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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의 일본 직설(直説), 요설(妖説) 그리고 곡설(曲説)(3)] ‘퍼머크라이시스’ 시대, 화를 복으로 바꾼 공간을 찾아서 

도쿄 최대 사찰 센소지의 ‘구메노헤이나이’ 위령탑 

1000명을 죽인 사무라이, 죄 깨닫고 “사후에 나를 밟아 달라” 유언
저주받은 무덤이 시대 흘러 일본 내 최대 ‘인연맺기’ 성지로 탈바꿈


▎센소지는 도쿄 최대 규모의 사찰이다. 일본은 사찰 주변이 최대 상가 지대이기도 하다. 사람과 상품이 모이는 만큼 대대손손 많은 스토리가 탄생하는 역사의 무대이기도 하다. / 사진:유민호
'퍼머크라이시스(Permacrisis)’ 영국 콜린스 사전이 발표한 2022년 ‘올해의 단어’다. 영원(Permanent)과 위기(Crisis)를 합성한 말로, ‘끝없이 밀려드는 위기’로 해석할 수 있다. 1978년 런던에서 탄생한 콜린스는 신세대 영어사전의 대명사다. 인터넷에 처음으로 활용된 디지털 사전으로, 1884년 탄생한 옥스퍼드 사전과 달리 트렌드나 청년층 영어에 주목한다. 퍼머크라이시스는 3년간 팬데믹이 막 끝나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밀어닥친 시기에 등장한 신종 유행어다. 바이러스 공포에서 벗어나 막 안도의 숨을 쉬려고 하는 순간, 곧바로 핵전쟁 협박이 시작됐다.

퍼머크라이시스의 근거나 배경은 팬데믹이나 우크라이나 전쟁에 그치지 않는다. 급증하는 이산화탄소와 올여름 세계를 강타한 이상 기후, 전 세계에서 끊이지 않는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팬데믹 이후 밀어닥친 살인적 물가, 프랑스 파리 전체를 무법천지로 만든 폭력 시위, 심심하면 등장하는 김정은의 핵폭탄 불바다 협박, 민주주의를 가장한 페이크 포퓰리즘 정치, 미·중 디커플링… 퍼머크라이시스의 위력은 위기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과 함께 위기의 체감도가 전 세계적 동시 확산이라는 점에 있다.

세상만사가 그러하듯 어디를 보면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정반대 결론으로 나아갈 수 있다. 퍼머크라이시스 쓰나미 시대라고 해도 살아갈 길은 ‘반드시’ 존재한다. 고사성어 ‘전화위복(轉禍爲福)’은 그 같은 희망적 세계관으로 연결시켜 줄 발상 중 하나일 듯하다. 화를 복으로 바꿀 수 있다. 화로서의 퍼머크라이시스가 밀려와도 복으로 바꿔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전화위복이라는 고사성어에서 주목할 부분이 하나 있다. 수동이 아니라 능동형이라는 점이다. 복권 당첨처럼 가만히 있어도 복으로 굴러오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 지혜와 전략을 최대한 가동하는 과정에서 복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전화위복이다. 직접 나서서 화를 복으로 만드는 것이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히 복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다. 노력과 지혜의 결과로서의 전화위복이다.

신사나 절에서 소원을 비는 일본 문화


▎구메노헤이나이는 참화의 의미로 자신의 석상을 만들었다. 현재 조롱과 멸시가 아니라, 청춘 남녀의 인연맺기 상징으로 사랑을 받는 곳으로 변했다. / 사진:유민호
화를 복으로 바꾸는 노력과 지혜의 출발점이라고나 할까? 일본 도쿄 최대 사찰인 아사쿠사(浅草)의 센소지(浅草寺)에 가면 화를 복으로 바꾼 작은 공간 한 곳을 만날 수 있다. 센소지 본당을 정면으로 볼 때, 입구에 해당하는 호조몬(宝蔵門) 바로 오른쪽에 들어선 작은 위령탑이다. 17세기 사무라이 ‘구메노헤이나이(久米平内: 이하 구메)’라는 인물을 기리는 탑으로, 대부분은 무심하게 스쳐가는 곳이다. 한국인이 보면 신사(神社)와 절을 구별하기가 어렵다. 보통 신사라고 하면 천황과 연결하면서 극우 우익 군국주의와 같은 개념으로 연결될 듯하다. 신사는 중국 도교, 멀리는 인도의 힌두교 영향을 입은 종교다. 일본은 ‘망자(亡者)=신’으로 본다. 죽으면 모두 신이 된다는 의미다. 따라서 신사에 모셔진 모든 사람이 신이다. 천황도 그중 하나다. 불교 사찰은 부처를 중심으로 한 불교 관계자를 모은 곳이다. 부처의 제자, 부처의 세계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을 모신 곳이다. 그러나 신사와 절에는 서로 겹쳐지는 신도 많다. 한국 절에서도 볼 수 있지만, 칠성신(七星神)은 원래 도교의 신들이다. 거꾸로 신사에 가면 불교 관련 신들을 만날 수 있다. 서로 공통분모가 많은 종교지만, 필자가 구별하는 신사와 절의 차이 중 하나는 무덤에 있다. 간단히 말해 경내에 일반인들의 무덤이 없으면 신사, 있으면 절이다. 예외도 있지만, 무덤 유무를 통해 신사와 절을 구별하면 된다.

도쿄 센소지 ‘구메탑’은 결혼이나 남녀 간 애정에 주목하는 사람들의 필수 방문지로 통한다. 이른바 ‘인연맺기(縁結び)’ 성지로, 결혼을 원하거나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명소로 유명하다. 신사와 절은 관혼상제는 물론 감사와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한국과 거의 비슷하지만 다른 것도 많다. 필자가 특히 주목하는 차이점은 ‘맞춤형 성지’라는 부분이다. 800여 개에 이르는 포케몬 캐릭터에 비교될 만한 세계라고나 할까? 일본의 신사와 절은 백화점이나 시장 같은 총론으로서가 아닌, 형형색색 다른 모습과 목적에 맞춰진 맞춤형 성지로 활용된다. 예를 들어 영화나 TV 드라마 제작자가 성공기원 기도를 하고 싶다고 하자. 한국이라면 어디에 가서 기도를 할까? 제작사 사장이 자주 가는 큰 절이나 교회에 가서 기도를 올리는 것이 보통일 듯하다. 일본은 어떨까? TV 드라마 성공기원용 신사나 절이 따로 있다. 필자가 최근 직접 봤지만, 도쿄 아카기(赤城)신사 내 작은 기도원이 증거다. PD와 스태프를 포함한 일본 전역 드라마 관계자들의 기도문이 아키기신사 기도원에 넘친다. 시청률이 오를 수 있도록, 광고가 많이 붙을 수 있도록, 프로듀서의 20번째 작품이 성공할 수 있도록… 같은 기원과 희망을 적은 글들이다. 도쿄만이 아니라 일본 전국의 드라마 관계자들이 다녀갔다. 40대 이상 성인 눈에는 800여 개 포케몬 캐릭터 대부분이 비슷하게 보일 것이다. 20대 이하 세대에게 물어보길 바란다. 이름을 전부 외우는 것은 물론 성격이 어떤지, 어떤 식으로 싸우는 캐릭터인지에 대해 훤하다. 아카기신사의 파워는 전설적 인기 프로듀서가 기도를 한 곳이라는 소문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친구나 다른 동업 관계자들도 찾으면서 유명해진 드라마 관계자 맞춤형 성지로 볼 수 있다. 일본은 다신교 국가다. 무려 800만 개의 신이 신사와 절에 존재한다고 한다. 일본 신사와 절은 800여 개 포케몬 캐릭터보다 1만 배 더 많은 용량과 능력을 갖춘 맞춤형 성지다.

사무라이의 살인은 무조건 정당화하던 일본


▎구메노헤이나이는 당대의 이름난 검객이었다고 한다. 밤이 되면 아사쿠사 주변 행인을 살해하면서 ‘1000명 살해 사무라이 명성’이란 망상에 빠졌다. / 사진:유민호
궁금한 것은 센소지 구메탑이 일본 내 최고의 인연맺기 성지로 떠오른 이유다. 이야기는 17세기 중엽 에도(江戸)시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이 사라지면서 도쿠가와(徳川) 막부 통치하의 번영과 안정이 시작된다. 평화 속 사무라이는 김빠진 맥주 같은 존재다. 모두가 피한다. 히고(肥後: 현재 구마모토) 출신의 유명한 검객 구메조차도 오갈 곳 없는 실업자로 전락한다. 매일 불만과 우울증으로 보냈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구메는 사무라이 자존심을 유지하려는 기발한 생각 하나를 갖게 된다. 1000명 살해(千人斬り) 계획이다. 일본 사무라이 세계의 잔인한 인습으로, 1000명을 죽이면 최고의 사무라이에 올라서고, 더불어 병도 안 걸리고 죽음을 초월할 수 있다는 기묘한 신앙이다. 주목할 부분은 살해 방식에 관한 부분이다. 사무라이 정면 대결에 의한 살해가 아니다. 사무라이끼리 살해도 가끔 있지만, 대부분의 타깃은 힘없고 무장도 하지 않은 일반 백성이었다. 이른바 ‘쓰지키리(辻斬)’라고 불리는 살해방식으로, 행인을 아무런 이유 없이 단칼에 죽이는 식이다. 에도시대 상식이지만, 농민 등 일반 백성은 동물 이하로 취급됐다. 적당한 핑계와 함께 죽여도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일본 영화에 자주 나오지만, 사무라이 살인을 정당화하는 유명한 문구 하나가 있다. ‘죽여서 미안(斬り捨て御免)’이라는 말로, 일종의 정당방위로서 상대를 죽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힘없는 비무장 농민을 정당방위로 죽였다는 말이 이상하지만, 사무라이 정부인 도쿠가와 막부는 ‘죽여서 미안’을 인정했다. 17세기 중반 이후 변하지만, 그 이전까지만 해도 쓰지키리는 문제될 게 없었다.

1000명 살해 계획은 구메의 거주지인 현재의 아사쿠사 주변에서 이뤄졌다. 당시에도 사찰 방문객들로 넘쳐났다. 어둠이 깔리는 순간 혼자 나가서 행인을 칼로 살해한다. 정확히 몇 명이나 죽였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구메는 40대 들어서면서 불교에 전념한다. 황당한 망상으로 1000명 살해에 나섰지만, 부처를 가까이 하면서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게 된다. 1687년 68세로 세상을 떠나면서 유언 하나를 남긴다. 행인들이 밟고 지나갈 수 있도록, 자신의 모습을 새긴 석상을 바닥에 깔아달라는 부탁이다. 인간 이하의 죄를 지은 이상, 저세상에 가도 사람들의 멸시와 천대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센소지 경내에 석상이 메워지면서 1000명 살해 사무라이를 밟으려는 사람이 몰려들었다.

앞서 강조했지만, 센소지의 구메탑은 인연맺기의 상징이자 성지로 통한다. 1000명을 살해한 사무라이의 위령탑이 어떻게 해서 남녀 사랑의 출발점이 될 수 있었을까? 구메 석상을 발로 밟는 행위는 일본어 동사 ‘밟는다(踏みつける)’라는 표현으로 나타났다. 일본어로 ‘후미쓰케르’로 발음하지만, 똑같은 발음으로 ‘연애편지를 보낸다(후미쓰케르: 文つける)’라는 문장이 있다. 석상을 밟는다는 의미를 같은 발음에 기초한 ‘연애편지를 보낸다’는 말로 풀이하면서 위령탑의 성격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극(劇)적이고도 극(極)적인 변신이다. 1000명을 살해한 사무라이의 무덤에서 연애편지를 주고받는 사랑의 공간으로 바뀐 셈이다. 저세상에 간 구메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지만, 2023년 구메탑은 젊은 청춘남녀와 사랑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인연맺기 무대로 활용되고 있다.

전화위복 세계관을 관찰할 수 있는 명소로

일본에 머무는 동안 1주일에 한번은 들른 곳이 센소지다. 대략 오후 4시쯤 간다. 일단 필자의 단골 가게인 아사쿠사 스시집이 먼저다. 긴자(銀座)에 본점을 둔 100년 노포(老舗)지만, 아사쿠사 분점은 저가에다가 손님도 드물고 오후 내내 문을 연다. 2시간 한정해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는 5000엔짜리 스시가 단골 메뉴다. 장년에 접어들면서 뷔페 등에서 ‘왕창 먹기(All you can eat)’를 피한다. 그러나 아사쿠사 5000엔 스시는 예외다. 30여 종의 스시와 마키(巻)를 전부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로 시킬 경우 한층 더 비싸다. 최고급 생선과 재료만 사용하는 긴자 본점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며 너무도 저렴하다. 긴자에서 파견된 요리사가 1주일에 한 번씩 바뀌면서 스시를 만든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스시집에서 배를 채운 뒤 대략 오후 6시부터 아사쿠사 산책에 나선다. 낮의 관광객이 한순간 빠져나가면서 식당을 제외한 모든 공간이 한산해진다. 어둠 속에서 목적지 없이, 여기저기 한적한 곳만 골라 산책에 나선다.

지난 8월 초에도 스시집에 들른 뒤 구메탑으로 향했다. 밤이 되면 센소지 주변은 붉은 등으로 달아오른다. 센소지는 개와 산책하는 것을 허용하는 사찰이다. 어둠이 짙어지면서 사찰 안을 오가는 개가 늘어난다. 구메탑은 센소지 본당에 장식된 붉은 등에서 떨어져 있다. 구석에 있고 어둡기 때문에 다른 데에 비해 오가는 사람도 드물다. 구메탑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옆에는 깃발이 늘어서 있다. 에도 시대 때 땅에 묻혔던 구메 석상은 탑 안에 들어서 있다. 그러나 완전히 밀폐돼 있기 때문에 탑 안을 볼 수가 없다. 일본 역사서 자료를 보면 다소 엉거주춤한 모습의 좌상이다. 전쟁 때 공습으로 부서지면서 재현한 상태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좁지만 깨끗하고 안정된 느낌을 주는 공간이다. 구메탑 앞에서 가볍게 묵례를 했다. 구메만이 아닌, 몇 명인지도 모르는 희생자에 대한 예의다.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사람들의 한이 구메탑 주변에 어른거린다는 느낌이 든다.

비극적 현실이지만, 구메탑은 한국의 모습과 너무도 대조적인 곳이다. 2023년 한국, 아니 근현대사 100년과 조선왕조 500년과 비교해볼 때 너무도 대조적인 세계가 구메탑이다. 2020년 등장한 법안으로 ‘친일파 파묘법’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국립묘지에 묻힌 사람들 가운데 친일파로 규정된 사람의 묘를 파내자면서, 한동안 나라 전체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법안이다. 후에 일본 대사로 간 정치인이 주도한 법으로 결국에는 흐지부지 끝났다. 발상 자체가 너무도 잔인하다. 21세기 들어 서방선진국 가운데 파묘를 통해 과거를 단죄하려는 곳이 한국 외에 있을지 의문이다. 친일파에 대한 개념이나 기준도 제멋대로지만, 이미 죽은 사람의 무덤을 파내자는 조선왕조 당파전쟁 당시 세계관이 부활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었다. 정치나 진영 논리에 따라 무덤 하나 파내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문화혁명식 사고가 한국 사회에 팽배해 있다는 의미다. 그 어떤 이념과 논리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고 했던가? 도를 넘어선 이상, 정권이 바뀌는 순간 파묘를 주장한 사람과 그 주변도 역풍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과거사 척결은 오늘과 내일에 대한 비전이 없는 무능력자를 위한 핑계이자 고정 메뉴다. 2차 세계대전 직후라면 이해가 간다. 21세기 중반으로 향하는 시점에 과거사 척결에 나서는 정신적 후진국의 선두주자가 바로 한국이다. 핏빛 눈에다가 거품을 물고 행해지는 파묘는 해방 직후 만연했던 완장정치의 부활이다. 구메탑을 한국 정치논리에 적용한다면 이미 350여 년 전 파헤쳐지고 불태워졌을 파묘 대상에 불과하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가족들, 치안과 안전을 부르짖는 정치가가 볼 때 사무라이 구메에 관한 기억 자체가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럽다. 그냥 센소지 위령탑을 부숴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구메탑은 이런저런 사연을 거쳐 17세기 중반 이후 지금까지 건재하다. 공습으로 부서지자 다시 수리해 보관할 정도다. 면면히 지속된 역사라는 점도 놀랍지만, 피에서 출발한 구메탑이 남녀 간 사랑의 접점으로 ‘재활용’된다는 사실은 한층 더 믿기 어렵다.

영웅은 물론 악당의 흔적도 남겨두는 일본


▎기라 요시히사는 한국의 원균에 해당되는 일본 국민 악당이다. 원균은 흔적도 없지만, 기라를 모시는 공간과 스토리는 추신쿠라 이후 3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존재한다. / 사진:유민호
인연맺기 구메탑이 우연의 소산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일본 문화를 조금만 이해한다면 일본 역사 전체에 적용할 일반·일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령 지금까지 126대(代)에 걸쳐진 천황가(家)를 보자. 멀리는 기원전 660년부터 시작된 세계 최고(最古)를 자랑하는 가문이 천황가다. 2000년 바티칸 교황 역사보다도 길다. 피를 기준으로 한다면 2023년 천황 나루히토(徳仁)와 연결된 역사는 6세기 중반부터 시작됐다. 한반도 도래설에 기초한 천황가 역사다. 짧게는 1500여 년, 길게는 2600여 년 역사를 가진 셈이다. 길고 긴 시간이 흐른 만큼, 수많은 우여곡절이 천황 역사에 드리워졌다. 암살은 기본이고, 허수아비 천황이나 천황 부재 천황가도 있었다. 가까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최고책임자로 형장에 끌려갈 법한 천황도 있었다. 적은 항상 내부에 있다. 전승국 장군 맥아더가 점령군(GHQ) 통치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히로히토(裕仁)를 이용했다지만, 만약 일본 국민들이 천황 처단을 원했다면 실행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히로히토는 재판정에 세워지지 않았고, 천황제도 사라지지 않았다. 구메탑을 부수지 않고 350여 년간 이어왔듯이 파란만장한 천황가도 일본 역사와 함께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매년 연말이 되면 등장하는 드라마로 ‘추신쿠라(忠臣蔵)’라는 시대극이 있다.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을 통해 접한 한국인도 많을 것이다. 실화에 기초한 스토리로, 일본식 충(忠)과 성(誠)의 최고 아이콘으로 평가된다. 현재의 고베 지역인 아코(赤穗)의 주군 아사노 나카노리(浅野長矩)의 할복을 둘러싼 복수극이다. 주인공은 한명이 아닌 무려 47명에 달한다. 주군을 죽음으로 몰아세운 기라 요시히사(吉良義央)를 살해한다. 곧바로 기라의 목을 주군 아사노 무덤에 바친 뒤 47명 모두 할복으로 끝난다. 가부키(歌舞伎)는 물론 영화, 소설, 만화로 만들 경우 ‘반드시’ 히트를 치는, 만년 베스트셀러 스토리가 추신쿠라다.

기라는 추신쿠라에 등장하는 악당의 화신이다. 18세기 초에도 정권에서 의전담당 총책임자로 일했다. 전국 260여 개 막부가 에도에 모일 때의 예법을 총괄하는 관료로 보면 된다. 그러나 추신쿠라 스토리에서는 막부 권력에 붙어 금권정치에 탐닉하는 간신으로 묘사된다. 기라는 아사노를 예의도 모르는 촌놈 사무라이라면서 조롱한다. 도쿠가와 쇼군(将軍)에게 바치는 예물이 적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아사노만 눈 아래로 대한다. 참다못한 아사노가 기라를 칼로 찌른다. 당시 궁궐 안에서 칼을 휘두를 경우 도쿠가와 예법에 반하는 중형에 처해졌다. 사건 당일 할복에 처해진다. 아코 부하 사무라이들은 주군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더불어 원인 제공자인 기라가 할복에 처해지지 않았다는 점에 분노한다. 복수에 복수를 다짐하다가 21개월 뒤 기라 집을 기습공격한 뒤 목을 벤다.

선과 악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금물

센소지 구메탑의 연장선일 듯하지만, 기라에 관한 흔적은 3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도쿄에 남아 있다. 1703년 1월 30일 눈 내리던 새벽 자행된 47명의 복수극 현장, 즉 기라의 집이 현장이다. 도쿄 센소지 구메탑에서 걸어서 남쪽으로 2㎞ 떨어진 ‘료고쿠(両国)’라는 곳에 있다. 현재 공원으로도 활용되고 있지만, 일본인만이 아닌 외국인 추신쿠라 팬도 들르는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지난 7월 중순 ‘국민 악당’ 기라를 만나러 현장에 갔다. 18세기 초 기라의 대저택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다. 겨우 20평 정도 공간만이 역사의 현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기라의 좌상이 한가운데 들어서 있다. 사무라이 47명이 기라의 목을 벤 뒤 칼을 씻었다는 우물이 한쪽 구석에 남아 있다. 현장에서 접한 기라의 모습은 악당이나 간신과 전혀 무관하게 그려져 있다. 기라는 나름대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원한을 사면서 죽음에 이르렀다는 식의 설명이 전부다. 추신쿠라 사무라이 47명에 대한 비판이 아닌 기라 시각에서 본 인생이다.

필자가 내린 결론이지만, 기라는 기라대로, 47명의 사무라이는 자기들대로의 일과 정의가 존재한다. 어느 것이 모든 세상에 통용될지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문제일 뿐이다. 드라마에서처럼 47명의 복수를 정의로 잡을 경우 1년 내내 세상이 피로 물들 것이다. 기라의 논리처럼 할 경우 금권정치가 판을 치면서 사무라이의 자존심도 무의미할 듯하다. 구메탑이 그러하듯 지나간 것을 새롭게 끄집어내 파묘로 단죄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 한국식 파묘법에 따르면 기라 좌상은커녕 기라에 관한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47명의 사무라이를 멋지게 보는 것은 좋다. 그러나 47명을 절대선으로 보고, 기라를 국민 악당으로 몰아세우면서 파묘로 가는 것은 옳지 않다. 각자의 판단에 맞춰 자기의 인생을 다지는 교훈이자 모델로 삼으면 된다. 흑백으로 나눈 뒤 선동을 통해 상대를 부관참시하는 식의 문화가 아닌 것이다.

필자의 주장 중 하나지만 이순신의 원균, 흥부의 놀부, 춘향의 변학도, 심순애의 김중배를 위한 ‘나도 한마디’ 무대가 절실하다. 원균 좌상 하나를 만들어 거기 논리에 맞춰 기리는 것도 필요하다. 나름대로 ‘반드시’ 이유가 있다. 흥부를 밥주걱으로 때린 놀부 마누라에게도 나름 이유가 있다. 억지 논리이자 핑계라도 좋다. 들어본 뒤 각자가 알아서 판단하면 그만이다. 부수고 무너뜨리기는 쉽다. 그러나 한번 쓰러질 경우 세우기 어렵다.

일본으로 가는 한국인 관광객이 매달 20만 명 가까이 된다고 한다. 도쿄 센소지는 방문 0순위 명소다. 센소지 바로 옆에는 같은 한자 이름의 아사쿠사신사(浅草神社)도 있다. 구메탑은 센소지와 아사쿠사신사를 삼각형으로 연결하는 꼭짓점에 해당된다. 신사와 절의 차이와 더불어 전화위복 세계관의 관찰, 나아가 마음에 드는 이성과의 인연을 원한다면 구메탑에 들를 것을 권한다. 퍼머크라이시스 시대일수록 사랑이 절실하다. 머리카락이 곤두설 수도 있지만, 낮보다는 늦은 밤이 더 좋을 듯하다. 사랑에 관한 문제는 인산인해 관광객으로 채워진 대낮보다는 한적하고도 쓸쓸한 밤에 한층 더 어울릴 듯하다.

※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2310호 (2023.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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