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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의 일본 직설(直説), 요설(妖説) 그리고 곡설(曲説)(4)] 배우고 익히는 일본 관광을 위한 가이드 

일본 열도 유전자 이해할 최적의 단서 ‘칠복신(七福神)’ 

복을 빌고 하늘에 감사의 뜻 전하는 공간, 칠복신 사찰
특정 지역 넘어 일본 어디서나 행할 수 있는 성지순례


▎칠복신은 한국의 칠성신과 같은 맥락의 신이다. 일본은 1류 주류인데 비해, 한국은 무속이란 이름과 함께 2류 변방 신으로 처리된다. / 사진:유민호
432만 명. 2023년 1월부터 8월 말까지 일본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 수다. 한 달 평균 54만 명이다. 외국인 방문객 1518만 명 가운데 28.5%를 차지하는 방일 관광객 수 1위가 한국인이다. 올해 전체를 통틀어 대략 600만 명의 한국인이 일본을 찾을 전망이다. 지난해 방일 한국인 규모는 100만 명이었다. 1년 만에 6배, 한국인 10명 가운데 1명이 올해 일본 방문에 나서는 셈이다. 당연하지만, 당분간 한국인이 일본 방문객 순위 1위를 지킬 듯하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의 방일 열기가 반일 분위기로 위축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의 ‘압도적 위상’이 변하지 않을 듯하다. 부모의 설교나 선생의 충고가 아닌 자식과 학생의 ‘내 멋대로 생각’이 우선인 시대다. 국제화 시대를 맞아 해외여행에 나서고, 내 돈 내가 쓰는데 뭐라고 할 사람도 없다. 정치논리로 반일을 외쳐봤자, 침소봉대 오염수로 난리를 쳐봤자, 시대착오 잠꼬대에 불과하다. 해방 이후 78년이 흘렀다. 식민지·역사·민족 같은 ‘거룩한 명사(名詞)’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싫든 좋든 ‘맥주는 아사히 슈퍼 드라이, 여행은 일본’이 대세다.

일본 내 한국인 여행객 80%는 2030세대

흥미롭게도 한국인의 일본 관광 실태를 보면 특이한 공통점 세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재방문 통계다. 일본을 방문했던 한국인이나 한국을 찾은 일본인이 다시 한 번 더 관광에 나서는 비율, 다시 말해 ‘리피터(Repeater)’다. 일본행 한국인 관광객의 리피터는 무려 7할대에 달한다. 대략 1년 안에 일본에 다시 들르는 한국인도 10명 중 6명 정도라고 한다. 일본은 어떨까?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의 3할 정도가 다시 한국을 찾는다. 한국에 비해 ‘질리지 않는 나라’가 일본이란 의미다. 일본인 리피터 7할대와 한국인 리피터 3할대는 한·일 양국만이 아닌 다른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적용되는 수치다. 미국인 리피터 비율도 일본행은 7할대, 한국은 3할대다. 당연하지만, 리피터 수가 많다는 것은 미래 관광객 수가 ‘복리(複利)’로 증가한다는 의미다. 한국인만이 아닌 외국인의 일본 관광도 한층 더 가속화할 전망이다.

둘째로 흥미로운 현상은 일본을 찾는 한국인의 연령대다. 20대가 전체 한국인 여행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30대가 약 3할대고, 나머지 2할이 40대 이상 장년이다. 일본을 찾는 한국인의 8할 정도가 2030세대인 셈이다. 반대로 한국을 찾는 일본인은 어떨까? 세대가 다양하다. 20대도 있지만, 30대·40대·50대로 골고루 나눠진 상태다.

셋째는 체류 기간이다. 한국인의 일본 체류 기간은 평균 4일 이내에 그친다. 대략 3박 4일 정도 지내다가 돌아간다. 미국인이나 중국인처럼 한번 갈 경우 1주일을 넘기면서 장기간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는 관광이 아니다. 좋게 말하면 자기 취향에 맞춰 관심 영역만 열심히 파다가 돌아가는 ‘마니아(Mania)’ 스타일 여행이다. 짧은 여행 기간에 따른 결과지만, 한국인은 일본에서 돈을 가장 적게 뿌리는 관광객이기도 하다.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통계를 보면 한국인 1명당 일본에서의 지출 규모는 9만4000엔 정도다. 같은 기간 중국인 관광객의 씀씀이는 33만8000엔에 달했다. 지난해 기준 방일 외국인 관광객의 평균 지출액은 23만5000엔이다. 한국인의 지출 규모는 중국은 물론 방일 관광객 평균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국인의 경우 체류 기간이 짧고, 고소득자와 무관한 2030세대가 주류라는 점에서 지출액이 적을 수밖에 없다. 선진국형 관광 스타일로, 질적으로 볼 때 거품을 뺀 현명한 여행이라고 볼 수 있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에 있다고들 한다. 행복을 느낄 땅이 일본이라고 믿는다면 그 누구도 주저하지 않고 달려갈 것이다. 한·일 왕복 비행기 가격은 6만원대다. 엔저(円低)로 인해 일본에 대한 매력과 관심이 한층 더해질 것이다. 그러나 의문이 하나 있다. 가는 것은 좋은데, 뭘 보러 가느냐가 관건이다. 바람 부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가는 것이 여행의 묘미라지만, 외국에 나가는 이상 뭔가 배우고 익히고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

관광(觀光)이란 말은 원래 일본에서 창조됐다. 한자로 풀이하면 ‘빛을 본다’는 의미로, 원래 중국 고서 역경(易經)에 나오는 말이다. 원문은 ‘관국지광이용빈우왕(観国之光, 利用賓于王)’이라는 문장으로, ‘나라의 빛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것을 소중히 활용해 왕에게 도움이 되도록 한다’는 의미다. 19세기 말 메이지(明治) 시대 당시 일본은 긴 문장을 두 글자로 줄여 관광이라고 불렀다. 중국에서 말하는 관광은 왕을 위한 ‘공무(公務)’ 정도에 그쳤다. 따라서 대상자는 여행에 나설 만한 고위공직자에 한정됐다. 일본판 조어 관광은 다르다. 19세기 중엽 서방에 풍미한 ‘투어리즘(Tourism), 투어리스트(Tourist)’란 단어를 풀어 관광이란 말로 대치한다. 원래 동양에서는 보통 사람도 가능한 여행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 사실상 이동의 자유가 없는 땅이 동양이다. 땅에 근거해 세금도 받고 군역(軍役)도 부과하는 마당에 사람들의 이동을 철저히 금지했다.

배우고 익히고 넓히는 일본 관광 되려면


▎머리가 엄청 큰 3등신 신으로 미륵으로도 불리는 포대. 불룩한 배와 함께 웃으면서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신이다. 누구나 가깝게 할 수 있는 친근한 신이다. / 사진:유민호
일본에서 창조된 관광이란 단어는 서양의 개인적 욕구만이 아닌 동양의 공적 기능도 첨가하고 있다. 그러나 공적 기능은 왕이나 국가 차원이 아닌 개인 수준의 수양이나 공부를 의미한다. 일반인이 여행 중 얻은 결과나 성과를 왕이나 국가에 건의할 필요는 없다. 중·고등학생의 수학여행은 그 같은 사적·공적 개념을 통합한 대표적 본보기다. 배움을 갈고 닦으면서 행하는 필드 스터디가 바로 수학여행이다. 21세기 관광의 대부분은 즐기고 노는 데 집중한다. 디즈니랜드에서 뭔가 배우고 익힌다는 생각을 하긴 어렵다. 그러나 일본 여행은 조금 다를 듯하다. 관광이란 단어를 창조한 나라답게 여행지의 콘텐트 자체가 뭔가 배우고 익히는 현장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초고속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비명을 지르고 스트레스를 푸는 식의 1회성 오락이 아닌 특별한 뭔가가 일본 여행지 전역에 흐른다. 엔저가 일본을 인기 여행지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엔저가 아니라 엔고(円高)라고 해도 앞으로 한국인, 나아가 세계인의 방일 속도가 한층 가속화할 것이다. 이유는 일본 관광지가 가진 매력, 즉 뭔가 배우고 익히는 공간으로서의 콘텐트가 열도 전체에 넘실대기 때문이다.

일본 관광을 수학여행의 연장선으로 활용할 경우 과연 어떤 영역이 일본을 이해·탐구할 기본 소재가 될 수 있을까? 그리스인의 철학에 해당할, 뭔가 근본적인 영역을 찾는다면 어떤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특정 지역 내 거주민에게만 새겨진 유전자, 즉 문화·문명의 원형인 아키타입(Archetype)으로서의 일본을 이해할 최대의 소재와 주제는 무엇일까? 각자의 관심사나 배경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양할듯하다. 2030세대라면 사무라이 영화에서부터 도쿄 아키하바라(秋葉原) 캐릭터나 컴퓨터 게임과 같은 사부카르차(サブカルチャー: Sub-Culture)부터 연상할 것이다. 50대 이상 장년이라면 온천이나 골프장, 나아가 경제·외교·군사에 관한 탐구가 우선시될 듯하다. 물론 관광지 곳곳을 채우는 스시 전문 식당이나 프랑스인도 경탄하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도 주된 관심사인 동시에 일본을 이해할 최적의 단서들이다. 필자의 경우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총체적 영역으로 신도(神道)와 불교에 주목한다.

종교는 문화와 문명, 나아가 정신과 영혼의 출발점이자 기반이다. 종교를 이해하면 그 나라와 국민, 그 지역과 거주민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예를 들어 일본이 자랑하는 캐릭터 만화 애니메이션 같은 분야도 신도의 신사와 불교의 사찰을 돌아다닐 경우 뭔가 근본적 연결 접점을 발견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사와 사찰에 모셔진 수많은 조각과 그림을 보자. 자세히 관찰하면 일본 캐릭터의 원형이자 기반이란 식의 해석이 가능하다. 일본 열도 내 16만 개에 달하는 신사와 사찰이 없다면 수많은 캐릭터의 탄생도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음식·옷·건축물을 둘러싼 의식주 관련 유전자도 신도와 불교를 통해 캐낼 수 있다.

다양성은 일본 종교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이다. 일신교가 아니라 다신교를 기반으로 한 다양성이다. 내가 믿는 신만이 아닌 다른 신도 포용한다는 의미다. 한국은 일본에 비해 일신교 사상이 강하다. 내가 믿는 신 말고는 이단이고 악이다. 기독교에 비해 불교가 다소 유연한 입장을 취하기는 하지만, 조금만 들어가 보면 불교 내 종파끼리의 정통성이나 우열 경쟁이 끊이질 않는다. 한국에도 일본처럼 다신교에 기초한 신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전부 토착신앙이나 무속이란 비주류 단어로 장식된 3류 미신이란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한국 종교를 기준으로 본다면 일본의 신도와 불교조차도 미신이자 3류 사이비종교로 여기기 십상이다. 다신교와 다양성의 결과물이지만, 일본인들은 스스로를 ‘야오요로즈노가미(八百万の神)’를 모시는 신민(神民)이라고 부른다. 800만에 이르는 신이 일본에 머물러 있다. 일본인라면 단 한 명도 놓치지 말고 모두를 숭배해야만 한다고 믿고 있고, 실제 그렇게 행한다. 1등신, 최고의 파워를 가진 신이란 식의 구별이나 차별이 없다. 800만 신 모두 평등하며 중요하다.

일본 아우르는 총체적 영역, 신도(神道)와 불교

필자의 평소 지론이지만, 일본 유전자를 이해할 최적의 단서로 ‘칠복신(七福神)’에 준할 만한 것이 있을지 의문이다. 칠복신은 한국의 칠성신(七星神)에 해당하는 일곱 명의 신을 의미한다. 한국의 칠성신은 무속신앙에 속하는 비주류 신이다. 북두칠성을 신격화한 것으로 불교 사찰에서도 볼 수 있지만, 보통 무속이나 점집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생로병사 관련 신들이다. 일본의 칠복신은 칠성신과 거의 같은 맥락에 선 존재들이다. 그러나 아류나 이단이 아닌 주류로, 일본 종교의 핵심으로 추앙된다. 불교의 부처에 비견될 존재가 칠복신이다. 칠성신과 칠복신은 도교의 영향을 받은 것은 물론 멀리 보면 힌두교와도 연결된 종교다.

일본 성지순례라고 할까? 멀리 교토(京都) 규슈(九州)의 사찰 순례도 좋지만, 자신이 머물고 있는 호텔 주변 칠복신도 성지 순례의 핵심 중 하나다. 칠복신 순례는 특정 지역만이 아닌 일본 어디에서도 쉽게 행할 수 있다. 테크놀로지 덕분이지만, 모바일 속 구글에 들어가 호텔 주변 지명과 함께 ‘칠복신 순례‘를 치면 곧바로 지도와 관련 역사가 등장한다. 신사와 사찰이 적당히 어우러진, 전부 7개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도보로 살필 경우 칠복신을 전부 찾는다고 해도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도쿄의 경우 전체 순례지는 물론 23개 특별구마다 각각의 순례지도 갖고 있다.

수학여행으로서, 그리스인이 철학에 매달리며 지혜를 구하는 심정으로서의 칠복신 순례라고나 할까? 필자가 생각하는 최고·최적의 순례지는 야나가(谷中) 칠복신 순례다. 에도(江戸)는 도쿄의 옛 지명이다. 천황은 교토에 살지만, 막부의 수장 격인 도쿠가와(徳川)는 에도에 거주했다. 야나가 순례는 18세기 중엽 에도에서 시작된 250년 전통의 역사 흔적이기도 하다. 한국의 칠성신이 그러하듯 복을 빌고 하늘에 감사의 뜻을 전하는 공간이 칠복신 사찰이다. 에도 때는 물론 지금도 일본인 대부분이 주기적으로 들르는 곳이 야나가 칠복신 순례지다.

칠복신은 고유의 이름과 얼굴을 지녔다. 겹쳐지는 부분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각자의 역할이나 능력도 구별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대흑천(大黑天), 혜비수(惠比須), 비사문천(毘沙門天), 변재천(弁財天), 복록수(福祿壽), 수로인(壽老人), 포대(布袋)에 이르는 7명이다. 근본으로 올라가면 인도 힌두교로 이어지지만, 혜비수는 유일하게 일본 자생 신으로 통한다. 이름으로도 유추할 수 있지만, 칠복신은 곡식·장수·질병·장사·재산·죽음·결혼을 주관한다. 일상생활에 관한 모든 것이 칠복신 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칠성신의 경우 거의 대부분 한 군데에 모여진 상태에서 숭배된다. 일본은 7명의 신을 하나로 묶지 않고, 사찰마다 각각 1~2명씩 분리해 기린다. 백화점이 아닌 마니아 전용 소규모 전문점인 셈이다. 따라서 7명 칠복신의 은혜를 받으려면 7곳을 전부 찾아야만 한다. 일본 어디에 가도 칠복신 순례지가 넘치는 이유를 바로 그 같은 배경 하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야나가 칠복신은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순례지라는 점에서 유명하다.

일본인이 자주 찾는 야나가 칠복신 순례지


▎신을 찬미하는 노래나 연극을 행하는 라쿠도(楽堂). 일본 신사는 신만이 아닌 현세인간의 희로애락을 실감할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 사진:유민호
필자의 도쿄 관광 노하우지만, 주로 아사쿠사 주변에 머문다. 호텔 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접할 곳이 넘치기 때문이다. 도쿄 대부분은 평지다. 인도에서도 자전거를 탈 수 있고, 안전성이란 측면에도 세계 1위에 오를 도시다. 야나가 순례는 우에노 공원 바로 남서쪽에 붙은 시노바즈노이케(不忍池)에서 시작됐다. 불교 사찰 관영사(寛永寺) 안에 들어선 공간으로 지혜와 장수를 내리는 변재천(弁才天)을 모신 곳이다. 변재천은 칠복신 가운데 유일하게 여성신이다. 보통 비파를 들고 있는 모습에다 네 개의 팔을 가진 신으로 묘사된다. 변재천 좌상은 사찰 본당 안에 들어서 있다. 문이 닫혀 있어서 직접 만나진 못했다. 순례객 대부분은 변재천 그림이 그려진 부적(おみくじ)을 구입해 사찰 주변에 걸어둔다. 대부분의 부적이 핑크빛이다. 결혼과 같은 인연을 맺는 데 도움을 주는 신이 변재천이기 때문이다.

칠복신 둘째 방문지는 호국원(護国院)이다. 불교 사찰로, 대흑천(大黒天)을 모신 곳이다. 힌두교 파괴의 신 시바(Shiba)를 원류로 한 전쟁과 오곡의 상징이 대흑천이다. 보통 큰 쌀 두 가마니 위에 올라선 자세로 묘사된다. 일본인이 식량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1950년대 초부터다. 이전까지만 해도 기아와 식량 부족이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배가 고파 기력을 잃은 사람에게 정신적 위안을 제공했던 성스러운 곳이 호국원 대흑천이다.

칠복신 셋째 공간은 비사문천(毘沙門天)을 모신 천왕사(天王寺)다. 호국원에서 자전거로 5분 거리에 있는 조용한 사찰이다. 야나가 순례지의 특징이지만, 7신을 모신 공간 전부가 불교 사찰이다. 보통 다른 지역 칠복신 순례지의 경우 사찰만이 아닌 신도의 신사도 포함하고 있다. 야나가는 다르다. 에도 사람들의 경우 신도보다 불교를 한층 더 가까이 했다고 볼 수 있다. 천왕사는 아주 잘 정돈된 조용한 사찰이다. 높이 7m 정도의 초대형 청동 석가여래 좌상이 들어서 있다. 비사문천은 불교의 4대천왕과 비슷하다. 보통 한손에는 칼, 다른 한손에는 사찰을 들고 있다. 평화·장수·출세·재산에 관련된 신이다. 동서남북을 지키는 불교의 4대천왕과 비슷한 성격의 신을 사찰 안에서 함께 모신다는 것이 이상하다. 그러나 모든 신을 평등하게 차별하지 않고 대하는 일본 종교관에 비쳐보면 이해할 법도 하다.

넷째 순례지는 수로인(壽老人)을 모신 장안사(長安寺)다. 수로인은 문자 그대로 장수와 무병을 상징하는 신이다. 보통 사슴과 함께 지팡이를 들고 있는 노인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장안사는 야나가 순례지 가운데 가장 작다. 그러나 현재의 절의 모습은 태평양 전쟁 이후 대폭 축소된 상태다. 야나가 순례지는 원래 산과 나무로 뒤덮인 넓은 공간 속에 들어서 있었다. 전쟁은 자연 풍경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놓는다. 수로인은 장안사 본당 바로 옆 건물에 들어서 있다. 나무로 된 조각상으로, 수백 년 연륜을 느끼기에 충분한 모습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찾아와 장수와 건강을 희구했을까?

다섯째 순례지는 포대(布袋)를 모신 수성원(修性院)이다. 고층 건물에 둘러싸인 사찰로, 원래 에도를 대표하는 벚꽃놀이 발상지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남은 벚나무는 두 그루에 그친다. 에도 당시에 비해 95% 정도 축소된 작은 절이다. 포대는 중국 문화권에서 볼 수 있는 대머리에다가 배불뚝이 형상을 한 신이다. 항상 웃으면서 어린이와 함께 노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죽은 자를 다시 부활시켜줄 불교의 미륵에 해당되는 신으로, 근심·걱정이 없는 행복한 신의 상징이기도 하다. 보통 신이라고 하면 무섭고 뭔가 긴장감을 조장하는 느낌이 든다. 포대를 대하면 신이 아니라 옆집 아저씨를 만나는 듯하다.

칠복신 은혜 받으려면 사찰 7곳 모두 들러야

순례지 여섯째 대상은 청운사(青雲寺)다. 수성원에서 자전거로 3분 거리다. 생선과 어부의 신 혜비수(恵比須)를 모신 사찰이다. 혜비수는 일본에서 탄생된 일본 신이다. 보통 배에 탄 모습에다가 큰 생선을 들고 있다. 풍요와 재물 그리고 안전을 상징한다. 일본 맥주에 관심이 있다면 에비수(Ebisu) 브랜드를 알 것이다. 일본신 혜비수 이름을 딴 맥주다. 20세기 초 일본 문학작품에도 자주 등장하는 최고급 맥주의 대명사가 에비수다. 깊은 맛으로 인해 한번 맛을 들이면 끊기 어렵다. 혜비수는 한국의 칠성신과 비교할 흥미로운 캐릭터다. 일본 칠복신을 한자리에 모은 그림을 보면 배경 대부분이 바다다. 보통 생선을 든 혜비수를 앞세우고, 바람이 가득 찬 돛과 함께 큰 배가 들어서 있다. 한국의 칠성신은 어떨까? 거의 대부분 산이나 구름을 배경으로 한다. 바다를 무관심하게 대한 조선의 세계관을 칠성신 그림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야나가 마지막 순례지는 동각사(東覚寺)다. 복·인연·수명을 관장하는 복록수(福祿壽)를 모신 곳으로, 청운사에서 자전거로 5분 거리에 있다. 복록수는 문어 같은 길쭉한 머리 형상에다가 수염을 단 노인으로 표현된다. 동각사 대문 앞에는 높이 2m 정도의 큰 석상 두 개가 세워져 있다. 불교 사찰을 지키는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이다. 보통 인왕존(仁王尊)으로 불리면서 두 명이 함께 사찰 앞을 지키는 경비병 역할을 한다. 흥미롭게도 인왕존 모두 붉은 종이로 도배를 한 상태다. 얼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동각사 인왕존은 악을 막는 것만이 아닌 개인의 질병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도 한다. 자기나 주변 사람의 아픈 부분을 인왕존 몸에 맞춰 붉은 종이로 붙이면 치유된다고 한다. 미신처럼 들리는 얘기지만, 필자는 인왕존 신화를 믿는다. 모든 성의를 다해 신에게 기도할 경우 반드시 그 결실이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야나가 순례는 4시간 만에 끝났다. 자전거를 이용했기 때문에 비교적 빨리 끝낼 수 있었다. 사찰을 전전하면서 느낀 것은 기도를 올리거나 단순히 인사를 위해 들르는 일본인들의 참배 자세다. 결코 길지 않다. 보통은 1분, 길어도 3분 정도에 그치는 방문이다. 여러 의식이 기다리는 교회 의식과 전혀 다른 생활 속 신앙으로 느껴진다. 최근 일본에 등장한 구두와 넥타이 차림 ‘스포츠센터’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식사 후 양복 차림으로 잠시 들러 5분간 운동한 뒤 사무실에 들어가는 식의 생활 방식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 결사반대, 배수진’이 미덕으로 통하는 한국식 사고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세계관이다. 누가 옳고 틀리고가 아니다.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세계를 한층 더 성숙하게 재창조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수학여행이 아닌 ‘수학관광’이라고 할까? 매달 한국 사람 54만 명이 찾는 나라를 통해 한국인의 새로운 모습을 발굴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2311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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