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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내 한국인 여행객 80%는 2030세대흥미롭게도 한국인의 일본 관광 실태를 보면 특이한 공통점 세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재방문 통계다. 일본을 방문했던 한국인이나 한국을 찾은 일본인이 다시 한 번 더 관광에 나서는 비율, 다시 말해 ‘리피터(Repeater)’다. 일본행 한국인 관광객의 리피터는 무려 7할대에 달한다. 대략 1년 안에 일본에 다시 들르는 한국인도 10명 중 6명 정도라고 한다. 일본은 어떨까?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의 3할 정도가 다시 한국을 찾는다. 한국에 비해 ‘질리지 않는 나라’가 일본이란 의미다. 일본인 리피터 7할대와 한국인 리피터 3할대는 한·일 양국만이 아닌 다른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적용되는 수치다. 미국인 리피터 비율도 일본행은 7할대, 한국은 3할대다. 당연하지만, 리피터 수가 많다는 것은 미래 관광객 수가 ‘복리(複利)’로 증가한다는 의미다. 한국인만이 아닌 외국인의 일본 관광도 한층 더 가속화할 전망이다.둘째로 흥미로운 현상은 일본을 찾는 한국인의 연령대다. 20대가 전체 한국인 여행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30대가 약 3할대고, 나머지 2할이 40대 이상 장년이다. 일본을 찾는 한국인의 8할 정도가 2030세대인 셈이다. 반대로 한국을 찾는 일본인은 어떨까? 세대가 다양하다. 20대도 있지만, 30대·40대·50대로 골고루 나눠진 상태다.셋째는 체류 기간이다. 한국인의 일본 체류 기간은 평균 4일 이내에 그친다. 대략 3박 4일 정도 지내다가 돌아간다. 미국인이나 중국인처럼 한번 갈 경우 1주일을 넘기면서 장기간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는 관광이 아니다. 좋게 말하면 자기 취향에 맞춰 관심 영역만 열심히 파다가 돌아가는 ‘마니아(Mania)’ 스타일 여행이다. 짧은 여행 기간에 따른 결과지만, 한국인은 일본에서 돈을 가장 적게 뿌리는 관광객이기도 하다.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통계를 보면 한국인 1명당 일본에서의 지출 규모는 9만4000엔 정도다. 같은 기간 중국인 관광객의 씀씀이는 33만8000엔에 달했다. 지난해 기준 방일 외국인 관광객의 평균 지출액은 23만5000엔이다. 한국인의 지출 규모는 중국은 물론 방일 관광객 평균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국인의 경우 체류 기간이 짧고, 고소득자와 무관한 2030세대가 주류라는 점에서 지출액이 적을 수밖에 없다. 선진국형 관광 스타일로, 질적으로 볼 때 거품을 뺀 현명한 여행이라고 볼 수 있다.인생의 목적은 행복에 있다고들 한다. 행복을 느낄 땅이 일본이라고 믿는다면 그 누구도 주저하지 않고 달려갈 것이다. 한·일 왕복 비행기 가격은 6만원대다. 엔저(円低)로 인해 일본에 대한 매력과 관심이 한층 더해질 것이다. 그러나 의문이 하나 있다. 가는 것은 좋은데, 뭘 보러 가느냐가 관건이다. 바람 부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가는 것이 여행의 묘미라지만, 외국에 나가는 이상 뭔가 배우고 익히고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관광(觀光)이란 말은 원래 일본에서 창조됐다. 한자로 풀이하면 ‘빛을 본다’는 의미로, 원래 중국 고서 역경(易經)에 나오는 말이다. 원문은 ‘관국지광이용빈우왕(観国之光, 利用賓于王)’이라는 문장으로, ‘나라의 빛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것을 소중히 활용해 왕에게 도움이 되도록 한다’는 의미다. 19세기 말 메이지(明治) 시대 당시 일본은 긴 문장을 두 글자로 줄여 관광이라고 불렀다. 중국에서 말하는 관광은 왕을 위한 ‘공무(公務)’ 정도에 그쳤다. 따라서 대상자는 여행에 나설 만한 고위공직자에 한정됐다. 일본판 조어 관광은 다르다. 19세기 중엽 서방에 풍미한 ‘투어리즘(Tourism), 투어리스트(Tourist)’란 단어를 풀어 관광이란 말로 대치한다. 원래 동양에서는 보통 사람도 가능한 여행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 사실상 이동의 자유가 없는 땅이 동양이다. 땅에 근거해 세금도 받고 군역(軍役)도 부과하는 마당에 사람들의 이동을 철저히 금지했다.
배우고 익히고 넓히는 일본 관광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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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우르는 총체적 영역, 신도(神道)와 불교필자의 평소 지론이지만, 일본 유전자를 이해할 최적의 단서로 ‘칠복신(七福神)’에 준할 만한 것이 있을지 의문이다. 칠복신은 한국의 칠성신(七星神)에 해당하는 일곱 명의 신을 의미한다. 한국의 칠성신은 무속신앙에 속하는 비주류 신이다. 북두칠성을 신격화한 것으로 불교 사찰에서도 볼 수 있지만, 보통 무속이나 점집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생로병사 관련 신들이다. 일본의 칠복신은 칠성신과 거의 같은 맥락에 선 존재들이다. 그러나 아류나 이단이 아닌 주류로, 일본 종교의 핵심으로 추앙된다. 불교의 부처에 비견될 존재가 칠복신이다. 칠성신과 칠복신은 도교의 영향을 받은 것은 물론 멀리 보면 힌두교와도 연결된 종교다.일본 성지순례라고 할까? 멀리 교토(京都) 규슈(九州)의 사찰 순례도 좋지만, 자신이 머물고 있는 호텔 주변 칠복신도 성지 순례의 핵심 중 하나다. 칠복신 순례는 특정 지역만이 아닌 일본 어디에서도 쉽게 행할 수 있다. 테크놀로지 덕분이지만, 모바일 속 구글에 들어가 호텔 주변 지명과 함께 ‘칠복신 순례‘를 치면 곧바로 지도와 관련 역사가 등장한다. 신사와 사찰이 적당히 어우러진, 전부 7개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도보로 살필 경우 칠복신을 전부 찾는다고 해도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도쿄의 경우 전체 순례지는 물론 23개 특별구마다 각각의 순례지도 갖고 있다.수학여행으로서, 그리스인이 철학에 매달리며 지혜를 구하는 심정으로서의 칠복신 순례라고나 할까? 필자가 생각하는 최고·최적의 순례지는 야나가(谷中) 칠복신 순례다. 에도(江戸)는 도쿄의 옛 지명이다. 천황은 교토에 살지만, 막부의 수장 격인 도쿠가와(徳川)는 에도에 거주했다. 야나가 순례는 18세기 중엽 에도에서 시작된 250년 전통의 역사 흔적이기도 하다. 한국의 칠성신이 그러하듯 복을 빌고 하늘에 감사의 뜻을 전하는 공간이 칠복신 사찰이다. 에도 때는 물론 지금도 일본인 대부분이 주기적으로 들르는 곳이 야나가 칠복신 순례지다.칠복신은 고유의 이름과 얼굴을 지녔다. 겹쳐지는 부분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각자의 역할이나 능력도 구별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대흑천(大黑天), 혜비수(惠比須), 비사문천(毘沙門天), 변재천(弁財天), 복록수(福祿壽), 수로인(壽老人), 포대(布袋)에 이르는 7명이다. 근본으로 올라가면 인도 힌두교로 이어지지만, 혜비수는 유일하게 일본 자생 신으로 통한다. 이름으로도 유추할 수 있지만, 칠복신은 곡식·장수·질병·장사·재산·죽음·결혼을 주관한다. 일상생활에 관한 모든 것이 칠복신 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칠성신의 경우 거의 대부분 한 군데에 모여진 상태에서 숭배된다. 일본은 7명의 신을 하나로 묶지 않고, 사찰마다 각각 1~2명씩 분리해 기린다. 백화점이 아닌 마니아 전용 소규모 전문점인 셈이다. 따라서 7명 칠복신의 은혜를 받으려면 7곳을 전부 찾아야만 한다. 일본 어디에 가도 칠복신 순례지가 넘치는 이유를 바로 그 같은 배경 하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야나가 칠복신은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순례지라는 점에서 유명하다.
일본인이 자주 찾는 야나가 칠복신 순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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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복신 은혜 받으려면 사찰 7곳 모두 들러야순례지 여섯째 대상은 청운사(青雲寺)다. 수성원에서 자전거로 3분 거리다. 생선과 어부의 신 혜비수(恵比須)를 모신 사찰이다. 혜비수는 일본에서 탄생된 일본 신이다. 보통 배에 탄 모습에다가 큰 생선을 들고 있다. 풍요와 재물 그리고 안전을 상징한다. 일본 맥주에 관심이 있다면 에비수(Ebisu) 브랜드를 알 것이다. 일본신 혜비수 이름을 딴 맥주다. 20세기 초 일본 문학작품에도 자주 등장하는 최고급 맥주의 대명사가 에비수다. 깊은 맛으로 인해 한번 맛을 들이면 끊기 어렵다. 혜비수는 한국의 칠성신과 비교할 흥미로운 캐릭터다. 일본 칠복신을 한자리에 모은 그림을 보면 배경 대부분이 바다다. 보통 생선을 든 혜비수를 앞세우고, 바람이 가득 찬 돛과 함께 큰 배가 들어서 있다. 한국의 칠성신은 어떨까? 거의 대부분 산이나 구름을 배경으로 한다. 바다를 무관심하게 대한 조선의 세계관을 칠성신 그림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야나가 마지막 순례지는 동각사(東覚寺)다. 복·인연·수명을 관장하는 복록수(福祿壽)를 모신 곳으로, 청운사에서 자전거로 5분 거리에 있다. 복록수는 문어 같은 길쭉한 머리 형상에다가 수염을 단 노인으로 표현된다. 동각사 대문 앞에는 높이 2m 정도의 큰 석상 두 개가 세워져 있다. 불교 사찰을 지키는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이다. 보통 인왕존(仁王尊)으로 불리면서 두 명이 함께 사찰 앞을 지키는 경비병 역할을 한다. 흥미롭게도 인왕존 모두 붉은 종이로 도배를 한 상태다. 얼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동각사 인왕존은 악을 막는 것만이 아닌 개인의 질병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도 한다. 자기나 주변 사람의 아픈 부분을 인왕존 몸에 맞춰 붉은 종이로 붙이면 치유된다고 한다. 미신처럼 들리는 얘기지만, 필자는 인왕존 신화를 믿는다. 모든 성의를 다해 신에게 기도할 경우 반드시 그 결실이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야나가 순례는 4시간 만에 끝났다. 자전거를 이용했기 때문에 비교적 빨리 끝낼 수 있었다. 사찰을 전전하면서 느낀 것은 기도를 올리거나 단순히 인사를 위해 들르는 일본인들의 참배 자세다. 결코 길지 않다. 보통은 1분, 길어도 3분 정도에 그치는 방문이다. 여러 의식이 기다리는 교회 의식과 전혀 다른 생활 속 신앙으로 느껴진다. 최근 일본에 등장한 구두와 넥타이 차림 ‘스포츠센터’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식사 후 양복 차림으로 잠시 들러 5분간 운동한 뒤 사무실에 들어가는 식의 생활 방식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 결사반대, 배수진’이 미덕으로 통하는 한국식 사고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세계관이다. 누가 옳고 틀리고가 아니다.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세계를 한층 더 성숙하게 재창조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수학여행이 아닌 ‘수학관광’이라고 할까? 매달 한국 사람 54만 명이 찾는 나라를 통해 한국인의 새로운 모습을 발굴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