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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K컬처 톺아보기(19)] K팝 걸그룹 역사 다시 쓰는 ‘뉴진스’ 탐구 

경계 해체 시대의 아이콘으로 거듭나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과 ‘청춘’ 이미지로 데뷔 1년 만에 전 세계 공감대 형성
그룹명 ‘새로운 청바지’처럼 세대 초월한 보편성으로 걸그룹의 정반합 진화 완성


▎K팝 걸그룹 ‘뉴진스’가 8월 3일(현지시각) K팝 걸그룹 최초로 미국 시카고 그랜트파크에서 열린 미국의 대형 음악 페스티벌 ‘롤라팔루자’에서 공연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뉴진스(New Jeans)가 지난 1년간 걸어온 행적은 K팝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데뷔 1년 만에 글로벌 걸그룹으로 급부상한 건 우연일까? 그렇지 않다. 기존 걸그룹의 역사를 바탕으로 이를 진화시킨 흐름의 정점에 이들이 서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3일 미국 시카고 그랜트파크에서 열린 미국의 대형 음악 페스티벌 ‘롤라팔루자’ 무대에 귀엽고 앙증맞은 캐릭터들과 더불어 뉴진스의 얼굴이 대형 스크린에 떴다. 그러자 페스티벌에 참여한 미국 관객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곧 이어진 ‘하입보이(Hype boy)’의 전주가 흘러나오자 분위기는 더 고조됐고, 무대 위로 등장한 뉴진스가 “시카고! 아유 레디!”라고 외치자 관객들은 박수와 함성을 쏟아냈다. 놀랍게도 관객들은 이 노래를 따라 불렀고, 이 곡의 시그니처로 ‘밈(mem, 인터넷 유행)’ 현상을 만들기도 했던 ‘개다리춤(?)’을 뉴진스가 특유의 통통 튀는 발랄함을 더해 추자 관객 중에는 익숙한 듯 그 동작을 따라 하는 이도 있었다.

뉴진스 노래 떼창하는 미국 관객들


▎K팝 걸그룹 ‘뉴진스’가 8월 3일(현지시각) 미국 시카고 그랜트파크에서 열린 미국의 대형 음악 페스티벌 ‘롤라팔루자’ 무대에 서자 관객들이 열광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미국의 아티스트들에게는 꿈의 무대라고 불리는 ‘롤라팔루자’의 무대에, 그것도 미국 내에서 활동이 거의 없던(사실 데뷔한 지 1년 정도 지난 걸그룹이니 활동이 있을 리도 없지만) 뉴진스가 선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더 흥미로운 건 관객들이 마치 한국에서나 있을 법한 ‘떼창’을 하는 광경이다. 도대체 이런 일들은 어떻게 가능하게 된 것일까.

갑자기 벌어진 일처럼 보이지만 K팝, 그것도 걸그룹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런 일은 2000년대 후반 원더걸스를 필두로 소녀시대와 카라, 브라운아이드걸스, 2NE1, 포미닛 등의 걸그룹들이 쏟아져 나와 저마다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불러일으켰을 때부터 벌어지기 시작한 일이다. SNS를 통해 이들의 존재감은 이미 글로벌로 퍼져나갔고, 그래서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나라에 도착한 걸그룹이 공항을 가득 메우고 있는 현지 팬들을 보고는 깜짝 놀라던 일들이 그때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즉, 뉴진스가 미국의 대형 음악 페스티벌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그 노래에 맞춰 현지 관객들이 떼창하는 풍경은 그리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뉴진스에게 벌어진 이 일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이런 일을 데뷔 1년 만에 이뤄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의 데뷔와 활동은 로컬과 글로벌이 거의 시차 없이 이뤄졌다. 지난해 7월 ‘어텐션’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며 데뷔한 뉴진스는 첫 미니앨범 [뉴 진스]의 수록곡 4곡을 모두 히트시켰고, 올 초 발표한 [OMG] 역시 메가 히트를 기록하며 이 걸그룹의 심상찮은 행보를 확신하게 만들었다. 특히 이 앨범에 수록된 ‘디토(Ditto)’는 멜론에서 14주 연속 1위를 차지함으로써 역대 최장 기록을 남겼다. 지난 7월에 발표한 두 번째 미니앨범 [겟업]은 이제 본격적인 글로벌 톱 K팝 걸그룹으로서의 뉴진스의 존재를 알렸다. 역대 K팝 그룹 중 데뷔 후 최단 기간에 빌보드 200 차트 1위에 올랐고, 타이틀곡 3곡이 동시에 핫 100 차트에 진입했다. 이 정도면 ‘현상’이라도 해도 될 법한 일들이 1년 사이에 벌어진 것인데, 무엇이 뉴진스 현상을 촉발한 것일까.

아무래도 뉴진스의 독보적인 콘셉트를 창출해낸 하이브 산하 독립 레이블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가 가진 철학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그는 뉴진스 데뷔 전 그 막바지 작업을 하던 2021년 말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에 나와 인상적인 ‘정반합’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소녀시대 이전의 걸그룹들은 정형화된 느낌들이 있었거든요. 닿을 수 없는 미소녀. 비현실적인 그런 느낌이 있었는데, 고민하다 보면, 대중들이 싫증을 금방 느끼잖아요. 근데 그 싫증이 어떤 논리로 이루어지냐 하면 정반합(正反合)으로 보통 전개가 돼요. 정(正)이 있으면 거기에 대한 반(反)이 생기고 그 다음 단계에서는 합(合)이 생기고, 그리고 다시 정반합이 또 이루어져요.”

이건 민희진 대표가 트렌드의 흐름에 그 누구보다 예민한 촉을 갖고 있다는 뜻이고, 그래서 지금까지 흘러온 어떤 흐름에 대한 ‘반(反)’으로써 새로운 아티스트들의 콘셉트를 고민한다는 뜻이다. 결국 그는 이전의 신비주의적인 느낌을 고수했던 걸그룹에서 탈피해 소녀시대를 ‘친근하고 화장기를 뺀 담백한’ 모습으로 내놨고, 전 세계의 팬들을 열광케 만들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비주류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 비주류를 주류로 끄집어냄으로써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비주류의 주류화. 그건 정반합의 다른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다.

신비주의 아닌 친숙함으로 눈길 끌어


▎K팝 걸그룹 ‘뉴진스’의 두 번째 미니음반 트리플 타이틀곡 가운데 하나인 ‘슈퍼 샤이(Super Shy)’가 세계 최대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 스트리밍 2억 건을 기록했다고 소속사 어도어가 9월 7일 밝혔다. / 사진:연합뉴스
그렇다면 뉴진스는 어떤 정(正)의 반(反)일까. 그건 이른바 4세대까지 이어온 걸그룹의 정형화된 틀의 반이다. (여자)아이들이나 블랙핑크, 에스파, 르세라핌, 아이브 같은 4세대 걸그룹은 ‘당당하고 주체적인 이미지’를 강조했는데, 그렇게 된 건 K팝의 주력 팬층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 팬덤을 적극적으로 끌어오기 위한 선택이었다. 즉, 이들은 여성들이 봐도 멋진 ‘워너비’여야 했고, 그래서 누군가에 휘둘리기보다는 스스로 빛나는 그런 존재들이어야 했다. 음악에서도 자기 목소리가 강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에스파의 ‘넥스트 레벨’이나 ‘새비지(Savage)’같은 곡을 떠올려보면 이 걸그룹이 얼마나 걸크러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가를 알 수 있고, 아이브의 ‘일레븐’이나 ‘러브 다이브’ 같은 곡을 들어보면 이들이 얼마나 ‘자기애’가 충만한지를 알 수 있다. 그 어느 쪽이든 강도 높은 자기 존재의 주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이미지는 주로 여전사(에스파)이거나, 주체성 강한 워너비(아이브)로 표현된다.

하지만 이들의 반(反)으로서의 뉴진스는 다르다. 너무 자기 목소리를 내지도 않고 또 주체성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더 나아가 전사의 이미지 같은 건 없다. 그건 어찌 보면 ‘외침’에 가까운 것인데, 뉴진스는 굳이 외치지 않는다. 대신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을 이미지로 가져왔다. 꾸미지 않아도 건강하고 그 자체로 아름다운 청춘의 자연스러움이다. 어째서 ‘하입보이’의 ‘개다리춤’이 그토록 매력적으로 다가오는가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동작은 멋있다기보다는 발랄한 젊음이 보여주는 건강함의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프로페셔널한 동작이라기보다는 꾸밈없는 그 세대의 젊음을 표현하고 있다고나 할까.

뉴진스의 반(反)은 음악에서도 나타난다. 원더걸스의 ‘텔미(Tell me)’나 소녀시대의 ‘지(Gee)’ 같은 곡들이 전 국민을 따라 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후크’의 열풍을 불러일으킨 이래, 걸그룹 음악의 핵심은 바로 이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가사, 그리고 따라 할 만한 춤동작이 집중되는 후크에 맞춰져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최근까지도 이어져 왔다. 그래서 이런 곡들은 그 후크 부분의 가사를 마치 ‘펀치 라인’처럼 때려 박는 효과에 집중하곤 했다.

하지만 뉴진스가 첫 곡으로 내놨던 ‘어텐션(Attention)’은 바로 그 후크 부분이 독특하다. 때려 박는 느낌이 아니라, 부드럽게 풀어내는 멜로딕한 라인이 특징이다. 그건 강렬한 자극이라기보다는 아름다운 멜로디 라인처럼 들린다. 그래서 이 곡은 여타 걸그룹의 곡들과 비교해 보면 밋밋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하지만 정반대로 자극적인 가사와 목소리로 콕콕 때려 박는 노래들 속에서 오히려 유니크하게 들린다. 모두가 하이텐션으로 질러댈 때 오히려 미드텐션으로 가라앉히면 그곳만 더 집중되는 특징이 ‘어텐션’에는 의도적으로 담겨 있었다. 이런 미드텐션은 심지어 랩에서도 느껴진다. [쇼 미 더 머니]나 [언프리티 랩스타]에서 듣던, 귀에 팍팍 꽂히는 랩이 아니다. 어찌 보면 전문 래퍼가 아닌 아마추어가 그저 가사를 말하듯이 전하는 ‘어텐션’의 랩파트는 마치 국내 초창기에 들리곤 했던 그런 랩을 듣는 느낌을 준다. 이는 아마추어 같은 느낌을 주지만, 뉴진스라는 ‘청춘의 자연스러움’을 전면에 내세운 걸그룹이라는 이미지와 어우러지며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

‘청춘의 자연스러움’ 전면에 내세워


▎7월 28일 서울 종로구 낙원악기상가에서 뉴진스 팬들이 ‘버니랜드 팝업’을 즐기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가사나 메시지보다 반복되는 리듬과 멜로디가 강조되는 것 역시 여타의 K팝과는 사뭇 다른 선택이다. 뉴진스의 곡을 떠올려보면 가사나 멤버의 가창 부분이 아니라 독특하게 반복되는 비트나 멜로디가 먼저 떠오른다. 곡 자체가 리듬과 멜로디의 반복 위에 아티스트들의 목소리가 살짝 얹어진 형태다. 게다가 뉴진스는 노래를 부르는 데 있어서 그다지 힘을 주지 않는다. 보컬리스트가 본다면 다소 어색한 지점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걸 애써 교정해 프로페셔널하게 담아내려 하지 않는다. 리듬과 멜로디가 이들의 노래와 수평적으로 연결된 느낌이다. 그래서 듣다 보면 저도 모르게 그 리듬에 맞춰 발을 흔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건 뉴진스가 무대에 서서 퍼포먼스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관객들에게 노래를 뽐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틀어 놓은 음악에 맞춰 노래하고 춤추며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니 보는 관객들도 그 안으로 들어가 같이 노래하고 춤추고 싶어진다. 저 ‘롤라팔루자’ 무대에서 나온 외국 관객들의 떼창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세대를 넘어 공유될 수 있는 지대 만들어


▎K팝 걸그룹 ‘뉴진스’가 내세운 청춘의 자연스러움은 다른 걸그룹의 걸크러시 이미지와 대비돼 대중에게 신선함을 준다. / 사진:어도어
민희진 대표가 말하는 ‘정반합’의 과정은 다양한 경계를 해체하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고정된 틀에 대한 반대를 가져와 궁극적으로 그 틀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바로 합으로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뉴진스의 탈경계는 앞서 말한 것처럼 K팝 혹은 걸그룹이라면 당연시되는 ‘프로페셔널’이나 ‘완성형’이라든가, 음악에서 메시지나 가창력을 강조하는 것 같은 공고한 틀을 깨버리면서도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걸 증명해낸 데서 가능해졌다. 특히 그중에서도 뉴진스의 독보적인 부분은 그간 걸그룹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팬덤의 성별이나 세대의 경계를 해체한 지점이다.

사실 아이돌 그룹은 팬덤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꾸준히 해왔다. 소녀시대가 한창 인기를 끌었을 때, 젊은 세대에 집중된 이 팬덤을 중년 아저씨 세대로까지 확장하기 위해 ‘응원’과 ‘활력’의 메시지를 강조하기도 했고, 2NE1은 시작부터 여성 팬덤을 겨냥한 걸크러시를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다. 흔히 ‘보이그룹은 팬덤, 걸그룹은 대중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걸그룹은 상대적으로 팬덤에 취약했는데, 그건 여성 팬덤을 끌어오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걸그룹의 경우는 그래서 팬덤의 흐름이 세대에 따라 달라지는데, 예를 들어 과거 소녀시대나 원더걸스 같은 걸그룹에는 소녀 팬들이 존재했지만, 큐티나 섹시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당연한 듯 남성 팬에 어필했고 나아가 삼촌 팬까지 겨냥했다. 물론 이들의 인기는 남성 팬덤에 의해 주도됐다기보다는 ‘국민적인 신드롬’에 가까운 대중성으로 가능했다. 팬은 아니라도 한 번쯤 따라 하게 만드는 가사와 춤이 국민적인 현상으로 벌어지곤 했다. 하지만 3세대, 4세대를 지나오면서 팬덤이 더더욱 중요해진 시대로 들어오자 걸그룹 역시 여성 팬덤을 주축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목표가 생겨났다. 블랙핑크처럼 걸크러시를 내세워 ‘여성들의 워너비’가 되려는 걸그룹들이 쏟아져 나온 건 그래서다.

하지만 뉴진스는 굳이 여성들의 워너비 같은 이미지를 강조하지 않았다. 대신 Y2K의 문화적 코드 같은 공감대를 바탕으로 그 시대의 감성에 매료되는 팬들을 끌어모았다. 즉, 남녀노소 누구나 ‘힙’하다고 여기면 함께 즐길 수 있는 팬덤이 꾸려지게 된 것이다. 특히 Y2K라는 2000년대를 넘어오며 생겨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문화적 분기점은 세대를 넘어 공유될 수 있는 지대를 만들었다. 즉 그 시대를 살았던 중장년 세대에게는 아날로그 감성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시점이고, 그때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는 ‘뉴트로’로 대변되는 아날로그의 ‘힙’함이 존재하는 시점이다. 그리고 그 공유 지점을 관통하는 건 ‘청춘’이라는 키워드다. 중장년 세대에게는 자신들의 추억 속에서 소환한 청춘이 있고, 젊은 세대에게는 현 시대와 호흡하는 청춘이 있는 것이다.

정반합을 통한 끝없는 진화 보여줘


▎하이브 산하 독립 레이블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는 뉴진스의 독보적인 콘셉트를 창출해낸 주인공이다. / 사진:하이브
민희진 대표가 이야기한 정반합은 사실상 문화가 진화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구 문화에 반하는 동양의 문화가 등장해 그 합으로써 또 하나의 진화된 세계가 열린 것이 현재의 글로벌 문화가 아닌가. 최근 글로벌 열풍을 만들고 있는 K팝, K드라마, K무비 등 K콘텐트의 힘은 다름 아닌 바로 이 정반합의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서구에서 유행하는 장르를 재빨리 섭렵해와 우리식의 해석을 더함으로써 K콘텐트라는 독특한 영역이 생겨났고 그것이 이제는 시차 없이 전 세계에서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뉴진스가 가진 의미는 K팝 걸그룹의 흐름에 반하는 어떤 걸 꺼내 기존의 것들과 섞어냄으로써 또 다른 세계를 열었다는 정도에 머물지 않는다. 뉴진스는 이미 그 존재 자체로 국가 같은 공간적 경계나 세대 같은 시간적 경계는 물론이고, 동서양과 성별·인종·언어·문화 등 20세기에 공고하게 나누어졌던 경계를 해체하는 의미를 가진다. 그건 뉴진스가, 혹은 이를 만들어낸 민희진 대표가 의도했다기보다는 1세대에서 4세대까지 끝없이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고 글로벌을 지향하며 진화를 거듭해온 K팝 걸그룹의 흐름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 밑그림 위에서 정반합을 통한 끝없는 진화를 멈추지 않은 것이 결국 이러한 경계 해체 시대의 아이콘을 탄생시켰다.

이제 글로벌 시대의 문화 콘텐트는 나라와 인종과 언어는 물론이고, 성별과 세대로 나뉘어 소비되는 단계를 지나갔다. 그보다는 문화적 공감대나 취향 같은 것들이 소비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어떻게 하면 폭넓은 공감대와 취향을 오래도록 가져갈 수 있는가가 관건이 되는 것이다. 뉴진스가 그룹명으로 꺼내놓은 ‘새로운 청바지’는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전 세계 남녀노소가 한 번쯤 입어봤을 청바지를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누구나 편안하게 입을 수 있지만, 때로는 섹시하게 연출할 수도 있고 때로는 스타일리시하게 리폼도 가능한 청바지. 그래서 지금의 뉴진스가 미래에도 똑같을 거라고 생각하진 말자. 이들의 성장이 보여줄 또 다른 모습들은 이들이 내세우는 ‘자연스러운’ 변화 속으로 우리를 또다시 이끌 수 있을 테니.

※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MBC 시청자 평가원, JTBC 시청자 위원으로 활동했다. 백상 예술대상, 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며 SBS [열린TV 시청자 세상], KBS [연예가중계]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했다. 저서로 [숨은 마흔 찾기],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웃기는 레볼루션] 등이 있다.

202310호 (2023.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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