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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의 기후와 문화 그리고 작품을 찾아서(15)] 영화 '투모로우'에 나오는 북대서양 해류와 빙하기 문제 

온난화로 더 추워진다고? 전 지구적 기후재난 현실 될 수도 

빙하 한꺼번에 녹으면 한류(寒流) 쏟아져 곳곳서 빙하기 시작
1만여 년 전 대규모 해일, ‘노아의 방주’ 등 홍수 설화 배경으로


▎영화 [투모로우]에는 얼어붙은 미국 뉴욕과 자유의 여신상이 나오는데, 영화를 본 많은 기후학자가 “단순히 픽션이라고 흘려들을 스토리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 사진:영화 [투모로우] 스틸컷 캡처
기후학자인 잭 홀 박사는 국제회의에서 급격한 지구 온난화로 인해 남극, 북극의 빙하가 녹고 바닷물이 차가워지면서 해류의 흐름이 바뀌게 돼 결국 지구 전체가 빙하로 뒤덮이는 거대한 재앙이 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비웃음만 당한다. 얼마 후 잭의 아들은 미국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이상난기류를 겪고, 일본에서는 대형 우박으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는 등 지구 곳곳에서 이상기후 신호가 나타난다. 잭은 해양 온도가 13도(℃)나 낮아졌다는 데이터를 본 뒤 지구 북반구에 빙하기가 닥칠 것이라는 사실에 전율하고,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미국 백악관은 빠르게 얼어붙고 있는 북부를 포기하고 중부 및 남부 주민들을 멕시코 등 남쪽으로 대피시키는 비상령을 내린다.

2004년 개봉한 영화 [투모로우]의 줄거리다. 이 영화의 백미는 아마도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얼어붙은 뉴욕과 밀려드는 해일에 자유의 여신상이 휩쓸려 떠내려가는 충격적인 장면일 것이다. 극단적인 시나리오 같지만, 많은 기후학자 등으로부터 “단순히 픽션이라고 흘려들을 스토리는 아니다”라는 평가를 받았고, 많은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지난해 영국에서 연수차 1년가량 거주했다. 그때 놀랐던 것 중 하나는 11월에도 잔디가 푸릇푸릇하게 유지되는가 하면 12월에도 영상 10도 안팎을 유지한다는 점이었다. 아침에 반바지를 입고 템스 강변을 조깅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다. 놀랐던 이유는 내가 머물던 런던이 북위 42도로 한반도 정북진에 해당하는 중강진(41도)보다 높다는 것. 겨울에 영하 40도를 오르내린다는 중강진보다 더 북쪽에 있는데, 영상의 기온을 유지하는 것이 퍽 인상적이었다. 런던뿐이 아니었다. 심지어 훨씬 북쪽에 있는 스코틀랜드도 겨울에 영상인 날이 많았다. 양이 풀을 뜯을 수 있는 푸른 들판이 유지되는 것도 마찬가지. 그러니 우리나라 축구 팬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11~2월에 중단 없이 진행되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가능할까? 비밀은 영화 [투모로우]와도 연결되는 북대서양 해류에 있다.

유럽과 북미의 운명을 바꾼 북대서양 해류


▎대서양 자오선 역전순환(AMOC)’은 북극에서 차가운 심층수가 캐나다, 미국의 연안을 따라 흘러가면 멕시코만에 있던 따뜻한 난류가 유럽 쪽으로 이동하는 해류 순환 현상을 말한다. / 사진:네이처
유럽과 북아메리카 사이에는 거대한 북대서양 해류가 순환한다. 북극에서 차가운 심층수가 캐나다, 미국의 연안을 따라 흘러가면 멕시코만에 있던 따뜻한 난류가 유럽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염분이 바닷물을 순환하도록 만드는 ‘열염순환’과 대기 작용에 의해 나타난 것으로, 흔히 ‘대서양 자오선 역전순환(AMOC)’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반복되면서 북극해의 한류는 미국 남부와 중남미를 차갑게 식혀주고, 멕시코만의 난류는 대서양 동부 연안에 붙은 유럽 국가들을 따뜻하게 덥혀준다.

한겨울에 연해주와 위도가 같은 영국이 상대적으로 따뜻할 수 있는 이유다. 반대로 북극해의 한류 영향을 받게 되는 대서양 서부 연안에 있는 도시들은 겨울에 한반도만큼이나 추워진다. 허먼 멜빌의 [백경]에서 묘사한 19세기 미국 뉴욕 맨해튼의 11월을 보자.

“조금 더 걸어가자 ‘황새치 여인숙’의 새빨간 창문에서 타는 듯한 빛줄기가 새어 나와 집 앞에 쌓인 눈과 얼음을 녹여버린 것처럼 보였다. 다른 곳에는 모두 아스팔트 포장도로 위에 서리가 한 뼘 두께로 얼어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내 부츠 바닥은 너무나 무자비하게 혹사당해서 지독하게 비참한 상태였기 때문에, 부싯돌처럼 단단하고 울퉁불퉁한 얼음을 밟고 걷기가 좀 피곤했다.”

12월이 돼도 얼음을 보기 힘든 영국 런던과 달리 미국 뉴욕은 이미 11월만 돼도 눈과 얼음이 쌓이는 날씨였던 것이다. 두 도시의 이러한 차이를 만든 것이 바로 북대서양 해류의 움직임이다. ‘만약 북대서양 해류의 흐름이 정반대였다면’이라는 재미있는 상상도 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두 도시의 기후는 정반대가 될 것이다. 북극의 한류가 떠내려온 영국·프랑스·스페인 등 서유럽의 해안가, 그러니까 대서양 동부 연안은 겨울에 몸을 덜덜 떨 정도로 추워지게 될 것이고, 겨울 휴가지로 인기가 높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해안들도 그다지 재미를 보기 어려워질 것이다. 반대로 뉴욕이나 몬트리올 같은 도시들은 이전보다 따뜻한 겨울을 지내게 될 것이다.

영화 [투모로우]의 상상력이 극대화된 지점은 지구 온난화가 빙하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가설이다. TV에서 갈 곳을 잃은 북극곰이 좁은 빙하들 사이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장면을 여러 번 봤을 것이다. 지구가 뜨거워져서 빙하가 녹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다.

그런데 어느 날 지구의 북극 빙하가 모두 녹으면서 한류(寒流)가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 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로 인해서 북극 한류의 영향을 받고 있던 캐나다와 미국 북부 일대는 순식간에 빙하기에 접어들게 될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주장이다.

2025년부터 해류 시스템 붕괴될지도

얼마 전 덴마크 코펜하겐대 페테르·수잔네 디틀레우센 교수 연구팀은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1870~2020년 북대서양 해수면 온도와 해류 흐름을 관측한 결과, 현재와 같은 북대서양 해류 시스템이 2095년 이전에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에 따르면 해수 순환은 최근 150년 동안 눈에 띄게 불안정해졌는데,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극지방의 얼음이 녹고, 담수가 유입돼 바닷물의 염도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류 시스템이 붕괴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기는 2039~2070년이라고 제시하면서 이르면 2025년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보다 앞서 2020년에는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과 위트레흐트 대학 연구팀은 시뮬레이션 결과 북대서양 해류의 순환 속도가 20세기 중반보다 15%가량 느려졌다는 분석을 온라인 과학학술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내놓았다. 이들은 디틀레우센 교수팀처럼 북대서양 해류가 완전히 소멸한다는 결론은 아니었지만, 향후 100년 이내에 일시적으로 멈출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으로는 모두 지구 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녹는 현상을 지목한다. 북대서양 해류 시스템을 만드는 대서양 자오선 역전순환(AMOC)은 바닷물 속 염분이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빙하가 녹으면서 담수가 대서양으로 흘러들면 바닷물의 염분 농도가 낮아지면서 흐름을 교란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극의 빙하들이 녹아내리는 속도를 최대한 줄이지 않으면 [투모로우] 같은 재앙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상 이변이 잦아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많은 기후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대서양 자오선 역전순환(AMOC)의 마지막 붕괴가 일어난 것은 1만2800년 전이다. 당시는 무려 10년 만에 지구의 기온이 10~15도나 변했다. 현재 약 1세기에 걸쳐 1.5도가량 온도가 올라간 것을 두고 전 세계가 긴장하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과학자들은 아직도 무엇이 이런 변화를 일으켰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대답하지 못한다. 또한 이것은 급격한 산업화와 탄소 발생이 현재와 같은 온난화를 일으켰다는 통설에 대해 냉소적인 비판이 나오는 원인 중 하나다. 1만2800년 전에 지금처럼 석유나 석탄을 대량으로 소모한 것이 아닌데도, 10년 만에 지구 온도가 급격히 올라간 것을 설명할 수 없다면 현재의 온난화도 지구의 자연적인 현상이거나, 또는 아직까지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1만2800년 전 일어난 지구 기온 급변


▎지구 온난화로 북극곰의 터전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인류의 산업화가 유발했든, 지구의 시스템 때문이든 현재 온난화가 진행 중인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사진:멕신 버켓 미국 하와이주립대 법과대학 교수·기초과학연구원
이에 대한 논쟁을 여기서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다만 1만2800년 전 일어난 이 변동은 지구와 인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로 인해서 약 10만 년 가까이 지속됐던 마지막 빙하기가 끝났다. 그렇게 해서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얼음이 사라지자 인류의 생활공간도 극적으로 확장됐다. 그 이후로도 인류 역사에서는 몇 차례 소빙기가 오기는 했지만, 북아메리카와 유럽 중부를 얼음으로 뒤덮을 만큼의 거대한 빙하기가 찾아온 적은 없다.

다만 좋은 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영화 [투모로우]에서도 뉴욕시가 바다에 잠기듯이 급격한 온도 상승으로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녹아내리자 거대한 해일이 전 지구를 덮쳤다. 이때 세계 곳곳에 살던 인류는 이로 인해 발생한 거대한 홍수에 대한 기억을 전승에 남겼다.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가 가장 유명하지만,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북아메리카 등 세계 곳곳에 비슷한 홍수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것은 그만큼 이 홍수가 전 지구적으로 엄청난 규모였으며, 그 충격이 대단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한편 일부 학자들은 당시 북극의 빙하가 녹아 내려온 이유가 운석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신의 지문]으로 잘 알려진 그레이엄 핸콕이다. 그는 이때 운석이 북아메리카를 덮고 있던 거대한 빙벽에 부딪혔고 이때 발생한 충격과 열로 인해 얼음이 삽시간에 녹으면서 거대한 홍수가 이어지게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류의 산업화가 유발했든, 지구의 시스템 때문이든 현재 온난화가 진행 중인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온난화 속도를 극적으로 제어하지 못할 경우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일부는 공기 중에 에어로졸을 뿌리면 이 입자들로 인해 태양열이 지구 표면에 닿는 수준을 낮춰줄 수 있다고 믿는다. 영화 [설국열차]도 비슷한 발상인데, CW-7이라는 인공 냉각 물질을 대기권 상층에 살포해 지구의 기온을 낮추려다가 오히려 과도하게 냉각돼 빙하기가 도래한다는 배경으로부터 시작된다. 여기서 방주의 역할을 하는 것은 멈추지 않고 달리는 열차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도 있다. 과학계에서는 현재의 온난화에 대해 경각심을 갖는 것은 필요하지만, 1만2800년 전에도 인류가 살아남은 것처럼 지나친 종말론적 공포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미 온난화를 인지하고 있는 만큼 대책을 마련할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라도 과거처럼 영문도 모르고 갑자기 기후변화에 내던져지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 유성운 - 중앙일보 기자.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기후환경학과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저서로 [걸그룹 경제학], [리스타트 한국사도감], [사림, 조선의 586]이 있으며 [당신이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세계사 속 중국사도감] 등을 번역했다.

202310호 (2023.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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