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현지탐방] 요즘 와인 애호가들이 주목하는 조지아 와인 

와인의 탄생지에서 ‘신의 물방울’을 맛보다 

나권일 월간중앙 편집장
동유럽 최대 와인 생산국… 8천 년 전부터 와인 문화 즐겨
자연 그대로의 맛 추구… 친환경·내추렬 선호 젊은 층 관심


▎내추럴 와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조지아 와인이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조지아 카헤티의 쉴다 마을에 자리한 추비니 와인 셀라 농장. / 사진:김욱성
조지아공화국 하면 흔히 소련의 철권 통치자 스탈린의 고향이라거나 조지아정교회를 대표하는 트빌리시 성삼위일체 대성당을 거론하곤 한다. 하지만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동유럽 최대 와인 생산국이자 와인의 탄생지로 더 알려져 있다. 주요 와인 수입국이었던 러시아가 거래선을 줄이면서 ‘조지아국립와인청’(LEPL, National Wine Agency of Georgia)이 최근 아시아 시장을 두드리기 시작한 것도 조지아 와인(Georgia wines)이 부각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 최대 와인 미디어 ‘와인21닷컴(대표 최성순)’이 조지아국립와인청과 손잡고 현지 탐방단을 꾸린 것은 시의적절한 선택이었다.

조지아는 국내 와인 애호가들에게 다소 낯설지만 와인산업이 GDP의 6%를 차지하는 와인 강소국이다. 지리적으로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위치해 기후대가 다양하다. 동부 카헤티(Kakheti) 지역은 기후가 건조해 750m 고지대에서 내추럴 와인을 많이 생산한다. 카헤티에서 조지아 와인의 70%가 생산된다. 서남부 카르틀리(Kartli) 지역은 코카서스 산맥과 인접해 건조한 특징을 보인다. 흑해에 인접한 서쪽 이메리티 지역은 습하면서도 서늘하다. 조지아는 이렇게 다양한 기후를 활용해 스파클링부터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 주정강화 와인, 아이스 와인까지 다양한 와인들을 생산해 세계 60여 개 나라에 수출하고 있다.

달걀 모양 항아리 크베브리에서 숙성


▎조지아 전통 방식의 와인은 크베브리에서 숙성시켜 마신다. 와인을 양조할 때 껍질을 함께 넣기 때문에 색깔이 짙은 오렌지 빛이나 호박색을 띤다. / 사진:김욱성
조지아 화이트 와인을 대표하는 품종은 르카치텔리(Rkhatsiteli)다. 청포도인데, 마시면 산미가 강하고 경쾌하며 과일향이 난다. 레드 와인의 주된 품종은 사페라비(Saperavi)다. 적포도로 색깔이 진하고 달콤하다. 조지아 포도 품종은 토착 포도 품종만 520여 종이 있지만 구 소련 시절 지배층에 의해 화이트 와인은 르카치텔리로, 레드 와인은 사페라비로 품종이 통일됐다. 조지아에서는 레드 와인보다는 화이트 와인을 더 즐긴다.

조지아 와인은 크베브리(Qvevri)에서 숙성시키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양조한 것이 특징이다. 앰버(Amber) 와인으로도 불리는데, 와인을 양조할 때 껍질을 함께 넣기 때문에 와인 색깔이 짙은 오렌지빛이나 호박색을 띤다. 때문에 화이트 와인을 마실 때도 레드 와인과 같은 타닌과 구조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조지아 와인을 말할 때는 ‘와인의 발상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를 한 흔적이 있는 전통적인 토기 크베브리에서 연유됐다. 달걀 모양의 대형 항아리인 이 고고학적 유물은 기원전 6천 년경에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조지아는 무려 8천 년의 와인 역사를 가진 셈이다. 학자들은 조지아에서 시작된 와인 문화가 그리스와 이집트, 고대 로마를 거쳐 유럽으로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조지아 전통적인 와인 양조법이 2013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다.

토착 품종 되살린 집념의 와인 장인


▎트빌리시 언덕에 세워진 ‘조지아의 어머니상’ 오른 손에는 칼, 왼손에는 와인 잔을 들고 있다. / 사진:김욱성
실제 조지아 현지에서 와인과 관련된 다양한 상징물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Tbilisi) 시내를 걷다 서울의 남산쯤 되는 솔롤라키 언덕에 세워진 대형 여신상이 눈에 들어왔다. ‘조지아의 어머니’ 동상이다. 오른손에는 칼을, 왼손에는 와인 잔을 들고 서 있다. 적에게는 칼로 맞서고, 친구에게는 와인을 대접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트빌리시 시민들이 즐겨 찾는 카페 골목에는 조지아에서 발굴된 6㎝ 크기의 유물을 확대해 복원해 놓은 청동 조각상이 있다. 기원전 7세기경 조각상으로 타마다(Tamada)상이다. 타마다는 조지아 사람들의 연회에서 건배를 제의하는 인물을 ‘타마다’라고 부른 데서 연유됐다. 조지아가 와인의 고향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듯했다.

11월 8일, 조지아 동부 카헤티 지역에 자리 잡은 95년 역사의 ‘볼레로(Bolero)’ 와이너리를 찾았다. 크베브리만 224개나 갖추고 있다고 했다. 안내를 받아 크베브리 저장소(마라니)를 찾았다. 먼지 냄새와 와인 향이 섞인 독특한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달걀 모양의 대형 항아리를 입구만 쏙 놔두고 우리나라 김칫독처럼 땅에 묻어 놓았다. 항아리는 성인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컸다. 실제 한 번 사용한 크레브리는 사람이 들어가서 반달 모양의 전용 솔로 청소한다고 했다. 와인이 숙성되는 마라니는 거룩한 장소로 여겨 외부인의 출입을 금했고, 여자나 아이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마라니 안은 발효되면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에 질식되지 않도록 잘 환기시키고 늘 서늘하게 유지한다.

카헤티 지역의 전통 와인은 포도를 수확한 뒤 포도 껍질과 씨, 줄기까지 통째로 크베브리에 넣는다. 포도 껍질에 묻은 야생 효모를 활용해 발효시키는데, 3~6개월 숙성되면 포도 씨가 크베브리의 맨 밑으로 내려가고, 껍질이 크베브리의 아래에 위치한다. 자연 여과되면서 크베브리 위쪽으로 와인이 올라오게 되는데, 그 와인을 걸러서 마신다고 했다. 가을에 첫 번째 수확한 포도로 양조한 와인은 6개월쯤 지난 이듬해 봄 부활절에 꺼내어 마신다고 했다. 와인 시음장으로 이동해 치난달리 화이트 와인을 맛보았다. 샴페인처럼 신선하고 경쾌했다. 사페라비레드 와인은 색이 아주 진했고, 타닌감이 강했다.


▎트빌리시 시내 거리에서 만난 타마다 청동 조각상. / 사진:와인21닷컴
11월 9일, 사라진 조지아 토착 품종을 전통방식으로 되살리고 있다는 와인 메이커를 만나기 위해 카르틀리 지역에 위치한 ‘카피스토니(Kapistoni)’ 와이너리를 찾았다. 와이너리 오너이자 와인 메이커니코 초치시빌리 씨가 반갑게 맞았다. 그는 7대에 걸쳐 와인 양조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조지아 토착 품종 포도 고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자신의 와인 철학이라고 했다. 그는 구 소련 시절 주요 와인 수입국인 러시아가 토착 품종 재배를 하지 못하게 하면서 사라진 토착 품종들을 묵묵히 되살려 왔다고 했다. 그가 되살린 토착 포도 품종만 10종이 넘는다. 진지한 눈빛과 다부진 말투에서 소탈하지만 자부심 강한 장인정신이 엿보였다.

그는 포도의 순수한 맛을 살리기 위해 오크통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100% 크레브리로만 와인을 양조한다. 그의 마라니 실내 온도는 늘 18도 정도를 유지하는데, 발효가 한창일 때는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많아 환기를 잘 해줘야 한다고 했다. 그가 마라니에 묻힌 한 크베브리의 뚜껑을 열고 르카치텔리를 발효시킨 와인을 즉석에서 맛보게 해주었다. 올해 수확해 2개월 숙성시켰다고 했다. 덜 숙성된 와인인데도 상큼하면서도 청량한 맛이 일품이었다.

돼지고기 요리와 어울리는 사페라비 와인


▎카피스토니 와이너리의 와인 메이커 니코 초치시빌리 씨(왼쪽)가 마라니에 묻힌 크베브리의 뚜껑을 열고 발효시킨 와인을 즉석에서 맛보게 해주었다. / 사진:김욱성
그의 와이너리는 다품종 소량생산이다. 품종마다 수천 병씩만 생산하기에 연간 최대 5만 병 생산에 그친다. 그나마 올해는 기후가 좋지 않아 예년의 40% 물량밖에 생산하지 못했다고 했다. 전통 방법으로 만드는 내추럴 와인이라는 명성에 유럽과 아시아, 일본, 홍콩 등 여러 나라에 수출되고 있다. 희귀 품종으로 만든 그의 와인은 평균 7.5~14달러에 출고된다.

그가 미리 마련해 둔 시음장에 둘러앉았다. 조금 전 크베브리에서 맛본 르카치텔리 품종의 2109년 빈티지 화이트 와인을 맛보았다. 상큼하면서 달콤했고, 과일향이 느껴졌다. 그는 쿤드자(Kundza)라는 희귀한 품종으로 빚은 화이트 와인도 내놓았다. 포도 열매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거리고 했다. 사페라비 품종으로 만든 레드 와인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기는 돼지 목살 요리와 어울리는 와인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안미영 와인21 편집장은 “카피스토니의 와인들은 오랜 역사가 있는 양조 방식을 사용해 최소한의 개입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생산했을 때 얼마나 품격 있는 와인이 탄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평했다.

조지아에 크베브리로 양조한 전통 와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오크통에 숙성하는 유럽 방식으로 생산하는 와이너리도 있고, 새로운 와인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젊은 와인 메이커들도 많다. 실제 조지아 전체적으로는 전통 방식이 20%, 유럽형 혼합 방식이 80%를 차지한다고 했다. 다양한 종류의 와인을 생산해 서구와 아시아 지역 와인 애호가들의 선택지를 넓히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일반적 와인과는 다른 독특함과 다양함


▎거대한 코카서스 산맥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장미 정원을 조성해놓은 카헤티 지역의 ‘바지수바니 에스테이트’. 조지아에는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와이너리가 많다. / 사진:김욱성
조지아 현지에서 만난 와인들은 저마다 독특하고 다양한 스토리를 담고 있어 흥미로웠다. ‘쉴다(Shilda)’ 와이너리가 내놓은 키르케(Kirke) 와인은 고대 신비로운 여신의 모습을 하고 있는 레이블이 인상적이었다. 보름달이 떴을 때 여자들만 농장에 들어가서 아침 동트기 전까지 수확한 포도로만 만들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맛보니 왠지 모를 신비로움이 더했다. 피로스마니(Pirosmani)는 조지아의 유명 화가인데, 국내 유명 가수 심수봉 씨가 부른 ‘백만 송이 장미’의 실제 모델이다. 백만 송이 장미를 바치고도 사랑을 얻지 못한 이 비운의 화가를 기리는 와인이 바로 피로스마니 와인이다. 조지아를 감싸고 있는 거대한 코카서스 산맥은 인류를 위해 불을 훔쳤다는 프로메테우스가 바위에 매달려 있었다는 그 산이다. 프로메테우스 이야기는 조지아 와이너리의 레이블에 다양하게 변형돼 사용되고 있다.

전통적인 크베브리로 만든 와인, 앰버 와인 등 조지아 와인은 오크통에 숙성된 서구 와인에 익숙해진 이들에게는 다소 낯선 맛일 수 있다. 하지만 치난 달리나 무크자니 와인은 국내 와인 애호가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맛으로 권유할 만하다. 요즘 내추럴 와인을 즐기는 젊은 층들은 조지아 와인에서 일반적 와인 맛과는 다른 독특함과 다양함을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국내 와인 마니아들이 찾는 목록에 조지아 와인도 포함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국내에서는 가자주류에서 2022년부터 ‘샤토 부에라(Chateau Buera)’ 와인을, 수입사 퍼플독에서 ‘샤토 무크라니(Chateau Mukhrani)’ 와인을 수입해 선보이고 있다.

- 나권일 월간중앙 편집장 na.kwonil@joongang.co.kr

202401호 (2023.12.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