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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련의 지구촌 인문기행(6)] ‘동화의 땅’ 덴마크 코펜하겐의 낭만 

안데르센의 숨결이 스며든 도시, 그리고 레고의 발상지 

7만 달러 이상의 1인당 GDP를 자랑하면서도 전통 보존한 북유럽 강소국
곳곳에 안데르센과 키르케고르의 흔적… 셰익스피어 비극 [햄릿]의 무대


▎안데르센의 대표작 〈인어공주〉를 구현한 조각상은 생각보다 조촐하다. 하지만 그 파급력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 사진:고혜련
북유럽의 작은 나라, 덴마크를 떠올리면 우선 코펜하겐과 ‘동화의 아버지’ 안데르센, 인어공주 동상이 떠오른다. 그리고 아이들의 블록 장난감인 레고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르케고르의 나라라는 것도 기억 저편에서 굼뜨게 올라온다. 내가 떠올리는 상징들이 과연 그 나라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실제로 가서 느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최근의 덴마크는 해운업과 의학·약학, 정밀 공업이 주된 산업이자 주 수입원이 되고 있다. 젊은 여행객들에게는 유기농 제품, 다이어트 관련 산업, 맛좋은 맥주 등이 떠오를 것이다. 그런 세대 간, 국가 간 간극을 메우며 오랜 전통으로 이어가는 것이 곧 상징물이리라.

출장이나 여행으로 자주 유럽을 드나들면서도 덴마크 코펜하겐(Copenhagen)은 좀처럼 가지 않았다. 유레일 패스를 이용해 유럽 여러 나라를 뒤지고 다닌 1980년대 중반 당시에는 아마도 중부 유럽의 많은 국가에서 흔히 통용되는 글로벌 패스가 통하지 않아서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올해 초 방문 시에는 북해 바닷길로 북유럽과 중부 유럽국가들을 연결하는 크루즈 노선을 이용했다. 크루즈 여행에 별로 애정이 가지 않지만, 밤잠도 자고 이동도 하니 시간 절약상 가끔 이용한다. 코펜하겐 항구에 다가가자 바람을 불러 신나게 뱅뱅 도는 날개깃(blade)들을 장착한 키다리 풍력발전기 수십 대가 도열해 손님들을 맞이한다.

국기에서 묻어나는 ‘덴마크의 힘’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 시청사 옆에 세워진 안데르센 동상. 이 도시에서 동화 작가가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준다. / 사진:고혜련
덴마크는 지도상으로 보면 그 위치가 좀 어정쩡해 보인다. 이 나라는 유틀란트(Jutland)반도와 수도 코펜하겐이 자리 잡은 큰 섬과 나머지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북유럽 5개 국가 중에서 바다 건너 변두리에 자리한 가장 작은 나라다. 하지만 이 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북해 남단은 영국해협과 함께 온갖 선박들의 운항 밀도가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로 손꼽힌다.

덴마크 영토(4만3000㎢)는 한국 면적의 반에도 못 미친다. 근접한 국가인 노르웨이(32만㎢)의 약 7분의 1, 스웨덴(45만㎢)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구 570만 명의 덴마크가 늘 약자일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우선 ‘덴마크의 힘’이란 의미를 품은 단네브로(Dannebrog)라 불리는 이 나라 국기의 모양새와 영향력이 그를 입증한다. 국기란 한 나라의 역사와 기운, 국민 정서 즉,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덴마크 국기는 아이슬란드를 포함한 5대 북유럽 국가들 전체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국기는 1200년 초반부터 800여 년 동안 명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국기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빨간 바탕에 왼쪽으로 약간 치우친 하얀 십자가가 자리하고 있다. 간결하고 화사하며 어여쁘다. 나머지 네 나라의 국기는 똑같은 디자인에 십자가나 바탕색만 바꾸었을 뿐이다. 마치 쌍둥이 형제자매가 옷 색깔만 달리한 느낌이다.

덴마크는 북유럽에서 가장 먼저 국가 체계를 확립했다. 북유럽 국가 상인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칼마르 동맹’을 맺을 때에도 덴마크 왕을 중심으로 연합했다. 칼마르 동맹은 덴마크를 중심으로 노르웨이·스웨덴 등 북유럽의 세 나라가 스웨덴의 항구도시 칼마르에 모여 해상 상업권을 확보하고 굳건히 지켜나가기 위해 결성한 연합체를 일컫는다. 이들은 그 아래쪽의 독일 등 중부유럽 국가들의 상업조합인 한자(Hansa) 동맹이 발트해 연안으로 전진하면서 북유럽 국가들의 상권을 위협하자 이에 대처할 목적으로 동맹을 결성했다. 그만큼 부강했고 그들 이웃에 리더십을 인정받았던 덕분에 국기의 힘을 가질 수 있었다.

이렇게 절대적으로 자그마한 나라가 어찌 그리 막강한 힘을 발휘했을까 궁금해진다. 덴마크는 다른 북유럽 국가들보다 위도상 낮다. 겨울에도 최저 기온이 3~4도로 온난한 편이다. 북대서양 해류로부터 불어오는 편서풍의 영향으로 기온의 연교차가 적다. 한여름에도 최고 기온이 20도 정도다. 늘 쾌적해 인구 정착이 쉽고, 낙농업이 발달할 여건을 갖추고 있다. 또 중부유럽과 반도의 한 면을 접하고 있어 변화된 문물을 수용하는 데 빨랐다.

요즘의 덴마크는 어떤가. 입헌군주국이자 왕실 국가인 이 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2022년 기준 7만3200달러다. 3만6000달러인 한국의 두 배가 넘는다. 국민 최저임금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소득 불균등 수준은 가장 낮은 곳이라니 부러울 따름이다. 10세기 초 북유럽의 바이킹 부족(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8~11세기 말 중유럽과 북유럽을 항해하면서 교역과 약탈을 일삼은 바다 사람들)을 통합한 자가 덴마크 최초의 왕이었다니, 그 핏줄의 영향이 만만치 않은가 보다.

인어공주, 시간을 초월한 생명력


▎뉘하운 항구는 늘 관광객으로 넘치는 곳이다, 안데르센이 생전 여러 차례 옮겨가며 생활한 집들은 이제 문화유산이 됐다. / 사진:고혜련
덴마크어로 ‘쾨벤하운’으로 불리는 수도 코펜하겐은 ‘동화의 아버지’ 안데르센의 도시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인구 100만 명이 거주하는 이 도시 곳곳에 그가 살던 집들은 물론 풍채 좋고 푸근한 그의 동상, 그가 쓴 동화 속 주인공의 동상 등이 만들어져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으니 말이다. 북유럽의 현지인 여행 가이드들은 코펜하겐을 소개할 때 ‘한스와 쇠렌의 도시’라고 부른다. 한스 안데르센과 그와 동시대에 살았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의 이름이다. 코펜하겐 중심가 시청사 옆과 놀이공원 사이의 대로 이름도 안데르센이다.

덴마크어로 ‘상인의 항구’라는 뜻을 가진 수도 코펜하겐은 셸란섬의 남동쪽 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대표적인 관광 장소는 ‘새로운 항구’라는 의미의 뉘하운(Nyhavn) 지역이다. 1673년 운하가 개통되면서 알록달록하게 조성된 이곳은 운하를 가운데 두고 양옆에 노천카페와 갖가지 물건을 파는 노점상, 식당들이 즐비하다. 운하 옆에 도열한 형형색색의 가옥들은 마치 동화 속 마을임을 뽐내는 듯 보인다. 관광객들은 일제히 카메라를 들이댄다. 운하 가운데 도열한 유람선들이 자유로운 상상력을 한껏 부추기며 어서 타라고 손짓한다. 수로를 따라 양쪽에 늘어선 건물들을 감상하는 맛은 여행의 흥취를 높여준다. 삶이 무미건조하고 지루할 때 분주하게 흥청거리는 이곳을 거닐면 어느덧 다른 활력 속으로 자신이 밀려 들어갔음을 자각하게 될 것 같다. 특히 운하 가장자리에 빼곡한 음식점에서 이것저것 군것질을 하면 금방 세상에 너그러워진다.

이곳 건물 중 가장 눈길이 머무는 곳은 현대 아동문학의 기초를 놓은 창작 동화의 세계적인 작가, 안데르센(Hans Andersen, 1805~1875)이 생전 거주하던 집과 동네다. 바닷가와 마주하는 뉘하운 항구 근처에 있는 노란 타운하우스 벽에는 “안데르센이 여기 살면서 1835년 3월 첫 동화집을 냈다”고 적혀 있다. 운하 풍경을 설명하는 유람선 가이드는 “생활 형편이 여유롭지 않았던 안데르센이 이곳 67번지, 18번지 등 여러 곳을 월세로 전전했다”며 갖가지 색상의 집들을 손짓으로 일러준다. 코펜하겐에서 기차를 타면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오덴세의 생가에는 그의 동상과 박물관이 있다.

안데르센은 덴마크 제2의 도시 오덴세에서 구두 수선공과 세탁부였던 부모 사이에 태어났다. 가난한 환경 속에서 자란 그는 불과 14살에 연극인의 꿈을 안고 코펜하겐으로 이주했으나 별 성과를 내지 못한다. 하지만 당시 한 예술애호가의 후원으로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재학 중에 발표한 [죽어가는 아이]를 계기로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늦깎이 작가로 장편 소설 [즉흥시인] 등을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는다. 30세 때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는 이름의 첫 동화집을 내면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19세기 창작 아동문학의 기틀을 잡은 그의 작품으로는 [미운 오리 새끼] [인어공주] [벌거벗은 임금님] [성냥팔이 소녀] 등 200여 편이 알려져 있으며 전 세계 어린이들의 필독서가 돼 있다. 140여 년 전에 타계한 그가 아직도 어린이들의 상상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동화는 물론 만화·애니메이션·드라마의 형식으로 종횡무진 활약하는 인어공주 동상은 뉘하운 북쪽 랑엘리니 부두 한쪽 바위 위에 의외로 작고 소박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명성에 비해 너무 조촐해 다들 의외라는 표정이다. 마치 벨기에 브뤼셀의 명물, ‘오줌 누는 소년’을 봤을 때와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도 해외 여행객들은 시도 때도 없이 남녀노소 불문하고 이 바닷가를 찾아와 80㎝ 높이의 그 작은 동상을 반긴다. 이 동상은 덴마크 맥주회사인 칼스버그의 회장이 조각가에게 의뢰해 만들어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동화 [인어공주]에서 바닷속 왕국의 인어공주는 물에 빠진 육지의 왕자를 구해준 후 짝사랑에 빠진다. 한동안 악마의 유혹에 흔들리고 방황하지만 결국 다른 나라 공주와 결혼한 왕자를 축복하고 영생을 얻어 승천하게 된다는 것이 주된 줄거리다. 요즘같이 급변하는 세상에서 멀리 한국의 어린이들도 읽는 ‘지어낸 얘기’(fairy tale)들이 180여 년쯤 되는 오랜 세월을 이어가며 생존하는 힘은 무엇일까 심히 궁금해졌다.

디즈니랜드의 모델이 된 티볼리 가든


▎디즈니랜드 등 전 세계 놀이공원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덴마크 티볼리 공원 전경. / 사진:언스플래시
안데르센 동상이 서 있는 코펜하겐 시청사를 중심으로 한 건물 집단들은 마치 건축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듯 보였다. 여행자들의 만남 장소로 제격인 근처의 중앙 역사는 4개의 고딕식 첨탑이 중앙의 가장 크고 높은 주 첨탑을 둘러싸고 있다. 유사한 분위기의 시청사도 역시 같은 계열의 첨탑 배치를 자랑하고 있다. 3~4층 높이의 검붉은 벽돌 건물 위에 5개의 청록색 고딕식 첨탑이 자리하고 있어 세월의 무게감과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가운데 가장 높은 105m의 첨탑에는 고색창연한 금장 시계가 박혀 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정확한 시간을 알려준다고 해서 진귀한 명품으로 존중받고 있다.

청사 정면 중심부를 장식하고 있는 황금빛 부조 조각상은 덴마크의 창건자이며 강력한 통치자로 명성을 떨친 대주교 압살론을 새긴 것이다. 햇살을 받으면 그 황금빛을 도시 곳곳에 뿌려줘 은혜로운 느낌을 전파한다. 압살론이 돌로 성을 쌓았다는 크리스티안스보르 궁전의 왕립도서관에는 안데르센의 일기와 편지, 원고 등이 보관돼 있다.

시청사 오른쪽에는 안데르센의 대형 동상이 청록색 중절모자를 쓴 채 중후한 모습으로 대로변 풀밭 옆에 자리하고 있다. 동상의 받침단을 높이 쌓지 않아 누구든 친숙하게 매만지게 돼 있다. 행인의 손길을 탄 동상 곳곳이 반들반들하다. 사진을 찍으며 그의 무릎 사이에 애써 안기려는 여행객들도 자주 눈에 띈다. 동상 속 안데르센의 시선은 정면이 아닌 대각선 방향의 건너편을 바라봐 관람자의 눈길도 그를 따라가게 된다. 그 옆 큰길이 안데르센 대로(Blvd.)다. 그리고 시청사를 마주 보는 건물에 삼성전자 휴대폰 광고가 걸려 있어 감탄을 자아낸다.

안데르센의 시선은 동화작가답게 건너편 ‘티볼리 가든’ 공원에 꽂혀 있다. 동상 설립 당시 의도된 것이란다. 1843년 개장한 이 가든은 어린이용 테마파크의 효시이자 모델로 손꼽히는 곳이다. 안데르센은 승천해서도 여전히 아이들이 자주 드나드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셈이다. 시내 중심에 자리한 이 공원 안에는 역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스릴만점의 롤러코스터가 어린이들을 유혹하고 있다.

티볼리 가든은 여행객들이 쏟아내는 즐거운 비명과 함성으로 대로변의 행인들을 모은다. 뱃놀이 연못·회전목마·극장·레스토랑 등도 있어 시내 한복판의 놀이터인 셈이다. 1955년 개장한 미국의 디즈니랜드가 이 공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니 대단히 앞선 발상을 한 것임이 틀림없다. 티볼리 가든은 안데르센이 한창 잘나가는 시기에 지어졌으니 분명 그가 덴마크를 보다 실질적인 ‘동화의 나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여겨진다.

일부 평론가들은 그의 동화 집필에 어렵고 외로웠던 유년 시절의 상상력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으로는 결혼 한 번 해보지 않은 독신자가 어린이들을 현혹하는 글을 쓰고 있다는 비난에도 시달렸다는 씁쓸한 뒷얘기도 전해진다. 1843년 발표한 [미운 오리 새끼]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그의 작품은 성별과 나이와 무관하게 누구나 즐기는 작품이 됐다. 그를 기념하는 우표도 발행되고 정부 연금 등 국가 혜택까지 받게 됐다.

40세 이후는 경제적 여유를 누리기도 했지만 죽기 3년 전, 침대에서 떨어진 낙상 후유증과 합병증에 시달리다 1875년 8월,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식은 덴마크의 당시 국왕이었던 크리스티안 9세와 루이센 왕비까지 참석할 정도로 국가적 행사가 됐다.

레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장난감


▎현재 덴마크 왕실이 거주하는 아말린보르 궁전의 근위병 교대식. / 사진:고혜련
덴마크가 원조임을 자랑하는 레고 장난감은 [타임]지에 의해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장난감’으로 뽑히기도 했다. 레고라는 단어 자체가 덴마크어로 ‘재미있게 놀다’라는 의미의 ‘leg godt’에서 유래됐다. 레고는 조립식 블록 장난감을 지칭하는 전 세계 보통명사가 됐을 정도다. 레고는 덴마크의 목수인 올레 크리스티안센이 1932년 설립한 회사다. 레고그룹이 최근 사용하는 슬로건, ‘세상을 다시 세우자(rebuild the world)’가 다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인상적이다.

철학과 이야기의 도시

[죽음에 이르는 병], [이것이냐 저것이냐], [불안의 개념] 등의 저자로 잘 알려진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Soren Kierkegaard, 1813~1855) 역시 이곳 출신이다. 크리스티안스보르 궁전 근방에 세워진 그의 동상이 그가 덴마크를 상징하는 인물 중 한 사람임을 드러내 준다. 그가 강조한 ‘개인의 자유와 체험을 중시하는 주체적인 삶’은 북유럽에 넓게 영향을 미쳤고 후대에 실존주의 철학의 대표적 인물로 손꼽히게 됐다. 실존주의의 사전적 풀이는 인간의 일반적 본질보다는, 타인과 대치할 수 없는 개개 인간의 주체적 실존을 강조하는 철학을 의미한다. 키르케고르는 부유한 상인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부모와 다섯 오누이까지 모두 잃는 엄청난 시련의 절망과 고독 속에서 몸부림치다 42세의 젊은 나이에 비극적인 삶을 마감한다. 그가 견지해 온 인간 실존을 위한 철학이 과연 어떤 삶의 무기를 안겨줬는지 궁금해진다.

입헌군주국인 덴마크왕국에는 여왕을 위시한 왕실 식구들이 살고 있는 아말린보르 궁전이 코펜하겐 시내에 있다. 귀족들이 살던 주택 4채를 보수해 지은 이유에선지 의외로 소박하다. 코펜하겐의 영역을 넓게 확장하고 이 궁을 지은 프레데리크 5세의 기마 상이 정중앙 광장에 자리하고 있다. 매일 정오에 행해지는 왕궁 근위병 교대식도 여행객들에게는 색다른 볼거리 중의 하나다. 위엄을 보이려는 듯 지나치게 큰 검정 털모자를 장착해 가분수가 된 듯한 그들 모습이 오히려 정겹고 동화다웠다.

왕실 식구들은 당초 덴마크의 창건자이기도 한 압살론 대주교가 지은 크리스티안보르 궁전에 머물렀으나 전쟁과 큰 화재로 궁전이 타격을 입자 현재의 아말린보르 궁전으로 옮긴 것이다. 현재 덴마크 의회가 들어 있는 크리스티안보르 궁전은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덴마크 왕자 [햄릿(Hamlet)]의 배경이 된 곳이다. ‘스토리’가 살아 있는 곳은 역시 느낌이 별다름을 실감한다.

그렇게 저마다 다른 우리의 삶은 개인이 체감한 크고 작은 역사의 결집체라 할 수 있다. 함께 겪은 사람과 장소, 시간이 있어야 비로소 흘러간 세월을 현재의 것으로 오롯이 살려낼 수 있는 것이리라. 안데르센은 “모든 사람의 일생은 신의 손으로 쓰인 동화”라고 했다는데 아주 그럴싸하다.

※ 고혜련 - 칼럼니스트. 자연과 함께하기, 온 세상 여행하기가 요즘 주요 관심사다. 중앙일보 등 국내 외 주요 일간지에서 기자·문화부장·런던특파원을 지냈다. [어머니, 당신은 내 운명], [힘내! 이제 다시 시작이야] 등 7권의 저서가 있다. 이화여대를 거쳐 미국 뉴저지주립대, 영국 런던대 대학원에서 국제정치·저널리즘을 전공했다. 현재 출판사 (주)제이커뮤니케이션 대표로 일한다.

202312호 (202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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