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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인터뷰] 최종건 전 외교차관이 바라본 尹 정부 외교 

“‘가치 외교’보다 이어달리기 외교 필요… 文 정부 신남방 정책은 유지했어야” 

김태욱 월간중앙 기자
“외교·안보 정책은 연속성이 유지돼야 국가의 신뢰도 상승”
“이스라엘 전쟁 교훈? 예방이 최선… 인접국과 협력 외교 절실”


▎최종건 전 외교부 제1차관은 “가치 외교가 아닌 이어달리기 외교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최종건(49)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서 외교 현장과 대북 업무 중심에 서 있던 학자다. 그는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 당시 청와대 안보실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담당했으며, 2020년부터 2022년 5월까지는 외교1차관을 지냈다. 어느덧 학교로 돌아온 지 1년이 훌쩍 지나갔다. 월간중앙과 만난 최 교수는 “지금은 진보, 보수 따지지 말고 ‘국익 외교’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특히 가치 외교보다 이어달리기 외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10월 11일 연세대학교에서 최 교수를 만났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 노선은 ‘가치 외교’로 요약된다.

“통상 외교 앞에는 ‘실리’ 혹은 ‘국익’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가치나 이념을 앞세우면 이분법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와 같은 중견국은 ‘협력 외교’ 혹은 ‘국익 외교’를 해야 한다. 다른 나라와 등지는 것은 바람직한 외교가 아니다. 외교는 기본적으로 적성국과도 소통할 수 있다는 자세로 행해야 한다. 현재 국제사회에서 가치 외교를 내걸고 외교를 하는 나라는 없다. 미국도 협력과 실리외교를 한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협력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최 교수가 말하는 ‘국익 외교’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한반도 안보 상황을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우리는 남북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는다. 그러기 위해 미·중·일·러 모두와 협력하는 것이다. 이 같은 협력에 대해 보수진영에서는 과거 문재인 정부가 동맹을 등한시했다는 프레임을 씌웠다.”

“한·미·일 협력은 수단이지 목적이 돼서는 안돼”


▎최종건(왼쪽) 당시 외교부 제1차관이 2021년 11월 16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웬디 셔먼 당시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 회담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외교부
‘가치 외교’를 통한 한·미·일 동맹 강화가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미·일 협력은 당연하다. 단, 평화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돼야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한발 양보해서 중도·보수적 시각으로 본다고 해도 현 정부의 외교·안보 방향성은 한국의 정통 외교와 어긋나는 것이 많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한국은 기본적으로 한·중 관계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서는 경제는 물론 한반도 안정을 도모하기 어렵다. 한·중 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킨 정부는 다름 아닌 이명박 정부였다. 1992년 중국과 외교 관계를 맺은 것도 보수 정부다. 이처럼 외교는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유럽과 달리 ‘인도태평양 정책’이 아닌 ‘신남방 정책’을 표방했다. 신남방 정책은 현 정부 이후 다시금 인도태평양 정책으로 돌아갔다.

“윤석열 정부에 ‘자존심은 없나’라고 묻고 싶다. 당초 ‘인도태평양’이라는 단어는 일본이 만든 것이다. 이를 트럼프 행정부에서 적극 사용했다.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의 공감이 부족한 상황에서 외부로부터 주어진 개념이라는 얘기다. 아세안에는 대륙 국가와 해양 국가가 있다. 또 그들은 아세안이라는 정체성을 토대로 발전을 도모하는 지역 질서를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가 아세안의 정체성을 적극 감안한 외교 정책을 마련한 이유다. 아울러 ‘신남방 정책’으로 명명한 이유가 있다. 노태우 정부에서 수립된 우리나라의 첫 지역 외교 정책인 ‘북방 정책’을 감안한 것이다. 이를 계승하는 차원에서 ‘신북방’, ‘신남방’으로 이름 지은 것이다. 외교 정책은 한 국가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한국 정도의 국력과 매력도를 지닌 국가라면 고유의 외교 브랜드가 필요하다. 신남방 정책과 같이 정파성이 옅은 외교 정책이 돌연 이번 정부에서 이름이 바뀌었다. 이어달리기 외교가 필요하다.”

이어달리기 외교란 무엇인가?

“외교·안보 정책의 연속성이다. 그래야 국가의 인지도와 신뢰도가 유지·상승된다. 현 정부의 인도태평양 정책과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 정책 모두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브랜드 이름이 바뀌었다. 안타깝다.”

한국·러시아 관계가 요동친다.

“윤 대통령이 키이우에서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다만 메시지 조절이 잘됐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생즉사사즉생’ 발언은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 메시지다. 물론 이번 전쟁은 러시아가 비판 받아 마땅하나 그렇다고 우리 입장에선 한·러 관계를 희생할 필요가 없다. 당장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 124개의 우리 중견 기업들이 진출해 있다. 러시아와 협력의 여지를 남겨놓는 정교한 외교가 필요한 이유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러시아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을 것이다. 그에 따른 북·러 밀착은 우리를 향한 매우 엄중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북한 핵 기술 이전 가능성은 희박”


▎최종건 전 외교부 제1차관은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피해자 해법인 ‘제3자 변제안’에 대해 “향후 문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러 관계를 개선할 방책은?

“미국은 현재도 러시아와 대화한다. 우리도 고위급 대화를 지속해야 한다. 또 이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러시아와 대화하지 못하는 한국은 전략적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제가 경험하기도 했지만, 미국은 문재인 정부가 이란 정부와 대화를 잘 이어가자 한국의 가치를 더욱 높이 평가했던 기억이 있다.”

러시아가 북한에 핵 기술을 이전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러시아가 북한에 핵 기술을 이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은 북한과 러시아의 전략적인 연대, 협력 강화라는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수호국인 러시아가 북한에 쉽게 핵기술을 이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이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을 제공하려 하자 가장 강력하게 반대한 국가가 러시아다. 물론 러시아가 북한에 ‘과학기술’이라는 이름으로 북한이 개발하지 못한 위성 궤도 진입 관련 기술을 이전할 수는 있을 것이다.”

북·러 간 무기 거래가 현실화하면 미국이 한국에 대(對)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공개적으로 압박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살상무기 지원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큰 결정을 필요로 할 것이다. 물론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통해 가치 외교의 선명성을 보이고자 한다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함수 하나가 빠졌다. 바로 바이든의 재선 성공 여부다.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면 우리는 그 순간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접 연루된다. 그런 상황에서 바이든이 재선에 실패하면 셈법이 복잡해진다. 현 정부가 이를 고려하길 바란다. 이럴 때는 침묵이 답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으로 우리 외교 셈법도 한층 복잡해졌다.

“우선 미국은 이스라엘을 강력히 지지한다는 입장을 견지할 것이다. 다만 우크라이나와 달리 이스라엘에는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달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선·악 구분이 어렵다. 미국은 또한 이란을 자극하면 안 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스라엘에 무기를 대규모로 지원할 경우, 중동은 큰 화약고로 변할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인도주의적 입장을 취해야 한다. 교민 철수와 더불어 유엔의 공식 입장과 비슷한 메시지를 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이스라엘 전쟁이 한국에 갖는 의미는?

“먼저 전쟁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윤 대통령처럼 “강력히 응징하겠다”고 윽박지르는 것은 올바른 국정 운영의 자세가 아니다. 전쟁 방지를 위해서는 협력 외교를 해야 한다. 북한은 전쟁이 나도 기본적으로 잃을 게 없는 나라다. 남북 피해 비대칭성이 크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남과 북이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키로 한 9·19 남북군사합의가 중요한 이유기도 하다.”

“강력히 응징하겠다? 북한 자극해선 곤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한반도에 미칠 영향은?

“미국 입장에서는 호전적인 윤 정부를 관리하고 싶을 수도 있다. 북한을 자극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우크라-러시아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동시에 벌어지는 상황에서 한반도까지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면 미국은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이다.”

이번 이스라엘 전쟁을 통해 아이언돔의 신화가 무너졌다. 하마스처럼 북한이 동시다발적인 공격을 감행할 경우 킬체인과 억제력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그 어떤 무기 체계로도 미사일 수십만 발을 동시에 막을 수는 없다. 북한과의 대화가 중요한 이유다.”

지금까지 윤석열 정부의 대미 외교를 평가한다면?

“한국이 얻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우선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우리 기업들이 피해를 봤다. 또 ‘우리 스스로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미국을 협박해 받아낸 것이 ‘워싱턴 선언’이다. 그런데 워싱턴 선언에는 ‘대한민국 대통령 윤석열은 NPT를 준수하고, 한·미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 협정 준수를 재확인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미 동맹 70년을 맞아 우리가 국제규범인 NPT 준수를 왜 다시금 선언해야 할 만큼 국제규범 준수를 못 하고 있는가?”

대일 외교는 어떤가? 반도체 수출 규제 해소라는 성과도 있으나 일본 전범 기업들이 기금(미래청년기금)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아쉬움도 있다.

“현 정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본이 컵의 절반을 채우게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라고 묻고 싶다. 반도체 수출 규제 해제가 성과라는 프레임 자체가 틀렸다. 일본이 단행한 수출 규제는 내정 간섭이었다. 행정부로 하여금 사법부의 판결을 뒤엎으라는 거 아닌가. 아울러 현 정부가 택한 제3자 변제 방식은 문재인 정부에서는 불법으로 판단했던 방식이다. 제3자 변제 방식은 향후 문제가 될 것이다. 추후에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문재인 정부는 기금을 만들되 전범 기업, 즉 피고 기업이 기금에 참여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다. 피고 기업의 기금 참여를 사과로 간주하겠다는 정치적인 이야기까지 했다. 현 정부가 택한 제3자 변제 방식은 강제동원 피해자분들을 마치 ‘돈 받으면 되는 사람들’로 만들어 버렸다. 사실 우리가 버티면 되는 사안이었다. 단언컨대, 일본 전범 기업들은 기금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 글 김태욱 월간중앙 기자 kim.taewook@joongang.co.kr / 사진 김상선 중앙일보 기자 kim.sangseon@joongang.co.kr

202311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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