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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K컬처 톺아보기(최종회)] 한국영화 침체기 언제까지 

1000만 감독·배우도 줄줄이 무너졌다 

화려한 배우 라인업, 신파·국뽕만으로는 관객 불러모을 수 없어
영화 산업 전체가 위기… 2019년 호황기 이후 안이함 벗어나야


▎올해 추석 대목에 개봉한 한국영화 다섯 편은 흥행 면에서 좋지 않은 성적을 거뒀다. 왼쪽부터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1947 보스톤], [거미집], [가문의 영광: 리턴즈], [30일]. / 사진:CJ ENM, 롯데엔터테인먼트, 바른손이앤에이,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마인드마크
이제 극장가에서 ‘1000만 영화’라는 수식어는 사라지게 된 걸까.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에도 1000만 영화를 찾기는 어려웠지만, 명절 대목에 이제는 100만 관객도 힘들어졌다. 무엇이 한국영화의 침체기를 불러온 걸까?

올해 추석은 개천절까지 연휴가 무려 6일 동안 이어졌다. 그러니 극장가도 대목에 대한 기대감이 적지 않았다. 다섯 편의 한국영화가 기대를 안고 상영됐다.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1947 보스톤], [거미집], [가문의 영광: 리턴즈], [30일]이 그 작품들이다.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은 퇴마사 액션에 코미디를 더한 작품으로 [전우치]와 [검은사제들]로 퇴마나 오컬트 장르에도 분명한 아우라를 가진 강동원이 티켓파워를 만들었고, [1947 보스톤]은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작품으로 1000만 관객 시대를 연 강제규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또 칸 영화제 초청작으로도 주목된 [거미집]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밀정]의 김지운 감독에 1000만 배우 송강호는 물론이고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등 화려한 라인업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끌었다. 물론 이 세 작품에 비해 [가문의 영광: 리턴즈]나 [30일]에 대한 기대치는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그래도 추석 대목의 수혜를 받을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감은 분명했다. 하지만 혹시나 했던 기대는 역시나 하는 아쉬움으로 끝나버렸다.

10월 10일 기준 [천박사 퇴마 연구소]가 175만, [1947 보스톤]이 85만, 심지어 [거미집]은 29만 관객에 머물렀다. [가문의 영광: 리턴즈]는 과거 엄청난 성공을 거뒀던 시리즈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16만 관객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뒀다. 한 주 지나 한글날 연휴까지 거친 결과이니 참담한 수준이다. 그나마 한글날을 기점으로 강하늘, 정소민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30일]이 입소문을 통해 77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선전하고 있지만, 올 추석은 대목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관객 동원으로 끝나 버렸다. 다섯 작품의 관객 수 전체를 다 합쳐도 1000만은커녕 400만 관객도 되지 않는 수치에 머물렀으니 말이다. 모든 작품이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가장 선전한 [천박사 퇴마 연구소]는 제작비가 113억 원으로 손익분기점인 240만 명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고, 210억 원이 들어간 [1947 보스톤]은 손익분기점 450만 명에 5분의 1도 채우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96억 원 제작비로 200만 명이 손익분기점인 [거미집]은 겨우 16만 관객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마주하게 됐다.

OTT 기대작 없는데도 흥행 실패


▎작년 추석 연휴에는 [공조2:인터내셔날]이 698만 명을 동원하며 독주했는데, 올해 추석에 개봉한 다섯 작품의 관객 수를 다 합쳐도 이 한 작품의 흥행에 미치지 못한다. / 사진:연합뉴스
이번 추석 극장가의 결과가 충격적인 건, 작년 추석 대목과 비교해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작년 추석 연휴에는 [공조2:인터내셔날]이 698만 명을 동원하며 독주했는데, 올해 다섯 작품의 관객 수를 다 합쳐도 이 한 작품의 흥행에 미치지 못한다. 무엇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걸까?

이 결과가 뼈아픈 건, 올 추석 대목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의 기대작이 별로 없었다는 점 때문이다. 2021년에는 추석 시즌에 [오징어게임]이 공개됐고, 작년에는 [수리남]이 화제가 됐지만, 올해는 이렇다 할 작품이 없었다. 그러니 극장가의 불황이 OTT 콘텐트 때문이라고 콕 집어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물론 TV 앞으로 대중들을 묶어 놓은 아시안게임이라는 변수가 존재했다. 국가 스포츠 제전에 과거만큼의 관심이 쏠리는 시대는 아니지만 추석이라는 시즌에 맞물려 나름 공짜로 그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소재로 아시안게임은 의외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명절 연휴에는 극장’이라는 등식을 깨버린 OTT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OTT가 명절에 극장이 아닌 TV 앞으로 대중들을 다시 끌어모으면서 집에서 콘텐트를 즐기는 영상 소비 방식 같은 것들이 생겨났고, 이 흐름은 올해 OTT에서 특별한 기대작이 없음에도 극장 대신 집에 머물게 만드는 힘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아시안게임이라는 대체재 역시 공짜 콘텐트로서의 효용성을 발휘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공짜 콘텐트가 과거에 비해 효용성을 더 발휘하는 이유는, 최근 3년간 극장을 찾는 비용이 계속 인상된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이제 명절에 영화나 한 편 보자는 식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1인당 영화 티켓 가격만 1만5000원 정도로, 4인 가족이 함께 영화를 보면 팝콘 가격과 더해져 무려 10만 원가량 소비된다. 이러니 꼭 극장에서 봐야겠다고 생각되는 영화가 아니면 극장을 찾는 게 주저되는 상황이다.

아시안게임이라는 변수도 있었지만


▎추석 대목에 개봉한 한국영화의 흥행 부진이 뼈아픈 건, 온라인동영상 서비스(OTT)에서의 기대작이 별로 없었다는 점 때문이다. 사진은 2021년 추석 시즌에 공개된 [오징어게임]. / 사진:넷플릭스
이처럼 극장 소비에 대한 달라진 대중들의 생각은 지난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에서도 고스란히 결과로 나타난 바 있다. 류승완 감독의 [밀수]가 겨우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체면치레를 했고, 이병헌 배우가 전면에 나선 데다 작품성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380만 관객을 겨우 기록했을 뿐이었다. 두 작품 모두 팬데믹 이전이었다면 1000만 관객 돌파를 기대해도 될 법했던 작품들이었지만, 극장을 향한 관객들의 발길은 쉽게 이어지지 못했다. 심지어 [신과 함께] 같은 1000만 영화를 만들었던 김용화 감독의 야심찬 우주 SF작 [더문]은 겨우 50만 관객을, 하정우, 주지훈 같은 1000만 배우가 참여한 [비공식작전]은 1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초라하게 퇴장했다.

물론 이런 결과를 모두 달라진 극장 소비 방식으로만 치부하기도 어렵다. 올 추석에 개봉한 영화들은 저마다 기대만큼 아쉬운 지점들이 적지 않았던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나마 가장 흥행에 성공한 [천박사 퇴마 연구소]는 퇴마와 코미디를 섞어 놓았지만, 유치한 스토리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그나마 관객이 동원된 건 ‘강동원 파워’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또 강제규 감독의 [1947 보스톤]은 1947년 보스톤 국제마라톤대회에서 실제 벌어진 손기정과 서윤복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감동 휴먼스토리지만, 어쩔 수 없는 신파 구도와 국뽕에 기대는 ‘나라’, ‘독립’ 같은 이야기가 지금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거미집]도 마찬가지다. 검열이 일상이었던 1970년대를 배경으로 추가촬영을 해서 걸작을 만들겠다는 열망을 품고 갖가지 난관들을 넘어 끝내 영화를 완성해내는 영화인들의 이야기를 코미디로 그려낸 이 작품은 1970년대 영화 제작 현실이나, 당대의 영화들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는 즐기기가 쉽지 않은 작품이다. 예술가가 주인공인 작품으로 이른바 ‘예술가 예술’로 부르기도 하는 작품의 계열에 들어가는 [거미집]은 그래서 영화인이나 관계자들이라면 열광할만한 작품이지만, 일반 대중들이 재미를 느끼기는 쉽지 않은 한계를 드러낸다. 이러니 꼭 봐야 할 영화만 극장에서 본다는 새로운 영화 소비 패턴을 보이는 관객들은 주저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위기는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가는 과정


▎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결승전이 열리는 10월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 레드로드에서 축구팬들이 거리 응원을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시안게임이 올해 추석 대목을 노리는 영화들의 대체재가 됐다고 분석한다. / 사진:연합뉴스
사실 영화 관계자들은 올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에 이은 추석 대목 극장가의 연이은 부진에 난감한 상황이다. 엔데믹 분위기가 막 생겨나던 2022년 [범죄도시2]가 1200만 관객을 동원하고, 작년에도 [범죄도시3]가 여지없이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극장가에 어떤 희망을 기대했던 관계자들은 대목 시즌에 연달아 맞이한 부진 앞에 어떤 작품에 투자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과거라면 ‘충분히 됐을’ 영화들이 저조한 성적으로 무너지고 있는 것. 문제는 이렇게 실패가 누적되면 타격을 입은 제작사들의 제작에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제 [가문의 영광 : 리턴즈] 같은 옛 명성에 기대는 작품은 필패하는 상황이고, [1947 보스톤]처럼 신파와 국뽕이 더해지면 무조건 성공한다는 방정식도 깨졌다. 1000만 감독이니 1000만 배우니 하는 흥행 보증수표도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30일] 같은 로맨틱 코미디가 후발주자로 개봉돼 입소문을 타고 괜찮은 성적을 내고 있지만, 이러한 가성비 영화가 꼭 성공할 거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게 됐다. [거미집]처럼 예술성과 완성도가 뛰어나도 대중들의 눈도장을 받지 못하면 역시 외면받는 상황이다.

팬데믹이 지나고 극장가에 세워진 영화들이 줄줄이 망하던 상황 속에서 나왔던 이야기는 이른바 ‘창고 영화’라는 사유였다. 물론 실제로 제작은 됐어도 팬데믹 상황을 맞아 극장에 걸리지 못하고 창고에서 묵혀진 영화들이 적지 않고, 그렇게 시기를 놓쳐 흥행에 실패한 작품들이 분명이 있었다. 김태용 감독이 연출하고 박보검, 수지, 탕웨이가 주연을 맡은 [원더랜드]나 최민식, 박해일이 주연을 맡은 임상수 감독의 [행복의 나라로]가 이미 제작이 완료됐지만 개봉되지 못했고, 시즌1으로 흥행에 실패했던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2]도 개봉 시기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번 추석 시즌에 방영된 [1947 보스톤] 역시 애초 2020년 개봉 예정이었지만 팬데믹으로 개봉일이 연기됐고, 그 후에도 주연 배우들의 논란이 겹쳐 3년간이나 묵혀졌던 영화였다. 그래서 이 작품은 팬데믹 이전에 개봉했다면 그때의 달라진 극장 환경 속에서 나름 선전했을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개봉 시기를 놓친 데다 팬데믹을 거치며 달라진 관객들의 영화 소비 방식까지 겹쳐지면서 극장가는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제 달라진 환경에 맞는 영화들이 기획되고는 있지만, 워낙 시장이 정체됨으로써 제작 투자 또한 둔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영화 산업 전체가 위기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다. 하지만 이 위기는 어찌 보면 2019년 최고 호황을 맞아 다소 방만했던 영화계가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일 수 있다. 이 위기를 견뎌내고 이겨내는 과정에서 달라진 환경에 맞는 극장과 영화가 가야할 길이 제시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MBC 시청자 평가원, JTBC 시청자 위원으로 활동했다. 백상 예술대상, 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며 SBS [열린TV 시청자 세상], KBS [연예가중계]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했다. 저서로 [숨은 마흔 찾기],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웃기는 레볼루션] 등이 있다.

202311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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