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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UP] 전주시 대표 명물, 전동 도깨비시장 

요술처럼 나타나는 새벽 장터엔 정겨움 가득 

최기웅 기자
전주천 둔치에 새벽에 좌판 열어 동 틀 때까지 반짝 장사
전북 대표 전통시장으로 꼽히지만 관리 사각지대 아쉬워


▎전주 도깨비시장의 하루는 모두가 잠든 새벽부터 시작된다. 새벽 3시께 찾은 장터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준비를 마치고 장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육·해·공 없는 것 빼고 다 있어요.” 과일과 채소, 약초 등을 진열해 놓은 상인들이 손님을 부르고 있다. 동쪽 하늘에 해가 떠오르자 상인들 목청이 한껏 올라간다. 곧 장이 파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전라북도 전주시 전동 전주천 둔치에 펼쳐진 ‘도깨비시장’이다. 새벽에 나타났다가 해가 떠오르면 도깨비처럼 사라진다 해서 도깨비시장이 됐다.

도깨비시장의 하루는 모두가 잠든 새벽부터 시작된다. 새벽 3시께 찾은 장터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나이 지긋한 상인들 움직임이 분주하다. 익숙한 듯 어둠 속에서 자리를 잡고 간이등을 켜 가져온 물건을 진열한다. “농사짓는 사람은 매일 못 나와, 채소들 키워야제. 어제 수확해서 바로 가져온 거야.” 임실에서 온 박효미(57) 씨는 부지런히 총각무를 손질하며 말했다. 상인 중에는 전주 사람이 많지만, 박씨처럼 전주와 가까운 임실이나 완주에서 농산물을 직접 키우거나 군산 같은 바닷가에서 직접 수산물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이건 얼마여. 김치 담게 싸게 줘봐.” 손질 중인 무를 가리키며 한 손님이 고요한 새벽시장의 적막을 깬다. “아직 준비 덜 됐는디. 벌써 오면 어떡혀, 비싸게 받을 거여.” 박씨가 웃으며 답한다. 오고 가는 흥정 속에 목청이 높아지지만, 두 사람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하나둘 모여든 손님들은 어느새 새벽시장을 가득 메웠다. “하나 잡숴봐, 맛있어.” 새벽 2시부터 나와 장사를 준비한 박지문(65) 씨가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사과를 권한다. 다른 한쪽에는 ‘징글징글하게 맛있어요’라는 팻말도 보인다.

옛 장터의 정겨움 매료돼 일부러 찾는 명물로 자리잡아


▎한 상인이 상자를 잘라서 만든 수제 가격표에 판매 품목을 적고 있다.
산지에서 바로 가져온 신선한 농·수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이곳에는 물건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사이의 흥정으로 항상 활기가 넘친다. 전통시장의 정겨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일부러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군산에서 왔다는 한 할아버지에게 도깨비시장의 가장 큰 매력이 뭐냐고 물으니 “싱싱하고 저렴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전주에 산다는 이정민(25) 씨도 ‘흥정하는 재미’를 첫 손에 꼽았다.

해가 뜨자 상인들이 좌판을 거두기 시작한다. 삽시간에 도깨비시장은 요술처럼 사라졌다. 남문 새벽시장 강석원 회장은 “정식으로 등록된 시장이 아니기 때문에 해가 뜨면 철수해야 한다”며 “시장 주변에 손님을 위한 화장실이라도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주시 전통시장 관리 부서는 정식 시장이 아니라는 이유로 관리하지 않고, 다만 완산구청 하천관리과에서 주변 제초 작업만 하고 있다. 강 회장은 “새벽잠 조금만 참으시고 도깨비시장으로 나오시면 시간 여행을 한 듯 옛 시장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깨비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상인들이 직접 쓴 유쾌한 문구를 찾아볼 수 있다.



▎전주 천변 길목이 상인들과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다. 오전 6시 해가 뜰 무렵은 도깨비시장이 가장 바쁠 때다.



▎한 손님이 단감을 사자 지나가던 손님도 관심 있게 보고 있다.



▎한움큼 씩 담는 정으로 많은 손님이 도깨비 시장을 찾고 있다.



▎새벽 3시부터 장사를 시작한 이종수(62) 씨가 헤드 랜턴을 달고 직접 수확한 양파를 나르고 있다.



▎유일종(58) 씨는 군산 어시장 공판장에서 경매로 낙찰받은 생선을 판매한다.



▎남문 새벽시장 강석원 회장이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강 회장은 이곳에서 20여년 장사한 베테랑이다.
- 사진·글 최기웅 기자 choi.giung@joongang.co.kr

202311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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