼의 대답이 심드렁하다. “올해 비가 많이 와서 소금 수확량이 예년보다 적어. 오늘처럼 날씨 좋을 때 한 줌이라도 더 거둬야 해.” 소금은 볕이 좋은 여름에는 이틀, 가을에는 3~4일 걸려 완성된다. 하지만 비가 내리면 함수 창고로 이동해 증발이 멈추기 때문에 시간이 늘어난다. 특히 여름철 장마가 시작되면 소금 생산은 한 달가량 아예 중단된다. 맑은 날이 특히 적었던 올여름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20% 정도 줄었다.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에 염전도 잔뜩 긴장


▎뜨거운 햇살 아래 한 염전꾼이 칠판 위의 분필 지우듯 층층이 쌓인 소금 결정을 모으고 있다.
올해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악재가 또 하나 터졌다.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방류한 것이다. 지난 8월 24일 방류를 시작해 앞으로 30년간 총 134만t의 오염수가 방류된다. “내가 방류를 막을 수도 없잖아” 소금밭에서 20년 넘게 일했다는 염전꾼은 무심하게 말을 던지고는 하던 일을 이어갔다. 원전 오염수 방류 이야기가 처음 나오기 시작한 올해 초 20㎏당 17000원이던 천일염 가격이 28000원으로 폭등했다. 그야말로 소금값이 ‘금값’이 됐다. 하지만 염전꾼들은 걱정이 앞선다. 오염수가 실제로 방류되면 다시 폭락할 게 뻔해서다. 태평염전은 올해 초 전문기관에 의뢰해 소금의 성분 조사를 했다. 태평염전 김치영 부장은 “앞으로 정기적인 성분조사를 통해 조금이라도 성분에 이상이 있으면 소금 판매를 중지할 것”이라며 천일염의 안전성을 강조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건 과학과 정부를 믿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해양 방사능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등 국내 수산물의 안전 확보에 팔을 걷어붙였다. 방류된 오염수는 빠르면 4, 5년 후부터 우리 해역에 유입될 것으로 보이지만 방사선량은 인근 해역 평균농도의 10만분의 1 수준일 것으로 예측된다.

한편 국내 최대 규모의 태평염전도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만들기 위해 66개의 염전 작업장 중 20여 곳은 2~3년 뒤 태양광 발전시설로 바꿀 예정이다. 김 부장은 “소금값이 오르면 염전이 폭리를 취할 것 같지만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널뛰는 가격 때문에 손해를 볼 때도 잦기 때문이란다. 그는 “20㎏당 2000원인 때도 있어 그때는 소금 두 포대를 팔아 담뱃값도 못 건질 만큼 어려웠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 출신인 리숑(22)과자케(30) 씨가 수확한 소금을 염퇴장에 저장하고 있다.



▎염전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휴식하고 있다.



▎태평염전은 여의도 면적 2배로 국내 최대 규모의 단일염전이다.



▎염전꾼들이 소금이 담긴 수레를 한곳으로 모으고 있다. 염전에는 수레를 옮길 수 있도록 레일이 설치돼 있어 이동이 수월한 편이다.



▎수확된 소금 결정의 모습. 소금은 염퇴장에서 최소 2개월 간수를 뺀 뒤 천일염으로 출하된다.
- 사진·글 최기웅 기자 choi.giung@joongang.co.kr

202310호 (2023.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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